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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변조종기 엑사베리온


투고 | alphase

본부로의 귀환, 그리고.. (1)


 내 메카 '엠페러'는 기동부에 타격을 받은 탓에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없게 되어, 결국 체이서와 디시브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스크린 하단의 통신 상태를 알려주는 타원 모양의 아이콘이 한 칸 정도 활성화되었지만, 아직 하늘은 흙먼지가 낀 채다. 

 아마도 오라드가 투하된 이후에 글로만 봤던 2차 폭발, 3차 폭발이 일어나 그 피해 영역이 더욱 확대된 걸까? 그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은 기록을 뒤져봐야 알 일이라, 그저 그렇게 추측만 할 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대다수가 대피했다고 하더라도, 이 피해상황을 보자면 분명 적지 않은 목숨이 사라져갔을 것이다.

 아마, 그 녀석도.. 사라져 버린걸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직접 오고 나서 확실히 깨닫게 된 건 오라드 투하 이후 이 지역의 생존자가 남아있을 확률은 0%에 가깝다는 점 정도였다.. 고작 몇 달 전만 해도 내가 살아가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다 무너져버린 건물의 잔해만이 남아 흉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제발.. 그 이전에 이 지역을 벗어나서 지금 어디에선가 목숨이라도 부지하고 있길 바랄 뿐이다. 연락이 없는 건, 그저 급하게 도망치다가 스키넥을 날려버렸다든가, 지금은 통신권외 지역에서 간간히 살아가고 있다거나.. 뭐, 그런 이유이길.. 바랄 뿐.

 못 찾았다고 해서, '죽었다'고 치부할 수는 없으니까.

 -"리더, 표정이 어두워.."

 그 우울함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귀에 익은.. 지금은 내 소중한 한명의 동료인 '엔마이트 에리카'의 목소리였다. '표정이 어둡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급하게 스크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단에 위치한 아이콘이 세 칸 정도 활성화되어있었다. 어느새 화상 통신으로 자동 연결된 모양이다.

 -"왜.. 우는거야?"

 뭐.. 내가 울고 있었던건가? 하하.. 그럴리가.. 그렇게 생각하며 한쪽 손으로 대충 눈가를 훔쳐보았는데, 물기가 고여있었는지 금새 차가운 물의 감촉이 느껴졌다. .. 그런가. 울고 있었나..

 -"혹시 아까 너무 무리해서.. 아픈 거 아니야?"
 -".. 괜찮아. 괜한 걱정을 끼친 모양이네. 기동부에 타격을 받아서 이동하기 힘들어진 것 뿐이니까. 자, 일단은 임무도 달성했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자구."
 -".. 힘 내.. 이제 혼자가 아니니까.."
 -"하하.. 괜찮다니까 그러네.. 에리카, 피곤했지? 본부에 들어가면 푹 쉬어도 되니까.."
 -"마지막에, 굳이 다 피할 수 있으면서도.. 내 앞을 지켜준 거. 고마워.."

 그녀도 상당히 피곤해 보인다. 다 피할 수 있었다니.. 그런 건, 착각일게 뻔하잖아.. 방전하는 바람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해서, 몇 발을 놓치는 바람에 소중한 동료를 상처입힌 멍청한 리더인데.

 -"그러니까.. 힘들면.. 이 누나한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에리카. 미안해. 리더로써 상당히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버렸잖아. 나."
 -"언제든지 기대도 돼.."

 뭐가 "기대도 돼"냐.. 소중한 친구 녀석 하나 찾아낼 단서조차 놓쳐버린 어리석은 인간인데. 이런 인간을 향해서 "기대도 돼"라고.. 에리카는 정말이지 착한 아이다. 내가 실패한 부분을 질책해도 될 텐데. 넌 그럴 자격이 있는데. 네가 다친 책임은 나한테 있는 데 말이지.. 사람이 너무 상냥해도 탈이라니까.

 -".. 에리카, 많이 피곤한 모양이네.. 들어가면 바로 쉬어도 돼. 통신은 종료할게."

 재빨리 개별 통신을 끊어버렸다. 이 이상 내 개인적인 일로 소중한 동료들을 괴롭게 할 이유는 없으니까.
 눈가를 대충 훔치고, 스크린에 비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먼지투성이였던 것이 본래의 색깔을 되찾아.. 이미 제 3 통신지구에서 상당히 멀어진 모양이다.

 "뭐가.. 기대도 돼.. 냐. 젠장.. 사람이 저렇게 상냥해서.. 앞으로 더 크면 어떻게 살아갈 생각이냐고.."

 그래도 맑아진 하늘을 보고 나니 조금은 마음도 개운해졌다. 다음에는.. 더 강해져서, 반드시.. 반드시 실마리를 잡고야 말겠다. '푸른 빛'.. 그리고, '제 3 통신지구'의 '탑'..

 -"스클리스 1으로부터 본부에, 응답을 요구합니다."
 -"여기는 본부, OK. S클래스 담당, '마이스터' 사이키에 연동하겠다."
 -"스클리스 1, OK."

 통신대상의 정보가 ​'​C​e​n​t​e​r​/​S​p​e​c​i​a​l​i​s​t​/​M​e​i​s​t​e​r​'​로​ 바뀌는 것을 확인하고, 세부 상황을 보고하기로 했다. 

 -"스클리스 1으로부터 본부 소속 마이스터에, 현 시각 1시 22분을 기점으로 일단의 목표는 달성했음을 알립니다. 스클리스 1, 스클리스 3, 스클리스 5, 스클리스 9. 이하 4명 무사 귀환. 피해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클리스 1, 기동부에 경미한 손상. 스클리스 5, 전체적인 출력 저하. 스클리스 9, 사격부에 경미한 손상. 이외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수고했다. 격납기 선출은 필요한가?"
 -"괜찮습니다. 자력으로 격납 가능합니다."
 -"알았다. 귀환 이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하며 오후 4시까지 마이스터 룸으로 오도록."
 -"OK. 통신을 종료합니다."

 대충 보고도 마쳤겠다..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오늘 임무로 알아낸 몇 가지 사실은.. 따로 정리해두도록 하자. 내일 브리핑에서 주요안건으로 사용해야 하니까.

 -"스클리스 1으로부터 멤버 전원에 알린다. 격납위치까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아, 지금부터 퇴각 진형으로 접근한다. 스클리스 3, 스클리스 5도 제자리로 돌아가길 바란다."
 -"스클리스 5에 1에. 어이, 리더. 괜찮겠어?"
 -"스클리스 1에서 스클리스 5에. 기동부에 경미한 타격이 있어 속도를 내지 못했을 뿐이다. 큰 이상은 없어."
 -"아니 뭐.. 메카 쪽 말고, 몸 쪽 말하는거지. '방전'을 썼잖아? 그걸 공격용으로 쓰는 미친 짓을 해대고 말이지.."
 -"큰 이상은 없다. 걱정할 정돈 아니야."
 -"그래.. 아까는 미안했어 리더. 멋대로 굴어서."
 -"스클리스 3에서 스클리스 1에. 종료회의는 언제 하나?"
 -"스클리스 1에서 스클리스 3에. 일단 밥은 먹고 생각하자고. 다들 배고플거 아니야?"
 -"오, 역시나 리더."
 -"스클리스 1에서 5에. 코드명 생략은 자제 바란다.. 어쨌든. 다들 수고했어. 돌아가면 일단 좀 쉬도록 해."
 -"스클..리스 9에서.. 1에. 리더야 말로.. 좀 쉬어."
 -"스클리스 1에서 9에. 아니 뭐.. 일단 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건 하고 나서 쉬도록 할게."
 -"고집.. 불통.."
 -"스클리스 5에서 3에. 그래, 이번만큼은 나도 E2 의견에 동의하는 입장이야. 체이서! 보고서 올리는 것도 니가 하든가 하고, 오늘 리더님은 고생 많으셨으니까 좀 쉬게 해드리자고."
 -"스클리스 3로부터 스클리스 1에. 그래. 나와 디시브가 맡아서 처리하겠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좀 쉬어라."
 -"뭐.. 체이서 임마 너!"
 -"불만 있나?"
 -"아니 뭐.. 그렇게까지 말하면 딱히 없지만."
 
 저렇게까지 걱정해주니.. 이번만큼은 호의에 기대어볼까.

 -"스클리스 1에서 3에. 그래.. 그럼. 부탁하지.."

 "맡긴다." 그렇게 생각하자, 온몸에 쌓인 피로가 서서히 몸을 죄여오는 것만 같다. 하아.. 꽤나 지쳐있던건가. 정말이지 좋은 동료를 둬서 다행이다. 이 모습을 수혁이 녀석에게..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은데 말이야. 메카 드라이브를 계속 하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이렇게나 좋은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아마 "자식, 운도 좋구만!" 하면서 등을 두드리며 신나게 웃어주겠지.



 -"스클리스 1으로부터 본부 정비 센터에. 당일 임무 수행 결과 3기에 손상 및 출력 저하가 발생. 정비를 요청합니다."
 -"정비 센터, OK. 연락은 마이스터로부터 이미 받았다. 정비의 우선 순위는?"
 -"스클리스 5, '디시브'부터 최우선으로."
 -"알았다."

 후루야마 녀석이 오늘 사실 제일 고생했다. 그 탓에 말은 안해도 꽤나 출력계에 손상이 많이 일어났을 테고.. 나나 에리카의 '엠페러'나 '바운더리'는 그 정도에 비하면 그야말로 경미한 수준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 예기치 못한 실력을 가진 상대를 향해 그나마 시간을 제일 많이 끌어준 게 후루야마였다.

 격납을 마치고, 탈의실에서 가볍게 샤워를 끝냈다. 물이 닿을 때 마다 온몸이 찌릿찌릿했었던 걸로 생각해 본다면. 이거.. 무턱대고 생각없이 쓸 기술은.. 아닌 것 같다.

 내 개인실에 들어가자, 그나마 잡고 있던 정신줄이 완전히 끊겨버렸다. 간신히 침대까지 걸어가서 아무렇게나 퍼질러 눕자, 격한 통증이 밀려온다.

 "하아.. 두번은 못 쓰겠네."

 사실, 그 당시의 충격을 생각했다면 죽지 않은 게 기적이라고 느껴졌을 정도다. 언마그네틱 코팅이 되어있다고는 해도.. 5초에 걸쳐 일어난 방전에 의해 그때 이미 내 몸은 한계치를 뛰어넘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묘하게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아니, 무엇보다도 분하다. 이쪽은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상대했는데, 그 결과 '포획'조차 못했다니.. 이게,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라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할 수록 오히려 통증이 더 심해졌다.. 숨도 가빠졌다. 

 '기다린다고, 서 주진 않는답니다'

 그 여자의 목소리.. 완전히, 날 도발하는 거였나? 정신 차리자. 지금은 상대하기 힘들다 해도. 더 강해지면. 더 강해지면.. 반드시 '금색'을 포획해서.. '정체불명의 탑'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테니까.

 무엇보다도 정작 그 자리에 '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지만 말이다. 그 영향력이 얼마나 강했으면 지금도 통신 상태가.. 어쩌면 제 3 통신지구의 중계센터가 사라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중계센터가 소멸하기 이전에도 통신상태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니까 '탑'의 영향이라고 보는게 옳지 않을까..? 솔직히, 그런 것 따위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체이서의 애널라이저가 분석한 데이터를 정리하고 나면 실 한가닥이든 뭐가 됐든 잡히기는 하겠지.

 일단, 좀 쉬자. 2시간 정도는.. 쉴 수 있겠지.. 숫자가 서서히 희미해지더니, 곧,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리더.. 엠페러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를 너무 지키는데에만 열중하고 있다. 조금은.. 자기 자신을 위해 움직여도 괜찮을 텐데. 약한 모습쯤 보여도 괜찮을 텐데. 그런 모습 한두번 보인다고 그 곁을 떠날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정말이지 고집불통이야.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느니 뭐니 해놓고는. 이런 곳에 갇혀있지 말라고 손을 건네줘 놓고는.. 이제, 혼자 괴로워 하지 않아도 되잖아?"

 정말이지 답답하다. 왜 그렇게 굳이 강해보이려고 애쓰는 걸까. 왜 그렇게 굳이 자기 몸을 희생해가면서까지 날.. 우리들을 지키려고 하는걸까. 대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까지..

 곰돌이 모양의 베개를 껴안고 혼잣말을 하는게 이제는 완전히 일상이 되어버렸다. 주로.. 리더.. 엠페러의 이야기로.. 정말이지, 왜 그렇게 강해보이려고 애쓰는거냔 말이야..

 그 리더가, 그렇게 겉으로 강해보이려고 하는 리더가, 눈물을 흘렸다. 아마 나 말고는 아무도 보지 못했을 리더가 우는 모습.. 표정이 없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단순히 그냥 그런 사람이니까 기댈 수 있다고 생각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야. 이젠 내가 손을 건네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괴로워할 필요 없이 그냥 울고 있으면, 다가가서 달래주고..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 말을 떠올리니,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만 같다.

 '뭐야, 이런 곳에 숨어있던거냐.'

 겉으로는 다른 남자들과 다를 바 없이 생긴 그 녀석은, 투덜대며 내가 있던 곳까지 찾아오더니 나를 향해 활짝 웃어보이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이거야 원.. 찾는데 꽤나 오래 걸렸어.. '바운더리', 엔마이트 에리카.'
 '넌.. 누구?'
 '포스 오브 엠페러.. 라고 하면 알아 들으려나? 혹시 기억해? 기억하든 못하든 상관 없어. 그건 그렇고 용케 이런데서 잘도 살아가고 있었네.. 널 데리러 왔어. 이제 숨지 않아도 돼.'
 
 내 이름을 물은.. 몇 안되는 드라이버들 중 한명, 기억 못할리가 없잖아.. 그가 이름을 물어봤을 때 실수로 알파벳에 오타가 일어나, 부모님이 밝게 살아가라고 지어준 'Enlight Erika Goudie'라는 나의 이름이.. Enmight Erika라는 알 수 없는 이름이 되어버렸다. 인라이트에서, 엔마이트로.. 그렇게.. 그 잘못된 정보를 갖고 날 찾아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니, 애초에 찾아오리라는 것 조차 생각지 못했지.

 '같이 가자. 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날 기다리는.. 사람들?'
 '그래, 이렇게 숨어 살지 않아도 괜찮아. 그러니까, 같이 가자.'

 그렇게 활짝 웃으며 나에게 손을 건네는 그의 모습이..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아마, 그때부터 반한 걸지도....

 "그러니까. 이제 혼자 고민하지 마.. 슬프면 이 누나한테 기대도 돼.. 내가. 한 살 많으니까.. 누나.. 니까."

 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 지금은 이렇게 곰돌이에 대고 혼잣말 밖에 못하지만.. 리더,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고. 내가 너한테 기대듯이, 너도 나한테 기대도 된다고.. 그렇게..

 "아.. 으아으... 아아아아아!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난!"

 아까 엠페러가 말했던 것 처럼.. 나 역시 엄청 피곤했던 모양이다.. 자야겠어. 자고 나면.. 좀 괜찮아지겠지..? 마음이 착잡하다. 뭔가 이리저리 꼬여있는 듯한 느낌이야.. 너무 답답해!

 답답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죄 없는 이불을 뻥뻥 걷어차기나 하는 나. 정말 뭐하는걸까. 왜 이러는거야.. 고작, 고작 눈물 몇방울 떨어지는 거 본 걸로 왜 이러는거냐구.

 '같이 가자.'

 눈을 감으면 잠이 오겠지. 그래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까 나에게 손을 내밀었던 그 모습과, 아까 봤던 우는 모습이.. 막.. 겹쳐져서.. 아.. 으아으아아..

 "아.. 으아으아아아아아! 일단 자.. 잘거야!"

 자고 일어나면, 리더를 보러 가야겠어.. 그럼..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그러면 알 수 없는 답답함도.. 조금은 괜찮아지지 않을까..?

 눈을 감을 때 마다 뜨는 것들 때문에 한참 이불을 걷어차고 덮고를 반복하다 보니 더욱 피곤해져서, 몸에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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