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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키]Everlasting Snow ~북두배로 가는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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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미쳤냐?”
“뭐야?”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아키라가 한 소리는 바로 그거였다. 평소 바둑판에서는 냉정 침착. 라디오에서는 달빛 보이스라고까지 불리며 자상하고 상냥한 DJ로 유명한 그로써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난폭한 말투였다.   
그리고 그걸 가만히 듣고 있을 히카루가 아니었다. 발끈 한 얼굴로 그를 노려본다.

“아까 그 아이, 네 제자라며. 그것도 내제자.”
“....어디서 들었냐.”
“귀국후, 모리시마 연구회에 인사차 갔다가 들었다. 너 내제자가 무슨 의미인줄이나 알고 들인거야?”
“아아.”

히카루는 아까보다 진지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었다. 

“알아? 안다고? 안다는 놈이 덜컥 제자를 받아들여? 지금 우리가 몇단인줄 알아?”
“너 4단, 나 3단.”
“그래, 너도 이 바닥에 있다면 그게 무슨 소리인줄 알거다.”

바둑기사들끼리는 단에 이명을 붙이곤 했다. 
예를 들어 히카루가 속해 있는 3단은 투력-이제야 싸우는 힘을 갖췄다-이라고 칭했으며, 아키라가 속한 4단은 소교-간단한 기교를 부릴줄 알게 되었다-라고 칭했다. 
이 말은 그들은 이제 막 햇병아리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회로 치자면 간신히 수습사원에서 벗어나 사원이 되었다던가, 사원에서 주임으로 승진한 정도였다. 

“신도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한국과 달라.”
“.....”

한국에서는 프로 시험이 무척이나 어렵고, 그 대신 단의 의미는 그저 경력을 칭하는 말에 가까웠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프로시험도 어려웠지만, 단의 의미를 무척이나 강하게 여겨, 일종의 서열처럼 생각했다. 단이 높다는 건 그만큼 실력과 경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단수에 따라 참가 할수 있는 대회까지 결정 날 정도였다고 했다.  

 병아리가 햇병아리를 키운다니. 높으신 분들에게 밉보이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아아, 젠장. 이럴줄 알았으면 그 류몬부치지도 바둑에 자신이 어떻게든 갔어야 했다. 
 그때 마침 해외출장이 잡히고, 나름 신경 써준다고 히카루를 보낸게 아니었다. 
 설마 나가노에서 저런 사고를 치고 돌아올줄이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저 아이를 돌려보내던가, 아니면 다른 분에게 소개해드려. 분명 네 부탁이라면-.”
“그건 안돼.”
“뭐?”

강경하게 말하는 히카루의 태도에 아키라는 다시 머리가 아파짐을 느꼈다. 지금까지 잘 알아듣게 이야기 했는데도 이녀석이.

“도대체 왜!”
“저 녀석은 내가 아니면 아무도 제대로 살리지 못할테니까.”
“뭐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도대체 왜! 저 아이가 뭐 어떻길래! 저 아이가 그 영재 나카무라 유키토라도 되는거야? 애초에 저 아이 바둑을 얼마나 한거야.”
“이제 한 달.”
“뭐?!”

오늘 소리를 많이 지른다. 한달. 한달이라니. 이미 프로가 되기에는 늦어버린 나이다.
그때 한숨을 내쉬며. 히카루가 그를 정면으로 쳐다본다. 아까와 다른 사뭇 진지한 목소리다.

“아키라. 쿄타로랑 지도 바둑을 한번 둬줘. 그러면 내 말의 뜻을 알테니까.”
“......”

히카루의 말에 아키라는 입을 굳게 닫았다. 도대체 뭐가 저 신도우 히카루를 홀리게 한건가.
저 아이에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것인가.
갑자기 도우야 아키라도 그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

아키라는 쿄타로와 바둑을 둔 이후, 말을 잊었다. 소년의 실력은 극히 평범하다. 지금껏 지도바둑을 둔 영재들에 비하면 이 아이는 초라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 아이에게는 재능이 있다. 마치, 어린 시절, 그때 그 기원에서 히카루와 뒀던 그 바둑과 같다.

 그렇다. 
 이 아이는 어린 시절 히카루. 그 자체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고 그와 친하다고 할수 있는 수많은 바둑 기사들도 신도우 히카루라면 고개를 갸웃 거릴정도로 미스테리 했다. 프로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그와 절친하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의 존재는 미스테리 그 자체였다. 

 대부분 프로 기사가 바둑을 처음 입문할 무렵은 대부분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이다. 
 그리고 수많은 기보 암기와 대국을 하게 된다. 그렇게 인생 전부를 바둑에게만 받친 이들 중에서도 선택 받은 자들만이 될수 있는 것이 원생이다. 그리고 그 원생도 몇 년동안 피터지게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지만 프로가 될수 있다.

 프로란, 그런 자리다.
 하지만, 그런 자리를 신도우는 입문한지 단 3년만에 끝내버렸다. 더군다나 그 바둑 스타일은 혼인보 슈사쿠를 적통으로 계승한 듯한 고전파 기풍이었다. 연세가 있는 기사들이나 쓸법한 기풍이었다. 

 누가 이런 바둑을 가르쳤는지, 어떻게 소년이 바둑에 입문했는지는 아직까지 미스테리였다. 심지어 그의 부모조차 모른다고 했다. 가끔 히카루는 그런 질문에 “바둑을 무지 좋아하는 귀신이 알려줬어요.” 라고 농담조로 말하지만. 아무도 그말을 믿지 않았다.

“저 녀석은 내 어린시절이야.”

사이와 처음 만났을 무렵의 자신이다.

“그러니까 나만이 저 녀석의 재능을 알아주고, 키워 줄 수 있어. 오히려 명인이라던가, 그런 분들에게 저 녀석을 맡기면, 얼마 가지도 못해서 튕겨져 나와버릴거야.”
“네가 그걸 할수 있다고 생각해? 네 스승님이 누군지도, 그리고 어떻게 널 가르쳤는지도 난 몰라. 하지만, 네가 네 선생님처럼 할수 있다고 생각해?  잘 생각해. 너는 지금 스가군의 일생을 정하겠다는거야. 저 아이에게 뻗쳐진 수많은 가능성을 지금 네 손으로 닫고, 길을 ​제​시​해​주​겠​다​는​거​니​까​.​”​
“....알아.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아키라.”
“뭐?”

갑작스러운 히카루의 말에 아키라가 어벙하게 되묻는다.

“나는 쿄타로에게 많은걸 알려줄거다. 수많은 대국과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걸 전수 할거야. 하지만, 그러기에는 나에게는 체계가 없어.”

신도우 히카루가 사이에게 바둑을 배웠을 때, 그는 이론보다는 실전으로 바둑을 익혔다. 기보를 보기보다는 사이와 바둑을 한수 뒀고, 사이는 그 지도 바둑을 통해 히카루에게 가르침을 내렸다. 
그게 나쁘다는게 아니었다. 어느정도 실력이 오른 다음에는 오히려 이런 방법이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킬수 있다. 하지만 쿄타로같은 초심자는 달랐다. 그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체계잡힌 공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공부를 제대로한 것이 눈앞의 도우야 아키라였다.
도우야 명인 아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고, 프로 기사가 된 청년. 이 녀석이라면 자신에게 부족한 이론을 쿄타로에게 전수 해줄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부탁할게. 쿄타로에게 네 지식을 가르쳐줘.”

진지하게 자신에게 허리까지 굽히는 히카루를 보며, 아키라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초등학교때 만난 이후, 지금껏 제 잘난맛에 살아가는게 신도우 히카루라고 생각했는데.
제자를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허리를 굽힐줄도 아는구나.
결국, 아키라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 대국 스케쥴이라던가, 방송 스케쥴을 보고, 스가군을 지도 해줄게. 하지만. 하나 확실히해야해. 우린 지금, 한 아이에게 길을 제시하는 동시에, 다른 가능성을 닫고 있는거야. 저 아이가 어떤 일을 곁든, 그리고 어떤 좌절을 곁든, 그중 일부 책임은, 우리에게도 있다른거.”
“....아아.”

히카루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었다.

**
“저는 어찌보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축복받은 환경이었어요.” 

 본래 유명한 기사의 내제자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성의를 제자쪽에서 보이는 것이 관례이며, 법도였다. 하지만 그러한 관례와 관계없이, 쿄타로를 도쿄에 데려온 이후 쿄타로 관련된 모든 비용은 히카루쪽에서 지불했다.

 살고 있는 집도 히카루의 친가. 즉 히카루의 부모님이 계신 집의 쓰지 않은 빈방이었고, 학교에 관련된 모든 비용도 히카루가 지불했다. 심지어 쿄타로가 뭔가 배우고 싶다면, 그가 손수 사비를 털어서 사설 학원까지 보내거나, 캠프같은곳도 꼬박꼬박 보냈다.

 학부모가 참석해야할 행사는 자신의 대국을 빼던가, 아니면 히카루의 부모님에게 꼭 부탁했다. 그조차도 안되면 아카리가 대신 참석했다. 
 구김살이 없고, 머리카락처럼 상냥하게 빛나고 있는 소년은 히카루의 부모님에게도 사랑받기 충분했다. 그렇다, 그는 분명 수행을 위해 도쿄로 떠나왔지만, 어느 누구보다 사랑받으면서 자라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저의 선생님은 신도우 히카루. 단 한분 뿐이에요. 하지만 저를 이끌어준건 선생님뿐만 아니었어요.”

바둑에 대한 기초공부와 수많은 기보를 보는 방법. 그리고 그 기보속에 담겨진 의미를 알려준 것은 도우야 아키라.
항상 실전과 같은 대국을 둠으로써 쿄타로에게 자신의 기풍과 실력을 심어준 신도우 히카루.
그리고 그 둘에게 배우지 못한 공부라던가, 자상함과 대인 관계에 대한 예절을 알려준 후지사키 아카리.

이 셋이 스가 쿄타로라는 인물을 이끌어줬다.

그리고 그때가, 쿄타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다. 

바둑을 가르쳐주는 선생님들도 있고 투정을 부리면 자상하게 안아주는 누나도 있었다. 
소년은 그 세 사람의 보살핌을 받으면 쑥쑥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저는 만나게 되었어요.”

누굴....?
말은 하지 않았지만, 키요스미 맴버들은 그걸 묻고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소년의 표정이 바뀌어갔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소년의 표정은, 누군가를 그리워 하면서도, 떠올리는 것 조차 고통스러운 얼굴이었다.
소년은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버린 얼굴이었다. 

이제 그만 말해-. 그렇게 말해줘야하는데. 아무도 그말을 하지 못한다. 
어느 무엇보다 무거운 쇳덩어리가 놓인 듯,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소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카무라, 유키토....”

소년이 입에 올린 것은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낯선 이름.

“저에게 있어서는, 라이벌....”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에는 없는, 저의 친구.”

누군가가 숨을 헛 하고 들어마셨다.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의 뜻을 알게 된 것이다. 
그순간, 다들 알게 되었다. 나카무라 유키토라는 그 인물이 잘 나가는 프로였던 쿄타로를 주저 앉게 하고, 키요스미 마작부의 소속으로 만들어버린 원인. 
지금껏 사키에게 조차 말하지 않았던 봉인의 문. 
그 자체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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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유키토?”
“그래, 너도 이름이라면 들어봤지?”

쿄타로가 히카루의 제자가 된지 대략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를 무렵이었다. 쿄타로는 현재 학교 숙제를 한다며 아카리의 집에 놀러간 상태. 어찌된게, 이녀석은 남자친구인 자신보다 더 아카리의 집을 들락 날락 하는 것 같다. 어쨌든 그건 넘겨두고, 마침 히카루와 쿄타로를 보기위해 찾아 왔던 아키라의 말에, 히카루가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래, 그 꼰대...아니 나카무라 7단의 아들이잖아. ”

나카무라 7단이면 히카루에게 있어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허례허식을 좋아하며, 자신보다 아래 단수의 기사들을 대놓고 무시한다거나, 부하 다루듯 다룬다. 성격도 소인배 그 자체였다. 
 그에 비해 실력은 부족해서, 아직도 8단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그 아들은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신동으로 알려질 정도로, 그 소년과 바둑을 둔 모든 기사들이 그 재능에 탄복 했다고 할정도였다.

“걔가 왜?”
“이번에 내가 그 아이 지도 바둑을 두게 되었거든, 그래서 네가 괜찮으면 한번 만나보게 하려고.”

그 소문의 신동과 말인가.

“아마 좋은 자극 될거야. 스가군에게도 승부욕이라던가, 따라가고 싶어하는 라이벌이 있다면, 그만큼 실력향상에게도 도움이 될거고.”

하긴, 아키라의 말대로였다. 자신의 급속도로 성장 할수 있었던건, 사이의 지도도 지도였지만, 아키라의 존재가 컸다.

“그런가, 라이벌인가...”

지금껏 쿄타로는 어른들 사이에서만 바둑을 뒀다. 하지만 그 바둑은 지도 바둑. 쿄타로는 아직 진검 승부라는걸 몰랐다. 어쩌면 이 기회는 쿄타로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슬슬 좋을지도-.” 

그렇게 만남은 성사되었다.



제5국 회상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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