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식 (2)
“코모도라고 정했답니다.”
“코모도?”
“네. 귀여운 이름이지요?”
“그럭저럭.”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이 실수로 재능을 한 바가지 쏟아버린 듯 빠지는 것 없는 북쪽의 황제 폐하께서도 동물분류학, 특히 그 중에서도 도마뱀에 대해서는 조예가 없으신 듯했다. 공포와 권위의 상징일 용에게 도마뱀의 이름을 붙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런데 대체 어디서 따온 이름이오?”
“음, 저 멀리 이교도들의 땅을 넘어가면 향신료의 왕국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섬의 이름이라고 해요.”
생각보다 빨리 나온 물음에, 세스는 당황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세스가 이름을 가져온 생물의 이름은 서식지인 그 섬에서 따온 것이니.
“향신료의 왕국……. 아.”
붉게 물들이고 색색의 실로 수놓은 혼례복에 지지 않을 만큼 화려한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섬이오?”
“이름이 재미있지 않나요? O가 세 번이나 들어가는 걸요.”
“풋.”
시종일관 진지하기만 하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조소가 어울릴 듯한 냉기어린 미모였건만 느슨하게 풀어진 얼굴도 제법 잘 어울렸다. 신랑은 짧게 웃고는 괜스레 옷깃을 다시 여몄다.
“지금 충분히 쉬어두는 편이 좋을 거요.”
“어째서인가요?”
“로렌에서는 어쩌는지 모르겠지만 이 시기 코시카 결혼식은 앞으로 일 주일이오. 신랑은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핑계로 도망갈 수 있어도, 신부는 내내 거기 앉아서 생글생글 웃고 있어야 하지.”
“일주일 동안이요?”
“일주일이오. 그나마 줄인 거요. 한겨울이었다면 한 달은 하자 했을지도 모르지.”
“굉장하네요. 하지만 괜찮아요.”
한 눈에 봐도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폐하께서 옆에서 말상대를 해주실 것 아닌가요? 지금까지 살면서 쌓인 이야기의 반에 반만 해도 금세 일 주일은 금세 가겠군요.”
“그건…….”
“아닌가요?”
세스는 베일에 감싸인 손을 뻗어, 일곱 겹의 붉은 베일을 사이에 두고 황제의 손을 잡았다. 입술까지 겹쳐봤으면서. 손잡는 것에 깜짝 놀란 듯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는 딴청을 피우며 앞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손가락은 분명 오므라들며 세스의 손을 잡았다.
세스는 귀를 쫑긋 세웠다. 시끄러운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희미한 중얼거림을 구분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히 들었다.
“그러지.”
세스는 옐렌 황제를 휘둘러 베일 사이로 슬쩍 음료와 음식을 받아먹었다. 사실 세스는 배고픔을 잘 참을 수 있었다. 고래 뼈로 뼈대를 세우고 두터운 판지를 심으로 넣은 스테이로 허리를 조이고도 식욕을 느끼기란 지난한 일이었다. 하지만 딱히 음식 외에는 부탁을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세스는 비밀에서 사람들의 유대감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리 하찮아도 괜찮았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같이 하는 것만으로도 긴밀해진다.
하객들은 저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어 신부에게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례 인사를 받을 때에만 음식을 먹지 않으면 되었다.
옐렌 황제는 세스가 음식을 다 먹은 것을 확인하고는 손을 닦으라고 물수건까지 건네주었다.
“음식은 입에 맞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독특하군요. 포크와 나이프를 쓰지 않고 식사해 본 적이 없어서요. 하지만 맛있어요.”
“다행이군.”
“그런데 왜 신부는 이렇게 베일을 둘둘 감고 있어야 하는 건가요?”
“마귀에게 신부가 잡혀가지 않게 하기 위한 풍습이오.”
“붉은색을 쓰는 건요? 웨딩 가운에 붉은색을 쓴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봤거든요. 코시카에서는 다 붉은 옷을 입고 결혼을 하나요?”
“혼인식에 붉은색을 쓰는 것 역시 파마(破魔)를 위한 상징으로서…….”
황제는 세스의 물음에 꼬박꼬박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덕분에 세스는 코시카의 결혼 풍습에 대해서는 혼례복에 수놓은 무늬의 의미부터 자질구레한 전설까지 꿸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입고 있는 혼례복을 내려다보았다. 방에 있는 것들만으로도, 코시카는 수에 집착하는 나라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했지만, 혼례복은 손대기 두려울 정도로 무늬가 빽빽했다. 원래는 신부가 한 땀 한 땀 수놓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세스는 이 옷에 바늘 한 번 대지 않았으니 분명 다른 여자가 만들었겠지.
돈을 얼마나 주면 이런 옷을 만들 수 있는 걸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황제의 말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문양들에도 전부 기원이 스며있다고 했다. ‘주문’이라고.
미셸이 들으면 ‘내가 시집갈걸!’하고 외치며 억울하다 배를 잡고 굴렀겠지. 세스는 언제 침울했느냐는 듯 즐겁게 웃었다. 중간에 멈춘 편지에 쓸 말이 줄줄 생각났다. 족히 편지 수십 장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왔다. 몇 번이고 코시카 시녀들이 세스에게 아뢰고, 옐렌 황제도 미리 경고했던 그 절차가.
부우-. 부우-. 부우-.
뿔피리가 세 번 울렸다.
홀이 순식간에 비었다. 세스는 홀에 있는 사람 전부가 탁자와 의자를 옮기는 그 광경을 보고 정원의 개미 떼가 먹이에 달려들어 집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단장한 남자들이 몰려나와 북을 쳤다. 군인일까? 발을 구르고, 손뼉을 쳤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은 네 명, 곧 홀 전체로 퍼져나갔다.
“어머나.”
세스는 작게 탄성을 내지르며 가슴에 손을 올렸다. 굳이 놀랐다는 것을 표현하는 몸짓은 보아줄 사람이 없는데도 자연스레 손 모양까지 우아하게 나올 만치 몸에 배어 있었다. 갈비뼈로 만들어진 새장 안까지 쿵쿵 울렸다. 심장이 새로 생긴 듯 굉장했다.
선율은 없었지만 박자가 쉴 새 없이 바뀌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왼손 손등을 톡톡 치며 따라하고 있었다. 성당의 오르간이 경건하면서 신성하다면, 이 음악 아닌 음악은 사람의 뱃속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머리 위까지 끓어오르는데, 반대로 영혼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음과 음 사이로 통과해 불순물이 걸러지는 듯, 그렇게 정순해졌다.
세스는 작게 입을 벌렸다.
“여기는…….”
궁정무관이 배에 힘을 주고 쩌렁쩌렁하게 소리 질렀다.
“토끼 납시오!”
세스는 베일에 익숙지 않았다. 로렌에는 세례식이 아닌 이상에야 수녀 아닌 여자가 베일을 머리에 쓸 일이 없었다. 하물며 이렇게 몸을 칭칭 감은 베일, 몸을 움직일 때마다 붉은 그림자가 어른거려 도무지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무거운 금붙이가 잘그락거렸다. 양말 신지 않은 발을 끼워 넣은 가죽신에 굽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로렌에서처럼 새끼손가락처럼 가늘고 높은 굽의 신을 신었다가는 두 번이나 세 번쯤 굴렀을지도 몰랐다.
세스는 코시카의 모든 지위 높은 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충분히 신중하게 붉은 융단 깔린 석조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서른 셋. 설마 33이라는 숫자에도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모르는 게 없는 것처럼 뽐내는 얼굴을 하는 어린 신랑을 돌아보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고, 세스는 베일을 벗었다. 몇 번이나 연습을 해봤지만 평생 베일을 쓰고 살아왔을 이 북쪽의 여자들이 원하는 만큼 우아한 자태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저 허둥거리며 몸에 베일이 휘감겨 추한 꼴을 보이는 것이나 겨우 면한 정도였다. 핏빛 베일이 한 겹, 한 겹 떨어져 내렸다. 마지막 베일이 땅에 떨어져 내리자, 세상이 일순간 숲인 듯 푸르러졌다.
하루 종일 붉은 색을 보아왔던 눈에 청명한 청록색 베일을 씌운 듯 비쳐보였다. 이것 참 신기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세스는 여섯 명의 상징, 토끼, 공, 멍석, 처녀의 아름다움, 말, 침묵에게 하나하나 몸에 걸친 것을 벗어주기 시작했다.
목걸이며 반지며 팔찌가 하나하나 사라지면서 몸이 점점 가벼워졌다. 신랑에게 일곱 개의 장신구를 받아, 점점 몸이 무거워지는 로렌의 결혼식과는 대조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르다.
세스는 마지막으로 손에 끼고 있던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어 가면을 끈 중년 여성에게 쥐어주었다. 그녀야말로 ‘침묵’으로서, 신부에 대한 불리한 일을 모두 눈감고 말하지 않겠다는 정령이므로 가장 값비싼 금품을 쥐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정령. 그래. 정령이다.
요정도 아니고 정령은 페란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실재한다는 기록이 없었다. 만약에 그런 것이 있었더라면 미셸에게 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북쪽에서만 믿는 이야기일까?
다이아몬드가 손끝에서 떠나가고 세스는 짧은 아쉬움에 손끝을 오므렸다. 어차피 정령이 실제로 있다고 해도 최소한 눈앞에 있는 뚱뚱한 체구의 여인은 아닐 터였다. 다 변장이 아닌가.
침묵에게 준 금품을 마지막으로, 몸에 걸친 장신구를 전부 나누어준 세스는 검고 긴 머리를 치렁치렁 풀어 내린 채, 익숙잖은 붉은 옷만을 걸친 수수한-물론 옷의 수를 무시한다면- 몰골이 되었다.
이제 토끼를 끌어안고 금비를 내리라고 소리를 지르면 된다고 했다. 세스는 적어도 자신과 거의 비슷해 보이는 체구의 소녀를 보며 갈등했다. 도저히 안아 올릴 수 있는 몸집이 아니잖아!
어느 공가의 딸이라는 ‘토끼’ 정령 분장을 한 소녀는 열두 살이라고 들었는데 세스와 다름없었다. 아니, 오히려 조금 더 큰 것 같기도 했다.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청했다.
“금비를 내려주세요!”
“금비를! 금비를! 금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