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2 ROOKIES - 1
1.
대륙력 4029년 4월 말, 제국군은 과거의 영광을 외치며 다른 나라들을 침략했다. 그리하여 시작된 전쟁의 참화가 처음 발을 디딘 곳은 대륙 서부의 프로세였다. 초반의 격렬했던 전투가 어느 정도 소강 상태에 접어들고 나흘 뒤, 로빈중대는 바다 건너 샤른 왕국 본토로 이송되었다. 한 개 소대급 중대였기에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선에서 물러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낸시 중위는 처음에는 전선에서의 이송을 반대할까도 생각했지만, 현재 병력의 숫자와 병사들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유리아 중사의 뜻에 따라 본국으로 물러날 것을 결정했다. 본국으로 향하는 중에는 수송선이 적군 전함에게 공격당했다. 다행히 급하게 달려온 샤른 왕국 함대 덕분에 무사히 살아남은 로빈중대는 본국 훈련소 부지에서 군장을 풀었다.
4029년 6월. 결국 프로세는 제국에 점령당했다. 남은 프로세 병력과 왕립군은 바다를 건너서 겨우 본국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 뒤 왕국은 제국에 선전포고했고, 그와 동시에 왕국은 전시체제로 돌입하며 군을 개편하기 시작했다. 얼굴마담급으로 이루어져 있던 여군중대들은 모두 전투편제에서 제외되고 그 인원들 대다수가 후방의 기지 방어와 병원 등의 간호원으로 편제되어 버렸다. 다만 로빈중대는 첫 번째 전투의 공적이 인정되었고, 연대장이 윗선에 보고하는 형태로 17사단 소속 2대대 E중대로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국내로 들어온 로빈중대는 두 달간의 휴식기를 거치고 새로운 중대원들을 받게 되었고, 낸시 중위는 왕국 수도 근교의 훈련장에서 새로 배속된 중대원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꽤나 많군요.”
낸시 중위가 서류를 보면서 말했고, 그 옆에서 같이 서류를 보고 있는 유리아 중사도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입을 열었다.
“80여 명이니까 말이죠. 현재 한 개 소대급만 남아 있었으니.”
“대략 반은 신병, 반은 다른 부대에서 전출 온 인원들이네요.”
유리아 중사의 말에 낸시 중위가 답하며 서류를 덮었다. 찻잔을 들어 올린 낸시 중위는 차가 다 식은 것을 확인했지만, 그냥 입으로 가져갔다.
“제국의 선전포고 이후 징집제가 시행됐으니까요. 여성들의 자원입대도 많다고 합니다. 여자가 입대하면 집안의 남자 형제 한 명은 징집을 면하게 해 준다는 이유로 말이죠. 말도 안되는 소립니다.”
“유리아 중사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나 보군요.”
유리아 중사의 퉁명스런 말에 낸시 중위가 물었고 유리아 중사는 서류를 덮고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렇게 해서 들어온 여성들은 또 후방기지 방어나 의무, 보급 등의 업무를 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럴 거면 왜 그러냐는 거지요. 오빠나 남동생 대신 딸들을 전선으로 보낸다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번에 들어온 신병들도 그렇게 해서 군대로 오고 전선에 가면 돈을 더 준다니까 멋모르고 오는 녀석들도 있을 겁니다. 죄송합니다만 중대장님. 담배 좀 피워도 되겠습니까?”
유리아 중사가 품에서 담배를 꺼냈고 낸시 중위는 말없이 옆의 재떨이를 밀어 주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유리아 중사가 연기를 한 모금 내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녀석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또 보고 싶지는 않네요. 그걸 봐야 하는 것이 군에 말뚝 박은 제 업이겠지만요. 아. 그래도 그렇게 들어오는 여자보다는 남자 숫자가 월등히 많다고 하니 아직은 이 나라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자 우선 징집이라 여자만 있는 집에서는 징집 안 한다네요.”
낸시 중위는 그런 유리아 중사를 보고는 다시 서류를 폈다.
“그럼 한 명 한 명 면담을 해야겠군요. 일단 신병들은 훈련해야 할 듯합니다. 2주 훈련을 받았더군요.”
“군부도 급하겠지요. 프로세가 지난달에 그렇게 항복해 버렸으니 말입니다. 그 전에 우리 군과 남은 프로세군, 거기다 프로세에 있던 우리 국민을 본국으로 이송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지요.”
유리아 중사가 재떨이에 재를 털면서 말했다. 프로세가 항복하고 난 뒤 샤른 왕국은 선전포고를 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전쟁이 벌어질 것을 알기에 군부에서는 전쟁에 대비해 급속도로 병력 배출을 시작했다. 다만 그 병력 배출이란 것이 2주의 기초훈련이기에 낸시 중위와 유리아 중사는 전선으로 떠나기 전까지 그 병력들을 쓸 만하도록 조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일단 다음 주까지 면담을 끝내고 훈련 시스템에 돌입하도록 합시다. 소대장이 될 여군 장교도 아직 도착 안 했으니 말입니다. 유리아 중사와 제가 나눠서 하면 될지 싶네요.”
“훈련은 기존 하사관들과 진급시킨 하사관들, 그리고 기존 병력에서 실력 있는 인원을 뽑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배속된 숙련병 중에서도 쓸 만한 인물들이 있겠지요.”
낸시 중위와 유리아 중사는 동시에 서류를 덮었다.
다른 중대에서 전입해 온 인원들은 총 36명이었다. 대다수가 후방임무가 싫어서 온 인원들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사기는 높은 편이었다. 다만 아직 실전을 경험한 인원들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무리 사기가 충만하고 군 생활의 경험이 있다지만 실전에서 달라질 수 있는 거지요. 저도 실전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거기다 중대장님도 아시겠지만, 여군중대라는 곳이 제대로 된 훈련이 이루어지는 곳은 결코 아니었지요.”
“어차피 전선으로 떠나려면 시간이 있습니다. 뭐 우리가 정말로 전선으로 갈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말이죠. 신병 훈련이 끝나면 전체적인 중대훈련이 이루어질 테니 그 전까지 보직을 나누고 그에 맞는 기초훈련을 시켜야겠군요.”
“이 부분은 대대에 요청해 대대급에서 교육을 해야 할 듯합니다. 소총수 교육이라면 모를까 박격포라거나 기관총은 중대급에서 교관을 이용해 교육하기는 힘드니까요. 중대 편제화기는 60미리 박격포입니다. 운용방식이라거나 사격술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운용할 수 있지요.”
“그 부분은 대대 쪽에 문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기초적인 소총수 훈련을 한 뒤에 신병의 보직이 정해지면 그때 공용화기는 대대급 교육이 되도록 해야겠군요. 기초 소총수 훈련은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낸시 중위와 유리아 중사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훈련 일정을 짰다.
그 뒤에 신병들 45명의 면담이 있었다. 대다수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고 이제 막 군복에 계급장을 붙인 수준이었다. 전체적으로 사기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가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점도 낸시 중위로서는 걱정이 되는 부분이었다. 예상대로 오빠나 남동생 등을 대신해 입대한 케이스가 많았고, 간혹 스스로 입대한 인원도 있었지만 꽤나 극소수였다. 훈련소에서 가르친 것도 기초적인 제식훈련과 구식 소총의 사용법 정도였기에 거의 백지상태의 인원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군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낸시 중위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중에서 특별한 인원이 있었는데, 다른 신병들 사이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였고 계급장도 상병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그 인원이 면담을 위해 낸시 중위의 집무실로 들어왔을 때 낸시 중위는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상병 피어 뮐러! 중대장님실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앉도록.”
낸시 중위의 말에 피어 상병이 의자에 앉아서 자세를 바로 했다. 꽤나 절도 있는 동작이었다. 낸시 중위는 피어 상병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피어 뮐러. 32살. 과거 군 경력 있음. 가족사항은 없었다.
“피어 뮐러. 32살인가.”
“예! 그렇습니다.”
“나이가 많군.”
낸시 중위가 단도진입적으로 물었다. 현재로써는 중대에서 그보다 나이가 많은 병사는 없었다. 지금까지 나이가 가장 많았던 유리아 중사도 27살이었다.
“과거 군 경력이 있던데. 언제였나.”
“14년 전이었습니다. 그때 2년간 복무 후 12년 전 전역하였습니다.”
14년 전이면 낸시 중위가 8살 때의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피어 상병과의 나이 차가 실감이 났다.
“이번에 전쟁이 나니 다시 복귀한 케이스군. 14년 전 어떤 업무를 하였나?”
“예. 사격술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취사를 맡았습니다.”
피어 상병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취사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니 낸시 중위는 이 인원에게 취사를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 피어 상병은 중대의 취사반을 맡아주기 바라네.”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피어 상병과의 면담은 그것으로 종료되었다.
2.
훈련은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유리아 중사는 최대한 신경 써서 신병들을 교육시켰다. 가장 기초적인 제식부터 시작해 신형 소총의 사용법과 수류탄 사용법, 야지에서의 기동 방법 등 원래라면 훈련소에서 가르쳐서 내보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중점적으로 교육했다. 신병들 자체가 어리고 여자들이다 보니 신형 소총인 반자동소총, M1 소총 사격은 명중률이 매우 낮았다. 소총 자체가 반동이 좀 있는 총이었기에 훈련소에서 구형 단발식 소총 M03을 3발 정도 사격하고 온 인원들은 처음에는 제대로 반동제어를 하지 못해 표적에서 완전히 빗나가기 일쑤였다. 결국, 소총사격 교육 시간을 배로 늘렸고 실탄사격의 숫자도 늘려서 최대한 많이 사격하도록 했다.
“뭐든지 반복 숙달이 최고지요. 반동이 좀 세지만 이 반동에 익숙해지면 됩니다.”
유리아 중사가 낸시 중위에게 보고하면서 한 말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대략적으로 표적지를 맞추는 정도의 실력은 갖추게 되었다. 낸시 중위도 숙련병 교육을 하면서 사격 실력 향상의 필요성을 통감했기에 숙련병에게도 사격 시간이 꽤나 많이 할당되었다. 그렇게 체력단련을 끝으로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낸시 중위와 유리아 중사는 중대장실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낸시 중위가 차를 내려서 유리아 중사에게 건네주었다.
“병사들의 훈련 숙련도는 어떻습니까.”
낸시 중위의 말에 유리아 중사는 입에 머금은 차를 마저 넘기고 입을 열었다.
“뭐 나쁘지는 않습니다. 아직 마음에 드는 수준은 아니지만 말이지요. 새로 들어온 숙련병 중에는 쓸 만한 녀석들이 있더군요. 그 하사 3명은 쓸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중사 한 명도요.”
“리젤, 오르샤, 나몬 말이군요. 그리고 그 마리아였나요?”
“미리아입니다. 미리아 셀브즈 중사. 군 경력 7년이지요.”
유리아 중사가 차를 마시며 정정했다. 낸시 중위는 서류철에서 미리아 셀브즈의 서류를 찾았다. 미리아 셀브즈, 26살. 사진으로 볼 때 조금은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현재로서는 하사관급에서 유리아 중사 다음으로 경력이 오래된 인물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업무를 맡길 수 있을 거라 예상되었다. 전 부대는 5보병사단. 소대선임하사의 업무를 맡았었다.
“소대선임하사 업무를 했었군요. 어떻습니까, 유리아 중사. 중대선임하사의 역할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낸시 중위의 말에 유리아 중사는 살짝 찡그리고는 말했다.
“제 지론은 ‘그 위치에 가면 누구나 그 역할을 한다’ 입니다. 아마 역할을 맡기면 할 수는 있겠지요. 그렇습니다만, 중대선임하사는 제가 아닙니까?”
유리아 중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현재로써는 중대에서 가장 복무기간이 긴 사람은 유리아 중사였다. 중대선임하사의 업무는 가장 연차가 높은 하사관이 맡는 직책이었다. 당연한 순서로 유리아 중사가 맡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유리아 중사는 어째서 자신이 아닌 이번에 새로 들어온 미리아 중사에게 중대선임하사의 역할을 맡기겠다는 것인지 의문을 가졌다. 그런 유리아 중사에게 낸시 중위가 말했다.
“유리아 중사에게는 다른 업무를 맡겨야 해서 말입니다.”
“어떤 업무입니까.”
유리아 중사가 낸시 중위에게 물었고 낸시 중위는 또 다른 서류철을 꺼내면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우리 중대로 부임하는 장교는 총 2명입니다. 둘 다 소위인데 한 명은 저와 비슷한 시기에 졸업하고는 이제 막 기초훈련을 끝마친 학사장교이고, 또 한 명은 사관생도입니다만 전시임관식으로 1년 먼저 임관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유리아 중사가 1소대장 업무를 하셔야 할 듯합니다.”
“네?!”
낸시 중위의 말에 유리아 중사가 깜짝 놀라서는 되물었다. 유리아 중사는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놀라는 유리아 중사를 보면서 낸시 중위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유리아 중사는 실력 있는 하사관입니다. 군 생활도 10년이나 되었고 지난번 전투 당시 보여준 능력도 매우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사관입니다. 제가 소대를 지휘한다는 것은…….”
“아까 유리아 중사도 말했듯이 그 자리에 가면 누구나 그 역할을 하게 되지요. 1소대는 주로 저와 함께 움직이는 소대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라면 누구보다 믿을 만한 인물이 소대장을 하는 것이 가장 제격이지요. 현재 중대에서 유리아 중사만큼 제가 신뢰할 만한 인물이 있나요?”
낸시 중위의 말에 유리아 중사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잠시 뒤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저보다 더 소대장 역할에 적합한 인물이 나타날 때까지 그 자리를 맡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유리아 중사. 소대장들은 내일 도착할 예정입니다. 아침에 인원들 방 배정을 맡아 주세요.”
낸시 중위의 말에 유리아 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