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붙잡고
『잠깐, 칸나즈키 군. 어째서 그렇게 나한테 얽메이는 거야?』
『상관 없잖아, 그런거. 선배하곤 관계없으니까―.』
『관계 없을 리 없잖아. 내 눈에 닿도록 일부러 그러는 거 아냐?』
나는 눈앞의 남자애에게 분노를 터뜨렸다. 이 분노의 원인은, 틀림없이 눈앞에 있는 남자애. 후배고, 조금 밉살스럽지만 정말로 미워할 수는 없고, 얼마 전부터 아무래도 신경 쓰여서 어쩔 수 없는.
눈치챘을 때는 시끄러운 그의 모습을 눈으로 좇곤 한다. 있으면 있는 대로 시끄럽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왠지 화나서 어쨌든지 나를 어지럽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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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 선배 좋아하니까.』
『에에에에에에엣?』
생각지도 못했던 고백.
그래도 그 순간에 나도 깨달아 버렸다.
계속 계속 신경쓰이는 존재긴 했다. 1학년 아랜데도 불구하고 내게 얽혀오는 남자. 건방진 소릴 하거나, 나를 놀리거나 하는 걸 되풀이하는 동안 나도 서서히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갔다.
그래, 나 자신도, 그가――――
“―――――라니, 우와아아아앗!”
내가 읽고 있던 문고본을 집어 던지고, 베개에 머리를 묻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지금 여기는 내 방 침대 위. 오늘 막 사온 코스모스 문고의 최신간을 읽고 있었는데 그게 하필 후배인 남자애에게 사랑에 빠져버리는 러브 코미디여서, 성격같은 건 전혀 다르지만 후배 남자가 유키 군, 그리고 주인공 소녀가 자신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버렸다.
전날 축제에서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 되살아난다. 모처럼 안정이 찾아왔었는데, 이래서는 도로아미타불이다.
집중력이 낮아져 검을 움직일 때도 날카로움이 줄어든 느낌이라 기분 전환으로 독서를 하고 있었는데, 이래서는 완전히 역효과지 않은가.
나는 베개에서 고개를 약간 들곤, 그 문고본에 원망스런듯한 눈길을 보낸다. (물론 책에겐 아무런 죄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책상 서랍 안에는 그날 받은 영화 티켓이 들어있다. 그 이래로 딱히 연락이 오지도 않았는데, 정말로 자신을 권할 생각은 있는 걸까. 그때는 단순히 그 자리의 기세로 말해 버렸던 것 뿐이지 않을까.
“그래……분명, 그럴 거야.”
자기자신을 설득하듯 말하며, 양팔을 짚고 상반신을 일으킨다. 딱 코브라자세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래, 분명 그럴 거다. 누가 좋아서 ‘미스터 릴리안’같은 칭호를 받은 자신을 권하거나 할까. 우연히 그때 함께 있던 게 나였으니 말을 꺼낸 것뿐이겠지. 그래도 정말 그랬다면 티켓을 주거나 하려나? 진심이 아니라면 말만으로 약속하고 티켓은 두장 다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 된다. 그래도 유키 군이 그런 걸 할 것 같지는 않고.
이렇게 결국, 수렁에 빠져가듯 고민은 깊어갈 뿐.
그야 분명 겉보기완 반대로 소녀 취미라서 코스모스 문고에서 묘사하는 두근두근거리는 연애를 꿈꿀 때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그런 일이 없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픽션은 픽션,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인 거니까.
그래도, 혹시나―――.
“―――레이, 오늘은 학교 가는 날 아니었니? 점심밥, 먹고 가야지.”
계단 아래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 번뜩 깨닫는다.
그래. 지금은 아직 여름방학 중이지만, 학교 축제를 맞아 협의나 준비 등 산백합회의 활동이 있기에 오후부터 장미관에 모이는 걸로 되어 있다.
일단 생각을 끊는다.
“예―, 지금 갈게요.”
뭐든 작업에 집중하고 있으면 쓸데없는 생각은 안 해도 되겠지. 도피라는 건 알고 있지만, 어디든지 탈출구를 찾는 걸 피할 수 없었다.
장미관에서 학교 축제와 하나데라 학원의 축제에 대해 얼추 이야기를 마친 뒤의 다과 시간에, 갑자기 그 화제가 흘러나왔다.
말을 꺼낸 건 노리코 쨩이었다.
“유미 님. 유키 씨의, 좋아하는 타입같은 건 알고 계신가요?”
들은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의 눈이 일제히 노리코 쨩을 향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고, 오히려 제일 동요한 건 나였을지도 모른다. 다행이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책을 읽고 있었기에, 표정 같은 걸 누가 볼 일은 없었다.
덧붙여서 사치코는 집에 볼일이 있어서 먼저 귀가했기에, 이 자리엔 없다. 사치코가 있었다면 하기 힘들만한 이야기고.
처음에 침묵을 깬 건 요시노였다.
“……노리코 쨩의 타입은, 그런 남자애였구나.”
“아, 아뇨, 아니에요.”
노리코 쨩은 바로 부정하듯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부끄러워하지도 당황하지도 않은 채로 그렇게나 냉정하게 거절하면, 왠지 좀 유키 군이 불쌍한 기분도 든다.
“요즘 학교 축제 준비로 릴리안에 여러 번 오시잖아요. 그걸 본 반 친구가 아무래도 팬이 된 모양이라, 물어봐 줬으면 싶어 해서요.”
“헤에―, 신기한 애도 다 있구나.”
유미 쨩이 감탄하듯 말했다.
나는 마음에 없는 척을 하며 모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구나, 팬인 여자애가 있는 건가……확실히 남자애 치곤 귀엽게 생겼으니, 그런 애가 있어도 이상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특히 릴리안 안에선 동년배의 남자 모습은 굉장히 눈에 띄고, 인상에도 남기 쉽다.
“뭐야―, 그런 건가.”
요시노는 재미없는 듯 홍차에 입을 댔다. 과연 노리코 쨩이 유키 군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어떤 파란불짓을 보여줬을런지.
“음―.”
거기에 반해 유미 쨩은 뭔가 고민에 잠겨 있다. 잠시 뒤 숙였던 고개를 들곤, 입을 열었다.
“……아, 생각났다.”
그 한 마디에 요시노, 시마코, 노리코 쨩의 눈이 유미 쨩 쪽을 향한다.
“유키, 레이 님을 좋아한다고 말했었어.”
“―――――――에?!”
그때까지 시치미 떼고 문고본에 눈을 향하고 있었(던 척을 하고 있었)지만, 급작스런 이야기에 나는 홍차를 내뿜어 버렸다.
“나, 나?!”
눈을 크게 뜨고 큰 소리를 낸다. 아무래도 평소에 검도로 단련하고 있기도 해서, 소리는 크고 잘 들린다. 아니, 그런 건 별로 어쨌든 됐고,
“아아, 그랬구나.”
“헤에, 연상 취향이었나요.”
“자, 잠깐 레이 쨩, 무슨 소리야?!”
“나, 나한테 말해봐야, 잠깐, 요시노, 침착해.”
다들 제각기 떠들기 시작한데다 요시노는 굉장히 험학한 기세로 다가왔지만, 나도 무슨 소린지 모르는데.
―――그보다!
에, 유, 유키 군이, 나를 좋아한다고?! 그, 그건 역시, 그 영화 권유는 진심이었던 걸까. 설마 유미 쨩이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것 같진 않고, 진짜? 어쩌지?!
나는 표정으론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마음속은 혼란의 극에 이르렀다.
“레이 님과 유키 군……멋진 커플이네.”
“그……러려나? 키가 거꾸론데.”
맞아, 키가 역전됐으니까, 키스할 때도 내가 몸을 숙여야……아니, 그게 아니라!!
떠오르는 망상을 허둥지둥 흩어버린다.
어쨌든, 나는 허둥지둥 당황할 뿐이었다.
그러다,
“……어라, 잠깐 기다려. 아니었지, 확실히 유키는 밝고 상냥한 애가 좋다고 했었고, 그래서 산백합회라면 누가 거기 맞을지 고민해 보니 레이 님이겠구나 하고 내가 생각했던 것 뿐이고, 딱히 레이 님이 좋다곤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을지도.”
“뭐야―, 깜짝 놀라게 하지 말아줘, 유미 양.”
“아하하, 미안 미안.”
“그랬구나. 유감스럽네.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그런 일 있을 리 없는 걸.”
“요시노 님, 그건 과언인게…….”
―――식의 대화가 옆에서 오간걸, 전혀 깨닫지 못했다.
집에 돌아간 뒤에도 나는 어딘가 마음을 다른데 두고 온 듯한 느낌이었다.
왜 이렇게나 동요하는 거지. 아니, 동요하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을 거지만. 그래도 자랑은 아니지만, 나도 고백받은 적이 없는 건 아니다. 하급생 여자애라거나……아아, 그거랑은 전혀 다르고!
자기 방에서 몸부림치며 시간만을 보낸다.
“잠깐 잠깐, 침착해, 침착해.”
그래, 잘 생각해 보면 유미 쨩이 이야기 한 것 뿐이고, 본인이 정말로 말했는진 알 수 없잖아. 결국 축제 뒤에도 연락은 안 왔고―――.
“――――레이, 전화야. 하나데라학원 학생회의, 후쿠자와 씨께서.”
“우아아앗?! 예, 예엡! 지금 나가요!”
허둥지둥 방에서 뛰쳐나와, 2층에 놓여있던 수화기를 든다.
“여,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방으로 들어가 문에 열쇠를 건다.
아무도 없다는 건 알고 있는데도 저도 모르게 방 안을 둘러보고, 침대 위에 바로 앉아서 입구에 등을 향한 자세로 몰래 전화를 받는 자세를 취한다.
『저, 저기, 밤 늦게 죄송합니다. 후쿠자와입니다.』
“아, 으으응, 괜찮아. 아아, 후쿠자와 라는 건 유미 쨩이 아니었구나.”
당연하다. 어머니가 딱 잘라 ‘하나데라학원 학생회의 후쿠자와 씨’라고 말했었으니까.
“음, 그래서 무슨 일이니? 학교 축제 일이려나?”
나는 일부러 깨닫지 못한 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키 군은.
『아뇨……저기, 축제날에 있었던 일, 기억하고 계셔요?』
“엣…….”
잊었을 리 없다. 지금도 책상 서랍 안에 잠들고 있는 티켓. 그 날 잡은 손의 감촉.
수화기를 잡은 손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간다.
“무, 물론. 즐거웠어.”
『예. 그래서, 그 때 건네드린 티켓, 아직 가지고 계신가요……?』
왔다.
서두는 전혀 없이, 유키 군은 제일 중요한 이야기를 갑자기 꺼냈다.
“으, 응…….”
뭐야.
말이, 잘, 나오지 않아.
『……이번 일요일, 괜찮으시다면 함께 보러 가실래요……?』
“――――――――엣!!”
예상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몸은 가위 눌린 것처럼 굳어버렸다.
『저기……하세쿠라 씨?』
“에, 아, 아아.”
『저기……어떠신가요?』
조심조심 유키 군이 물어본다.
아아, 그렇구나. 아직 나는 유키 군의 권유를 받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축제 때도 유키 군이 일방적으로 티켓을 건넨 것 뿐이고,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거다.
『혹시 사정이 나쁘시다면, 저, 맞출게요. 아, 아니면 영화 같은 게 별로 안 나키신다면, 다른 곳도…….』
열심히 유키 군이 말을 잇는다.
어떻게든 내가 거절하지 않았으면 싶어 하는 마음이 전화기를 넘어서까지 전해져 와서,
“저, 저기!”
나는 전화기 마이크를 손으로 막고, 다시 한 번 방 안을 두리번 둘러봤다. 당연하지마 안무도 없다.
그걸 확인한 뒤, 전화기에서 손을 떼고 입을 붙인다.
“이, 일요일, 괜찮으니까…….”
『―――.』
전화 너머서 유키 군이 숨을 삼키는 기척이 느껴졌다.
“영화 티켓, 가지고 갈게……에에, 어디로 가면 될까?”
왠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 소리가 자기 귀에 들려온다.
『――――.』
“에에, 저기……유, 유키 군?”
왠지 반응이 없는 유키 군을 향해 말을 건다. 설마 끊겨 버린 건 아니겠지.
그 때, 정신을 차린 듯이 전화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예, 옛! 아, 그 그 그러면, 함께 영화관에?』
“응, OK, 예요.”
『옙……아, 아아, 그럼 말예요, 10시에, 만나는 건…….』
“응……응, 알았어. 그럼…….”
신바람 난 듯한 유키 군의 목소리를 전화기를 통해 들으면서,
나도 자신이 지금까지 느낀 적 없는 기분으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럼, 일요일에.』
“응, 그럼, 일요일에.”
같은 말을 다시 읊곤 전화를 마친다. 종료 버튼을 누르고, 전화기에서 ‘뚜―뚜―’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들은 뒤 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긴장했던 몸에서 힘이 빠진다. 처음으로 도장의 공식 시합에 갔을 때도 이렇게 굳지는 않았을텐데.
시계를 보자 전화하기 시작한 뒤 10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 내 생각엔 2, 3분 정도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시간이 걸렸던 모양이다.
“…………으아…….”
의미불명한 소리를 내며, 나는 가까이 있던 베개를 끌어안았다. 뭐든 좋았다. 손이 빈 채론 있을 수 없어서, 뭔가를 꾸욱 잡고 있고 싶어서.
“……우와……어쩌지, 이번……일요일?”
이제와서 뭘 어쩐다는 건지.
거기다, 뭐에 대해서 어쩔 거냐는 말을 하는 걸까.
말을 한 나 자신도 의미를 모르는 채로, 그런데도 뭔가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전화기를 잡은 채로 베개를 꾹 껴안고 있었다.
그런 나를, 저번 축제때 얻어 결국 내 방에 정착하게 된 곰인형이 그 동그란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