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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변조종기 엑사베리온


투고 | alphase

Prologue - 하늘이 떨어진 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째서 내 몸에 무언가 짓누르는듯한 압력이 가해지는걸까. 분명 빠르게 이 지점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확실하다. 그도 그럴게 나는 3개의 부스터를 모두 점화시켰고.. 어째서인지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지상은 점점 더 멀어져갔다. '우리 집'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이제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분명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었는데, 난 위로 올라가고 있다. 어째서일까. 난 왜 이런 바보같은 실수를 했을까.. 점화해버린 부스터를 다시 끌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당황해서 뭘 건들어야 할 지도 모른 채 이것저것 막 눌러봤지만 이미 땅에서는 꽤나 멀어져버렸다.

 "수혁! 뭐 하고 있나!"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어떤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더 작아져, 이제는 "신 수혁!" 이라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나마 그 사람이 거기 있다는 건 '푸른 점'이 보이는 걸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나 멀어진걸까.

 분명 3개의 부스터를 모두 점화시켜, 이 지역에서 빠르게 벗어나려고 했다. 3배로 빨라지기는 했지만, 3배의 속도로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제서야 난 내 조종기의 '기본 ​형​태​(​D​e​f​a​u​l​t​)​'​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렸다.

 탑(the Tower).
 
 가운데에 조종실이 있고, 3개의 다리가 삼각으로 뻗어있는 탑. 나머지 하나의 다리는 하늘로 높게 솟아있는.. 그래. 3개의 부스터를 모두 점화했으니 상식적으로 위로 올라갈 수 밖에 없던 것이었다.. 멍청하게도. 방금 전까지 "왜 앞으로 나아가질 않아! 젠장!" 이렇게 외쳐가며 분노를 표출했던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지금 이 쪽을 향해 날아오는 병기다.. 

 눈을 감고, 아까까지의 일들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푸른 빛이 나는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시훈이 형'이, 뭔가 먹을거라도 찾아보려고 근처 편의점으로 나가려던 내 뒷목을 엄청난 악력으로 붙들어잡았다.

 "글쎄, 난 지금 배가 고프다고요!"
 "그럴 때가 아닌 것 같다. 수혁."

 시훈이 형은 그러고서는 TV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스크린에는 ['오라드' 투하 결정, 다수결로 통과] 라는 타이틀로 아나운서가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게 뭡니까?" 라며 답을 요구했지만, 뒷목을 놔 줄 생각은 없어보였기에 그 자리에 서서 그대로 뉴스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건물이 다양한 각도로 찍힌 사진이 찍혀있었고. 그 옆에 '제 3 통신지구'라고 적힌 작은 지도가 띄워져 있었다. 저 건물을 어디서 봤더라.. 잠깐 생각해 봤더니. 그 외형, 옆에 놓인 작은 건물 하나. 그리고 2층 구조.. 많이 봤던 건물이라고 생각했더니 바로 지금 내가 있는 이 집이었다.

 그 이후 아나운서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으면서, 시훈이 형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평소엔 표정 변화라고는 거의 없는 저 형이,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일단 나도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들어보기로 했다.

 [어떤 물리적인 충격에도 파괴되지 않는 이 미확인 물체에 대해 세계 군사회의 결과, 7대 1로 '오라드'를 투하한다는 내용이 승인되었습니다.]

 오라드..? 아니, 그것보다도 더 큰 의문이 있다.

 [..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이미 양해를 구하고 6달 전부터 원활하게 그 지역을 벗어날 수 있도록 ​조​치​하​였​었​으​며​.​.​]​

 "뉴스에 왜 여기가 찍혀있는겁니까?"
 "수혁, 지금 당장 엑사베리온에 탑승해라. 당장!"

 형은 내 '조종기'의 이름을 언급해가며, 당장 탑승하라고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 본다. 아.. 물론, 처음 만났을 때는 웃으면서 화를 엄청나게 낸 것 같긴 하지만.. 일단, 그것보다도 대체 무슨 일인지 물어봐야만 했다.

 "아까는 좀 쉬라더니.. 무슨 일 있습니까?"
 "그럴 때가 아니다. 오라드. ​'​O​v​e​r​-​r​a​n​g​e​d​ Area ​D​e​s​t​r​o​y​e​r​'​ .. 초 광역범위 파괴병기가.."
 
 오라드라면, 아까 그 아나운서가 했던 말이다. '투하'한다고 했던 그.. 설마.

 "이쪽으로 날아오기라도 하는 겁니까?"

 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났다. TV를 끄는 것 조차 잊은 채로. 아나운서가 하는 말을 가만히 서서 더 들어보려고 했으나, 시훈이 형이 내 뒷목을 잡고 끄는 바람에 더 이상 뉴스를 볼 수는 없었다. 시훈이 형이 2층으로 날 끌고 가면서 계속 이야기했다.

 "자동수복은 충분히 되었을 테니 당장 탑승해라."
 "무슨 소립니까?"
  
 2층에 있는 내 방문을 여는 순간, 1층의 TV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또한, 이 물체는 멈추고 있는 상태로밖에 확인되지 않았으며..]

 "서둘러라! 이대로라면 폭발에 휘말린다!"

 항상 아침에 쳐들어 올 때도 결코 '서두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 형이, 왜 이런 말을 할까 의문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저 오라드라는 게 이쪽으로 날아온다는 거라면.. 난 아직 죽고 싶은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기에, 시훈이 형을 쫓아 재빨리 창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너무 서두르다보니 창문 틀에 다리를 부딪히는 바람에, 조금 아프긴 했지만.. 아프다고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었기때문에 주머니에서 컨트롤 패널을 꺼내 근처에 안착되어있던 엑사베리온에 탑승했다.

 근처에서 소음이 울려퍼지는 것을 보건데, 시훈이 형 역시 그의 조종기인 '칼로베리프'에 무사히 탑승해서. 먼저 움직이는 모양이다.

 [Default]
 [Move type : Hover]

 시훈이 형의 말대로 자동 수복은 이미 완료된 상태였다. 그것보다도. 탈출이다. 난 아직 죽고 싶은 생각이 없다. '초 광역범위 파괴병기'..? 그딴게 여기 왜 날아오는거지? 이유는?.. 그런 걸 생각할 틈은 없다. 일단 사용 가능한 부스터를 확인해보았다.

 [Leg 1 : Booster, Ready]
 [Leg 2 : Booster, Ready]
 [Leg 3 : Booster, Ready]

 3개의 부스터가 모두 사용 가능하다. 3개를 모두 점화시키면 분명 빠른 속도로 이 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난. 모두 ON 상태로 돌려놓았다. 곧, 예상대로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조종복의 충격 흡수 기능이 제대로 먹히긴 하는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 내 몸을 위에서 짓누르다시피 하는 이 감각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압력으로 몸이 접힐것만 같은 충격을 참아가며, 화면에 뜨는 걸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건들어봤지만.. 의미가 없다. 그 와중에, 어딘가로부터 통신이 걸려왔다.

 ​[​C​o​n​n​e​c​t​e​d​ - Voice Only]

 -"당장.. 화면..을... 꺼!"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가 치지직 거리는 잡음과 함께 섞여서 들어왔다. 이 상황에서 화면을 끈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었지만. 일단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다시금 팔에 느껴지는 고통을 참아가며, 간신히 손을 뻗어 버튼을 눌러 화면을 껐다.

 [Vision Off]
 [Force Shield - ​A​c​t​i​v​a​t​e​d​]​

 화면을 껐다는 표시 아래에, 한번도 본 적 없는 메세지가 한 줄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 압박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기 위해 숨을 칵 하고 뱉어냈다. 피 같은게 섞여나오는 걸 보고는. 난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일까. 아까 뉴스에 따르면.. 이대로 위로 붕 날아오르면 난 가차없이 그 '병기'와 충돌하게 되겠지.. 그럼. 죽는건가? 난. 죽어버리는건가..

 -"..듣.. 있?..면.."
 -"말을.. 해.."

 말? 말을 하라고? 숨만 쉬어도 피가 나오는 이 상황에서 말을? '스' '으' .. 무슨 단음으로밖에 들리지는 않지만 확실히 뭔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들어보려고 시도해봤지만 두 번의 알림음이 울리더니, 그 목소리마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역시 꿈이었나.. 방바닥이 딱딱해서 많이 아팠다. 아픈 등을 한 손으로 간신히 움켜쥐고 덜 잔 잠을 마저 자러 침대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그 자리엔 침대는 온데간데 없었다.

 "일어나라!"

 또 그 꿈을 꿨다. 조금 심하게 당했다 싶으면 이런 꿈을 꾸곤 한다. 그리고 항상 이런 꿈을 깨워주는 분이 나타났다. 이제는 알람 대신 이 남성이 대신 날 깨워주러 온다. 편하다 싶으면 편한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이 몇시라고 생각하나?"

 대답 대신, 내 눈 앞에 가만히 서 있는 푸른색의 짧은 머리를 한 남성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일어나라. 수혁. 시간이다."

 몇 달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악몽을 꾸고 나면, 항상 그 원인이 되는 인간이 날 깨우러 온다는 이 상황은..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폐허는 아니었는데.."
 "아직도 감상에 젖어있나?"

 한 마디 할 때마다 분위기를 읽지 못하게 이렇게 가차없이 깨버리는 '진 시훈'씨는.. 오라드가 투하된 이후에도 날 게속 찾아온다. "강해져야 한다" 라면서 다짜고짜 매일같이 같은 패턴으로 전투를 시작해오는 이 분은. 대체 뭐하는 인간인지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 확실히 알고 있는 건 나보다 6살 많은, 22살의 남성이라는 것과. 어째서인지 조종기에 탑승할 때는 항상 품에서 가면을 꺼내 착용한다는 점이다.

 이곳에 초 광역범위 파괴병기, ORAD.. 통칭, '오라드'가 떨어진 이후로. 우리 집의 반이 날아가버렸다. 어째서 반만 날아갔는가 싶겠지만, 사실상 그 반은 고철더미에 깔려 있어 간신히 형체만 유지하고 있는 정도이다. 내 방에 있던 침대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그나마 맨바닥에서 잠을 청하기엔 밤바람이 춥기에 어디선가 날아와 고철더미에 걸려있던 먼지투성이 이불만 대충 덮고 자곤 한다.

 이불을 대충 걷고, 노려보던 걸 관두고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광경이. 꿈이 아니라면.. 응답하겠지.

 "형."
 "무슨 일인가."

 그래. 확실히 꿈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눈 앞에 있는 저 거대한 고철더미에 적힌 O, R이라는 단어가.. 오라드의 잔해라는 내 추측도, 아마 정확하겠지. 마치, 피탄 위치를 알려주듯이 놓여있는 저 망할 고철더미때문에. 내가 살던 곳 일대가 폐허로 변해버렸다. 감상은 관두고. 등을 돌리고 있는 저 인간에게 대충 쓸데없는 질문이나 하나 하기로 했다.

 "제가 어째서 살아있는 겁니까?"
 "어떻게 살아있는가보다,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에 만족해라."

 그래.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꿈에서 나온 '세계 군사 회의'.. 7대 1. 그 녀석들이. 내 평화로웠던 일상을 앗아가버린 범인.. 이라는 거다. 6달 전이라.. 그러고 보면, 그때부터 사람들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느낌은 어렴풋이 받긴 했었지만.

 그 빌어먹을 '세계 군사 회의'인가 뭔가 하는 놈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강해져야 한다. 그 자식들 때문에.. 평화로웠던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집혀버렸으니까.

 "수복이 끝나면 탑승해라"
 "그러죠."
 "잠을 잘 곳은 필요하니 조금 멀리 이동한다."
 "하긴 잘 곳이라도 없으면 안되니까.."

 머지 않아. 또 '그것들'이 찾아올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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