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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 요리를 위한 레시피1 -입문편-


투고 | V노블





과거의 인연 
Prologue. 요리 예찬 
1장. 요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지루한 세계 
2장. 반쪽짜리 마법사와 허세부리는 여관주인 
3장. 어브노말계 서버 
4장. 내 주방보조와 서버알바가 완전 수라장 
5장. 요리와 나의 어사일럼 
Epilogue. 셰프와 향신료 
작가 후기 


1장. 요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지루한 세계 (2)


     

◇◇
“심각하군.”

 방금 내가 이딴 곳에서 밥을 먹은 건가? 홀의 바닥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이상한 것이 눌어붙은 흔적도 보인다. 벌레가 기어 다니고 벽에는 곰팡이가 폈다. 창틀은 손가락을 가져가 스윽, 하고 쓸었을 뿐인데 손가락이 시꺼멓게 변해버렸다.
 청소를 잘한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실태를 알고 나니 자신감이 사라졌다. 대체 어디서부터 청소를 시작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군. 한숨을 내뱉고는 외국인, 자신을 미쉘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준 빗자루와 물이 가득 들어 있는 양동이와 걸레를 보았다.
 일단 시작하자. 빗자루로 먼지나 쓰레기부터 치우고 젖은 걸레로 닦고, 마른걸레로 물기를 훔치는 거야. 세제나 그런 것이 있으면 훨씬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것은 없다고 했다. 아니, 여관이라는 곳이 무슨 놈의 세제가 없어. 위생이란 개념이 없는 거 아니야?
 일단 나무로 만든 테이블들을 한쪽으로 끌어놓고 빗자루로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죽은 벌레, 짓밟혀서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먼지, 음식물 쓰레기 그리고 벌레까지. 절대 식당에 있으면 안 될 것들을 빗자루로 쓸어 한 곳에 모은 뒤에 미쉘을 불렀다.

“이거 어디다가 버리나요? 쓰레기통이나 쓰레기 봉지 없어요?”
“음? 쓰레기 봉지? 그게 뭔가. 그것보다 쓰레기라면 여관 뒤편에 소각로가 있네.”
“……소각로?”

 쓰레기들은 다 태운다고? 쓰레기를 모아 밖으로 나가니 소각로라고 해야 할까,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일단 모양은 검은색의 통이다. 드럼통과 비슷하게 생긴. 위에 손잡이가 있는 통을 보다가 쓰레기통을 내려놓고 손잡이를 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도마뱀’이 보였다. 농담이 아니다. 진짜 도마뱀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특색 있는,

──새빨갛게 불타오르고 있는 도마뱀이다.

 신종 도마뱀인가? 이런 도마뱀도 있었던가? 아니 물론 내가 파충류에 관심이 없긴 하지만, 이런 도마뱀이 있다면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서 한 번쯤 보지 않았을까?
 붉은색의 혀를 날름날름 거리는 도마뱀의 곁에는 채 타지 않은 재들이 보였다. 이게 소각로인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쓰레기를 하나 도마뱀을 향해 떨어트렸다. 화르륵, 하고 도마뱀을 향해 떨어지던 쓰레기는 순식간에 타올랐다. 그것을 확인하고는 일단 쓰레기통을 들어 안에 있는 쓰레기를 전부 버린 뒤에 열어 놨던 뚜껑을 덮었다.

좋아, 침착하게 생각하자.

 방금 내가 본 건 타오르고 있는 도마뱀. 쓰레기를 버리면 태운다. 혀는 길었지? 설마 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들이, 허기를 핑계 삼아 애써 현실도피를 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쓰레기통을 들고 여관으로 향했다. 머리가 복잡했다. 혹시, 어쩌면, 이라는 가능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 쓰레기통을 내려놓고 미쉘씨를 향해 입을 열었다.

“미쉘씨.”
“뭔가.”
“저기, 그러니깐 혹시 ‘이곳’이 어디인지 말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곳?”
“그, 나라라든가 지역이라든가 그런 거 말이에요.”

 그러니까, 주소 말이다. 영국. 어디 지역. 그런 거.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혹시, 설마, 같은 감정을 애써 죽였다.

“그거야, 에니케 왕국의 에일라 영지라네. 근데 그건 왜 묻나?”

 그러나 그런 감정들은 미쉘씨의 말에 ‘확신’으로 변해버렸다. 미쉘씨의 입에서 나온 지역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에니케 왕국. 에일라 영지.

“그 에니케 왕국은……, 어디에 있는 거죠?”

 식물원에서나 볼 것 같은 풀들이 가득한 숲,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외국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던 건물, 생전 처음 보는 단어와 처음 듣는 언어, 타오르는 도마뱀.

“당연히 유레이니아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아서 일부러 묻지 않았네만 자네는 어디 다른 왕국에서 왔나? 입고 있는 옷이나 생김새를 처음 보는데 말이야. 혹시 여행자인가?”

 이상하다는 듯 미쉘씨가 다시 한 번 말하였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대답을 요구하는 미쉘씨를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알 수 있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하물며 몰래카메라도 아니고, 중이병 환자가 하는 헛소리도 아니다.
진실.
유레이니아, 에니케, 에일라.
이 모든 것이 진실.
그러니까,
진짜로 말도 안 되지만, 정말 개소리 같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 지구가 아닌 전혀 다른 세계.

흔히 말하는 이세계에 와버린 거다.

◇◇

 얼이 빠진 채로 청소를 끝마치고 의자에 앉아 미쉘씨에게서 받은 우유를 홀짝였다. 틈틈이 미쉘씨에게 물어 얻어낸 정보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내 유일한 짐, 가방에서 평소 레시피를 새로 짤 때 쓰는 노트와 펜을 꺼내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과 현실을 적기 시작했다.

하나, 지금의 난 이세계에 온 것 같다. 어떻게, 어째서, 그딴 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이곳, 이세계에 있다는 거다.
둘, 이세계의 이름은 유레이니아라고 한다.
셋, 내가 있는 곳은 그 에니케 왕국 소속의 조그마한 영지인 에일라에 있는 여관, 아이아나라는 곳이다.
넷, 이세계, 그러니깐 유레이니아는 ‘중세 시대’와 굉장히 흡사한 상태라는 거다.
다섯, 그리고 유레이니아에는 ‘마법’이 존재한다. 아까 소각로에서 봤던 것은 ‘정령’으로 지구에서의 애완동물 개념과 흡사하지만, 일상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물이라던가, 불이라던가, 빛(아마 조명을 뜻하는 것 같다) 같은 것은 전부 정령을 이용해서 해결한다고 한다.
여섯, 여기는 하루가 24시간, 7일이 1주, 한 달은 4주라고 한다. 즉, 1년이 336일이다.
일곱,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난 이세계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 내가 하는 말도 상대가 알아듣는다. 글도 읽을 수 있다.

 미치겠군. 언어가 통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에 언어조차 통하지 않았다면 정말 여러모로 큰일이었을 거다. 손바닥으로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그리고 스승님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절대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당황하면 되는 일도 안된다.’
‘가장 처음부터 생각해라.’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결정해라.’

 그래. 스승님의 말이 맞다. 당황한다고 해서 지금 이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주먹을 쥐었다. 침착하자. 침착하게 머리를 굴리는 거야. 하시연, 넌 할 수 있다. 스승님의 그 말도 안 되는 지옥 같은 주문도 해결했잖아.

“……후우.”

 깊게 심호흡을 했다. 들이쉬고, 내쉬고. 다시 한 번, 들이쉬고, 내쉬고. 좋아. 일단 내가 어떻게 여기 왔더라? 여자아이. 백발의 머리가 긴 여자아이를 만났다. 벌레 같은 것을 달고 다니고, 이상한 말투를 사용하는. 그렇다면 범인은 그 여자아이다.
 그런데 어쩌라고? 범인은 알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범인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그 범인을 찾을 필요가 있기는 있지만 지금 당장 1순위는 그게 아니다.
 1순위는 ‘돈’이다. 지금 제일 급한 의식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고개를 돌려 무언가를 작성하는 미쉘씨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계속 일을 시켜달라고 할까?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기엔 너무 불안한 것이 많았다. 대충 봐도 이곳의 상태는 좋지 않다. 손님은 없고 요리는 요리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런 것. 장사가 잘 될 리가 없다.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 정체불명의 나를 써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내 팔을 자르려고 하기는 했지만 미쉘씨는 기본적으로 꽤 친절한 사람 같았다.
 귀찮을 정도로 꼬치꼬치 캐묻는 나의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해준 것도 그렇고 신고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렇다면 그 친절함을 이용해서 여기서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 망해가는 여관에서 일하며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정답은 여관이 망하지 않게 하면 된다. 최소한 내 월급을 챙겨주며 유지는 할 수 있도록.
 그렇다면 이 여관이 망해가는 이유는 뭘까? 주인장은 친절하다. 대머리긴 하지만. 시설도 그리 후지지는 않다. 그러면 역시 문제는 그 끔찍한 요리인가.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내가 직접 요리를 한다.
 자만도 허세도 아니다. 내 요리 실력은 대단하다. 아시아 대회에서 1위를 하고 아직 학생인 나를 탐내는 식당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단연 톱클래스라고 알려진 ‘요리 특설 학교’인 우리 학교에서도 나는 단연코 톱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망해가는 여관을 살릴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이미 한 번 망해가는 식당을 살린 경험이 있다. 스페셜한 메뉴를 만들고, 홍보하고, 텔레비전에 출연하고,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이용해 홍보하고, 아줌마들의 입소문을 이용하고.
 하지만 여기는 그런 홍보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도 가능할까?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방법은 그거밖에 없다. 나는 고개를 들고 미쉘씨를 불렀다.

“미쉘씨.”
“왜 부르나.”
“혹시 요리사 필요 없으신가요?”
“요리사?”

 미쉘씨의 표정이 기묘하게 바뀌었다. 무언가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들은 것 같은 표정. 뭐지 저 표정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미쉘씨는 곧이어 입을 열었다.

“그런 것은 필요 없다네.”
“예?”
“애초에 요리사라고 해봐야 고기를 굽거나 채소를 물에 넣고 끓이거나 기름에 튀기거나, 빵을 굽는 것 따위가 전부 아닌가? 그런 것은 나도 할 수 있는데 뭐하러 요리사를 고용하겠나.”

 명백하게 요리사라는 직업을 비웃는 말투. 스튜를 끓이거나 빵을 굽는 것이 요리사의 전부라고? 그 무지함에 화가 나기 전에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이곳의 요리는 다 저런 수준이란 말인가?

“애초에 식재료를 요리하는 자체가 ‘식재료를 모욕하는 일’이고 요리라는 행위는 ‘부끄러운 짓’ 아닌가.”

 담담하게 이것이 당연한 상식이라는 듯 이어 말하는 미쉘씨를 보았다. 지금 뭐라고 했지? 식재료를 요리하는 자체가 식재료를 모욕하는 일이라고? 요리라는 행위가 부끄러운 짓이라고?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미쉘씨가 하는 말이 이곳 상식이라면 여기 사람들은 엄청나게 불쌍한 거다. 수면욕, 성욕, 식욕 중 식욕을 완전히 포기하다니. 맛있는 요리를 먹었을 때 느끼는 기쁨을 모르다니. 이 세계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끼다가 곧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굉장히, 그것도 엄청나게 위험한 상태라는 건데.
 있는 곳은 이세계. 가지고 있는 돈은 없다. 거기다가 내가 가진 재주는 이곳에서 멸시당한다.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리를 굴려보지만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서버나 청소부로 일한다고 해도 이곳에서 충분하게 돈을 모을 동안 여관이 지속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이대로 밖으로 쫓겨나서 알지도 못하는 세계에서 표류당하는 건가. 이럴 바에는 차라리 최악, 최저, 최약의 마왕이 되어서 던전을 디펜스하는 편이 상황이 좋다.
 으으음, 그건 아닌가. 내가 거기 있어 봐야 하루도 버티지 못할 테니깐. 머리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고.

“그것보다 자네는 어디서 온 건가. 아까 질문에 대답을 안 해주던데.”
“한국……, 아니 말해도 모르실 거예요.”
“흐음, 숲의 저편에서라도 온 건가? 뭐 비밀이라면 묻지 않겠네.”

 미쉘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염치불구하고 부탁을 해야 하나? 한참 동안 고민을 하다가 미쉘씨에게 딱 하룻밤만 신세지려 하는데 누군가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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