Sortie 030 - 파벌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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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과나카날에 고립되어있던 우리는 한동안 받지 못했던 보급을 받을 수 있었다. 오던 도중 갈라 섬 북방 해역에서 베티 편대의 뇌격을 받은 덕분에 11척에서 7척으로 그 수는 줄어 있었지만, 조금 부족하나마 보급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한거다.
단순히 식량이나 탄약만 온건 아니다. 내가 기다리던 베어링과 엔진, 랜딩 기어 같은 소모성 부품들로부터 시작해서 주익 부품과 항공기용 기관총 등이 도착한 덕분에 그동안 각종 비전투 손실로 수리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처박혀있던 블랙캣들이 전열에 복귀하게 되었으니까. 더군다나 새 블랙캣 2기가 분해된 상태로 전달된 덕분에 신품 블랙캣 2기까지 합쳐 우리 기사단은 12기의 블랙캣을 보유하게 되었다. 더이상 로테이션제로 출격하지 않아도 된다, 이 말씀이다!
해상 보급을 통해 대대적으로 증강된 에르데 제국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해상 보급이 이루어졌다는 말은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제국 해군이 제해권을 차지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다시 말해, 그동안 매일같이 시달려왔던 적 전함들의 포격에서 드디어 해방되었다는 말이다!
좋은 소식은 쉬지 않고 몰려왔다.
8월 7일, 항공모함 사라토가와 중순양함 마테리얼을 중심으로 한 에르데 제국 해군 소속 제14임무부대가 과나카날 북쪽 80km 지점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우연히 그들을 발견한 후소 제국 정찰기 덕분에 잠수함의 습격과 베티와 발, 그리고 케이트 공격기들의 합동 공격을 받았지만, 무적함대처럼 보무도 당당하게 나아가는 14 임무부대에게 있어서 이들의 저항은 사소한 발악에 불과했다.
사라토가의 4개 항공 기사단과 핸더슨 비행장에 주둔중인 우리 44 항공 기사단을 포함한 2개 항공 기사단, 도합 6개 항공 기사단 71기의 전투기가 강력한 대공 초계망을 펼쳐 이곳저곳 분산되어 침투해오는 적 뇌격기와 폭격기들을 하나하나 사냥했고, 사라토가의 2개 뇌격 기사단과 핸더슨 비행장의 급강하 폭격 기사단은 뇌격과 급강하 폭격으로 부상한 적 잠수함들을 사냥했다.
결과? 대성공이지. 우리가 전투기 5기를 잃는 동안 총 14기의 적기가 격추되었고, 8기가 상처 입은채로 회항해야 했다. 조종사의 손실로 비교하자면 우리가 한참 이득이다. 이틀간의 대공 전투기간 동안 우리는 전사 한명에 부상 두명이지만, 후소 제국은 조종사 8명과 항공 승무원 4명이 전사했다. 부상자 4명은 따로 포로로 잡혔고. 실종자까지 포함하면 우리의 전과도 늘어날거다.
하늘에서의 승리는 바다속에서도 이어졌다.
6일 오전, 적 잠수함 1척이 구축함의 폭뢰에 격침된 것을 시작으로 주변에서 초계중이던 어벤저 뇌격기들과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들이 6일 하루동안 총 3척의 잠수함을 격침시켰다. 그중 2척은 크기가 작은 소형 잠수정인게 아쉽지만, 잠수함은 귀중한 정찰 전력이니 적의 눈을 뽑아버렸다고 평가해도 좋을 정도로 의미 있는 성과였다.
7일에는 대잠 경계망을 뚫고 들어온 적 잠수함이 중순양함 마테리얼에게 어뢰 3발을 발사했지만 단 1발도 맞지 않았고, 오히려 급히 달려온 구축함 파레니우스에게 걸려 폭뢰 선물만 잔뜩 떠앉았다. 아쉽게도 격침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승리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항공모함의 가장 큰 강점은 위치에 관계없이 공군력을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까운 비행장이 1000km나 떨어져 있어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망망대해라고 하더라도 항공모함만 있으면 만사 OK!
다만, 아직 에르데 제국에는 ‘야간 항공모함’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제국군의 레이더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아직 전투기에 탑재할 만큼 소형화되지 못했고, 필그림이 갖고있는 소형 레이더 기술은 함재기용이 아닌 육상 기지에서 운용하는 대형 야간 전투기용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 즉, 다시 말하자면 야간에 한해서는 항공모함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말이다.
낮에 바다와 하늘의 주인은 에르데 제국과 브리타니아 제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것이지만, 밤에는 달랐다. 슬롯을 통해 내려온 후소 구축함과 순양함들은 그 잽싼 기동성을 이용해 에르데 해군의 감시망을 뚫고 과나카날에 접근해 함포로 포격을 가하곤 했다.
물론, 구축함의 5인치 함포로는 비행장에 포격해봤자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한다. 그냥 잠잘 때 짜증날 정도? 일단 오밤중의 포격은 탄착수정도 할 수 없으니 그냥 감으로 쏘는, 말 그대로 눈 먼 포탄이라 제대로 방공호가 갖춰진 우리에게 그다지 큰 위협은 아니었다. 이런 표현하기 뭣하지만, 맞는 사람이 재수 없는 셈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구축함들이 매일같이 밤마실을 나와서 포탄 던지고 가는 상황 자체가 문제다. 최소한 밤만큼은 후소 제국이 제해권을 장악했다. 매일 같이 놀러오는 구축함들 뒤로 어렴풋이 보이는 수송함의 실루엣들은 해병대원들을 긴장시켰고, 모기마냥 밤하늘을 날아다니며 이리저리 50kg 폭탄 한두발을 던지고 도망치는 수상기는 우리 항공 기사들의 신경을 열심히 긁어댔다.
물론, 에르데 제국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야간 제해권을 빼앗긴 다음날, 그러니까 8월 11일, 에르데 제국군과 브리타니아 제국군, 그리고 빅토리아 방위군을 주축으로 한 반격 함대가 적에게 역습을 가했다. 급히 차출해낸 빅토리아 방위군의 중순양함 2척과 경순양함 1척을 중심으로 브리타니아 제국군의 중순양함 1척, 구축함 2척, 에르데 제국군의 구축함 4척으로 이루어진 반격 함대는 슬롯을 통과해 사보섬을 끼고 남하하던 적 함대 앞을 단종진으로 막아섰다. 적의 주력은 대부분 구축함. 이쪽은 8인치급 함포 27문, 저쪽은 최대 구경이 5인치였다.
결과?
박살났다.
미리 단종진을 치고 매복해있던 반격 함대 앞으로 다가온 후소 함대는 마치 반격 함대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 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이쪽의 첫 포성이 울림과 동시에 30노트가 넘는 고속으로 반격 함대를 향해 돌진한 후소 구축함들은 순식간에 어뢰 사정거리 안으로 파고들었고, 뒤이어 7척의 구축함들이 수십발에 달하는 산소 어뢰를 반격 함대를 향해 쏟아냈다. 반격 함대는 재빨리 회피기동에 들어갔지만, 이 산소 어뢰를 피하는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 사정거리만 20km에 시속 100km 가까이 나오는 무시무시한 어뢰를, 5km도 안되는 근거리에서 피한다는게 말이 안되는거다.
발사된 60여발의 어뢰 중, 13발이 명중했다. 빅토리아 방위군 소속 중순양함 1척, 에르데 제국의 구축함 2척과 브리타니아 제국의 구축함 1척이 격침당했고, 다른 중순양함 하나는 대파당해 빅토리아 대륙으로 비틀거리며 퇴각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야간 해전에서 승리를 차지한 것은 후소 제국군이었다. 안그래도 없는 대형 함정들의 손실에 버틸 수가 없었는지, 해협 방위를 담당하던 감시 함대는 야간전이 벌어진 날 아침, 초계 라인에 구멍을 남긴채 남쪽으로 퇴각했다.
그리고 전선에 난 구멍 안으로 적 잠수함들이 쇄도해들어왔다.
8월 15일, 과나카날 동쪽에서 140km 떨어진 해역에서 작전을 벌이던 항공모함 새러토가가 잠수함의 뇌격에 당해 사파이어만으로 끌려갔다. 다행히 함재기 운용 능력에는 지장이 없어 탑재하고 있던 6개 기사단을 우리 핸더슨 비행장으로 보내준 다음 후퇴했다는 것이 그나마 좋은 소식이었다.
8월 17일, 새라토가의 피격 소식을 듣고 증원을 위해 급하게 북상하던 항공모함 와스프와 제 12 기동부대가 적 잠수함대의 매복에 걸려 크게 당했다. 3척으로 추정되는 적 잠수함들은 삼각형으로 포진한 채 급한 마음에 최고 속력으로 달려오던 12 기동부대가 덫에 걸려든 순간 일제히 어뢰를 발사했다. 너무 빠른 속력에 소나 같은 대잠 탐지기들이 전부 무력화된 상태. 삼각형의 세 꼭지점에서 매복하고 있던 후소 잠수함은 함대의 심장, 항공모함을 노리고 십수발의 어뢰를 부채꼴 모양으로 삼각형의 중심을 향해 발사했다.
그리고 12 기동부대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60여기의 항공기를 적재하고 이던 항공모함 CV-7 와스프가 우현에 53cm 어뢰 3발을 얻어맞고 가장 먼저 격침 당했다. 새로이 진수되었던 신형 전함 BB-55 노스 칼레도니아도 좌현에 53cm 어뢰 1발을 얻어맞고 중파되어 기름을 질질 흘리며 응급수리 직후 사파이어만으로 회항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1000톤 가량의 해수를 우현에 끌어들인채로. 구축함 오브라이언은 함수에 어뢰를 얻어맞고 큰 화재에 휩싸여 200여명의 사상자를 냈고, 구축함 맥버스터는 함체 중간에 어뢰를 얻어맞고 그대로 5인치 장약이 유폭, 두동강이 난채로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보급선은 끊어져버렸고, 해협의 감시는 그대로 허공으로 증발했다. 이제 과나카날의 우리에게 남은건 핸더슨 비행장과 살아남아 도망친 4척의 구축함과 호위 구축함 2척, 어뢰정 5척이 전부. 그리고 상대는 후소 제국 최고, 최강의 함대, 기갑함대였다.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는 이런 정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나마 우리에게 도착한 유일한 희망은 사라토가와 와스프의 함재기들이었다. 사라토가의 3개 기사단 소속 36기, 와스프의 4개 기사단 소속 11기가 상처입은 모함을 대신해 핸더슨 비행장에 착륙했다. 거기다 에르투레란토의 새로운 폭격기 기지에서 B-17 2개 중폭격 기사단과 B-25를 사용하는 제18 경폭격 기사단이 도착했다. 덕분에 한가하던 핸더슨 비행장은 순식간에 100여가 넘는 항공기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8월 20일, 반데그라프 소장은 핸더슨 비행장의 12개 기사단 기사단장가 부기사단장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무슨 일이에요?”
“나도 모르겠는데?”
나와 사냐 공주가 쑥덕이는 사이 퀸셋 안으로 들어온 반데그라프 소장이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바쁜 시간에 빨리 모여줘서 고맙다. 새로 온 기사단의 과나카날 도착을 환영한다. 마음만 같아서는 거하게 환영 파티라도 열어주고 싶지만, 지금 전황이 좋지 않으므로 다음에 하도록 하지.”
휘이익~ 누군가 분 휘파람이 메이리치며 퀸셋 안에서 날뛰었지만, 아무도 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까.
“귀관들에게 오늘 모여달라고한 것은 이것 때문이다.”
그렇게 말한 반데그라프 소장은 품 안에서 임시 계급장을 꺼내들었다. 은색으로 은은히 빛나는,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적을 언제라도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있는 독수리.
대령 계급장이다.
“명확한 명령권 확립과 예하 부대 통제, 그리고 원활한 작전을 위해, 갈란트 중장 각하께서 지휘 계통을 정리하고 단일 지휘관을 임명하라고 하셨다. 이 지휘관은 새로이 창설될 임시 항공 함대 ‘인피니티’의 지휘관이 될 것이며, 임시이기는 하지만 과나카날 전역이 계속되는 동안 대령 계급을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인사권은 내게 있지.”
꿀꺽, 모두의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대령 다음은 준장. 대령까지만 가면 별을 다는 것도 식은죽 먹기다. 더군다나 지금은 전시 아닌가? 진급하기에는 딱 좋은 시간이다.
나랑은 딱히 상관 없지만.
“누가 하게 됩니까? 지금 계신 기사단장님들 중 최선임입니까?”
누군가 외친 말에 반데그라프 소장이 대답했다.
“아니. 본관은 이미 대상을 결정했으며, 그 어떠한 이의도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다.”
잠깐 주변이 술렁였지만 대놓고 반대하거나 반발하는 기사단장은 아무도 없었다. 상대는 소장, 지금 이곳을 지키는 해병 1사단의 사단장이다. 괜히 찍히지 않도록 다들 입 다물고 있는거다.
“앞으로 인피니티 항공 함대를 이끌 기사단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