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선생님이 절 제자로 삼았을때, 그 의미를 알지 못했죠.”
그때가 떠오르는지, 쿄타로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어렸다. 빛이 바랜 책 같은, 왠지 그리운 미소였다.
“그때 선생님의 나이가 22세. 솔직히 말해서 제자를 받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어요. 경력도,나이도 선생님은 너무나 부족했죠. 어떻게 보면 상당히 건방진 행동이었어요. 선생님보다 한참 선배 격 되시는 오카타 9단도 아직 문하생을 들이지 않은 마당에 바둑 기사중에는 이제 막 막내에서 벗어날 법한 선생님이 제자를 덜컥 들이셨으니까요.”
일반 학원이나, 학교 고문같은게 아니었다.
내제자.
몇 시간정도만 만나서 지도해주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제자를 직접 자신의 집에 살게 하고, 24시간 내내 스승과 함께 하면서, 스승의 모든 걸 전수 받는다.
스승의 지식
스승의 버릇
심지어 생활패턴에 이르기까지.
어찌 보면 가족에 더욱더 가까운 관계.
그것이 내제자였다.
그런 존재를 이제 막 바둑계에 입문하고 아직도 많이 배워야할 신예가 들인다는 것 자체가 선배들이나 원로들이 보기에는 건방져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바로 행동으로 나선 이가 있었다.
“신도우!!!!!”
어느 평화로운 오후.
쿄타로가 도쿄에 온지 대략 이주 정도 될 무렵이었다. 학교 전학과 여러 가지 일들로 바빴던 히카루와 쿄타로는 간만에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히카루는 거실 쇼파에 태평하게 누워 티비 채널을 돌린 중이었고, 쿄타로는 바닥에 업드려 크레파스로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히카루의 부모님은 현재 밖으로 외출중.
누가 본다면 나이차가 꽤 나는 형제가 평안한 일상을 보낸 듯 싶었다. 하지만 그런 평화도 어느 노성에 의해 한순간에 박살이 났다. 누군가가 집안 문을 발칵 열어재끼며 허겁지겁 들어왔다.
“뭐,뭐야!! 아키라, 너 언제 귀국을, 아니 그전에 어떻게 우리집 열쇠를!!!”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얼굴을 새빨간게, 한눈에도 화난게 보인다.
코에서는 씩씩 거리고 있는게, 잘생긴 얼굴이 한순간에 망가져 보였다. 히카루는 해외에 나가 있어야할 라이벌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깜짝 놀란 상태였다.
아니, 그전에 어떻게 저녀석이 우리집 열쇠를 알고 들어온거야. 힐끔 그의 뒤를 쳐다보니.
“아하하하하, 아, 안녕 히카루. 도우야군이 갑자기 급한 일이라고 해서.”
소꿉친구 겸 자신의 여자친구. 후지사키 아카리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카리가 문을 열어준건 알겠는데, 저녀석은 갑자기 왜 저렇게 화를 내는거야. 아니 그전에 남의 여자친구에게 연락을 한건 뭐때문이야.
“너, 너!!”
“뭐가-.”
“너, 임마 제자를 받았다며! 너 그게 무슨 행동-.”
“도우야군.”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져 가는 아키라. 하지만 그전에 아카리가 조용히 제지한다. 그리고는 살짝 아래로 눈짓을 한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니, 자신의 발치에 깜짝 놀란 얼굴을 한 금발 꼬마가 눈에 들어왔다.
이 아이가, 신도우가 들였다는, 내제자.
아이 앞에서 언성을 높이는건 좋지 않다. 더군다나 본인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제야 끓어오른 머리가 어느정도 식혀진 아키라는 히카루에게 말했다.
“너, 나 좀 봐.”
“.....”
히카루도 불만 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절친한 라이벌이라지만, 갑작스럽게 집안에 쳐들어와 소리를 지른 그에게 좋은 감정이 생길리 없었다. 평소라면 똑같이 언성을 올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참고 있는건, 쿄타로의 존재때문일 것이다.
그 둘이 서로 노려보다가, 집 밖으로 걸어나간걸 본 아카리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쿄타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방긋 웃었다.
“네가, 쿄타로군이구나?”
“누나는, 누구....?”
아까 아키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살짝 경계하며 묻는다. 그러자, 아카리는 소년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누나는 후지사키 아카리라고 해. 그러니까, 히카루의 소꿉친구이자, 여자친구란다.”
“소꿉 친구...? 선생님의? 누나도 그럼 사키같은거야?”
“사키?”
아카리가 되묻자, 소년은 활짝 웃으며 스케치북을 넘겨 주었다. 그곳에는 자주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의 그림이 어설프게 그려져 있었다.
“미야나가 사키! 내 소꿉 친구야!”
소꿉친구라는 의미를 아직은 잘 모르지만, 소년의 엄마가 사키쨩이랑 테루쨩은 쿄타로의 소꿉친구이니까 소중히 여겨야해. 라고 항상 말하곤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소년은 항상 어딘가를 돌아다닐때는 사키를 항상 끌고 다니곤 했다.
“그렇구나, 이 아이 사키쨩이라고 하는구나.”
쿄타로의 모습을 본 아카리는 어쩐지, 옛날 히카루와 함께 돌아다니던 자신이 떠올랐다. 그리고 소년의 구김살 없는 미소를 본 순간, 더욱더 어렸을때가 떠올랐다.
“어쩐지 그이가 널 왜 제자로 삼았는지 알거 같아.”
빙그레 미소지으며, 그녀가 말한다.
“누나는, 히카루의 집에서 아주 가깝게 살고 있거든, 그러니까 앞으로도 자주 누나랑 놀자, 알았지. 쿄타로군?”
“응!”
아카리의 말에 쿄타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었다.
**
“아카리 누나는 저에게 있어 동경이에요.”
신도우 히카루는 바둑에 있어서는 확실히 쿄타로의 선생님이었지만, 그를 제외한다면 좋든 싫든 그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게 나쁘다는게 아니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하자면, 쿄타로의 친형처럼 그를 이끌어주고, 놀아줄수 있는 대상이라는 뜻이니까. 하지만, 선생님이라는 자리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끔은 제자의 고민도 먼저 알아채줘야하고, 문제도 알아줘야하며, 살며시 성장 할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 그런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히카루 또래의 남자들이 기대하기 힘든 점이었다. 그것을 충족해줄수 있는것이 아카리의 존재였다.
형이 아닌 누나여야만이 가능한 여러 가지 일들. 아카리는 당시 중고등학교 선생님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적격이었다. 아카리는 여러 가지를 쿄타로에게 알려줬다.
그림을 그리는 법.
악기를 다루는 법.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든 법.
어려운 학교 숙제를 푸는 법.
쿄타로도 시간이 날 때면 그녀의 집에 놀러가곤 했고, 그녀도 쿄타로가 막내 동생처럼 여겨 귀여워해줬다. 가끔 히카루와 사랑싸움을 할 때도, 쿄타로만큼은 챙겨줬다.
이게 첫사랑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현재 스가 쿄타로가 자리잡고 있는 이상적인 여성은 대부분 후지사와 아카리의 영향을 받았다. 아마 무심코 노도카에게 시선이 간 이유도 그녀가 이 맴버중에서 아카리를 가장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성격이라던가 취향은 전혀 달랐지만.
“저기, 스가군. 우린 스가군의 첫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은게 아닌데.”
아까와 어른 스러운 얼굴과 달리 아카리의 이야기를 하면서 평소 보던 스가 쿄타로로 돌아온걸 보며, 히사가 살짝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맴버들도 제각기 불만을 품은 얼굴이다. 흠흠, 다시 헛기침을 하며 쿄타로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도우야씨와 선생님은 나가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주제는 저에 대한거였죠.”
그때가 떠오르는지, 쿄타로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어렸다. 빛이 바랜 책 같은, 왠지 그리운 미소였다.
“그때 선생님의 나이가 22세. 솔직히 말해서 제자를 받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어요. 경력도,나이도 선생님은 너무나 부족했죠. 어떻게 보면 상당히 건방진 행동이었어요. 선생님보다 한참 선배 격 되시는 오카타 9단도 아직 문하생을 들이지 않은 마당에 바둑 기사중에는 이제 막 막내에서 벗어날 법한 선생님이 제자를 덜컥 들이셨으니까요.”
일반 학원이나, 학교 고문같은게 아니었다.
내제자.
몇 시간정도만 만나서 지도해주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제자를 직접 자신의 집에 살게 하고, 24시간 내내 스승과 함께 하면서, 스승의 모든 걸 전수 받는다.
스승의 지식
스승의 버릇
심지어 생활패턴에 이르기까지.
어찌 보면 가족에 더욱더 가까운 관계.
그것이 내제자였다.
그런 존재를 이제 막 바둑계에 입문하고 아직도 많이 배워야할 신예가 들인다는 것 자체가 선배들이나 원로들이 보기에는 건방져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바로 행동으로 나선 이가 있었다.
제5국 회상 ~Fantasy~
“신도우!!!!!”
어느 평화로운 오후.
쿄타로가 도쿄에 온지 대략 이주 정도 될 무렵이었다. 학교 전학과 여러 가지 일들로 바빴던 히카루와 쿄타로는 간만에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히카루는 거실 쇼파에 태평하게 누워 티비 채널을 돌린 중이었고, 쿄타로는 바닥에 업드려 크레파스로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히카루의 부모님은 현재 밖으로 외출중.
누가 본다면 나이차가 꽤 나는 형제가 평안한 일상을 보낸 듯 싶었다. 하지만 그런 평화도 어느 노성에 의해 한순간에 박살이 났다. 누군가가 집안 문을 발칵 열어재끼며 허겁지겁 들어왔다.
“뭐,뭐야!! 아키라, 너 언제 귀국을, 아니 그전에 어떻게 우리집 열쇠를!!!”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얼굴을 새빨간게, 한눈에도 화난게 보인다.
코에서는 씩씩 거리고 있는게, 잘생긴 얼굴이 한순간에 망가져 보였다. 히카루는 해외에 나가 있어야할 라이벌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깜짝 놀란 상태였다.
아니, 그전에 어떻게 저녀석이 우리집 열쇠를 알고 들어온거야. 힐끔 그의 뒤를 쳐다보니.
“아하하하하, 아, 안녕 히카루. 도우야군이 갑자기 급한 일이라고 해서.”
소꿉친구 겸 자신의 여자친구. 후지사키 아카리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카리가 문을 열어준건 알겠는데, 저녀석은 갑자기 왜 저렇게 화를 내는거야. 아니 그전에 남의 여자친구에게 연락을 한건 뭐때문이야.
“너, 너!!”
“뭐가-.”
“너, 임마 제자를 받았다며! 너 그게 무슨 행동-.”
“도우야군.”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져 가는 아키라. 하지만 그전에 아카리가 조용히 제지한다. 그리고는 살짝 아래로 눈짓을 한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니, 자신의 발치에 깜짝 놀란 얼굴을 한 금발 꼬마가 눈에 들어왔다.
이 아이가, 신도우가 들였다는, 내제자.
아이 앞에서 언성을 높이는건 좋지 않다. 더군다나 본인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제야 끓어오른 머리가 어느정도 식혀진 아키라는 히카루에게 말했다.
“너, 나 좀 봐.”
“.....”
히카루도 불만 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절친한 라이벌이라지만, 갑작스럽게 집안에 쳐들어와 소리를 지른 그에게 좋은 감정이 생길리 없었다. 평소라면 똑같이 언성을 올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참고 있는건, 쿄타로의 존재때문일 것이다.
그 둘이 서로 노려보다가, 집 밖으로 걸어나간걸 본 아카리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쿄타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방긋 웃었다.
“네가, 쿄타로군이구나?”
“누나는, 누구....?”
아까 아키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살짝 경계하며 묻는다. 그러자, 아카리는 소년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누나는 후지사키 아카리라고 해. 그러니까, 히카루의 소꿉친구이자, 여자친구란다.”
“소꿉 친구...? 선생님의? 누나도 그럼 사키같은거야?”
“사키?”
아카리가 되묻자, 소년은 활짝 웃으며 스케치북을 넘겨 주었다. 그곳에는 자주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의 그림이 어설프게 그려져 있었다.
“미야나가 사키! 내 소꿉 친구야!”
소꿉친구라는 의미를 아직은 잘 모르지만, 소년의 엄마가 사키쨩이랑 테루쨩은 쿄타로의 소꿉친구이니까 소중히 여겨야해. 라고 항상 말하곤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소년은 항상 어딘가를 돌아다닐때는 사키를 항상 끌고 다니곤 했다.
“그렇구나, 이 아이 사키쨩이라고 하는구나.”
쿄타로의 모습을 본 아카리는 어쩐지, 옛날 히카루와 함께 돌아다니던 자신이 떠올랐다. 그리고 소년의 구김살 없는 미소를 본 순간, 더욱더 어렸을때가 떠올랐다.
“어쩐지 그이가 널 왜 제자로 삼았는지 알거 같아.”
빙그레 미소지으며, 그녀가 말한다.
“누나는, 히카루의 집에서 아주 가깝게 살고 있거든, 그러니까 앞으로도 자주 누나랑 놀자, 알았지. 쿄타로군?”
“응!”
아카리의 말에 쿄타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었다.
**
“아카리 누나는 저에게 있어 동경이에요.”
신도우 히카루는 바둑에 있어서는 확실히 쿄타로의 선생님이었지만, 그를 제외한다면 좋든 싫든 그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게 나쁘다는게 아니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하자면, 쿄타로의 친형처럼 그를 이끌어주고, 놀아줄수 있는 대상이라는 뜻이니까. 하지만, 선생님이라는 자리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끔은 제자의 고민도 먼저 알아채줘야하고, 문제도 알아줘야하며, 살며시 성장 할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 그런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히카루 또래의 남자들이 기대하기 힘든 점이었다. 그것을 충족해줄수 있는것이 아카리의 존재였다.
형이 아닌 누나여야만이 가능한 여러 가지 일들. 아카리는 당시 중고등학교 선생님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적격이었다. 아카리는 여러 가지를 쿄타로에게 알려줬다.
그림을 그리는 법.
악기를 다루는 법.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든 법.
어려운 학교 숙제를 푸는 법.
쿄타로도 시간이 날 때면 그녀의 집에 놀러가곤 했고, 그녀도 쿄타로가 막내 동생처럼 여겨 귀여워해줬다. 가끔 히카루와 사랑싸움을 할 때도, 쿄타로만큼은 챙겨줬다.
이게 첫사랑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현재 스가 쿄타로가 자리잡고 있는 이상적인 여성은 대부분 후지사와 아카리의 영향을 받았다. 아마 무심코 노도카에게 시선이 간 이유도 그녀가 이 맴버중에서 아카리를 가장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성격이라던가 취향은 전혀 달랐지만.
“저기, 스가군. 우린 스가군의 첫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은게 아닌데.”
아까와 어른 스러운 얼굴과 달리 아카리의 이야기를 하면서 평소 보던 스가 쿄타로로 돌아온걸 보며, 히사가 살짝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맴버들도 제각기 불만을 품은 얼굴이다. 흠흠, 다시 헛기침을 하며 쿄타로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도우야씨와 선생님은 나가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주제는 저에 대한거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