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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 언바운드 윙 외전 Angel B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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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바운드 윙 외전 Angel Bound - 5화


 "그래서, 의뢰를 받아들일 생각이야?"




 리클라이너에 몸을 반쯤 눕힌 스승이 이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없는 동안 이 주변의 숙소를 전부 알아보고 다녔다는데, 그 때문인지 상당히 피곤해 보인다.




 가게에서 가져온 '헤어진 ​남​자​친​구​(​E​x​-​b​o​y​f​r​i​e​n​d​)​'​를​ 손질하며 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친구의 부탁인데 어쩔 수 없잖아. 광장에서 도움 받은 빚도 있고."




 "그건 네 결정이니까 괜찮아. 하지만 성녀를 호위하는 건 쉽지 않아. 프로 기사도 힘들어하는 일을 지망생인 네가 하겠다고 하니 스승으로서 조금 걱정돼."




 아르바이트 내용은 듣지 못했다고 하자 스승은 7할 5푼의 확률로 호위 임무일 거라고 추측했다. 거기에 사적인 부탁이라면 뒤가 구린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녀 호위를 전제로 깔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 아직 모르잖아?




 "직접 얘기해보면 알겠지. 어려운 일은 아닐 거야."




 "그래도 '직접' 온단 말이지, 그 사람이……."




 '헤어진 남자친구'의 날 너머로 스승의 표정이 변했다. 나를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고, 무언가를 곤란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4년간 스승의 미소만을 봐왔기에 저런 얼굴은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스승도 당황할 때가 있구나 싶다.




 "한 시간 뒤에 이쪽으로 온대. 이 옆 지구를 돌다가 성녀와 합류할 계획이라나 봐. 도착하는 대로 전화해달라고 했어."




 천이 베이지 않도록 천천히, 숙녀를 다루듯 묵빛의 도끼날과 창날을 닦았다. 레어메탈제 무기는 강철제 이상으로 단단하고 날카롭기에 말하면서도 엄청 집중하고 있었다. 스승의 반응을 길게 살필 겨를이 없었지만, 어떻게든 짬을 내어 시선을 위로 올렸다.




 항상 헬렐레하던 사람이 지금은 무슨 연유에선지 눈빛만은 진지하다. 갑자기 왜 저래, 괜히 불안하게.




 "으음, 그래. 네가 말한 그 친구의 이름은?"




 "유이 시에스트라 폰 리. 카이저린플라츠 교회 소속 2급 무녀."




 혹시나 싶어 유이의 직책도 스승에게 알려주었다. '2급 무녀'라는 부분에서 스승의 눈이 커지더니, 이내 이해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에 비해 직책이 꽤 높네. 성녀와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위치야."




 "그렇지? 상상 이상으로 대우가 좋아서 나도 놀랐어. 그 아이, 집안이 대대로 성직자를 하고 있거든."




 아버지는 사제, 어머니는 무녀라고 들었다. 굳이 기사학교로 진학한 이유는 검무가 아닌, 실전 검술을 배우고 싶어서. 무녀 선발에 가산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전체 2등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도 1년 만에 성녀와 접촉할 수 있는 요직에까지 올랐다.




 실력일까, 단순한 운일까. 그런 식으로도 프로가 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졌다.




 "뭐, 대우가 좋든 안 좋든 우리가 알 바는 아니지만ㅡ"




 그렇게 말하며 스승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매일 짓는 그 미소와 함께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키 차이 때문에 내가 올려다보고 있자 부모 같이 웃으며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ㅡ한 가지 확실한 건, 네가 터무니없이 큰 일을 물어왔다는 거야. 나로서는 부담스러워도 네가 하고 싶다니 어쩔 수 없지. 성녀를 다시 만나기 전에 각오를 해둬야겠어."




 "성녀를 만난 적이 있어?"




 뜻밖의 말에 즉시 관심사가 바뀌었다. 내 반응을 본 스승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으응. 좀 오래 됐지. 옛날 일이긴 한데,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냐."




 "알려줘, 알려줘."




 일부러 그런 얘기를 꺼낸 스승의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해? 나한테도 말 안 해준 스승의 과거가 조금이나마 드러나려는 참인데.




 '헤어진 남자친구'를 제쳐둔 뒤 있는 대로 눈을 빛내며 스승과 얼굴을 가까이 했다. 잠시 후 드르륵, 하고 뭔가 벽에 긁히는 소음이 났다. 그럼에도 계속 정면을 주시하고 있자 스승은 곤란한 듯 다른 쪽으로 시선을 피했다.




 "조심해. 레어메탈은 한 번 박히면 그냥 푹……."




 "말 돌리지 마. 스승은 성녀를 '다시' 만난다고 했지? 처음은 언제, 어디서 만났어?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고? 자기가 먼저 말 꺼내놓고서 가만히 있으면 실례인 거 알지?"




 "……그, 그게 그렇게 중요해?"




 오옷. 처음으로 스승이 말을 더듬거렸다! 자기는 부정하고 싶겠지만, 저건 분명 입 속에 숨기고 있는 게 있다는 뜻이다. 약점을 잡았다는 생각에 나는 몸과 얼굴을 더더욱 스승 쪽으로 밀어붙였다.




 “당연하지! 보통 사람은 얼굴도 못 보는 성녀를 직접 만난 거잖아? 어떻게 스승으로서 자기 경험을 이 귀여운 제자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핑계 한 번 잘 대는구나. 그러고 보니 너, 행동이 굉장히 과감한데, 그냥 내 과거가 알고 싶어서 적당히 둘러대는 거 아냐?”




 윽, 벌써 간파당했나. 스승이 겉보기에 그렇지, 사실은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임을 잠시 잊고 있었다. 숨겨진 심리를 찔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스승의 과거가 알고 싶어서 이러는 건, 그래ㅡ절대, 절대로 아니다.




 “……그, 그럴 리 없잖아! 난 그저 제자로서 스승의 경험을 들으려 했던 것뿐이야.”




 역공에 맞았다는 티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평정을 유지한다 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건 사실이란 말이지. 스승도 이쪽의 말을 진심이라고 생각하진 않는 모양이었다.




 다만 긍정도 부정도 아닌 표정 그대로,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듣고 싶으면 그냥 듣고 싶다고 얘기하면 되잖아. 굳이 반나체인 상태로 달라붙을 이유가 있어?”




 “엣.”




 그제야 나는 스승을 향해 어떤 자세를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바로 밑을 바라보니 서로의 가슴이 너무할 정도로 밀착해 있었다. 나무를 넘어 숲을 생각하면, 키스를 목적으로 여자가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간 연인의 자세였다. 듣기에 기분 좋은 표현이지, 실제로는 위험하고 또 위험하고 엄청 위험하다!




 “좀 빨리 말해주면 어디 덧나냐, 이 병신아!”




 “아, 욕 나왔다.”




 거칠게 스승을 밀쳐낸 직후 반사적으로 손을 움직여 수건의 이음매를 움켜쥐었다. 아주 난감하게도 목욕은 끝냈지만 아직 옷을 입지 못했다. 즉 전신 타월만이 유일하게 내 몸을 가리고 있다는 소리다.




 ‘헤어진 남자친구’로 친히 스승의 포를 떠주고 싶어졌지만 초월적인 인내심으로 참았다. 상황이 어떻던 나는 교양 있는 아가씨니까.




 붉으락푸르락ㅡ딱 이 표현이 맞는 내 상태를 살피던 스승은, 이내 참을 수 없다는 듯 풉, 하고 기만자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 마. 제자를 상대로 불순한 마음을 품는다거나 하진 않아. 그리고 왠지 모르게 네가 그 사람을 굉장히 의식하고 있어서 그냥 장난 한 번 쳐봤어.”




 “너무해! 귀여운 제자를 그딴 식으로 놀려먹기나 하고!”




 성녀를 만나보았냐는 질문에 애매하게 대답한 시점에서 장난칠 마음이 가득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스승을 몰아붙인 나는 상황 판단도 못한 바보가 되었다.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은데, 자금 문제로 같은 방을 쓰는데다 파손된 기물을 변상해줄 돈도 없다. 분하고 또 분하고 엄청 분하지만 고작 스승을 향해 씩씩거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알려주기 싫으면 애초에 말을 말던지! 아니, 혹시 성녀를 만났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이었어?”




 “음, 그건 사실이야. 성녀를 실제로 만나본 적은 있어.”




 시장에서 산 사복을 건네주며 스승은 해명에 들어갔다. 참고로 이 인간,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는지 리본과 프릴이 주가 된 붉은 원피스를 사왔다.




 지금 입으라고 말한 뒤 스승은 등을 돌렸다.




 “만났다고 해도, 뭐, 이곳저곳 방랑하던 시절의 얘기야. 같은 마을 출신인 건 알았는데, 이름도 모르고 별로 친하지도 않아서 그냥 넘겨버렸어.”




 장난을 친 게 미안했는지, 스승은 내가 옷을 입고 있는 도중에 과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본전을 뽑아낼 요량으로 여러 가지 물어보기로 했다.




 “그 때가 정확히 언제야?”




 “널 제자로 둔 게 4년 전이니까…… 대충 그 전의 어느 날이었겠지.”




 날짜도 기억 못하는 거냐!




 “처음 만난 곳은 어디?”




 “브란덴부르크에 있는 책의 정원.”




 “어떻게 생겼어?”




 “보기 드문 미모야. 분홍색 장발에 분홍색 눈.”




 “특별한 대화 같은 건 나눠봤어?”




 “아니. 서로 이름 교환하고 책 얘기, 고향 얘기 하다가 헤어졌어.”




 “헤에…… 그 사람 이름이 뭔데?”




 “그건…….”




 곧잘 대답해주던 스승이 이번만큼은 말끝을 흐렸다. 침묵이 찾아오는 것도 잠시, 스승은 팔짱을 끼며 분명히 짓고 있을 터인 미소와 함께 말을 매듭지었다.




 “암묵의 룰도 있고 하니, 나중의 즐거움으로 해둘까. 어차피 곧 알게 될 테고.”




 “쳇. 가명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암묵의 룰이라 함은, 성녀에게 진명이 있음에도 가명으로 그녀를 부르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고, 진명으로 불러도 크게 문제될 건 없지만 함구령이 철저해서 성녀의 진명을 아는 건 쉽지 않았다.




 흔치 않은 이득을 얻나 싶었는데 허무하게 놓쳐버렸다. 그래도 화는 풀렸기에 몇 번 헛기침을 하며 스승의 주의를 끌었다.




 “다 입었어. 도, 돌아봐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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