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나는 순조롭게 고3이 되었다.
도쿄에서의 생활은 어느덧 안정이 되어 이제는 마치 예전부터 도쿄에서 살았던 사람인 것 같은 모습이다. 교우관계도 이전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되어 미키를 제외하고도 다른 친구도 부쩍 늘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도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어느덧 이곳에서도 신입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선배라고 불리는 처지가 되었다.
시간이 흐른다.
이토모리에서 살고 있었을 때에는 이런 삶을 살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지.
평생을 시골에서 미야미즈의 무녀로써 살다가, 누군가와 결혼하고, 그렇게 아이를 낳고, 할머니처럼 전통을 지키고자 노력하다가, 그렇게 죽어갔겠지.
그 날, 별이 떨어진 날.
만약 그 날이 없었다면 나는 그런 삶을 계속해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어딘가의 세상에선 별이 떨어진 날. 별이 떨어진 충격에 휩쓸려 그대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르지.
그때, 「그 사람」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오랜만에 꿈에서 「그 사람」의 얼굴을 봤다.
그리운 그 얼굴에, 나는 기운차게 그 사람의 이름을 불렀고,
그는 웃으며 이쪽을 바라보며 화답해주었다.
꿈속에서의 그 사람은 3년 전과 똑같은 모습이어서,
나는 그리운 기시감에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꿈에서 깨어나면, 절대로.
이번에야말로 절대로 너의 이름을 잊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다짐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꿈속에서 황혼이 지는 것을 보며 마음속으로 되뇐다.
너의 이름은.
“뭐였더라.”
“응?”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잡고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자니, 미키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쪽을 바라봤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쉰 다음 고개를 붕붕 젓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고개를 저음에 따라, 어느덧 많이 자란 머리카락이 목덜미로 부딪혀왔다.
새해에는 새로운 기분으로, 라는 느낌으로. 나는 정초부터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르면 이전처럼 프시케노트를 할 만큼 자랄지도 모르겠다.
“미츠하, 머릿결 좋네.”
“응. 옛날엔 틀어서 올리고 다니곤 했지.”
“그래? 하지만 난 긴 생머리도 좋은데.”
미키쨩이 스리슬쩍 다가와 내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애초에 너 이러고 다니는 게 남자애들한테 더 인기 좋을 걸?”
“응?”
무슨 말이냐는 물음에 미키쨩은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너, 나름 인기 좋잖아. 활발하면서도 무언가 기품이 있어 보인다고, 애들이 그러던데? 전의 학교에서도 인기 좋지 않았어?”
“…….”
글쎄, 미스 진고 2년 연속 수상으로 이름 높으신 오쿠데라 미키 씨께서 그렇게 말씀하셔봐야.
전의 학교라.
나는 잠시 이토모리시절의 학창생활을 떠올려보았다. 미야미즈의 차기 신주라는 책임감 때문에라도 나는 누구에게도 책잡히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자 굉장히 노력했었다.
할머니는 신주로 마을의 가장 어르신이지, 아버지는 다른 의미로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었으니.
좋게, 라기보다는 아무렇지 않게 봐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좋지 않게 보는 친구들도 굉장히 많았지. 그러고 보니, 왠지 당시에 잠깐 동안 인기가 좋았던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토모리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임시 집합 때, 내가 도쿄로 떠난 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표했었다. 개중에는 처음 보는 후배들의 모습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마음속에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나,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
그 사람을 찾으러 여기에 왔다.
그 사람은 어디에 있지?
아직 찾고 있다.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단서는?
없다.
기억나는 것은?
매일 밤 꿈에서는 그 사람의 이름을 정겹게 부르는 듯하지만.
“하아.”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올린 거야?”
미키쨩의 물음에 나는 아니. 하고 단호히 대답해준 후 들고 있던 계란 고로케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미키쨩과 가장 친해질 수 있었던 점은 이런 점이 아닐까 한다.
그녀는 항상 내가 숨기고 싶어 하는 것에서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배려를 해준다. 캐물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엔 기다려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도시락의 문어모양 소시지를 포크로 찍어 입으로 옮기는 미키쨩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미키쨩, 우리 학교의 좋은 점 뭐라고 생각해?”
“응?”
내 뜬금없는 물음에 미키쨩이 문어소시지를 깨물다 말고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상한 질문이었던 걸까?
하지만 이쪽의 표정이 더없이 진지했기 때문일까, 그녀는 포크를 살며시 내려놓고는 음. 하고 고민하는 표정을 지어 보여주었다.
그리고
“역에서 가깝다?”
“그거 외엔?”
“음, 옥상 개방이 자유롭다?”
“그리고?”
“교복이 예쁘다.”
흠. 그건 나쁘지 않을지도. 하고 팔짱을 낀 체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미키쨩이 왜 그런걸 물어보냐고 물어왔다.
“아, 아는 아저씨의 아들이 우리 학교로 오고 싶어 한다기에.”
“호오? 설마 공부 같은 거 봐주고 그러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없어.”
갑자기 홍조를 띄며 급 관심을 보이는 미키쨩에게 나는 두 손을 들어 진정하라고 말해주었다.
뭐, 실제로 그런 제의를 받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타치바나 아저씨는 시간이 된다면 내가 자신의 집에 들를 때 아들의 공부도 좀 봐주면 좋겠구나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 녀석 내가 갈 때마다 집에 없거든.”
“그 녀석?”
어쩌다보니 우연이 겹쳐, 나는 타치바나 아저씨와 1년 넘게 알고 지냈으며 심지어 그 집에도 여러 차례 찾아갈 수 있었음에도 타치바나 아저씨의 아들과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아니, 심지어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타… 뭐라고 했던 거 같은데.
타츠야?
타스크?
“헤에. 난 또 우리 미츠하한테 연하의 남친 이라도 있는 줄 알았네.”
이번엔 내가 막 베어 물던 샌드위치를 떨어뜨릴 뻔했다.
“뭐야, 그건?”
“우리 미츠하쨩. 너무 철벽이잖아. 수험생이라곤 하지만, 러브레터를 보내도 묵묵부답. 고백은 아예 나가지도 않아버리고. 그렇다고 연애에 관심이 없나 하면 또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그러고 보니 지난 1년간 그런 일들이 있었나.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일들이라 기억에서 지우고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미츠하 남자친구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오가곤 했지.”
“허어.”
“거기다가, 너 그 아저씨 집에 가끔 저녁밥도 해주러 간다며?”
그렇다.
왠지 모르게 친근감을 느꼈던 나는 타치바나 아저씨가 야근이나 출장으로 집을 비울 때마다 찾아가선 가사를 도와드리곤 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자기 방문을 완전히 걸어 잠가 놓는 그 녀석의 방엔 들어가지 못했지만 간단한 반찬이라던 지 그런 건 종종 챙겨준 적이 있었다.
“…친척도 아니고 그냥 아버지 지인일 뿐인데, 혼자 사는 여고생이 그런 아저씨 뒷바라지도 해주는 건, 설마하니 아저씨와 로맨스가 아니라면야. 정상적으로는 다른 누군가에게 흑심이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지. 예를 들어, 그 아들이라거나.”
아차.
내가 미키쨩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미주알고주알 해줬던가.
그러고 보니 은연중에 아무 생각 없이 미키쨩에겐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다 했던 것 같은 기분이.
“혹시 네가 찾던 그 사람이란 게 그 아저씨…? 어릴 적에 만난 아저씨의 상냥함에 커서 아저씨의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거나.”
“절대 아니거든!”
물론 내가 타치바나 아저씨한테 묘하게 친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 반가운 기분과 함께 묘한 친근함을 느껴서이지 절대 그 이상의 감정에 앞서서는 아니다. 정말 이유를 몰라서 환장할 노릇도 있지만, 나는 순수하게 타치바나 아저씨를 도쿄에 계신 또 다른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 실제로 타치바나 아저씨께서도 아버지가 도쿄에 계시지 않는 동안은 거의 아버지 역할을 해주시고 계시고.
그렇기 때문이지.
“절대로 미키쨩이 생각하는 그런 거 없으니까!”
그렇게 소리치고 있자니, 폰이 울렸다.
정말일까~? 하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미키를 한번 흘겨봐 준 후 옥상 바닥에 엎어둔 폰을 집어 들고 라인을 확인했다.
내용은 간단. 아저씨의 부탁이다. 갑자기 급한 출장이 예고되어 부재를 하게 되었는데 아들 녀석은 연락도 되지 않고 걱정이라는 것. 미안하지만 집에 한번 들러 아들에게 이에 대해서 좀 전해주란 이야기.
어차피 아저씨 집과 내 자취방은 그렇게 먼 편도 아니었기에 큰 문제가 없다.
알았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자니,
“헤에, 또 그 집에 가는구나.”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절대로 믿어주지 않는 눈빛을 한 미키쨩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