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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후


원작 |

7장


겨울 하늘이라고 믿기 힘들게 맑은 하늘, 어제의 눈구름에 가려있던 태양이 그 존재를 더욱 뽐내며 크리스마스이브의 아침이 시작됐다. 어느덧 반년이지나 그와 교제한지 거의 1년이 다 되가는 오늘, 그 어느 때의 데이트보다 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치장한다. 상기된 얼굴을 양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긴장을 푼다. 역시 오늘 밤을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그의 얼굴도 못 볼 것 같다. 역시 불은 끄고 하는 게 좋겠다. 평소보다 더욱 신경 쓴 차림으로 문밖을 나선다.

역시 오늘은 사람들이 많다. 특히 커플들을 위한 행사 또한 엄청나게 많다. 그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서두른다. 후우 땀을 흘리지 않게 페이스를 조절하며 약속장소에 가까워지니,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확인하고 그에게 다가간다. 뒷덜미를 잡은 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는 왠지 평소보다 기운이 없어 보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들뜬 마음이 차분해지고 그를 부른다.
“핫치 야하로. 안색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
“아, 유이. 안녕 그냥 좀 배고파서 먼저 점심부터 먹지 않을래?”
“응, 딱히 상관없는데. 핫치 왠지 피곤해보여.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무것도 없었어. 긴장해서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래 아하하....”
“무.. 무슨 소리하는 거야? 핫치, 바보 색골 변태.”
으... 괜히 걱정했다가 부끄러워진다. 주변에서는 바보 커플 보듯 웃으며 지나간다. 얼굴이 더욱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걸음을 재촉한다.
“핫치, 배고프다고 했지? 일단 빨리 밥 먼저 먹자.”

역시 오늘 같은 날이면 크리스마스 특별 메뉴가 많다. 평소에 보기 힘든 요리들과 서비스 그리고 커플들의 수. 이런 사람들 사이에 우리가 이렇게 있다는 것이, 그와 내가 정말 연인이 되었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다. 좀 더 강하게 그의 팔을 잡으면서 그를 바라본다. 홍조가 생긴 그의 얼굴은 귀여웠고, 그런 그가 내 옆에 있다는 게 행복해 웃음이 지어진다.

식사를 하는 그는 정말 배가 고팠는지 엄청난 기세로 점심을 먹었다. 왠지 나에게는 관심을 가져 주는 게 조금 적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렇게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오히려 소년 같아서 고등학생 때 그의 느낌을 받는다.
“핫치 그렇게 먹으면 체해. 얼마나 배가 고팠던 거야,  집에서 아침도 안 먹고 나왔어?”
“어? 어.. 응.. 그냥 나왔어.”
약간 경직된 그의 모습 아니, 긴장한 건가? 얼마나 오늘 때문에 긴장한 거야. 그 때문에 나까지도 괜히 신경 쓰게 된다. 정말 듬직해진 그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아직도 중학생 같다.



점심 식사가 끝난 뒤,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을 위해 서로 같이 쇼핑을 하고 있다. 월래 예정대로면 서로 각자 미리 살 예정이었지만, 무슨 연유인지 그가 선물구입을 못하게 돼서 이렇게 나와 그는 같이 쇼핑몰을 둘러보고 있다. 그가 사준 것이라면 뭐든 기쁘지만, 역시 내 취향이 완벽하게 고려되지 않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편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괜히 마음에 안 들어서 반품이나 교환하게 되도 곤란하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그가 내 선물을 좋아해줄지 걱정이다. 물론 겉으로는 좋아해주겠지만 그의 속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불안한 마음에 가방 속 포장된 선물을 본다.

쇼핑이 끝난 후 그는 나에게 비밀로 하고 선물을 사러갔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말 했지만, 틀림없이 선물 때문일 거다. 여기서는 모르는 척 넘어가자. 그게 그를 위한 일일 테니까. 어떤 선물을 사 올지 소박한 의문과 함께 의자에 앉아 그를 기다린다. 개인적으로는 같이 본 목걸이였으면 좋겠다. 근데 선물 하나 사는 것치고는 오래 걸리는 거 같다. 무엇을 살지 고민하고 있는 건가? 눈치 빠른 그이기에 금방 알아줄 거라 생각했는데. 기다림과 함께 실망감이 커지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핫치 늦어.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아... 그 뭐냐. 화장실에 사람이 많아서 말이야. 줄이 줄어들지 않더라고.”
“하아.. 나는 핫치 기다리느라고 엄청 지루했단 말이야.”
“미안해, 그럼 밑에 게임장이라도 갈까? 내가 사죄하는 김에 유이가 좋아하는 인형도 뽑아줄게.”
“진짜? 좋아 그럼 빨리 가자!”
기다리느라 지루했던 감정보다, 그가 돌아왔다는 것이 더 내 감정을 자극했다. 덤으로 인형까지 준다고 하니, 기다린 보람은 충분하지 않았을까? 큰일이다. 이렇게까지 그에게 빠져버리면, 혹시라도 그가 떠나게 되면, 내 정신이 못 버틸 것 같다. 에잇, 크리스마스에 무슨 생각을 나는 하고 있는 걸까. 핫치는 날 배신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내 쪽에서도 절대 그를 먼저 떠나보내지도 않을 거다. 굳은 믿음으로 안 좋은 생각은 뒤로하고 우리들은 게임센터에 간다. 그런데...
“핫치 어깨 아파? 뭉치거나 그런 거야? 내가 주물러 줄까?”
“응?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단순히 그저 스트레스 때문에 그래. 자 빨리 내려가서 스트레스고 풀고 즐겨보자.”
뭔가 강하게 부정하는 그의 태도에 조금은 슬퍼진다. 나는 그렇게나 못 미더운 걸까. 그렇게나 기쁘던 내 심정은 그의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왔다간다. 역시 나는 그에게 너무 빠진 거 같다.

“와 여기도 사람 많네. 그치 핫치?”
“그러네, 어디한번 둘러볼까?”
“응, 근데 핫치는 어떤 게임이 좋아?”
“훗, 전히키코모리였던 내 게임실력은 무시할 수 없지. 어디보자 일단 혼자서 할 수 있는 슈팅게임, 퀴즈 맞추기, 거기에 인형 뽑기, 뭐든 말 만해봐 다 자신 있어. 그렇지만 대전게임이라던가 협동게임은 봐줘.”
“우와... 핫치가 아니라 옛날의 힛키로 보였어 방금.”
“크흠, 뭐 과거의 일이다. 딱히 뭘 하던 상관없어. 그저 남자라는 생물은 이런 쪽에서는 자랑을 하고 싶은 법이야.”
“일단은 스티커사진 먼저 찍자.”
“무시냐? 뭐 상관없겠지. 식사도 했으니 한번 실컷 놀아보자.”
“에? 그렇지만 핫치 아까 같이 쇼핑 돌았잖아 즐겁지 않았어? 설마 그거 때문에 어깨 아픈 거야?”
나 혼자만 그 쇼핑을 즐긴 거라 생각하니, 너무 슬퍼진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주변의 소리가 점차 작아진다.
“유이, 미안해. 내가 무신경한 말을 했어. 너랑 같이 있던 시간이 그럴 리가 없잖아. 단지 쇼핑 같은 건 남자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금방 지치니까. 유이도 내가 게임만 하고 있다고 하면 재미없잖아.”
“그렇게 행동하는 건 정말 최악이야, 핫치! 하아... 일단 핫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았어.”
나도 그를 이해하려 노력해야지, 그가 나만을 알아달라는 것은 내 과욕일 거다. 후련한 마음으로 스티커사진 기계로 향한다.

화려한 색체와 소리가 우리를 맞이한다. 핫치도 이제 익숙한지 자연스럽게 동전을 넣고 설정에 들어간다. 그동안 나와의 시간이 그를 이렇게 바꿨다는 걸 생각하면, 웃음이 지어진다.
“많이 익숙해졌네. 핫치, 오늘은 어떻게 할까?”
“뭐 덕분에 많이 익숙해졌지. 오늘은 역시 특별한 날인만큼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걸 해보자. 아.. 잠깐 타임. 역시 그냥 평상시에 하던 걸로 하자.”
“응? 왜 그래 핫치?”
갑자기 변한 그의 언행에 의아함을 느끼며, 포즈 설정에 눈이 간다.
“헤?”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것은 평상시에 비해 스킨쉽도 과감했고, 무엇보다 이런 모습이 찍힐 걸 생각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진도가 느린 우리에게는 이런 것도 조금은 필요하지 않을까? 마음을 추스르며 그와의 시간을 회상한다. 지난시간 그와 사귀게 된 때부터 시작하면, 우리 사이에 스킨쉽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많이 바뀌기 했어도 그는 여전히 숙맥이었고, 가벼운 여자라고 생각되는 것도 싫었다. 그런 행동하는 여자도 그가 싫어하다보니, 나도 조심하게 되서 우리는 손을 잡거나 팔짱과 키스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이런 관계를 전진시키기 위해 오늘 이렇게 준비를 한 건데,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next 버튼에 팬을 옮긴다.
“유이, 괜찮아?”
“응. 역시 부끄럽지만 이제 슬슬 움직여야 된다고 생각해 핫치.”
나도 참 대담한 발언을 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 얼굴은 붉게 상기되었고, 그 또한 홍조를 띄우며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그의 무언을 긍정으로 받아드리며 세팅을 완료한다.

‘자, 그럼 시작한다? 3.. 2.. 1!’
‘찰칵’
먼저 시작은 가벼운 포즈부터 시작한다. 피스 사인에서부터 서로 양손을 잡고 바라보며 찍거나 서로 등을 마주대고 찍거나. 그리고 올 것이 왔다. 그의 품 안에 안겨 사진을 찍는 포즈가 왔다.
“히.. 힛키, 주.. 준비는 됐어?. 나.. 나는 괜찮은데.”
“어이, 호칭 옛날 걸로 돌아갔어. 너야말로 괜찮은 거야? 이리 와봐.”
예상외로 차분한 느낌의 그는 부끄러움 없이, 한 손으로 내 허리를 감고 끌어당긴다. 좋아하던 소년이 아니라 남자가 된 그를 보며, 위화감과 그런 그의 품에 들어가는 내 모습에 여자로써의 안도감을 느낀다.
“아.”
저항 없이 그의 품에 안겨 양팔로 그를 안아본다. 그리고 그 위화감은 오래가지 않아, 날 배신한다.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보지만, 그에게 안겨있는 나는 그 주박을 걸지 못하고 결국 눈물과 함께 그를 쳐낸다.

그에겐 다른 여자의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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