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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 시리즈 레이편

マリみて 祐麒シリーズ


원작 |

역자 | 淸風

바람 속의 액트리스 후편


 원내는 그렇게 넓다고 할 정도까진 아니고 동물도 큰 동물원이랑 비교하면 적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애초에 동물원에 오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고, 지금 보면 어릴 적에는 안 보였던 부분까지도 눈에 들어오고. 또 옆에 함께 있는 사람도, 동년배의 남자애다 보니 의식도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영양, 양, 미국너구리, 다람쥐 등등 동물들의 귀여운 모습을 만끽하고, 매점에서 산 음료를 벤치에 앉아 마시면서 스포트라이트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리 넓진 않은 동물원을 둘러보고, 우리들은 연못 쪽으로 향했다. 나는 거기서 뭔가를 발견하곤, 조금 부끄러웠지만 마음을 굳히고 유키 군에게 부탁해 보았다.
“저기 유키 군, 보트 타 보지 않을래?”
 라고.


 보트는 천천히, 조금 흔들리며 수면 위를 나아간다. 주위를 둘러보면 비슷한 보트나 백조 보트가 잔뜩 떠 있었다.
 눈앞에선 유키 군이 노를 젓고 있다. 처음에는 생각대로 좀 나아가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이미 익숙해져서 자유자재로……까진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보트를 조종하고 있다.
 데이트에서 보트를 타다니, 왠지 좀 근지러운 느낌이긴 하지만, 한 번 해 보고 싶었던 일이다.
 노가 수면을 저어, 물보라를 튀겨 올린다.
“앗.”
“아, 죄, 죄송해요. 괜찮으셔요?”
“괜찮아, 괜찮아. 조금 튄 것 뿐이니까.”
 뺨에 묻은 물방울을 손으로 닦는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눈 앞의 유키 군도 마찬가지로 뺨에, 이마에, 물방울이 흐르고 그래도 그건 땀이 나는 거다. 여름 햇살 아래서 보트를 젓고 있으니까 땀도 나겠지. 아니, 그보다 걱정인 건.
“괜찮아. 유키 군, 안 더워? 지금 시기는 일사병 같은 게 무서우니까.”
“에, 음―. 확실히 조금 덥긴 하지만, 괜찮아요.”
“안돼. 그런 게 제일 위험하니까. 맞아, 괜찮으면 이거 써 줘.”
 나는 가방 안에서 스포츠타월을 꺼내서 건넸다. 유키 군은 그걸 머리에 덮어쓴다. 이러면 조금 낫겠지. 땀도 닦을 수 있고.
“후후, 유키 군, 멋있어.
“너무해요, 하세쿠라 씨가 하라고 했으면서.”
“미안, 미안,
 둘이서 웃는다.
 으아, 곤란해. 왠지 굉장히 좋은 분위기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나도 지금 상황에 취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다.
 주위에 행복해 보이는 커플 보트가 잔뜩 있는 것도 원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살며시 치맛자락을 고친다.
 평소에는 팬츠스타일이니까 그리 신경 쓸만한 상황이 없지만, 오늘은 그럴 수도 없다. 정면에 있는 유키 군에게서 속옷이 보이지 안도록 조금 신경을 쓴다.
“유키 군, 땀 굉장해. 왠지 미안하네. 대신 할까?”
 양손으로 무릎을 안는 듯한 자세로 앉아, 조금 앞으로 숙이고 있는 유키 군에게 말을 걸어 본다.
“아니―, 이 쯤은 문제 없어요. 여름이니까 땀이 나는 건 당연하고요.”
 그렇게 말하며 계속 손을 움직이는 유키 군. 땀도 계속 흘러, 빛나고 있다.
“거기에, 조금은 남자다운 일 시켜줬으면 싶고요. 역시 이런 상황에서, 이런 노동은 여자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에…….”
 나는 무심코 놀란 듯한 소리를 내 버렸다.
“아, 죄송해요. 그, 남녀차별 할 생각이라거나 그런 건 아닌데요.”
“응, 나도 그런 의도는 아니니까…….”
 조금씩 저녁에 가까운 시간대가 되어가고 있지만, 여름의 태양은 아직 드높다. 보트는 호수 위를 완만히 불규칙한 선을 그리며 나아간다.
 수면에서 오리가 둥둥 떠있거나, 거북이가 햇볓을 쬐는 모습 등이 눈에 들어온다.
 목덜미를 쓰다듬는 머리카락은 묘하게 근지럽고.
 보트 위에는 나와 유키 군이 있어서.
 아직 격렬한 한여름의 햇살을 받으며 느긋이 보트를 탄 약 1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출발한 보트 승강장으로 돌아가, 배에서 내리려고 몸을 일으키는 중에.
“자요.”
 하며, 눈앞에 손을 내밀어왔다.
 올려다보자, 유키 군이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물론 먼저 보트에서 내린 유키 군이, 나를 끌어당기려 손을 빌려주고 있는 건데.
 처음에 탈 때는 이런 장면은 없었다. 그건 내가 먼저 보트에 타 버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밀어온 손을 잡으려 하다, 한 순간 주저해 버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유키 군은 허둥지둥 손을 털어낸 뒤 타월로 손바닥을 닦았다.
 하지만 내가 주저한 건 손이 더러운 걸 신경쓴 게 아니다. 내민 유키 군의 손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손에 문제가 있는 거니까. 그래도 이 이상 주저하는 건 실례일 것 같아, 순순히 유키 군의 손을 잡았다.
 생각보다도 강한 힘으로 몸이 끌려가, 땅에 발을 붙인다.
“고, 고마워.”
 한 마디 인사를 한 뒤 나는 바로 손을 뗐다.
 검도로 단련된, 여자치고는 울퉁불퉁한 손을 잡히는 게 괜히 부끄럽게 느껴진 거다.
“아……아뇨, 이런 더러운 손으론, 역시 폐였겠지요. 저야말로 왠지 억지스러웠던 것 같아서 죄송해요.”
 유키 군은 그런 내 행동을 오해하곤, 사과해 왔다.
“아, 아, 아냐.”
 나는 허둥지둥 부정한다.
“봐, 나 계속 검도 했었으니까, 손가락이나 손 같은게 울퉁불퉁 딱딱하고, 여자답지 않으니까. 조금 부끄러워서.”
 가슴 앞에 양 손을 팔랑팔랑 움직여 보인다. 내심 조금 슬프지만, 그런 모습을 보였다간 유키 군이 진지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르니까 일부러 장난스러운 느낌으로 말했다.
 이걸로, 이 일은 흘려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키 군은 내가 상상치 못했던 행동을 해 왔다.
“부끄럽거나 하지 않아요.”
“엣.”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유키 군은 힘을 담아 말했다.
“그만큼 하세쿠라 씨가 진지하게 검도에 힘을 써 왔다는 소리잖아요. 부끄러워할 부분은 어디도 없어요. 딱히 얇고 부드러운 손이어야 여자답다고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하세쿠라 씨는 굉장히 사랑스럽고, 여자답다고 생각해요.”
 라고, 유키 군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아……고, 고마워.”
 정면에서 이런 말을 들어, 수줍고 부끄러운 마음에 나는 제대로 유키 군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에에……슬슬, 돌아갈까.”
“엣, 아, 벌써 그런 시간인가요?”
“응, 저기, 오늘 나, 식사 당번이니까. 돌아가서 저녁 준비같은 것도 해야 하고.”
“그런가요. 알았습니다. 그럼, 돌아가죠.”
 유감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바로 유키 군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줬다. 나는 거짓말을 해 버린 걸 마음 속으로 사과한다. 나는 겁쟁이라, 유키 군이랑 이 이상 같이 있는게 왠지 무서웠던 거다.
“그럼, 조금 기다려 주실래요? 저, 손 좀 씻고 싶어서요.”
 그렇게 말하곤, 대여섯단쯤 되는 계단을 뛰어 내린 뒤 급수기 쪽을 향해 달리는 유키 군.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여름이니까 아직 해는 높고 충분히 밝다. 하지만 아이들의 모습은 점점 줄어간다. 새들은 머리 위를 지나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눈을 돌리자, 유키 군이 급수대에서 이쪽을 향해 오는게 보였다.
 바람이 분다.
 유키 군의 목에 걸려 있는 스포츠 타월이 날아갈 것만 같다. 나도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당황해서 모자를 손으로 눌렀다.
 오늘, 무슨 우연인지 갑자기 늘어난 내 머리카락이 옆으로 흔들린다.
 그 순간.

 바람의 장난으로, 내 치마가 말려 올라갔다.

​“​―​―​―​―​―​―​―​―​―​―​―​―​―​―​에​?​!​”​
 나는 허둥지둥 치마를 손으로 눌렀지만.
“봐, 봐, 봤어?!”
 아직 펄럭이는 치마를 왼손으로, 모자를 오른손으로 누르면서 유키 군을 추궁하듯 물었다.
 치마는 그리 크게 말려올라간 건 아니었지만, 위치적으로 내가 위에 있으니까 계단 아래에 있던 유키 군이 평범하게 내 쪽을 올려다보고 있었으면…….
“아, 안 봤어요! 조금밖에!”
“여, 역시, 봐, 봤잖아~~!!”
 나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얼굴은 분명 새빨개졌을 거다. 설마 이런 상황이 될 줄이야. 평소에는 거의 청바지 같은 걸 입고, 학교 지정 치마는 기장이 길고, 학교에서 집에까지는 도보 10분이고, 설령 학교 안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여고니까 그리 과민한 느낌은 아니고. 이런 상황은 지금까지 살며 처음이다.
“아니, 그래도, 귀엽잖아요. 라임 그린이라고 하던가요?”
 당황한 건지, 장소를 고치려 유키 군은 쓸데없는 말을 덧붙인다. 그래서야, 확실히 보였단 소리잖아.
“읏!? 으아―, 바보―――!!”
 그야, 분명 새로 산 속옷이었긴 하지만. 무늬도 색도 귀여운 걸로 고른 거지만. 보여도 괜찮다는 건 아닌데.
“저, 정말, 유키 군 같은 건 모르니까!”
“자, 잠깐 기다려 주세요. 제, 제 탓이 아니잖아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유키 군은 그런 말을 해 오는데.
 확실히 치마가 말려올라간 건 바람 탓이지 유키군 탓이 아니지만. 그런 문제가 아닌 거다.
“하, 하세쿠라 씨~~~. 잊, 잊어버렸어요. 이제 ​잊​어​버​렸​으​니​까​요​!​”​
 그것도 왠지 납득이 안 돼서, 무심코 고개를 휙 돌려 버린다. 부끄러움을 숨기려는 의미도 담아, 나는 고개를 돌리고 입을 빼죽인다.
“어차피, 내 건 그렇게 바로 잊어 버릴만한 거인 거구나.”
“그, 그런. 잊으려고 한 대도, 잊을 수 있을 리가……아니, 그럼 어떡하라는 건가요?!”
 이럴 때는 정말로 나쁘진 않더라도, 봐 버린 남자가 잘못한 거다. 설령 여자가 조금쯤 억지를 쓴다고 해도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보여 버린 여자애는 피해자인 거니까.
 그래서 나는.
“하세쿠라 씨, 용서해 주세요오.”
 곤란한 표정으로 사과해 오는 유키 군에게.
“흥이다!”
 애처럼 그런 말을 해 버렸다.



 바람의 장난이 일으킨, 마지막의 자그만 말싸움도 정리되어, 우리는 역에서 헤어진다. 그래도 그 전에.
“오늘은 고마워, 즐거웠어. 그리고 유키 군이 야하다는 것도 알았고.”
“저, 정말, 봐 주세요.”
“아하하, 미안, 미안.”
 마음속으론 조금 더 놀려주고 싶은 기분도 있었지만, 용서해 주기로 했다. 대신에 정말 묻고싶었던 걸 입에 담는다.
“저말야. 하나 물어도 괜찮을까?”
“예, 어떤 건가요?”
“오늘 나를 권해준 이유. 명예회복이라니, 뭐야?”
 축제 때, 유키 군이 입에 담은 한 마디.
“아아아, 저기, 그건.”
 왠지 말을 더듬는 유키 군.
“그건, 그, 뭐어, 확실히 명예회복이라고 말했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건 구실이랄까 뭐랄까. 아니 그러니까 그 날 보여준 꼴사나운 모습을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고 할까……!”
 빠른 목소리로 뭔가 떠들어대곤 있지만, 무슨 소린지 알기 힘들어 나는 고개를 기울인다.
“어, 어쨌든!”
“응?”
“저, 저, 아직 그 명예회복을 못 끝내서……다, 다음에 또 기회를 주실 수 있을까요?!”
“엣?”
 무슨 소리지. 대체, 유키 군은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걸까. 내 머릿속이 혼란스런 상태서, 유키 군은 몰아붙이듯 말을 꺼낸다.
 나를 올려다보며, 필사적인 표정으로.
“저기, 예슨지 논지로 부탁드릴게요!”
“에, 엣?”
“하세쿠라 씨.”
“아, 으, 응. 에에, 예스.”
 유키 군에게 떠밀린 느낌으로,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리 대답해 버렸다.
“아자!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아, 안녕히 가세요!”
“으, 응. 잘 가.”
 마치 도망치듯이 떠나가는 유키 군.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으음――…….”
 수십초 뒤에,
“―――에.”
 간신히 다음에 만날 약속을 나눴단 걸 깨닫곤.
“으아…….”
 또다시, 뭐가 ‘으아’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소리를 의미 없이 내뱉으며 굳어버리듯 멈춰섰다.

 약속을 한 건 알았다.

 하지만,

 뭐가 ‘명예회복’인 건지는, 결국 모르는 채로 끝나 버렸다.




 역 화장실에서 집을 나섰을 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는다. 더러워진 부분은 신경쓰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원피스 차림으로 집에 돌아갔다간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고. 그리고, 머리에 붙였던 붙임머리도 뗀다. 간단히 뗄 수 있다고 듣긴 했지만, 정말 간단히 뗄 수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도 정리해, 원피스도 잘 갠 뒤에 붙임머리랑 같이 가게의 봉투에 넣은 뒤 집으로 돌아갔다.


​“​다​녀​왔​습​니​다​―​.​”​
 집으로 들어가자, 좋은 냄새가 부엌에서 풍겨왔다. 오늘 저녁은 감자조림인 모양이다.
 나는 쇼핑봉투를 옆구리에 낀 채로 부엌 입구 옆을 지나려 했다.
“어서오렴. 데이트, 즐거웠어?”
“응, 즐거웠어.”
 굉장히 자연스런 말투로 물어왔기에, 나도 평범히 대답해 버렸다. 깨달은 건 방에 들어가서 짐을 침대 위에 놓은 뒤였다.
 나는 허둥지둥 계단을 달려내려가, 부엌에 뛰어들었다. 어머니가 그런 나를 얼굴을 찌푸리며 바라봤다.
“왜 그러니? 어수선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오면 위험하잖아.”
“아아, 죄, 죄송해요. 그, 그보다 어머니, 아까, 뭐라고?”
“응? 그러니까, 데이트, 즐거웠었는지. 즐거웠던 거지?”
“응, 그건……아니, 그게 아니라! 어, 어떻게?!”
 물론,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라는 의미로 나는 물어본 거다. 오늘 유키 군과 약속이 있다는 건 아무에게도 말 안했고, 아침에도 동아리 애들과 약속이 있단 소리에 납득했었는데.
 하지만, 어머니는 웃으며.
“그도 그럴게, 도시락이 ​부​자​연​스​러​웠​잖​니​.​”​
“에?”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영문을 모르는 상태였다.
“동아리 친구들이랑 놀러 가는데 도시락도 부자연스러웠고. 설령 가져간다고 해도, 양이 다 같이 먹기엔 너무 적고. 그렇다고 해서 레이 1인분도 아니고. 여자 2인분이라고 치기에도 조금 많았어. 그런데, 남자랑 2인분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잖니.”
“그, 그런 것만으로……?”
 말이 막힌다.
 확실히 도시락 양은 ​부​자​연​스​러​웠​을​ㅈ​이​도​ 모르지만, 지금 듣고서 깨닫긴 해지만, 어머니가 그런 부분까지 보고 있었다니.
 어머니는 계속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것만이 아니야. 도시락을 만들고 있을 때 레이의 표정이, 굉장히 즐거운 듯 빛나고 있었으니까. 그렇네. 딱 요시노 쨩을 위해 뭔가 만들어 주려고 할 때랑 똑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그래도, 오늘은 요시노 쨩이랑 같이 가는게 아니라고 하고.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할 것 같지도 않고.”
​“​으​아​아​아​아​…​…​.​”​
“그렇게 생각하면 요즘 1주일 동안, 레이의 상태도 왠지 좀 이상했었고.”
 무서운 어머니.
 하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맞아 맞아, 마침 그, 하나데라의 학생회장인 후쿠자와 씨?에게서 전화가 왔던 날 즈음부터, 레이의 상태가 변했었었나?”
​“​으​갸​아​아​아​아​아​아​?​!​”​
 나는 괴성을 내며 고개를 젖혔다. 닿은 손바닥이 뜨거운 건, 분명 얼굴에 열기가 오른 탓.
“뭐, 뭐, 뭐…….”
 이래서야 완전히 다 들켰다는 거잖아.
“뭐어, 틀림 없으리라곤 생각했지만, 일단 넘겨짚어 봤어.”
“으아아, 아아……그, 그거, 요시노는.”
“말 안했어, 아버지께도.”
 조금 숨이 놓여,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렇게 부끄러워 할 거 없잖니. 레이도 이미 18살이 되는 걸. 여자로서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고, 사랑을 하고, 사귀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아니, 그!”
“나는 별로 반대는 안 해. 물론 상대가 제대로 된 사람일 필요는 있겠지만. 뭐 그래도, 하나데라의 학생회장이라고 하고, 전화에서 이야기했을 때도 정말 좋은 애 같았고.”
“저저, 전화로 이야기라니.”
“아아, 한 번 레이가 집에 없을 때 걸려온 적이 있어서. 신경 쓰여서 조금 이야기를 했었어. 전화 너머로도 긴장하고 있는 게 느껴져서, 조금 재미있었어.”
“재미있었다니, 아니, 그.”
“다음에 집에도 데리고 오렴. 우리에게 소개 해 줘. 아, 괜찮아, 아버지는 내가 어떻게든 설득할 테니까. 뭐어, 분명 괜찮지 않을까. 학생회장이라는 부분이 포인트가 높지. 진지하고 딱딱한 아버지에겐.”
“자, 잠깐 기다려.”
“아, 그래도 요시노 쨩을 설득하는 건 스스로 힘내렴. 우후후, 혹시나 아수라장이려나.”
“우후후, 라니, 웃을 일이 아니잖아.”
 뿐만 아니라, 딱히 아직 유키 군이랑 정식으로 사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고백받은 것도 아닌데. 하지만 어머니의 머릿속에선 이미 상황이 끝나 있는 모양이라, 당황하고 있는 나는 그런 어머니의 말을 막거나 반론할 여유도 없었다.
“맞아, 그래도, 레이.”
“왜, 왜?”
 이번엔 대체 무슨 말을 해 올까 싶어 경계한다.
“둘 다 아직 고등학생이니까, 피임은 제대로 해야 한다?”
​“​엑​―​―​―​―​―​―​―​―​?​!​”​

 어머니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꺼냈다.



 어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피로가 한층 는 상태로 방에 돌아와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는다.
 왠지 오늘 데이트 이상으로, 자기가 모르는 곳에서 멋대로 상황만이 만들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으아, 정말, 뭐가 뭔지――――!!”
 머리를 감싸안고 침대에 엎어졌다.
 일단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해 보자.
 오늘 데이트는 즐거웠다. 영화를 보고, 역 헌팅을 당하고, 공원에 가서 도시락을 먹고, 유키 군은 맛있게 먹어 줬지만 실수로 내 옷을 더럽혀 버렸고. 그래서 대신에 옷을 사러 가서 귀여운 원피스를 사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붙임머리까지 달았고. 공원으로 돌아가 동물원을 보고 보트를 타서……그 뒤에 있었던 일은 일단 잊기로 하고, 다음 약속을 한 뒤 헤어졌다.
 그랬다. 유키 군과는 또 다음에 만날 약속을 한 거다.
 그래서, 집에 돌아갔더니 어머니께 데이트에 대한 걸 간파당해, 뿐만 아니라 둘의 관계를 왠지 응원 받았고.
“왜, 왠지 나, 상황에 끌려가고 있는 거려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유키 군이랑 함께 보낸 하루는 즐거웠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눈을 뜨자, 부티크의 쇼핑봉투가 눈에 들어온다.
“아, 맞아, 안 꺼내두면 구겨지겠지.”
 나는 일어나, 원피스를 봉투에서 꺼내 옷걸이에 걸었다.
 흰 바탕에 초록 베이스의 도트로 스트라이프가 들어가 있는, 사랑스런 원피스. 오늘 나는 이런 옷을 입고 있었던 거다.
“………….”
 아, 안돼. 왠지 얼굴에서 웃음이 흘러나와.
 일단 갈아입자. 아니, 그 전에 땀을 씻어야 할까.
 나는 창을 열고 실내에 바람을 넣은 뒤, 옷장에서 실내복을 꺼내 방을 나선다. 문을 닫기 전에 방 안에 눈을 향하자,



 새로 산 원피스 자락이, 바람에 날려 상냥히 펄럭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왠지 괜히 허전해진 목덜미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대고 있었다.




“바람 속의 액트리스”  끝





랩소디 인 옐로
<제 2악장>


~ fine ~
~추신~
 이렇게 레이 쨩 데이트 편을 보내드렸습니다. 어떠셨는지요. 레이 쨩, 서비스 과다! (라고 할까 작가가 쓴 거지만)
 레이짱과는 상쾌한 커플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의외로 어울리지 않을까요.
 이걸로 일단 일단락입니다.
 다음 전개에 대해서는, 계속될지 어떨지도 아직 ​미​정​이​지​만​…​…​레​이​쨩​은​ 만지는 보람이 있으니까요~.
 자, 어떻게 될까요??

역자의 말:
 평안하세요, 淸風입니다.
 이렇게 레이 편을 한 편 더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어떠셨나요?
 점점 읽어주시는 분도 늘고 있는 것 같아, 조금 기쁩니다. 다른 마리미테 팬픽들도 확 늘었으면 좋겠는데, 이 시대에는 거의 꿈이겠지요.

 그럼,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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