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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5일 아침.
눈을 떴을 때엔 이미 주변은 부산한 모습이었다. 밤새 달려 와준 정부기관이나, 구호단체, 그리고 각종 매스컴 등의 차량들로 이토모리 고교의 주변이 시끌벅적 했기 때문이다. 마을 전부가 파괴되는 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모리의 주민들은 굉장히 침착한 편에 속했다. 그것은 어젯밤 마을의 어른들을 모여 회의를 거친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이토록 슬픈 일이 있겠는고.”
가장 상석에 앉아 입을 연 할머니는 주변을 쭉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다들 이번 일로 많은 걸 잃었지. 이 일에 대해서는 나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네.”
그 말씀에 다들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였으나,
“하지만, 신주님. 만약 이 일이 예측이 가능한 거였다면.”
누군가 그런 말을 꺼냈다.
옛날부터 미야미즈 신사에 신앙심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던 지역 사람들은 모두 이번의 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수긍하고 일을 크게 만들지 말자는 의견에는 동감한 듯 보였으나,
“더욱 더 앞에 방지할 수도 있었지 않습니까?”
누구도 그의 물음에는 부정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다.
조금만, 조금만 더 빨리 이 일을 알 수 있었다면.
그리고 그러한 물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는지, 할머니가 머뭇거림 없이 되물었다.
“자네라면, 자네라면 만약 자네의 아들이 이러한 일을 사전에 말했다면 믿었겠는가?”
“…….”
그, 지역에서 건설업자를 하는 이는 입을 열지 못했다.
실상, 그도 이 참상을 직접 목견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아들을 험하게 꾸짖기까지 했으니.
“나도 마찬가지일세. 과거라면 어떠했을지 모르나, 이제는 시간이 지났으니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지. 이상을 알게 된다고 그것을 믿는 것은 쉽지 않다네. 나 또한 그러했지.”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시선을 돌려 자리 한쪽에 앉아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할머니에게 이 일에 대해서 알린 것은 나였던 모양이다. 텟시가 말하던 여우라도 들렸던 것일까, 어른들이 말하던 신기라도 들렸던 것일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나는 이른 아침부터 혜성이 떨어진다느니, 모두가 죽는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던 모양이다. 거기다가 지갑도 어느새 탕진해서 텅텅 비어있고.
전혀 기억에 없는 일이지만, 어찌되었건.
“모든 것은 있어야할 곳으로 가게 된다네.”
할머니는 다시 시선을 돌려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미야미즈 신사의 정식 신사 업무는 마침표를 찍을 걸세.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이 다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닐세. 이 또한 신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어주기 위한 매듭과도 같은 것.”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숙여 모두에게 인사한다.
“모쪼록, 앞으로도 잘들 부탁하네.”
어른들의 맞절을 보면서 생각했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사이는 개선된 것일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는 무언가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사태의 수습 때문에 무척이나 바쁜 모습이었지만 틈틈이 이곳을 들릴 때마다 평소의 근엄한 모습 대신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군의 아빠 같네.”
문득 그렇게 생각하고.
어? 하는 의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였지?
방금 무언가가 떠오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였을까?
어떤 기억이지?
끙끙거리며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해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나, 언젠가 이런 추억이 있었던가?
기시감.
문득 기억을 되살려보아도, 아버지가 저렇게 자상하게 웃는 모습을 본 기억은 당장 몇 년 사이에는 없었다. 어머니가.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그때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 걸까?
아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반박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그리워하는 것은 그때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뭐야?
도대체 뭐야?
그러던 와중, 손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좋아해.」
누구의 장난인지는 결국 알지 못한 체, 아직 남겨져있는 사인펜 글씨.
어떤 못된 아이가 유성 펜으로 써놓은 것인지 쉽사리 지워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물이 좀 더 제대로 공급되어 충분히 그것을 지울 수 있게 되기 전까지 남겨놓기로 했다.
가족의 안전을 확인한 텟시와 사야찡을 다시 만났을 때,
“미츠하. 그런데 너 말이야. 「그 사람」이라고 한 거 누구야?”
“응?”
텟시가 문득 그런 말을 건네 왔다.
그 사람이라니?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캐묻자 텟시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해주었다.
“너 그때 나한테 갑자기 그 사람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던가, 하지 않았냐?”
“…그래?”
기억이 없다.
뭐지. 뭐였을까? 그 사람이라고?
텟시는 그에 대해 너에게 이 사태를 보여준 사람. 이른바, 신님의 이름이 아니었냐고 물어왔다. 그 모습을 사야찡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오컬트는 단순한 망상이 아니었다고. 이젠 뭐 자랑스럽게 말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어쨌든 우리가 모두를 구한 거잖아?”
어느새 쾌활한 평소의 텟시로 돌아온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에 척하고 손을 올렸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사야찡의 눈치를 보며 그의 손을 살짝 밀어냈다.
“그런 거 그만둬줄래? 아니, 진짜…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으니까.”
“정말이냐…? 너 정말 신에게 씌인 거 아니야?”
“미츠하. 지금은 괜찮아?”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의 둘을 바라보며 괜찮다며 손을 들어보였다.
“하긴, 너 어젠가부터 뭔가 이상했지. 요츠하한테도 이야기 들었지만 갑자기 도쿄를 다녀오지 않나, 머리를 자르지 않나.”
“어?”
넘겨들을 수 없는 단어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텟시를 바라봤다.
“도쿄?”
“그래. 너 그날 갑자기 학교 쉰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무슨 일인가 해서 알아보니까 말이야.”
“요츠하쨩이 그러더라고. 너 갑자기 누군가의 데이트…?를 보러 도쿄로 갔다고.”
“도쿄.”
도쿄에 갔다고?
학교를 졸업하면 도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하고 있었다.
언제고 도쿄에 가보는 것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이런 마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이렇게 없어져버리는 건 곤란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운을 뗀 후 생각해보았다.
어째서 도쿄에 갔지? 누군가를 만나러 갔다? 누구를?
도쿄에는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다.
“신님이 도쿄에서 오셨다던가 말이야.”
“말이 되는 소릴 해.”
텟시의 실없는 소리에 사야찡이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를 쓰면 애를 쓸수록 무언가 공허한 느낌만이 들었다.
도대체 뭐였지. 뭐였을까.
그리운, 그럼에도 전혀. 떠오르지 않는.
그런.
“미, 미츠하?”
“어이, 괜찮아?”
“응…?”
나는 또 다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도대체 「너」는 누구야?
「너의 이름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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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재난을 당한 것치곤, 이토모리 사람들의 일상복귀는 생각보다 빨랐다.
그것은 빠른 행정 처리를 보여준 미야미즈 촌장과 그의 한마디에 일사천리의 모습을 보여준 이토모리 사람들의 단합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은 사람이 살기 힘들 정도로 파괴된 지구가 많았기에 당장은 임시 거주 촌을 만들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다른 지역의 친인척들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안겨준 막대한 보상금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다른 지역에 정착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 나 도쿄에 가고 싶어.”
무언가 가슴에 남은 그 응어리를 풀고 싶어서,
나는 용기를 내 할머니에게 그런 말을 꺼냈다.
미야미즈 신사의 공식 업무를 종료한다니, 하는 이야기를 했기는 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신주로써 남은 지역사람들을 총괄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혀를 차긴 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할머니의 말을 듣는 지역 어른들의 신뢰도는 더욱 높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었기에 아버지는 그것을 묵인하고 이토모리 마을 자체가 사라졌기에 더 이상 이토모리 촌장으로써의 직위는 사라지겠지만 자신의 마지막 책무로 이토모리 사람들의 마지막을 챙겨주었다.
어쨌든, 용기를 내 꺼낸 그 한마디에 할머니는,
“그래.”
하고는 다소 쓸쓸한 표정을 지으셨지만 더 이상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가만히 듣고 계시던 아버지가 성큼성큼 걸어와 할머니와 내 옆으로 앉으며 선언했다.
“미츠하, 도쿄로 가는 것은 내가 허락하마.”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겠지요? 어머니.”
“좋을 대로 하렴.”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섭섭해 하신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런 할머니를 달래드리려고 하기 보다는 이참에 이곳의 삶을 정리하는 것에 중점을 잡으신 모양이었다.
“교토에서 있던 시절에 알던 지인이 이번에 도쿄로 직장을 옮겼다고 하더구나. 외무성에 있는 친구인데, 믿을만한 친구니 당분간 그 주변에 집을 얻어다 줄 테니 널 가끔은 돌봐줄 수 있을 거다. 어머니와 나는 이곳의 일이 정리 되는대로 그곳으로 갈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말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창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계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