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 사냥터의 소년
2. 끝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3. 사지로 가는 하이에나의 왕
4. 아름다운 시간은 계속된다
5. 격화하여 일어나라, 그대
6. 태양의 대천사 미카엘라
7. 우리에게 허락된 새로운 땅
에필로그
외전―메타트론의 탄생

1. 사냥터의 소년 (2)

***

 

사방이 불타고 있다.

열기와 메케한 연기가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또 이 꿈이구나. 언제가 되야 이 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제아야, 지아야, 달려. 어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누나랑 뛰었다. 두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두 다리가 넘어질 것처럼 후들거렸지만 어떻게든 달렸다. 우리 남매를 붙잡고 달리는 아버지는 필사적이었다. 회사원인 아버지는 뿔테 안경을 쓰고 빼빼 마른 분이셨다.
늘, 체육선생인 옆집 친구의 아버지가 부러웠다.
우리 아버지는 뭔가 남자답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계셨다. 어떻게든 우리 남매를 살리고자 이를 악물고 뛰셨다.
이대로라면 아버지와 도망칠 수 있을 거 같던 그때.

하얀 거인이 나타났다.
빌딩처럼 크며 전신이 흉터로 가득한 하얀 거인.
녀석은 사람들을 게걸스럽게 집어 먹어댔다. 곧 하얀 거인은 핏빛 거인이 됐다. 우리 가족은 하얀 거인에게서 도망가려고 노력을 했지만 불가능했다.
차로와 골목을 몬스터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빌어먹을! 저 녀석들이 우리를 가뒀어!”

아버지의 말로는 저 하얀 거인을 위해 몬스터들이 인간을 물고기처럼 몰아주고 있다고 했다. 하얀 거인은 신나게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우리 남매만은 살리려 했다. 이혼 후 홀로 우리 남매를 키우신 아버지에겐, 우리가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보물이었다.

“제아야! 지아야!”

아버지는 건물 사이의 좁은 틈을 발견해 냈다. 어떻게 이리 건물을 붙여 지은 건지 싶을 정도로 좁은 틈이었다.
어른이 들어가긴 무리였지만, 어린아이였던 지아 누나와 나는 충분했다.

“제아야! 정신 똑바로 차려라! 지아 데리고 건물 반대편으로 가는 거야!”
“아버지는요!”

옆에서 지아 누나는 엉엉 울기만 했다.

“아빠, 같이 가요. 아빠….”

아버지는 다시 소리쳤다.

“어서 가!”
“아버지!”

그게 마지막이었다.

콰아앙!

눈앞에서 강풍이 몰아치며 먼지가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사막의 모래 폭풍 같았다. 그리고 따끔거리는 눈을 다시 떴을 때 아버지가 있던 자리는 온통 하얗고 커다란 걸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게 대체 뭐지?
건물의 틈에 끼어서 보던 나는 모두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그 하얗고 거대한 게 하늘 위로 올라가자 알 수 있었다.
그건 거인의 거대한 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있던 자리에는 핏자국만 남아 있었다. 거인은 자신의 손바닥을 핥고는 고개를 숙여 우리 남매를 내려다보았다.

구우우웅.
낮게 울리는 숨소리가 버스 엔진음처럼 묵직했다.
새빨간 눈동자는 사람 키보다도 더 커 보였다.
그런 거대한 안구가 건물 틈새에 끼어 있는 나와 지아 누나를 관찰한다.
나도 모르게 실금해서 발밑이 축축하게 젖어온다.

“아버지… 죄송해요.”

하얀 거인은 우리 남매 같이 작은 먹이도 놓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손가락을 세워 건물의 일부를 파내고는 우리를 끄집어 내려고 한다.
이미 움직일 힘도 없었다.
눈앞에서 부모님이 모두 죽는 걸 봤더니 더 살고 싶지도 않았다. 지아 누나는 내 팔만 붙잡고 울고 있었다. 누나는 눈을 질끈 감고는 악몽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누나, 걱정 마.
이제 모든 게 다 끝날 거니까.
그렇게 거인의 손이 우리를 향해 오던 그 순간, 천지를 진동시킬 무시무시한 비명이 터졌다.
갑자기 작은 무언가가 하얀 거인의 가슴팍을 뒤에서부터 뚫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건 여섯 장의 검은 날개를 가진 천사였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회색 머리칼의 아름다운 소녀.
가슴팍이 관통된 하얀 거인은 고통으로 주변 건물들을 때려 부수며 발광하고 있었다. 천사는 공포에 질린 우리 남매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달리거라. 살고 싶으면.”

차가운 말투였으나 그 순간 힘이 돌아왔다. 나는 지아 누나를 데리고 반대편으로 악을 쓰며 나아갔다.
어린애가 통과하기도 좁은 틈이라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멀리 달아나야만 했다. 저 천사가 하얀 거인과 싸우고 있는 그 틈에 말이다. 사실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렸을 때 누나와 나는 정부에서 마련한 임시 캠프에 있었다.

그게 내가 가진 천사, 아니 정확히는 천사라 자칭하는 존재에 대한 기억이었다.
악몽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꿈에서 깨어날 시간인 것 같다.

“…또다시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아직은 어둡다. 그리고 몸이 무거웠다.

“…힘을 일부 불어넣어 주마. 하지만 그 대가로 너는…… 대신 목숨을 구할 수…….”

말이 끊겨서 들리는 탓에 뭐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그때 화끈한 힘이 전신을 파고들어 온다.

“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졌다.
격렬한 통증이 온몸을 관통한다.
동시에 잃어버렸던 감각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새삼 내 몸에 팔과 다리가 붙어 있었단 사실을 자각한다. 그리고 곧 눈꺼풀 사이로 새하얀 빛이 파고들어 온다.

“으으….”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떠본 순간, 눈앞에 회색 머리칼을 가진 누군가가 보인다.

누굴까?

“아직 더 잠들어 있거라. 안전한 곳으로 옮겨줄 테니.”
“아….”

뭐라 대답을 하려는 순간 다시 내 몸이 깊게 침전한다. 저항할 수 없는 수면욕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다시 차렸을 때 나는 사냥터 초입의, 한 폐건물 안에 있었다.

“으으…….”

침음성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잠든 중간에 누군가를 만났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네. 그것보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분명히 대장의 잠자리를 털었….

“아!”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서둘러 허리춤을 뒤적였다.

“없잖아!”

귀중한 지네 몬스터의 송곳니가 없어졌다.
곧 나는 기억이 빠르게 돌아왔다.
그래, 돌아가는 길에 누가 내 뒤통수를 강타했지. 그리고 말소리가 들렸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기 마련이지. 제법이긴 했다만. 킥킥킥.

갑자기 그때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목소리들.
분명한 건 인간이 나를 습격했다는 거다.
누군지는, 무슨 집단인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아마 나와 대건파의 충돌을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송곳니를 회수하자 그걸 가로챈 거고.

기가 막힌 일이네.
대건파보다 더 지독한 놈들이다.
대건파는 그래도 눈앞에서 빼앗아 가는데 이쪽은 뒤에서 습격하다니.
어쩌면 잘 알려지지 않은 집단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남의 뒤나 치니 그럴 수밖에.
이런저런 사실이 알려지려면 일단 피해자가 살아있어야 하니까.

“찾아야지.”

나는 몸을 털고 일어나면서 다짐했다.
감히 날 건드리고도 무사히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남의 뒤통수를 제대로 쳤으니 이쪽에서도 제대로 한 방 먹여줄 필요가 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있는 걸까?
희미한 기억이 좀 남아 있긴 하다.
회색 머리칼을 가진 누군가를 본 거 같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기억을 어떻게든 끌어내려 했다. 그러자 단편적인 일부가 살아났다.

―…힘을 일부 불어넣어 주마. 하지만 그 대가로 너는…… 대신 목숨을 구할 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였을까?
골치 아프군.
곧 두통이 밀려왔기에 생각하는 걸 그만뒀다.
일단 이 문제는 미뤄놓기로 했다.
당장은 뒤통수 친 놈들부터 잡는 게 우선이었다.

 

***

 

일단 거주지인 안양으로 돌아왔다.
안양은 몬스터 사태 이후 서울권 몬스터의 남하를 막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은 천사와 헌터 뿐 아니라 군인도 많은 복잡한 도시였다. 물론 나 같이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은 자들 역시 거리에 넘쳐났다.

“한 푼만 줍쇼.”

거지들이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도 흔한 광경이다. 저런 꼴을 보면, 판잣집이라도 있는 나 같은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겠지.
거지는 곧 나한테도 매달린다. 기분이 안 좋아서 걷어차려다가 그냥 주머니를 뒤져서 2,000원을 줬다.

“감사합니다.”

오죽하면 자기보다 어린 나한테까지 구걸을 할까 싶다. 일단 몬스터 부산물을 넘기곤 하는 업자를 찾아가 보자. 지네 송곳니를 판 자들을 수소문하면, 내 뒤통수를 친 놈들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여어!”

길을 가던 중 알고 지내는 형과 마주쳤다.
김혁이란 이름이고 올해 26살이다.

“혁이 형.”

간단히 고개만 끄덕이며 인사했다.

“너 그거 들었어?”
“뭐요?”
“우리 같이 사냥터로 가는 일반인들 말이야. 정부에서 이제 통제한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멋대로 가서 죽어나가니까.”
“뭐? 정말요?”

밥줄 끊기는 얘기라 발끈하자 혁이 형이 날 진정시킨다.

“아예 못 가게 한다는 건 아니야.”

사실 언제든 문제가 될 부분이었다.
일단 사냥터에 일반인이 들어가는 게 불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 같은 부류가 가져오는 몬스터 부산물이 상당해서 제재를 못한 거다.

몬스터 사태 이후 대한민국은 엉망진창이다.
취업은커녕 길가가 거지로 넘쳐났다.
그런데 몬스터 부산물 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르고 있으니, 우리를 막을 수도 없겠지.

“그럼요?”
“면허제로 한다고 하더라고.”
“…세금 때문에 그러는 걸까요?”
“뭐, 그렇겠지. 지금은 눈먼 돈이 많으니까. 우리 쪽은 세금 같은 거 따로 안 내잖냐. 정부에서 군침 흘릴 만하지. 게다가 이쪽 사업은 계속 확대일로고.”
“하여간 돈 냄새는 진짜 귀신이네….”
“정부에서 지불유예까지 선언한 마당이니 뭐든 긁어야겠지.”

몬스터 사태 이후의 대한민국은 우울하다.
과거 IMF란 녀석보다 훨씬 심하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의 문제를 탈출할 유일한 동력은 몬스터 사업이라고들 했다.

“알겠어요.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그래. 조만간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형, 저 15살이에요.”
“요즘 그런 거 누가 따진다고 그래.”
“뭐, 그렇긴 하죠.”

혁이 형과 헤어진 뒤 나랑 거래하는 부산물 업자를 찾아갔다.

“살아왔네?”

좁은 가게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부산물 업자가 날 보더니 씩 웃는다.

“아저씨는 대머리가 더 넓어진 거 같네요. 딸이 남자 때문에 또 속썩여요?”
“요놈이! 말도 마라. 어디서 양아치 같은 걸 데려와서는… 에휴…… 옆집 수경이처럼 공무원을 물어오면 말도 안 해요.”
“요즘 같이 밥만 먹어도 좋은 시대에는 공무원이 높으신 몸들이죠.”

아저씨 딸로는 공무원은 어림도 없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정부도 요즘 돈이 없어서 공무원 월급도 제대로 못 준다더라.”
“아저씨야말로 모르는 소리 하지 마세요. 월급 좀 밀리는 정도면 양반이죠. 당장 거리를 나가봐도 밥 굶은 애들이 굴러다니는데.”
“하긴 뭐 그렇긴 하다만… 하아… 잘 나가던 대한민국이 어찌 이렇게 됐냐.”
“모든 게 모여 있던 서울이 통째로 날아갔으니 그리될 수밖에요. 제가 중학교도 다니다 말아 무식하지만 그건 알겠네요.”

대머리의 몬스터 업자는 맞다는 듯 고개만 끄덕인다.
과거엔 이 아저씨도 잘나갔다고 하더라.
대학교 앞에서 원룸 건물을 몇 채나 돌렸다나. 요즘은 그때 학생들 등쳐먹은 탓에 자기가 죄 받았다나 뭐라나 하고 다닌다.

“그나저나 물건은 안 가져왔어? 어째 단출하게 왔다?”

몬스터 업자가 내 허리춤을 살펴보며 묻는다.

“기대를 배신한 거 같지만 오늘은 다른 일 때문에 왔어요.”
“그래? 뭔데?”
“아저씨가 좀 알아봐 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요. 물론 공짜로 부탁드리는 건 아닙니다.”

나는 돈 대신 손바닥만 한 비늘 몇 개를 품에서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뱀을 닮은 몬스터의 껍질로 오다가다 주운 것들이다. 개당 10만 원이 넘으니 제법 돈이 된다. 부산물 업자는 비늘을 살피며 묻는다.

“뭔데?”
“사람 좀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