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미안하다 하치만. 폐경기가 온 것 같다.
시즈카(50)「미안하다 하치만. 폐경기가 온 것 같다」 하치만(37)「」
하치만「선생님…? 지금 뭐라고…?」
시즈카「하치만, 넌 대체 언제까지 날 선생님이라고 부를 생각인 거냐…」
하치만「아 미안… 너무 당황해서. 그것보다 지금 뭐라고 했어? 내가 혹시 잘못들은 건가?」
시즈카「그러니까 그…… 폐, 폐경기가 온 것 같다고……」
하치만「그, 그렇군……」
시즈카「그…… 미안하다……」
하치만「아니, 뭐…… 시즈카의 잘못은 아니니까……요.
뭐,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콘돔값도 안들겠다, 고무값도 안들겠다, 애필값도 안들겠다 돈도 절약되고 좋지 않겠습니까……」
시즈카「전부 콘돔 얘기잖아. 그것보다 왜 갑자기 존댓말을 쓰는 거냐 하치만. 그러지 마라. 어색하잖아…!」
하치만「아니, 뭐…… 나이 차이가 나이 차다보니 결혼하기 전부터 어느 정도 각오는 했던 일이지만, 막상 이렇게 닥쳐오니 뭐라고 할까……」
시즈카「그, 그래도 평균보다는 늦게 온거니까! 빠르면 40대 초기부터 시작되는 게 폐경기라고!
그리고 임신을 못하는 것뿐이지 섹○를 못하는 건 아니니까!」
하치만「아 그건 알지만 말이지. 그리고 폐경기가 아니더라도 시즈카는 불임이잖아……」
시즈카「읏… 미, 미안……」
하치만「아 미안. 지금 건 내가 나빴다」
시즈카「나이도 많은데다가 아이도 낳지 못하는 몸이라 미안해……」 훌쩍
하지만「울지 마. 난 아이 같은 거 없어도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애당초 아이들은 좋아하지도 않고, 아이를 양육하게 되어버리면 금전적인 부담도 생기니까」
하치만 (이제와선 너무 늦어버렸고 말이지)
시즈카「그래도……」
하치만「아니, 아이 같은 건 진짜 필요없으니까. 난 그냥 둘이 오손도손 사는 게 좋다고. 그리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하치만「뭐라고 할까, 폐경기 여성과는…… 아니, 아무 것도 아냐」
시즈카「중간에 끊으면 신경 쓰이잖아!」(´;ω;`)
유이(37)「아 힛키, 오랜만ㅡ!」 하치만(37)「여어, 오랜만이다」
하치만「그나저나 강산도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 아직도 그 바보 같은 별명으로 부르는 거냐?」
유이「그치만 힛키는 힛키고!」
하치만「아니, 우리도 이제 나이가 있잖냐… 솔직히 30대 중반 아줌마가 힛키힛키 거리는 건 좀 깨거든?」
유이「힛키 진짜 징그러! 여자한텐 나이 얘기하는 거 아니라고! 그리고 아줌마도 아니고!」
하치만 「나이 얘기하는 게 아니고 뭐고 우린 동갑이잖냐? 이제와서 뭘. 그리고 너 아줌마인 것도 맞고」
유이 「아줌마 아니거든? 아직 처…… 아, 아무튼 아줌마 아니라고! 옷사러 가거나 하면 아직 언니 소리 듣는 걸!」
하치만「매장에서 일하는 애들이 언니라고 불러주는 건 걍 립서비스…… 아니, 잠깐. 뭐? 너 혹시 아직도 처녀야……?」
유이「징그러! 뭘 물어보는 거야!? 처, 처녀인 건 맞지만……///」
하치만「엑…… 아니, 너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설마 아직까지 한 번도 남자랑 사귀지 않은 거야?」
유이「……」
하치만「억…… 진짜로……!?」
유이「우으…… 전부 힛키가 나빠! 전부 힛키 때문이라고!!」 글썽글썽
하치만「아니 네가 37살 먹도록 모솔녀인 게 왜 내 탓인데?」
유이「……정말로 몰라서 하는 소리야?」
하치만 「아뇨, 죄송합니다」
하치만「하아…… 안 그래도 나 요즘 우울하다고. 너무 머리 아프게 하지 말아 줘」
유이「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하치만「시즈카 선생님이…… 아, 역시 됐다」
유이「궁금하게 중간에 끊지 말고 말해봐. 상담해줄게」
하치만「아니, 너에게 상담하기는 좀 그렇다만……」
유이「어? 그, 그야 나는 상담하기엔 좀 못미더울지도 모르지만……」
하치만「아, 아니 별로 너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아, 알았다 알았어.
실은 말이야. 시즈카 선생님이 폐경기가 온 모양이야」
유이「뭐?」
하치만「뭐야 너 폐경기도 모르는 거냐? 폐경기란……」
유이 「뜻을 모르는 게 아니고! 하지만 선생님 나이가 나이니까 폐경기가 와도 이상하진 않은데.
오히려 이제서야 온건가 싶을 정도고」
하치만「하아… 그렇겠지?」
유이「저기 힛키, 선생님이 폐경기인 게 그렇게 신경 쓰여?」
하치만「아무래도 그렇지. 정신적으로 좀 그렇다고 할까, 아무리 그래도 폐경기 여성은 여자로 안보인다고 할까……
난 아직 한창이란 느낌인데…… 아, 미안. 실언이었다」
유이「……저기 힛키」
하치만「엉?」
유이「힛키가 원한다면 내가 도와줘도 괜찮지만」
하치만「」
하치만(37)「다녀왔어」 시즈카(50)「어, 어서와라 하치만」
하치만「미안, 저녁 아직이지? 지금 차려줄게」
시즈카「아냐, 매일 하치만이 차려주니까 오늘 정도는 내가 차려주마」
하치만「그래? 그럼 적당히 아무 거나 차려줘. 난 샤워 좀 하고 올게」
시즈카「그, 그래」
하치만「아아 개운하다」
시즈카「하치만 밥 다 됐다!」
하치만「돼지고기 생강구이인가. 그러고 보면 봉사부 시절 돼지고기 생강구이를 추천한다고 답장한 이후로 계속 돼지고기 생강구이을 만들어 주네. 시즈카는 정말 한결 같구나」
시즈카「아하하. 이정도야 뭘」
하치만 (칭찬이 아닌데…… 아니, 맛이 없는 건 아니니까 별로 상관없지만 서도)
하치만「잘먹겠습니다」
시즈카「음. 맛있게 먹어」
시즈카「그, 그런데 말이다 하치만」
하치만「응?」 우물우물
시즈카「오늘은 그 뭐냐…… 누구를 만나러 갔던 거야?」
하치만「어? 유이가하마인데」
시즈카「아, 그렇구나 유이가하마인가. 흐음… 오랜만에 만나는 거니까 물론 즐거웠겠지?」
하치만「뭐 그렇지. 유이가하마랑은 벌써 20년 가까이 된 인연이니까.
걔도 이젠 슬슬 나이 먹은 티가 나더라고」
시즈카 「큭……」
하치만「어? 아, 미안미안. 별로 시즈카가 늙었다는 건 아니고」
시즈카「아, 아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젠 객관적으로 봐서 늙은 게 맞긴 하니까……」
하치만「아니 그렇……긴하네. 하지만 시즈카는 동안이라서 아직 40대로 중반으로 밖에 안보이니까」
시즈카 (큭…… 칭찬은 맞지만 왠지 눈물이……)
시즈카「아, 그런데 유이가하마랑 둘이서 만난 거냐?」
하치만「뭐, 그렇지」
시즈카「……」
하치만「응? 아…… 미안해.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무리 친구라도 여자인 유이가하마랑 둘이서 만나는 건 역시 좀 그랬나?」
시즈카「아, 아냐. 유이가하마야 내 제자기도 하고, 봉사부의 일원이었으니까. 네게 있어 소중한 친구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시즈카 (하아…… 설마 나 지금 질투하는 건가? 제자인 유이가하마에게 질투라니…… 이런 적 없었는데…… 이것도 폐경기 때문일까……?)
유키노(37)「어머, 오랜만이구나 히키가야」하치만(37)「여어, 오랜만」
유키노「여전히 썩은 생선 같은 눈을 하고 있구나」
하치만「여전히 DHA 풍부해 보이냐?」
유키노「후훗… 여전하구나. 시즈카 선생님의 기둥서방질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썩지 않았을까 했는데」
하치만「기둥서방이 아니라 전업주부다. 그리고 마음이야 어쨌든 몸은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주부 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하루에 한 시간 씩 꾸준히 운동하고 있거든. 응? 뭘 그렇게 놀라는 거야?」
유키노「아냐, 히키가야와 가장 관계없을 말을 들은 나머지 잠시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 것뿐」
하치만「참나, 내가 꾸준히 운동하는 게 그렇게 이상하냐?」
유키노「히키코모리가야가 운동을 한다는데 누군들 안 놀라겠니. 가장 놀라는 건 과거의 네가 아닐까 싶지만」
하치만「야야 이름 너무 길다고. 적어도 5글자 안으로 불러줘라.
뭐, 확실히 나답지 않은 행동이긴 하다만 몇 년이고 집에만 박혀있는 건 아무리 나라도 힘들다고 할까」
유키노「그래, 기분 전환은 중요한 법이니까」
하치만「그나저나 너도 참 안늙는 구나? 유이가하마도 30대 초반으로 밖에 안보이지만 너는 20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겠다 야」
유키노「그, 그러니?/// 히키코모리에게 들어도 별로 기쁘지 않지만 일단 칭찬으로 알아둘게」
하치만 「이젠 가야조차 생략되는 거냐」
유키노 「그건 그렇고 너 유이가하마와도 만나는 거니?」
하치만「엉? 뭐, 그렇지. 집도 그리 멀지 않으니까 이따금 만나. 너희도 그렇지 않냐?」
유키노「아니, 그건 아니지만…… 최근엔 쭉 못만나지 않았으니까」
하치만「엥? 니들 혹시 싸웠냐?」
유키노「아냐. 한동안 내가…… 너무 정신없이 바빴거든. 도저히 그녀랑 만날 정신도 없었고」
하치만「일이 그렇게 바쁘냐? 너도 고생이 많구나」
유키노「일은 확실히 바쁘긴 하지만 그것 때문인 건 아냐」
하치만「그럼 뭐 때문인데?」
유키노「……얼마 전에 이혼했어」
하치만「……엑? 지, 진짜로?」
유키노「내가 그런 일을 가지고 농담할 거라고 생각하니?」
하치만「아니지…… 그, 그 뭐냐……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만 그…… 기운내라」 어깨 탁탁
유키노「혹시 그걸 지금 위로라고 하는 거니?」
하치만「어…… 뭐 그렇지. 솔직히 이럴 땐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거든……
그래도 그나마 다른사람 얘기였다면 이런 위로도 안했을 거다. 너야 남도 아니니까」
유키노「『남』은 아닌 거네……」
하치만「아ㅡ 그 뭐라고 할까…… 넌 소중한 친구니까」 긁적긁적
유키노「그래……//」
하치만「그래서 어떻게 됐어? 이혼 문제는 다 끝난 거야?」
유키노「며칠 전에 다 끝났어. 아이도 없었고, 서로 애정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
하치만「그, 그래?」
유키노「어. 부모에 의해 억지로 한 결혼 따윈 결국 이렇게 되는 거구나」
하치만 (와 진짜 거북하네…… 유키노시타가 아니었다면 바로 내뺐을 레벨로 거북한데)
하치만「아 그…… 이제부턴 어쩔꺼냐?」
유키노「글쎄……」
하치만「이혼한 직후에 말하는 것도 좀 그렇다만, 너도 아직 한창 나이니까 역시 재혼상대를 찾아보는 게 좋지 않겠냐? 아직 인생은 길지만 우리도 나이가 나이다보니까 말이지」
유키노「그러네. 떠오르는 상대가 하나 있긴 하지만」
하치만「엉? 그래?」
유키노「이혼한 남편이랑 결혼하기 전부터 마음에 담아뒀던 사람이 하나 있어」
하치만「뭐? 야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서도 딴남자랑 결혼한 거야?」
유키노「그래」
하치만「달리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고 부모님께 말씀은 드려본 거냐? 그야, 네 집안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유키노「……부모님껜 말씀드린 적 없어」
하치만「어째서? 시도라도 해보지 그랬냐」
유키노「그 사람은 이미 다른사람이랑 결혼해 버렸었거든」
하치만「……어?」
유키노「후후. 그러네. 인생은 아직 기니까」
유키노「오랜만에 만나서 즐거웠어 히키가야. 시즈카 선생님께도 오래오래 사시라고 안부 전해주렴」
하치만「어? 어, 어……」
유키노「아니지, 꼭 그렇게 그 때를 기다릴 필요는 없겠네」
하치만「뭐?」
유키노「아무 것도 아냐. 그럼 또 봐 히키가야」
하치만「어, 어…」
하치만(37)「코마치~ 나 왔다~」 코마치(35)「아 어서 와 오빠」
하치만「그동안 잘 지냈냐?」
코마치「응. 오빠는 어때?」
하치만「나야 뭐 변함없이 잘 지내지. 우리 조카는?」
코마치「우리 공주님은 지금 방에서 코ㅡ 자고 있답니다」
하치만「그래?」
코마치「깨울까?」
하치만「아냐, 안 깨워도 돼. 자게 내둬. 그것보다 점심은 먹었어? 오빠가 차려 줄까?」
코마치「후후~ 지금 거 코마치적으로 포인트 높아! 그렇지만 손님에게 식사를 차리게 할 수는 없지요」
하치만「아니, 넌 지금 홀몸도 아니니까」
코마치「아직 5개월 밖에 안됐어. 게다가 이번이 첫 번째도 아니고. 내가 만들어 줄 테니까 오빠는 쉬고 있어」
하치만「그래, 알았다. 그러면 간만에 편하게 앉아서 여동생이 차려주는 밥이나 먹어볼까」
코마치「다됐어 오빠~」
하치만「오~ 무슨 날이냐? 완전 호화롭네」
코마치「무슨 날이긴~ 오빠가 온 날이지~ 아! 지금 거 코마치적으로 포인트 높지?」
하치만「마지막에 쓸데없는 말만 없었으면 말이지. 그나저나 그놈의 포인트는 아직도 계속되는 거냐? 너도 이제 좋을 나이잖냐」
코마치「부부ㅡ 여자에게 나이를 지적하다니, 지금 건 포인트 낮습니다」
하치만「엉? 아, 그래 미안하다. 너나 유이가하마나 똑같은 소리를 하는구나」우물우물
코마치「응? 오빠 유이 언니랑 만났어?」
하치만「뭐, 그랬지. 요전에 간만에 만났어」 우물우물
코마치「햐~ 그립다. 유이 언니랑 못 만난 지도 벌써 3년은 된 것 같네. 유이 언니는 잘 지내?」꿀꺽
하치만「뭐,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건 같다만 잘 지낸다고는 못하겠네」
코마치「어? 왜?」
하치만「아 그 뭐냐…… 말하기 좀 그렇다만…… 그 녀석 아직도 혼자라서 말이지」우물우물
코마치「헤에…… 예전에는 유이 언니가 시즈카 언니보다 늦게 결혼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하치만「그냥 솔로기만 하면 그나마 낫지. 유이가하마 녀석, 아직까지 연애해본 적도 없는 모양이더라」
코마치「……어?」
하치만「멀쩡한 애가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 시즈카랑 결혼 안했으면 내가 데려가고 싶을 정도라니까」
코마치 (그렇구나…… 유이 언니는 아직도……)
코마치「유, 유이 언니…! 크흑…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훌쩍
하치만「엉? 야야 유이가하마가 그렇게 불쌍했냐?」우물우물
코마치「코마치는 웬만해서 눈물이 안 나는 사람인데 눈물이 다 나오네」
하치만「아니, 너 눈물 많잖아. 하기야 생각해보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 어쩐지 요즘은 안타까운 일들이 많네」
코마치「응? 무슨 일 있어?」우물우물
하치만「아니 그게…… 뭐, 너라면 얘기해도 괜찮겠지. 실은 유키노시타가 얼마 전에 이혼을 했거든」
코마치「……진짜?」
하치만「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지만 애도 없고, 그 유키노시타니까 재혼하는 것도 어렵진 않겠지만……」 우물우물
코마치「그렇구나…… 하긴 유키노 언니, 결혼식 때도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았으니까……」
코마치 (유키노 언니도 역시…… 오빠가……)
코마치「하아…… 오빠도 참 죄 많은 남자구나」
하치만「엉? 아니, 그게 왜 내 잘못인데?」
코마치「정말로 몰라서 묻는 거야?」
하치만「설마 내 존재 자체가 잘못인 거냐?」
코마치「하아…… 이 오레기는 정말……」
하치만「야야 좀 봐줘라. 안 그래도 나도 요즘 심난하니까」
코마치「설마 아직도 뭔가 더 남은 거야?」
하치만「……」
코마치「오빠…?」
하치만「실은 말이야……」
코마치「왜, 왜 그래? 그렇게 진지한 얼굴을 하고……」
하치만「시즈카가…… 시즈카가 말이야……」
코마치「서, 설마…!?」
하치만「……폐경기가 왔어」
코마치「……」
하치만「뭐, 유이가하마나 유키노시타에 비하면 별 것 아니지만……
아ㅡ 뭐랄까, 남자로서는 역시 가볍게 넘기기 힘든 문제라고 할까? 장난 아니게 기운 빠진다고 할까?」
코마치「……오빠」
하치만「응?」
코마치「입 다물고 밥이나 먹어」
하치만「어? 어, 어……」
하치만「그럼 난 슬슬 가봐야겠다」
코마치「어? 벌써? 좀 더 있다 가지」
하치만「아니, 시즈카한테 저녁밥도 차려줘야 하니까. 우리 조카 얼굴만 보고 갈게」
코마치「그것도 그러네. 여기야」 탈칵
하치만「아직도 세상모르고 자고 있네」
코마치「역시 깨울까?」
하치만「아냐, 됐어」 쓰다듬
하치만「내 여동생 딸이라 그런지 귀엽구먼」 쓰담쓰담
코마치「에헤헤」
하치만「……」 쓰담쓰담
코마치「오빠」
하치만「엉?」
코마치「역시…… 아이 가지고 싶었어……?」
하치만「아니, 난 애들 별로 안 좋아하니까. 난 그냥 시즈카랑 둘이 사는 게 더 좋아」 쓰담쓰담
코마치「……」
하치만「게다가 이젠 이미 늦었으니까. 시즈카는 낳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이제 와서 입양 같은 걸 하는 것도 좀 그렇고」 쪽
코마치「……그렇구나」
하치만「그럼 난 진짜로 간다. 잘 지내고 있어라 코마치」
코마치「응, 오빠도 잘 지내. 다음엔 코마치가 놀러갈게」
하치만「그래, 언제든지 놀러와」 철컹 타앙
코마치「……」
코마치「정말로 거짓말이 서툴다니까……」
유이(37)「실례합니다―!」 유키노(37)「안녕하세요 히라츠카 선생님」
하치만「여어, 어서들 와」
시즈카「오랜만이구나 유이가하마, 유키노시타. 잘들 지냈니?」
유이「네에~ 잘 지냈어요」
유키노「네. 선생님도 잘 지내…… 죄송합니다. 우문이었네요」
하치만「야야, 왜 날 보는 건데?」
유키노「히모가야 같은 기생충이 달라붙어 있는데 선생님이 편하실리가 없었네」 ※紐(히모): 기둥서방
하치만「그러니까 기둥서방이 아니라 가정주부라고. 제대로 내조하고 있거든?」
시즈카「저기 말이다 유키노시타. 일단은 내 남편이ㄴ……」
유키노「어머, 내조의 의미는 알고 있는 거니? 이성에게 길러지는 건 내조라고 부르지 않아」
하치만「주부경력 15년 무시하지 마라. 이젠 주부의 프로니까」
유이「아하하. 뭔가 즐겁네.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시즈카「어…… 저기……」
유키노「그러네.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네」 쿠쿡
하치만「그러네」
시즈카「흠흠. 유키노시타도 유이가하마도 그렇게 현관에 서있지 말고 어서 들어오렴」
하치만「아, 내 정신 좀 봐라. 어서 들어와」
유키노「그랬네요. 실례하겠습니다」
유이「아, 맞다. 힛키 이거 별 건 아니지만 선물이야」 스윽
하치만「응? 안그래도 되는데 뭘 이런 걸 다 사왔냐」
유이「예전에 집들이 할때는 못줬으니까. 늦었지만 집들이 선물이라고 할까」
하치만「집들이 한 건 거의 7년 전이잖냐. 듀크 뉴켐 포에버급이구먼. 아무튼 고맙다」
유키노「아담하고 깔끔한 좋은 집이네요」
시즈카「아하하. 그러니?」
유키노「네. 아이 없이 둘이 오손도손 살기엔 딱 좋은 집 같네요」
시즈카「그, 그렇지?」
유이「힛키네 집에 온 거 정말 오랜만이다~ 예전이랑 많이 달라진 것 같네」
하치만「그렇지 뭐. 책장도 새로 샀고, 얼마 전엔 TV도 바꿨으니까. 화분도 기르기 시작했고」
유이「커튼도 새로 바꿨나봐?」
하치만「커튼은 2년 전에 바꿨어. 너 머리도 안좋으면서 용캐도 그런 걸 기억한다?」
유이「힛키, 날 너무 바보 취급하고! 이래뵈도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선생님이고!
힛키에 대한 건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고……」
하치만「아아 그랬지. 솔직히 네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겠다고 했을 땐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유키노「그러네. 나도 그 얘기를 들었을 땐 솔직히 불안했었어」
유이「유, 유키농까지……」
하치만「이젠 어엿한 중견 선생님이구나 유이가하마」
유이「증말―! 중견이라고 하면 꼭 내가 늙은 것 같잖아!」
시즈카「아하하…하……」
하치만「그러면 차 마시면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어. 난 마저 요리하러 갈게. 좀만 더 있으면 다 되니까」
유키노「그래, 주부의 프로라고 자신한 그 실력을 기대하고 있을게」
유이「힛키, 내가 도와줄ㄲ…」
하치만「아니, 됐어」
유이「끝까지 듣지고 않고 거절했어!? 힛키 너무해! 나도 이젠 평범하게 요리할 수 있으니까!」
하치만「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너희들은 손님이니까. 오늘은 얌전히 대접만 받다가라고」
시즈카「그래, 유이가하마. 너희들은 손님이니까 말이지」
유이「네에― 그럼 힘내 힛키」
하치만「엉」
유키노「……」
유이「……」
시즈카「……;;」
시즈카 (왠지 갑자기 분위기가……)
시즈카 (그나저나 둘 다 여전히 젊고 예쁘구나…… 나 같은 건 이젠 그냥 아줌마인데……)
유이「……힛키가 타준 홍자, 예전에 유키농이 타주던 것처럼 맛있네」 홀짝
유키노「그러네. 정말로 맛있어졌어」
시즈카 (나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하치만도 아직 젊고 예쁜 부인과 살고 있었겠지…? 아마 아이도 있었을 거야……)
유키노「히라츠카 선생님은 홍차를 좋아하셨던가요?」
시즈카「어, 어? 아 홍차는 싫어하지 않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유이「헤에― 그렇구나. 힛키가 타준 홍차 엄청 맛있어서 평소에도 즐겨마시는 건가 했어요」
시즈카「뭐, 우리는 커피를 즐겨마시니까. 홍차는 정말 이따금 먹는 정도다」
유키노「그런 것치고는 정말 홍차를 잘 타네요. ……누굴 위해 이렇게까지 능숙해진 걸까 싶을 정도로」
시즈카「어?」
유키노「히라츠카 선생님」
시즈카「어, 어」
유키노「오늘은 식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이「감사해요 시즈카 선생님」
유키노「모처럼의 휴일인데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모르겠네요」
시즈카「아니야. 나야말로 오랜만에 사랑하는 제자들과 만날 수 있어서 기쁘구나.
내일은 일요일이기도 하고, 뭣하면 자고 가도 되니까 둘 다 편하게 있다 가렴」
유이「감사해요. 다행이다. 힛키에게 초대받은 건 기뻤지만 두사람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었거든」
시즈카「방해는 뭘. 신혼부부인 것도 아니고. 나야말로 모처럼 휴일인데 너희들이 와줘서 기쁘단다」
유키노「여전히 상냥하시네요 히라츠카 선생님. 그러니까 그도 선생님을 택한 거겠죠」
시즈카「어? 어, 어… 그건 그런데 말이다 유키노시타. 난 이제 히라츠카가 아니라 히키가야니까……」
유키노「어머, 그랬네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선생님도 히키가야였죠」
유이「아하하. 나도 의식하지 않으면 히라츠카 선생님이라고 부를 것 같으니까」
시즈카「뭐, 너희들은 오랫동안 히라츠카라고 불렀으니까 말이지.
하지만 내가 하치만과 결혼해서 히키가야가 된지도 꽤 오래됐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젠 슬슬……」
유키노「그러네요. 하지만 히키가야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돼버리면 히키가야와 헷갈릴지도 모르겠네요」
시즈카「응? 아, 나라면 그냥 시즈카 선생님이라ㄱ……」
유키노「그러면 앞으로는 히키가야를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부르면 되겠네요. 그러면 헷갈리게 만드는 일도 없을 테니」
시즈카「어? 어… 그렇구나」
유이「……」
시즈카「아…… 그, 그나저나 너희는 정말 나이를 안 먹는구나. 둘 다 하치만과 동갑으로는 안 보인다」
유이「정말요? 감사해요 선생님! 저번에 힛키에게 아줌마 소리를 들어서 자신이 없었지만, 역시 아직은 충분히 먹히겠죠? 힛키에게」
시즈카「어?」
유키노「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도…… 50대로는 안 보이세요」 싱긋
시즈카「아, 아하하…… 나야 이제 막 된 것뿐이니까. 50대라기보다는 40대 후반이라고 할까? 아하하…하……」
유이「그렇죠~ 시즈카 선생님 여전히 아름다우시니까요.
뭐라고 할까, 곱게 늙었다고 할까? 폐경기가 왔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할까?」
시즈카「!? 뭣…」
유이「어? 아니었나요? 힛키에게 그렇게 들었는데. 선생님한테 폐경기가 왔다고」
유키노「어머…」
시즈카 (큭…… 하치마아아안―! 잘도 쓸데없는 소리를…!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돌아가고 나면 철권제재니까!!)
하치만「어이~ 시즈카~ 음식 나르는 것 좀 도와줘~」
시즈카「그래! 지금 가마!!」 벌떡 타다닷
유키노「……부부 사이가 돈독해 보이네」
어? 왜 그래? 잠… 컥!
유이「응… 그러네…」
누가 내가 폐경기라는 걸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랬냐!!
유이「우와―! 힛키, 진짜 맛있어―!」
하치만「뭐, 그렇지」
유이「힛키 요리실력 정말 많이 늘었구나~ 이런 요리를 매일매일 먹을 수 있는 시즈카 선생님이 부럽다」
시즈카「아하하. 뭐,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정성 들여 만들어주진 않지만」
유키노「기둥서방 삼 년이면 다림질을 배운다는 거구나」
하치만「뭘 속담이라도 말하듯이 디스하는 거야? 그냥 솔직하게 맛있다고 하라고」
유키노「그러네. 주부의 프로라고 자신할 정도는 되는구나. 어쩌면 이젠 나보다 요리를 잘하는 걸지도 모르겠네」
하치만「오? 정말?」
유키노「그래. 우리 집 가정주부로 맞이하고 싶을 정도야, 하치만」
시즈카「!」
하치만「그거야 영광이군. 어? 너 지금 이름으로 부른 거냐?」
유키노「뭔가 문제라도 있는 걸까?」
하치만「아니, 그건 아니다만. 여태까진 계속 성(姓)으로 불렀으면서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니까」
유키노「선생님의 성도 지금은 히키가야니까. 히키가야라고 부르면 아무래도 헷갈리잖니. 그렇죠 선생님?」
시즈카「어? 어 뭐, 그렇지」
하치만「하긴. 헷갈리기도 하고,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인데 아직까지 성으로 부르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하다」
유키노「그래. 그러니까 앞으로는 너도 날 유키노라고 부르렴. 하치만」
하치만「하하. 갑자기 이름으로 불리니까 좀 어색하네」
유이「아― 생각해보니 힛키는 히키가야를 줄인 별명이니까 힛키랑 선생님이랑 헷갈리겠네― 나도 하치만이라고 부를까나―?」
하치만「뭐? 안 헷갈리는데?」
유이「헷갈리다고!」
하치만「아니, 전혀 안 헷갈리거든? 그보다 너 예전에 나한테 힛키는 계속 힛키니 뭐니 하지 않았었냐?」
유이「그렇지만 힛키도 힛키라고 부르는 거 싫어하고…… 나만 성으로 부르는 것 같아서 싫고……」
하치만「이제 와서 할 소리냐… 그리고 힛키라고 부르는 거 딱히 싫어하지 않는다고」
유이「어?」
하치만「그야 처음엔 싫었지만 벌써 20년 가까이 들어왔으니까 말이지.
이제 와선 다르게 불리는 게 더 어색하다고 할까? 거기에, 모처럼 소중한 친구가 붙여준 별명이고」
유이「저, 정말?」
하치만「뭐, 다른 녀석들이 힛키라고 부르는 건 싫지만. 나를 힛키라고 불러도 되는 건 너뿐이라고 할까?」
유이「히, 힛키…!」
시즈카「확실히 유이가하마가 하치만을 다르게 부르는 건 상상하기 어렵군」
유키노「나도 유이가하마가 하치만을 다르게 부르는 건 상상하게 어려워」
하치만「어이 유키노. 나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유이는 성으로 부르는 건 좀 이상하지 않냐?」
유키노「그러네…… 확실히 하치만의 말대로야. 나란 사람이 하치만에게 지적을 다 받게 될 줄은…
미안해 유이. 늦었지만 앞으로는 이름으로 불러도 될까?」
유이「! 물론이야 유키농!」
하치만「뭔가 진짜 이제 와서란 느낌이긴 하다만. 이름으로 부르니까 갑자기 더 친해진 것 같다 야」
유키노「그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도 정말 괜한 고집을 부렸구나 싶어」
하치만「응?」
유키노「아무 것도 아냐 하치만」 쿠쿡
시즈카 (다행이다. 왠지 말에 가시가 돋은 느낌이라 실은 오기 싫었던 게 아닌가 했는데 아무래도 기우였던 모양이네. 분위기도 훈훈해졌고, 오늘이 유키노시타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면 좋겠다)
유이「이 감자고기 조림도 힛키가 만든 거야?」
하치만「아, 그건 시즈카가 만든 거야. 왜 그래 유이? 혹시 맛없어?」
유이「아냐, 맛있어. 그냥 어쩐지 이것만 좀 맛이 다르다 싶어서」
유키노「확실히 하치만이 만든 요리들이랑은 맛이 다르네.
뭐, 일하고 계신 선생님보다 요리실력이 떨어진다면 그거야말로 가정주부 실격이니까」
시즈카 (하치만이 이름으로 부르는 건 시누이와 나 정도였는데……
훈훈하면서도 왠지 좀 섭섭한 느낌…… 뭔가 부럽기도 하고……)
유이「나도 스스로 요리하긴 하지만 힛키한테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겠네.
아 그래! 힛키, 언제 한 번 우리 집에 와서 요리 좀 가르쳐주면 안 될까?」
하치만「뭐? 귀찮은데」
유이「하루 정도는 괜찮잖아― 오랜 친구고!」
유키노「그렇구나. 그러면 유이, 나도 하치만이랑 함께 가르쳐줄게」
유이「어…? 어, 응! 좋아!」
유키노「그러면 언제가 좋을까? 나는 주말 외에는 시간이 없지만. 하치만은 언제라도 괜찮지?」
하치만「야야 난 간다고는 한마디도 안 했다고」
시즈카 (선생님인가…… 나만 벽이 있는 느낌이네……
그야 사제지간이긴 하지만…… 나도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시즈카「저, 저기 말이다 유키노시타, 유이가하마.
유키노「네, 선생님」
유이「왜요? 선생님」
시즈카「그…… 나도 너희를 이름으로 불러도 될까?」
유이「물론이죠! 시즈카 선생님」
유키노「네. 좋을 대로 하세요 선생님」
시즈카「그렇구나! 그러면 앞으론 나도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마.
아, 유키노, 유이. 너희도 날 선생님이 아니라 시즈카 언니라고 불러도 된다.
너희는 제자임과 동시에 남편 친구들이기도 하니까」
유키노「죄송합니다. 그건 무리」
유이「에이~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인데 어떻게 언니라고 부르겠어요~」
하치만「뭐, 그건 그렇지」
시즈카 (´;ω;`)
유키노(37)「오늘은 즐거웠어요 선생님」 유이(37)「다음에 또 올게요―!」
시즈카「그래, 조심히 들어가렴」
하치만「엉. 잘가라」
유키노「……」
하치만「응?」
유키노「하치만, 설마 연약한 여성 둘이서 밤길을 걷게 할 생각인 거니?」
하치만「엉? 아니 혼자도 아니고 둘이니 괜찮지 않겠냐?」
유키노「나나 유이처럼 젊고 예쁜 여자가 같이 있으니까 오히려 더 위험한 거야. 그 정도의 상식도 없는 걸까?」
유이「그래! 게다가 여기서 역까지는 좀 멀고」
하치만「젊고 예쁘다니…… 예쁜 건 부정할 생각 없다만, 니들 이젠 반올림하면 40……」
유키노「……」 찌릿
유이「……」 찌릿
하치만「……지만 니들이야 워낙 동안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시즈카「그, 그래. 늦은 시간이기도 하니 바래다주렴 하치만」
유이「감사해요 시즈카 선생님~」
유키노「네, 안녕히 계세요. 하치만?」
하치만「어쩔 수 없구먼. 그럼 잠깐 다녀올게 시즈카」
시즈카「그래, 조심히들 가렴」
유이「오늘은 정말 즐거웠지?」터벅터벅
유키노「그래, 이렇게 즐거운 건 정말 오랜만이네」
하치만「그렇다니 다행이네」
유키노「그런데 오늘은 무슨 변덕으로 저녁 식사에 초대를 다 한 거니?」
하치만「아니 그 뭐냐, 우리 셋이 안 모인지도 꽤 됐잖냐? 오랜만에 다 같이 보고 싶기도 했고……」
유키노「이혼 때문에 심란해하고 있을 날 위로하고 싶기도 했고?」
하치만「……뭐, 부정은 안 할게」 긁적긁적
유이「역시 힛키는 상냥하네」
하치만「상냥하기는. 정작 진짜로 힘들었을 땐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는 걸. 오히려 미안하다」
유이「나도 정말 미안해 유키농……
유키농이 힘들어하고 있을 때 그런 줄도 모르고 있어서……」
유키노「미안해할 거 없어. 말해준 적 없으니 너희가 모르고 있던 건 당연해」
하치만「그래도 미안하다. 뭐, 알았다고 한들 딱히 뭔가 해주지는 못했겠지만.
가정문제는 아무리 친해도 함부로 끼어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게다가 난 남자잖냐? 상담이나 위로해주겠다고 만났다가 남편에게 오해라도 사면 괜히 일만 복잡해지니까」
유키노「……」
하치만「해줄 수 있는 건 고작 이정도인데, 이나마도 네가 싱글이 된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거라니 참 얄궂네」
유키노「아냐, 고마워. 위로가 됐어. 마음만으로도 기뻐」
유이「앞으로는 외롭거나 힘들 땐 언제라도 말해줘. 예전처럼 같이 있는 게 아니니까 말해주지 않으면 알기 힘들고」
유키노「그래, 유이도 고마워」
하치만「아무튼 뭐, 이젠 오해할 남편도 없어졌겠다, 우울하거나 심심해지면 언제라도 나나 유이를 찾으라고.
유이는 몰라도 나야 대체로 한가하니까」
유키노「어머, 그랬다간 네가 오해를 받는 게 아닐까?」
하치만「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시즈카가 그런 오해를 할 리가 없잖냐」
유키노「후훗. 그러네」
유이「아 맞다. 나 요리 가르쳐주는 건 언제가 좋을까?」
하치만「글쎄다― 너랑 유키노가 시간 되는 날이면 되지 않겠어?」
유키노「그러네. 그러면 다음 주 일요일이면 어떨까?」
유이「다음주 일요일이구나. 응, 괜찮아」
하치만「나도 OK」
유키노「그러면 유이네 집에 가는 날은 정해졌으니까」
하치만「응?」
유키노「다음은 우리 집에 오는 날을 정해볼까?」
유이「어?」
유키노「난 받은 건 돌려주는 주의니까. 악의도, 선의도.
오늘은 하치만에게 대접받았으니 다음은 내가 대접해줄 차례라는 거야」
하치만「야야, 무슨 거래처끼리 접대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 사이에 뭘 그러냐」
유키노「친구 사이라도 받기만 하는 건 싫어. 그리고 역시 내 쪽이 요리를 더 잘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하니까」
하치만「참나. 그놈의 승부근성은 여전하구나? 알았다 알았어」
유키노「유이, 다다음 주 토요일 저녁은 어떠니? 시간 괜찮을까?」
유이「어? 토요일 저녁이라면 아마 괜찮을 거야」
유키노「그래. 그러면 다음주 일요일엔 유이네 집에서, 다다음 주 토요일엔 우리 집에서 보는 걸로」
하치만「토요일 저녁인가. 그날 시즈카도 시간이 되려나 모르겠네」
유키노「아니, 그날은 우리 셋이서만 봤으면 좋겠어. 전 봉사부 셋이서만」
유이「!」
하치만「엉? 그렇지만 시즈카도 봉사부 고문이었고」
유키노「시즈카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그날은 부원들끼리만 만났으면 해.
그리고 선생님도 이젠 연세가 있으신데 멀리까지 오시게 하면 죄송스럽잖니」
유이「그래, 선생님도 이제 슬슬 몸조심하셔야 할 연세니까. 아, 보약이라도 달여드리는 건 어떨까?」
하치만「야야, 그렇게까지 늙지는 않았다고. 이제 겨우 5……
아무튼 간에 차도 있으니까 딱히 무리가 되는 건 아니라고」
유키노「선생님과는 다음에 코마치와 토츠카들을 불러서 다 같이 만나자」
하치만「토츠카인가. 토츠카도 못본지 오래됐네. 하아― 잘지내고 있으려나?」
유이「힛키, 진짜 징그러. 사이 얘기만 나오면 얼굴이 풀린다니까」
유키노「이제 곧 역이네. 여기까지면 됐어. 오늘은 고마웠어 하치만」
유이「응, 즐거웠어 힛키. 그럼 다음주에 봐―!」 손 흔들흔들
하치만「엉. 그래, 다음에 보자. 조심히 들어가」
유키노「……」
유이「……」
유키노「……유이」
유이「응?」
유키노「유이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유이「그러네. 나도 마침 유키농이랑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어」
하치만(37)「아무리 여름이고 집안이라지만……」
하치만「니들 방어력이 너무 높은 거 아니냐?」
유키노「방어력?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지구인도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하치만「난 무슨 지구 외 생명체라도 되는 거냐? 그러니까 니들 노출도 너무 높다고」
유이「힛키, 저질이야」
하치만「아니, 저질인 건 너희겠지. 유이가하마에 이르러서는 하의 실종 수준이고」
유이「여름이라 덥기도 하고, 집에서 정도는 편하게 입고 싶고」
하치만「에어컨은 뒀다 뭐할 건데? 장식이야?」
유이「에너지 절약 몰라? 에너지 절약!」
유키노「그러네. 국가적 차원에서 에너지 부족인 상황이니까」
하치만「무슨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냐? 그런 걸 따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고.
그렇게 생고생해봐야 좁쌀만 한 자기만족을 얻는 게 다니까 그냥 문명의 혜택을 누리자고」
유이「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힛키는 힛키구나……」
하치만「뭐, 그렇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
나를 바꾸고 싶거든 막장 드라마 마냥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 정도는 걸리게 해라」
유키노「그러네. 하치만을 바꾸려면 머릿 속을 포맷하는 수밖에 없겠네.
뭐, 이런 한결같은 점이 하치만 답다면 답지만」
유이「아하하. 예전엔 설마 이런 아저씨가 돼서까지 이럴 줄 몰랐지만」
하치만「시끄러. 너희도 아줌마인 건 마찬가지잖아?」
유키노「어머, 이렇게 젊고 예쁜 아줌마를 본 적 있니?」
유이「그래! 헬스장에서 꾸준히 운동하고 있으니까 아직 탱탱하고!」
하치만「니들이 예쁘고 동안인 건 인정하는 바이다만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는 마라.
37살 먹은 아줌마가 그러는 건 솔직히 좀 깨니까」
유이「아줌마 아줌마 하지 마! 중요한 건 실제나이가 아니라 외관이고!」
유키노「그래, 중요한 건 몇 살이냐가 아니라 몇 살로 보이냐니까」
유이「예쁘다며 귀찮게 들이대더니 나이를 말해주니까 입을 다물어버린 헬스장 마초 절대로 용서 못 해……」
하치만「그, 그것참 안타깝구나……」
뭐, 너희가 실제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너희 안에선 말이야」 씨익
유이「힛키, 너무해! 우으…… 역시 남자들은 젊은 애들이 좋은 걸까……」
유키노「걱정하지 마 유이. 말은 그렇게 해도 하치만은 여자의 나이 같은 건 별로 신경쓰지 않으니까」
하치만「엉?」
유키노「그도 그렇잖니? 네가 시즈카 선생님과 결혼했을 때 시즈카 선생님의 나이는 지금의 우리 나이 정도였으니까」
유이「아, 그러네」
유키노「20대 중반이었을 때도 연애대상이었으니, 30대 중반이 된 지금이야 말할 것도 없겠네.
아니면 이제는 5, 60대의 완숙한 여성이 취향인 걸까?」
하치만「야야, 너무 익었잖아. 완숙하다 못해 썩어버리겠다」
유키노「어머, 연상 취향인 하치만이라면 5, 60대 여성까지도 커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던 걸까?」
하치만「난 딱히 연상 취향이 아니라고. 반한 여자가 우연히 연상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어차피 남자란 생물은 최종적으론 연하 취향으로 귀결되게 되어있어.
동갑이 좋다느니, 연상이 좋다느니 하는 놈들도 나이 5, 60살쯤 먹고 나면 연하가 좋다고 할걸?」
유이「헤에……」
유키노「머리가 벗겨진 쭈그렁 할아버지가 된 하치만은 어쨌든 간에
지금의 하치만에게 있어선 5, 60대 여성은 이성으로 안 보인다는 걸까?」
하치만「안 벗겨질 거거든? 뭐, 그렇지. 나이가 많든 적든 기혼자인 나랑은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유이「……시즈카 선생님도 50대인데」
하치만「어?」
유키노「후훗 불쌍하신 선생님. 이제는 남편에게 여성으로서 사랑도 못 받는 거네」
유이「선생님,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우는 척
하치만「엑? 야야, 그런 거 아니라고」
유키노「뭐, 하치만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워낙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부부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겠네」
유이「응, 그러네. 선생님도 이제는 폐경기고.
부부가 된지도 오래됐으니까 이제는 이성으로서 매력을 느끼지 힘들지도」
하치만「아, 아니거든? 우리 아직 러브러브하거든?」
유키노「어머, 그러니? 결혼한지 15년은 된 부부가 아직도 러브러브하다니 금술도 좋구나」
유이「헤에― 러브러브했었구나― 하지만 이제 좋은 시절은 다 갔다는 거네?」
하치만「그러니까 아니라고! 다른 여자들은 그럴지 몰라도 시즈카는 예외라고 할까……
뭐, 뭐…… 중요한 건 실제 나이가 아니라 몇 살로 보이느냐니까……」
유키노「후훗. 아까랑은 말이 반대인 것 같은데?」
유이「아하하」
하치만「쳇, 시끄러워. 쓸데없는 얘기를 했더니 아까보다 더 덥네.
야야 유이, 우리 진짜로 에어컨 좀 켜자. 전기세가 아까운 거라면 내가 내줄 테니까. 300엔이면 되냐?」
유키노「300엔이라니…… 넌 고등학생이니?」
하치만「300엔 무시하지 마라. 300엔이면 MAX 커피도 살 수 있으니까」
유이「미안해 힛키. 실은 그 에어컨 1년 넘게 안 써서 안에 먼지가 엄청 꼈거든.
조만간 청소업자 불러서 청소할 생각이니까 다음에 올 때는 꼭 틀어줄게」
하치만「하아…… 진짜냐……」
유키노「그렇게 더우면 옷을 벗지 그러니?」
하치만「엉? 나 와이셔츠 안에 러닝셔츠 입은 게 전부니까, 벗어버리면 상의 속옷 차림이나 다름없다고」
유키노「뭐 어떠니. 1, 2년 본 사이도 아니고. 게다가 네 말따라 우리도 이젠 그런 거에 수줍어할 나이도 아니잖아?」
유이「그래, 힛키. 더우면 그냥 벗어도 돼」
하치만「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그렇지 않냐?」
유키노「어머, 혹시 부끄러워서 그러는 걸까?
신경 쓰지 마. 나와 유이는 하치만이 똥배 나온 중년 아저씨라 해도 받아들여 줄 수 있으니까」
하치만「똥배는 무슨. 내가 어딜 봐서 똥배가 나온 것처럼 보이는데?」
유이「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힛키」
유키노「그래, 결혼하고 가정주부가 된 후로 살이 찌는 건 흔한 일이니까.
집에만 박혀 있는 히키만이라면 오히려 내장비만이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하치만「야야, 저번에 꾸준히 운동하고 있다고 말했었잖아?
식스팩까진 아니어도 나도 제법 괜찮은 몸을 하고 있다고」
유이「헤에―」
유키노「하치만, 부끄럽다고 해서 금방 들킬 허세를 부리는 건 어떨까 싶지만」
하치만「이것들 안 믿는구먼. 한 번 보여줄까?」
유이「어?」
유키노「그렇구나. 결국은 노출벽에 눈을 뜬거네. 언젠가는 이렇게 될거라고 생각했어」
하치만「사람을 바바리맨 취급하지 말라고. 배만 잠깐 살짝 보여주려는 것뿐이니까」
유이「근데 힛키, 굳이 배를 보여줄 필요없이 그냥 와이셔츠를 벗으면 되는 거 아니야? 러닝셔츠라면 몸에 딱 붙을 테고」
하치만「엉? 그야 뭐 그렇지만」
유키노「더운 것도 해결되고, 자신 있어 하는 몸매도 보여줄 수 있으니 합리적인 생각이네」
하치만「으음…… 아니, 생각해보니 꼭 보여줄 필요는 없겠네. 딱히 자랑하고 싶은 것도 아니니까」
유키노「혹시 시즈카 선생님을 신경 써서 그러는 거니? 그렇다면 쓸데없는 걱정이야.
네가 말했잖니? 시즈카 선생님은 그런 오해를 하실 분이 아니라고.
일반적인 배우자였다면 남녀인 우리가 만나는 것 자체를 껄끄럽게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제자로서, 남편의 친구들로서 오랫동안 우리를 위해주신 선생님이라면 신경 쓰지 않을 거로 생각하지만」
유이「유키농 말대로야. 그게 아니면 우리가 이성으로 의식돼서 부끄럽기라도 한 거야?」 히죽
하치만「바보야, 20년 가까이를 본 사이인데 이성으로 의식하겠냐?
학생 때라면 모를까, 이제 와서 너희들 팬티를 보든, 알몸을 보든 별 감흥도 없거든?」
유키노「……그건 그것대로 화나지만」
유이「실례야!」 부들부들
하치만「아― 그래그래 알았다. 내가 벗는다 벗어」 스륵 슥
유키노「이상하게 말하지 말아줄래? 그렇게 말하면 꼭 우리가 널 벗기고 싶어하는 것 같잖니.
우리는 어디까지나 덥다고 징징거리는 바바리만을 위해 해결책을 제시한 것뿐이야」
하치만「예예. 후우…… 덥다 더워……」
유이「아……//」
유키노「어머……//」
하치만「응? 왜? 내 몸매에 반했냐?」
유이「징그러! 히, 힛키 진짜로 몸 많이 좋아졌구나///」
유키노「뭐, 못 봐줄 정도는 아니네///」
하치만「후후. 보거라! 이 군살없는 보디를!」 보디빌더 포즈
유이 「우와…… 팔이 예전보다 튼실해진 것 같다곤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하치만「주부의 프로쯤 되면 배우자를 위한 몸매관리는 기본이거든」
유키노「놀랐어. 네가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가정주부 일에 임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하치만「이제 알겠냐? 남자 중에서라면 난 가정주부 전국 상위 1% 안에는 든다고. 1등 신랑감이라고 할 수 있지」
유이「1등 신랑감이라면 가정주부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하치만「야야,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구시대적인 발언을 하는 거냐.
남녀 상관없이 적성에 따라 분담하는 게 맞지 않겠냐? 시즈카에게 가사를 맡기는 건 솔직히 못 미덥다고」
유키노「그러네. 시즈카 선생님은 가사에 서투시고, 주부 일도 중요한 일이니까.
그런점에선 선생님을 잘 내조하고 있는 하치만이 1등 신랑감이란 말도 꼭 틀린 말은 아니네」
하치만「그렇지? 그러니까 너희도 힘내서 나 같은 좋은 남자를 찾으렴」
유이「……」
유키노「……」
하치만「응? 야야 너무 진지하게들 받아들이지 마. 가벼운 농담이니까」
유키노「아냐, 그래야지」
유이「응, 그러네」
하치만「그려, 힘내라」
유키노「……그런데 하치만」
하치만「응?」
유키노「파랑새라는 동화는 알고 있니?」
하치만「야야, 그런 세계적인 동화를 모를 리가 없잖냐」
유키노「그래, 틸틸과 미틸이라는 남매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지.
그 다음 내용도 기억하고 있을까?」
하치만「알고 보니 전부 아시발쿰이었고, 자기들이 기르던 새가 바로 그 파랑새였음을 깨닫는 내용 아니었냐?」
유키노「맞아. 행복은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는 이야기지」
하치만「근데 그게 왜?」
유키노「후훗. 글쎄?」
유이「아하하」
하치만「갑자기 뭐야? 이상한 녀석이구먼」
유키노「……그나저나 오늘은 정말 덥구나」
유이「응. 이젠 정말 한여름이네」
하치만「내가 덥다고 했잖아. 유이, 혹시 선풍기는 없냐?」
유이「에어컨이 있으니까 선풍기는 따로 안샀어」
하치만「아니, 정작 그 에어컨도 안 쓰잖아……
넌 대체 이 더위를 어떻게 버틸 생각인 거냐……」
유키노「뭐, 더우면 옷을 얇게 입으면 되지 않겠니?」
하치만「아니, 이이상 뭘 어쩌라고」
유키노「글쎄, 그 바지라도 벗으면 되지 않을까?」
하치만「바지까지 벗어버리면 저 완전히 속옷차림입니다만?」
유키노「신경쓰지 않아도 돼. 난 네 속옷차림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하치만「내가 신경쓰이거든?」
유이「힛키, 그렇게 더우면 찬물로 샤워라도 할래?」
하치만「엉?」
유이「땀도 많이 난 것 같고, 차가운 물로 샤워하고나면 한동안은 상쾌할 테니까」
유키노「괜찮은 생각이네. 안그래도 하치만에게서 나는 악취가 참기 힘들었는데 씻고 오는게 어떨까?」
하치만「켁 진짜냐? 나 오기 전에 샤워하고 왔는데」
유키노「농담이야」
하치만「야야, 그런 미묘한 농담은 하지 말라고. 학창시절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날 뻔했잖아.
유이, 진짜로 샤워해도 되는 거냐?」
유이「응. 우리 사이잖아? 신경쓰지 말고 편하게 써」
하치만「엉 그래. 그럼 난 샤워 좀 하고 올게」 터벅터벅
유이「응~」 철컹 탕
유키노「……」
유이「……」
하치만 (켁. 이거 유이의 팬티인가?)
하치만 (젊은 날의 내가 봤다면 단번에 빗치라는 말이 튀어나왔을 레벨로 야하다)
하치만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낸 친구 사이라지만 일단은 나도 남자니까 신경 좀 쓸 것이지……) 스륵 슥
하치만 (오늘만 해도 너무 야하게 차려입었잖아. 내가 아니었다면 유혹하는 걸로 착각했을 레벨이라고) 스윽
하치만 (뭐, 지금 와서 그럴 리도 없고, 애당초 참된 우정을 나눈 우리 사이에 그런 건 잊을 수 없지만) 쏴아아
하치만「어허 시원하다―」 쏴아아
하치만 (그나저나 그 녀석들도 나이에 안맞게 몸매가 좋구먼. 37이나 먹었으면 훌륭한 아줌마인데 말이지……) 쏴아아
하치만 (한물가도 유이가하마는 유이가하마, 유키노시타는 유키노시타라는 건가) 쏴아
하치만「햐~ 상쾌하구먼」
유이「어서와―」
유키노「어머, 벌써 다 씻었니?」
하치만「어. 땀이랑 열만 식힌 거…… 엑?」
유이「응? 왜 그래?」
하치만「니들 꼴이 그게 뭐냐?」
유키노「꼴이라니?」
하치만「거의 속옷 차림이잖아? 왜 벗고 있는 건데?」
유이「더워서 좀 벗은 것뿐이야. 그리고 이거 속옷 아니고」
유키노「뭔가 문제라도?」
하치만「당연히 문제 있지」
유키노「러닝셔츠 차림의 하치만이랑 크게 다르지도 않다고 생각하는데?
게다가 이건 속옷도 아니니까 엄밀히 말하면 하치만보다 건전한 차림새라고 생각해」
하치만「아니, 속옷은 아닐지 몰라도 가리고 있는 범위는 압도적으로 적잖냐.
그리고 남녀의 차이란 게 있잖아? 남자는 수영장에서 웃통을 전부 벗지만 여자는 가리는 것처럼」
유이「뭐 어때~ 여긴 우리 집이고, 우리밖에 없고」
유키노「아니면 너무 자극적이라 참지 못하고 범죄자가 될 것 같니?」
하치만「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줌마들아」
유이「그럼 상관 없잖아? 그리고 아줌마 아니고!」
유키노「뭐, 정 참지 못하겠으면 말하렴. 부탁하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으니까」
하치만「부탁하는 것도 웃기다만 부탁하면 옷이라도 다시 껴입는 거냐?」
유키노「난폭한 짐승을 풀어놔서 무고한 여성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오랜 친구가 성범죄자가 되는 건 나로서도 원치 않는 일이고.
그러니까 본의는 아니지만 널 위해 이 한 몸 희생해 줄 수도 있어」
유이「응. 힛키를 위해서라면 나도 괜찮아」
하치만「뭐, 뭐…?」
유키노「게다가…… 지금은 홀몸이기도 하니까. 그렇지? 유이」 싱긋
유이「그렇지~」 싱긋
하치만「……」
유키노「후후. 농담이야」
유이「어? 힛키 얼굴 빨개진 거야?」 쿠쿡
하치만「이것들이 나이를 먹더니 야한 농담만 늘어선……
애당초 이쪽은 그럴 생각도 없거든?」
유키노「어머, 그러니?」
하치만「아까도 말했지만 지금 와서 니들을 이성으로 느끼지도 않는다고」
유이「그렇구나. 그럼 우리도 굳이 옷 챙겨 입을 필요 없겠네?
힛키는 신경 쓰지 않으니까. 히히」
하치만「하아…… 니들 맘대로 해라……」
유키노「하치만도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더우면 그 바지 벗어도 괜찮아」
하치만「됐습니다요」
시즈카(50)「어서 와~ 밥부터 먹을래? 목욕부터 할래? 아니면 나?」
하치만「……」
시즈카「……」
하치만「……」
시즈카「……뭐라고 말 좀 해라」
하치만「……미안. 순간 소―름이 확 돋아서」
시즈카「큭…… 미, 미안하다. 나이 먹고 안 어울리게 주책 부려서」
하치만「아니, 내가 미안해. 모처럼의 개그에 맞장구 못 쳐줘서」
시즈카 (개그가 아니었는데……)
하치만「그건 그렇고 차림세가 왜 그래? 설마 알몸 에이프런이야?」
시즈카「아니, 속옷은 입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나이에 알몸 에이프런은 좀……」
하치만「아뇨, 속옷 에이프런도 좀 그렇다고 봅니다만」
시즈카「더, 더웠으니까……」
하치만「에어컨 켜면 되잖아?」
시즈카「그…… 에너지 절약이라고 할까? 아하하하……」
하치만「에너지 절약입니까. 내 주위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다 왜 이러는지」
시즈카「어?」
하치만「아무 것도 아닙니다. 흐음 알몸 에이프런인가…… 10년 전의 나라면 기뻐했겠지만」
시즈카「으읏…… 젊은 날의 내게는 너무 허들이 높았어」
하치만 (10년 전이면 40이니까 젊지는 않다고 태클 걸면 철권 제재를 당하겠지?) 긁적긁적
하치만「근데 진짜로 갑자기 무슨 일이야? 안 하던 짓을 다 하고」
시즈카「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해본 것뿐이다」
하치만「나참. 무슨 애도 아니고」
시즈카 (부부관계가 소원해질까 봐 불안해서 그런 거라고 어떻게 말하겠어……
뭐가 알몸 에이프런 차림을 하면 좋아 죽는다냐! 2ch 놈들을 믿은 내가 바보지……)
하치만「밥은 먹었어? 안 먹었으면 지금 차려줄게」
시즈카「아, 밥이라면 내가 해놨다. 아직 식사 안 했지? 같이 먹자」
시즈카 (그래, 알몸 에이프런은 실패했지만, 기합을 넣어 만든 요리들이 있으니까!)
하치만「어? 아 이런, 미안. 저녁은 자이모쿠자랑 먹고 왔어. 미리 연락했어야 하는건데」
시즈카「어……? 그, 그래? 7시까지는 돌아오겠다고 해서 안 먹고 올 줄 알았는데……」
하치만「진짜로 미안! 원래는 돌아와서 시즈카랑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자이모쿠자놈이 자긴 점심 안 먹고 나와서 배고프다고 하도 징징거려서 좀 일찍 먹었거든」
시즈카「그, 그랬군……」
하치만「그래서 8시가 되도록 안 먹고 기다렸던 거야? 이런 바보. 그냥 먼저 먹지……」 쓰다듬 쓰다듬
시즈카「아, 아냐. 신경쓰지 마」
하치만「그럼 난 목욕 좀 할게. 저녁 맛있게 먹어」
시즈카「응……」
하치만「후우― 개운하다」
시즈카「하, 하치만」
하치만「응?」
시즈카「오, 오랜만에 같이 술 한 잔 어떨까?」
하치만「어 좋아」
시즈카 (다, 다행이다…… 이것마저 무산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부르르
하치만「밖에 나가서 먹을 거야?」
시즈카「아니, 사다 놓은 술도 있으니까 집에서 오붓하게 마시고 싶은데」
하치만「그런가. 근데 뭘 그렇게 차려입었어? 그거 시즈카의 승부 복장 아니었던가? 입은 거 오랜만에 보네」
시즈카「아니 그 뭐냐…… 잘 차려입고 마시는 게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
하치만「뭐, 분위기는 더 살아날지도 모르겠네. 근데 젊었을 때 입던 그 옷이 아직도 몸에 맞나 보네? 우리 마누라 올~」
시즈카「뭐, 뭐 그렇지~」
시즈카 (사실은 조금만 긴장의 실을 풀어도 옷이 찢어질 것 같다고 어떻게 말하겠어……) 흐읍
하치만「그럼 모처럼이니까 나도 좀 차려입고 올게」
시즈카「그, 그래」후우후웁
하치만「기다렸지― 엥? 왜 불을 다 꺼놨어?」
시즈카「여기야 여기」
하치만「오― 뭐야 이거? 촛불이라니 분위기 있네. 오늘 진짜 무슨 날이야?」
시즈카「꼭 무슨 날이 아니라도 가끔은 괜찮잖아」
하치만「뭐, 그건 그렇지. 이거이거 분위기가 맥주 마실 분위기는 아닌데 혹시 와인이려나?」
시즈카「아하하 정답이다」 스윽
하치만「와인 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편의점에서 파는 저가형 같지는 않은데 얼마짜리야?」
시즈카「그렇게까지 비싼 건 아냐. 2만엔 정도니까」
하치만「아니아니, 비싸다고 생각하는데. 2만 엔이면 MAX 커피가 몇 개냐……」
시즈카「가, 가끔은 괜찮잖아! 2만 엔짜리 술은 따지고 보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라고.
그리고 내 월급도 그렇게 많은 건 아니어도 둘이서 생활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으니까」
하치만「하긴 그것도 그러네. 어쩌다 한 번 산 건데 초 쳐서 미안. 고마워, 잘 마실게」
시즈카「아냐, 나야말로 말도 없이 사서 미안해. 후훗」 뽕
하치만「매번 느끼는 거지만 와인 코크 딸 때 나는 소리는 참 경쾌하단 말이지」
시즈카「그러네」 쪼르르
하치만「오~ 향기 좋네. 아 줘봐. 나도 따라줄게」 쪼르르
시즈카「고마워. 그러면 건배할까?」 지그시
하치만「그래,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지그시 쨍―
시즈카 (좋아, 분위기 괜찮고)
하치만「흐음― 기품 있는 샴 고양이 같은 맛이군」 초진지
시즈카「푸핫! 뭐야 그게」
하치만「어때? 소믈리에 같았어? 옛날에 본 만화에 나온 대사인데」
시즈카「그 만화라면 나도 봤지만 실제로 들으니 웃음만 나오네」
하치만「태평양의 푸른 내음이 입안에서 향긋하게 퍼지느니 뭐니 하며 초밥을 먹는 거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생각하는데」
시즈카「그거야 만화니까 그렇지」
하치만「소믈리에는 실제로 저런 대사를 하던데? 뭐, 방송이라 그랬던 걸지도 모르지만」
시즈카「아하하. 분명 방송이라 그랬던 걸 거야」
시즈카 (모처럼 만든 저녁 식사마저 무산되었을 땐 울고 싶었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지) 활짝
하치만「후우― 잘 마셨다」
시즈카 (13살이나 어린 남편과의 결혼)
하치만「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네」
시즈카 (선생의 몸으로 어린 제자에게 손을 댔다는 세간의 시선은 편치 않았고, 유키노와 유이에 대한 죄악감도 있었다)
하치만「벌써 11시 반인가?」
시즈카 (그러나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그와 결혼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치만「흐음. 내일은 월요일이기도 하고」
시즈카 (하지만 불안한 거야…… 너는 아직도 젊은데 난 벌써 이렇게 늙어버렸다는 게……)
하치만「어제 무리했더니 피곤하기도 하고」
시즈카 (자식이라도 있었다면 이리도 불안하지 않았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자식을 가질 수 없었다)
하치만「내일은 월요일이니까 그냥 일찍 자는 게 나으려나?」
시즈카 (나는 자식 없이 이렇게 둘이 살아도 행복하지만, 혹시 너는 그렇지 않았던 게 아닐까 두려운 거야)
하치만「오늘은 그만 잘까?」
시즈카 (자식도 낳지 못하는 늙은 나에게 질려 다른 여자에게 가버리는 건 아닐까 무서운 거야)
하치만「응?」
시즈카 (벌써 50. 빠르면 손자를 볼 수도 있는 나이)
하치만「시즈카?」
시즈카 (머지않아 할머니 소리를 듣게 될 나이가 돼서 주책없다는 건 스스로도 생각하지만)
하치만「여보세요~?」
시즈카 (나는 아직 너와 사랑을 나누고 싶어. 사랑받고 싶어……!)
시즈카「하, 하치만!!」
하치만「어, 어어」
시즈카「저, 저기 말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그……」
하치만「응?」
시즈카「하, 하지 않을래……?///」
시즈카 (크으…… 마, 말했다/////)
하치만「어? 아, 그…… 미안한데 내가 어제 정력을 너무 많이 소모해서 그런데 다른 날에 하면 안 될까?」
시즈카「!?!?」
하치만「미안해, 모처럼 이렇게 분위기까지 잡아줬는데」
시즈카「저, 저저정력을 소모했다고……?」
하치만「어? 어, 어어」
시즈카「그, 그그 말은 즉, 바, 바바…… 바람……?」
하치만「뭐!? 아, 아냐!」
시즈카「그, 그렇구나…… 나 같은 건 이제 질려버린 거구나……」 글썽
하치만「잠깐! 넌 지금 절대로 오해하고 있어!」
시즈카「하긴…… 하지만은 아직도 젊고…… 난 폐경기까지 와버린 퇴물이니까……」훌쩍
하치만「그러니까 오해래도!」
시즈카「아이도 낳지 못하고…… 버림받아도 어쩔 수 없는 거네…… 아하…하……」 주르륵
하치만「어이 시즈카!!」탁
시즈카「!?」 흠칫
하치만「오해할만한 소리를 한 건 정말 미안한데, 바람 같은 거 아니니까」
시즈카「저, 정말……?」
하치만「애당초 바람을 핀 거면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겠냐? 어제는 그냥…… 폭딸을 친 것뿐이라고……」
시즈카「……」
하치만「아 그 뭐냐…… 얼마 전이 C115였으니까 말이지.
자이모쿠자 그 망할 자식이 이번에 나온 동인지라며 잔뜩 보내줘서 말이야」
시즈카「……」
하치만「그런 걸 보내줘도 민폐지만 이미 와버린 걸 버릴 수도 없고, 뭐처럼이니 그 뭐냐…… 응?」
시즈카「……」
하치만「아무튼 전부 오해니까 울지 마」
시즈카「……」
하치만「아무튼 간에 그런 이유로 오늘은 좀 힘들 것 같으니까 다음에 하자? 응?」
시즈카「……어」
하치만「화풀어. 미안하다 사랑한다」 쪽
시즈카「아……///」
하치만「그럼 난 먼저 잘게」
시즈카「응! ///」
시즈카 (흐윽…… 다행이다…… 폐경기가 왔다고 말한 후로 반응이 예전 같지 않아서……
흐윽…… 다행이다…… 아직도 사랑받고 있어서…… 정말로…………)
시즈카「……」
시즈카 (에에…… 근데 잘 생각해보니까 나와 부부관계는 안 하는데 자위는 한다는 거네?)
시즈카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더라……)
시즈카 (아내로서 사랑은 하지만 성적 대상은 안 된다는 거군요?)
시즈카「크윽…… 쓰라린……!」 (´;ω;`)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