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 사냥터의 소년
2. 끝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3. 사지로 가는 하이에나의 왕
4. 아름다운 시간은 계속된다
5. 격화하여 일어나라, 그대
6. 태양의 대천사 미카엘라
7. 우리에게 허락된 새로운 땅
에필로그
외전―메타트론의 탄생
1. 사냥터의 소년 (3)
***
“누나, 나 나갔다 올게.”
외출하기 전에 누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누나는 약물치료 덕에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창백하고 아름다운 얼굴.
예전의 사랑스러웠던 누나는 이제 없다.
“냉장고에 피자 있으니까 데워 먹어. 그럼 갔다 올 테니까.”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돌아섰는데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와.”
예전과 비교하면 이 정도면 정상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응, 금방 올게.”
누나에게 웃어 보이고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요즘 아는 인맥은 다 동원해서 여기저기 찔러보고 다니는 중이다. 위험한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 일로 완전히 열 받은 상태다.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사냥터에서의 일은 경찰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일반인이 몬스터가 활보하는 서울로 들어가는 일 자체가 불법이었으니 어떻게 신고하겠나.
결국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대체로 주변에선 말렸는데 혁이 형만은 달랐다.
“너 혼자 찾아서 뭘 어쩔 건데? 형이 도와줄게.”
“일단 찾는 건 저 혼자 할게요. 그리고 나서는 형한테 도와달라고 할지도 몰라요.”
내 말에 혁이 형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 마라. 형이 살아있는 것도 다 제아 네 덕분이잖아. 아주 뼈마디를 분질러 놓을 테니까 형만 믿어. 그런데 정말 같이 안 찾아줘도 되겠냐?”
“네. 일단 기다려 주세요.”
“끄응… 그리 말하니 알겠다. 너는 어리지만 나보다 똑똑하니 다 생각이 있겠지.”
일단 그렇게 혁이 형과 헤어졌다.
그 뒤로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성과가 없었다. 역시 보통 놈들이 아닌 거 같긴 하다. 그런데 뜻밖에 제보자가 나타났다.
“저 기억하십니까?”
“글쎄, 거지야 늘 보는 거지….”
“오, 라임이 좋은 거지. 킥킥. 아무튼, 며칠 전에 저한테 2,000원 주셨잖아요.”
그런가? 기억력이 좋은 거지였다.
“왜?”
나는 나보다 10살은 많아 보이는 거지에게 반말로 물었다. 하지만 요즘 이런 건 버르장머리 없단 소리 들을 축에도 못 낀다.
“사람 찾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디서 들었는데?”
“건너, 건너 들었죠.”
“뭐, 그래서?”
“며칠 전에 구걸을 다니다 수상한 사람들을 봤습니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어서 말해봐.”
재촉하자 거지가 손바닥을 내민다.
혀를 차고는 만 원짜리 한 장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거지가 고개를 흔든다. 한 장을 더 올려놓자 그제야 다시 얘기한다.
“과천 넘어가는 길에 비닐하우스 단지 있는 거 아시죠?”
“그래, 지금은 아무도 안 살잖아. 위험하기도 하고.”
방어선 안쪽이긴 하지만, 가끔 농가에 나타나는 멧돼지처럼 몬스터가 출몰하는 장소다.
미치지 않고서야 살 수 있을 리가.
“그런데 요즘 거기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남자 네다섯 정도가 보인다더군요.”
“군인이나 뭐 그런 거 아냐?”
“아니랍니다. 뭔가 나르는 걸 봐서 몬스터 부산물을 취급하는 게 확실한 거 같답니다.”
“직접 본 거야?”
“아닙니다. 다른 거지한테 들었습니다. 그 비닐하우스 단지에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이라더군요.”
대체 거지들이 왜 위험한 곳까지 돌아다니는 거지.
그 점을 묻자 자기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한다.
“자세히는 묻지 마십쇼.”
그러고 보니 혁이 형한테 들은 것도 같다.
거지들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본 것들을 얼마간 받고 이런 식으로 판다고. 대신 출처도 불확실하고 신뢰도도 떨어지는 탓에 푼돈만 주면 된다고 했었다.
“알았어.”
거지랑 헤어지고 혼자 고민에 빠졌다.
비닐하우스 단지라… 확실히 수상쩍은 곳이긴 하지. 게다가 몬스터 부산물 같은 무언가를 나르는 남자들이라. 한 번 확인해 볼 필요를 느꼈다.
어차피 다른 소식도 없고 말이야.
나는 권총이랑 필요한 도구를 챙겨서 비닐하우스 단지로 향했다.
몬스터 사태 이후 민간에 총기가 많이 풀렸다.
박살난 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것도 있고, 외국에서 수입도 많이 됐다. 아직 행정력을 회복하지 못한 정부는 단속도 못 하고 있었다.
“저긴가….”
비닐하우스 단지에 도착하자 거지가 말했던 붉은 벽돌 건물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접근해 근처의 비닐하우스에 숨어들었다.
일단 거리를 두고 살필 작정이었다.
위험한 놈들인데 정면으로 붙었다가는 낭패를 보겠지.
나는 영화 속 주인공도 아니고 아직 열다섯 살일 뿐이다.
“흠…….”
초코바나 음료수 등 가지고 온 비상식량을 먹으면서 끈질기게 기다렸다. 2월이라 추웠지만 발열 조끼를 갖고 와서 괜찮았다.
그나저나 지루한데.
“앗.”
사방이 어둑어둑해져 가던 그때 집에서 남자 몇이 밖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자기들끼리 뭔가 말하더니 곧 어딘가로 사라진다.
좋아. 이 틈에 집 안으로 들어가 볼까?
남은 놈들이 있을 거 같지만 이럴 때를 노려야 한다. 뭉쳐 있다면 절대 당해낼 수 없으니까.
그리 결정하고 움직이려는데 앞쪽의 비닐하우스에서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뭐지?
상대에게 들킬까 싶어 미동도 안 하고 지켜보니, 녀석이 나처럼 비닐하우스에 숨어 건물 쪽을 보는 게 아닌가.
설마 나랑 같은 목적인가?
한동안 관찰하던 나는 한 번 접촉해 보기로 했다. 만약 같은 목적이 아니라고 해도, 내 일에 방해가 될 테니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좋아.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살금살금 녀석에게 다가갔다. 사냥터에서도 몬스터에게 들키지 않고 숨어다니는 이 몸이다. 건물을 보느라 정신이 빠진 저런 놈 뒤로 몰래 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바로 뒤까지 접근한 나는 권총을 꺼내 녀석의 뒤통수에 겨누었다.
“조용.”
소리 죽여 경고했다.
권총이 닫는 순간 움찔하던 녀석은 곧 양손을 천천히 들어 올린다.
“이제 돌아서.”
“응.”
목소리가 가늘고 앳되다. 이제 보니 키도 나랑 비슷한 거 같은데.
“쏘지 마.”
돌아선 녀석은 과연 내 또래였다.
미소년이라고 할까? 무척이나 예쁘장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이름은 뭐고?”
“원윤아야. 그리고 저기 있는 녀석들을 살펴보고 있었어.”
원윤아는 건물을 가리킨다.
“것보다, 너 여자야?”
“어. 여자처럼 안 보이지?”
아… 이제 보니 여자애 맞네. 숏컷인 데다가 주변이 어두워서 알아채지 못했다.
“아냐, 잠깐 착각했어.”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인상이 착해 보인다.
나는 일단 여기 왜 왔는지부터 설명하라고 했다.
“만약 너도 저놈들 때문에 온 거면 나랑 같은 목적이라고 할 수 있어.”
원윤아는 손가락으로 붉은 벽돌집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보다 네 이름은 뭐야? 난 이름을 밝혔는데 너는 안 말해?”
“지금 자기 처지를 모르지?”
권총을 앞으로 내밀며 말하자 원윤아가 총을 옆으로 밀어내며 항의한다.
“그러지 마. 나 나쁜 사람 아니니까.”
“으…….”
이러면 안 되는데. 어째서인지 얘 앞에선 독기가 빠지는 기분이다. 나는 맥이 빠져서 총을 치웠다. 사냥터에서 다른 사람이랑 만날 때는 생각도 못할 행동이었다. 곧 주저하다가 이름을 밝혔다.
“유제아야. 그런데 너는 쟤들이 누군지 알아?”
“응, 대강은 알아.”
원윤아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반년 전부터 활동했다고 한다. 조직명도 없고 조직원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데, 주로 나 같이 사냥터를 다니는 일반인을 공격한다고.
“아무래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비싼 부산물을 다루고 있으니까.”
“우리?”
“응, 나도 사냥터에 다녀.”
“여자애가 대단하네?”
“여자라고 무시하지 마! 또 한 번 그랬다가는 가랑이 사이를 걷어차 줄 테니까.”
사근사근하던 애가 갑자기 성질 부리니까 좀 무서웠다.
“미안.”
그런데 얘는 대체 저 위험한 놈들을 쫓아온 걸까. 그 점을 물어보자 원윤아는 슬픈 얼굴이 된다.
“삼촌이 저놈들에게 당해서 불구가 됐어.”
“정말?”
원윤아는 몬스터 사태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삼촌만 의지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삼촌이 그 꼴이 됐다고.
“너 혼자 복수하려고?”
“혼자는 아니야. 서진이 아저씨라고 삼촌 친구분이 있어.”
“그런 사람이 여자애를 이렇게 혼자 보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하지 마. 서진이 아저씨 몰래 온 거니까.”
얘도 좀 막무가내네.
어쨌든 나 말고도 놈들에게 한 방 먹여주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안 그래도 혼자는 무리라 혁이 형에게 도와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일단 오늘은 돌아가자. 그리고 나도 그 서진 아저씨 좀 만나게 해줘.”
“역시 너도 저놈들한테 볼 일이 있는 거지?”
“그래, 가면서 얘기해 줄게.”
“응.”
애가 참 순진해서 큰일이다. 이쪽에서 하는 말을 덜컥 믿고. 물론 나를 속이는 걸 수도 있으니 권총을 언제든 뽑을 수 있게 잘 갈무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