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너의 이름은. SS The blank of 3 years


원작 |

(7)


『눈을 뜨더라도 잊지 않도록 말이야, 이름을 써놓자.』
눈을 떴을 때, 이미 창 밖에선 빛이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손바닥을 펴보았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손바닥. 하지만 여전히 내 눈에는 그곳에 「그 사람」이 남긴 것이 남아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막 울리기 시작한 휴대폰 알람을 끄고,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일어난다.
도쿄에 온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점차 이 생활에도 익숙해지고 있는 시기이다. 가볍게 세면을 한 다음, 밥을 준비하고,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간다.
처음에는 환상과도 같았던 도쿄의 풍경이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래, 너무 익숙해져서 이곳에 온 이유도 까먹어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만원전철의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찾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는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어서도 아닌.
나 자신도 모르게 본능에 이끌려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마음먹은 것과 달리, 실제로 소득은 전무하기 짝이 없었다.
하긴.

“만날 수 있을 리가 없나.”

그렇게 중얼거린 사이 목적지에 닿아, 전철에서 내리고 블록을 지나고, 육교를 지나, 학교로 도착한다.
도쿄 진구 고등학교.
어째선지 그 날 내 눈을 끌었던 그 학교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었다. 
10월을 지나, 12월의 초입에 접어들자 학생들의 복장도 한결 겨울 같아져 있다. 코트를 걸치고 등교하는 학생들 사이로 나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때, 누군가가 등 뒤에서 날 끌어안으며 인사를 해왔다.

“미츠하! 좋은 아침!”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살짝 웃어 보이며 시선을 돌려 그녀에게 인사했다.

“안녕, 오쿠데라양.”
​“​오​쿠​데​라​양​이​라​니​,​ 섭섭하네. 슬슬 미키라고 불러주지 않을래?”

그녀, 오쿠데라 미키는 같은 반 학생으로 이런 어중간한 시기에 전학 온 내게 가장 먼저 손을 뻗어준 친구였다. 고2의 11월이라는 굉장히 어중간한 시기는 이미 학생 사회가 어느 정도 고착화된 상태라고 생각한다. 이토모리에서도 결국 내 교우관계는 1년 동안 텟시와 ​사​야​찡​뿐​이​었​으​니​까​.​ 
곧 수험생이 되는 신분에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도 다소 귀찮을 수 있을 텐데, 이 아가씨는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다는 듯, 마치 예전부터 알았다는 모양세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왠지 그녀는 낯설지가 않았다. 아니,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쩐지 그녀의 분위기는 낯익었다.
사야찡과는 전혀 다른 타입의, 이런 친구 언젠가 사귀었던 적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느라 한동안 말이 없었더니, 오쿠데라양이 양 볼을 불리며 불만을 표했다.

“자꾸 그러면 나도 미조구치 양이라고 부를 거야?”
“…미안해, 오쿠데라양, 아니 미키.”

오늘도 해내고야 말았다는 표정으로 기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이야기하지 못한 게 있는데, 나는 여기에 와서 당분간 아버지 쪽의 옛 성을 따르기로 했다. 그 이유인즉 그렇게 주의를 했지만 너무 유명해져버린 아버지 탓이었다.
이토모리 참사 직전 기적과도 같은 피난훈련을 지시해 500명이상의 마을 주민을 구한 미야미즈 토시키. 하는 기사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으시더랬지.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내 삶에 확실한 영향을 준 것도 있다.
당초 도쿄로 이주하려던 아버지의 계획이 조금 더 늦추어진 것이다.
이유인즉 시나 현에서도 아버지의 능력을 인정하고 좀 더 붙잡아두고 있으려는 분위기라나 뭐라나. 아버지는 딱히 정치를 목적으로 정치인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이미 건너버린 물은 어쩔 수 없게 되어버린 모양이다.
어쨌든, 그런 탓에 아버지는 지금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우리 가족 역시 덩달아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요츠바는 그에 대해서 굉장히 우쭐해 하는 모양이지만,
옛날부터 그런 것에 대해서 부담감을 가지고 있던 내 입장에서는 한사코 사양하고 싶은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아버지도 나도 도쿄에서의 최소한의 몇 년 정도는 아버지의 성을 잠깐 빌려 쓰기로 했다. 학교에도 이러저러한 사정을 들어 양해를 구했더니, 별 말 없이 넘어가주었다.
그런고로 지금의 친구들에게 나는 미야미즈 미츠하가 아닌 미조구치 미츠하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이토모리 출신이라는 점은 감출 수가 없어 혜성 낙하에 대한 질문은 종종 받는 편이지만, 그래도 그 유명한 미야미즈 토시키의 딸이자 무녀라는 사실은 아직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내 생활은 평온을 가장할 수 있었다.
실상은,
그렇게 평온하지만은 않았지만.

“미츠하. 뭔가 고민이라도 있어?”
“음, 그게.”

그러한 내 고민을 캐치한 것인지, 점심시간이 지나서 계란말이를 한입 베어 물며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미키가 물어왔다. 나는 만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그녀에게 이에 대해서 말해도 될까 조금 고민했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 이는 그녀를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털어놓고 말았더니,

“카페에 너무 갔더니, 생활비가 모자라졌다고?”
“…그게 말이지.”

일단은 「그 사람」을 찾는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건 결국 핑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카페에 들어갈 때의 난 한껏 들뜬 상태였음을 부정할 순 없으니까.
미키는 그런 내 모습에 웃기다 는 듯 배를 잡으려고 하다가, 이쪽이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자 애써 웃음을 찾으며 말했다.

“일단 다음에 만약 그런 곳을 가려고 한다면 나에게 먼저 이야기할 것. 같이 가줄게.”

그리곤 살짝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그러고 보니 우리 가게 이번에 일손이 부족하다고 했던 것 같기도.”
“가게?”
“아, 아르바이트 말이야.”

그러고 보니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미키 역시 시골에서 상경해 혼자서 자취를 하고 있으며, 그를 위해 작년부터 인근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연차로 따지면 직원이 되어도 모자랄 정도지만 그녀의 발랄한 성격은 웨이트리스로 제격이라 아직도 홀에서 떠나지를 못하고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

“어때? 곧 방학이고 하니 우리 가게에서 일 해볼래?”

글쎄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나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 경험 같은 거 없으니까.
물론 여기 학생들 중 누구도 무녀나 쿠치카미자케를 만드는 경험 같은 것도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내 고민을 읽은 것인지 미끼가 입 꼬리를 씩 올리며 물었다.

“괜찮겠어?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않으면 그 좋아하시는 카페에 가지 못하실 텐데.”

….
실상, 도쿄에 혼자 살게 되면서 내 용돈은 기존에 비하면 엄청난 인상률을 기록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매일 카페에서 맛있는 것을 사먹기에는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아니, 아버지에게 부탁하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대줄 것 같은 기분도 들었지만.

“그럴 순 없지.”

아버지랑은 이제 막 다시 화해한 참인데 이런 부끄러운 일로 민폐를 끼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후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
“그래, 잘 부탁해. 후배님!”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미소가 다시 한 번 나를 반겨주었다.


#


2013년 12월 말.
결국 아버지는 도쿄로 오시진 못했다.
하지만 간간이 얼굴을 보러 오시는 일은 잦았고, 그럴 때마다 가끔씩 요츠하도 같이 오곤 했다. 할머니께선 딱 한번 이쪽에 오신 적이 있다. 잘 꾸며놓은 내 방을 보시곤 안심하신 듯 고개를 끄덕이던 할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미소만 지어주셨다.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쨌든 어느 순간부턴가 조만간 도쿄로 오실 거라고 하던 아버지의 말에서 ‘조만간’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그에 반해 생활비 지원은 더욱 늘었다. 이쪽은 내 입장에서도 환영할 일이다.
 오쿠데라 미키의 권유에 따라 나는 결국 그녀가 일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IL GIARDINO DELLE PAROLE」에서 당분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곧 고3 수험생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딱히 이름 높은 대학 같은 곳으로의 진학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고, 수업 진도를 따라잡는 것은 그리 큰 어려움이 없었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이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말하자 한동안 아무 말이 없으시다가, ‘뭐,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본다.’하는 대답을 들려주셨다.
 어쨌든,

“미조구치양, 3번 테이블!”
“예~.”

처음 해본 일이었을 텐데도 나는 왠지 이 가게에서 전에도 한 번 일 해본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접객이야 이토모리에서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지겹게 했었지만, 이런 커다란 레스토랑에서 일해본 적은 없었을 텐데.
어째서일까?
고민을 해보았지만 마땅한 해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 되었다.
아르바이트가 있는 날은 열심히 일을 하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미키와 도쿄 투어를 다닌다. 나에게 있어서 가게에서만이 아닌 도쿄생활에 있어서도 ‘선배’를 자처하는 미키는 귀찮다는 기색도 없이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를 다녀주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웃으며 그녀를 불러주었다.

“고마워요. 오쿠데라 선배!”
“…이상한 기분이네, 그거.”

쑥스러워 하는 그녀의 표정에 나도 같이 웃어주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미키라고 부를 때보다 오쿠데라 선배라고 부를 때가 좀 더 기분이 업 되는 기분도 들었다. 그것은 장난기를 담아서 부르기 때문도 있겠지만.
좀 더 무언가.
무언가 그리운 그런 것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그 외에도 도쿄에 와서 친하게 지내게 된 사람이 또 한명 있었다.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만나기 전, 아버지와 함께 동문수학을 했다고 하는 타치바나 아저씨는 종종 아버지의 부탁을 받아 나를 찾아오곤 했다. 아저씨는 외무성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원으로 이곳에 올 때마다 자신의 아들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곤 했다.
처음에는 낯선 아저씨와 만나는 것이 부담도 되었지만, 처음 아저씨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나는 왠지 모르게 어디선가 만나본 적이 있다는 기분이 들었고, 지금은 마치 친척 아저씨를 모시듯이 아저씨가 집에 들르실 때마다 대접을 해드리고 있었다.

“미츠하, 불편한 점은 없고?”
“네, 덕분에요. 고마워요. 아저씨.”

왠지 모를 그리움. 언젠가 내가 아저씨를 만난 적이 있는가 하고 아버지에게 묻자 아저씨께선 지금부터 10여년도 전에 한 번 이토모리를 찾아온 적이 있다고 하셨다. 물론 그때의 잠깐의 만남으로 이런 기분이 든다는 건 좀 이상하긴 하지만.
마치, 조금 더 친숙한 그런 느낌이.

“미츠하, 언제 우리 집에 오지 않겠느냐?”

아저씨께서 이것저것 가져다주신 후 그렇게 물으셨다.
그러고 보니 종종 아저씨께서 내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지.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타치바나 아저씨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으셨다.

“뭐, 남자 둘이 사는 집에 아가씨를 부르는 것도 좀 실례일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딱히,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요.

“아들 녀석이 이번에 중3이 되는데 네가 있는 학교로 진학하고 싶다더구나.”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아저씨에게는 올해 중3의 아들이 있다고 했지.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그래서 가능하면 네가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해서 말이다.”

이쪽의 학업수준에 대해서는 이미 아저씨도 알고 계셨기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겠지. 그리고 딱히 그렇다고 보기보다는 아저씨께서는 조금 더 자신과 나의 연을 잇고 싶어 하시는 그런 눈치였다. 굳이 아들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아저씨의 부탁이라면, 고려정도는 충분히 해볼 수 있는데.

“시간 보고 말씀드릴게요.”
“그러려무나. 문 확실히 잘 걸어 잠그고, 좋은 밤 되렴.”

타치바나 아저씨께서 방에서 떠나신 후 나는 뒷정리를 하고 간단히 목욕을 한 다음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도쿄로 오면 금방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는데, 이렇게 올해가 간다.
어느덧 12월도 끝나가고 있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2014년이 찾아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언젠가 그 사람에 대한 것을 잊게 되는 것일까?
슬쩍 손을 들어 오른손바닥을 바라본다.
이제는 완전히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낙서자국.
하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선명하게 그곳에 쓰여 있는 문자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좋아해.」
잊을까 보냐.
절대로 잊지 않는다.
비록 지금은 잠시 그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틀림없이 다시 만나게 된다면 바로 알아차리게 될 거라고.
나도, 그 사람도.
그럴 거라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


“타키. 너 이번 주말에 뭐할 거냐?”

아버지의 물음에 단어장에 머리를 박고 있던 나는 슬쩍 눈만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귀찮은 느낌이 들어 왜? 하고 물어보니.

“미야미즈 양이 올 거다.”
“나 그날 츠카사랑 신타랑 약속. 밤늦게까지 도쿄카페투어.”
“타키!”

언성을 높이는 아버지의 모습에 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아버지는 이토록 날 귀찮게 하려고 하시는 걸까. 귀찮은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은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이토록 몰라주시는 걸까. 하고 잠시 고민한 다음 말했다.

“아빠. 굳이 내가 그 미야미즈 아가씨를 만날 이유가 있어?”
“미츠하양의 성적은 뛰어난 편이다. 거기다가 네가 진학을 희망하는 진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니 뭔가 참고할 점이 있지 않겠느냐?”

그렇다고 해도 말이지.
그쪽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성적이 좋다는 점은 이해하겠지만, 그래봐야 촌동네에서 공부밖에 할 게 없어 공부만 한 여자였을 뿐일 테고, 또… 내가 진고를 희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여자 또한 진고에 고작 1~2달 다녔을 뿐이다. 그런 여자에게 얻어낼 참고할 점이라는 게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나?
쓸 때 없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곤란해. 아빠도 내 입장 정도는 이해해주라고.”
“타키.”

어른들끼리 사이가 좋다고, 그 자식들까지 억지로 이어주려고 하는 건 어디 애니메이션에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나 오늘은 일찍 잘게.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어.”

아버지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하신 모습이었지만 그 이상 그 일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하지 않으셨다. 이게 최근의 아버지의 변한 모습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지.
적당히 폰 알람을 확인한 다음 일기를 쓰고 침대에 눕는다.
슬쩍 시선을 돌려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자 12월의 달력이 보였다.
올 한해는 재미난 경험을 많이 했다.
내년에도 그렇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가, 벌떡 일어나선 손목에 차고 있던 붉은 끈을 풀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정말 정신차려보면 차고 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이 매듭 끈을 받은 그 다음날부터 거의 항시도 몸에서 떨어뜨려놓고 있지 않다. 심지어는 목욕을 할 때도 자기도 모르게 차고 들어갔다가 풀어놓곤 하는 수준이었다.
이유가 뭘까?
이게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잠시 고민해보았지만, 마땅히 별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 끈을 준 그 여자애.
얼굴도, 마지막에 들었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긴 까만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떠오른다.
이상한 여자라는 인식이 없었다면,
어쩌면 내 취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얼굴이 기억이 안 나서야.”

그 날 주변은 정말 여러모로 환상적인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제 와서야 나는 그 여자에 대한 것은 거의 완전하게 잊어버린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도대체 뭐였을까, 누군가와 착각?
그렇다면 저 매듭 끈은 왜 주고 간 걸까?
착각으로 줬다?

“…그렇다면 미안한데.”

언제고 그 여자와 다시 만난다면, 꼭 저 매듭 끈을 다시 돌려줘야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