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신도우 히카루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가장 먼저 쿄타로가 꺼낸 이야기는 바로 그 이름이었다. 그 이름이라면 들어본 적 있다. 스가군과 함께 키요스미 마작부를 후원해줬던 사람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그러자, 쿄타로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아키라씨, 그러니까 도우야 아키라씨가 하야링에 비교된다는건 알고 있죠? 비슷한 이치로, 신도우 히카루 씨는 코카지 스코야 프로에 비견되는 분이에요. 차세대 혼인보. 기성. 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스타일은 흡사 [혼인보 슈우사쿠]에게 직접 사사받은 것 전통파 바둑기사.”
말만 들어도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거 같다. 애초에 코카지 스코야에 비견되는 기사인 이상 대단하지 않은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러다 시선을 사키에게 향한다.
“혹시, 사키 어렸을 때 우리가 만난 금발로 부분 염색한 형 기억해?”
“아-?”
알거같다. 알지 못할리 없다. 쿄타로를 바둑의 세계로 이끌고 갔던 그 사람.
“그 사람이 신도우 히카루. 츠치이 선생님의 지인이자, 저를 키요스미로 보낸 분. 그리고 저의 선생님이에요.”
바둑이라는 걸 처음 만나게 된 건, 초등학교 3학년때 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쿄타로는 진득하게 앉아 있는걸 싫어했고, 뛰어노는걸 어느 무엇보다 좋아했던 소년이었다. 담임 교사의 평가에 의하면 집중력이 상당히 낮고, 흥미가 상당히 빨리 바뀌어서 수업 진도에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것과 별개로 아이들을 배려하고 리드한다고 하는 평가가 있긴 했지만, 선생님 입장에서는 가르치기 힘든 아이였다. 그나마 학교에서는 그것또한 하나의 재능으로 여기고 있지만, 학원은 사정이 달랐다.
학습능력은 떨어지는데 아이들을 선동하거나, 리드하는 능력은 워낙 뛰어나다 보니, 학습분위기가 망쳐지기 일쑤. 결국 면학분위기를 이유로 학원에서 쫓겨나기 이르렀다. 그런 소년을 보며, 모친은 걱정 투성이었지만, 반대로 부친은 사내 아이라면 어릴 때 이것저것 사고를 치기 마련이라며, 별 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오후 5시.
대부분의 일과를 마감하고, 슬슬 집으로 돌아가야할 시간이지만, 아직은 한 여름이었다. 겨울과 달리 이 무렵의 이시간때는 아직 한낮처럼 밝았다. 집에 가야한다는걸 알지만, 더 밖에서 놀고 싶은게 소년의 마음. 하지만 함께 놀러 다니던 소꿉친구 사키는 이미 집에 귀가 했다. 더 놀자고 옆에서 부추기고, 사키도 그럴까? 하고 있던 차에 소녀의 언니인 테루가 와서 데려가버린 것이다.
평소에는 사키보다 더 한 멍한 인상인지라 연상이지만 전혀 연상같지 않은 테루에게도 쿄타로가 꼬셨지만, 이미 모친에게 과자가 약속되어 있던 그녀는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결국 사키와 헤어지고 난 뒤, 쿄타로는 공원에 홀로 찾아왔다. 혹시 누구라도 놀이 대상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공원은 텅텅 비어 있었다. 공원 놀이터에도 아무도 없었고, 산책로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때 시무룩해진 소년의 시야에 들어온건 벤취 의자에 앉아 있는 청년이었다. 청바지에 노랑색 반팔티. 뒤로 젖힌 얼굴에 책을 덮은체 양팔을 양옆으로 짝 펼친 편해 보이는 자세였다.
평소라면 관심도 안가졌겠지만, 어쩐일인지, 그날의 쿄타로는 그쪽으로 향했다.
청년의 옆에는 왠지 할아버지들이나 쓸법한 낡은 부채가 놓여 있었다.
딱봐도 요즘 젊은이라고 할수 있는 청년이 가지고 다닐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혹시 여기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놓고 간걸까?
쿄타로는 그 부채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
“그 부채 내꺼다.”
책 아래에서 미성이 들려왔다. 낮지만 부드럽고 청아한 목소리. 흡사 여자 성우가 소년이나 청년 연기를 하고 있을 법한 목소리였다. 쿄타로가 고개를 올리자, 여전히 얼굴위에 책을 올려 놓은 청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 여기서 뭐해?”
“아, 아저씨?”
소년의 말에 뭔가 충격을 받은듯한 청년은 뒤로 젖혔던 얼굴을 똑바로 향했다. 그러자 툭하고 얼굴에서 책이 떨어지며 얼굴이 드러났다. 천연 금발인 쿄타로와 달리 금발 브롯지가 들어간 앞머리. 여자 못지 않게 고운 피부. 선이 강한 미남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선이 가는 미소년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법한 얼굴. 하지만 그 눈동자에는 어느 무엇보다 강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꼬, 꼬마야. 지금 뭐라고 했냐?”
“아저씨, 여기서 뭐해! 라고 물었어.”
“꼬맹아, 나야 말로 아저씨가 아니거든, 형이라고 하다못해 신도우씨 아니면 히카루씨라고 해라.”
“신도우, 히카루? 그게 아저씨 이름이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쿄타로가 히카루에게 묻자, 그는 괜스레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신도우 히카루라면 그 도우야 아키라의 라이벌로써, 그리고 한편으로는 북두배의 우승컵을 찾아온 프로 바둑기사로써 유명하지만, 이 꼬맹이에게까지 알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 내가 신도우 히카루다. 그러는 꼬맹이 네 이름은 뭐냐?”
“나, 스가 쿄타로! 올해로 10살!”
“그래, 쿄타로. 이 형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거냐?”
히카루의 물음에, 쿄타로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더니, 이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박수를 치며 말했다.
“형이, 여기서 뭐하는지 궁금해서!”
“뭐하다니, 그냥 있다만?”
“여기서 뭐하는데?”
“그냥 시간 때운다만.”
시간을 때운다라, 쿄타로의 머릿속에 히카루만한 어른들은 대부분 정장을 입은 회사원이라던가, 커다란 가방에 잔뜩 책을 가지고 다니는 대학생들뿐이었다. 그런데 빈 가방에 벤취 의자에 앉아 있는 어른은...
“형아는 그럼 백수야?”
부모님이 뉴스를 볼 때 옆에서 청년 실업이라던가 히키코모리라던가,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본 기억이 있다. 덧붙여 엄마가 쿄타로 너는 커서 그렇게 되면 안된다라는 말도 들었다.
“백수 아냐!”
“괜찮아. 형.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젊으면 다시 시작할수 있데!”
“그러니까 나는 백수가 아니라고!!”
불과 몇 년전 까지만해도 최강의 초단이라고 불리며 바둑계의 신성으로 주목받고, 비공식이긴 하지만 그 [혼인보 슈사쿠]의 전통 직계 제자이자, 지금에 와서는 차세대 바둑계의 기둥 중 한명으로 꼽히는 프로 기사 신도우 히카루가 하루아침에 처음 본 꼬맹이에게 백수 취급받았다.
하늘에서 보고 있을 사이가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었다.
하아 도대체 나는 오늘 처음 본 꼬맹이하고, 이렇게 시답지 않은 대화를 주고 받는걸까.
사실 그는 대기업의 총수 ‘류몬부치’에 인사하고자 이곳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하는 김에 거기에 있는 아가씨들의 지도 바둑 몇수 둬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 본래 그는 이런 것을 싫어하는 타입이었지만, 일본에서 규모가 거대한 바둑대회라면 류몬부치의 후원이 있는데다, 그 총수가 직접 자신을 지명했다고 했다.
바둑계의 거성들은 물론, 아키라에 이르기까지 자신에게 압박을 주니, 거절할래야 거절할수 없는 상황이 와버린 것이다. 막상 오자, 어찌알았는지 류몬부치의 리무진까지 대절해서 자신을 모셔가고, 총수가 올때까지 기다리라며 대접을 해줬지만, 천생부터 서민이었던 그는 그런 대접에 질려 산책을 핑계삼아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던차에 이상한 꼬맹이에게 걸려서 백수 취급까지 받고 있다.
아아 천하의 신도우 히카루가 어찌 이리되었을까.
“그럼 형은 뭔데?”
“하아-. 형은 말이다.”
지끈 지끈해지는 머리를 부여잡고, 뭐라 하려던 차 쿄타로의 시선이 다른곳으로 향했다.
“아, 이거 알아. 바둑!”
“그래, 형은 바둑 기...응?”
쿄타로의 시선이 향한곳은 방금전까지 히카루가 읽고 있던 만화였다. 히카루보다 앞선 세대에 존재했던 지금 그 명인으로 유명했던 도우야 명인이 막 프로로 데뷔했을 무렵의 한중일 프로 바둑 기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실화 만화였다.
그 만화의 표지가 바둑판을 가리키며, 쿄타로가 말한 것이다. 아아, 꼬맹아. 사람이 말하면 좀 들어라, 라고 하고 싶다가도, 문득 히카루는 흥미롭게 만화책 표지를 보는 쿄타로를 향해 물었다.
“쿄타로. 너, 바둑 좋아하니?”
“아니!”
흥미를 가진 것 치고 명확하게 들려온 대답이었다.
“바둑이라는거 할아버지같은 사람들이 하는거잖아!”
“.....”
어라, 이거 어디서 들어본 대답인데.
쿄타로의 대답에 히카루는 왠지 모를 가시감을 느꼈다.
뭐랄까 왠지 따뜻하고, 그리운 어린 시절의 기억.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거기다, 바둑은 마작만큼 어렵잖아.”
왜 거기서 마작이 나오는거니? 라고 히카루는 생각했지만, 쿄타로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소년의 소꿉친구는 영재교육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가풍일지는 모르지만 소꿉친구 두명 다 집에서 항상 마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집에 놀러간 겸 몇 번 해봤는데, 그 룰이 복잡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하물며 바둑은 이것보다 더하리라.
“흐음, 글쎄. 복잡하다면 복잡하고, 쉽다면 쉽다만. 그래, 쿄타로. 너 형이랑 게임하나 하지 않을래?”
평소라면 그걸로 대화가 끝났을 것이다. 뭐 더 이상 말할 것도, 해줄 것도 없다. 하지만, 그날. 그날은 뭔가 달랐다. 어쩌면 그냥 한여름의 변덕이었을지도 모른다. 히카루는 바닥에 떨어진 가방에서 반으로 접힌 나무판을 꺼내 펼쳤다. 바둑판이었다. 그리고 검은색 바둑돌이 담긴 통을 꺼내 쿄타로에게 넘겨줬다.
쿄타로가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나, 바둑 못두는데.”
“아아, 괜찮아. 형이랑 할껀 돌 따먹기 게임이니까.”
“돌 따먹기?”
쿄타로가 흥미를 보이자, 히카루가 돌 하나를 집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룰은 간단해. 어떻게 하냐면.....”
그때는 몰랐다.
친구를 찾으러 나왔던 스가 쿄타로와 스폰서와의 약속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던 신도우 히카루.
단순한 여름날의 변덕으로 시작된 인연이.
그렇게 오래 갈지는.
그리고 한 소년의 인생에 한수를 놓게 될 줄은.
스가 쿄타로의 바둑 입문은, 그렇게 한 여름날 공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가장 먼저 쿄타로가 꺼낸 이야기는 바로 그 이름이었다. 그 이름이라면 들어본 적 있다. 스가군과 함께 키요스미 마작부를 후원해줬던 사람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그러자, 쿄타로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아키라씨, 그러니까 도우야 아키라씨가 하야링에 비교된다는건 알고 있죠? 비슷한 이치로, 신도우 히카루 씨는 코카지 스코야 프로에 비견되는 분이에요. 차세대 혼인보. 기성. 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스타일은 흡사 [혼인보 슈우사쿠]에게 직접 사사받은 것 전통파 바둑기사.”
말만 들어도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거 같다. 애초에 코카지 스코야에 비견되는 기사인 이상 대단하지 않은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러다 시선을 사키에게 향한다.
“혹시, 사키 어렸을 때 우리가 만난 금발로 부분 염색한 형 기억해?”
“아-?”
알거같다. 알지 못할리 없다. 쿄타로를 바둑의 세계로 이끌고 갔던 그 사람.
“그 사람이 신도우 히카루. 츠치이 선생님의 지인이자, 저를 키요스미로 보낸 분. 그리고 저의 선생님이에요.”
제4국 회상 ~Days~
바둑이라는 걸 처음 만나게 된 건, 초등학교 3학년때 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쿄타로는 진득하게 앉아 있는걸 싫어했고, 뛰어노는걸 어느 무엇보다 좋아했던 소년이었다. 담임 교사의 평가에 의하면 집중력이 상당히 낮고, 흥미가 상당히 빨리 바뀌어서 수업 진도에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것과 별개로 아이들을 배려하고 리드한다고 하는 평가가 있긴 했지만, 선생님 입장에서는 가르치기 힘든 아이였다. 그나마 학교에서는 그것또한 하나의 재능으로 여기고 있지만, 학원은 사정이 달랐다.
학습능력은 떨어지는데 아이들을 선동하거나, 리드하는 능력은 워낙 뛰어나다 보니, 학습분위기가 망쳐지기 일쑤. 결국 면학분위기를 이유로 학원에서 쫓겨나기 이르렀다. 그런 소년을 보며, 모친은 걱정 투성이었지만, 반대로 부친은 사내 아이라면 어릴 때 이것저것 사고를 치기 마련이라며, 별 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오후 5시.
대부분의 일과를 마감하고, 슬슬 집으로 돌아가야할 시간이지만, 아직은 한 여름이었다. 겨울과 달리 이 무렵의 이시간때는 아직 한낮처럼 밝았다. 집에 가야한다는걸 알지만, 더 밖에서 놀고 싶은게 소년의 마음. 하지만 함께 놀러 다니던 소꿉친구 사키는 이미 집에 귀가 했다. 더 놀자고 옆에서 부추기고, 사키도 그럴까? 하고 있던 차에 소녀의 언니인 테루가 와서 데려가버린 것이다.
평소에는 사키보다 더 한 멍한 인상인지라 연상이지만 전혀 연상같지 않은 테루에게도 쿄타로가 꼬셨지만, 이미 모친에게 과자가 약속되어 있던 그녀는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결국 사키와 헤어지고 난 뒤, 쿄타로는 공원에 홀로 찾아왔다. 혹시 누구라도 놀이 대상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공원은 텅텅 비어 있었다. 공원 놀이터에도 아무도 없었고, 산책로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때 시무룩해진 소년의 시야에 들어온건 벤취 의자에 앉아 있는 청년이었다. 청바지에 노랑색 반팔티. 뒤로 젖힌 얼굴에 책을 덮은체 양팔을 양옆으로 짝 펼친 편해 보이는 자세였다.
평소라면 관심도 안가졌겠지만, 어쩐일인지, 그날의 쿄타로는 그쪽으로 향했다.
청년의 옆에는 왠지 할아버지들이나 쓸법한 낡은 부채가 놓여 있었다.
딱봐도 요즘 젊은이라고 할수 있는 청년이 가지고 다닐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혹시 여기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놓고 간걸까?
쿄타로는 그 부채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
“그 부채 내꺼다.”
책 아래에서 미성이 들려왔다. 낮지만 부드럽고 청아한 목소리. 흡사 여자 성우가 소년이나 청년 연기를 하고 있을 법한 목소리였다. 쿄타로가 고개를 올리자, 여전히 얼굴위에 책을 올려 놓은 청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 여기서 뭐해?”
“아, 아저씨?”
소년의 말에 뭔가 충격을 받은듯한 청년은 뒤로 젖혔던 얼굴을 똑바로 향했다. 그러자 툭하고 얼굴에서 책이 떨어지며 얼굴이 드러났다. 천연 금발인 쿄타로와 달리 금발 브롯지가 들어간 앞머리. 여자 못지 않게 고운 피부. 선이 강한 미남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선이 가는 미소년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법한 얼굴. 하지만 그 눈동자에는 어느 무엇보다 강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꼬, 꼬마야. 지금 뭐라고 했냐?”
“아저씨, 여기서 뭐해! 라고 물었어.”
“꼬맹아, 나야 말로 아저씨가 아니거든, 형이라고 하다못해 신도우씨 아니면 히카루씨라고 해라.”
“신도우, 히카루? 그게 아저씨 이름이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쿄타로가 히카루에게 묻자, 그는 괜스레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신도우 히카루라면 그 도우야 아키라의 라이벌로써, 그리고 한편으로는 북두배의 우승컵을 찾아온 프로 바둑기사로써 유명하지만, 이 꼬맹이에게까지 알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 내가 신도우 히카루다. 그러는 꼬맹이 네 이름은 뭐냐?”
“나, 스가 쿄타로! 올해로 10살!”
“그래, 쿄타로. 이 형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거냐?”
히카루의 물음에, 쿄타로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더니, 이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박수를 치며 말했다.
“형이, 여기서 뭐하는지 궁금해서!”
“뭐하다니, 그냥 있다만?”
“여기서 뭐하는데?”
“그냥 시간 때운다만.”
시간을 때운다라, 쿄타로의 머릿속에 히카루만한 어른들은 대부분 정장을 입은 회사원이라던가, 커다란 가방에 잔뜩 책을 가지고 다니는 대학생들뿐이었다. 그런데 빈 가방에 벤취 의자에 앉아 있는 어른은...
“형아는 그럼 백수야?”
부모님이 뉴스를 볼 때 옆에서 청년 실업이라던가 히키코모리라던가,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본 기억이 있다. 덧붙여 엄마가 쿄타로 너는 커서 그렇게 되면 안된다라는 말도 들었다.
“백수 아냐!”
“괜찮아. 형.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젊으면 다시 시작할수 있데!”
“그러니까 나는 백수가 아니라고!!”
불과 몇 년전 까지만해도 최강의 초단이라고 불리며 바둑계의 신성으로 주목받고, 비공식이긴 하지만 그 [혼인보 슈사쿠]의 전통 직계 제자이자, 지금에 와서는 차세대 바둑계의 기둥 중 한명으로 꼽히는 프로 기사 신도우 히카루가 하루아침에 처음 본 꼬맹이에게 백수 취급받았다.
하늘에서 보고 있을 사이가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었다.
하아 도대체 나는 오늘 처음 본 꼬맹이하고, 이렇게 시답지 않은 대화를 주고 받는걸까.
사실 그는 대기업의 총수 ‘류몬부치’에 인사하고자 이곳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하는 김에 거기에 있는 아가씨들의 지도 바둑 몇수 둬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 본래 그는 이런 것을 싫어하는 타입이었지만, 일본에서 규모가 거대한 바둑대회라면 류몬부치의 후원이 있는데다, 그 총수가 직접 자신을 지명했다고 했다.
바둑계의 거성들은 물론, 아키라에 이르기까지 자신에게 압박을 주니, 거절할래야 거절할수 없는 상황이 와버린 것이다. 막상 오자, 어찌알았는지 류몬부치의 리무진까지 대절해서 자신을 모셔가고, 총수가 올때까지 기다리라며 대접을 해줬지만, 천생부터 서민이었던 그는 그런 대접에 질려 산책을 핑계삼아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던차에 이상한 꼬맹이에게 걸려서 백수 취급까지 받고 있다.
아아 천하의 신도우 히카루가 어찌 이리되었을까.
“그럼 형은 뭔데?”
“하아-. 형은 말이다.”
지끈 지끈해지는 머리를 부여잡고, 뭐라 하려던 차 쿄타로의 시선이 다른곳으로 향했다.
“아, 이거 알아. 바둑!”
“그래, 형은 바둑 기...응?”
쿄타로의 시선이 향한곳은 방금전까지 히카루가 읽고 있던 만화였다. 히카루보다 앞선 세대에 존재했던 지금 그 명인으로 유명했던 도우야 명인이 막 프로로 데뷔했을 무렵의 한중일 프로 바둑 기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실화 만화였다.
그 만화의 표지가 바둑판을 가리키며, 쿄타로가 말한 것이다. 아아, 꼬맹아. 사람이 말하면 좀 들어라, 라고 하고 싶다가도, 문득 히카루는 흥미롭게 만화책 표지를 보는 쿄타로를 향해 물었다.
“쿄타로. 너, 바둑 좋아하니?”
“아니!”
흥미를 가진 것 치고 명확하게 들려온 대답이었다.
“바둑이라는거 할아버지같은 사람들이 하는거잖아!”
“.....”
어라, 이거 어디서 들어본 대답인데.
쿄타로의 대답에 히카루는 왠지 모를 가시감을 느꼈다.
뭐랄까 왠지 따뜻하고, 그리운 어린 시절의 기억.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거기다, 바둑은 마작만큼 어렵잖아.”
왜 거기서 마작이 나오는거니? 라고 히카루는 생각했지만, 쿄타로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소년의 소꿉친구는 영재교육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가풍일지는 모르지만 소꿉친구 두명 다 집에서 항상 마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집에 놀러간 겸 몇 번 해봤는데, 그 룰이 복잡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하물며 바둑은 이것보다 더하리라.
“흐음, 글쎄. 복잡하다면 복잡하고, 쉽다면 쉽다만. 그래, 쿄타로. 너 형이랑 게임하나 하지 않을래?”
평소라면 그걸로 대화가 끝났을 것이다. 뭐 더 이상 말할 것도, 해줄 것도 없다. 하지만, 그날. 그날은 뭔가 달랐다. 어쩌면 그냥 한여름의 변덕이었을지도 모른다. 히카루는 바닥에 떨어진 가방에서 반으로 접힌 나무판을 꺼내 펼쳤다. 바둑판이었다. 그리고 검은색 바둑돌이 담긴 통을 꺼내 쿄타로에게 넘겨줬다.
쿄타로가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나, 바둑 못두는데.”
“아아, 괜찮아. 형이랑 할껀 돌 따먹기 게임이니까.”
“돌 따먹기?”
쿄타로가 흥미를 보이자, 히카루가 돌 하나를 집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룰은 간단해. 어떻게 하냐면.....”
그때는 몰랐다.
친구를 찾으러 나왔던 스가 쿄타로와 스폰서와의 약속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던 신도우 히카루.
단순한 여름날의 변덕으로 시작된 인연이.
그렇게 오래 갈지는.
그리고 한 소년의 인생에 한수를 놓게 될 줄은.
스가 쿄타로의 바둑 입문은, 그렇게 한 여름날 공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