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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육군 로빈중대


투고 | V노블





CH.1 World At War - 1


CH.1 World At War

1.

‘낸시 C. 콜필드’가 소위가 된 것은 전쟁이 벌어지기 10일 전이었다. 소위후보생 황동제 계급장이 검은 소위 계급장으로 바뀌고, 사관학교 교장과 악수를 하면서 졸업식이 끝났지만, 낸시 소위는 아직 소위 후보생이었다. 그 뒤 한 달간의 후반기 교육을 끝내고 진정한 소위가 된 낸시 소위는 자신의 초도 보급품을 챙겨서 열차에 몸을 실었다.

 

2.

왕립육군 정복을 갖춰 입은 여자사관은 흔치 않았기에 같은 기차에 타고 있던 병사들과 남성들이 낸시 소위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낸시 소위야 자신이 그저 여성이기 때문에 병사들이 쳐다본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낸시 소위는 사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목 정도로 내려오는 짧은 단발머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거기에 군용 정복을 입어서 여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 현재 낸시 소위의 차림새였다.

그렇지만 남성용 양복과 비슷한 디자인의 갈색 정복으로도 감출 수 없는 볼륨감이 남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사실 남성용 양복은 디자인 자체가 남성에 맞춰져 있어 여성이 입었을 때, 여성의 굴곡을 뭉개는 법이었다.

그렇지만 낸시 소위는 정복의 단점도 상쇄할 만한 굴곡을 지니고 있었고, 그 굴곡은 남자들의 시선을 끄는 데는 아주 좋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그것 말고도 군복을 착용한 여성이, 그것도 소위 계급을 달고 있는 장교는 그리 흔한 숫자가 아니라는 점도 병사들이나 남성들의 시선을 끄는 주된 요인 중에 하나였다. 뭐가 되었던 낸시 소위는 꽤나 눈길을 끄는 존재였다.

낸시 소위는 그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읽고 있던 교범으로 눈을 돌렸다. 같이 임관한 일곱 명의 여자동기 생도들 중 유일하게 외국주둔부대인 17사단으로 배속받은 낸시 소위는 프로세로 가는 해군소속 보급함에 탑승해 이동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렇게 항구에서도 세일러복을 입은 수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함장에게 승선신고를 한 뒤, 자신에게 주어진 이등사관실에 짐이 담긴 더플 백을 내려놓은 뒤에야 낸시 소위는 한숨을 내 쉬며 맘을 풀 수 있었다. 보급함인데다가 하사관 들이 배정받는 이등사관실 이다보니 무척 좁았지만 그래도 문에 잠금장치도 달려있고 각방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는 것에 낸시 소위는 위안으로 삼았다.

원래 이방을 쓰던 하사 두 명은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다른 방으로 몸을 옮겼다. 그렇게 이틀 뒤 프로세의 항구에 내린 낸시 소위는 다시금 기차를 타고 17사단의 주둔지로 이동했다. 그곳까지 이동하는데 하루가 더 걸렸다. 사단본부로 가서 사단장에게 전속신고를 마치고 나서야, 낸시 소위는 자신이 배속되는 여군중대인 2대대 E중대. 속칭 로빈중대로 향할 수 있었다.

입헌군주제인 샤른왕국은 일찍이 여성의 전투병과를 인정한 국가였다. 하지만 여군들은 각 사단의 한 개 중대병력으로 편성되었으며 주 업무는 대민지원이었고 편성자체가 그저 머릿수 채우기였다.

보여주기 위한 부대. 그것이 왕국에서 대다수의 병사가 여군중대를 지칭하는 명칭이었다. 낸시 소위도 그런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단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뭐가 되었던 군인이 되기로 마음먹었고, 군인이 되었다. 다른 이의 눈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낸시 소위는 생각했다.

그렇게 중대 주둔지에 도착한 낸시 소위는 병사의 안내를 받아 중대장실로 들어갔다. 낸시 소위는 중대장에게 경례를 올렸다. 중대장은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는데 군인이라기보다는 회사에서 일하는 여성의 느낌이 들었다. 야전 지휘관이지만 책상물림 생활이 길었을 터라고 낸시 소위는 생각했다.

“사관생도 출신이군. 1소대장 자리가 비었으니 그 자리를 맡아주게.”

중대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짝 낸시 소위를 바라보고는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군대보다는 일반 기업의 경리과 같은데 앉아있으면 어울릴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낸시 소위는 경례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소대를 배정받은 낸시 소위는 자신의 소대가 자리 잡고 있는 막사로 향했다. 소대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앉아있던 여성이 일어나서 경례를 했다. 소매에 붙은 계급장이 그가 중사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새로 오신 소대장님 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유리아 래틴 중사입니다. 소대 선임하사입니다.”

유리아 중사가 손을 내밀었고 낸시 소위가 그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유리아 중사가 자리를 권하며 말했고, 낸시 소위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자리에 앉았다. 이제부터 이곳에서 자신의 군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낸시 소위는 조금 마음이 묵직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유리아 중사는 낸시 소위보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꽤나 긴 머리를 목 부분에서 묶어서 포니테일로 만든 유리아 중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낸시 소위에게 호기심을 나타냈다.

“이번에 막 사관학교를 졸업하셨다고요? 사관생도 출신 소대장은 또 처음이네요. 여군중대다 보니 대다수가 병사출신 소위들이 많았으니까요.”

유리아 중사의 말에 낸시 소위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유리아 중사는 갸름한 얼굴과 살짝 꼬리가 올라간 눈, 그리고 나긋나긋한 몸짓이 고양이 같다고 낸시 소위는 생각했다. 사회에 있었으면 꽤나 매력적인 아가씨여서 남자들 시선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을 풍겼다. 낸시 소위는 왠지 주눅이 드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같이 소대를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고, 그 경험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낸시 소위는 생각했다. 살짝 심호흡한 낸시 소위는 웃으면서 유리아 중사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야전은 생전 처음이니 아마 모르는 게 많겠지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소대장님.”

낸시 소위의 말에 유리아 중사는 다시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렇게 일주일간 부대 적응을 하던 낸시 소위는 드론치제국이 프로세에 선전포고를 하고 국경을 넘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일이었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되던 일이기도 했다. 낸시 소위는 병사들에 준비태세를 갖출 것을 명령했다. 결국, 그날, 낸시 소위와 33명의 소대원은 전선으로 나서게 되었다.

 

3.

낸시 소위의 1소대는 중대와 같이 미리 정해져 있던 방어지역으로 이동해 지역을 점령했다. 중대장은 각 소대장에게 책임구역을 지시하고 그 지역을 방어할 것을 명령했다. 그런 중대장의 명령을 받은 낸시 소위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중대는 소대별로 나뉘어서 책임구역이 정해졌다. 그리고 그 책임구역은 소대가 방어하기에는 턱없이 넓어 보이는 지역이었다. 결국, 별수 없이 소대로 돌아온 낸시 소위는 유리아 중사와 함께 방어 작전을 짜느라 고심하는 중이었다.

“이곳 뒤쪽에 소대를 두 개 조로 나누어서 진지를 구축하고 돌아오는 적을 공격합니다.”

“이 고지의 8부 능선에는 이미 참호선이 구축되어 있습니다만. 어째서 다시 뒤쪽에 또 참호를 만들자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낸시 소위의 말에 유리아 중사가 강하게 대꾸했다. 낸시 소위가 지도의 한 지점을 손으로 가리켰다.

“보십시오. 이곳 주변은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고, 적이 우리 연대의 지휘소 쪽으로 갈만한 길은 이곳 능선과 능선 사이입니다. 그리고 그 능선 사이에 있는 고지가 현재 참호가 있는 고지죠. 적은 분명히 이곳을 포격할 겁니다. 원래 구축되어 있던 참호선이 그것을 방어해 줄 수 있을까요? 1차 대륙전쟁 때의 골동품이라고 해도 좋을 낡은 참호입니다. 거기다 이미 제국군이면 이 진지 위치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겠죠. 보병만 온다면 그런 참호도 상관이 없지요. 그렇지만 적은 전차를 몰고 올 겁니다. 포격도 하겠죠. 고지가 높으면 또 모르겠지만 완만한 언덕 수준이에요.”

“하지만 두 개 조로 나눈다는 것은…….”

“이 중간 고지로 인해 길은 양 갈래로 나누어집니다. 후방의 능선에서 이곳을 지킨다면 어느 쪽으로 오던 적을 막을 수 있습니다. 거기다 길이 넓지 않기 때문에 적은 수로도 방어가 가능하죠. 그리고 여기 옆 언덕 부분에는 관측 수를 배치합니다. 전방고지나 후방고지 자체가 언덕 수준이기 때문에 이 정도 높이라도 충분히 관측해서 포병화력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낸시 소위가 열심히 손으로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했지만 유리아 중사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는 지도를 노려봤다. 왠지 먹잇감을 앞에 놓은 고양이 같은 분위기였고, 그 먹잇감은 자신인 것 같아서 낸시 소위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지만 중대 전체의 유기적인 방어가 아닌 단지 소대병력 하나, 거기에 제대로 된 중화기도 별로 없는 상황에 이 지역을 방어하려면 낸시 소위가 아는 선에서는 이 방법뿐이었다.

물론 적은 병력을 나눈다는 것은 좋은 결정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방어 면적이 넓다면 조금 후퇴하더라도 그 면적을 줄이는 것이 효과적으로 적을 막아낼 것이라고 낸시 소위는 판단했다. 병의 넓은 부분을 막는 것보다 좁은 부분을 막는 것이 물이 덜 새어 나오는 법이었다. 낸시 소위는 다시 심호흡하고 유리아 중사에게 입을 열었다.

“두 개로 나누는 것이 걱정되겠지만 서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거리가 아닙니다. 거기에 혹시라도 후퇴를 해야 할 경우 한군데 병력을 밀집하는 것 보다는 두 개 조로 나뉘어서 유기적으로 후퇴 하는 게 더 생존 확률이 높지요. 이해 못 하실지 모르겠지만 절 한번 ​믿​어​주​시​겠​습​니​까​?​”​

낸시 소위의 말을 들은 유리아 중사는 팔짱을 끼고 계속해서 지도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적 포병화력에 병사들을 보호하려면 유개호로 제작해야 합니다.”

유리아 중사가 팔을 풀며 말했고, 낸시 소위는 웃으면서 다시 지도를 손으로 가리켰다.

“좋습니다. 그리고 이곳 길목에는 철조망지대와 지뢰지대를 복합 설치해 적의 접근을 막고, 화력 유도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작업에 필요한 곡괭이, 삽, 철항, 철조망 등은 제가 중대에 신청하죠. 유리아 중사는 바로 진지공사를 실시해 주세요.”

낸시 소위의 명령에 유리아 중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소대원들에게로 이동했다. 낸시 소위가 무전기로 중대에 요청하자 중대장은 어차피 남아도는 자재들이니 마음껏 쓰라며 트럭 한 대 분량을 보내주었다. 그 양은 진지를 구축하기 충분한 양이었다. 같이 보내준 지뢰의 양도 충분했다.

땅은 돌이 적고 흙도 부드러워서 파기 쉬웠지만 진지공사등을 전혀 해본 적이 없는 병사들은 이래저래 투덜거리며 작업을 실행했다. 다행히 유리아 중사가 진지구축에 노하우가 있어서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고 병사들을 다독거려가며 진지공사를 실행했다. 원활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작업은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그동안 낸시 소위는 관측수들과 같이 올라가 포병화력을 유도하기 위해 주요 길목의 좌표를 따고 지도에 표시했다.

“이 지도를 잘 보고 적이 진입할 때 확실하게 나에게 무전을 날려 줘야 한다. 3명이 1개조로 1명이 취침하고 2명이 관측한다.”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그런데 적은 언제 오는 거죠?”

관측수로 뽑힌 로치 상병이 낸시 소위에게 물었고 낸시 소위는 철모를 고쳐 쓰면서 말했다.

“언제가 될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어. 그렇지만 얼른 진지구축을 완료해야 해. 너희들도 개인호를 구축해 놓도록.”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앞에 있는 진지는 버리는 겁니까? 잘 구축 돼 있는데 말이죠.”

로치 상병이 전방사면의 진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유리아 중사가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는 것을 극구 반대한 이유도 그 전방사면의 참호선 때문이었다. 1차 대륙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이곳은, 전쟁이 휴전으로 막을 내린 뒤에도 혹시 모를 제국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근 20여 년에 걸쳐서 진지를 구축이 했던 곳이었다. 그만큼 진지는 잘 구축되어있지만, 그만큼 구식이었다. 그런 오래된 참호선이 얼마만큼 효과를 발휘할지도 알 수 없었다.

“잘 구축된 진지가 오히려 아군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거야.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날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저는 믿습니다. 소대장님은 다른 장교들하고 달라 보이니까요. 이래 보여도 육감 하나는 좋은 녀석입니다.”

로치 상병이 씩하고 웃어 보였다. 스무 살 된 아가씨지만 복무한 지 2년이 다 되어서 군복이 어울리는 병사였다. 낸시 소위는 다시금 병사들을 확인한 뒤 진지가 구축되어 가는 곳으로 내려왔다.

“아 소대장님. 이제 주름철망을 이용해 지붕을 덮으면 끝입니다.”

“유리아 중사. 수고하셨습니다. 식사들은 했습니까?”

“3교대로 식사, 작업, 경계로 병사들을 돌리고 있습니다. 진지 자체는 이제 1시간 안에 끝날 듯합니다. 철조망 지대와 지뢰는 아무래도 오늘 밤 새워야겠습니다. 병사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유리아 중사가 철모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서 머리를 긁적였다.

“18시가 되면 3교대로 작업, 취침, 경계를 세우십시오. 아마 다들 4시간씩은 잘 수 있을 겁니다.”

“예. 최대한 내일 아침까지는 끝내보도록 하죠.”

유리아 중사가 대답하자 낸시 소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진지 구축을 확인하던 낸시 소위도 18시가 되자 자신의 참호바닥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딱딱한 땅바닥이 불편했지만, 낸시 소위는 눕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푹 잠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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