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1. 지하세계의 벽돌 굼벵이
1-2. 쓰레기장의 궁전
1-3. 그녀가 부탁했던 길
에필로그
외전-찌예 이야기
1-2. 쓰레기장의 궁전 (2)
그로부터 나흘 뒤, 마침내 내 영혼석이 들어갈 육체가 완성되었다.
날카로운 인상의 미남자의 육체에, 허리 부분의 척추는 훤하게 드러났고, 왼팔은 집게발이다. 기괴하긴 해도, 지하세계 기준으로는 나름 괜찮은가? 어쩐지 포스 있어 보이기도 하고.
“후우, 한숨 돌렸군. 역시 내가 만든 것이지만 빼어난 솜씨야. 낄낄낄. 다른 놈들은 이런 이 몸의 위대함을 몰라준다니까.”
그는 자기 나름대로 이 분야에 쌓은 실력이 꽤 있는 듯했다. 하지만 주류에서 벗어나 이런 쓰레기장 근처에서 실험실을 만들어 살아가는 꼴을 보면, 진짜 제대로 된 마족 과학자에 비해 삼류이리라.
원래 재야의 인사치고 멀쩡한 부류가 없는 법이다. 소설에나 숨은 고수가 나오지, 은거기인이란 실제로는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낙오자들이 보통이다. 최신 기법이나 연구에서 멀어져서는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에 빠져 간다. 물론 그러다가 그 특이한 개성 덕에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자! 이제 그럼 영혼석을 업그레이드해야겠구먼!”
그동안 들은 게 있어 이제 그가 뭘 하려는지 알았다.
새로 만들어진 육체는 괜찮아 보인다. 적어도 좀비 감독관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런 육체에 영혼석이 안착하기 위해서는, 영혼석도 나름의 격에 맞을 필요가 있었다.
현재 내 영혼석은 벽돌 굼벵이의 것이니 그야말로 폐기처분해도 마땅한 수준. 그나마 영혼이 깃들어 있는 영혼석이란 점에 메리트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처럼 영혼이 깃든 영혼석을 구하기란 의외로 어렵다는 걸 그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몇 번이나 운이 좋았다고 헤벌쭉 웃어 댔다. 벽돌 굼벵이의 영혼석은 보통, 육체가 죽은 사이에 깃든 영혼이 부화장으로 재빠르게 이탈해 버리기 때문이다.
“자, 시작해 보실까.”
광기에 찬 얼굴로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내 영혼석이 든 유리관을 집어 올렸다.
부디, 살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뭐냐, 영혼 속박인가 하는 괴상한 시술은 재고 좀 해 줬으면 하는데 말이죠.
속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열심히 영혼석 유착 과정에 집중했다. 곧이어 그는 날 통째로 들어올렸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작은 돌멩이 정도여서 쑥, 하고 딸려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 후,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특별한 공정을 반복해 내 영혼석을 강화시켰다. 새로운 육체의 격에 어울리게 영혼석을 바꾸는 작업이었다. 듣기로는 어느 정도 호환이 되면 기존 영혼석을 새 육체에 바로 집어넣을 수도 있을 법했지만, 벽돌 굼벵이의 영혼석은 너무 저급이라 어림도 없다고 했다.
얼마 후 내 영혼석은 잡석과도 같은 형태에서 옥과 비슷하게 은은한 빛을 뿌리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또한 크기 역시 커졌고 말이다.
영감탱이. 신경 좀 썼잖아?
그리고 얼마 뒤 그는 날 조심스럽게 들어 새로운 육체의 심장 안에 집어넣었다.
뭐야, 좀비의 약점은 머리가 아니라 심장이었나? 좀비 영화에서는 보통 머리를 까부수면 끝나던데 말이야.
아무래도 영혼석을 가진 존재라 그런지 이쪽 세계의 좀비들은 달라도 뭔가 다른 듯했다. 정신이 이상해 보이긴 했지만 말도 할 수 있고 말이야.
그러나 곧 그런 한가한 생각을 더는 할 수 없었다. 온몸을 조여 오는 괴상한 감각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혼이 몸에 유착하는 경과는 참으로 기괴하고 신비로웠다. 점점 신경이 이어져 가며 몸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과정. 그리고 작은 돌멩이로서 세상을 보다가 이족보행의 생물로 돌아가는 느낌은 참 희한했다. 유리관 속이 조금 편했나, 싶을 정도의 약간의 저항감이 계속되었다.
몇 시간 후 모든 과정이 끝났고, 자신만만한 얼굴로 날 보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앞에서 눈을 뜰 수 있었다.
“어떤가? 기분은? 크하하하핫! 끌끌끌. 이 몸이 만들었으니 훌륭하겠지!”
현재 나는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듣기가 가능했고, 그 덕에 줄곧 그의 말을 알아들어 왔다. 그러나 전술했었던 바와 같이 말하기, 쓰기, 읽기는 어림도 없었다. 뭣보다 이 세계의 문자는 내 눈으로 보기에 종이 위에 지렁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때문에 모처럼 진화 아닌 진화를 한 덕에 성대를 갖게 되었지만 제대로 그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직 적응이 안 된 탓에 목에서는 어눌한 한국어가 튀어나왔고,매드 사이언티스트는 크게 당황했다.
“엥? 그건 어느 종족의 말이지?”
“$%#@$^%^”
다시 한국말로 대답하자 그는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망할! 바로 하인으로 부리려고 했는데, 굼벵이 몸에 들어갔던 영혼이 아주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인가 보군. 이 천재께서 못 알아들을 정도로 이상한 언어를 쓰다니 말이야. 대체 뭐하는 놈이야?”
곧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들고 있던 봉으로 내 머리를 기분 나쁘게 톡톡 때리며 물었다.
“이 쓸모없는 천것아. 땅밑 공용어를 모르느냐? 아니면 마족어나 지하 드워프어는? 아니면 다크 엘프나 그림자 용의 말은?”
스스로 천재라고 했듯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아는 언어가 상당히 많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언어적인 능력이 비범했다면, 여기 말고 노량진 학원가에 가보지 그랬냐. 돈을 바가지로 긁어모을 텐데.
여담이지만 노량진의 잘나가는 강사들이 가끔 수업 중에 뜻 모를 웃음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누가 말하길 강남에 사 놓은 빌딩이 생각나서 그런다고 했다. 아니면 눈앞에 있는 호구들이 갖다 바치는 돈에 기뻐서 웃었든가.
“&^%@%@$(노량진에 가서 살아).”
“이이잇!”
다시 한국말을 하자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역정을 내었다. 아무래도 그를 더 자극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해 이 말 이후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무척이나 열이 오르는지 곧 그의 새파란 두 눈에서 번개가 튀어 오르고, 입에서 불길이 넘실거렸다. 내심 그 마력의 향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의 존재를 그간의 경망스러운 행동 탓에 은근 얕잡아 보고 있었는데, 철저한 오산이었다는 점을 실감했다.
눈앞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마족이었다.
비록 밀려나 볼품없는 위치에 있다고 해도, 마족은 마족이었다. 지금 꽤 강한 육체를 얻었다고 하나 그의 무력에 상대도 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게다가 나는 마력도 다룰 줄 모른다.
“끄으읏. 할 수 없구먼.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치는 수밖에….”
불만을 터뜨린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눈은 일순간 두려울 정도로 번뜩였다.
“네 머리가 충분이 좋아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앞으로 상당히 괴로울 테니. 낄낄낄. 나는 어디에서나 기다리지 못 하는 성격이란 얘기를 듣거든.”
그의 말에 정신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뭐야? 알아듣는 거냐? 아니, 그럴 리가 없겠지. 그냥 의미만 전달된 건가? 끌끌. 눈치가 빠른 놈인가 보군. 그래, 난 그런 놈은 싫어하지 않아.”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들고 있는 봉으로 내 몸을 쿡쿡 쑤시며 가학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마음에 안 들긴 했으나 지금은 방법이 없어 나는 최대한 순종적인 기척을 보였다. 물론 속으로 이를 갈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날 벽돌 굼벵이에서 구해서 이렇게 근사한 몸에 이식해 준 점은 감사한다.
아니, 이 그로테스크한 몸을 근사하다고 생각하다니, 내 감성도 참… 꽤나 이 세계에 적응했군.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간 본 놈들이라곤 같은 벽돌 굼벵이 동료들, 좀비 감독관, 한 번 다녀간 하급 마족 정도니, 사실 이 육체는 꽤 빛나는 비주얼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얼굴은 시크하게 잘 생겼으니. 물론 깊은 다크서클에 시체에게서나 볼 수 있는 창백함이 결코 상큼한 미남이라 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반쯤 썩고 있는 좀비 입장에서는 찬양할 정도의 미남자였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좀비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좀비가 되었다.
“좋아. 그 문제는 그렇게 하고 일단 네놈에게 영혼 속박을 걸어야겠구먼. 말을 잘 듣게 생기긴 했다만 역시 입맛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게 제일이지. 낄낄!”
이쪽은 전혀 안 좋은데.
불만 가득한 내 얼굴을 무시하고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다시 뭔가를 준비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에게 달려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 속박이라니.
그게 걸리면 완전 끝장일 듯한 예감이 물씬 풍겼다.
하지만 별 수가 없었다. 일단 팔다리는 모두 잘 묶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심성이 많은 놈이었군.
“좋아, 바로 진행해 주마! 원, 녀석도 참. 그렇게 기쁜 것이냐? 낄낄. 하긴 이 이름 높은 대과학자님의 수하가 될 것이니 싫을 리가 없다.”
시체임에도 다시 새파랗게 질려가는 내 얼굴을 보며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더없이 흡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서둘러 준비를 한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곧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아아아! 안 돼!
이렇게 의지를 잃은 꼭두각시가 될 수 없어!
놀라서 발버둥을 치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유쾌한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핫! 나는 루제플 마이드낚쓰다! 앞으로 네놈이 모셔야 할 분이니 잘 기억해 둬라!”
됐다. 네 이름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아니, 그건 그렇고……, 쟤나 나나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기분인데.
어라?
뭐야?
영혼 속박.
걸리지 않았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