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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기 시리즈


원작 |

2화. 미안하다 하치만. 보증을 섰던게……


​시​즈​카​(​5​0​)​「​미​안​하​다​ 하치만. 보증을 섰던게……」 하치만(37)「」


하치만: 선생님……? 지금 뭐라고 하셨죠……?

시즈카: 그, 그러니까 그…… 사, 사촌 동생의 보증을 섰던 게……

하치만: 뭐……라고……?

시즈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정말로…… 정말로 미안하다……

하치만: 아니아니, 보증이라니? 대체 언제 보증을 섰던 건데? 저 그런 얘기 금시초문인데요?

시즈카: 시, 실은 작년 초에 부탁받아 들어줬었어……

하치만: 진짜냐…… 

시즈카: 미, 미안하다……

하치만: 왜 나한테 말도 없이 그런 일을 한 건데?
 
시즈야: 네, 네게 괜한 걱정을 끼칠까 봐 그랬어. 말하면 분명 반대할 거란 생각도 들었고……

하치만: 그야 물론 반대했겠지……

시즈카: 정말 미안하다…… 설마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사촌 동생에게 뒤통수를 맞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하치만: 생각도 못 했다고? 보증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몰랐다는 거야?
           사촌이 아니라 부모·형제, 부부간에도 해주면 안 되는 게 보증이라고……

시즈카: 미, 미안……

하치만: ……그래서?

시즈카: 어?

하치만: 그래서 떠안은 빚이 얼마나 되는데?

시즈카: 대, 대충 삼천이백만 엔 정도…… 자세한 금액은 이 통지서에 적혀 있어……  스윽

하치만: 오늘 날아온 거야?

시즈카: 도착한 건 이틀 전이야……   

하치만: 이틀 전이라…… 왜 그날 바로 말하지 않은 건데?

시즈카: 미, 미안해……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하치만: 그래서 이틀 전부터 묘하게 표정이 안 좋았던 거군.

시즈카: 미, 미안……

하치만: 귀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당사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 채권자로부터 채권추심을 위임받아
            채무자에 대한 채무이행을 촉구, 재산조사 및 변제금 수령을 통해 부실채권의 사전예방과
            사후관리를 대행하는 채권추심 전문기관으로 채권자 ○○○○에 대한 귀하의 
            채무금 ​8​1​,​4​3​4​,​2​6​0​엔​(​원​금​ ​3​2​,​1​3​2​,​3​4​2​엔​)​이​ 당사로 추심 의뢰되었음을 통지합니다.
        
시즈카: ……

하치만: 후우…… ​3​2​1​3​2​3​4​2​엔​이​라​…​…​        

시즈카: ……

하치만: 지금까지 저금해온 돈과 이 집을 팔아서 나올 돈을 합치면 어떻게 갚을 순 있겠네.

시즈카: ……

하치만: 이 추운 겨울에 길바닥에 나앉을 수도 없으니 어디 작은 단칸방이라도 빌려야 할 테고. 그럴 돈이 되려나 모르겠군.

시즈카: ……

하치만: 아니지, 단칸방으로 이사하게 되면 어차피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거의 가져가지도 못하겠네.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팔면 방 하나 빌릴 돈 정도는 나오겠군.

시즈카: …… 

하치만: 지금까지 모아온 책들도 다 팔아야겠네.
            요즘은 교과서도 전자책으로 나오는 세상이지만, 지금도 종이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
            진작에 절판돼서 레어도가 오른 책들도 있으니 다 팔면 어느 정도 보탬은 되겠지.

시즈카: …… 

하치만: 하하. 이 집에서 뼈를 묻을 거로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팔게 될 줄이야……
            이 집 살 때 빌린 대출금을 다 갚은 지 3년밖에 안 지났는데 말이지…… 
 
시즈카: 크흑…… 미안…… 정말로 미안해……  

하치만: 왜 우는 건데? 지금 울고 싶은 건 나라고……  

시즈카: ……  훌쩍

하치만: ……머리 좀 식히고 올게.

시즈카: ……

하치만: ……   철컹 

시즈카: ……   
 
하치만: ……늦을지도 모르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시즈카: (´;ω;`)




<​술​집>​


자이모쿠자: 흠, 네가 먼저 술 먹자고 연락을 해오다니 별일이군.

하치만: 오늘은 왠지 좀 마시고 싶은 기분이라서 말이지. 
            갑자기 미안하다. 불러내 놓고 말하기도 뭣하다만 바쁘신 몸인데 괜찮았던 거냐?

자이모쿠자: 안 괜찮았다면 이렇게 나오지도 못했겠지. 시간약속이 생명인 업계니까.

하치만: 그것도 그러네. 그래, 요즘은 좀 어떠냐? 먹고살 만하냐?

자이모쿠자: 흠, 나야 늘 그렇지. 많지는 않아도 나 혼자 먹고살기엔 충분해.

하치만: 너 정도면 어느 정도 잘 나가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성우업계가 정말 박봉은 박봉인가 보네.

자이모쿠자: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거지. 너도 알다시피 신인 시절엔 정말 힘들었으니까.

하치만: 그러네. 그땐 정말 장난 아니었지.
            네가 잡초에 마요네즈 뿌려 먹고, 싱크대에서 샤워하는 모습을 봤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뻔했으니까.

자이모쿠자: 후후후, 그때는 정말로 힘들었지. 지금에 와서는 좋은 안줏거리지만.

하치만: 뭐, 라디오에서 우스갯소리로 떠들어대는 걸 보면 그런 모양이네. 위키에도 적혀 있더라?

자이모쿠자: 흠, 필시 나를 흠모하는 팬들이 적어준 것이겠지.

하치만: 밥맛이지만 부정은 못 하겠군. 고등학생 때의 내게 네가 잘나가는 인기성우가 될 거라고 말해준다면 절대로 안 믿겠지.

자이모쿠자: 그렇구나. 나 역시 믿지 못했을 거다.

하치만: 라노베로 대박을 터뜨려 인기성우랑 결혼하겠다는 헛소리나 늘어놓던 놈이 인기성우가 되다니, 인생이란 모를 일이군.

자이모쿠자: 후후, 세상은 요지경이란 거군. 하치만이여, 많이 늦었지만 고맙다. 

하치만: 엉?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자이모쿠자: 굶주린 나를 위해 네가 차려준 한 끼의 식사와 질타가 없었다면 난 분명 도중에 포기했을 거다.
                  지금의 내가 있는 건 전부 네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치만: 밥 몇 번 먹여주고 잔소리 좀 했던 거 가지고 오버하지 마라 자이모쿠자. 
            지금의 네가 있는 건 어디까지나 네가 노력했기 때문이지 내 덕분 같은 게 아니야.

자이모쿠자: 설령 그렇다고 해도 기뻤다. 남의 일에 참견하는 걸 싫어하는 네가 날 위해 쓴소리를 해줬다는 사실이.

하치만: ……  

자이모쿠자: 후후. 네가 주군이자 형제인 나를 돕는 건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하치만: 시끄러. 빨리 술이나 따라.

자이모쿠자: 하치만이여, 네가 나를 돕는 게 당연한 것처럼 내가 널 돕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만약 힘든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내게 도움을 청하도록.

하치만: …… 

하치만: 그것참 고맙구나.

자이모쿠자: 그러면 건배를 해볼까? 우리의 우정을 위하여!

하치만: 나 참. 쓸데없이 좋은 목소리로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자이모쿠자: 꿀꺽꿀꺽…… 후우― 맛좋군.

하치만: ……  

하치만: 야, 자이모쿠자……

자이모쿠자: 음? 

하치만: ……

자이모쿠자: 왜 그러는가?  

하치만: ……아니, 넌 언제 결혼하는 건가 싶어서. 결혼할 생각은 있는 거냐?

자이모쿠자: 크윽, 나도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마음처럼 되질 않아서 말이다.

하치만: 너를 좋아하는 취향도 특이한 여성팬들이 있잖냐? 
            팬하고 결혼하는 경우도 적진 않은 모양이던데 너도 그러지 그러냐?

자이모쿠자: 흠, 인기성우와 결혼하는 건 내 오랜 꿈.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치만: 아직도 그 소리냐? 너도 성우 일을 하고 있으니 성우에 대한 환상 같은 것도 진작에 다 깨진 거 아니냐?

자이모쿠자: 그건 그렇지만 이 업계에 오래 있었더니 목소리에 대한 기준치가 높아져서 말이다. 
                  아무리 얼굴이 예뻐도 목소리가 예쁘지 않으면 안 되는 몸이 되어버린 거다.

하치만: 겉모습은 몰라볼 정도로 달라진 주제에 알맹이는 고등학생 때랑 변함이 없군.  
            역시 인간, 그리 쉽게는 안 변한다는 건가.

자이모쿠자: 그건 그렇고 하치만이여, 내가 요즘 다시 라노베를 집필하고 있는데 언제 한 번 읽고 감상을 들려주지 않겠나?

하치만: 뭐? 또 라노베를 쓰는 거냐? 성우 일은 어쩌고?

자이모쿠자: 물론 어디까지나 부업 차원에서 쓰는 거다. 
                  후후후, 생각해 봐라. 현역 인기성우가 쓴 라노베가 출판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홍보가 될 것이다.
                  게다가 애니화에 성공한다면 성우의 몸으로 내 취향의 성우를 발탁할 수도 있는 거다.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하치만: 재미있는 있겠네. 뭐,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자이모쿠자: 후후후. 하치만이여, 원한다면 네가 희망하는 성우를 써줄 수도 있다.

하치만: 흥, 원고나 완성하고 나서 지껄여라.




<늦은 밤 히키가야 집>


하치만: ……   철컹

시즈카: 어, 어서와.

하치만: ……

시즈카: 아……

하치만: ……

시즈카: 바, 밖이 많이 추웠지? 따뜻한 커피라도 타줄까?

하치만: 됐어.

시즈카: 어, 어……

하치만: 난 씻고 바로 잘 거니까. 너도 내일 출근해야 하잖아?

시즈카: 그, 그러네.

하치만: ……   탁

시즈카: ……

시즈카 (이렇게 차가운 하치만은 처음이다……)

시즈카 (부부로서 함께 지낸 지난 15년, 싸웠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
            누구나가 인정하는 금실 좋은 부부였는데…… 그랬는데……)

시즈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네…… 그런 짓을 저지르고 말았으니까……

시즈카: 흐윽……
 




<주말 유이가하마 집>


유이: 힛키, 어때? 제법 많이 늘었지?

하치만: 뭐, 나쁘진 않네.

유이: 아하하, 나쁘진 않은 정도구나. 힛키의 점수는 여전히 짜네.

하치만: 나 정도의 주부의 프로가 되면 입맛도 높다고. 아직 갈 길이 멀었어.
        
유이: 그렇구나……

하치만: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너와 비교하면 정말 천지 차이다. 노력 많이 했구나. 유이      쓰다듬 쓰다듬

유이: 히, 힛키……!  ///

하치만: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여기까지 올라왔으면 이제는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겠지. 
            네게 요리를 가르쳐주는 건 오늘까지야. 이젠 하산이다.

유이: 어? 하산이라니, 이렇게 갑자기…… 아직 좀 더 가르쳐줬으면 좋겠는데……

하치만: 3개월이나 가르쳐줬으면 됐잖아?

유이: 그건 그렇지만 실제로 가르쳐준 횟수로 따지면 그렇게 많지 않고.
         힛키, 나한테 요리 가르쳐주는 거 이젠 귀찮아졌어?

하치만: 뭔 소리를 하는 거냐? 귀찮은 거야 처음부터 귀찮았다고.

유이: 힛키, 너무해!

하치만: 농담이다. 딱히 귀찮아져서 그런 건 아니야. 
            나도 바쁜 몸이니까 말이지. 앞으로는 지금처럼 너희 집까지 찾아와 요리를 가르쳐줄 여유가 없을 것 같거든.

유이: 어? 바쁘다니? 힛키, 전업주부잖아?

하치만: 너 지금 전업주부 무시하냐? 게으름 피운다면 모를까, 전업주부도 이래저래 바쁘다고.

유이: 그건 아니지만,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까…… 혹시 무슨 일 있어?

하치만: 아니, 아무것도 없어.

유이: 그럼 왜 갑자기 시간이 없어진 건데?

하치만: 그 뭐냐, 나도 밖에서 일이나 좀 해볼까 해서 말이야.

유이: 뭐!? 일한다고!? 힛키, 역시 무슨 일 있구나!

하치만: 야야, 내가 일을 하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이냐? 그런 거 아니라고. 그냥 집안일만 하는 게 질린 것뿐이다. 

유이: ……  지그시

하치만: 나 참. 나도 신용 못받는군.

유이: 그렇지만 힛키, 일하기 싫어서 전업주부가 됐을 정도고. 일하면 지는 거라는 소리를 당당하게 말했을 정도고.

하치만: 그땐 나도 철이 없었으니까 말이지.

유이: 힛키, 역시 무슨 일 있지? 무슨 일 있으면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하치만: ……

유이: ……  지그시

하치만: ……실은 말이야.

유이: 응.

하치만: 요즘 시즈카가 게임 살 돈을 잘 안 주거든. 

유이: 어?

하치만: 이 나이에 게임 사게 돈 좀 달라고 하는 것도 좀 그래서 말이지. 내가 쓸 돈 정도는 직접 벌까 생각한 것뿐이야.

유이: ……

하치만: ……   긁적긁적

유이: 뭐야 그거…… 걱정해서 손해 봤어……

하치만: 그러니까 말했잖아. 아무 일도 없다고.

유이: 그런 점은 정말 변하지 않는구나……

하치만: 인간,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라고.

유이: 응, 정말 그러네.




<히키가야 집>

하치만: ……  철컹

시즈카: 어서 와.

하치만: ……어.

시즈카: 저, 저기……

하치만: ……왜?

시즈카: 아, 아무것도 아냐……

시즈카 (벌써 5일째 하치만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있다……)

하치만: ……

시즈카 (5일밖에 안 지났는데 책장의 책들은 벌써 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소장용과 감상용을 따로 사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책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는데……)

하치만: 이거랑 이거는 그냥 헌책방에 팔아야겠네. 이거는……

시즈카 (언제라도 할 수 있도록 TV 선반에 넣어뒀던 PS7도 어느새 박스에 담겨있다. 분명 이것도 팔려는 거겠지……
            생일선물로 사줬을 땐 어린아이처럼 기뻐했었는데…… 하치만의 그런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치만: 어디 보자……

시즈카 (겨우 종이 쪼가리 한 장이 왔을 뿐인데…… 
            노후를 위해 열심히 모았던 돈이…… 하치만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집이…… 마음이…… 점점 사라져가……)

하치만: 이거라면 경매로 올리는 게 낫겠군.

시즈카 (15년인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하치만: 이거는……

시즈카 (행복했던 시간은 이젠 끝난 거네……)

시즈카: 흐윽……




<다음날 어느 커피점>


유키노: 안녕 하치만군. 오래 기다렸니?

하치만: 아니, 나도 좀 전에 막 왔어. 

유키노: 그래.

하치만: 웬일이냐? 이런 평일 날 네가 먼저 보자고 다하고. 

유키노: 어머, 평일에는 보자고 하면 안 되는 거니? 혹시 나는 주말만의 관계였던 걸까?

하치만: 주말만의 관계라니,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라.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유키노: 오해받더라도 나는 별로 상관없는데?

하치만: 네가 상관없더라도 나는 상관있거든?

유키노: 후후, 그러네. 하치만군은 나와 달리 임자가 있는 몸이었네.

하치만: 참나. 근데 너 평일에는 일 때문에 바쁜 거 아니었냐?

유키노: 그래, 여유가 있는 건 아니야.

하치만: 그렇게 바쁜 네가 이런 평일 날, 그것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보자고 하다니…… 혹시 무슨 일 있냐?

유키노: 그러네. 확실히 무슨 일이 있긴 해.

하치만: 무슨 일인데?

유키노: 글쎄, 무슨 일인지 알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네가 아닐까? 하치만군.

하치만: 뭐?

유키노: 유이에게 들었어. 네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고.

하치만: ……

유키노: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하치만 (유이 녀석……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는……)

하치만: 야야, 내가 일 좀 해보겠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이냐? 딱히 아무 일도 없다고.

유키노: 거짓말이네. 하치만군,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하치만: 유이가 착각한 것뿐이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다고.

유키노: 그래, 말할 생각이 없는 거네. 그런 점은 정말 변하질 않는구나.

하치만: ……

유키노: 하지만 나와 유이는 고등학생 때와는 달라. 오래전 그랬던 것처럼은 되지 않을 거라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하치만: ……

유키노: 네가 말해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아. 결국은 시간만 차이 날 뿐이지. 
            나와 유이는 네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내고, 도울 거야. 

하치만: 유키노……

유키노: 하지만 기왕이면 네 입으로 직접 듣고 싶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하치만: ……

유키노: 하치만군, 우리를 믿을 수 없는 거니?

하치만: 그런 게 아니야……

유키노: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건 우리뿐이었던 거야?

하치만: 그런 게 아니야……

유키노: 그렇다면 어째서 말해주지 않는 거니? 

하치만: ……

유키노: ……

하치만: 너희가 소중한 친구기 때문에 더더욱 말할 수 없는 거다.

유키노: 하치만군, 너는 몇 번이고 나와 유이를 도와줬어. 우리는 몇 번이나 네게 구원받았어.
            그런데 넌 왜 우리의 도움은 안 받으려고 하는 거니?

하치만: 그 시절과는 달라. 너희의 마음은 고맙지만,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유키노: 도와줄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건 나야. 

하치만: ……

하치만: 배고픈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게 봉사부의 모토였지.
            그런데 만약 잡을 물고기가 없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유키노: ……

하치만: 물고기를 주는 건 봉사부의 정신에 어긋나. 게다가 혼자 먹을 물고기도 부족하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 그걸 나눠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아무리 상대가 친한 친구라 해도, 아니,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더더욱.

유키노: 그러네, 확실히 물고기를 주는 건 봉사부의 정신에 어긋나. 하지만 이 문제는 봉사부의 일이 아니지.

하치만: ……
 
유키노: 그리고 하치만군, 우리를 너무 우습게 보지 말아줄래? 우리는 너를 위해서라면 내 몫의 물고기도 기꺼이 줄 수 있어.

하치만: 말만이라도 기쁘군……

유키노: 말만이 아니야. 내가 허언을 하지 않는다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하치만: ……

하치만: 그렇구나.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거짓말도 기만도 하지 않는 녀석이니까.
            신부는 신랑을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하겠느냐는 주례에 말에 끝까지 대답하지 않을 정도로 옹고집이니까 말이지. 

유키노: 하지만 정말로 사랑하지 않았는걸. 사랑하지 않는데 평생 사랑하겠다고 할 순 없잖니?

하치만: 그럴 거면 애초에 결혼하지 말았어야지.

유키노: 부모님께 강요받았으니까. 게다가 그때는 자포자기하고 있었거든. 하늘이 무너져내린 심정이었으니까.

하치만: ……

유키노: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 슬슬 말해주지 않겠니? 

하치만: 하아…… 어쩔 수 없군……
            실은 예전에 섰던 보증 때문에 거액의 빚을 지게 됐어.

유키노: 보증? 보증을 섰다고?

하치만: 그래.

유키노: 하치만군, 네가 그렇게까지 어리석을 줄은 몰랐어. 보증을 선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몰랐던 거니?

하치만: 나도 알고 있다고.

유키노: 그럼 왜 보증 같은 걸 선거야? 더는 자기희생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잖아?
        
하치만: 야야, 왜 내가 선거라고 단정하는 건데? 내가 보증을 서주는 건 이 세상에서 코마치 하나뿐이다.
            뭐, 코마치는 나한테 보증 서달라는 얘기 같은 건 절대로 안 하겠지만.

유키노: 그럼 설마 시즈카 선생님이……?

하치만: 하아…… 작년 초에 나 몰래 사촌 동생의 보증을 서줬던 모양이야. 근데 그 사촌 동생이란 인간은 야반도주.
            결국, 그 빚을 우리가 떠맡게 되었다 이거다. 

유키노: ……

하치만: 너희에게만은 알리고 싶지 않았어. 말해봐야 걱정만 끼칠 뿐이니까. 너희가 나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건 싫다고.

유키노: 빚은 얼마나 되니?

하치만: 삼천이백만 엔 정도. 뭐, 노후용으로 모아온 돈이랑 지금 사는 집을 팔면 어떻게든 갚을 수 있을 거다.
            몇억 엔이나 빚을 떠안게 된 경우도 있는 모양이던데 그에 비하면 양반이지.

유키노: 집을 팔면 선생님이랑 너는 어디서 살려고?

하치만: 뭐, 근처에 있는 값싼 단칸방이라도 알아봐야겠지. 시즈카가 다니고 있는 학교도 있으니 너무 멀리는 못 가니까.

유키노: 단칸방이라니……

하치만: 야야, 그렇게 심각한 표정하지 말라고. 자다가 물벼락 맞은 기분이긴 하지만 죽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니까.
            자이모쿠자 같은 건 잡초에 마요네즈를 발라먹고, 싱크대에서 샤워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그거에 비하면 양반이지.               

유키노: ……

하치만: 뭐, 신경 쓰지 말라는 게 무리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너무 신경 쓰지 마. 정말로 괜찮으니까. 

유키노: 하치만군……

하치만: 앞으론 나도 일할 거고, 둘이서 돈을 벌면 금방 다시 좋은 집으로 옮길 수 있겠지.
            양육해야 하는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유키노: 그래……

하치만: 그리고 혹시 또 모르잖냐? 보증 때문에 쪽박 찬 후에 어디 복권이라도 당첨돼서 부자가 될지도.
            그러니까 유키노, 그런 표정 짓지 마.

유키노: ……

하치만: 이 얘기는 이걸로 끝이다. 유이에게는 너무 걱정하지 않게 네가 잘 전해줘.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이다. 특히 코마치에겐 절대로 말하지 마. 걘 출산도 멀지 않았으니까.

유키노: ……하치만군.

하치만: 엉?

유키노: ……

유키노: 괜찮다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지 않겠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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