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로의 귀환, 그리고.. (2)
문이 열렸음을 알려주는 맑은 톤의 멜로디가 회의실에 울려퍼졌다. 누가 들어오는지는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진행중이던 회의를 마저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오늘 전투결과로 얻은 걸 이어서 정리해보자면.. 세 번째로 '푸른 빛'은 오전 브리핑때 확인했던 것과는 별개로, 1개체 더 존재한다는 것. 이 점에 대해 각자의 의견은?"
야구모자를 앞으로 돌리면서, 항상 차가운 눈을 하고 있는 '체이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난, 이 의견에 대해서는 일단 정보를 공개하기 전에 이번 작전에 참여하지 않은 유저들부터 의견을 듣고 싶다."
그 말에, 붉은 눈을 한 남성. '디시브' 후루야마 료스케가 탁자를 쾅쾅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저 구석에서 여유롭게 찻잔을 기울이고 있는 파마머리의 남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이, 리치! 혼자서 여유부리는 거 아니라고! '푸른 빛'이 1개체 더 있다는 점에 대해서 의견이나 좀 말해보시지!"
완전히 전투적인 태세로 질문을 했다. 아.. 후루야마의 본래 나이가 21이라는걸 감안하더라도 저 아저씨는 10살이나 더 많단 말이다.. 예의란 걸 좀 차렸으면 좋겠는데.. 이런 생각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녀석은 손가락을 계속 위 아래로 까딱까딱 흔들어가며 이제는 '도발'까지 하고 있다. 리더 체면도 좀 생각해주면 안될까..? 너무 무리한 부탁이겠지.
"푸른 빛이 한 개체 정도 더 발견됬다 한들, 어차피 현재로써는 큰 차이는 없지. 어찌됬든 컨트롤러에 손상이 있었으니까. 꽤나 고전했다고 생각한다. '영상'에 찍혀있다고 했던 그 '푸른 빛'하고 만났더라도, 가차없이 깨졌을 거란 사실 정도는 손쉽게 추측할 수 있지. 디시브."
신랄한 비판. 디시브를 향해 말하긴 했으나 사실상 이번 작전에 투입한 멤버 전원에게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 꽤나 고전했었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붉은 빛은 표면온도가 푸른 빛보다는 낮을테니, 그럼 붉은 빛하고 싸우는 게 낫겠네." 같은 쓰잘데기 없는 소리가 덧붙여 들려온 건 무시하기로 했다.
디시브가 손가락을 뻗은 그대로 굳어버려, 그냥 무시하고 다른 사람을 지목하기로 했다.
"다음은, 스피드스타의 의견을 들어보겠어."
"개인적으로 이제 '스페셜리스트'라는 칭호는 아깝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말이지. 그래서, 정작 거기까지 갔다 와서 얻은 게.. '푸른 빛'이 한 개체 더 있었다. 그 사실로 끝이야? 장난하자는 거야 지금? 차라리 날 데려가지 그랬어. 날!"
... 그렇게 화를 내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소연이에겐 정말 면목이 없다. 실마리를. '녀석'의 실마리를 눈 앞에서 완벽히 놓쳐버렸으니까.. 그 가능성마저. 그러니까.. 나 역시 분하다고. 젠장. 눈 앞에서 놓쳐버렸는데..!
"그만 둬, 스피드스타.. 리더. 안 그래도 충분히.. 괴로워 하고 있으니까.."
회의에 빠져,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금발의 여성이, 내 어깨에 기대어 말을 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당황해서 말을 버벅였겠지만.. 오늘만큼은, 아니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 부드러움이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고 있다.
"스페셜리스트니 뭐니 잘난 척 해놓고, 고작 그딴 '푸른 빛' 하나 제압을 못해서 이 지경까지.."
"리더.. 오늘, 뭔가 엄청 괴로워 보였으니까.. 그만 해. 스피드스타. 우리도, 엄청 고생했어. 그리고 간신히 살아 돌아왔어. 조금은.. 위로라도 해 주면 안 돼?"
리더라는 게, 동료를 위로해주진 못할 망정, 도리어 위로받고 있다니.. 리더 실격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리더가 됬든 아니든 난 지금의 소중한 동료들을 내 손으로 지켜낼 거니까 말이다. 다시는, 눈 앞에서 친구를 보낸다거나 잃어버린다거나.. 그런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 찾아낸 동료이기도 하다. 각자 조금씩 특이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나의 소중한 동료인 것 만큼은 변함이 없다.
그러니까.. 제발 그만 좀 싸워.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적어도 네 행동이 지금 리더를 엄청 괴롭게 하고 있는 것 만큼은 확실해."
"야, 야, 니들. 적당히 좀 해라!"
"E2. 스피드스타도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닐거다. 여기선 일단 서로 참는게.."
"넌 그 야구모자라도 벗고 좀 말하지? 짜증나는데."
"스피드스타.. 그 말만은 쉽게 넘어갈 수 없겠군."
"젊음은 좋구나~"
... 난장판이다. 남자들이나 하는 짧은 머리를 한 여성, 'Speed Star' 안 소연은 팔짱을 끼고 서서 따박따박 상대방의 말이 들어올 때 마다 받아치고 있고. 금발에 군데군데 주근깨가 난.. 조금.. 큰 여자, 'Boundary' 엔마이트 에리카는, 내 목에 팔을 감고는 내 어깨에 기댄 상태로 계속 말하고 있다.
"저기, 얘들아. 나 일단 리더인데. 여기선 리더의 입장으로.."
"손 아준, 넌 빠져."
"이제.. 더 이상 리더하고는 관계 없어. 저 애와, 내 문제.."
그렇게 말하면서 왜 더 들러붙는 건데.. 넌.. 말과 행동이 다르잖아.
"넌, 그렇게나 머리를 짧게 하고.. 애초에 여성이라는 자각은 있나?"
"자각? 해서 뭐하게. 보여줄 사람이라도 있냐고 묻는 게 먼저 아니야?"
체이서는 야구모자의 각을 앞뒤로 맞추면서 당당하게 역린을 건들고 앉아있다. 더 이상 내가 손 쓸 방법이 없어.. 그 대화를 듣자 기운이 푹 빠져 자연스레 고개가 아래를 향했다. 그 와중에, 에리카가 내 귀를 향해 무언가를 속닥였다.
'지금이야. 리더.. 다른데라도 가서.. 좀 쉬자.'
너.. 애초부터 이럴 생각이었구나. 어차피 나도 저렇게 되고 난 소연이를 말릴 방법은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여기는 일단 '리더'로서 전략적 회피를 선택하기로 할까.
"젊음은 좋은거야~" 라고 즐거운 듯이 차를 마시며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절대 회색 정장따윈 어울리지 않는 수다쟁이의 파마머리, 31살 아저씨, 'the Rich'를 뒤로 하고 에리카는 내 등 뒤에 매달리다시피 해서는 한 손으로 무음 모드를 설정해두고,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갔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되어 있겠지.
"그래서 에리카, 어디로 갈 생각인데."
"내 방으로.. 갈거야."
...? 에리카님. 지금 제가 뭘 들은거죠. 잘못 말한 거 아닐까. 다시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버벅대지 말고..
"뭐. 지금 뭐라고.."
"아니면.. 네 방으로 가. 할 이야기가.. 있어."
그런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가 비장함이 묻어나오는 듯 했다. 평소의 기운빠진 목소리와는 다르게, 아까 소연이와 말다툼할때 나오던 그 톤으로 날 향해 말하고 있었다.
"... 그래. 내 방으로 가자. 에리카 넌 항상 2차 보안을 안 걸어두니까.."
".. 너.. 항상 깨우러 오니까."
"그래, 그야 그렇지."
복도를 걸으면서 대충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늘어놓다 보니, 어느새 내 개인실 앞에 도착했다. RC를 대고, 2차 보안 키를.. 입력하려다, 슬쩍 에리카 쪽을 봤다.
".. 눈 돌려. 다 보이니까."
"알았어.."
조금 실망한 듯한 기색을 보인 것 같았는데. 기분 탓이겠지. 2차 보안 키를 입력하고 나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브리핑 시작 전에 대충 정리하고 나와서 다행히도 겉보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들어가자 마자, 에리카가 먼저 침대에 앉았다.
묘하게 두근거린다. 내가 생각하거나 바라거나.. 그런 일이 일어날 린 없는데 말이지. "앉아" 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서 평소와는 다르게 묘한 압박이 느껴졌다. 침대에 앉자 마자 매트리스의 탄력으로 살짝 몸이 붕 뜨면서, 자연스레 머리칼이 바람에 날리듯 휘날리는 그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건.. 눈의 착각일까.
"아준아."
그녀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온 건 처음이다. 그 어조에서,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시도가 엿보인다.. 호응.. 해줘야 겠지. 어째서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른 걸까.. 하지만 역시 조금 두근거린다.
"어.. 어. 에리카.. 이름으로 부르는 건, 처음 듣네."
"에리카.. 가 아니라, 에리카 누나. 라고 불러."
"그래봤자 한 살 차이인데.."
갑자기, 얼굴 색이 변한 것 같은데. 뭔가.. 좀, 붉어진 듯한? .. 왜?
"그러지 말고, 누나라고.. 불러."
안하던 짓을.. 하고 그러냐. 왜.. 재빨리 고개를 돌리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 푸른 눈동자에서 물방울이.. 뚝 하고 떨어졌다. 왜. 왜 갑자기 우는거야. 얼굴을 붉히더니 갑자기 울거나..
"에리카.. 왜 그래. 왜 갑자기 울어? 어디 아픈거야?"
"누나..라고 불러. 그리고, .. 아준이 너야 말로.. 울고 싶을땐, 울어도 돼.."
.. 뭐야. 고작 그 일 때문에 온 거였냐..
"아니 뭐,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니까.. 글쎄.."
"얼버무리지.. 마. 난 너보다.. 한살.. 많은. 누나로서.. 알아야.. 겠어. 왜. 소중한.. 동.. 생이. 울었.. 는지."
에리카가 저렇게 고압적인 태도로 나온 건 처음이다. ..하아. 더 이상 얼버무릴 수는 없는건가.. 이렇게 되면.
"에리카.. 조금, 긴 이야기가 될거야. 들어줄 수 있겠어?"
말 대신,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그러면, 조금은 속이 편해지지 않을까.. 그런 이기적인 생각도 들었지만. 듣고 싶다니까.. 들려 줘야지.
"브리핑 룸에, Strike라고 있지?"
"응, 아준이의 소중한 친구.. 라고 들었었어. 그 자리는. 예약석. 이라고. 그리고.. 누나라고 불러."
"그 녀석에게는.. 말이야. 나 말고도, 친하게 어울리던 소꿉친구가 있었어. 포니테일의 머리가 상징적이었던, 조금 과격한 녀석. 수혁이랑 걔는 매일 말다툼하고.. 투닥거리기도 하고. 그 어린 나이에 우리 반에 있던 모든 애들이 부부사이라고 부를 정도로 각별한 친구사이였지.. 우리들은 그걸 보면서, 매일 매일 즐겁게 살고 있었고.. 답답한 학교 생활이었지만 그 녀석들이 있어서 꽤나 즐거웠었어."
"학교.. 다녔었구나."
"그래,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설마하니 메카 드라이브의 랭커 실종 사건하고 연관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지. 그 녀석 말이야. 카드 긁는것도 막 실황 중계 하고.. 여러모로 재밌는 녀석이었어. 다혈질에, 궁극기는 '금빛 돌격'이 뭐냐고. 하하하.."
"설마, 신 수혁?"
"맞아. '돌격_스트라이크' 라는 닉네임을 쓰던 녀석. 그 녀석이 신 수혁.. 내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녀석이었지."
"그 닉네임일거라.. 생각했어. 그리고.. 커뮤니티에서도.. 봤었어. 상성도.. 맥스인거 두번 뽑으려다가.. 실패한 녀석."
하.. 진작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수혁이 임마. 너. 꽤나 유명인이었다. 알고 있냐? 이런 금발 미녀도 널 알고 있었다는 거. '아, 금발 미녀랑 친구먹고 싶다' 같은 헛소리나 항상 지껄였었는데.. 그게, 헛소리가 아니게 되었을 지도 몰랐다는 거야.. 임마.
혼잣말을 하고 싶은 기분을 간신히 참아내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으니까.. 이어서, 메카 드라이브의 랭커 실종 사건에 대해..
".. 그리고, 그 지역에서 하나 둘 사람이 사라져갔어. 하지만 수혁이 녀석은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길래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해서 직접 보여줬었지. 메카 드라이브 실종 사건 페이지를."
"설마하니. 네가 그 리더가 될줄은.. 생각도 못했겠구나."
"그야.. 당연하지. 게다가. 설마 그 페이지 자체가 함정이었을 줄은 말이야. 갑자기 들어온 마이스터 일행에 의해 반 전체가 제압당하고 나서.."
그 순간을 떠올리니, 다시 울컥해졌다. 지금은 은인인데. 마이스터. 유라미 사이키. 내 소중한 동료인데. 섀도우 체이서.. 그 순간만 떠올리면 화가 난다. 그들이 잘못한 건 아닌데. 오히려 내가 수혁이를 그때 강제로라도 데리고 갔어야 했었던 건데 말이다. 사태가 그렇게 심각한 줄 알았더라면..
".. 그래서. 난 녀석에게 '가능한한 멀리 도망쳐' 라고. 말했었어. 그리고, 마이스터가 그 말을 했지. 훈련 중에 듣게 된 거지만.. 일주일 후에 또 올 거고, 그때 네 친구랑 같이 갈 의향이 있다면. 여기로 오라고 했었다는 걸.. 난 말이야, 그 때가 가장 후회돼."
".. 설마.."
"맞아. 그로부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말도 없이 제 1 통신구역의 놈들이.. 쳐들어왔어. 아주 그냥 쑥대밭으로 만들어놨지. 학교.. 일대를. 그것도 수업시간에 말이야. 통신상태가 안좋은 게 '대피 권고' 였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그래서 다른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했어."
그래. 그딴게 '대피 권고'라고? 세상에.. 빌어먹을 세상. 대체 어떻게 돌아가야 '통신 이상'에 클레임을 거는 사람들만 한해서 이주시키는 계획을 짜는거냐. 애초부터 다 짜여져 있었던 연극일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일주일 뒤, 우리가 그 곳에 바쁘게 날아갔을 땐.. 반파된 학교. 그리고 그 장소.. 당연히, 녀석은 없었어. 아니.. 있었더라도 그 장소는 이미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버렸었거든. 있었다면.. 아마 확실히 죽었겠지... 그래도 죽은 흔적이라도 찾아볼 수 있었을텐데.. 그때 난.. 말이야. 도저히 찾을 용기가 나질 않더라고. 제발. 어디론가 도망치고 없길. 어디론가 도망쳐버렸기를.. 그렇게, 그렇게 바랐어. 난.."
"울먹이고.. 있어. 아준아.. 괜찮아. 울지 말고.. 이야기 해."
".. 그래서 소리를 질러대며, 마이스터를 향해 주먹질을 해댔지. 내 친구, 내 친구 수혁이 돌려내라고. 니들이 강압적으로 행동하지만 않았어도. 말로 교섭하기만 했어도.. 그렇게 말했어. 속으로는 다 이해했는데. 제 1 통신지구 놈들이 갑자기 나타날 이유같은거, 그런 전조 같은거 없었다는거 다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갑자기 스카웃 해 갔다는 것도.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이해했는데..!"
그 때를 떠올리자, 애꿎은 침대를 향해 주먹을 내려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인드 컨트롤이 안될 것 같았으니까. 그런 내 손을, 에리카가 양 손으로 꼭 잡아주었다.
"계속.. 이야기 해 줘. 듣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울고 있으면.. 말하기 힘들어지잖아."
"괜찮아.. 그리고.. 누나.. 라고 불러.."
"그래. 누나.. 그 이후, 제 3 통신구역에 오라드가 떨어졌어. 예상 피해보다 더 범위가 넓어서.. 그 소식을 듣고 나서.. 그 오라드가 쏘아진 원인을. 필사적으로 찾아봤어. 제 1 통신지구 소속의 군인들이 갑자기 나타났던 이유. 그리고. '푸른 빛'.. 그리고 거기에.. '정체불명의 탑'이 연관되어 있었어. 제 1 통신지구에서 투입한 조종기들. 국제연합기구에서 투입한 조종기들.. 모두. '푸른 빛'을 뿜어내는 무언가에 의해 완벽하게 당해버렸다는거야. '탑'의 조사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채로."
".. 넌. 그래서.. 포기했어?"
"포기.. 할 수 있을리 없잖아. 그런데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다고. 어디 살아있기 힘들다는 거. 그저, 통신권외지역에 있어서 스키넥을 몇달째 들어오지 못하는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야."
"그리고.. 아까부터 궁금했었는데. 물어봐도.. 될까?"
"말해도 돼. 다 말해줄테니까."
그래. 이제 더이상 숨길 생각은 없다.
"신 수혁의 소꿉친구.. 그 여자애 이름이 뭐였어?"
"안 소연"
그 말에,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확연히 모습을 드러내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 그래. 나도 충격이었지. 그 사실을 알게 됬을 땐.
"동명.. 이인?"
".. 누나가.. 생각하는. 그 아이가 맞아. 스피드 스타. 안 소연.."
그 말에,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걸. 봤다. 나 역시 그 모습이.. 너무나 슬퍼, 그때 소연이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생각하면서. 나 역시 눈 앞이 흐려졌다. 안개가 낀 것 처럼.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서.. 말을 함부로.. 했던.. 거네. 난. 그런데.. 스피드 스타. 걔. 예전부터.. 상위권에 머물고 있던.. 랭커.. 였잖아."
"아무도 몰랐어. 그저 '게임 너무 하지 마' 라고 수혁이랑 나한테 말했을 뿐.. 걔가 메카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을 줄은 말이지."
"그리고, 랭커들을 S클래스의 멤버로 스카웃하기 위해서 찾아가게 되었을 때.. 나 역시 '동명이인'이라고만 생각했었어. 그리고.. 보게 된거야. 남자애처럼 완전히 머리를 짧게 하고, 완전히 경계태세로 날 노려보는.. 그녀와. 처음엔 소연이인줄 몰랐어. 오히려 걔 쪽에서 나한테 먼저 말을 걸더라. "무슨 일이냐. 손 아준".. 이라고. 그 몇달 사이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어. 사람이. 그렇게 망가질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난 .. 그래서라도, 반드시 수혁이를.. 살았는지, 확실히 죽었는지라도 찾아내주고 싶은 거야."
무언가가, 내 얼굴을 감싸안았다. 그 감촉이 너무나 부드럽고, 포근해서..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어느새 울고 있었던 거겠지.
"그만.. 이제. 그만 해도 돼.. 다.. 알았으니까. 울고 싶으면.. 언제든.. 내가.. 곁에 있을테니까. 리더.. 같이. 같이 찾아가자. 둘.. 만나게 해 줘야지. 가능하면. 가능하면 반드시 만나게 해 줘야지.."
그렇게, 그녀의 품에 안겨, 그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면서.. 서로, 지칠 때 까지 얼마나 울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