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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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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내 귀를 간지럽혀 잠에서 깨어났을때 
적막함과 고요한 침묵 그리고
내 눈을 간지럽히는 햇살뿐이었다 




부드러운 이불은 내 몸을 기분좋게 감싸안고있었고
반쯤 열린 창문은 아침이라는것을 상기시켜 준다 
차츰 잠에서 깨어나갈때 고요한 침묵속에 
조용히 숨죽이며 움직이는 시계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에겐 촉박하고 누군가에겐 널널한 시간 
그 애매한 시간은 날 다시한번 깨우는 계기가 된다
평소에 귀찮음 때문에 아침을 챙기지 않지만
그 애매한 시간때문일까 두껍고 무겁던 이불이
가볍게 벗겨지고 나는 자리에 일어나 부엌으로간다


제대로 봉하지 않았는지 약간 눅눅한 시리얼이 
평소같았으면 불쾌했겠지만 그런 기분도 들지 않는다
그저 속으로 다른 날이었으면 불쾌했을 것 이라고 뱉어본다 
눅눅해보였던 시리얼이 그릇에 떨어질때 그 소리가 
유리구슬들이 부딪히는것 같아 눅눅했었단것도
머릿속에서 흐려졌다 하얀 우유가 넘실댈때 
비로소 난 시리얼의 상태따위야 라며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냈다 


시리얼을 다먹고 마지막 우유와 그 건더기만 남았을즘
시간은 완전해졌고 나는 그 완전한 시간과 창에서 불어오는
공기에 조용히 내 몸을 맡겼다 


오늘따라 나는 괜시리 노트를 이리저리 펼쳐보고 
샤프로 이것저것 끄적여본다 맘에 들지 않았는지 글자 위를
검은 흑연으로 가렸다가 지우개로 지워본다 
글자 자국이 맘에 안들었는지 다시 그 위를 덮고 다시 지워본다
상처와 희미해진 검은 줄들이 남은 노트는 볼품없어 보였다 
노트는 식탁위에 올려둔채 다시 아침공기를 받으러 창가로 걸어갔다


창가에 다가갔을때 공기가 제법 바뀌었단걸 그는 느꼈다 
그가 그 잠깐동안 노트의 글들과 씨름하는동안 시간이 그만큼
농익었던걸까 상쾌하고 기분좋던 바깥바람은 어느새 넘어가고
건조하고 살짝은 따가운 햇볕만이 남아있었다 
그런 따가움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는지 그는 그렇게 햇볕에 발을 
올려둔채 꽤 한참을 서있었다 


그는 아직 그렇게 시원한 날이 아니었지만 전부터 입고싶어했던
옷을 꺼내 잠시 햇볕에 올려두고 포근함이 스며들때쯤 옷을 
집어들어 바깥에 나가보기로 했다 


무겁고 답답하던 바깥이 오늘따라 가볍고 시원했다
따가웠던 햇볕도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는것 같았다 
그런 포근함이 기분 좋으면서도 오히려 내 마음을 눌러왔다 


진정한 자유라는것이 이런것일까 고등학교때 풀었던 모의고사에서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비문학지문이 어렴풋이 스치면서
그 철학자들은 이게 무어라고 그렇게 까지 입씨름을 했던건지 괜시리
속으로 그들보다 위에 있다는 우월감에 빠졌다 


그는 자유로웠다 그는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았고 그가 지금 다니고
있는 거리엔 그 누구도 그가 누군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무적(無籍)자였다
 그 사실이 마음의 짐을 덜어주면서도 속으론 꽤나 씁슬했다 
무적이란게 그렇게 까지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던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그동안 집에만 있었던 것에 대한 내 자신에 대한
보상일까 바깥을 최대한 즐겨야 한다는 그 생각이 다시 내 몸을 묶어온다는걸
알아차렸을때 비로소 난 자유에 의해 자유를 잃었단것을 꺠달았다 
그 사실에 속이 막혀오면서도 또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느새 뭔가에 쫒기듯 서두르기 시작했고 해가 완전히 가라앉을즘 집으로 와
무지개의 시작과 끝을 바라보다 그것들이 다 엉켜오자 그는 욕조에 물을 담구기 시작했다
따듯한 물에 몸을 담구기  좋아하던 그는 그날따라 욕조에 차가운 물을 
담고있었다 그는 차가운 욕조에 들어가기전 학교에서 배운대로
찬물을 가슴부터 천천히 뭍히고는 발부터 천천히 들어가 몸을 담구었다
그 차가움이 몸의 온도에 뎁혀졌는지 포근해져가려 할때즘 
그는 오늘 하루를 상기해본다 


나는 오늘을 제대로 즐겼는가 
열이 올라와있던 머리가 완전히 식었는지 방금전까지 꽤나 자신있었던 그는 괜히 
숙연해 진다 만족스러운 답이 나오지 못한것으로 보인다
나는 자유도 오늘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놈인가 하고 자신을 비난했다 그는 차가운 화장실에서 유일하게 따듯한물이 담겨
증기가 올라오는 대야와 그 속에 담긴 칼을 지그시 바라보다 
마음을 완전히 굳혔는지 칼을 꺼내 자신의 손목에 대어본다 
차가웠던 물속에있어서 더욱 그랬는지 칼에게서 아침에 포근했던 햇살이 대입된다


그는 그 햇살에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는지 곧바로 그어냈다 
그리곤 그래도 꽤나 물이 차가웠는지 대야에 담겨있던 따듯한 물도 들이부었다 
그리곤 물에 몸을 완전히 담군채 천천히 아무생각없이 몸에서 나오는 따듯함과
완전히 뒤섞이지 않은 욕조속 차가움과 따듯함의 이질감을 조용히 감미했다 


그는 그렇게 천천히 죽어 갔다 괜히 영화의 한장면처럼
십부터 하나씩 세어갈때 다 세기도 전에 그는 죽었다 


얼마 안지난 나중에 경찰들이 들어왔지만 그는 역시 죽어있었다 
아마 그는 어디선가 물속에서 죽은 시체는 처리하기 힘들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지
다른사람에게 최대한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는지 죽기전 미리 경찰에 알린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째서 죽어야 했는가 그는 왜 죽었던것일까 
그 이유가 노트에 적혀있지 않을까 펼쳐보았지만 


노트는 상처와 희미해진 검은 줄들이 남아있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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