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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SS The blank of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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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4일.
나 타치바나 타키는 늦은 밤 아빠 손에 이끌려 차를 타고 수 시간을 달린 끝에 어딘지도 모르는 산골마을에 도착해있었다. 차마 아빠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아빠는 그곳에서 만난 어떤 아저씨와 몇 가지 이야기를 한 다음 나에게 잠시 이곳에 있으라고 말한 후 아저씨와 함께 어디론가 가버리셨다.
나, 결국 이런 곳에 버려지고 말았나.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혼자 있는 일은 어느덧 익숙해졌다고 생각해왔는데.
나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여튼, 어른들이란.”

자기들 좋을 대로 아이들을 생각할 뿐이지.
지금의 일도 그렇다.
아빠는 일종의 협박을 위해 나를 데리고 이곳에 온 것이다.
협박의 대상은 엄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봐도 부끄러울 정도로 깨소금이 쏟아졌던 두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콩가루 집안과도 가까운 상황이다. 성격차, 라기보다는 둘 다 일에 대한 욕심이 문제였다. 밤늦게까지 일만 하는 아빠와 엄마.
그런 두 사람의 사이에 있다 보니, 나는 어느새 이런 애늙은이가 되었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며 두 번째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어머, 귀여운 손님이네?”

머리 위쪽에서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고개를 들어보자 상냥한 인상의 예쁜 얼굴의 여성이 그곳에 서 있었다. 청록색 하카마에 하얀색 상의를 걸치고, 검고 긴 머리카락을 한줄기로 묶어 내리고 있다. 무언가를 막 마치고 온 듯 손에는 방울이 달린 기다란 자루와 이것저것들이 들려있었다, 여성은 이쪽을 상냥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다가,

“타키군?”
“누구야?”

처음 보는 사람이 뜬금없이 내 이름을 말하자 나는 화들짝 놀라 물었다.
그러자 여성은 섭섭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어라, 기억나지 않니? 오년 전에 만났었는데.”

오년 전이라면 한 살 때다.
아기 때라고. 그럴 때 만난 게 기억날 리가 있나?
그렇게 쏘아주려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신기한 분위기에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선녀? 그러고 보니 엄마가 던져주고 간 동화책에 이런 옷을 입은 여자들이 종종 나왔던 것 같은데.

“오늘 왔다고 들었는데, 왜 여기 혼자 있어? 아빠는?”
“몰라. 어떤 아저씨랑 저쪽으로 갔어.”

일단은 아는 사람인 것 같아 나는 그녀가 묻는 대로 술술 대답해주었다.
딱히 나쁜 사람인 것 같아 보이지도 않고.

“그래? 그럼 타키군 혼자구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그럼 아줌마가 잠깐 놀아줄까?”

그렇게 말하고는 내 손을 잡더니 날 이끌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아무 말 없이 이끌려 간 곳은 신사 한편에 있는 작은 안채였다.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나에게 조용히 하란 표시를 한 다음 조심스럽게 안채의 미닫이문을 열어보여 주었다.
문이 열리고 어두컴컴한 내부가, 세어 들어온 달빛으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에는 커다란 이불과 함께 그 안에서 잠들어 있는 작은 사람의 그림자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나와 비슷한 크기의 여자아이, 그리고 그 옆에는.

“아기?”
“응. 우리 둘째 공주님이야. 타키군에게는 처음 보여 주는 거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행복한 듯 웃어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아기 쪽을 바라봤다.
갑자기 이끌려 와서는 딸 자랑이라니, 이 아줌마.
하지만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나쁘지 않았다.

“만져 봐도 돼?”
“음, 그렇긴 한데. 지금은 좀 늦어서. 내일 다시 만나면 안 될까? 지금은 요츠하, 자니까.”
“요츠하?”
“공주님 이름.”

요츠하라는 이름이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아쉬움을 뒤로하고 조심스럽게 미닫이문을 닫았다.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조금 전의 일만으로도 나는 이 아줌마가 얼마나 자기 딸들을 사랑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자,

“에휴.”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그러자 아줌마가 싱긋 웃으며 물어왔다.

“타키군, 고민 있어?”

다정한 그 목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마루에 걸 터 앉은 체 무릎 위로 턱을 괴고 신세한탄을 했다.

“아빠랑 엄마랑 헤어질 거 같아.”
“어머나.”
“엄마는 아마도 바빠서 안 데려가줄 것 같고. 아빠랑 같이 살아야하나.”
“타키군, 어른스럽네.”

이런 소리 하는 여섯 살 어린아이한테 그건 칭찬이 아니다.
너무 일찍 현실을 알아버린 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자니, 아줌마가 손을 뻗어 내 몸을 끌어안아주었다.
얼마만일까, 누군가가 날 이렇게 안아 준 게?

“타키군, 슬픔은 영원하지 않아. 언젠가 기쁜 일도 올 거야.”
“하지만 지금의 슬픔은 어떻게 해야 해?”

그 물음에 아줌마는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은 이쪽에서 했어. 하고 말하자 아줌마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미안. 아줌마도 그건 잘 모르겠네. 아니, 분명 알고는 있는데 타키군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주어야 타키군이 잘 이해할 질 모르겠어.”
“날 무시하는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냐.”

아줌마는 이젠 어딘가 슬픈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엇이 이 아줌마를 슬프게 만들었을까?
아줌마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슬쩍 손을 들어 들고 있던 것 중 하나를 보여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 색의 실이 꼬여있는 것, 끈 매듭.

“이곳 지방의 오래된 말로 토지신님을 무스비라고 부르거든. 이 말에는 깊은 의미가 있는데, 실을 잇는 것도 무스비, 사람을 잇는 것도 무스비, 시간을 흐르게 하는 것도 무스비. 전부 신님의 힘이란다.”
“무슨 말이야, 그게?”
“모든 것에는 운명이 있다는 말이야.”
“운명……?”
“시간의 흐름에는 다 어떠한 의미가 있다는 말이기도 해. 모든 것은 무스비. 어떠한 맺음을 위한 준비일지도 모르고, 그것이 또 새로운 맺음일지도 몰라.”

거기서 잠시 뜸을 들이곤, 아줌마는 시선을 돌려 달빛에서 안채 쪽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잠들어있는 자기 딸들을 바라보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려 안쪽을 바라보고 있자니,
작은 사람의 그림자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쪽보다는 확실히 커 보이는 키의 여자애.
아마도, 이 아줌마의 첫째 딸.
눈을 비비며 자기 동생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불을 넘어 이쪽으로 온 그 여자애는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슬쩍 쳐다봤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아줌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 제사는?”
“다 끝났단다.”
“할머니는?”
“사당쪽에 계셔.”

어딘가 어른스러운 말투를 사용하는 그 여자애는 아줌마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미닫이문을 닫고 아마도 사당 쪽인 듯 보이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아줌마는 어쩐지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째서야?
차마 아줌마에게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묻지 못했다.

“타키군. 지금의 일은 어떠한 것을 위한 준비일지도 몰라. 이 또한 무스비라면 타키군에게 있어 이러한 일은 또 다른 어떠한 무스비를 낳을지도 모르지.”

아줌마는 다시 이쪽을 바라보며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그저 시간의 흐름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
“…….”

하긴.
아빠와 엄마는 딱히 서로가 싫어서 헤어지려고 하는 것도 아니지.
다만 맞지 않을 뿐이다. 그 사이에 내가 있다는 게 문제가 되긴 하지만.
내 입장에선 그건 틀림없이 굉장히 슬픈 일이지만.
이것도 무언가를 위한 준비라면, 이건 무엇을 위한 준비일까?

“아줌만 말이야.”

달빛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아줌마가 싱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언젠가 타키군이 아줌마랑 가족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네.”
“앙? 그게 무슨 소리야?”
“글쎄.”

아줌마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웃기만 했다.
무슨 소리냐고 더 캐묻고 싶었지만, 아줌마의 그 모습은 달빛에 비쳐 왠지 묘한 기분으로 내 입을 다물게 만들었기에 나는 그 이상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있자니, 멀리서 아빠와 아저씨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대충 보자면 아빠를 아저씨가 달래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오늘은 갑자기 신세를 져서 죄송했습니다. 선생님.”
“아닐세, 타치바나군. 아무튼 일은 잘 마무리하길 바라네.”
“네, 감사합니다.”

아저씨에게 인사를 한 아빠는 나를 부르려다가 내 옆에 앉아있는 아줌마를 보고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아마도 이 아줌마가 저 아저씨 부인인가 보다.
나이차이가 있어 보이는데,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저씨에 비해 이 아줌마는, 솔직히 딸이 둘이나 있는 아줌마 치곤 꽤 젊어 보인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미인이다.
이런 아줌마랑 가족이 된다면, 하긴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르겠네.

“확실히, 아줌마 같은 사람이랑 가족이 되면 좋겠네.”

그렇게 말하자 아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뭔 소리냐, 너?”
“예쁜 사람은 좋단 소리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저씨에게도 꾸벅 인사를 하고 아빠의 손을 붙잡고 차로 돌아갔다.
짧은 시간동안의 만남이었지만, 뭔가 마음속에 후련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 뭐 될 대로 되라지.
이 일이 나중에 어떤 일에 대한 과정이 될지, 그때의 나는 조금 기대를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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