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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변조종기 엑사베리온


투고 | alphase

본부로의 귀환, 그리고.. (4)


 디시브, 바운더리, 엠페러.. 컨트롤러 3기가 각각 수리에 들어간지 시간이 꽤 흘렀다. 수리 중에 임무가 들어오게 되었을 때, 바운더리는 '전투' 임무에는 나가지 못했고, 내 '엠페러'는 기동부가 타격을 입은 탓에 기동력을 요구하는 '정찰', '탐사' 임무에 나가지 못했으며.. 전체적인 출력저하 현상이 일어난 '디시브는 아무런 임무도 나가지 못하고, 종일 '훈련'에만 몰두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디시브의 유저이자, 묘하게 붉은 색의 눈동자가 특징인 후루야마 료스케는 저번 '탐사'.. 어디까지나 표면 상의 '탐사' 임무의 결과에 대해 불만이 엄청나게 쌓였는지, 매일 녹초가 될 정도로 트레이닝에 집중하고 나서는. 다음 날 브리핑 시간에 존다거나 하는 등. 전에 없던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리더로서 후루야마의 컨디션에 난조가 생기는 것은 아닐지 조금 불안하기도 하다.

 바운더리의 유저인 긴 금발머리에, 바다같은 푸른 눈동자가 매력적인 나의 여... 흠. 아니 동료인 '엔마이트 에리카'는 지금도 내 옆에 달라붙어있다시피 한다.. 그.. 얼굴의 일부분..이 맞닿은.. 아마 그녀에겐 기억이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난 그 이후로 묘하게 그녀를 계속 의식하게 됬다. 음. 옆에 와서 숨소리라도 들릴라 치면 괜히 긴장해서 말을 더듬게 된다거나. 나 역시 전에 없던 이상행동을 하게 되어버렸다는 점에서는 디시브하고 비슷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컨디션이 가장 안 좋아진건 나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 들어 에리카의 미모를 감추고 있던 다크서클이 점점 더 옅어져, 어느새 항상 피곤함에 절어있던 느낌을 주던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가 어디론가 가 버리고 없어진건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야, 하품도 덜 하게 되었고 브리핑이 끝난 후에 졸거나 하던 모습도 이젠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피로가 풀린 것과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언젠가부터 내 어깨에 힘주어 기대는 탓에. 걸핏하다 그.. 부드러운 게 닿아서 느껴지는 감각에, "윽" 소리라도 낼라 치면 고개를 살짝 기울여서 내 눈을 바라보며 "힘들어..? 저기에.. 앉아있을까?" 라든가 말하는 탓에, 난 어찌 하지도 못하고.. 사실은 그 감촉이 너무 좋아서 제대로 말을 하기 조차 힘들지만, 애써 평정을 유지해가며 "편한 대로 있어" 라고 작게 말해주면, 싱긋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는 게.. 솔직히 고문이다. 그래. 이건 고문에 가깝다. 16살의 청소년에게 이건 너무나도 자극적이다.. 게다가, 첫.. 처음으로 그.. 입을. 맞추게 된 상대인데. 아마 그녀는 모르겠지만. 아니. 알면 저렇게 행동 못하지.. 부끄러워서라도.

 그저 내가 옛날 이야기를 말해주면서 쌓인 감정을 모두 폭발해버린 탓에 전보다 더 나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되어 이렇게 행동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펑 하고 터져버릴 것 같아서 말이지. 최대한 어깨 위에서 날 바라보는 그녀의 미소에, 나 역시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속으로는 전전긍긍하는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니. 솔직히. 그렇게 얼굴을 가까이 대어 오니까 그때 그 일이 또 생각나버리니까.. 웃는다고 웃어보이지만, 웃는 게 조금 부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 정말이지. 에리카.. 이 당돌한 여자.. 네가 지금 그렇게 옆에서 싱긋 웃어버리면.. 난 또 이런 말 밖에 못하잖아.

 "그.. 그러니까. 에리카? 음. 브리핑.. 이제 곧. 시작하니까. 자리에 가서. 앉아 줬으면. 좋겠는데.."
 "아, 맞아. 브리핑 할 시간이구나.. 그래도 괜찮아. 시작하기 전 까지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걸♪"

 저 말이 노래를 부르듯이 들리는 건 제발 기분탓이라고 말해 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옆에서 파마머리를 한 남성, the Rich는 오늘은 검은색의 정장을 입고 왔다. 검은색 파마머리에 검은색 정장.. 어딘가의 회사 사장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는 왠일로 브리핑 시간에 브리핑 룸에 앉아있다. 덕분에, 평소에는 안 쓰고 내팽개쳐둔 의자를 멋대로 펴 놓고 자리에 앉아, 또 어디선가 들고 온 차를 담아 온 찻잔을 기울이면서 홀짝이고는, 이런 쓰잘데기 없는 말이나 하고 있다.

 "음음. 역시 젊다는 건, 좋은거지. 안 그래? 섀도우 체이서 군?"
 
 건너편에 앉아서 오늘은 황금색 독수리 마크가 그려진 야구모자를 푹 눌러 쓴 체이서를 향해, 말을 건네는 리치.. 오늘따라 묘하게 불만이 많은 모양인지, 그 말을 무시하고는 곧장 나를 향해 공격하듯이 내뱉는다.

 "리더. 저 머릿속에 오늘은 무슨 차를 마실지밖에 생각하지 않는 저 쓸모없는 인간이. 여기에 왜 앉아있는거지.."

 예상한 질문이다. 그야. 이유가 뭐냐고 하면.. 굳이 지금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잠시 후에 브리핑이 시작하면.. 알게 될 거다. 지금 말해도 의미는 없으니까.. 뭐, 기분은 이해해. 그래도 일단은 동료라고. 동료."
 
 다시, 더 리치가 차를 한모금 홀짝이며 잠깐 뜸을 들이더니..

 "음. 그렇지. 동료.. 동료라는 건 좋은거야. 그래. 섀도우 체이서 군. 나 또한 네 동료다. 음, 물론 거기 서 있는 에리카 양. 너도 말이지."
 "같은 곳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인간을.. 난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이번엔 너네들끼리 싸우는거지. 너네 그렇게 사이가 안좋았던거냐.. 미안하다. 리더로서 실책이야. 서로 사이가 그렇게 안 좋은 줄은 몰랐거든. 리치는 꽤나 여러 사람들한테 미움받고 있는건가.. 일단, 내 여.. 아니, 동료 에리카, 후루야마, 거기에 체이서까지.. 세명이냐. 너무한데.. 그러고 보면 항상 팀 배틀 트레이닝을 할 때마다 묘하게 리치가 포함된 팀이 자주 패배한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래. 그건 아마도 너네 탓이었겠다.

 난 일단 가능한 한 팀을 지키면서, 후열에 있는 지원반에 돌진하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지만.. 리치는, 돈을 하도 많이 질러넣은 만큼 상성도 맥스의 무기를 거의 종류별로 다 갖고있다시피 하기 때문에 어떤 무기를 들고 와서는 스치기만 해도 최소 실드량 격감, 회복률 격감 같은 이상한 상태이상이 붙어버리기 때문에, 가장 까다로운 상대다. 그래서 항상 리치를 먼저 격추하는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보니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개인적인 원한' 이라는 녀석이..

 리더 입장에서 이렇게 팀의 균형이 깨지는 건 그다지 바라는 일이 아닌데 말이다.. 뭐, 실제 전투에서 뒤를 치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여태까지 싸워 온 동료인데 뒤를 칠 리는 없고. 무너질 팀이었다면 소싯적에 무너졌을 팀이다. 서로 윽박지르고 싸우기는 해도 '팀'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고.. 일단 그 클래스의 리더를 맡고 있는게 나, 손 아준이다.

 "아저씨. '에리카' 라고 부르지 마. 해치워 버린다. ..역시 팀전 하게 되면 저 아저씨부터 리타이어 시킬거야.."
 "어휴. 무섭다 무서워. 이거야 원, 이제야 간신히 그 이름에 어울리는 성격을 갖게 된 것 같은데. 왜 저렇게 나만 보면 공격적인걸까.."

 그 이유는 누가 봐도 명백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 당신이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거나, 차를 여전히 홀짝이면서 손바닥이 보이도록 팔을 살짝 접어 보인다거나.. 대놓고 사람 놀려먹으려고 하는 걸로밖에 안보입니다만..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반드시 균형이 깨져, 2:1 구도가 되어버린다. 저 게으른 아저씨를 기껏 불러냈는데 이런 일로 삐져서 자리로 돌아가게끔 만들면 모든게 엉망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지금 내 어깨에서 에리카가 리치를 노려보는 시선이, 달라붙어있는 내 몸까지 얼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차갑게 바라보고 있기에.. 벌벌 떠는 걸 최대한 참고서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더 리치. 적당히 하세요. 곧 브리핑이 시작될 테니까.."
 "음. 역시 아침에 마시는 차 맛은 각별하군. 특히나 이런 따뜻한 분위기에서 마시는 차 맛은 마음까지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니까. 하하."

 분위기 좀 읽으세요. 당신에게 지금 두개의 싸늘한 시선이 집중되는 거 전혀 모르고 있는 겁니까. 얼마나 둔감한겁니까 당신..

 그런 살얼음이 씽씽 몰아치는 차가운 북극의 브리핑 룸의 분위기는, 전원이 도착해서 리치를 향해 인사를 건넴으로써 한결 나아졌다.

 "에리카.. 너도 그만해. 내 몸까지 으슬으슬 거리는 것 같아..."
 "아.. 안돼. 감기 걸리겠어. 데워줘야지.."

 저러면서 또 바짝 껴안으면서 나에게 달라붙어오는 모습이, 정말로 사랑스럽다. 아니. 이게 아니라. 묘하게 다른 곳에서 시선이 따가운데. 몸은 따뜻해진 것 같은데 분위기는 더 차가워졌어. 저기 방금 자리에 앉은 주황 머리의 녹색 눈을 가진 인간이라든가. 지금 이쪽을 휙 지나가며 자리에 걸터앉으려고 하는 소연이라거나.. 작게 "크흠 크흠" 외치며 저 앞으로 나아가는 얼굴에 흉터가 이곳 저곳 새겨진 험상궂게 생긴 마이스터라든가. 있잖아.

 "바운더리. 자리에 앉아라. 브리핑이 시작할 시간이다."
 
 이쪽을 향해 계속 헛기침만 하던 마이스터가 에리카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네♪" 하고는 즐거운 듯이 자리에 앉아서, 에리카는 마이스터 쪽을.. 아니, 내 쪽을 쳐다본다. 그 시선이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뒤를 슬쩍 돌아, "브리핑." 하고 짧게 외치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다.. 기분은 좋은데. 상황과 장소는 가려가면서.... 달라붙어 줬으면 좋겠다.

 "마이스터. 오늘은 더 리치도 참석했습니다."
 "아아, 기억에 없는 얼굴이라 그런지.. 어제 브리핑으로 새로운 동료를 영입해 온 줄 알았다. 더 리치였나? 만나서 반갑군. 직접 보는 건 처음인가?"
 "이야, 농담 실력이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니까. 마이스터는 말이지. 어제도, 여기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고?"
 "정확히 말해 이 시간에 보는 건 처음이군. 더 리치.."

 실제 나이 차이는 31과 30대 중반..쯤으로 얼마 안되는 탓에, 그다지 큰 차이는 없지만.. 겉으로 보게 되면 흉터가 새겨진 얼굴과 파마머리의 정장 남성.. 걸핏 보면 40대와 30대의 대화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 둘 사이에, 스파크 같은 게 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아직도 방전의 영향을 받고 있는건가.. 그럴 리 없지.

 "가끔은 이렇게 햇빛이 희미하게 드는 곳에서 마시는 것도 꽤 괜찮은 여흥이니까 말이지. 마이스터. 어때. 당신도 한 잔 줄까?"
 "차는 이따 먹도록 하지. 지금은 브리핑 시간이다."

 저 말로 추측하건대 마이스터는 저 아저씨에게 자주 차를 얻어마신 듯 한데.. 하긴, 항상 "한 잔 줄까?" 라고 권유하는 그 말을 모두가 거절하긴 했었다.. 그나마 마이스터는 그걸 잘 ​받​아​들​여​줬​다​는​건​가​.​ 역시 겉모습은 저래도 상당히 상냥한 사람이다.

 "그럼, 엠페러. 시작하지."
 "아,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하고는, 일단 어제 탐사 임무를 마치고 온 동료들을 향해 감사 인사를 건네고 본격적인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럼, 어제 탐사 결과로 알아낸 점은.. 일단, 유니스의 위치가 파악됬다는 것 정도인가?"

 어제, 제 1 통신지구 탐사 임무에 나섰던 3명의 인원 중 한 명인, 주황 머리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지닌.. 'Dec' 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는 '아르게미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브리핑 내용을 하나 하나 레이저 포인터로 가리키며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렇습니다. 보조기를 이용해 취약점을 찾아냈고... 해당 프로토콜을 이용해 들어간 결과, 화면에 나온 것과 같이, 현 'Master of Sevens'의 1명인 'Yunise'로 추측되는 스키넥 기기의 반응이, 특정 지점에서 확인되었습니다."
 "그렇군. 엠페러. 굳이 평소에 자리하지 않는 더 리치를 이 자리에 불러낸 이유가 있겠지."

 드디어, 그 이유를 들려줄 차례가 된 건가. 자리에서 일어난 뒤 손동작으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자연스럽게 팔을 들어.. 여전히 분위기 파악 못하고 차를 마시고 있는 그를 가리키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현재 직업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음, 엠페러. 이게 무슨 행동이지?"
 "그래서, 그녀를 표면상으로 '잡 스카웃'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표면상.. 이라는 건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소리인데 말이지. 어이 엠페러. 무슨 생각이야?"

 후루야마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날 향해 의문을 던졌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포인터로 가리키며 하나씩 설명했다.

 "정장이 잘 어울리는, 세 명 정도를 변장시켜. 반드시 더 리치를 포함한 세 명으로."
 "그래서, 날 데려가서 뭘 하겠다는 거지?"

 분위기를 못 읽는걸까. 아니. 이쯤되면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거다.

 "그녀의 주특기는 두뇌전. 무기도, 성능도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오로지 두뇌 싸움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데에 특화된 전술가라고 보시면 됩니다. 최근 랭크도 눈에 띄게 올라왔고.."
 "자, 그래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뭐라고?"
 ".. 우리 '본부'에, 스카웃을 하는 겁니다. S클래스의 새로운 '두뇌'로써 말이죠."

 그 말에, 누구보다도 큰 충격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건.. '전' 두뇌전 전문. 후루야마 료스케.. 였다. 아무도 그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더 리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회심의 질문을 나에게 날렸다.

 "자, 그래서.. 본부에 지금 빈 자리가 있는건가? 스페셜리스트 클래스라는건.. 표면상으로 직업을 속이면서 움직일 수 있는 위치가 아닌데 말이야."
 
 그 말이 나올 것 정도는 예상했다고. 리치. 아직 멀었군.. 포인터를 끄고, 그가 앉은 방향으로 돌아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한마디에. 리치가 처음으로 차를 뿜는 진광경이 펼쳐졌다.

 "'더 리치'가, 그녀를 스카웃하는겁니다. 월급은 물론 자비로. 여태까지 여기에서 빈둥대면서 무작위로 긁었던 프로그램 내 데이터 강화비용과, 숙식.. 그리고 기타 개인 소모품을 사는데에 쓴 비용을 모두. 그녀에게 '고액'의 금액을 지급하고 스카웃 하는 것으로 어느정도 감면을 하고자 합니다. 더 리치. 이정도면 불만은 없겠죠."
 "자비.. 로..  뭐? 아니 잠깐... 아, 감면. 아. 그래.. 아.. 그래. 그래. 어.. 아니 그러니까. 잠깐만. 그 '유니스'라는 여자, 그런 가치는 있어?"

 차를 내뿜고 나서 차마 입가를 정리하지 못한 채 드문드문 갈색의 액체가 얼굴에 묻어있는 상태로 말하는 그 모습에 참지 못하고 폭소할 뻔했지만.. '가치'를 언급하다니.. 그 말만 기다렸다고. 최대한 정중한 자세로,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꾸했다.

 "물론. 누구처럼 '고액'의 투자를 하지 않고도 '마스터 오브 세븐즈'의 자리에 올랐고, 그 특유의 전술력을 이용해 아마도 현재 우리 S클래스의 전력을 몇 배로 강화할 수 있는 콤비네이션을 짜는 것 까지 가능할거라는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까지 고려한 계산 결과입니다."
 ".. 잠깐, 협상은 가능한거겠지?"

 음. 협상이라.

 "아, 물론. '그녀'쪽에서 원한다면 말이죠."

 그 말에 체이서가 "그야말로 황제다운 명안이다. 찬성하지." 라고 말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야말로 더 리치라는 이름에 걸맞는 임무네요.", "아저씨.. 불쌍해. 하지만 그게 다 자업 자득이라는 거야." 등등.. 아까 전까지만 해도 활기찼던 그의 모습을 온데간데 없이 조각내는 동료들의 폭언이 줄줄히 이어졌다. 그리고, 마이스터가 깔끔하게 마무리를 장식했다.

 "세부 내용을 정리한다. 오늘 임무의 주 목적은 계정명 'Yunise'의 스카웃. 참가 인원은.."

 그 말에. 내가 기다렸다는 듯, 붉은 눈동자의 남성과. 몸을 가누지 못해 비틀거리고 있는 두 사람을 지목하며 말했다.

 "리더인 날 포함해서.. 이렇게 세 명이 적임이라고 생각한다. 뭐, 디시브는 일단 두뇌전 담당이었으니까 그녀의 역량을 시험해보는 역할을 담당하는 걸로.. 뭐, 결과에 따라서는 주 전력으로도 쓸 수는 있지. 그녀의 능력 여하에 따라서.."
 "차라리 욕을 해. 엠페러.. 리더 임마.."
 "리더, 많이 컸군요... 쿠.. 쿨럭".

 둘이 괴로워 하는 모습을 애써 무시한 채, 난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작전 준비 시각은 점심을 먹고 나서.. 1시 쯤으로 한다. 출격.. 아니, 이동 출발 시각은 2시로 잡고, '유니스'의 자택까지의 최단 루트는 체이서가 검색해줬으면 좋겠고. 바운더리는 그만 쉬어도 돼."
 "본부로부터 특별한 전달 사항은 없다. 개별 임무로 처리되니. 이번 임무를 이행하는 데에 사용한 금액에 대해서는 '더 리치'의 개인 계좌로 청구하겠다. 이상."

 졸지에 두 번이나 돈을 뜯기게 생긴, '리치'가 ​"​마​이​스​터​어​어​어​어​어​어​어​"​를​ 외치면서 절규하는 목소리만이 브리핑 룸을 가득 채웠지만, 어째서인지 모두가 웃고 있어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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