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창파(萬頃蒼波) 7화
쿠치키 바쿠야가 총대장의 명을 받고 모옥이 위치한 호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간이 꽤 흐른 뒤였다.
대장급은 그 혼자이지만, 부대장은 시바 카이엔을 비롯한 다른 번대의 부대장들과 또한 수십의 석관급을 데려온 것이기 때문에 전력적으로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동등하다 여겨졌지만, 에스파다의 일행이 이미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는 점에서 지리적인 우위를 점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기본적으로 숨어서 기습하는 방안도 생각해봤지만, 저 정도 되는 힘을 가진 자라면 자신이라면 모를까, 다른 석관급의 사신들은 들킬것이 자명했기에 정면으로 치고 들어왔다.
"시바 카이엔! 모옥 안의 인물을 확보, 나머지는 호로들을 친다!"
ㅡ챠자장!
사방에서 검을 뽑는 소리가 들린다.
몇몇 이들은 성급하게 자신의 참백도를 해방했다.
◆
디에즈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약 천년 전, 처음 이곳 소울소사이어티를 습격했던 당시의 그는 사신으로 치자면 부대장급에서 대장급 사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에스파다로서는 분명히 강한 축의 실력이었지만, 확실히 말해서 사신들의 대장들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약한 힘이었다.
때문에 고전ㅡ 아니, 패배했다.
몸이 정상이 아닌데다가 은퇴까지한 노인ㅡ, 시바 에이슌과의 전투에서 그는 압도적인 역량차이로 패배했던 것이다.
시바 에이슌의 몸 상태와 그 당시 생존자였던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등의 복합적인 상황에 의하여 간신이 시바 에이슌을 베어 넘겼다지만, 어딜봐도 자신의 패배였다.
하지만 그는 검에 미친자.
자신이 진 것은 검술이 아닌 단순한 힘의 차이였다, 라고 생각하고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이후 일어난 전투에서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자신에게 도움이 된 갓난아기의 영력보다 못한 영력.
가진것이라고는 기묘한 분위기와 이글거리듯이 타오르던 눈빛 뿐이던 남자가 디에즈의 모든것을 베어버렸다.
유려한 검.
실속적인 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
그 어디를 봐도 그는 자신의 수준을 아득히 넘었다.
그것은 단순히 십여합이 넘도록 검을 주고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입증이 되는 것.
힘의 차이로 짖눌렀다지만, 그것은 곧, 자신이 시바 우에슌에게 했던 말이 변명이었음을 깨닫게한 요인이었다.
그때문에 이후 온, 사신 두명(슌스이, 쥬시로)를 상대하는둥 마는둥 하며 자리를 피했던 것이다.
이후, 디에즈는 그 어떠한 활동도 하지않은채 웨코문드에서 자신의 힘과 검을 갈고 닦는데에만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그것이 벌써 천년이다.
천년전의 디에즈와 비교한다면, 지금의 디에즈는 거의 시바 우에슌의 실력과 엇비슷한 정도.
비록 그것이, 전성기 때에는 수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실력의 야마모토 총대장의 바로 뒷 실력이라 여겨지던 시바 우에슌의 실력이 아닌, 이후 그가 만나서 싸웠던 쇠약해진 시바 에이슌의 실력이라 하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대장급의 이상의 힘을 가진 것이다.
아마도 앞에 있는 이 남자는 대장.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사신들은 모두 석관.
하지만, 질거라는 생각은 커녕 위기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ㅡ
"나의 영역에 온 것을 환영한다."
디에즈의 일검을 받을 수조차 없는 피래미들이기 때문이다.
◆
모옥의 밖은 격력한 소음으로 가득찼다.
고함소리,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 폭발하는 소리, 베이는 소리, 비명.
지옥의 소리가 과연 이러하다고 여겨질 아비규환의 소음이다.
그런 소음을 애써 뒤로한 시바 카이엔은 이내 모옥안에 조용히 눈을 감고있는 그를 발견했다.
무사했다는 안도감에 그에게 서서히 다가가던 카이엔은 순간,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어째서, 자신들이 오고 들어서는 순간까지 제제가 가해지지 않았는가?'
'어째서, 모옥 안에는 호로가 단 한마리도 없는가?'
너무 부자연스럽다.
모옥 주위를 점령한 호로들이 모옥 안을 신경쓰지 않을리가 없는데, 모옥 안은 너무도 고요하다.
그때였다.
ㅡ휙!
그의 검이 빠르게 카이엔이 있는 자리를 베어넘긴 것은.
"큭!"
허리를 뒤로 꺽어 검을 피한 카이엔은 곧바로 몸을 뒤틀어 그자리에서 서너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두가지의 경악을 했는데, 자신을 향해 검을 베어온 그의 행동에 경악한 것이 첫째요, 정신이 붕괴된 그가 검을 휘둘렀다는 것에 대한 경악이 둘째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어떻게 이렇게 된거지?
그렇게 몇번더 휘둘러진 검을 피한 카이엔은, 이내 자신에게 검을 휘두른 그의 동작이 너무 허술하다는 점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그를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발견한 눈 주위의 무늬.
'그 호로는 타인의 몸에 기생해서 조종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때문에 저희는 손도 못써보고 전멸…….'
자신의 아내, 미야코가 소속된 조를 거의 괴멸에 가깝게 피해를 준 호로의 이야기가 불연듯 카이엔의 머리를 스쳤다.
"네놈! 어디서 기생을하고 형님의 흉내를 내느냐!"
"크크크크크크크."
카이엔의 호통에 그ㅡ, 아니 기생한 호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기생된 그가 눈을 떴다.
비록 실명했기에 눈동자에는 빛이 없었지만, 그래도 한가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ㅡ 광기였다.
◆
사태는 시시각각 최악으로 진행되었다.
호로와 사신들의 싸움은 쿠치키 바쿠야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사신들의 희생이 점점 커질 뿐이었고, 모옥안에서는 비록 기생당했다고는 하더라고 형님에게 손을 쓸 수 없는 카이엔이 점차 수세에 몰렸다.
계산 착오였다.
쿠치키 바쿠야는 그리 생각했다.
천본앵을 이용해 싸운다는 것은 수백의 적에게도 동일한 죽음을 내릴수 있다는 의미였지만, 여기있는 호로들은 단순한 호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귀도술과 비슷한 세로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검을 해방하는 존재도 있다.
거기에 앞의 에스파다는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신을 일검에 죽이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즉, 서로의 대장은 서로의 부하만을 베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다만, 사신들은 에스파다의 일검조차 받지 못하고, 호로들은 바쿠야의 천본앵을 간신히나마 막거나 일검에 죽지는 않는 상황인 것이다.
이대로라면 승리하더라도 수많은 석관들이 죽을 것이다.
그렇다고 천본앵을 에스파다에게 집중한다면ㅡ, 석관과 호로들의 싸움에 의해 석관이 전멸하는 것도 시간문제리라.
전황이 너무 기울었다.
후퇴를 생각해야한다.
그런데도 모옥 안에 들어선 시바 카이엔이 나타나질 않는다.
무슨일이 생긴 것인가?
일이 꼬였다.
쿠치키 바쿠야는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