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다.
나는 슬쩍 머리만 돌려 시간을 확인한 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확인한 시간은 평소보다 한참 이른 시간, 아침 7시 30분. 학교는 이미 종례를 한데다가 오늘은 애초에 휴일이기 때문에 이런 시간에 일어날 이유는 없다. 아버지는 정초부터 바쁘다니 뭐니 하면서 들어오지 못하실 거라고 했고.
그렇다면, 나는 어째서 이 시간에 알람을 맞추어두었는가?
그에 대해서 해답을 얻기 위해 막 잠에 이끌려 가려던 머리를 살짝 흔들어 깨려던 찰나,
현관문의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덧붙여 목소리도 들려온다.
“타! 키! 아직 잠에서 덜 깬 거냐!”
“…….”
그러고 보니 정초에 녀석들과 가까운 신사에 참배를 하러 가기로 약속을 했던가?
했다. 길게 고민해볼 필요도 없다.
조금 전에 알람을 끌 때 슬쩍 그에 관한 메모가 보였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데,
나는 한숨을 내쉰 다음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며 두터운 복장을 한 둘의 모습이 보인다.
“여.”
“여, 가 아니라고. 약속 시간은 최소 30분 후로 알고 있는데?”
“그 30분 동안 네가 다시 잘 확률을 계산해서 데리러 왔다고. 고맙게 여겨!”
신타가 그렇게 말하며 집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츠카사도 그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왔다.
바깥에서 흘러들어오는 찬 공기와 친구들의 이 너무나도 친절함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고는 냉큼 문을 닫아버렸다.
“아버님은?”
“야근. 정초부터 바쁜 모양이지.”
“흐응. 공무원도 참 고생이네.”
츠카사는 그렇게 말하며 적당히 거실 식탁에 앉아 이쪽을 기다려주었다.
신타 녀석은 방 여기저길 둘러보면서 쓴 소리를 해댄다.
“공무원 아파트라고 해도, 있을 건 다 있구먼. 뭐… 적당히 살만은 하겠군.”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나는 간단히 세면을 하고 난 다음 옷을 챙겼다. 날씨가 추우니 이것저것 덮어쓰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모자며 목도리며 둘러쓰고 있자니, 그 모습을 신타가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쪄죽겠는데?”
“남 이사.”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시간이 좀 걸렸던 탓인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츠카사가 조심스럽게 방문 앞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츠카사는 우리 집에 오는 게 처음이었던가? 녀석은 어쩐지 조심스럽게, 이런 비유는 좀 미안하긴 하지만 마치 남자 애 방에 처음 들어가 보는 여자애들처럼 내 방안을 이것저것 확인하고 있었다.
거침없이 마치 자기 방인냥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신타 녀석과는 정반대다.
이런 녀석들이 서로 친구가 되다니, 일반적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
녀석들과의 연이 시작된 것은 나도 그렇게 길지 않다.
교토에서도 나름 이름을 날렸던 중학교 농구선수였던 나는 도쿄로 넘어온 후에도 농구는 계속하고 있었다. 나름 학교 농구부의 레귤러이기도 하다.
뭐, 그것도 조만간이란 기분이 들지만.
내년 초까지는 후배들의 인터미들을 위해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수험 준비를 들어가면 3학년은 은퇴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마침 건축학에 대해 관심이 고조되던 와중에 만난 것이 둘이다.
후지이 츠카사와 타카기 신타.
츠카사는 반에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안경 캐릭터로 그런 타입의 녀석들이 늘 그렇듯 공부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일 법도 하지만 의외로 쿨한 성격에, 싹싹한 녀석이다.
타카기 신타는 덩치가 크고 쾌활한 성격으로 어디에나 있을 법한 반의 분위기메이커다. 츠카사와는 정반대로 운동계열이라는 것을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법하다. 애초에 신타 녀석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녀석이 농구부의 상대역으로 얼굴을 비추면서였다.
어쨌든 그런 두 녀석과 친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라고 하면,
“타키, 이번에 시노나마치 인근에 새로 생긴 카페가 있던데. 어쩔래?”
“음, 나는 매번 한가하다네. 츠카사군.”
“너한텐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는 건 잘 알고 있어, 신타.”
“네 녀석!”
녀석들과는 종종 카페투어를 하는 편이다.
남중생 세 명이 자기들끼리 카페를 돌아다닌다고 하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주목적은 거기서 수다를 떨거나 하는 것보다.
“이번에 2014 도쿄 주택 및 건축박람회가 열린다던데. 장소는 빅사이트.”
그렇다.
녀석들 역시 나 못지않게 건축양식이나 그런 것에 관심이 많다.
카페투어를 하는 것은 그에 대한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스마트 하우스와 스마트 커뮤니티전을 하고 있고, 덧붙여 동시개최로 인테리어 박람회도 한단 말씀.”
“자세하게 알고 있네.”
“이런 게 있으니까 말이야.”
신타는 그렇게 말하며 척하고 팸플릿을 꺼내보였다.
2014 제 36회 동경 주택 및 건축박람회라고 쓰여 있는 팸플릿.
“아버지 경유로 이것저것 정보를 얻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러고 보니 신타의 아버지는 그쪽 계열 관계자였다고 했던가.
하긴, 그 결과 신타에게도 그런 취미가 생긴 거였지.
그게 아니었다면 저렇게 덩치 크고 운동계열 같아 보이는 녀석이 카페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커피 잔을 들고 카페의 인테리어를 보며 황홀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했겠지. 무서운 조기교육의 결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느덧 옷차림이 완료되었다.
마지막으로 끈 매듭을 손목에 차는 것으로 완료.
어느새 침대에 발라당 드러누운 체 만화책을 펼쳐보고 있는 신타와 책상 위에 올려둔 스케치북을 펼쳐보고 있는 츠카사에게 먼저 나간다는 말을 하며 방을 나섰다.
#
“정초인가.”
도쿄에서 맞이하는 새해가 떠오르는 날.
나는 입김을 불며 신사 앞에서 미키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신사를 찾아 참배를 하고 이것저것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익숙한 광경이다. 다만 풍경이 달랐겠지. 이토모리에 있을 때 나는 이쪽보다는 저쪽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슬쩍 무녀들 쪽을 바라보고 있자니,
“미츠하, 기다렸지~!”
미키가 달라붙어왔다.
시선을 돌려보니 붉은색 바탕에 하얀 꽃무늬가 들어간 후리소데를 예쁘게 차려입은 미키가 이쪽으로 팔짱을 껴들어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그녀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던 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어느새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버렸다.
그렇기에 나는 피식 웃고는 그녀의 이마에 꿀밤을 먹여주었다.
“늦었어. 오쿠데라 선배, 당신 조금만 더 늦었다면 바람 맞았다고.”
“너무해~!”
그녀가 이마를 부여잡고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며 피식 웃는다.
아, 이거 왠지 아저씨 같은 느낌이잖아.
잠시 마음을 진정하고. 나는 미키와 함께 신사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츠하는 후리소데 안 입어?”
신사 본당 앞에서 세전통에 동전을 던져 넣고 소원을 빌고 있자니, 미키가 그렇게 물어왔다.
글쎄, 나는 슬쩍 미키의 모습을 위 아래로 훑어본 후 말을 이었다.
막상 미키가 이렇게 차려입은 걸 보니 좀 아쉬운 기분도 들지만.
“그런 거 익숙하지 않아서.”
“에에? 촌에서는 오히려 기모노 입고 생활하고, 그런 거 없나?”
“어느 시대야, 그건?”
속으로 약간 켕기는 게 있긴 했지만, 나는 애써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또 다시 미키에게 꿀밤을 먹였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이쪽은 정초에 후리소데 보다는 저쪽 복장이 더 익숙했으니까. 평소에도 그러했고.
“정초부터 무녀아가씨들은 바쁘네. 저거 아르바이트겠지?”
“그런가?”
미키는 그렇게 말하며 오미쿠지쪽으로 걸어가서는 그곳을 보고 있던 무녀들에게 100엔을 내밀고 열심히 제비를 흔들기 시작했다. 어쩐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즐거워보여서 나도 그에 동참해보았다.
“미츠하,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펴보는 거야?”
“에.”
“하나, 둘, 셋!”
…….
“해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활짝 웃는 미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하고 시선을 들어보니 그녀는 커다랗게 大吉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행복해하고 있었다.
윽.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써버렸을 때, 미키가 웃으며 이쪽에게 물어온다.
“미츠하는?”
“…그게.”
나는 마지못해 내 오미쿠지를 미키에게 보여주었다.
미키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나 대흉大凶 처음 봐.”
나도 처음 봐. 이런 거.
진짜로 존재하긴 하는구나.
우울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자니,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미키가 쓴웃음을 지어보이며 내 어깨를 두들겨 준다.
“괘, 괜찮아. 미츠하. 오미쿠지 같은 건 재미로 하는 거고. 그리고 저쪽에 매어놓으면 흉한 운세가 막힌다는 이야기가……!”
미키는 어째 나보다 더 당황한 모습으로 내 손을 이끌고 무녀들에게 오미쿠지를 묶어두는 장소를 물어본 다음 그곳으로 향했다. 하하, 그런 미신 믿지 않는데. 어차피, 이건 재미 일뿐이고. 나는 애써 그것을 달래고 미키의 부추김에 마지못해 오미쿠지를 매어두는 곳에 도착해 오미쿠지를 접어 그것을 줄에 매,
매,
“…닿지 않아.”
에엑? 이 줄 왜 이렇게 높은 곳에 달아둔 거야?
주변을 바라보니 다른 사람들도 오미쿠지를 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거의, 거의 다 커플로 온 사람들이나 가족 같은.
누군가가 도와주는 경우도 많다.
…으, 미키!
하고 부르려고 하니 미키는 어느새 신사의 마스코트 상품 점에 눈이 팔려 그곳 앞에서 꺅꺅거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도움이 안 되는구먼.
그렇게 생각하며 쓴웃음을 웃고 있자니.
“저,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낯선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듯한 낯익은 목소리에 시선을 돌려보니.
…….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내 눈 앞에 있는 것은 나랑 비슷한 키의 모자에 목도리에, 심지어 마스크로 완전무장한 목소리로 추정해서 겨우 남자애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이었다.
“저, 흉이 나와 버려서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자신의 오미쿠지를 흔들어 보였다.
그 종이에는 분명 커다랗게 흉凶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쪽이 이겼다. 이쪽은 대흉이라고.
어쨌든, 매우 고마운 이야기지만 낯선 남자아이한테 부탁하기는 좀 부끄럽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잠시 만요. 제거부터 매고 도와드릴게요.”
남자아이는 그렇게 말한 다음, 이쪽이 거절하기도 전에 갑자기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추었다.
그제야 나는 남자아이가 나랑 비슷한 키라는 것을 깨달았다. 연하인걸까? 아니면 키가 작은 걸까. 아니, 그보다 비슷한 키인데 저 높이의 줄을 어떻게,
라고 생각한 순간 남자아이가 날아올랐다.
그렇다, 말 그대로 날아올랐다.
저걸 뭐라고 하더라, …서전트 점프?
남자아이는 그대로 땅에서 수직으로 솟구쳐 어렵지 않게 줄을 낚아채고는,
그대로 다른 손을 뻗어 능숙하게 오미쿠지를 척척 매고는 땅바닥에 착지했다.
“…….”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나는 순간 박수라도 쳐야하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멍하니 있자니, 남자아이가 봐요. 하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내 손에서 대흉의 오미쿠지를 빼앗아갔다. 멍하니 그것을 빼앗기고, 그것을 빼앗겼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남자아이가 다시 한 번 서전트 점프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다시 한 번 날아올라 내 오미쿠지를 척하고 줄에 묶는 남자아이를 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그러고 있자니,
“나 농구를 해서.”
물어보지 않았건만, 그렇게 말하며 뒤통수를 긁어보이던 남자애는, 멀리서 친구로 보이는 둘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아무튼 신년 잘 보내라는 인사와 함께 뒤도 안돌아보고 달려갔다.
그렇게 셋이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는 모습을 나는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품안에 마스코트 인형을 잔뜩 안아든 미키가 나타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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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 뭐냐, 정초부터 옆구리가 시리기라도 한 거야?”
“앙? 뭔 소리야?”
“아쉬운데 타키, 너와의 우정은 계속될 줄 알았는데.”
모르는 여자의 오미쿠지 매기를 도와주고 돌아와 보니 멀찍이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친구들의 장난기어린 물음에 시작되었다. 나는 한껏 성깔을 부려 그런 거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 녀석들보다 조금 작은 키 때문에 삽시간에 녀석들의 어깨동무에 묻혀 질질 끌려가는 기색이 되고야 말았다.
뭐,
“곤란해 하는 사람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헤에.”
전혀 믿지 않는 눈치다.
나는 적당히 둘러댈 만한 말을 생각해냈다.
“뭐, 얼굴은 완전 내 취향이 아니라곤 못하겠지만.”
거짓말은 아니다. 거짓말은.
“난 솔직히 장발 취향이니까.”
그런 단발은 왠지 어린애 같은 느낌이 들어서 별로라고.
그렇게 덧붙이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녀석들이 금세 수긍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쩝, 그건 그것 나름대로 왠지 상처 입는 듯 한 기분이 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