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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육군 로빈중대


투고 | V노블





CH.1 World At War - 2


얼마나 잠들었을까, 멀리서 들려오는 갑작스런 폭음에 낸시 소위는 눈을 떴다. 허겁지겁 벗겨진 철모를 다시 쓰며 손목시계를 응시한 낸시 소위는 현재 시각이 새벽 4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무전기로 유리아 중사를 불러봐!”

낸시 소위가 무전수인 엘리센 상병에게 소리쳤고 엘리센 상병은 허겁지겁 얼른 유선통신기의 손잡이를 회전시켜 유리아 중사를 불렀다. 유리아 중사와 통신이 연결되자마자 낸시 소위는 빼앗듯 수화기를 받아서 말했다.

“유리아 중사? 전방고지 너머에서 화염과 폭음이 관측됩니다.”

-전방 방어선이 돌파된 것 같습니다. 전방 3킬로밖에 3개 중대가 있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중대병력이 한 줄로 늘어선 방어선이니 어쩔 수 없지요. B진지 쪽을 잘 확인해 주십시오. 기관총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낸시 소위가 그렇게 말하고는 엘리센 상병을 통해서 무전기로 관측수를 호출했다. 관측수인 로치 상병이 적 전차들이 전방으로 치고 온다고 보고했다.

-선두 전차들이 장애물지대 때문에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포격 바랍니다. 위치는 ​에​이​블​(​A​)​1​번​입​니​다​.​-​

“알았다. 중대망과 연락하겠다.”

낸시 소위가 얼른 유선망으로 중대와 연락을 취했고, 중대에서 중계를 통해 중화기중대와 연락이 닿았다. 낸시 소위는 얼른 좌표를 불렀고, 곧 그 좌표로 중화기중대의 81mm 박격포 탄이 떨어졌다.

-명중! 명중! 제길 피해 없습니다. 적 전차들이 장애물지대를 통과합니다.-

관측수인 로치 상병이 거칠게 외쳤다. 보병용 81미리 박격포 고폭탄은 철갑으로 만들어진 전차에는 별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거기다 이전부터 설치되어 있던 대전차 장애물도 틈이 넓어서 전차들은 그 사이사이로 넘어오고 있다고 로치 상병은 보고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낸시 소위는 장애물을 설치한 공병대에게 낮은 소리로 욕을 해주고 망원경을 들었다. 낸시 소위는 한번 숨을 고르고 전방의 고지로 망원경을 돌렸다. 낸시 소위의 생각이 맞는다면 적 전차는 현재 전방 고지 사면의 진지들로 돌입하고 있을 것이다.

-적 전차 진지로 돌입! 에이블2! 에이블2!-

무전기에서 로치 상병이 소리치자 엘리센 상병이 바로 낸시 소위에게 그 말을 전달했다. 낸시 중위는 중대망 교환을 통해 겨우겨우 연결한 75mm 포대에게 좌표를 불러주었다. 75mm 는 81mm 박격포와 다르게 야포였기 때문에 화력이 더 강했다. 물론 그것은 보병이나 일반적인 차량에 국한된 이야기였고, 75mm 포대의 고폭탄이 전차에게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낸시 소위는 알지 못했다. 사관학교 시절 수업에서도 전차를 잡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같은 전차이거나 대전차 포 라고 배웠지 야포를 이용해 적 전차를 포격하는 것은 배운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현재 낸시 소위에게 대전차포는 없었고, 쓸 수 있는 화력이라고는 겨우겨우 연결한 75mm 야포밖에 없었다. 도박하는 심정이지만, 낸시 소위의 손에 더 이상 낼 패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을까, 무전기에서 로치 상병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떴다! 30m 아래로!-

낸시 소위는 얼른 다시 포병대에게 수정 값을 불렀고, 잠시 뒤 다시 날아간 포탄이 전방 사면에 떨어지는 소리를 낸시 소위는 들을 수 있었다.

-명중! 동제원 효력사! 효과가 있다.-

로치 상병이 환호하듯 무전기에 소리쳤다. 다행히 75mm 야포의 포탄은 효과가 있는 듯 했다. 낸시 소위는 계속해서 효력사를 외쳤다.

-B진지라 알리고 적 전차가 철조망지대에 돌입했다. 대전차 지뢰들이 터지고 있다. 하지만 그대로 돌파하고 있다.-

그 순간 유리아 중사의 외침이 무전기로부터 흘러나왔다. 아마 선두 전차들이 전방 진지에서 발이 묶이자 후방전차들이 유리아 중사가 있는 B진지로 우회한 듯했다. 낸시 소위는 얼른 지도로 B진지 전방 철조망지대의 좌표를 확인하고 포병대에 연락했으나 포병대에서는 더 이상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포병대쪽도 적군이 쇄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로빈중대보다 훨씬 후방에 있는 포병대 쪽으로도 적이 쇄도하고 있다는 말에 낸시 소위는 입이 말라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현시점에 바로 후퇴 할 수 없다. 만일 지금 후퇴한다면 그로 인해 전선이 붕괴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후퇴를 하더라고 효과적으로 적을 막고, 시간을 벌은 상태에서 이동을 해야지 잘못했다가는 적에게 계속해서 등을 맞으면서 천천히 전멸할 수도 있었다. 낸시 소위는 정신을 차리고 수화기를 붙잡았다.

“10분만 더 쏴주기 바란다! 제길! 10분만 더 해달라고! 여기 여자들이 죽어나간단 말이야!”

낸시 소위가 강하게 소리쳤다. 어느새 자신이 있는 A진지 쪽 전방 철조망지대에도 제국군의 전차들이 돌입하고 있었다.

“젠장할! 포격! 10분! 10분이다!”

-제기랄! 포격요청 때문에 여자한테 욕먹기는 처음이군. 좌표를 불러라!-

“베이커! 폭스! 하나 둘 오 여섯! 둘 삼 칠 여섯!”

포병대 장교가 투덜거렸고 낸시 소위는 얼른 B진지 전방의 좌표를 불렀다. 그리고 잠시 뒤 포격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적 전차들은 포격을 넘어서 쇄도했다. 중앙의 고지에서는 고지를 점령한 적군의 하차 보병들이 A진지와 B진지로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개인화기로 공격을 했지만, 적 전차와 보병의 합동공격을 막기에는 소대의 화력이 부족했다. 적의 병사들은 전차를 훌륭한 엄폐물로 삼아서 소대의 진지로 엄습해 왔다. 적군 전차에서 발사되는 50mm 포탄이 유개호의 지붕을 때리는 소리는 군복을 입었을 뿐이지 이제 10대 후반 정도 밖에 되지못한 소녀들의 의지를 꺾어 내리기에 충분했다.

더는 이곳에서 버티다가는 모두 다 전멸 할 것이라는 생각에 낸시 소위는 무전수인 엘리센 상병에게 유리아 중사를 연결하게 했다. 유선망은 이미 적 포격에 단선되었기 때문에 엘리센 상병은 무전기를 이용해 유리아 중사에 연결을 했다. 무선이 연결된 뒤 낸시 소위는 무전기를 들어서 외쳤다.

“A진지가 이탈할 동안 B진지가 엄호하고 5분 뒤 B진지가 이탈한다. 만나는 장소는 베이커3번이다. 관측 쪽도 이탈하도록.”

그렇게 낸시 소위는 진지 전방에 연막탄을 투척하고 포병대에게 소대방어선 전반으로 최후방어사격을 요청한 뒤 얼른 진지 밖으로 뛰어나갔다.

 

4.

20분 뒤에 살아남은 낸시 소위의 소대원들이 모였다. 재집결지는 뒷 편 7부능선의 작은 공터였다. 아래쪽에서는 나무로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관측팀도 모두 복귀한 뒤 낸시 소위는 인원을 파악했다.

A진지에서 16명 중 4명이 전사했고 3명이 부상당했다. 다행히 부상자들은 걸을 수는 있는 상황이었다. B진지 쪽은 피해가 심했다. 7명이 전사하고 3명이 부상당했는데, 그중에 한 명인 엠마 상병은 걷지 못할 정도의 중상이었다. A진지가 후퇴할 동안 적을 견제 한 뒤에 뒤늦게 진지를 이탈하던 중 당한 것이다. 소대병력 중 11명이 전사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그중 한명이 중상이라 급조한 들것을 이용해야 했다.

결국, 낸시 소위와 유리아 중사를 포함함 35명의 소대 원 중 18명만이 남았다.

“심각하군요…… 적은 아무래도 전차를 이용해 전방의 방어선을 돌파한 듯합니다."

낸시 소위의 말에 유리아 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지도를 바라보았다.

“적군이 보이지 않는군요. 우리를 초월한 걸까요?”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유리아 중사.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유리아 중사가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금 지도를 바라보았다.

“중대지휘소는 연락이 안 됩니다. 대대지휘소도 마찬가지군요. 아무래도 후방 연대지휘소로 가야 할 듯합니다. 30km떨어져 있으니 지금부터 출발하면 7시간이면 도착할 것입니다.”

낸시 소위는 그렇게 말하고 지도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리서 포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끼며 낸시 소위는 얼른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방에 2명의 정찰조를 50m 앞서 보내고 나머지는 잘 살피면서 이동합니다. 최대한 신속하게 이동하죠.”

낸시 소위가 말하며 지도를 집어넣었고 유리아 중사가 병사들을 불러 모았다.

 

5.

8시간 후 도착한 연대지휘소는 엉망이었다. 작은 마을에 설치되어있던 연대지휘소도 적군의 포격으로 인해 심하게 무너져 있었고, 여기저기서 몰려온 병사들이 각자 자신의 부대를 찾느라 분주했다. 지휘관마저 사망한 부대의 병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낡은 마을의 담벼락에 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이미 피난을 떠난 듯 했다. 마을에 보이는 것은 왕립군과 전혀 엉뚱한 곳으로 후퇴한 프로세군 뿐이었다. 낸시 소위도 중대장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기에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런 낸시 소위를 누군가가 불러 세웠다. 연대 작전과장이었다. 연대 작전과장은 어디서 다쳤는지 머리와 왼쪽 눈을 붕대로 감고 있었다. 낸시 소위는 처음 전입 왔을 때 반갑게 웃으며 차를 권하던 작전과장의 얼굴이 기억났다.

“다치셨군요.”

“뭐 전선에 있다 보니까. 적 급강하 폭격기가 트럭을 폭파시켰는데 그 파편에 당했어. 건강한 것 같아서 다행이군.”

작전과장이 낸시 소위에게 그렇게 웃어 보였다.

“연대장님께서 몇 시간 전부터 자네를 찾고 있어. 지금 시간은 괜찮나?”

“예. 중대장과 간부들을 찾고 있습니다만, 문제없습니다.”

“그럼 일단 연대장님에게 가지.”

작전과장의 안내로 낸시 소위는 연대지휘소로 향했다. 연대지휘소는 반쯤 무너진 4층 건물의 1층에 위치하고 있었고 그 내부에는 참모장교들과 병사들이 무전기와 지도 등을 들여다보면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낸시 소위는 그 한구석에 앉아서 지도를 바라보고 있는 연대장에게 다가갔다. 낸시 소위가 경례를 하자 연대장이 반갑게 웃으며 낸시 소위를 반겼다.

“살아 돌아왔군. 다행이야. 고생이 많았어.”

“아닙니다.”

“아니. 고생이 많았어. 자네가 있던 2대대는 전멸수준이야…… 대대장마저도 전사했지. 자네중대의 중대장은 실종상태고 자네 중대에 있던 다른 장교들도 모두 연락두절이군. 자네가 로빈중대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장교네…….”

연대장이 쓸쓸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옆에 놓인 찻잔을 들어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대대의 전담구역으로 적의 전차들이 쇄도했네. 알겠지만 대전차 무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 자네 중대는 후방 예비대였는데 그곳마저 돌파당하더군. 순식간이었어. 아군 전차들은 제대로 반격조차 못 했고 말이지. 그런데 다행히 자네 소대에서 적 전차를 효과적으로 방어해 주었더군. 왜인지는 모르지만 적군 전차부대가 자네소대 방어지역에서 진격을 멈추었어. 그 시간동안 아군 전차부대가 진격해서 시간을 벌고 있다네. 정말이지 잘했다고밖에 할 말이 없네.”

그리고 연대장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앉아있는 낸시 소위에게로 다가갔다.

“이런 식으로 주게 되어서 아쉽지만, 이것은 꼭 줘야겠군.”

연대장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은색의 중위 계급장이었다. 낸시 소위가 얼른 일어나서 말했다.

“연대장님. 저는 이제 막 소위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달게 될 계급장을 그저 미리 다는 것뿐이네. 이미 사단장에게도 보고가 끝났어. 훈장을 달아주고 싶지만 내 권한 밖이어서 아쉽군.”

연대장이 낸시 소위의 어께에서 계급장을 떼어내고 그 위에 중위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낸시 소위는 그저 얼어서 서 있을 뿐이었다. 연대장이 낸시 소위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낸시 중위. 자네를 중대장 대리로 임명하네. 새 중대장이 오거나 자네가 전출할 때까지 그 직책을 맡아주게나. 완편된 상태의 중대를 주지 못해 미안하네.”

낸시 중위는 아무 말 없이 경례를 올리고는 밖으로 나왔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며 걷고 있는 낸시 중위를 누군가가 불렀고, 낸시 중위는 눈을 들어서 상대를 바라보았다. 유리아 중사가 담배를 피우며 서 있었다.

“중위가 되셨군요.”

“네…… 어쩌다 보니까요. 담배 피우시는군요.”

낸시 중위의 말에 유리아 중사가 꽁초를 멀리 집어 던지며 말했다.

“네. 전투 중에는 못 피우니 이럴 때 한 대씩 해야지요…… 중대원은 저기 모여 있습니다만. 37명입니다. 2소대와 3소대에서 살아남은 인원 다 합쳐도 그것밖에 안 됩니다.”

유리아 중사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피곤에 절은 여성들이 앉아있었다.

낸시 중위는 살짝 얼굴을 찡그리고는 중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중간 중간 자신의 소대원이었던 인원들의 얼굴이 보였지만 나머지는 잘 알지 못하는 병사들이었다.

“다행히 한 개 소대 병력은 나왔군요…….”

“중대장이 되셨는데 중대원이 적어서 소대장일 때나 다를 바 없군요.”

“아직 중대장 대리입니다.”

낸시 중위가 유리아 중사의 물음에 답했고 유리아 중사는 병사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뭐 대리나 중대장이나 그게 그거지요…… 이들을 이끄셔야합니다.”

“전 이제 사관학교 졸업한지 열흘 조금 지났습니다. 중대장으로서 어울리지 않아요.”

그런 낸시 중위의 말에 유리아 중사가 낸시 중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군인이란 어울리는 사람이 그 직책에 앉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은 그 자리에 어울리게 돼야 하죠. 훌륭한 중대장이 되어주십시오. 오늘처럼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그런 중대장님이.”

유리아 중사의 말이 끝나고 약간의 침묵이 흐르는 동안 여기저기서 철수한다는 말이 전파되어왔다. 갑자기 마을에 주둔 중인 병사들이 분주해졌다. 낸시 중위가 유리아 중사에게 말했다.

“일단은 후퇴입니다. 병사들을 집결시켜주세요.”

“알겠습니다.”

유리아 중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로빈중대! 철수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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