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of Sevens (5)
전체적으로 검은 색이 칠해진 우리들의 '메카'는, 기본적으로 3가지 종류의 무기를 사용한다... 뭐, '테스트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메카 드라이브'에 인식시킨 랭크의 무기가 그대로 구현화.. 되는 건 아니고, 그 중에서 일부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스페셜리스트'의 특권이라면 특권이다. 노멀 클래스 유저의 양산형 컨트롤러는 오로지 한 종류의 무기만을 사용할 수 있게끔 되어있다는 내용을 문서에서 본 기억이 있으니까. 정작 그 스페셜리스트들은.. 도리어 귀찮아한다. 뭐, 나는 마음에 들지만 말이다.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저 '디시브'가 무식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고.. 'Master of Sevens'중 한 명인 만큼 그만한 실력도 받쳐주고 있고 무엇보다도 현재 S클래스에서 '두뇌전'을 담당하는 녀석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지금 녀석의 다혈질인 성격이, 전투기질로 바뀌어버려.. 앞뒤 생각 안하고 다짜고짜 근접전에 돌입해버렸기 때문에 머리가 좀 아파온다.
서둘러 원 온 트라이앵글 진형으로 커버하도록 지시했지만, 나 또한 원거리 지원이 언제까지 가능할 지 모르고, 상대의 전력도 알지 못하는 상황. 게다가 저 금색의 기체는 무엇보다도 '푸른 빛'을 뿜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 일단 '체이서'의 애널라이저(Analyzer)가 상대의 대략적인 정보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근접행동을 자제하고 원거리에서 위협사격을 하거나, 아니면 상대가 '적의'를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해 본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아까 전까지는.
일단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확인해봤다. 탐사 임무라고는 해도 전투를 전제로 하도록 모두에게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중간정도의 위력을 지닌 무기는 모두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체이서'는 어떨 지 모르겠지만. 일단 '애널라이저'의 사용만 부탁했으니까 사실상 분석만 잘 해줘도 큰 상관은 없다. 바운더리의 주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조이므로, 에리카 그녀 역시 시선 유도에 위협 사격정도만 해줘도 제 할 일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전투하는 역할은 내 엠페러와 후루야마의 디시브가 맡게 된다. 본래대로라면 크로싱 포커스 진형을 유지하여 디시브나 내가 선단에 서서 대척점에 위치한 뒤 집중포화를 하는 방식으로 싸울 예정이었으나..
-"리스.. 9에서 5에, 현재 위치에서 20,10,3.. 타점 잡아줘.."
-"디시브다! 잘 안 들리니까 일단 쏘고 봐! 알아서 피할테니까. 으랴아아아!!"
이 모양이다. 돌아가면 한 소리 해야겠다. '한판 뛰고 왔다' 고 했을때 솔직히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저정도로 제멋대로 행동할 줄은 몰랐다. 난이도가 있는 임무라서 더욱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저 '금색의 조종기'는 '전투모드'의 디시브가 원 온 원(1 on 1, 1:1)으로 상대하기엔 벅찬 상대라는거다.
-"스클리스 1으로부터 5에. 크로싱 포커스 진형으로 전환은 불가능한가? 지금은 화력 지원이 쉽지 않다."
-"거 됐으니까 뭐라도 좀 쏴 보라고! 나 혼자선 벅차단 말이야 젠장!"
-"스클리스 3에서 멤버 전원에. 분석에 시간이 좀 걸린다. 스클리스 5는 최대한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주기 바람."
-"..리스. 9에서 3에.. '언터쳐블'.. 기동할까?"
-"스클리스 1에서 9에, 지금 '언터쳐블'을 기동했다간 도리어 디시브의 행동이 느려질 수 있어."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잠깐. 아까 바운더리가 '타점을 잡아달라'고 했다. 어째서?
-"스클리스 1에서 9에, 타점을 잡아달라는 건 무슨 의미지?"
-"9에서 1에.. 그대로의.. 의미. 타점이 잡혀야.. 공격할 수 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생겼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이 위화감에 대해..
-"스클리스 1에서 멤버 전원에. 응답 바란다. 스클리스 1 OK"
-"스클리스 3. OK"
-"디시브, OK라고! 이 상황에 무슨 응답타령이야!"
-"스클..리스 9. OK"
후루야마 저 자식이 진짜.. 일단 참자. 그리고 상황을 파악해보자. 분명 디시브가 전투 행동에 돌입한 것은 확실하나.. 뭔가가 이상하다. 주위가 묘하게 조용해진 것 같다. 나 역시 일단 유도용으로 위협사격 정도는 가하고 있으나.. 탄환이 나가는 소리에 뒤덮혀 주위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게 흙먼지 탓에 일어난 음파의 난반사의 영향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주변이 조용하다.
-"스클리스 1에서 5에. 현재 전투상황은?"
-"눈이 없냐! 지금 바쁜거 안보여? 통신을 걸 시간이 있으면 도와주기나 하라고!"
참자. 참자.. 디시브에게 통신을 거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금색'의 시선을 끌기 위해 디시브 쪽으로 접근하면서 바운더리 쪽으로 개별 통신을 시도했다. 잠깐 기다리자 통신 요청이 수락 되었고, 곧 화상 통신으로 전환되었지만 이 일대의 통신 품질이 좋지 않은 탓인지 화상에 노이즈가 일어나는 걸 확인하고 음성 전용으로 전환하였다.
-"에리카. 공격 시도를 멈춰보겠어? 잠깐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어서. 디시브가 움직이는거에 맞춰서 진형유지는 계속 하고."
-"알았어."
-"아까 타점을 잡아달라고 했었는데, 평소의 너라면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정보가.. 부족했어.."
역시나. 하지만 확인 차 한마디 덧붙여보았다. 그녀의 말이 내가 예상한 답변이라면.. 확률은 90%에서 99%까지 치솟아오른다.
-"무슨 정보가?"
-".. 소리."
이걸로 확실해졌다. 아까의 느낌은 기분 탓이 아니었다. 이 이상 더 대치했다간 오히려 안 좋은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아까 바운더리가 디시브 말만 믿고 그냥 쐈었다간 예기치 못한 피해가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녀가 신중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 감사하자..
여기서부터는 내가 나서야 할 때다.
-"에리카, 바운더리 케이블을 연결해줘. 디시브가 금색을 상대하는 동안에 가급적이면 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 알았어. 무리하지 마."
아마 내가 뭘 하려는 건지 대충은 눈치를 챈 모양이다. 디시브가 한쪽 방향을 맡고 있는 사이, 그 반대쪽으로 빠르게 접근하여 그녀가 케이블을 사출해주기를 기다린다.
-'Connected, Boundary to Emperor'
-'Emperor, Special mode Activated'
-"리더, 연결 완료했어."
-"OK, 일단 후루야마 쪽으로 접근할게, 통신 상태에 계속 신경써줘."
통신이 불안하기 때문에 굳이 유선을 사용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혹시라도 저 금색의 조종기가 이쪽으로 눈을 돌린다면.. 이 작전은 실패다. 디시브는 애초에 근접전을 생각하고 왔었는지, 여러 방향에서 자꾸만 현란하게 상대의 눈을 속이듯이 움직여주고는 있으나, 상대가 그 피해를 받는지 안받는지는 소리가 나지 않으니까 확인할 수가 없다. 어쩌면 디시브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
속도를 서서히 높였다. 흙먼지가 일어나겠지만 지금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이제부터 내가 선단에 위치해야하는 이상 강제로라도 후루야마의 전투모드를 억눌러야 한다.. 그다지 이런 강압적인 말을 하고 싶진 않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멤버들도 이해해 줄거라 믿고.. 최대한 굵은 어조로.
-"스클리스 1에서 5에. 후루야마. 빠져."
-"뭐!. 아... O.. OK."
-"타겟은 '주위의 음파를 중화시키는 능력' 혹은 그와 비슷한 부류의 파장 중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부터 스클리스 1을 중심으로 바운더리 포메이션을 구성, 체이서와 디시브는 적이 해당 지역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교란 행동에 착수하고, 에리카는 내 신호에 맞춰 '언터쳐블'을 발동해줘."
-"리스 9.. OK. 조심해, 리더.."
-"스클리스 3로부터 멤버 전원에, 현재까지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추측하여 알린다. 타겟 주변에 이형의 파동이 발생, 그 범위 안에 전원이 포함되어있다. 아까 전부터 타격음이 들리지 않았던 것은 각 메카의 '음향 필터' 장치에 이상을 일으키는 파동의 영향으로 확인된다."
-"스클리스 1, OK. 다시 말한다. 선단인 스클리스 1을 중심으로 최대한 빠르게 바운더리 포메이션을 구성해주길 바란다."
-"스클리스 3, OK"
-"스클리스 5, OK"
-"스클.. 리스 9, OK.."
바운더리 포메이션이란, 대 공중전 사양으로 구성된 진형이다. 바운더리, '엔마이트 에리카'의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하기 위한 진형으로.. 지상전에서는 불순물들 탓에 잘 사용하지 않는 진형이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되었다. 본래는 무선 반응기를 타겟에 장착해두고, 그 부분에 '언터쳐블 바운더리'를 '인력'으로 발생시키지만, 지금은 무선 반응기를 붙여서 하기에는 너무나도 불확정요소가 많다. 통신상태가 안좋은 것도 한 몫 했고 말이다.
각 멤버가 서로 예정된 위치에 서고, 내가 '금색'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마주하게 되었다. 적이 어떻게 들어올지는 전혀 모른다. 소리라도 들렸으면 추측 가능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은 시간을 끄는게 가장 중요하다.
속도계를 100으로 맞춰두고, 주변을 돌면서 어깨쪽에 달린 20mm 발칸포를 쏘기 시작했다. 이 근처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어, 지근거리 사격을 위해 손에 블래스터를 장비. 이어둔 케이블이 꼬이지 않도록 에리카도 배려해주고 있기에 더 빠르게 속도를 낼 수는 없다.
시간 끌기도 이 정도면.. 됐다. 채널을 개별 통신으로 바꾸고, 에리카에게 신호를 주었다.
-"지금!"
-"OK..!"
이어, 그녀가 모두에게 알린다.
-"스클리스 9으로부터 멤버 전원에, 지금부터 '언터쳐블'을 발동한다. 모든 금속류 무기는 격납.. 발동시간까지 10초.. 9초.."
-"엠페러로부터 전원에 알린다. 원거리, 그 중에서도 산탄류 무기를 언터쳐블 발동 시점에 맞춰 일제 사격을 실시."
지시를 내리고, 스크린에 몇가지 지시를 내려, '전류'를 방전한다. 이 방전으로 적의 파장방해가 흐트러지면 다행이지만, 그게 흐트러지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방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4'
이 기능을 쓰고나면 몸이 조금 찌릿해지는 부작용이 있지만..
-'3'
-"리..더?"
-"난 괜찮으니까. '공격'으로!"
-"조심.. 해."
나를 중심으로 주변의 금속 계통의 물질들이 모이는 게 서서히 느껴진다. 그래. 이거다. '인력'! 이 자력을 이용해.. 내가 방전을.. 일으키면..!
-"언터쳐블 바운더리, 발동."
-"쏴!"
나를 향해 일제히 수십개의 탄환이 날아온다. 나 역시 지속적으로 발사하고 있던 발칸에 더해, 80mm 관통탄이 장전된 블래스터를 발사했다. 날아오는 반대방향으로 조종하면서 상대를 유도했다. 으.. 역시 몸이 찌릿찌릿하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몸을 날리면서까지 들어가는 이 공격, 아무리 '푸른 빛'이라도 예상할 수 있을까?
-'Damaged, Joint Move'
피격을 알리는 메세지는 나타난다, 하지만.. 역시나 타격음이 들리질 않는다. 그렇다면 파장 방해를 훼방놓는 건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연기가 나는 것으로 보아 일단 맞기는 한 걸까.. 다만, 한 순간이었을까. 잘못 본 것이길 바랄 뿐이다. '언터쳐블'에 의해 모여진 탄환이.. 그 앞에서, '동작을 멈췄던'것이 착각이기를..
-"스클리스 9에서, 언터쳐블 해제. 멤버 전원 사격 중지!"
급속 방전으로 인해 더 이상 주위를 맴돌며 날 향해 날아오는 탄환을 회피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걸 알아챈 에리카가 사격 중지를 명령한 덕분에 난 더 이상 피해는 받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언터쳐블이 갑작스레 해제되면서 몇발 정도가 멤버들을 향해 날아가는 걸 확인했다.
-"3에서 1에. 갑자기 방전 상태로 들어가는 걸 보고 바로 중지했다. 제정신인가?"
-"9에서 1에. 리더, 괜찮아?"
-"스클리스 5에서 1으로. 일단은 쐈는데, 피해는 없냐?"
데미지 로그를 확인했다. 피탄 12발, 전부 몸쪽 하단 기동부에 타격인가.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OK다.
-"스클리스 1에서 멤버 전원에게. 난 괜찮아. 언마그네틱 코팅이 제 역할을 해준 덕분에.."
-"어이, 엠페러! 그렇다고 자기 메카를 자력의 매개체로 하는 미친 짓을 하는 인간이 세상에 어딨냐!"
여기 나.
잠깐의 잡담이 끝나고, '금색'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전원이 그 자리로 모여들었다.
"뭐야.. 아프잖아요. 다짜고짜 공격해오다니."
조금 하이톤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른 빛'의 유저는, 여성인가? 나 역시 소통을 시도하기로 했다.
"당신의 조종기는 포위되었다. 이 쯤에서 적당히 협조해주었으면 하는데."
"그런 것 치고는, 당신들의 상태도 그렇게 좋지는 않네요."
-"분하지만, 저 여자 말 대로라고."
-"애널라이저 3기가 파손되었다. 더 이상의 정보를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안.. 반사된 탄환.. 피탄됬어."
역시, 착각이 아니었던건가. 그래도 여기에선 강경하게 밀어붙일 수 밖에 없다. 기껏 '푸른 빛'을 제압하기 직전이었는데..
-"체이서, 마그네틱 네트."
-"없다. 애널라이저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그렇게 쉽게 일이 잘 풀리지는 않는건가.. 여기까지 와서.. 젠장.
"전 무언가를 찾으러 왔어요. 쓸데없는 방해가 들어오지만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이제 여기 더 있을 이유는 없겠네요.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보도록 할까요."
"기다려!"
따라가보려 했으나, 속도가 나질 않는다. 그런 날 향해 "기다리라고 서 주진 않는답니다." 라고 외치고는 서서히 멀어지더니.. 푸른 빛을 뿜어내며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9에서 1에.. 리더.."
-"스클리스 1에서 전원에. 분하지만 나도 알고 있어. 더 이상 쫓을 생각은 없고.. 어디까지 이번 임무는 '탐사'니까. 일단 제로 에어리어의 탐사는 성공했다. 그렇지 체이서?"
-"스클리스 3에서. 그래. '금색'은 일단 우리가 봤던 영상에서 나온 것과는 별개의 조종기라는 걸 파악할 수 있다."
-"스클리스 5에..서.. 뭐? 뭐라고? 이봐, 그럼 저게 그 '기능 정지'의 정체가 아니었다는거야?"
-"후루야마. 너, 두뇌전.. 전문. 아니지."
-"뭐냐 E2, 지금 싸움 거는거냐? 앙?"
-"스클리스 1에서 멤버 전원에. 수고했어. 일단 본부로 귀환하도록 하자. 그리고 싸움은 돌아가서 해."
-"OK.."
-"알았다고. 쳇."
후루야마를 두뇌전 담당으로 놓아야 할 지는 일단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사안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4명 달려들어서 이 결과라니.. 뭐가 '스페셜리스트'냐. '금색의 푸른 빛'.. 분석이 불완전해서 포획에 실패했다는 것 정도로 위안을 삼자.
다음에는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