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발돋움
드디어 졸업을 맞이하게 되었다.
졸업식도 순조롭게 끝나고, 남은 건 후배들의 배웅이나 인사 등을 받으며 학교를 떠나는 것 뿐.
대학은 릴리안과는 다른 학교로 가기로 했기에, 유치원때부터 계속 다녔던 릴리안과도 이별하게 된다.
온갖 일들이 있었고, 수많은 경험을 거쳐온 십여 년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새로운 무대로 나아간다. 레이는 다시금 그런 생각을 가슴에 담았다.
“레이 님, 졸업 축하드려요.”
“축하드려요. 그래도, 굉장히 쓸쓸할 거예요!”
하급생 여자아이들이 잔뜩 모여서, 졸업을 축하해 줬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에게 축하받는 것도 오로지 ‘황장미님’이라는 너무나 거창한 직함을 맡고 있기 때문이지만, 나를 따라주는게 기쁘지 않을 리가 없다.
어느샌가 기억하고 있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미소도, 눈물도, 모든 걸 가슴에 담으려 한다.
“레이 님, 다 같이 사진 찍게 이쪽으로 와 주세요.”
이윽고 노리코가 부르러 와선, 산백합회 일동과 사진을 찍게 되었다. 사진을 찍는 건 물론 츠타코고, 옆에 마미도 있는 걸 보면 ‘릴리안 학보’의 기사로 삼으려는 걸지도 모른다.
사치코와 레이를 중심으로 산백합회 임원이 늘어서서 사진을 찍는다. 합동 사진만이 아니라, 둘이나 셋 등 여러 조합으로도 찍었다. 이럴 때가 아니면 같이 사진 찍을 기회가 적은 사람도 있으니까.
촬영할 때는, 미소로.
물론 눈물을 흘리는 애도 있지만, 그건 결코 슬픔의 눈물은 아니다. 작별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함께 지내온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니까.
졸업하는 미나코를 앞두고 쿨한 마미가 큰 소리로 우는 의외의 해프닝도 있었지만, 촬영회도 끝나 자연스레 마지막 작별 분위기로 넘어간다.
사치코와 나란히 정문을 향한다.
그렇게 정문을 나온 참에,
“――레, 레이 씨.”
“에……아, 유, 유키 군?”
이름을 불려 바라보자 유키의 모습이. 레이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뜬다.
“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냐니……졸업한 레이 씨를 마중하러요.”
오늘 맞으러 오겠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없었다. 언제쯤 나올지도 모르는데 기다려 준 걸까.
“에에……폐가 됐을까요?”
“마, 말도 안돼!”
놀랐지만, 굉장히 기뻤다. 그도 그럴게, 사귀고 있는 상대가 졸업식 날에 마중하러 와 주다니, 한때 꿈꾸던 시추에이션이었으니까.
“기, 기뻐.”
“졸업 축하해요, 레이 씨.”
“고마워, 유키 군”
빙긋 미소짓는 유키에게, 레이도 뺨을 붉히며 미소를 돌려준다.
“――――크흠.”
“……아, 아, 미안, 사치코.”
일부러 낸듯한 헛기침소리가 들려와 눈을 향하자, 사치코가 미묘하게 거북한 듯이 서 있었다.
“나는 별 상관 없는데…….”
슬쩍 사치코가 뒤쪽으로 고개를 향한다. 그걸 따라 레이도 유키도 시선을 움직이자, 거기에는 산백합회 임원들, 신문부, 사진부, 그리고 그 외 수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그 모두가 레이와 유키를 주목하고 있다.
“꺄악―――, 소녀다운 레이 님, 멋져!!”
“으으으으, 레, 레이 쨩을 홀리다니…….”
“잠깐, 요시노 양, 경사스런 날이니까.”
“유키 님, 레이 님을 울렸다간 저희가 용서 안 할 거니까요!”
야유로도 축복으로도 들리는 온갖 목소리가 둘에게 날아온다. 추가로 휘파람, 박수, 카메라 플래시 등도 더해져서, 릴리안의 정문 근처는 조금 축제 분위기같은 느낌이다.
“아, 아아, 으아아아…….”
순식간에 얼굴이 뜨거워진다.
주위에 수많은 학생들이 있는데 유키와 둘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는 걸 이제와서 깨닫곤, 부끄러워 눈이 핑핑 돈다.
“레이 님―, 졸업 축하 키스를 한 번 부탁드려요.”
“에, 이럴 땐 왕자님 쪽에서 하는 거 아니니?”
“그래도, 어떻게 봐도 레이 님 쪽이 왕자님이지 않으려나?”
이런 소리들이 들려온다.
이미 레이와 유키의 관계는 릴리안 전체에 알려졌고, 레이의 팬인 학생들 사이에서도 상대가 하나데라의 학생회장이라면 괜찮다는 느낌으로 축복하는 분위기다.
그래도, 그렇다고 해서 이런 곳에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키스를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애초에 키스는 아직 한 적도 없으니까.
레이는 혼란에 빠져 도리질을 하려는 것처럼 몸을 비튼다. 어떡하면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지 전혀 떠오르질 않는다.
“――레이 쨩.”
그 때, 비슷하게 얼굴을 붉히고 있던 유키가 갑자기 레이의 손을 붙잡았다.
“에, 유, 유키 군?”
유키를 본다.
뒤에서 새된 환성이 들린다.
하지만 유키는 아무 말도 없이, 옆에 있는 사치코를 바라봤다.
“사치코 씨. 레이 쨩은 제가”
끝까지 말하기 전에, 사치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키 군. 레이는 제 친구예요. 혹시, 레이를 불행하게 한다면”
“알고 있어요, 저는――”
“괘, 괜찮은 걸, 유키 군이랑 함께 있는 것 만으로, 나는 행복하니까.”
아직 유키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번에는 레이가 끼어들었다.
게다가 꽤나 대담한 소리를.
“레이, 당신――.”
입에 담은 레이 자신도 놀랐지만, 유키가 레이를 불행하게 운운 하는 소리를 사치코가 해서 참질 못한 거다.
레이는 부끄러워 하면서도, 그런데도 친구를 제대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그러니까, 괜찮으니까……사치코.”
“…………그런 모양이네.”
기막히다는 듯 가볍게 어깨를 움츠리는 사치코.
“정말, 유키 군. 빨리 레이를 데려가 줘.”
“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사치코에게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서, 이야기 진행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던 구경꾼 학생들에게도 깊게 고개를 숙인다.
다시금 여럿이 환성을 지른다.
릴리안답지 않은 소란이었지만, 1년에 한 번 정도, 아니 어쩌면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이런 일이 있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수위도, 무슨 일인가 싶어 찾아온 선생님도, 쓴웃음을 지으며 눈감아 줬다.
“그렇다고 해도, 레이도 참.”
사이좋게 유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친구의 옆모습은, 사치코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행복해 보이는 미소여서.
그렇게나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한 거니까, 분명 괜찮겠지. 그리고 레이가 그런 미소를 짓게 할 수 있는 건 옆에 서 있는 소년 뿐인 거다.
“사랑은 눈을 멀게 만든단 거구나. 그 레이가, 저렇게 당당히.”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전교에 알려졌다곤 해도, 레이가 태연히 저럴 수 있을만한 성격은 아니다. 아무리 늠름해 보여도 그 알맹이는 그 누구보다 소녀답다는 걸 사치코는 알고 있다.
그런 레이가 남 앞에서 부끄러워 하면서도 도망치지도 않고, 남들의 눈길이나 소리가 향해와도 웃고 있었던 거다. 유키에게 그만큼 빠져 있다는 소릴까.
남의 사랑에 참견할 생각은 없고, 상대가 유키라면 걱정할 것도 없겠지.
“후후, 뭐니뭐니해도 유미의 남동생, 이니까.”
봄바람에 긴 흑발을 휘날리며.
다른 길을 나아가게 된 친구가 걷는 길을, 사치코는 조용히 지켜봤다.
한동안 걸은 뒤, 완전히 릴리안이 안 보이게 되었을 즈음 유키가 말문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면 학교 바로 옆이었지요, 집.”
생각지도 못한 소란 탓에 생각도 못 하고 걸어왔지만, 레이의 집은 릴리안에서 도보로 몇 분 거리다 보니 금방 도착해 버린다. 아무리 뭐래도 그건 너무 쓸쓸하고, 유키 역시 비슷한 기분같았다. 그래서 레이는 큰 맘 먹고 말을 꺼냈다.
“――저기, 유키 군이 괜찮다면, 조금 산책하지 않을래?”
“에, 그래도 괜찮아요? 귀갓길에 딴데로 빠지는 건 금지였던 게,”
“그치만, 오늘로 이미 졸업했으니까, 그 정도는 봐주지 않으려나.”
“아, 그런가.”
“그리고…….”
“예?”
조금 머뭇거리면서, 레이가 말했다.
“졸업식에 마중하러 와 줘서 같이 여기저기 들렀다 돌아가는 건, 옛날부터 동경했었으니까…….”
스스로 말하면서도 부끄러워진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애같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웃지는 않을까.
“알았어요, 그럼, 어디든지 좋아하는 데로 가요.”
하지만 물론 유키는 그걸로 놀리거나 하지 않고, 따스하게 웃으며 레이의 자그만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럼, 그렇게 할게.”
레이는 미소지으며 유키와 나란히 걷는다.
대학교에 가면 뭘 하고 싶다거나, 봄에는 뭘 하고 싶다거나, 유키와 여러 곳에 놀러 가고 싶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러다 도착한 곳은 공원.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 이 공원이군요.”
“응, 유키 군이랑 첫 데이트때 온 곳이니까…….”
그때는 아직 정식으로 사귀었던 건 아니지만, 기념스럽게도 태어나서 처음 한 데이트였다. 그렇기에 정식으로 사귀고서 처음으로 둘이서 찾아가는 곳도 이 공원으로 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이상한 걸까.
“저, 그때 굉장히 두근거렸었어요. 전화하고, 권하고, 그러면서 거절당하면 어쩔지 싶어서.”
“나, 나도 굉장히 두근두근거렸어! 그도 그럴게, 데이트 권유를 받다니.”
“덧붙여 말하자면, 지금도 긴장하고 있어요.”
“사, 사실은 나도…….”
그러다 둘은 얼굴을 마주 보곤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나쁜 긴장이 아니야. 오히려 계속 두근거리고, 그렇게 두근거리게 해 주니까 좋아하는 걸지도.”
“고, 고마워요.”
“으, 응.”
저도 모르게 간단히 ‘좋아한다’고 말해 버린걸 깨닫고, 얼굴을 붉히는 레이. 유키도 새빨개져서 고개를 숙여서, 둘 사이에 정적이 감돈다.
그런 미묘한 분위기를 떨쳐내려는 것처럼, 레이는 화제를 바꾼다.
“나, 나 말야, 이 뒤가 굉장히 기대돼. 대학교에서는 잔뜩 공부하고 싶고, 새로운 친구도 많이 만들고 싶어. 그리고, 많은 곳에 가 보고 싶어.”
즐거운 듯이 말하는 레이를 상냥하게 바라보는 유키.
“그리고.”
“응.”
“옆에는, 언제나 유키 군이 있는 거야. 그러면……기쁘겠는데.”
졸업하고 들뜬 건지, 아까 전부터 굉장히 대담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진심이니까.
둘이서 쇼핑하러 가고 싶고, 유원지에도 가고 싶고, TV나 잡지에서 유명한 케이크나 파스타가 맛있는 가게에도 가 보고 싶고, 그 외에도 하고 싶은 것들이 꿈처럼 떠오른다. 여행같은 것도 괜찮고, 유키의 집에도 가 보고 싶고, 둘이서 스티커 사진을 찍어보고 싶고, 유리를 만들어 주고도 싶다.
하지만, 제일 바라는 건.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으니, 옆에 함께 있었으면 싶다.
그게 레이의 가장 강한 소망.
“물론, 저도 그럴 생각이에요. 하지만…….”
“에, 하, 하지만?”
설마 부정하는 걸까 싶어, 불안한 기분으로 바라보자.
“……아무리 그래도, 대학교 수업 중이나 친구랑 함께 있을 때는 저도 사양정도는 한다고요.”
라고 말하면서 웃는 유키.
“아, 그, 그렇구나. 미안해.”
당연한 소리다. 레이는 부끄러워져서 뺨을 손으로 누른다.
“아, 그래도.”
“에, 아, 아직 남았어?”
“제가 같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도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유키의 그 말을 듣고 몽상한다.
대학교의 같은 교실에서, 옆에 앉아 같은 수업을 듣는다. 학년이 다르니까 전문교과가 아닌 교양과목 수업이다. 좋아하는 남자와 나란히 앉아 수업을 받아서, 수업중에도 두근거리고, 옆이 신경쓰여서 수업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질 않는다. 그런 순정만화스러운 시추에이션은, 레이도 동경하는 상황 중 하나였다.
그리고 친구랑 노는 그룹 중에도 유키가 있다. 유키와 레이가 사귀고 있다는 건 비밀로 할까, 아니면 모두 알고 있는 걸로 할까. 어느 쪽이든 정말 멋질건 틀림 없다.
“하우우, 그, 그거 좋을지도…….”
자기 상상의 파괴력에 당한 레이.
“그래도, 그걸 위해선 수험 공부, 힘내야 겠네요.”
유키의 그 한 마디에 정신을 차린다.
그랬다. 유키는 올해, 수험생이 되는 거다. 그렇다는 건 느긋하게 레이와 만날 시간을 쉽게 만들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상상하고 있던 것들이 우르르 무너져, 침울해질 것 같은 걸 참는다.
“그렇네, 수험 공부 방해는 안 되게 해야지.”
유감이지만, 그게 유키에게 전해지면 안 된다. 유키는 상냥하니까, 레이가 쓸쓸한 기색을 보이면 수험공부같은 건 팽개치고 레이와 함께 있어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 준다면 굉장히 기쁘겠지만, 자신이 유키의 발목을 잡는 상황은 견디기 힘들다.
“그래도 저, 만나질 못하면 공부에 더 집중하지 못하게 될 것 같으니까, 주기적으로 만나고 싶다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물론, 얼마든지 만나러 갈게.”
주먹을 꾹 쥐고, 힘차게 선언.
자신과 만나 집중력이 늘어난다면, 비가 내리든 한밤중이든 만나러 달려갈 정도의 기분이다.
“그러고 보면, 졸업여행같은 건 안 가나요? 사치코 씨랑 간다거나.”
“음―, 그런 이야기도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래저래 사정이 안 맞아서.”
“좀 유감스럽네요.”
“응. 맞아, 대신에 유키 군, 같이 갈래?”
“엣?!”
말하고 나서.
“…………………….”
또 터무니없이 대담한 발언을 한 걸 깨닫고, 귀까지 빨개진다.
“저, 저기, 지지지금 이야긴, 그.”
“저, 여행 함께 가고 싶어요.”
“아으.”
그건 물론, 레이도 가고싶다.
“그래도……남자랑 단 둘이 가는 여행은, 아버지께서 허가 안 해 주실테니까.”
“그, 그렇겠네요, 죄송해요.”
“으으응, 내, 내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해 버렸으니까. 아, 그래도, 아버지께 유키 군을 소개하면……그래도 갑자기는 무리지…….”
어깨를 털썩 떨군다.
도장의 사범인, 성실하고 엄한 아버지. 그런 만큼 쉽게 허락해 주진 않겠지. 애초에 교제 자체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어떨지.
“저, 부모님께 인사하고, 성실하게 교제하겠다고 말할게요. 레이 씨를, 소중히 하겠다고, 맹세할게요. 부모님이 인정해 주신다면, 여행에도.”
“유, 유키 군 잠깐. 기, 기쁘긴 하지만, 그렇게 초조해 하지 마. 꼭 졸업여행에 구애될 필요도 없고, 거기에 여행 이전에, 데이트를 하는 것도 충분히 기대되고.”
“그……그렇네요. 죄, 죄송해요, 왠지 저 혼자서.”
새빨개져버린 유키를 보고, 레이도 얼굴을 붉힌다.
유키의 마음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둘이 숙박을 포함해 여행하게 되면, 분명 기대하는 게 있을 거다. 남자애니까.
“저, 저쪽, 꽃이 펴서 예뻐요. 가 봐요.”
허둥지둥 급하게 화제를 바꿔서 화단쪽을 가리키는 유키. 서투르긴 하지만, 그래서 상냥함이 잘 느껴지기도 해서, 마찬가지로 서투른 레이에겐 그게 기쁘다. 둘 다 서투르다고 해도, 그게 좋은 거다.
“――응, 가자.”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긴다.
공원을 걷는 중에 이래저래 시간이 지나갔다. 중간에 매점에서 주먹밥을 사서 먹었기에, 배는 안 고프다.
평일 낮이기도 해서, 사람은 많지도 적지도 않아 느긋이 지내기엔 좋은 느낌이었다.
“저, 저기.”
공원을 한바퀴 돌았을 때, 유키가 걸음을 멈췄다.
“다시금, 졸업 축하드려요.”
“응, 고마워.”
“그리고, 릴리안에 계셔 주셔서……산백합회에 계셔 주셔서……저랑 만나 주신 것……정말로 감사드려요.”
“유, 유키 군…….”
가슴이 멘다.
귀여운 얼굴이지만, 그래도 때때로 멋있는, 사랑하는 사람.
지금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레이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
말은 끊겼다. 어딘가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고,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눈빛.
레이는 그 뜻을 깨달았다. 주위에 자연스레 눈길을 향해보자, 가까이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꿀꺽, 하고 침을 삼킨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시야가 닫히는 만큼, 다른 감각이 날카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심장 소리가 아까보다 더더욱 크고 빨라지는게 느껴진다. 뺨에 열이 모이고, 얼굴이 빨개지는 것도 느껴진다.
하지만 상상하는 상황이 계속 오지 않는다. 혹시나 혼자 착각한 걸까 싶다가, 유키와의 신장차를 깨달았다.
이렇게 멍청하게 서 있어서야 닿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와서 자세를 바꾸는 것도 부자연스러워서, 어떡하지 싶어 실눈을 뜬 순간.
갑자기 두 어깨와 입술에 느껴지는 감촉.
눈을 떠 보자, 유키가 레이의 어깨에 손을 대고 열심히 발돋움해 키스를 하고 있었다. 어깨에 놓인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지 않도록, 아슬아슬할 정도까지 발돋움하고 있다. 몸이 조금씩 떨리는게 느껴진다.
이윽고 유키는 천천히 떨어져 간 뒤, 레이가 눈을 뜨고 있었던 걸 깨닫곤 면목없어보이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왜, 왠지 한심해서 죄송해요.”
“그, 그렇지 않아. 내, 내가 쓸데없이 커서, 미안해.”
첫키스의 뒤인데도 왠지 달콤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지만, 그런데도 퍼스트 키스인건 마찬가지다.
레이는 뺨이 풀어질 것 같은걸 참으려 하다, 포기했다.
“…………에헤헤, 이걸로 하나, 꿈이 이뤄졌어.”
“에?”
“그게, 우, 웃지 말아 줘. 졸업식 날에, 좋아하는 사람하고 첫 키스를 하는 게 내가 동경하던 졸업식 풍경 중 하나야.”
말을 하면서, 스스로도 부끄럽다.
“웃거나 할 리 없잖아요. 레이 씨의 꿈을 이룰 수 있어서, 저도 기뻐요.”
“고, 고마워.”
“아뇨……아아, 동경하고 있던 것 중 하나라는 건 다른 것도 있다는 거죠? 저로 괜찮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할게요.”
레이를 기쁘게 해 주고 싶어선지, 유키는 그런 말을 꺼냈지만.
반대로 레이는 말이 막힌 뒤, 익은 토마토처럼 새빨개졌다.
“그, 그그그그, 그건, 됐어.”
“에, 어째서요? 저는 못 하는 건가요? 저, 레이 씨를 위해서라면 노력할 수 있어요.”
“아, 아냐. 유키 군 밖에 못하는 거지만……그, 그래도, 역시 됐어.”
“어, 어째서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미, 미안해!”
“아, 레이 씨?!”
얼굴을 숨기듯 유키에게서 몸을 돌리고, 레이는 뛰어갔다.
확실히 꿈은 아직 있었고, 유키라면 이뤄줄 수 있는 것, 오히려 유키 밖에 이뤄줄 수 없는 거였지만,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도 없다.
그도 그럴게.
‘졸업식날에 버진도 졸업.’
이라니, 부끄러워서 말할 수 있을 리가 없고, 야한 여자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도 싫었고, 애초에 오늘 첫키스를 했는데 그 이상의 뭔가를 할 수 있을 리도 없다. 아무리 뭐라 해도, 오늘로 거기까지 하는 건 발돋움 수준이 아닐 거다.
레이는 자신의 부끄러운 망상에 몸부림치며, 달려갔다.
간신히 안정됐고, 유키도 레이를 쫓아와서, 그런 둘이 멈춰선 곳은 계단 중앙.
“여기는…….”
“유키 군이 내 팬티를 훔쳐본 곳이구나.”
“후, 훔쳐본 거 아니에요! 그건 우연히,”
조금 삐친 시늉을 하며 유키를 바라본다.
첫 데이트날, 익숙하지 않은 치마 차림으로 노는 중에 바람의 장난으로 치마가 펄럭여 올라갔다.
딱 지금 있는 계단에 레이가 서 있었고, 유키는 아래 있어서, 위치적으로 안이 보일 만한 곳이어서.
“그, 그래도, 라임그린은 사랑스러워서 레이 씨에게 어울리고.”
“왜, 왜 그런, 기억하고 있는 거야?!”
“그야, 잊을 수 있을 리 없잖아요……아, 죄, 죄송해요!”
“바보바보, 유키 군 변태, 잊어버려, 바보―!!”
부끄러워서 유키를 통통 두드리는 레이. 진심이 아니라곤 해도, 단련으로 힘이 강한 만큼 사실은 꽤 아프긴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입에 담진 않는다.
“용서해주세요, 레이 씨. 죄송해요.”
“안돼. 애초에, 아까부터 계속 ‘레이 씨’라고만 부르고 있는 걸.”
휙, 고개를 돌린다.
“에에……용서해 줘, 레이 쨩.”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유키.
마음 속으론 그렇게 화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화난 척을 계속하는 레이.
“그럼……한 번 때리게 해 줄래?”
“에엣?”
“그치만, 치마가 말려 올라가서, 보여버린 걸.”
“제가 들춘게……아뇨, 봐 버린 건 확실하니까, 알겠어요.”
끄덕이는 유키를 보고, 손을 드는 레이.
유키는 눈을 감고 충격에 대비한다.
“그럼, 각오는 됐지?”
“언제든지요.”
각오를 굳힌 유키를 보며, 레이는 들어올린 손을 휘둘러 내린다.
그리고.
뺨 직전에 멈추곤, 살짝 만졌다.
“――에?”
당황하는 유키를 향해서.
한 계단 아래서, 까치발을 서서 입술을 겹친다.
천천히 발뒤축을 내리며 입술을 떼자,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유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이걸로, 용서해 줄게.”
그렇게 말하는 레이는, 부끄러워하면서 빙긋 웃었다.
순식간에 불붙은 것처럼 새빨개지는 유키.
“~~~~~~레, 레이 쨩.”
“에헤헷.”
손을 잡는다.
속아서 분한건지, 그래도 키스받아서 기쁜건지, 뭐라 할 수 없는 표정으로 신음하는 유키.
“……그, 그래도, 이걸로 용서 받을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잠깐, 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야한 건 안돼! 금지!”
화를 내자, 침울해지는 유키.
고개를 숙이는 유키를 보고, 레이도 당황한다.
“아……그, 저기, 그러니까, 갑자기는 안돼. 그, 그런 야한 건, 조금씩, 응?”
“네, 네, 그렇네요.”
완전히 유키가 흥미를 보이지 않아도 곤란하다. 레이도 좋아하는 상대와는 맞닿고 싶고, 그래줬으면 싶다고 생각하니까.
서로 깍지를 끼고 계단을 오른다.
둘의 관계도 하나씩 스탭을 밟아가면 되는 거다.
“유키 군, 저기, 앞으로도 잘 부탁해.”
“저야 말로요, 레이 짱. 계속, 함께 있어요.”
“……응.”
서로 마주보고, 마음을 확인한다.
좋아한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기쁨을 곱씹으며.
릴리안 여학원 졸업식 날.
그건, 레이가 생각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도 최고의 졸업식 날이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