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인
곧 3학년 송별회가 개최된다.
무사히 대학도 정해졌고, 졸업까지 초읽기 단계.
자매에게도 축복받았고, 구하기 어려운 절친도 얻었고, 믿음직스러운 선배와 사랑스런 후배에게 둘러싸여 산백합회라는 장소에서 활동할 수 있었고, 동아리 활동과도 제대로 양립해냈다고 생각하기에, 레이는 충실한 학창생활을 보냈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걸로 이제, 마음에 걸리는 건 없나…….”
자기 방 침대에서 위를 보며 눕는다.
“………….”
천장을 바라본다.
“……………….”
베개 곁의 ‘피코냥’ 인형을 잡는다.
“…………………….”
얼빠진 표장이 정말로 사랑스러운 인형이라, 레이의 마음에 쏙 든다.
“………………………….”
‘피코냥’을 안은 체로 몸을 돌려, 엎드린다.
“……아니, 그럴 리, 없잖아~~~~~!!!!!”
베개에 얼굴을 묻고, 발을 버둥버둥 움직이며 신음한다.
하지만 힘껏 버둥거린 뒤, 목을 움직여 베개에서 약간 얼굴을 내민 다음, 자그만 소리로 중얼거린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오는 거야, 유키 군…….”
레이의 대학수험이 끝나면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했는데, 관련 연락이 전혀 오지 않는다.
일단 대학수험이 끝나 지망교에 합격했다는 것도 메일론 보냈고, 거기에 대한 축하 메일도 받았다.
그런데도 그 뒤엔 연락이 없는 거다.
“으으……여, 역시, 밸런타인이 실수였던 거려나아.”
떠올리는 건, 밸런타인 날의 괴로운 기억.
여러 여성에게 둘러싸인 유키를 보고, 질투하고, 낙담해서, 홀로 멋대로 이래저래 고민한 결과, 건네주질 못했다.
아니, 건네줄 순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라 먹다 남은 걸 주는 꼴이 되어 버렸고, 자기 손으로 건네지도 못했고, 애초에 정말 유키가 받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유키에게서 메일이 왔으니까 받은 건 확실하지만.
받았을 때 상대의 반응을 모른다는 게 이렇게나 안달복달할 일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다.
거기에 더해, 메시지 카드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메일 내용을 보면 이상하진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여하튼, 직접 만나서 이야기 하지를 못했다. 유키에게서 이야기 한다고 말했었고, 레이는 기다린다고 말했었고, 스스로 만나자는 말은 도무지 하기 힘들어서, 답답한 채로 오늘까지 온 거다.
언제까지나 확실히 해 주지 않는 유키가 싫다.
그 이상으로 꾸물꾸물, 무기력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자신이 싫다.
“하아~~~~.”
“뭘 캄캄한 한숨같은 거 쉬는 거야?”
“으햐?!”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는 레이.
고개를 들어보자, 방 입구에 기막혀하는 표정으로 요시노가 서 있었다.
“요, 요시노, 어느새?!”
“아니, 지금 막 왔는데, 대답이 없어서 들어왔어.”
“그, 그래, 미안.”
요시노의 말이 진짜라면, 한숨밖에 들리지 않았을 거다. 뭐어, 혹시 그 앞 이야기를 들었다면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니니까, 진짜겠지만.
“머리카락, 엉망진창이야.”
“아아, 응.”
간신히 조금 진정돼서,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빗는다.
“왜 그래, 고민거리 있어?”
요시노가 침대 옆에 앉으면서 물어본다.
“으음―, 고민이라고 할까, 아무리 나라도 졸업을 앞두면 조금은 떠오르는 게 있는 거야.”
조금 길게 자란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집으며, 그런 말을 한다.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니고, 거기에 레이는 거짓말을 하는 건 서투르지만 요시노에게 이야기 할 때는 비교적 거짓말을 잘할 수 있다. 옛날부터 지내왔고, 요시노의 몸을 위해서 계속 거짓말을 한 적이 있는 거다.
“뭐야? 가르쳐줘.”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치떠보는 요시노.
“음―, 요시노 생각이라거나. 검도부에서, 3학년이 되어도 괜찮으려나―같은.”
“아, 아픈 부분을.”
“뭐야, 아파?”
과장되게 가슴을 누르는 요시노를 보고 웃는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잘 돌릴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곤,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요시노에게는 유키에 대해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몇 번 데이트를 한 것도, 밸런타인 이야기도, 약속에 대해서도. 혹시나 갑자기 알게 되면 요시노는 화낼까.
혹시나 고백받거나, 정말 사귀게 되거나 하면, 제대로 요시노에게 전하자. 레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결국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이러는 동안 시간은 흘러, 결국 유키에게서 연락도 없는 채로 3학년 송별회 날이 찾아와 버렸다.
하지만 이 즈음까지 와서 레이의 마음 속에도 어느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혹시나 화이트 데이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왠지 말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밸런타인 답례라고 만나기 딱 좋은 이유를 붙일 수 있고, 답례품을 건넬 타이밍에 마음을 전하는 것도, 유키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멋대로 몽상한다.
한 번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그게 확실하리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날짜적으로도 화이트데이라면 이미 그때는 졸업식을 마쳤으니 학교에 대한 걱정도 없이 홀가분한 몸이 되어 있겠지. 졸업을 앞두고 동요하거나 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거다.
혹시나 화이트데이마저 넘겨 버렸다간, 그야말로 가능성 자체가 없어져 버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생각 안 하기로 했다.
3학년 송별회는 온화하게 진행됐다. 토코의 바이올린을 BGM으로, 노리코가 난킨타마스다레를 피로하는 진귀하고도 유쾌한 쇼타임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즐길 수 있었다.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다, 즐거운 송별회도 폐막할 시간이 가깝다 느끼기 시작했을 무렵, 누군가가 장미관에 들어오는 기척을 느꼈다.
“어라, 손님이려나요.”
처음에 문이 열리는 소리를 느낀 시마코가 말한다.
그 사이에도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언니들의 코멘트 취재 약속시간까진 아직 시간이 좀 남았죠?”
“따로 누가 초대한 거니?”
사치코의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대체 누굴까 싶어 기다리고 있자,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다.
“평안하세요, 여러분! 즐겁게 보내고 있어?”
기운찬 소리와 함께 들어온 건.
“언니?!”
“세이 님?”
사토 세이였다.
“오늘 송별회를 연다고 들어서. 마지막에 잠깐 고개를 내미는 정도라면 방해가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방해라뇨, 그런.”
유미나 시마코는 기쁘게 세이를 맞으려 한다. 접점이 없는 노리코나 토코는 특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구태여 부정하지도 않겠지. 세이가 말하는 것처럼 현재 멤버끼리의 송별회는 충분히 즐긴 뒤니까.
“그리고, 중간에 강아지 주워왔는데, 괜찮으려나?”
“에, 강아진가요? 와―, 보고싶어―!”
“괜찮은 건가요? 그렇게 멋대로.”
레이가 메리 씨가 아니라 강아지가 릴리안에 정착해 있었던 건가. 아니면, 밖에서 데려온 걸까. 장난감 같은 거려나 등등을 고민하고 있자,
“아아, 강아지라기보단 새끼 너구리려나.”
세이에게 끌려오는 꼴로 출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건, 놀랍게도 유키였다.
“――――――?!!”
“꺄악?! 쫌, 더럽잖아, 레이, 너 코에서 홍차가 흐르고 있어.”
너무 놀라서 홍차를 내뿜을뻔해서, 어떻게든 참으려 했더니 터무니 없는 상황이 되었다. 유키의 눈이 레이를 향한다. 쓸데없는 소리를 사치코게 크게 소리쳐, 레이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린다.
코에서 홍차를 흘리는 모습따위, 이맘때 여자라면 아무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법이다. 특히 상대가 신경쓰이는 남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왜 유키가 릴리안에 들어온 거야?”
“아니, 나도 반쯤 억지로!”
유미와 유키가 말싸움하고 있다.
요시노나 시마코 등은 급작스런 전개에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어쩌면 좋을지,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남자인 유키가 혼자 교내에 들어올 수 있을 리 없으니, 세이가 끌고 왔다는 건 사실이겠지. 졸업생이고, 작년에 백장미님이었던 세이에겐 힘든 일은 아니었을 거다.
“같이 학생회 일로 협력한 동지, 이 정도로 됐잖아. 사치코와 레이, 둘을 배웅하는데는 조금 화려한 편이 낫잖아, 그치 레이?”
“하, 하아.”
갑자기 화살이 날아와, 얼빠진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밸런타인 데이 사건으로 세이는 레이와 유키의 관계를 알고 있을 거니, 분명 뭔가 꾸미고 온 거일 거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동료들이 있는 앞에선, 뭔가 대응할 수단이 없다.
곤란한 상황에 도움을 바라듯 사치코에게 눈을 향한다. 성실하고 남자 혐오증인 사치코라면 쓴소리를 해 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어쩔 수 없네요, 여기서 되돌려 보내는 것도 실례고. 저희를 송별하러 와 주신 거라고 생각하면, 저버릴 수도 없고요.”
역시나 사치코도 분별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세이에게 억지로 끌려온 유키를 냉담히 돌려보내서야, 오히려 릴리안 쪽이 창피해 진다.
결국, 난입자 둘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거다.
노리코와 토코는 새로 차를 우려 모두에게 대접한다. 유키는 미묘하게 거북하다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왼쪽에 세이, 오른쪽에 사치코가 있는 포지션이다보니, 미소녀 사이에 끼여서 그리 싫지도 않은 것 처럼도 보인다.
뭐어, 누구 옆에 앉든 산백합회 임원은 다들 예쁘고 사랑스러운 애들 뿐이지만.
“……레이 쨩, 컨디션 나쁜 거야?”
레이에 관한 일이라면 제일 날카로운 요시노가 뭔가를 느꼈는지,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레이는 애매한 미소를 띄우고, 아무것도 아니라 대답했다.
재난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유키도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 오늘은 무난하게 보내면 되는 거다.
“이야―, 그래도 사치코도 레이도 졸업이고, 드디어 요시노 쨩네가 학생회장인가. 1학년 무렵밖에 모르는 난, 조금 놀라운 느낌이야.”
“어차피, 저 같은 건 의지 안되는 걸요―.”
세이의 농담에 요시노가 반응한다.
“아니아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나나 에리코도 할 수 있었으니까, 전혀 문제 없잖아.”
“아니, 세이 님때 같은 하이스펙인 분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곤란한데요.”
쓴웃음짓는 유미.
레이의 눈으로 보면, 요시노를 시작으로 유미도 시마코도 정말 잘 성장해줘서 믿음직스럽고, 그러면서도 학생들에게 친밀감도 있어서, 걱정할 건 전혀 없다고 느끼고 있다. 본인들에겐 불안도 있겠지만, 틀림 없다.
단지 자신들이 1학년 때 장미님들이 완벽하게 보여서, 자신들 따위는 절대 미칠 수 없다고 느꼈던 것도 어쩔 수 없다. 레이나 사치코도 그랬다. 학생 시대, 1학년과 3학년은 굉장히 다른 거다.
“유키 군에게도, 이 애들을 잘 부탁할게요.”
“에, 아니에요, 저 같은 게 뭘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유미 외에는.”
“잠깐, 그거 무슨 의미야, 나만 믿음직스럽지 않단 소리야?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유미 양, 인정하면서 화내는 건 뭐야.”
웃음이 터진다.
역시 다들 어른이다. 유키를 제대로 배려해, 온화한 회합이 되었다. 유키 자체가 유미의 남동생이라 친해지기 쉽다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여자 중에 남자가 혼자 있는 구도에서 무리 없이 자연스레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건 꽤나 어려운 게 아닐까.
유미네는 지금까지의 장미님들보다 훨씬 친해지기 쉬워서, 일반 학생들과의 거리도 가깝다. 그리고 그 여동생인 노리코와 토코는 1학년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 해주고 있다. 굉장히 밸런스 좋은 학생회다 싶다.
뭐어, 친밀한 계통과 견실한 계통이 위아래로 완전히 나뉘어 버린 게, 굳이 말하자면 결점일지도 모르겠지만.
“자, 유키, 쿠키 먹을래? 먹여 줄까?”
“지, 직접 먹을 수 있으니까!”
신경 쓰이는 건 아까부터 유키에 대한 세이의 접촉이 늘어가고 있는 기분이 드는 것. 방금 쿠키라거나, 홍차 리필이라거나,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어깨를 두드린다거나 하는 모습이 계속 눈에 띄는 것 같다.
옛날부터 세이는 하급생을 상대로 커뮤니케이션이 많아, 유미에게 안겨들거나 하기도 했다. 같은 계통의 유키는 역시 친숙한 느낌인 거겠지.
알고는 있지만, 신경 안 쓰일 순 없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걸 필사적으로 억눌러 얼굴에 안 드러나도록 하고 있다.
“레이 쨩, 아까부터 역시 뭔가 이상한데?”
“그래? 역시 조금 감상적이 된 거려나.”
어설프게 아무것도 없다고 얼버무리는 것보단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살짝 긍정하는 편이 요시노도 납득하기 쉬우리라고 생각해, 그렇게 대답한다. 서로를 잘 할고 있는 만큼, 어중간하게 속이려 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언니와 유키 군, 굉장히 사이가 좋네요.”
“흐흥―, 그렇게 보여?”
장난스런 미소를 띄우는 세이. 실제로 장난치고 있는 기분인 거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키에 대한 세이의 태도가 더더욱 허물없어져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닐 거다. 마치 질 나쁜 주정꾼 아저씨 같다.
무슨 생각인가 싶었지만, 아마 레이를 비꼬고 있다고 할까, 부채질하고 있다고 할까, 그런 거겠지. 단지, 그걸 알고 있기에 레이도 참을 수는 있다. 사치코였다면 고의적인 세이의 태도에도 격앙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침착하게 쿠키를 먹고, 홍차를 마신다.
“유키, 너 세이 님이랑 너무 친한 척 하는 거 아냐?”
“내가? 아니 잠깐 기다려.”
“에, 뭐야 유키, 나랑 치덕치덕하고 싶어?”
평상심, 평상심하고 자신을 설득하면서, 꾹 쥔 손에 약한 힘을 넣는다.
“그렇게나 사이가 좋으면, 의심스럽네요.”
“응, 뭐가?”
“역시 두 분, 사귀고 계신다거나.”
그렇지 않으니, 동요할 일은 없다. 아니 잠깐, 그래도 사귀고 있지 않다는 증거도 없는 거고, 가능성으로는 있는 거려나. 쓸데없는 생각이 떠올라서 허둥지둥 떨쳐낸다.
유키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그건 함께 있으며 이해하고 있다. 그래도, 사람은 이성만으로 감정을 간단히 억누를 수 없는 법이다.
“――어머, 잠시 실례.”
출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시마코가 일어났지만, 레이의 의식은 세이와 유키 쪽에 집중되어 있다.
“이야~, 뭐야 유키, 날 좋아하는 거야? 곤란하네~.”
“에, 잠깐 유키 군, 거짓말이죠?”
“꺄아―, 설마, 정말로! 차암, 레이 쨩, 어쩌지?”
조금 흥분한 듯한 요시노에게 팔을 잡힌다.
숨을 크게 들이쉬어 마음을 가다듬는다. 모든 건 세이가 레이를 낚으려 하는 짓. 밸런타인 사건으로 세이는 레이의 마음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일부러 눈앞에서 놀리고 있는 거다. 반응했다간 상대가 생각하는 대로다. 검도 시합 때처럼 신경을 갈고, 집중해서, 쓸데없는 잡념을 떨쳐낸다.
“――아, 아니에요!”
말을 꺼낸 건, 갑자기 일어난 유키였다.
다들 급작스런 일에 조용히 유키를 올려다본다.
약간 고개를 숙이곤, 뺨을 약간 붉게 물들이고, 몸이 떨릴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곤, 유키는 입을 열었다.
“제, 제, 제가 좋아하는 건, 레이 씨니까――!!”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은 소리도 아니다. 떨리면서도 제대로 주위에 퍼지는 목소리로, 유키 군은 잘라 말했다.
모두가 멍하니 유키를 보고 있다. 그건 레이도 마찬가지여서, 유키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가 따라가지 못해 굳어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처음으로 움직인 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저, 저기~, 신문분데……요.”
문에서 한 걸음, 실내로 들어온 곳에 서 있던 여학생이 주뼛주뼛 말을 걸었다.
“아, 그러고 보면 슬슬 취재 시간이다.” 깨달은 듯 말하는 유미.
“어라, 그래도 분명, 오늘 취재는” 다른 걸 떠올린 듯한 노리코.
“그렇……지요, 히데미 양.” 입구에 서 있던 신문부의 학생, 히데미를 향해 확인하듯 말을 거는 토코.
“예, 예, 홍장미님, 황장미님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해서, 오늘은 특별히.”
히데미가 손에 들고 있던 건 마이크.
“스위치, 들어가 있어요.” 문을 연 시마코가 문을 잡은 채로, 마이크에 눈길을 향한다.
“에, 에? 뭐, 뭐, 무슨……에엣?”
홀로 허둥지둥, 입가를 누르며 좌우를 둘러보는 레이.
“히데미 양, 그 마이크, 스위치가 들어가 있다는 소린.”
“예, 에에, 교내에 방송중이에요…….”
노리코의 질문에, 기계적으로 대답하는 히데미.
“아하핫, 이건 좋아, 공개 고백이라니 대담하네~ 유키.”
배꼽을 잡으며 웃음을 참는 세이.
“에, 에, 에에에에에에에에에?!”
순간적으로 목까지 빨개져서 절규하는 유키. 그 유키의 목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듯 뒤틀려, 눈이 레이와 마주친다.
“앗, 그, 핫.”
유키와 눈길이 마주쳐, 역시 불타는 듯한 뺨을 양 손으로 누르며 몸을 돌리는 레이. 입에서 나오는 기묘한 소리는 어떤 발음인지도 잘 모르겠는 상태다.
“뭐, 뭐, 뭐라고―――――?!! 유유유유키 군, 무슨 생각이야?!”
격앙한 요시노가 손을 빙빙 돌리며 유키를 향해 가려 한다.
“아앗, 요시노 양, 침착해!”
“유미 양 놓아 줘, 무사의 정, 저택에 있소이다!!”
“요시노 양, 굉장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네.” 태평한 분위기의 시마코.
“잠깐, 레이? 에에 유미, 무, 무슨 일일까 대체.”
당황하고 있는 건지, 홀로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치코. 남자 혐오증이면서 세상 물정도 잘 모르는 사치코는, 급작스럽게 눈 앞에서 펼쳐진 고백 장면은 레벨이 너무 높았던 거다.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서, 성이 불타고 있어, 아이즈가 진 거야――――?!”
“요시노 쨩, 침착해. 그보다, 중요한 게 아직 남아 있잖아.”
“중요한, 거?”
유미의 허리에 매달린 채로 요시노의 움직임이 멈춘다.
“그래♪ 유키의 고백에 대한, 레이의 대답이.”
즐거운 듯, 노래라도 부를 것 같은 세이의 말에 방 안의 눈이 일제히 레이를 향한다.
“자 자 잠깐, 에, 뭐야, 나, 나?!”
생각이 소용돌이쳐,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고백은 역시, 저녁놀이 아름다운 해변이라거나, 야경이 멋진 레스토랑이라거나, 세련된 공원이라거나, 아니면 흔하긴 하지만 학교 건물 뒤라거나, 아니, 릴리안 뒤에선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걸 이상으로 삼고 있는데, 이렇게 얼떨껼에 모두의 앞에서, 게다가 마이크로 전교방송이라니, 어떤 수치 플레이인 걸까.
“에, 에에, 그래서 레이 님, 답변은.”
대단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히데미는 스윽 하고 마이크를 레이에게 향해왔다.
한순간에 방 안에서 소리가 사라져, 다들 숨을 참으며 레이의 일거수 일투족에 눈을 향한다. 유키도 새빨개진 채로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레, 레이님.” 마이크가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레이는 뜨거운 뺨을 손바닥으로 감추면서.
“~~~그, 그런 거, 이 상황에서, 마, 말할 수 있을 리, 리, 엄짜나~~!!”
비명을 질렀다.
“아하하하핫, 레이의 지금 반응이 대답인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유쾌한 듯한 세이의 목소리.
“안돼안돼안돼, 뭘 생각하고 있는 거야 레이 쨩!”
“에에, 저기, 레이,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일단, 마이크 전원을 꺼 주세요.”
“맞아요, 사무소를 통해 주세요―.”
장미관은 대소란이었다.
레이 머릿속도 혼란스러워 좌우로 흐트러질것만 같았지만, 마음 속은 반대로 서서히 침착을 되찾아간다.
그건 유카의 마음을 확실히 들었으니까.
이 뒤에 학교에서 펼쳐질 소란을 생각하면 골이 아프지만, 그런데도 자신의 마음속에 안심하는 기분이 있는 게 느껴진다. 요즘의 답답한 기분이 지워져 간다. 무기력했던 자신에게 어딘가 스위치가 들어간 것처럼, 뭔가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것 같다.
여전히 빨간 뺨을 손으로 감추면서도.
“……후후.”
커다란 손바닥 아래로, 작게 미소를 흘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