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국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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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프로,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아는 스가 쿄타로군은 프로 바둑계에서는 상당히 유명인입니다. 여러분들이 알기 쉽게 말하자면 카이노 요시코씨였던가요. 작년 프로 마작 리그의 신인왕이? 굳이 따지자면 스가 프로는 바둑 계에서는 그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마, 말도 안된다규! 개가, 개가 그렇게 뛰어날리 없다규!!”
유키가 깜짝 놀라, 부정을 하지만, 쿄스케라고 불리는 기자는 그저 쓴 웃음을 띄울뿐이었다.
“정말, 스가 3단은 여러분께 아무말도 하지 않았나보네요.”
그러면서, 그는 테블릿 피씨에서 자료첩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걔중에는 유명 일간지도 있었다.
그 속에 찍힌 사람.
방금 아키라와 만났을 때의 어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쿄타로의 모습이었다.
타이틀도 다양했다. [신동] [바둑의 귀공자]. [천재]. 수많은 기사들이 소년을 칭송하기 바빴고, 그리고 소년은 그만한 활약을 보여줬다.
“차세대 혼인보로 꼽히는 프로 바둑 기사들 중에는 신도우 히카루 9단과 도우야 아키라 9단이 있습니다. 스가 3단은 10살 그러니까 초등학교 3학년의 나이에 그 신도우 9단의 제자로 들어가 13살이라는 나이에 프로에 입단, 14살, 15살에 국가대표로 북두배 출전.”
소년의 이력에 소녀들은 뭐라고 해야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국가 대표.
나가노 대표가 되는 것 조차 그렇게 힘들었는데, 국가 대표.
이미 소년은 자국의 대표였다. 그것도 자신들보다 한참 어렸던 그 나이에.
“아, 북두배는 매년 열리는 한중일 프로 기사들의 대회입니다. 20살 이하의 프로기사들만 참가가 가능하고, 올해로 10년째네요. 1회는 한국이 우승, 2회는 일본이 우승하고 그 이후로 한국과 중국에게 계속해서 우승 타이틀을 뺏겼습니다. 그러던 도중 4년 전, 한 소년이 국가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시는 신동이라고 불리던 소년이었죠. 그리고 그 소년은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굉장한 성과를 냅니다. 개인전 우승과 단체전 우승의 기여. 신도우 세대 이후 첫 우승이었죠.바둑 팬들은 소년에게 열광했고, 바둑에 관심없는 일간지조차 소개 할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은 그 후년에도 북두배 우승 타이틀을 따왔습니다. 사람들은 열광하며 그 소년을 [북두배의 천재]라고 칭했습니다. 그 소년이-.”
“스가...군?”
히사의 말에 쿄스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었다.
“뭐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는 한국과 중국은 기적의 세대라고 까지 불리는 괴물 투성이었으니 더더욱 그러 했죠.”
소년의 이력은 화려했다.
무명고등학교에서 인터하이를 재패했다는 성과는 소년이 낸 성과에 비하면 초라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제야 약간씩 톱니바퀴가 맞춰져 간다.
가끔씩 소년이 보여준 어른스러운 얼굴.
마코가 느꼈던 후배인데도 불구하고 선배같았던 이유.
소년은, 스가 쿄타로라고 불리는 그 소년은.
자신들이 걸어온 그 길을 한참 앞서서 걸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히사는 궁금해졌다.
“그런, 스가군이 어째서... 나가노에.”
그정도 되는 프로기사라면,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계속해서 그길로 가거나, 유명 사립 고등학교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난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있는곳은 나가노의 어느 무명 고등학교. 바둑을 두는 사람도 없고, 바둑 프로 기사는 이름도 모르는 장소에서 마작부 초심자로써 자신들을 돕고 있었다.
왜?
어째서?
“......그게 사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입니다. 바로 작년 북두배가 열릴 무렵 국가대표로 선출 될줄 알았던 스가 프로는 돌연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스승인 신도우 프로도 별말이 없었고, 결국에는 잠적. 수많은 언론들이 그의 뒤를 쫓았지만, 아무도 찾을수 없었어요.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질 무렵. 그가 거의 1년만에 나타난거죠.”
“....”
그가 나타난곳은 뜬금없게도 인터하이 마작 경기. 그것도 여성부였다.
“그래서, 여러분들이라면 혹시 알까 했는데, 아무것도 모르시나보군요.”
“....”
몰랐다. 그가 프로기사 였다는 것 자체도 몰랐는데, 그가 잠적한 이유를 알 리가 없었다.
아니 한 소녀는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말할 생각이 없는것 같았다.
“저기, 아까 스가군이 저희를 후원을 했다는게 무슨 말이죠?”
“아, 그건-.”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신도우 프로가 한 고등학교를 지원하고 있다는 찌라시 정보가 흘렀죠. 하지만 신도우 프로야 평소에도 여러방면으로 기부활동을 많이 하는 프로이니, 그다지 큰 화제는 되지 못했죠. 그러던 도중, 그 기부 활동 중 [키요스미]라는 고등학교만큼은 [스가]프로의 돈도 같이 움직인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마침 그 제보를 듣고 추적해보려던 차에, 인터하이의 그 사진이 떠오른거죠.”
“....”
그러고보면, 이상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올해 초. 간신히 사키까지 포함해, 단체전으로 나갈수 있다고 기뻐 했지만, 히사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쳐버렸다.
돈이었다. 연습을 하려 해도, 그리고 합숙을 가려고 해도, 모든게 돈이 필요했다.
카제코시처럼 마작으로 특출난곳도 아니고.
류몬부치처럼 돈이 많은 학교도 아니다.
키요스미는 공립고등학교. 지원받을수 있는 돈은 한정 되었고, 그 돈마저도 받을 수 없었다.
당연했다.
올해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마작부는 이름만 마작부이지, 실상은 동아리였다. 폐부 직전의 동아리에게 돈을 지원해주는 학교는 없다. 오히려 부실을 빌려준게 용할 정도였다. 그리고 간신히 부로 승격되었을 때 예산을 받았지만, 그 예산의 숫자는 적디 적었다. 잡무용품을 사는것도 빠듯할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합숙한번 제대로 가지 못하고, 인터하이에 나가야했다.
그러던 도중, 타이밍 좋게 츠치이 선생님이 돈을 가져왔다. 스스로 비밀로 한 후원자가 써달라며, 50만엔이라는 거금을 준 것이다. 카제코시나, 류몬부치의 예산에 비하면 적을지 모르지만, 이 돈이라면 단체전 맴버 5명이 충분히 연습하고도 남을 예산이었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다.
히사는 지금까지 자신의 노력이 불쌍해서라도, 하늘이 자신을 도와준거라고 생각했다.
천부의 자질을 지닌 신입부원 3명.
우리를 서포트 해줄 듬직한 부원도 한명.
이게 하늘이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은 전부 스가군의 도움이었다 이거지.’
기운이 확 빠진다.
이걸 뭐라고 해야할까.
어이가 없다고 해야하나?
차라리 무명고등학교 키요스미가 인터하이 우승한건 현실성 있는 이야기였다.
자신들을 서포트 해준 초심자가 사실은 다른 분야에서는 이미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이었고,사실은 키다리 아저씨이기까지 했다니.
이건 도대체 어느 만화속의 이야기야?
마코도 히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키를 제외한 일학년 두명은 아예 얼이 빠진 상태이다. 옆에서 가까이 있던 대상이 하늘 저높이 가버린 느낌일테지.
자신들도 그럴진데, 두명은 오죽할까?
“아마, 많은 언론들이 여러분들에게 접촉하려 할 겁니다. 아무래도 북두배가 가까워진 만큼 더욱더 그렇겠죠. 제가 드릴 말은 아니지만, 그중에는 찌라시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기레기들도 많으니, 조심해주세요. 그리고 이건 제 명함입니다. 혹시 뭐라도 알게 되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꾸벅 인사하고 쿄스케는 계산서를 들고 나갔다. 잠시 그 명함을 쳐다보던, 소녀들은 뭐라 해야할지 몰라 서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유키가 입을 열었다.
“...사키쨩은 알고 있었냐규?”
“....응.”
모를 리가 없다. 사키와 쿄타로는 어린시절부터 같이 지내온 소꿉친구였다.
소년이 상경했을때도, 그리고 소년이 돌아왔을때도, 가장 먼저 본 것은 사키였다.
이내 소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쿄쨩이 왜 나가노에 돌아왔는지는 몰라.”
소년이 돌아온 그날은 비가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소년은 소녀의 집에 찾아왔다.
그때 소년의 얼굴은 자신의 나이에 맞지 않을 만큼 초췌하고, 피곤해보였다.
그리고, 그 얼굴로 애써 웃으며 소녀에게 말했다.
[....다녀왔어. 사키.]
“아니, 알고 싶지 않아. 알고 싶지 않은걸! 쿄쨩의 과거따위 어쨌던지 좋아. 왜냐면 쿄쨩은, 쿄쨩은, 나에게 돌아와줬는걸.”
그러니까-.
“나 싫어. 저 사람들이 싫어. 왜, 왜 쿄쨩을 다시 데려 가려는 거야? 간신히 내 곁에 돌아와줬는데, 어째서, 어째서?”
소녀답지 않은 억지였다. 하지만 소녀에게 있어서, 억지를 부려서라도 소년을 자신으 곁에 두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같이 지내던 소꿉친구가, 자신의 꿈을 찾아서 떠나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함게 했던 언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렸다.
그리고 소녀는 나가노에서 홀라 남겨졌다.
그래서, 소년이 돌아왔을 때, 소녀는 행복했다.
소년의 과거 따위는 묻지 않았다. 그저 떠나간 소꿉친구가 자신의 곁에 돌아와줬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아직도 한편으로는 무섭다.
간신히 돌아온 소꿉친구가, 언젠가 다시 자기 곁을 떠나지 않을까.
그대로,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그래서 소녀는 소년의 과거 이야기에 민감했다.
마치 비밀을 말하면 사라져 버린 동화의 주인공처럼, 소년도 그렇게 사라져 버릴거 같으니까.
소녀는 훌쩍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을 보며, 그녀와 같은 1학년은 달래주고, 상급생 두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많은걸 알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