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1. 지하세계의 벽돌 굼벵이
1-2. 쓰레기장의 궁전
1-3. 그녀가 부탁했던 길
에필로그
외전-찌예 이야기
1-2. 쓰레기장의 궁전 (1)
한동안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실험실 안에 있는, 수상한 액체로 가득 찬 유리관 속에서 머물렀다. 상당히 끈적거리고 이상한 냄새가 날 듯한 액체였지만 감각기관이 없는 탓에 뭘 알 수가 있나.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있다. 안구가 없어도 혼이 영혼석에 깃들어 있는지라 상황을 살필 수 있었다.
어지러운 주변의 정경은 그야말로 영화나 만화에서 볼 수 있는 사이코 과학자의 전형이다. 난장판으로 구르는 기재 속에서도 용케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마다 찾아내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더 재밌는 사실은 생물의 몸이 그 과학자에게는 기계 부품이나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지금도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팔다리를 살펴보며, 마치 자동차 정비업소의 기술자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아무래도 내게 끼워 맞출 ‘부품’을 찾는 듯했다.
“낄낄낄. 간만에 재미가 좀 있는걸. 그냥 좀비야 많이 만들어 봤고 흔하니, 복합소재의 합성 좀비를 만들어 볼까? 그건 나도 처음인데 어느 정도 능력을 발휘해 줄지 모르겠군.”
저기요, 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입이 없는 게 한스러웠다. 설령 불렀어도 저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틀림없이 무시했겠지. 이미 자신만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버린 듯했다.
어릴 때 비행기 모형 같은 조립식 장난감을 구하면, 한동안은 완전히 정신을 놓지 않는가? 마치 그것과 비슷했다. 대신 그가 날 연휴가 끝나 친척집을 떠날 때면 소중히 만든 게 무색하게 버리고 왔던 비행기처럼 취급하지 않길 바랄 따름이었다.
“맞아. 요즘 늙어서 그런지 힘이 부치는군. 조수로 부릴 똘똘한 놈이 필요하지. 그건 그렇고 너무 스펙을 높게 만들면 문제가 되려나? 아니지, 킥킥. 영혼 속박을 걸면 꼭두각시에 불과해. 맞아, 그래.”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궁금증을 참기 힘들었지만 딱히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었기에 물끄러미 그가 하는 꼴을 지켜보았다.
그는 냉장고 비슷한 시설에서 여러 신체 부품들을 갖고 나와 주변에 어지럽게 늘어놓았다. 일부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시 가져다 놓기도 하고 한동안 부산을 떨었다.
구경하고 있자니 마치 레진킷의 부품을 늘어놓고 완성된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사람 같았다. 그 뒤로도 제법 부지런히 움직이던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돌연 혀를 찼다.
“역시 재료가 완벽하지 않구먼. 그래도 이 정도로도 충분히 쓸 만한 녀석을 만들 수 있겠어! 누가 만들고 있는데! 암만!”
머리, 몸통, 두 개의 팔, 두 개의 다리.
모두 다 다른 존재의 것이었다.
일단 몸통이 무척 독특했다. 흉부는 튼튼한 사내의 것과 다르지 않았는데, 문제는 그 아래 허리였다.
내장이나 여타 기관들이 아예 없었다. 그저 척추 뼈 하나만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로테스크하군.
속으로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척추 뼈가 금속 재질과 비슷한 느낌으로 무척 굵고 단단해 보인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전 주인이 궁금해진다.
두 다리는 서로 길이가 안 맞아서 문제로 보였는데, 그건 곧 열정적인 매드 사이언티스트 님께서 해결해 주셨다.
맙소사!
톱으로 썰고 있잖아!
슥삭슥삭. 갈수록 엽기 토막 살인의 현장이 되는 것 같아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팔도 가관이었다. 팔의 한쪽은 무난한 성인 남성의 것이었는데, 다른 쪽이 문제였다.
집게발이다…….
내가 무슨 가재냐.
전력으로 항의하고 싶었지만 내 영혼석은 주인의 감정과 달리 고요하게 떠 있을 뿐이었다.
“낄낄. 이 집게발로 적을 격퇴할 수 있겠지. 옳지! 이 녀석에게 내 조수 겸 경호를 맡기는 거야.”
마지막으로 얼굴은 창백해 보이긴 했는데, 날카로운 인상의 미남자였다.
굉장하네. 여기 오기 전의 나보다 백배는 잘 생겼어. 유일하게 그거 하나만은 마음에 들었다. 그래봐야 시체 얼굴이지만 우수에 젖은 표정이 약간 멋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슬슬 가조립이라도 해볼까? 이후에는 조율하고 안정화 작업을 진행하면 될 거야.”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끊임없이 혼잣말로 자기 자신에게 진행 상태를 보고했다.
이 사람….
친구가 없구나.
어쩐지 동정심이 일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섣불리 갖기에 그는 위험하고 가학적이며 잔인해 보였다.
어쨌거나 마족이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이런 쓰레기장 구석에 박혀 있어도 마족은 마족이다. 지금이야 내가 영혼석 상태니 유리관 안에 대충 박아 놨지만, 육체를 갖고 활동할 때는 무서운 주인님이 될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영혼 속박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끔찍한 짓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참고 기다리면 반드시 때가 올 것이다. 적어도 벽돌 굼벵이 시절의 그 한없는 절망보다 지금의 처지는 훨씬 좋았다.
눈을 번뜩이고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다. 이미 이 이상한 세계에서의 삶은 현실이 됐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계속 움직였다. 자기 자신의 작업에 홀린 듯 보였다. 이쪽에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다. 덕분에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갔다.
생각이 많아지니 의문이 피어올랐다.
나는 왜?
어떡해서 벽돌 굼벵이면서도 지성을 잃지 않았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섣부르게 결론을 내리긴 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