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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후


원작 |

3장


반년 전 그 당시 나와 그녀는 그녀가 떠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우리 셋, 모두는 언제부턴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 바보를 연기했었다. 기만과 거짓이 싫었고, 진실을 호소했지만, 결국 나는 이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녀들 중 한명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선택받지 못한 이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그렇지만 그녀들은 그런 나를 용납하지 않았고, 끝을 향해 이 관계는 나아갔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그녀가 떠나는 것을 막지 못했고, 시간이 흘러 우리가 그녀를 찾으려고 했을 때는 너무 늦었다.

반년동안 나는 고뇌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밖에 성립되지 못한다는 현실이 날 짓눌렀다. 난 그녀를 선택하지 않는 대신, 그녀의 이상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 동기가 죄책감이던 속죄이던 그 무엇이던, 이것이 그녀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며 나는 나아갔다.



반년 전 그날 사건으로 얼마 되지 않아, ​유​키​노​시​타​씨​(​하​루​노​)​가​ 찾아왔다. 그녀의 눈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체념으로 가득했다.
“히키가야, 우리 처음 만날 때 기억해?”
“유키노시타를 울리면 용서하지 않는다, 이거 말씀하는 거죠?”
“맞아. 비록 유키노 본인도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겠지만, 이 누나는 굉장히 화내고 있어요.”
“역시 유키노시타씨도 상당한 시스콘이내요.”
이미 결정한 일이다. 번복은 없을 것이고, 나에게는 이제 지켜야할 사람이 생겼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난 당당해질 것이다.
“음, 한대 맞으면 되나요?”
“날 시즈카짱 취급하지 말아줄래. 어디보자 유키노가 안된다면 나랑 사귀자. 그럼 용서해줄게.”
“무리입니다.”
“단호하구나. 히키가야. 가하마짱에겐 아까운데.”
“그걸 결정하는 건 유키노시타씨가 아닙니다. 그녀를 모독하지 말아주세요.”
“무서워, 히키가야. 훌쩍훌쩍”
그런 비겁한 공격 안 됩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고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한 나는 더욱 더 안 될 놈이다.
“그렇게 나오신다면, 저도 울겠습니다.”
“으아~. 그건 기분 나쁘니까, 사양할게. 히키가야가 이렇게 완고하니 어쩔 수 없네. 하지만 정신도 가하마짱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가하마짱 슬퍼할 거야. 바이바이, 히키가야군 어른스러워 졌어.”
폭풍같이 등장한 그녀에 알맞게 깔끔한 퇴장이다. 그녀의 말에 정곡이 찔린 나는 주먹에 힘이 들어갔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 보니 유키노시타씨에게 유키노시타 전화번호 물어보는 거 깜박했네. 그녀와 만나기전 서점에서 나는 수학책 한권을 구매했다.



리얼충 죽으라거나 터져라 거나 그렇게 말하던 난, 고교 졸업식 날 여자친구가 생겼다. 그리고 그녀와 오늘은 데이트하는 날. 대학이 달라서 평소에 자주 못 보니, 이렇게 만나게 되는 날이면 손이 땀이 나게 긴장된다. 봄날의 따스한 햇볕이 조금이나마 긴장감을 풀어주고 있다.
“유이, 여기야.”
“아 핫치, 야하로.”
큭 귀엽다. 청순한 느낌의 하얀색 원피스에 밀짚모자 그리고 그 청순함속에 섹시함을 강조하는 듯 원피스의 허리끈이 그녀의 에스라인을 강조한다. 청순함과 에로함이 공존하다니 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많이 기다렸어 핫치?”
네 왔습니다. 남자들이 여자가 생기면 하게 되는 그 말.
“아니 별로. 오늘도 예쁘네. 그 옷 잘 어울려 유이.”
“후에?”
붉어진 그녀의 얼굴이 내 심장의 고동을 가속화한다. 이런 젠장 나까지 부끄러워하면 안 되는데.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헛기침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흐흠.”
슬며시 고개를 돌려 곁눈으로 그녀를 보자, 그녀는 가슴에 손을 올려놓고 심호흡을 하며 안정을 되찾는다.
“유이, 진정됐어?”
“으응. 오늘은 어디가 핫치? 참고로 말하는데 또 라면집 가는 건 마이너스야.”
“아하하... 그럴 리가 없잖아. 일단 영화 보러가자.”
라면이 안 되다니 슬프다. 나중에 히라츠카 선생님과 함께 라면집 투어를 한번 해야겠다. 안경을 고처 쓰며 손을 뻗는다.
“가자 유이.”
“응, 핫치. 에헤헤.”
순진하게 웃는 이 모습 지켜주고 싶다. 미안해 토츠카, 나에겐 다른 마이 러블리 엔젤이 생겼어. 부끄러운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녀와의 데이트를 즐기기 시작했다.

영화가 끝나고 카페에서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자, 주의의 시선을 느낀다. 훗, 너희들이 아무리 처다봐도, 유이는 내 여자다. 가사로운 것들. 썩소를 짓자, 유이가 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왜 그래 유이?”
왠지 불안한 듯 나를 본다.
“그... 핫치. 학교에서 인기 좋아?”
“엉? 어째서 유이가 그걸 알고 있어?”
“아~! 역시 핫치 인기 많구나. 이로하짱에게 다 들었어. 다른 여자들하고 달라붙어 지낸다고 들었어. 어떻게 된 거야 핫치!?”
이런 내 무덤을 스스로 파버렸다. 잇시키 이 녀석 저번에 한번 학교 오더니만, 유이에게 무슨 말을 한 거야. 나중에 꼭 추궁해봐야겠다.
“하아? 그럴 리가 없잖아 유이. 아싸에 죽은 생선눈 가지고 있는 나라고, 인기가 많을 리가 없잖아.”
“그럴까나. 핫치 인기 많을 거 같은데. 안경 쓰고 최근에 눈도 요즘 많이 좋아졌다고 할까, 오히려 살짝 썩은 느낌이 카리스마가 있다고 할까. 멋있다고 할까. 그리고 핫치는 상냥하니까 여자들이 좋아한다고. 유키농처럼...”
그녀의 이름이 나오자 조용해진다. 벌써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은 것도 꾀 됐다. 유이도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히라츠카 선생님도 모른다고 하신다. 유키노시타씨에게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는다. 마치 세상에 없었던 사람처럼, 그녀는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더 이상 그녀의 홍차를 다시 보진 못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커피를 마셨다. 역시 맥스커피가 좋아. 커피는 너무 쓰잖아.



어느덧 세월이 흘러 반년 후, 대학가에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안경을 쓴 미소녀가 여러 클럽을 휘젓고 다닌다고 한다. 그녀가 들어간 클럽 내부 인간관계는 전부 무너진다고 하니, 그야말로 클럽 브레이커라는 별명이 어울린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그녀가 직접 나서서 한다기보다는, 남자들을 홀려 클럽을 먼저 반쪽을 내고, 여성들의 질투심을 일으키고, 자신의 추종자를 만들어 인간관계를 부순다는 점이다. 또 특이한건 이런 그녀의 특성을 알면서도, 그녀에 매료된 사람들은 그녀를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버전의 초선도 아니고, 그저 휘둘려지는 녀석들이 한심하다. 한숨을 쉬자 같은 클럽의 여자아이가 날 부른다.
“하치만군, 클브에 관한 소문 들어봤어?”
“어? 아 그 안경 쓴 여자?”
“아 맞아. 하치만군도 알고 있네. 설마 했는데, 다른 남자들은 몰라도 하치만군도 걔한테 관심 있어?”
“아니야. 그저 소문이 어이없을 뿐이야.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게 애초에 말도 안 되지.”
“그치? 역시 하치만군은 다를 줄 알았어. 괜히 우리 부 마스코트가 아니지.”
그러면서 그녀는 내 팔에 안겨온다. 윽, 이런 바디어택을 하다니 여자는 비겁하다.
“떨어져줘. 나 여친 있다고. 다른 사람이 보면 곤란하다니까.”
내가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여자친구가 생긴 뒤 모테키가 찾아왔다. 아니 왜 도대체 여자친구가 없을 때 오지 않고, 생기고 오는 거냐고. 타이밍이 왜이래?



이제 크리스마스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이 되면 난 또 다른 졸업식을 하게 된다. 큭, 괜히 상상하니까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녀를 위해 선물을 사러 지금 밖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이런 내 자신을 보면 참 사람 운명이라고 할까, 인생을 앞을 알 수 없다. 그렇게 아싸라고 외치던 내가, 리얼충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차가운 바람이 불며 잠깐 눈이 감긴다. 잠깐 사이 눈을 뜨자, 난 방금한 내 말을 떠올린다. 인파 사이 긴 흑발에 스웨터차림의 상의, 무엇보다 안경을 쓴 그녀의 옆모습을 보게 된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둘러싸여, 바로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에서 올라와 머리에 도달한다. 그녀를 다시 만나야하는가 아니면 이대로 끝내야할까? 전신의 감각이 민감해지고, 이를 악문다. 나에게 그녀를 만날 자격이 없다. 이 생각과 함께 선물을 뒤로한 체 집으로 향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유이와의 통화와 문자를 끝으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말이 나온다.
​"​유​키​노​시​타​.​.​.​"​
젠장, 오늘은 잠자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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