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셨습니다.”
3년 전-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지금껏 진지하게 굳어 있던 얼굴이 풀어진다.
고요한 대국실을 벗어나자 여기저기에서 환호성과 팀원들이 자신에게 몰려들었다.
그날, 일본은 신도우 히카루와 도우야 아키라 이후로 계속해서 한국과 중국에게 뺏긴 북두배[개인전]과 [단체전] 우승 타이틀을 다시 찾아온 순간이었다.
그 승리 타이틀을 따온 것은 일본 기원 소속.
이제 막 입단한 스가 프로.
당시 그의 나이 14세.
최연소 국가대표였으며, 최연소로 북두배 타이틀을 따왔다.
그 이후로 2회 연속 북두배 개인전 우승을 차지하고 단체전 우승에 기여한 소년을 사람들은 [북두배의 천재]라고 칭했다.
도우야 아키라.
이 이름을 모르는 일본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TV나 라디오 진행자로도 유명하지만, 일본에서 펼쳐지는 각종 바둑 대회와 세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프로 바둑 기사. 어려서는 도우야 명인의 하나뿐인 아들로, 그리고 현재는 혼인보에 근접한 바둑 기사로써 유명한 이.
마작에 미즈하라 하야리가 있다면 바둑에는 도우야 아키라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바둑을 몰라도 도우야 아키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도우야 정도 되는 외모를 가진 사람은 연예계를 통틀어도 흔치 않다. 아무리 어른스럽다고 한다 한들 아직 여고생. 잘생긴 훈남이 TV에 나오다 보면 알게 모르게 관심가지기 마련이다. 키요스미 부원중에서 도우야 아키라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동경만 품고 있던 사람이 갑작스레 자신들의 눈앞에 내려온 점에 히사를 포함한 키요스미 부원들은 꿈을 꾼 것 같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
스가 쿄타로를 만나러 왔다는 점에서, 그녀들의 충격은 한층더 커졌다.
학교 인근에 위치한 어느 외진 카페.
평소 마작 부원들끼리 자주 오는 장소로, 히사가 1학년때부터 즐겨 찾았다는 이른바 숨은 명소였다.
다른 프렌차이즈 커피점에 비해 화려함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쿄타로와 아키라는 그 카페에서도 외진 장소에 앉아 있었다. 키요스미 일행들은 이미 헤어진지 오래였다.
뭔가 잔뜩 묻고 싶어 했지만, 쿄타로가 평소 답지 않은 진지한 모습으로 부탁하자, 그녀들도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헤어졌다.
마지막 헤어졌을 때 사키의 표정이 아직도 걸린다. 마치 다시 울먹 울먹거리는거 같아, 쿄타로는 어찌 해야할지 모르겠다.
달래준지 몇시간도 채 안되었는데...
쿄타로는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그 아이들이니?”
“예?”
아키라가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머금으며 물었다. 여전히 그는 선글라스를 벗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리 인적이 드문 카페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아예없는건 아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SNS라는 것 덕분에 몇 초만에 소문이 확산되는 시대다.
괜스레 눈에 띄면 쿄타로와 이야기하기 위해 나가노까지 내려온 보람이 없었다.
쿄타로가 시선을 다시 아키라에게 돌리자, 그가 말했다.
“네가 마작부 매니저로 활약했다는 부의 부원들이.”
“매니저는 아니에요. 일단은 마작부원입니다.”
5명 밖에 없는 약세 동아리 주제에, 매니저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그러니 그도 일단은 마작부원.
“저는 초심자이니까, 인터하이에 나가는걸 도왔을뿐이에요.”
“초심자라...그말이 그렇게 어색하게 들리는건 처음이구나.”
북두배의 천재, 신동, 수많은 칭호가 붙고,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가진 아이다.
그런 아이가 입에 올린 초심자라는 단어는 무척이나 낯설다.
“저도 다른 분야까지 자신이 있는건 아니니까요.”
쿄타로는 쓴 웃음을 띄웠다.
지금 그의 얼굴을 만약 마작 부원들이 보면 무척이나 낯설어 했을 것이다.
평소 그녀들이 잘 알고 있는 스가 쿄타로는 또래 소년이나 별반 다를게 없었다.
거유에 집착하고, 노도카의 가슴이나 히사의 가슴을 힐끔 힐끔 쳐다보다, 그녀들에게 한 소리 듣고, 당황하는 그런 소년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의 모습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다.
어른스럽다. 그보다 한참 연상인 아키라와 대화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어려보이지 않는다.
교복만 아니라면, 그녀들이 이상형으로 꿈꾸던 그런 ‘어른’인 미청년으로 볼 것이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고 있지.”
“....”
소년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키라는 쿄타로 앞에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북두배 국가대표 소집 요청서야.”
“북두배라면, 저보다 나은 기사들이 있어요.”
“확실히. 스가군보다 나은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들이 [북두배의 천재]는 되지 못해.”
“.....”
바둑판의 귀공자.
신동.
수많은 호칭이 스가 쿄타로에게 붙었다. 하지만, 그 많은 호칭중에 스가 쿄타로를 대표하는 것은 이 호칭이었다.
북두배의 천재.
일명 기적의 세대로 까지 불리는 한중의 바둑 기사들을 물리치고 이년 연속 북두배의 우승을 차지한 소년에게 사람들이 붙인 호칭.
“저는....”
“거기다, 올해부터 북두배의 룰이 바뀌었어.”
“룰이요?”
아키라의 말에 쿄타로가 그를 쳐다본다. 그는 커피를 한모금 더 마셨다.
“현재 바둑 인구가 줄고 있는건 알고 있지?”
“그야 뭐...”
아키라의 말대로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바둑을 두는 인구는 점점 줄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였다. 바둑은 마작에 비해 화려함이 없다.
요 근래 마작은 화려하다. 꽃다운 미녀 프로들이 잔뜩 언론에 노출되었고, 인터하이에서 싸우는 소녀들은 거의다 레벨 높은 미소녀뿐이다.
거기다 그 미소녀들에게는 [이상한] 힘같은 것이 있다.
패를 지배한다.
운기를 지배한다.
강신을 한다.
미래를 읽는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오컬트.
그 오컬트를 무기로 삼고 화려하게 싸운다.
흡사 소년 만화속의 이능력 배틀과 같다.
그에 비해 바둑은 그런 화려함이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수와 수 읽기.
그 어디에도 오컬트가 끼어들 틈이 없다.
마치 사무라이의 진검 승부와 같은 치열함.
한수라도 잘못 읽는 순간, 그대로 게임은 종료 된다.
바둑은 화려함은 없지만, 그대신 깊이가 있다.
이런 대결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지루하게 보일수도 있다.
제일 중요한건 바둑은 너무 폐쇄 적이다.
마작의 프로는 대부분 인터하이를 통해 대뷔하게 된다.
인터하이는 전국에 방송으로 방영되니 그만큼 개방되어 있다고 할수 있다.
하지만 바둑은 오로지 일본 기원 소속의 원생이 된 이후, 그리고 시험을 통해서만 프로가 될수 있다.
그 모든게 전부 비공개로 진행되니, 폐쇄되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그러니, 점점 바둑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이를 방관할수 없던 일본 기원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프로들의 TV 데뷔.
그리고...
“올해부터, 북두배는 국제 대회로 바뀌었어.”
“예?!”
국제 대회라면, 한중일로 한정 짓고 있던 참가 자격이 전 세계 어느 나라던 상관 없어진다는 소리.
“바둑의 인구가 줄어든건 한중일 삼국의 공통 현상. 그렇기 때문에, 판을 좀 더 넓혀서 이목을 집중시키려 하는거야. 마침 해외의 기사들의 수준도 상당히 많이 올라갔고.”
옛날에는 한중일의 바둑기사들만이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것이 당연한것처럼 보였으나, 요근래에 들어서는 타국의 기사들도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커져버린 대회의 우승을 북두배의 천재가 찾아오기를 원하지.”
쿄타로가 2회연속 북두배 우승을 따오고, 그이후 잠적 일본팀은 쿄타로 없이 팀을 짜서 북두배에 도전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완패했다. 그런 만큼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리 생각했다. 이게 다 [북두배의 천재] 없이 팀을 짜서 라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원한다. 다시 그가 돌아오기를.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해주기를.
“선생님은, 뭐라 하시나요?”
“신도우 녀석은 네 판단에 맡기겠다고 하더군.”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
“....도대체 개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규. 정말 그 사람 우리가 알고 있는 쿄타로가 맞냐규!”
쿄타로와 헤어지고 난 뒤, 유키가 중얼거렸다.
“유키.”
살짝 나무라듯 노도카가 그녀를 부른다. 그러자, 발끈한 듯 유키가 말했다.
“노돗쨩은 못 봤냐규. 쿄타로가 우리에게 가달라고 말했을 때! 마치 남처럼 굴었다규!”
“.....”
아키라와 조우 할 때, 소년은 놀란 표정을 지은후, 굳어진 듯 싶더니, 한순간에 표정이 바뀌었다.
평소 알고 있는 소년과 다른 어른스러운 얼굴. 그 얼굴로 소년은 웃으면서 소녀들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아키라씨와 둘이서 이야기 좀 할게요.’
그 웃는 얼굴은 순간 모두의 가슴이 띄게 할만큼 멋진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멋진 표정으로 소녀들에게 축객령을 내린 것이다.
더 이상의 접근은 허락하지 않겠다. 더 이상의 질문은 용납하지 않겠다. 라고.
소년이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키요스미 마작부에서 스가 쿄타로의 포지션은 쉬운 사람이었다.
모두가 투덜 거려도.
모두가 짜증 부려도.
옆에서 투덜 거림도, 짜증도, 억지도 전부 받아주는 그런 사람.
그래서, 더욱더 낯설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스가군이 아닌 것 같아서.
자신들과 함께 있던 스가군이 아닌 것 같아서.
‘이래서, 사키씨가 스가군 이야기를 꺼내기 싫어 했던걸까요.’
어쩌면, 그게 마코와 히사가 봤다는 진짜 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 했던 그는?
자신의 핀잔에 머쓱하게 웃고.
유키의 고집에도 웃으며 받아주고.
사키의 보호자를 자처하던 그는.
‘.....가면....인걸까요.’
그 생각을 하자, 욱씬, 하고 가슴 한켠이 아파왔다.
그때-.
“키요스미 마작부원들 맞죠?”
소녀들의 발목은 잡은건 젊은 남성의 목소리.
돌아보자, 자켓에 청바지라는 활동하기 좋아보이는 옷차림의 남자가 보인다.
요 몇주간 경험해봐서 알거 같다. 기자다. 학교를 통하지 않고 무작정 마작부원들을 찾아온 기자.
안그래도 쿄타로 때문에 머리 아팠던 히사는 약간의 짜증을 담아 입을 열었다.
“기자분이라면, 인터뷰는 거절이에요. 그런건 학교를 통해서-.”
“아, 착각 하셨군요. 제가 인터뷰 하고 싶은 대상은 여러분이 아니라, 스가 프로랍니다. 물론 여러분들의 인터뷰도 따가면 좋지만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스가 프로가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스가, 프로? 스가 프로라면 쿄타로군을 말한건가요?”
그러고보니 아키라가 쿄타로를 불렀을때도 스가 프로라고 칭했다. 그 당시는 아키라의 등장이 너무 갑작스러워 몰랐었는데-.
그러자, 오히려 기자라고 생각 되는 인물이 놀랐다.
“어라, 모르고 계셨습니까? 프로 바둑 기사 스가 쿄타로 3단. 북두배의 천재를?”
“북두..배의 천재?”
“프로 바둑 기사...?”
낯선 호칭들이 기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오로지 사키의 표정만이 단단하게 굳어져 간다.
“그럼, 키요스미 마작부를 후원하던 사람이 스가 프로와 신도우 프로였다는 사실도 모르셨겠군요?”
“....우리를 후원하던 사람이.”
“.....스가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소녀들은 도저히 모르겠다.
츠치이 선생님이 비밀로 하고 있던 후원회가 사실은 스가 군이었다고?
도대체 그 아이 정체가 뭐야?
도대체 그 아이는....
기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전혀 모르셨나보네요. 괜한 이야기를 했나.”
“저기, 그 이야기 자세히 좀 들을수 있을까요? 스가군의 과거라던가. 북두배라던가-.”
“뭐, 좋습니다. 일단 제 소개부터 해야겠네요. 월간 바둑의 히메라기 쿄스케입니다.”
3년 전-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지금껏 진지하게 굳어 있던 얼굴이 풀어진다.
고요한 대국실을 벗어나자 여기저기에서 환호성과 팀원들이 자신에게 몰려들었다.
그날, 일본은 신도우 히카루와 도우야 아키라 이후로 계속해서 한국과 중국에게 뺏긴 북두배[개인전]과 [단체전] 우승 타이틀을 다시 찾아온 순간이었다.
그 승리 타이틀을 따온 것은 일본 기원 소속.
이제 막 입단한 스가 프로.
당시 그의 나이 14세.
최연소 국가대표였으며, 최연소로 북두배 타이틀을 따왔다.
그 이후로 2회 연속 북두배 개인전 우승을 차지하고 단체전 우승에 기여한 소년을 사람들은 [북두배의 천재]라고 칭했다.
제2국 내일
도우야 아키라.
이 이름을 모르는 일본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TV나 라디오 진행자로도 유명하지만, 일본에서 펼쳐지는 각종 바둑 대회와 세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프로 바둑 기사. 어려서는 도우야 명인의 하나뿐인 아들로, 그리고 현재는 혼인보에 근접한 바둑 기사로써 유명한 이.
마작에 미즈하라 하야리가 있다면 바둑에는 도우야 아키라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바둑을 몰라도 도우야 아키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도우야 정도 되는 외모를 가진 사람은 연예계를 통틀어도 흔치 않다. 아무리 어른스럽다고 한다 한들 아직 여고생. 잘생긴 훈남이 TV에 나오다 보면 알게 모르게 관심가지기 마련이다. 키요스미 부원중에서 도우야 아키라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동경만 품고 있던 사람이 갑작스레 자신들의 눈앞에 내려온 점에 히사를 포함한 키요스미 부원들은 꿈을 꾼 것 같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
스가 쿄타로를 만나러 왔다는 점에서, 그녀들의 충격은 한층더 커졌다.
학교 인근에 위치한 어느 외진 카페.
평소 마작 부원들끼리 자주 오는 장소로, 히사가 1학년때부터 즐겨 찾았다는 이른바 숨은 명소였다.
다른 프렌차이즈 커피점에 비해 화려함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쿄타로와 아키라는 그 카페에서도 외진 장소에 앉아 있었다. 키요스미 일행들은 이미 헤어진지 오래였다.
뭔가 잔뜩 묻고 싶어 했지만, 쿄타로가 평소 답지 않은 진지한 모습으로 부탁하자, 그녀들도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헤어졌다.
마지막 헤어졌을 때 사키의 표정이 아직도 걸린다. 마치 다시 울먹 울먹거리는거 같아, 쿄타로는 어찌 해야할지 모르겠다.
달래준지 몇시간도 채 안되었는데...
쿄타로는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그 아이들이니?”
“예?”
아키라가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머금으며 물었다. 여전히 그는 선글라스를 벗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리 인적이 드문 카페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아예없는건 아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SNS라는 것 덕분에 몇 초만에 소문이 확산되는 시대다.
괜스레 눈에 띄면 쿄타로와 이야기하기 위해 나가노까지 내려온 보람이 없었다.
쿄타로가 시선을 다시 아키라에게 돌리자, 그가 말했다.
“네가 마작부 매니저로 활약했다는 부의 부원들이.”
“매니저는 아니에요. 일단은 마작부원입니다.”
5명 밖에 없는 약세 동아리 주제에, 매니저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그러니 그도 일단은 마작부원.
“저는 초심자이니까, 인터하이에 나가는걸 도왔을뿐이에요.”
“초심자라...그말이 그렇게 어색하게 들리는건 처음이구나.”
북두배의 천재, 신동, 수많은 칭호가 붙고,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가진 아이다.
그런 아이가 입에 올린 초심자라는 단어는 무척이나 낯설다.
“저도 다른 분야까지 자신이 있는건 아니니까요.”
쿄타로는 쓴 웃음을 띄웠다.
지금 그의 얼굴을 만약 마작 부원들이 보면 무척이나 낯설어 했을 것이다.
평소 그녀들이 잘 알고 있는 스가 쿄타로는 또래 소년이나 별반 다를게 없었다.
거유에 집착하고, 노도카의 가슴이나 히사의 가슴을 힐끔 힐끔 쳐다보다, 그녀들에게 한 소리 듣고, 당황하는 그런 소년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의 모습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다.
어른스럽다. 그보다 한참 연상인 아키라와 대화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어려보이지 않는다.
교복만 아니라면, 그녀들이 이상형으로 꿈꾸던 그런 ‘어른’인 미청년으로 볼 것이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고 있지.”
“....”
소년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키라는 쿄타로 앞에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북두배 국가대표 소집 요청서야.”
“북두배라면, 저보다 나은 기사들이 있어요.”
“확실히. 스가군보다 나은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들이 [북두배의 천재]는 되지 못해.”
“.....”
바둑판의 귀공자.
신동.
수많은 호칭이 스가 쿄타로에게 붙었다. 하지만, 그 많은 호칭중에 스가 쿄타로를 대표하는 것은 이 호칭이었다.
북두배의 천재.
일명 기적의 세대로 까지 불리는 한중의 바둑 기사들을 물리치고 이년 연속 북두배의 우승을 차지한 소년에게 사람들이 붙인 호칭.
“저는....”
“거기다, 올해부터 북두배의 룰이 바뀌었어.”
“룰이요?”
아키라의 말에 쿄타로가 그를 쳐다본다. 그는 커피를 한모금 더 마셨다.
“현재 바둑 인구가 줄고 있는건 알고 있지?”
“그야 뭐...”
아키라의 말대로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바둑을 두는 인구는 점점 줄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였다. 바둑은 마작에 비해 화려함이 없다.
요 근래 마작은 화려하다. 꽃다운 미녀 프로들이 잔뜩 언론에 노출되었고, 인터하이에서 싸우는 소녀들은 거의다 레벨 높은 미소녀뿐이다.
거기다 그 미소녀들에게는 [이상한] 힘같은 것이 있다.
패를 지배한다.
운기를 지배한다.
강신을 한다.
미래를 읽는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오컬트.
그 오컬트를 무기로 삼고 화려하게 싸운다.
흡사 소년 만화속의 이능력 배틀과 같다.
그에 비해 바둑은 그런 화려함이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수와 수 읽기.
그 어디에도 오컬트가 끼어들 틈이 없다.
마치 사무라이의 진검 승부와 같은 치열함.
한수라도 잘못 읽는 순간, 그대로 게임은 종료 된다.
바둑은 화려함은 없지만, 그대신 깊이가 있다.
이런 대결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지루하게 보일수도 있다.
제일 중요한건 바둑은 너무 폐쇄 적이다.
마작의 프로는 대부분 인터하이를 통해 대뷔하게 된다.
인터하이는 전국에 방송으로 방영되니 그만큼 개방되어 있다고 할수 있다.
하지만 바둑은 오로지 일본 기원 소속의 원생이 된 이후, 그리고 시험을 통해서만 프로가 될수 있다.
그 모든게 전부 비공개로 진행되니, 폐쇄되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그러니, 점점 바둑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이를 방관할수 없던 일본 기원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프로들의 TV 데뷔.
그리고...
“올해부터, 북두배는 국제 대회로 바뀌었어.”
“예?!”
국제 대회라면, 한중일로 한정 짓고 있던 참가 자격이 전 세계 어느 나라던 상관 없어진다는 소리.
“바둑의 인구가 줄어든건 한중일 삼국의 공통 현상. 그렇기 때문에, 판을 좀 더 넓혀서 이목을 집중시키려 하는거야. 마침 해외의 기사들의 수준도 상당히 많이 올라갔고.”
옛날에는 한중일의 바둑기사들만이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것이 당연한것처럼 보였으나, 요근래에 들어서는 타국의 기사들도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커져버린 대회의 우승을 북두배의 천재가 찾아오기를 원하지.”
쿄타로가 2회연속 북두배 우승을 따오고, 그이후 잠적 일본팀은 쿄타로 없이 팀을 짜서 북두배에 도전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완패했다. 그런 만큼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리 생각했다. 이게 다 [북두배의 천재] 없이 팀을 짜서 라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원한다. 다시 그가 돌아오기를.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해주기를.
“선생님은, 뭐라 하시나요?”
“신도우 녀석은 네 판단에 맡기겠다고 하더군.”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
“....도대체 개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규. 정말 그 사람 우리가 알고 있는 쿄타로가 맞냐규!”
쿄타로와 헤어지고 난 뒤, 유키가 중얼거렸다.
“유키.”
살짝 나무라듯 노도카가 그녀를 부른다. 그러자, 발끈한 듯 유키가 말했다.
“노돗쨩은 못 봤냐규. 쿄타로가 우리에게 가달라고 말했을 때! 마치 남처럼 굴었다규!”
“.....”
아키라와 조우 할 때, 소년은 놀란 표정을 지은후, 굳어진 듯 싶더니, 한순간에 표정이 바뀌었다.
평소 알고 있는 소년과 다른 어른스러운 얼굴. 그 얼굴로 소년은 웃으면서 소녀들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아키라씨와 둘이서 이야기 좀 할게요.’
그 웃는 얼굴은 순간 모두의 가슴이 띄게 할만큼 멋진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멋진 표정으로 소녀들에게 축객령을 내린 것이다.
더 이상의 접근은 허락하지 않겠다. 더 이상의 질문은 용납하지 않겠다. 라고.
소년이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키요스미 마작부에서 스가 쿄타로의 포지션은 쉬운 사람이었다.
모두가 투덜 거려도.
모두가 짜증 부려도.
옆에서 투덜 거림도, 짜증도, 억지도 전부 받아주는 그런 사람.
그래서, 더욱더 낯설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스가군이 아닌 것 같아서.
자신들과 함께 있던 스가군이 아닌 것 같아서.
‘이래서, 사키씨가 스가군 이야기를 꺼내기 싫어 했던걸까요.’
어쩌면, 그게 마코와 히사가 봤다는 진짜 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 했던 그는?
자신의 핀잔에 머쓱하게 웃고.
유키의 고집에도 웃으며 받아주고.
사키의 보호자를 자처하던 그는.
‘.....가면....인걸까요.’
그 생각을 하자, 욱씬, 하고 가슴 한켠이 아파왔다.
그때-.
“키요스미 마작부원들 맞죠?”
소녀들의 발목은 잡은건 젊은 남성의 목소리.
돌아보자, 자켓에 청바지라는 활동하기 좋아보이는 옷차림의 남자가 보인다.
요 몇주간 경험해봐서 알거 같다. 기자다. 학교를 통하지 않고 무작정 마작부원들을 찾아온 기자.
안그래도 쿄타로 때문에 머리 아팠던 히사는 약간의 짜증을 담아 입을 열었다.
“기자분이라면, 인터뷰는 거절이에요. 그런건 학교를 통해서-.”
“아, 착각 하셨군요. 제가 인터뷰 하고 싶은 대상은 여러분이 아니라, 스가 프로랍니다. 물론 여러분들의 인터뷰도 따가면 좋지만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스가 프로가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스가, 프로? 스가 프로라면 쿄타로군을 말한건가요?”
그러고보니 아키라가 쿄타로를 불렀을때도 스가 프로라고 칭했다. 그 당시는 아키라의 등장이 너무 갑작스러워 몰랐었는데-.
그러자, 오히려 기자라고 생각 되는 인물이 놀랐다.
“어라, 모르고 계셨습니까? 프로 바둑 기사 스가 쿄타로 3단. 북두배의 천재를?”
“북두..배의 천재?”
“프로 바둑 기사...?”
낯선 호칭들이 기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오로지 사키의 표정만이 단단하게 굳어져 간다.
“그럼, 키요스미 마작부를 후원하던 사람이 스가 프로와 신도우 프로였다는 사실도 모르셨겠군요?”
“....우리를 후원하던 사람이.”
“.....스가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소녀들은 도저히 모르겠다.
츠치이 선생님이 비밀로 하고 있던 후원회가 사실은 스가 군이었다고?
도대체 그 아이 정체가 뭐야?
도대체 그 아이는....
기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전혀 모르셨나보네요. 괜한 이야기를 했나.”
“저기, 그 이야기 자세히 좀 들을수 있을까요? 스가군의 과거라던가. 북두배라던가-.”
“뭐, 좋습니다. 일단 제 소개부터 해야겠네요. 월간 바둑의 히메라기 쿄스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