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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29 - 저 말이에요..... 이제 감을 좀 잡은 것 같아요 Part 3


  3
 
  [에이트! 지금 뭐하나?!]
 
  펠츠 소위가 경악하며 비명을 질러댄다. 하긴, 믿기지 않겠지. 분명 내가 ‘일격 후 곧바로 이탈해서 고도를 회복한다’라고 명령했으니까. 이건 펠츠 소위 입장에서 보자면 마르살리온 소위의 단독 행동이나 마찬가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딱히 말리거나 하지 않았다. 벌써 마음대로 하라고 허가를 내려줬으니까.
 
  ……출격하기 전에, 몰래.
 
  [에이트! 즉시 상승해라!]
 
  “식스, 에이트는 신경쓰지 말고 고도 유지하면서 매복한 적기가 있나 경계하라. 내 뒤로 붙어 엘리멘트를 짜는거다.”
 
  [스…스키퍼? 스카이 트리, 지금 에이트를 저렇게 버리자는 겁니까?]
 
  “……버리는게 아니라 특수 훈련의 성과를 보자는거다. 다 계획대로니까 지금은 가만히 있도록. 부당한 명령이라고 고발하는건 나중에 돌아가서 해도 괜찮잖아?”
 
  [……식스, 대공 경계 시작합니다.]
 
  뭐가 불만스러운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한 펠츠 소위의 블랙캣이 내 뒤로 붙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천천히 커다란 원을 그리며 제로의 원형진 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아, 별건 아니고 단순히 관람하는거다. 마르살리온 소위의 연습의 성과를.
 
  결과?
 
  잭팟이 터졌다.
 
  첫번째 적기를 격추한 직후, 기수를 들지 않고 계속해서 강하한 마르살리온 소위는 한 500피트 정도 더 내려간 다음 바로 기수를 쳐들고 상승하기 시작했다.
 
  줌 클라이밍. 강하하면서 붙은 속도로 더 높은 고도로 올라가는 방법. 에르데 제국의 전투기들은 워낙 장갑이 두터워 무겁기 때문에 이런 줌 클라이밍을 쓰지 않고 엔진 파워로 올라가다보면 오래걸리고, 많이도 못올라간다.
 
  아니, 뭐, 그렇다고. 갑자기 강의하려던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어쨌든 줌 클라이밍으로 올라가던 마르살리온 소위의 앞에는 또 다른 제로기가 무방비한 배면을 드러낸채 지나가고 있었다. 블랙캣의 주익에서 불꽃이 몇번 번쩍인지 정확하게 1초 뒤, 그 제로기는 비틀비틀, 검은 연기를 엔진에서 뿜으며 원형진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남은 적기는 단 3기. 사실상 원형진은 붕괴된거나 다름 없는거다.
 
  [트리, 에이트. 적기 하나가 이탈했습니다.]
 
  “뒷처리는 우리가 할거야. 에이트는 남은 2기를 공격하도록. 아, 아까 재진입하면서 적기 하나를 뒤에 놓쳤다. 주의해라.”
 
  [에이트, 라져. 하이 요요 직후 재공격 들어갑니다.]
 
  “스카이 식스, 편대 풀고 후퇴하는 적기 추격해라. 엄호하겠다.”
 
  [식스, 적기 추격하겠습니다.]
 
  내게 오케이 신호를 보낸 펠츠 소위는 그대로 반전, 비틀비틀 도망치는 제로기 하나를 쫒아 내려갔다. 어차피 엄호고 뭐고 할것도 없다. 매복이 있었다면 진작에 나왔겠지. 지금은 우리와 교전하고 있는 원형진을 어떻게든 유지하며 악착같이 선회를 계속하는 3기의 제로기가 전부라고 봐도 될 것이다.
 
  물론, 이미 기체간 간격이 너무 벌어진 상태에서 그런 비행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을 뿐이지만.
  아까 로우 요요 직후 상승 하면서 1기를 지나친 덕분에 제로 하나가 마르살리온 소위 후방에 남아있었지만, 나는 공격 중단을 명령하지 않았고 마르살리온 소위도 공격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뭐? 원형진? 그래, 원형진이 수평 방향의 선회전에서는 무지막지한 방어력을 자랑하기는 하지. 그걸 가장 안전하게 뚫을 수 있는건 상대 고도 확보 뒤, 수직 기동을 통한 치고 빠지기 뿐이니까. 하지만 지금 살아남은 제로 전투기들이 형성한 원형진은 엉망이기 그지없다. 최소한 십수기는 되어야 각 기체간의 간격이 좁아져 확실한 엄호를 줄 수 있지만, 지금 남은 전투기는 고작 3기. 서로간의 엄호는 커녕 원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마르살리온 소위 앞의 2기는 이제 곧 죽은 목숨이고, 뒤에 남은 한기도 얼마 안있어 격추될 운명이라는 이야기 되시겠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다 올랐는지 순간적으로 속도가 느려진 블랙캣의 무거운 기수가 기우뚱, 앞으로 푹 숙여졌다. 아까보다는 완만한 내리막을 그리며 아래로 활강하던 블랙캣의 양 주익에서 불꽃이 십수개 피어났고, 이내 하얀색 궤적들 사이로 선회하던 제로기가 뛰어들었다. 흰색 페인트칠이 벗겨짐과 동시에 앙상한 구조물만 드러낸 제로기는 회피하려 기체를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지만, 상처입은 몸으로 그런 움직임을 해봤자 굼뜰 뿐이다. 한번더 가해진 1초간의 사격. 상처입은 제로 전투기는 온몸이 걸레짝이 된채 바라도 길고 긴 자유낙하 코스에 들어갔다.
 
  이제 남은 제로기는 2기.
 
  마르살리온 소위 후방에서 열심히 선회하고 있는 제로기를 주의하면서, 조심스레 펠츠 소위의 블랙캣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따라오는 추적자, 그러니까 펠츠 소위를 따돌리기 위해 피탄당한 연료탱크의 구멍 사이로 피같은 연료를 추적추적 흘리며 이리저리 왔다갔다 온갖 비행묘기를 해보이는 상처입은 제로를 펠츠 소위는 여유롭게 몰아가고 있었다.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이 안개를 몰아내면서 시야도 좋아졌겠다, 완전히 여유 만만이다.
 
  지금 이 제로기의 유일한 희망은 아직도 뿌옇게 남아있는 해무 사이로 숨는 것이겠지만…… 글쎄올시다. 살아남은 수송선 6척들은 해무를 방패삼아 그 아래서 열심히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는걸. 호위구축함들과 수송선의 대공무장들이 장식이 아닌 이상에야 화려한 축포를 선사받게 되겠지. 거기다 상처입지 않은, 쌩쌩한 펠츠 소위의 블랙캣이 여유롭게 제로기를 해무 반대쪽으로 몰아내고 있으니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
 
  “식스, 트리. 적당히 데리고 놀고 와라. 괜히 연료 간당간당해져서 불시착하지 말고. 우리에게 전투기 여유 분량이 많은게 아니다.”
 
  많은게 아니라 아예 없지.
 
  [톡톡]
 
  알았다는 듯 가볍게 마이크를 두번 건드린 펠츠 소위의 움직임이 훨씬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블랙캣의 기총세례가 적기의 동체를 관통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시선을 다시 마르살리온 소위에게 돌렸다.
 
  아까의 공격으로 고도를 잃은 마르살리온 소위는 다시 가속도를 붙혀 상승, 제로기의 후하방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완벽한 사각지대. 동료기가 있지 않은 이상 저곳에서 접근하는 마르살리온 소위를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때마침, 다른 제로기 하나는 원형진에서 이탈, 플랩까지 활짝 펴고 더더욱 날카로운 선회를 하면서 마르살리온 소위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에이트, 트리! 귀관 기준 8시 방향에서 적기 접근중. 확인하고 회피하라!”
 
  [……]
 
  답이 없다.
 
  “에이트, 트리! 8시 방향에 밴딧! 즉시 이탈해라! 엄호하겠다!”
 
  [……]
 
  “에이트!”
 
  답이 없다. 여전히 답이 없다. 빨라지는 심장소리를 느끼면서 페달을 앞으로 차고 조종간을 옆으로 눌렀다. 부드럽게 롤. 그리고 선회. 중력이 잡아먹을 듯 강력한 힘으로 내 피를 머리쪽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거의 수직에 가깝게 강하하도록 자세를 바꾼 나는 기체와 같이 자유낙하를 느끼며 조준간을 응시할 뿐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하얀색 실루엣이 점차 윤곽을 드러냈을 때,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퉁 투투퉁 투투퉁
 
  깔끔하게 삼점사. 남은 기총탄은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지금은 아낄 때가 아니다. 지금은 써야할 때다. 어쩌면 마르살리온 소위의 목숨이 걸려있을지 모르니까.
 
  아, 그래. 아직 거리가 멀다. 지금 쏴봐야 맞을리도 없다. 내 블랙캣의 기총은 350m에서 탄도가 겹치도록 세팅되어 있으니까. 그 이상이 넘어가면 탄들이 퍼져 맞을 확률도 현저히 줄어든다. 그러니까 지금 아까 쏜 것은 평소 교전이라면 하지도 않을 탄환 낭비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내가 노리는 것은 적기가 나의 존재를 눈치채는 것이지, 적기의 격추가 아니다. 당장 급한 것은 마르살리온 소위의 생존, 격추는 그 다음. 내가 발사한 수십발의 탄환은 그저 나의 존재를 눈치챈 적기가 방향을 틀고 이탈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점점 가까워지는 3기의 전투기. 앞서가는 제로 전투기의 꽁무늬를 쫒는 마르살리온 소위의 옆구리로 제로기가 빠르게 접근했다. 쳇, 늦었다. 마르살리온 소위의 블랙캣이 불울 뿜는 순간, 제로기 2기도 동시에 불을 뿜었다. 꽁무늬를 보이며 도망치려던 제로기는 연료통에 맞았는지 허공에 커다란 화구를 그리며 대폭발, 그리고 마르살리온 소위의 옆구리를 향해 달려들던 제로기는 내 접근을 눈치채고 기관총탄과 기관포탄 수십발을 마르살리온 소위를 향해 퍼부으며 재빨리 기수를 돌렸다.
 
  [꺄아악! 피….피탄! 피탄!]
 
  “에이트, 기수 들고 고도 확보해! 이놈은 내가 처리하겠다.”
 
  마르살리온 소위 아래로 패스한 제로는 플랩을 당겨 떨어진 속도를 보충하기 위해 기수를 쳐들고 상승하기 시작했다. 아직 나와 거리는 1km 남짓. 지금 쏴봐야 총알 낭비다. 어차피 몇초만 있으면 곧바로 격돌할텐데, 조바심 낼 필요도 없고 말이다.
 
  스쳐지나가며 본 마르살리온 소위의 기체는 처참한 몰골이었다. 주익의 20mm 기관포의 탄도가 아무리 휘어지니 나쁘니 해봐도, 역시 기관포는 기관포. 200m 남짓의 가까운 거리에서 십수발을 명중시켰는데 피해가 없는게 이상한거다. 블랙캣 후방 동체의 아래쪽 절반과 후크 테일은 그대로 사라졌고, 찢겨나간 곳에는 부서진 기골들과 금속 조각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마치 상어가 한입 베어먹은 모양. 지금 날고 있는게 신기하다.
 
  “에이트, 고도 확보하고 상태 보고해라! 하나 남은 적기는 내가 처리하겠다.”
 
  상처입은 그녀는 놔두고 그대로 한바퀴 롤, 편대를 푼 뒤 그대로 발발 거리며 기를 쓰고 하늘로 아둥바둥 올라가려는 제로기를 향했다. 아무리 제로의 상승력이 블랙캣 보다 한수 위라고는 하지만, 아까처럼 속도를 줄인 상태에서는 전혀 소용 없는 이야기. 오히려 저렇게 저속 상승을 계속할 경우, 속도가 떨어져 실속에 걸릴 수 있다. 응, 그래. 지금 저렇게.
 
  적기의 예상 고도는 대략 1500피트 정도? 이 고도에서 실속에 걸리면 추락은 거의 확실하다. 보통 실속에서 회복하는데 ​2​0​0​0​~​3​0​0​0​피​트​는​ 기본으로 소비해야 하니까. 하지만 지금 미리 끝내놓아 후환을 없애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겠지.
 
  빙글빙글, 실속에 빠진 채 돌아가는 적기가 내가 발사한 기관총탄에 벌집이 되어 박살났을 때, 마르살리온 소위의 피해 보고가 들어왔다.
 
  [에이트에요. 엔진과 주익에는 무리가 없지만…… 연료 탱크에 피탄된 것 같아요. 벌써 빙고 이하에요.]
 
  ……기지로는 못돌아가겠군.
 
  “기수를 북북서로 돌려라. 수송선단 근처에 불시착해서 배로 돌아오라고. 스카이 원?”
 
  [트리, 원, 잘 들려요. 송신하세요]
 
  “에이트가 피탄. 연료가 빙고 이하라 귀환은 힘든 것 같으니 수송선단이랑 같이 돌려보낼게”
 
  [……에이트, 내가 무리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내가 허가한거니까 좀 봐주라. 우리쪽 교전 끝났으니까 수송선단 위에서 합류하자.”
 
  [예. 저희도 끝났으니 합류할게요. 원, 아웃.]
 
 
  몇분 뒤, 비틀비틀 없는 연료를 짜내가면서 간신히 수송선단 상공에 도착한 마르살리온 소위는 그대로 퐁당, 바다에 불시착했다. 미리 연락을 받았던 호위 구축함이 달려와 그녀를 재빨리 구조했고, 물에 젖어 덜덜 떨면서도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바로 기수를 돌려 핸더슨 비행장을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두들 즐거워하는 분위기다. 일단 이겼고, 이제 보급 물자도 들어오니까.
 
  다만, 나는 아무래도 편히 쉴 수 없을 것 같다.
 
  [소~령~니임~ 저 말이에요, 드디어 감 잡은 것 같아요! 이게 다 소령님 덕분이에요! 저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이 은혜, 잊지 않고 모과 마음을 바쳐 섬길게요!]
 
  [……트리, 이게 무슨 말인지 좀 설명해주실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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