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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후


원작 |

4장


졸업식 후, 반년동안 나는 나락 속 깊은 심연에 떨어졌다. 그곳에서 나는 심연을 들여다보았고, 절망의 늪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한 인간의 삶이 밤하늘이라고 하면, 청춘은 그저 아이들의 장난에 불과한, 저 밤하늘 공기오염에 가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작은 별빛이다. 빛을 내는 별은 자신의 생명을 태우며 전력으로 빛을 내지만, 정작 그 빛의 가치는 누구도 모른 체 잊어진다. 그리곤 다른 별이 빛을 내고, 또 그렇게 사라진다. 그것들의 의미는 사람들이 타인이 의미를 부여할 때만 비로소 의미를 갖고 기억되기만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별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의 다짐 후, 나는 많은 하늘의 달들을 얻었다. 이 빛은 다른 보잘것없는 별빛과 달리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밤하늘을 비추며 길이 되어줄 것이다. 그에 대한 대가일까? 내 밤하늘에서는 이제 더 이상 빛을 볼 수가 없다. 이 또한 내가 각오한 일이며, 두 팔 벌려 기꺼이 받아드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좋아한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지지 않으며, 타인의 인생을 얻는다. 이것이 인간관계에서 승리했다는 거니까. 빛이 없으니 길을 잃었다라고? 난 어둠이 두렵지 않고, 누군가가 비추어줄 빛 따위 필요 없다.



테니스, 사회연구, 방송 미디어, 농구, 종교 등등 얼마나 많은 클럽을 경험했을까. 여러 대학들의 클럽을 다니며, 그들의 사고와 다루는 법을 배웠다. 특히 남자들은 다루기 쉬웠다. 그들은 단순했고, 호감을 사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재롱도 부린다. 조금 호의만 베풀어도 착각을 했고, 약한 척을 하면 방패가 되어 준다. 물론 이 때문에 여자들을 다루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러나 그녀들도 결국 사람 감정에 쉽게 휘둘린다. 무난하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땐, 두려움과 열등감 그리고 모욕감으로 방해물을 제거해왔다. 결국 대학생수준의 인간들은 이 정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반항기가 있는 싹 자르기 위해 외출준비를 한다.

최근 들어간 영어 학습 클럽에서 날 적대시하던 츠카사 미오와 그녀를 중심으로 구성된 그룹. 오늘 그녀들이 미팅한다고 하니 가볍게 방해 해주면 그쪽이 달려들 것이다. 그렇게만 해주면, 클럽 안에서 공개처형만 준비하면 준비 끝이다. 그것이 안 되더라도 양분화는 가능하기에 오늘 그녀들이 내 도발에 넘어와 주었으면 한다.

분명 저녁 8시에 이 부근에서 만날 거라는데. 주위를 살피자 남성 측 참가자인 타케오군이 보인다.
“유키노시타양 여기야.”
“아, 타케오군 안녕. 내가 이렇게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해. 타케오군에게는 항상 부탁만하네.”
“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런 건. 나야말로 유키노시타양하고 같이 미팅할 수 있는 게 기쁘다고 할까 영광이라고 할까...”
살며시 그의 손을 내 손으로 포개면서 웃어준다.
“타케오군은 상냥하네. 오늘 재미있게 놀자. 그러고 보니 나 때문에 인원수 안 맞을 텐데 괜찮아?”
“으응, 그래서 우리 남성 쪽에서도 한 명 더 불렀어. 조금 늦게 도착할 것 같아.”
역시나 이 녀석은 다루기가 쉽다. 금방이라도 열기가 나올 것처럼 적극적인 모습으로 대화에 임한다. 마치 칭찬해 달라는 주인  앞의 개 같이 보인다.
“타케오군 대단해. 역시 남자는 이런 능력이 있어야 멋진 법이지.”
그의 입꼬리는 귀에 걸릴 듯 올라가 있다. 일단은 우연을 가장해서 그녀들과 만나야하니 지금은 다른 곳에서 대기해야겠다.
“그럼 타케오군 조금 있다가보자. 미팅 기대하고 있어.”

전형적인 3대3 만남 그녀들은 즐기고 있으려나? 고개를 돌리자, 그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에서는 웃음의 꽃이 피어나고 나 얼굴에서는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제 슬슬 시간이다.
“어라, 츠카사양 우연이내. 안녕.”
“엑... 유키노시타. 너 여기에는 무슨 일이냐?”
“와, 재밌어 보인다. 미팅하는 거야? 좋겠다.”
웃음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한다. 타케오군을 제외한 모두가 놀라고 있다.
“안녕하세요. 유키노시타 유키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 안녕하세요.“”
“제멋대로 부탁이지만 저도 참가해도 괜찮을까요. 지금까지 남자친구 만들어 본적이 없어서 이런 미팅 해보고 싶어요.”
“와, 유키노시타양 남자친구 없나요?”
“네, 조금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런 걸까요. 하지만 여기 계신 상냥한 분들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저기 저도 이 미팅에 참가하고 싶은데 안 될까요?”
살짝 고개를 숙여 눈을 위로하며 부성애를 자극한다. 대화 주도권은 내가 잡았다. 이 흐름 그대로 식사까지 가져가면된다. 남성들은 반대하기 힘들 테니, 이젠 츠카사양이 나설 차례일 것이다.
“저기, 유키노시타양. 우리미팅에서 방해하지 말아줄래.”
“미.. 미안해요. 저가 즐거워서 그만. 민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훌쩍
살짝 눈물만 흘려주고 도와달라는 시선을 보내면..
“어이 유키노시타양을 울리지마. 불쌍하잖아. 우리는 딱히 유키노시타양이랑 같이 있어도 괜찮으니까. 민폐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고... 고마워요. 그...”
“야마토에요. 츠치다 야마토. 야마토로 괜찮아요.”
“역시 상냥하신 분이였네요. 야마토군”
웃음으로 보답하자 부끄러운 듯 가볍게 웃기 시작한다.
“그.. 그렇지만 우린 4명이고 저쪽은 3명이야 그래서는 인원수가 맞지 않잖아.”
“”맞아, 맞아.“"
츠카사양 그래서 준비했어. 이젠 슬슬 올 때가 됐다. 무난하게 계획대로라, 오히려 긴장감이 풀리고 재미가 없다. 그런데 그 순간...
“어이, 타케오. 어디 있어?”
“아, 히키가야. 여기야.”
“에?”
뒤를 돌아보자, 그 곳엔 약간 키가 더 크고 안경을 쓰고 멋지게 변한 옛 나의 하늘을 비추었던 달, 그가 있었다.
“이야, 히키가야. 우연이네. 우리 클럽에 히키가야라고 해요. 너도 미팅에 껴라. 이걸로 인원수 문제는 없겠지. 그렇죠? 유키노시타양.”
“안녕하세요. 히키가야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난 반년동안 멈춘 시간이 다시 나를 엄습해온다. 거침없이 어두운 밤하늘을 나아가는 길에서, 나는 내 하늘에서 떨어진 달과 다시 한 번 조우한다. 비록 옛날과 달리 그것은 빛을 내며 하늘에 있지 않고, 땅으로 떨어져 빛을 잃고 있었다. 내 길에서 방해되는 존재는 필요 없다. 그렇게 이성으로는 생각하고 있지만, 내 썩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나도 작아서 미처 다 지우지 못한, 내 밤하늘에 작은 별빛이 내 길을 비춘다. 아직, 약한 내가 그리고 날 약하게 만드는 그가 난 너무나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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