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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 언바운드 윙 외전 Angel B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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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바운드 윙 외전 Angel Bound - 1화


 19세, 나는 사수생이 되었다.




 기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내가, 드물게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소리를 듣던 이 내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기사단 입단 시험에서 떨어진 것이다.




 4 개월 주기로 총 세 번 진행되는 모집 전형도 이제 끝. 세 번 모두 실패한 나는, 규정에 의해 앞으로 1년간은 응시도 불가능한 처지가 되었다. 올해 안에 합격할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우편으로 온 불합격 통지서와 함께 멋지게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의지도 부족한 주제에 꼴좋다며 집안의 지원도 끊긴 지 오래. 분하고 또 분하고 엄청 분해서, 나는 화풀이 겸 눈앞에 놓인 맥주를 거침없이 들이키기 시작했다.




 "우와, 저 여자 의외로 주당이네."




 "나이도 어린 것이 벌써부터 술을 밝히긴……."




 "그냥 놔 둬. 아직 애송이라는 증거지, 뭐."




 주 변에서 안 좋은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입단 시험에 합격한 응시생들의 안쓰러운 눈길이 대부분이다. 머그(mug)를 집어 던지면서 뭘 쳐보냐고, 구경거리 났냐고 소리치며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어찌됐든 나는 교양 있는 아가씨였기에 묵묵히 잔을 비우며 상상하는 정도로만 끝냈다.




 그 대신 지금까지 쌓여 있던 이 분노를 내 앞에 있는 남자에게 모두 풀었다.




 "이게 뭐야, 스승! 스승이 가르쳐준 대로만 하면 무조건 합격이라며! 덕분에 난 아무 능력도 없는 쓰레기 사수생이 됐어!"




 '와아, 한심하게 사수씩이나 하다니.' 같은 갤러리의 잡소리는 철저히 무시한 채, 나는 있는 대로 스승을 노려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스승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평온하게 웃더니,




 "마리엘이 스트레스로 벌써 취해버린 모양이구나."




 ……이 따위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나 지껄일 뿐이었다.




 그 런 대답조차도 뭔가 상냥한 느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도대체 뭐기에 제대로 된 항의도 못하는 걸까. 푸우 한숨을 내뿜다시피 하며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으니, 스승은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 위로랍시고 이런 말을 꺼냈다.




 "뭐, 미끄러졌다고 해서 크게 낙심할 필요 없어. 1년이란 시간은 금방 가는 법이니까."




 "그 1년 때문에 난 맞아 죽게 생겼다고. 특히 언니가 날 가만 안 둘 거야……."




 이 번에도 탈락하면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패버린 뒤 적당한 가문에 시집보내겠다고 벼르던 언니였다. 차기 가주나 다름없는 언니의 명령은 아버지의 명령만큼이나 절대적. 다른 건 몰라도 모르는 남자와 평생토록 같이 사는 건 싫었기에, 나는 내 나름대로 이번 시험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물론 마지막 기회마저 놓친 주제에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마는.




 이 제 와서 밝히는 건데, 나는 지금도 스승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스승은 머그를 들 듯 들지 않고, 맥주를 마실 듯 마시지 않는 기묘한 행동을 보였다. 그러더니 내가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보고 있으면 좀 쑥스러운데……."




 미친놈. 길 가다 차에 치어버리라지.




 내 가 '스승'이라 부르는 이 남자는, 나이로 따지면 나와 4살 차이밖에 안 난다. 그래서 얼핏 보면 막 기사가 된 풋내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게 된다. 말했듯이 나이차도 적기에 보는 시선에 따라선 친구 사이, 연인 사이, 심지어ㅡ내가 한 미모 하는 것도 있지만ㅡ부부 사이로까지 오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아하게 웃으며 '아니요, 그저 원수 같은 사제지간일 뿐입니다.'라고 대답해주는 것에도 이젠 익숙해진 상태다.




 스 승과는 4년 전에 처음 만나 오늘까지 인연을 이어왔다. 미남에다 성격도 부드러워서 일이 잘 풀리는구나 싶었는데 이게 웬걸, 알고 보니 과할 정도로 여유만만하고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소개받은 자리에선 황족의 기사로 일했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뭐, 그 때도 기사보단 떠돌이 같은 분위기가 강하게 풍기긴 했다. 잘생기고 착해서 내가 쉽게 넘어가버린 셈이다.




 그 경솔한 선택의 대가가, 바로 지금의 나인 것이다.




 "어떻게 할 거야, 스승! 불합격했다는 소식이 언니 귀에 들어가면 그 날로 나는 끝이야! 이게 다 나를 가르친 스승의 잘못…… 끄윽."




 취기가 돌기 시작했는지 나는 말 중간에 딸꾹질을 했다. 아마 내 얼굴은 지금쯤 내 머리만큼이나 붉게 물들었을 테다. 그 원인이 술에 있는지, 아니면 분노에 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마리엘,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스승은 여전히 태평한 말투로 나불댔다.




 " 네 시험 점수는 매번 완벽에 가까웠어. 내 지도에 따라 열심히 공부하고 수련한 덕택이지. 다만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가장 나쁜 점수를 받은 곳이 항상 면접으로 나와. 그 부분은 내가 명문 기사단 출신이어도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거잖아?"




 "큭. 그, 그건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성적표에서 위안을 얻은 부분도 필기와 실기 점수였고……. 아니지! 이게 아냐!




 "그럴 리 없잖아! 적어도 어떻게 하면 면접을 잘 볼 수 있는지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냐!"




 억울하다는 듯 손으로 테이블을 내려쳐보기도 했지만, 스승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면접은 올해부터 추가돼서 도울 방도가 별로 없었는걸. 그래도 책 쌓아두고 같이 연구했는데, 혹시 기억 안 나는 거야?"




 "어, 어라? 그런 일이 있었나?"




 한 순간 어떤 사실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애매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머릿속을 잠식하기 시작한 건, 논리나 이성 대신 이도 저도 아닌 당혹감.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자기가 모르는 부분이면 직접 공부해서라도 가르치려 했지. 스승으로서의 도리는 다했다는 건가.




 스승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 앞에 펼쳐보였다. 그것이 눈에 들어온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너에 대한 면접관들의 평가를 보면 말이야.”




 주변에서 듣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스승은 면접관이 쓴 글을 아주 당당하게 소리 내어 읽었다.




 “ ‘오만하고 자기 확신이 심하여 대화가 통하지 않음. 임기응변이 요구되는 질문에서 왜 그런 걸 묻느냐며 화를 냄. 성적은 우수하나 단원으로서 요구되는 인성 및 소양이 기준 미달이기에 만장일치로 불합격 처리됨.’ 황제의 기사를 뽑는 시험이어서 기준이 엄격했다고 해도, 이 정도 악평이 나올 정도면 너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게 되거든.”




 “흠, 그런 어설픈 압박면접에 넘어가는 바보도 있을 줄이야.”




 “그것도 못 참고 화를 내다니, 도대체 얼마나 수준이 낮은 거지?”




 “저런 사람도 팔라딘즈 ​네​스​트​(​P​a​l​a​d​i​n​s​'​ Nest)에 지원할 수 있는 거구나…….”




 내 예상대로 스승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어이없는 의외의 사실을 듣고 날 비난하거나 깔보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조용히 말하면 내가 못 들을 줄 아는 것 같은데, 다 들리거든? 니들 일에나 신경 쓰라고 소리치고 싶어도 체면이 있기에 못 하겠다. 너무 민망해서 나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알았어. 다 내 잘못이라는 거 아냐.”




 결국 나는 더 이상의 저항을 포기하고 힘없이 내 과실을 인정했다. 분하고 또 분하고 엄청 분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려니, 스승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름 잘 해줬어. 처음엔 입단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점수가 나빴잖아. 남은 시간 동안 예절 공부만 좀 하면 내후년엔 반드시 붙을 거야. 걱정하지 마.”




 같 잖은 위로 따위 필요 없다고 매도해주고 싶어도, 스승의 손길이 평소처럼 상냥해서 오히려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는 스승의 인자한 미소 앞에서 점점 식어갔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고 엄청 부끄러워서 나는 테이블 위에 아예 엎드려버렸다.




 “……앞으로도 나랑 같이 있어줄 거야?”




 확신이 없는 목소리로 내가 묻자 젊은 스승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합격하는 그날까지 계속 옆에 있을 거야. 내가 아무리 무책임해 보여도 약속은 지켜.”




 “자기가 그렇게 보인다는 자각은 있는 모양이네.”




 아 무리 노력해도 훈훈한 대화를 만들어나갈 자신이 안 생겨서 그냥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나도 모르게 스승의 페이스에 휘말릴 것 같아 머리 위의 손은 치웠다. 스승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왠지 이번만큼은 인정하기 싫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삐친 강아지’ 같다고 스승은 종종 말하곤 했다.




 그리고 자기 이미지를 알아서 말아먹는 인간답게, 스승은 이내 피식 웃으며 자신이 한 생각을 조심성 없이 그대로 말로 내뱉었다.




 “어른이 됐어도 화낼 땐 여전히 삐친 강아지구나, 마리엘 폰 헤르만.”




 ……아, 그냥 체면 버리고 다 뒤집어 엎어버릴까.




 “나갈래. 계산은 알아서 해.”




 도 저히 참을 수 없는 무언가에 나는 곧바로 자리를 박찼다. 스승의 반응을 살피지도 않고 빠른 걸음으로 가게 문을 향해 나아갔다. 나를 부르는 스승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말 그대로 커지기만 했을 뿐 분노가 담겨 있거나 하진 않았다.




 “지금 나가려고? 방금 주문한 맥주는 어떻게 할까?”




 “몰라! 스승이 마시던가 해!”




 “에, 나 배부른데. 애초에 네 맥주잖아. 천천히 마셨다가 가면 안 돼?”




 “알 게 뭐야! 그러려면 그러던지!”




 “돈 아껴야 된다면서 어디에 가려고?”




 “아르바이트 구하러 간다!”




 분 노와 부끄러움에 사로잡혀 나는 대답마다 소리 비슷한 것을 내질렀다.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봤지만, 볼 테면 보라지. 내 꼭 내후년 시험에 붙어서 저 스승이란 인간의 낯짝을 짓밟고 말 테다. 잠깐이나마 스승을 좋게 평가한 내가 바보였다.




 “곤란한걸. 여기 수험생들이 주로 모이는 가게인데…….”




 뒤에서 들려오는 말은 가볍게 무시하며, 나는 명문가의 아가씨다운 걸음으로 당당하고 기품 있게 가게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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