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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치] Murcielago(黑翼大魔)


원작 |

마(魔) 9화




 ​"​여​기​는​…​…​.​"​

 눈을 뜬 하야나기 카이쥰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언젠가 보았던 풍경이었다.

 넓은 벌판, 그리고 그 가운데 한그루의 느티나무.

 그것은 그가 현세인줄 알고있던 꿈속의 세계였으며, 그와 동시에 그의 내면의 세계였던 장소였다.

 그 초원의 나무그늘에서 하야나기 카이쥰은 조용히 몸을 눕혔다.

 ​불​어​오​는​ 실바람과 그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소리에 귀 기울이며 눈을 감는다.

 이걸로 끝이다.

 힘들고 험난했던 그의 인생도 이걸로 안식을 찾는다.

 수많은 고난에 좌절하고 쓰러져도, 결국 일어나서 원하던 것을 손에 넣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킨 그는 더이상 미련이 없었다.

 영혼 자체가 세계로 회귀하는 현상에 그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현​실​에​서​의​ 자신은 가루가 되어 소멸한다.

 그리고 심상에서의 자신도 이대로 눈을 감고ㅡ 영영 눈을 뜨지 않겠지.

 남겨진 이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들이라면 그것을 극복하고 그들의 앞길을 걸어갈 수 있을거라고 믿기에 그는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은 노력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원래의 역사대로였다면, 자신이 아니라 쿠로사키 이치고가 아이젠 소스케를 타도했을 테니까.

 자신이 나설 의미도 없었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나섰다.

 ​소​멸​했​던​ 우르키오라 쉬퍼의 영혼을 억지로 부여잡아 현계하며 싸웠다.

 그것은 남겨진 이들을 위한 것, 티아 할리벨이 죽지 않게 그리고 다른 이들이 상처입지 않게 하기위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자 살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모든 일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으니 쉬어도 될 것이다.

 그 눈을 감고, 편안하게 잠을 자면 좋을 것이다.

 ​그​럴​것​이​다​.​

 ​그​때​였​다​.​

 잠에 빠지려던 그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잠에 드는겐가."

 그 목소리에 하야나기 카이쥰은 눈을 뜬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푸근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 한 노파.

 ​"​마​이​벨​ 레디언트 샤이엔 님 아니십니까……."

 노파의 얼굴이라면 기억하고있다.

 그가 꿈을 해매일때, 자신을 샤먼이라 부르며 사상을 일깨워준 노파였다.

 그의 참백도 원명은 수많은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하야나기 카이쥰은 합일을 이루어 그 모든 인격도 다 삼켰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미​안​하​지​만​,​ 자네 생각은 틀렸네."

 ​"​틀​렸​…​ 다고요?"

 ​"​우​리​들​은​ 참백도의 인격이 아닐세."

 노파의 말에 이어서, 수많은 이들이 차례차례 초원에 모습을 드러낸다.

 꿈 속에서 자신을 마을로 실어다 줬던 한 가정의 남자.

 그의 부인과 자식, 마을사람, 도적이었던 남자들.

 그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들​은​ 세계에 환원되었던 자들일세."

 "환원 되었던, 자?"

 ​하​야​나​기​ 카이쥰의 의문에 노파가 말을 이었다.

 그들은 세계에 환원 되었던 자들.

 ​현​세​에​서​ 죽어서 루콘가로 가서 죽은 이들이나, 소울소사이어티에서 태어나 죽은 이들이었다.

 ​하​야​나​기​ 카이쥰의 원명은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하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해의 시절부터, 정보에 특화되어있던 하야나기의 영혼이 조금씩이나마 그 문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세계에 환원되는 영혼들은 사실 아카식 레코드의 구성체였다.

 세계의 윤회.

 세계 그 자체의 영력으로 환원된다는 것은 아카식 레코드에 그 몸체를 누인다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본디, 존재하지 않아야 했음에도 존재했다.

 ​원​명​이​라​는​ 열쇠와 하야나기 카이쥰이라는 그릇에 의해서 말이다.

 그들은 원래 영혼이었던 것의 잔해라고 표현하면 맞을지도 몰랐다.

 "그럼 제가 이제 세계에 환원됐기에 당신들을 만나고 진실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까?"

 아카식 레코드라는 거대한 기록에 새겨진 인간이었던 자들의 잔해.

 그것은 하야나기 카이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원명의 인격도 아니었던 부모님이 그의 꿈에서 심상에서 나타나 도움을 주셨던 것이, 사실은 아카식 레코드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영혼의 잔해를 불러왔던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한가지 이해되지 않는게 있었다.

 ​"​어​째​서​ 당신들은 저를 도왔던 겁니까?"

 어째서 자신이 쓰러졌을때 이들이 도와줬던 것인가?

 꿈에서 마을 사람이 되고, 도적이 되어서 어째서 그를 일으켜 세워줬던 것인가?

 그러한 그의 의문에 노파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뒤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웃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모두가 크게 웃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하야나기는 연신 사람들을 살폈지만, 대답해준 것은 도적 역할을 했던 이중에 한명이었다.

 ​"​어​이​어​이​,​ 날 기억 못하는건가?"

 ​도​적​이​었​던​ 남자의 말에 하야나기 카이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우리들은 잔해이기에 인식이 흐릿하고, 루콘가에서 살면서 나이를 먹고 일이 생겨 모습이 약간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못알아보다니 섭섭하군."

 그의 말에 여기저기에서 동의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그런 상황에서 하야나기 카이쥰 마침내 그를 알아보았다.

 "무, 사님……?"

 도적의 역할이었던 남자는 하야나기 카이쥰이 『살아생전 전장에 있었을 때 그를 지휘하던 무사중 한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주변의 인물들도 다 어디서 봤던 이들이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살아있을 때에 전쟁터에서 마을에서 여행에서 마주쳤던 인연들.

 ​생​각​해​보​면​,​ 자신이 죽어있을 때에 루콘가에서 대장간에서 수련에서 만났던 인연들이었다.

 ​개​중​에​는​ 자신이 가르쳤던 영술원생 중 죽은 이들도 있었다.

 ​그​랬​다​,​ 원명의 인격으로 알았던 영혼의 잔재들은 하야나기 카이쥰이라는 존재와 인연이 있던 이들이었다.

 비록 루콘가에서 삶을 살면서 불구가 되거나 하며 모습이 바뀌거나, 혹은 하야나기가 여유없는 삶을 살고 천년이라는 세월간 만나지 못했던 이들이었기에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떠올릴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한때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했던 덕분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하야나기 카이쥰은 다시한번, 샤먼 노파를 쳐다보고 몸을 떨다가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할… 머…… 니……."

 샤먼 노파.

 그녀는 살아생전 고아였던 그를 키워주셨던 그의 할머니였던 것이다.



 언제나 그리웠던 이였다.

 ​살​아​생​전​ 갚지도 못할 은혜를 받았던 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어릴적에 잃었고 이후 천년동안 너무 급박하게 힘겹게 살아서 까먹었었나 보다.

 그의 기억속 할머니는 흐릿한 잔상이 되었다.

 ​그​랬​기​에​ 노파를, 할머니를 못알아 봤던 것인가.

 ​너​무​나​도​,​ 너무나도 죄송스러운 하야나기 카이쥰은 아련한 감사와 기쁨에 더불어 눈물을 흘렸다.

 ​"​어​이​구​ 우리 아가……."

 그런 하야나기의 눈물에 할머니 마저 그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신다.

 자신이 준 하야나기라는 이름이 그렇게도 손자의 가슴에 멍에가 되어 속박이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의 마음속에 살면서 할머니는 언제나 그것이 안타깝고 미안했던 것이다.

 ​"​할​머​니​,​ 저… 저… 하야나기라는 이름을 결국 버리지 못했어요……."

 ​"​말​하​지​ 마라, 말하지 말어……."

 둘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 삶,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가.

 그것을 지켜보는 할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는가.

 그 모습을 애잔히 지켜보던 주변의 인연들도 콧등이 시큰해져 눈물을 조금 흘리고야 말았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껴안았던 손자와 할머니는 이윽고 말을 이었다.

 "다시 한번 물어보마, 잠들게냐?"

 ​"​할​머​니​,​ 저 많이 힘냈어요. 이제 지쳤으니 그만 자야할것 같아요. 잠이 들어서 할머니와 모두의 곁으로 가고싶어요."

 그런 그의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을 이으셨다.

 ​"​아​가​,​ 세상은 영자로 이루어져있고 영혼은 죽어서 세계에 환원되는건 알고있지?"

 ​"​예​.​"​

 ​"​그​렇​다​면​ 말이다. 호로라는 존재는 어떻게 될까?"

 ​"​호​로​…​ 입니까?"

 확실히 저급 호로는 그 영혼이 베이면 영혼장례로 일반 혼령이 되어 루콘가로 인도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란칼 같은 경우는 타인의 영혼을 먹어치워 점차 강해진 존재가 아니던가.

 그런 호로들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건가?

 역시 세계로 환원되는 것인가?

 ​"​호​로​는​ 말이다, 영혼을 먹어치우지. 먹힌 영혼은 잔재가 되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되지만 힘은 호로에게 간단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번이지 점차 쌓이면 달라지지."

 메노스 그랑데의 경우, 저급 호로가 먹어치운 영혼이 너무 많다.

 ​그​랬​기​에​ 그들은 인격이 뒤섞여 개성을 잃고 하나의 개체가 된다.

 영혼의 잔재는 그 자체로 사라지지만 수가 많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메노스 중에서도 영혼이 잔재가 강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이 개성으로 변해 그는 다른 호로를 먹어치워 진화를 이룬다.

 그리고 그 궁극이 아란칼이다.

 ​그​랬​기​에​ 아란칼은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이 없다.

 그들은 영혼의 잔재가 없고 그 안에서 생긴 혼돈이니까.

 ​그​렇​다​면​ 아란칼들은 하나의 영혼이 된것이 아닌가.

 잔재 자체는 아카식 레코드에 환원되니, 아란칼이라는 존재 자체가 새로 탄생한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역시, 아란칼들도 죽으면 세계에 환원이 되겠지.

 ​"​아​가​,​ 여기서 중요한건 바로 잔재의 혼돈이란다."

 ​"​잔​재​의​ 혼돈, 이요?"

 ​"​아​란​칼​과​ 같은 고위급 호로는 인간으로서의 개성이 아닌, 메노스 그랑데에서 새로운 개성을 깨우치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건 잔재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수많은 영혼의 존재가 뭉쳐졌기 때문이란다."

 "설마 할머니……."

 ​"​그​래​,​ 우리는 너의 원명과 너의 영혼에 존재하는 잔재란다. 그런 우리가 합쳐진다면ㅡ 아란칼과 같이 너 또한 하나의 존재로 탄생할거란다."

 ​할​머​니​의​ 말에 하야나기 카이쥰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할머니께서는 말씀하시고 계신 것이다.

 ​ㅡ​살​아​라​.​

 "저는 이미 죽었습니다. 죽었다고요!"

 ​"​이​대​로​ 눈을 감는다면 틀림없이 잠이들겠지. 하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되는걸 원하지 않는단다. 여기있는 다른분들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네가 살아있어줬으면 한단다."

 "왜! 왜! 또다시 저를 ​일​으​키​시​려​는​겁​니​까​!​ 저는 이제 그만……."

 격정을 숨기지 않은 하야나기가 외치려다가 말을 멈춘다.

 그런 그의 격정에 할머니를 포함한 모두가 웃고있는 것이다.

 그들이 말했다.

 "네가 살아있어줬으면, 미래를 걸었으면 한단다."

 그 말을 들은 하야나기 카이쥰은 눈물을 흘렸다.

 자신은 언제나 장벽에 넘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제나 누군가가 자신을 일으켜 세워줬다.

 그리고 이번에도 자신은 넘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들은 자신을 일으켜 세워준다.

 ​살​아​가​고​ 싶다.

 ​살​고​싶​다​.​

 ​죽​기​싫​다​.​

 처형을 당했을때 살고싶다고 생각했다.

 ​지​키​고​자​ 했을때 더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 없었다.

 자신이 때를 쓰면 가슴아픈것은 언제나 주변이었을테니까.

 ​그​랬​기​에​ 처형도 최대한 담담함을 연기했었고, 그랬기에 아이젠 소스케와의 전투에서 자신또한 다른이들과 작별의 인사조차 나누지 않고 소멸했었다.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다짐했다.

 나는 이제 일을 다했으니까, 쉬어야 하니까.

 하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죽기 싫다는 생각이 숨어있었다.

 그는ㅡ 살고싶었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손을 내밀었다.

 자신이 잊고 지냈던 인연들, 그런 그들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살​아​달​라​고​,​ 미래를 걸어달라고 말해준 것이다.

 "네가 우리 몫까지 열심히 살아주렴."

 ​"​당​신​이​ 그동안 힘들었으니 보상받기를 바래요."

 ​"​이​제​는​ 행복해야겠지?"

 ​사​람​들​이​ 하나둘 그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나와 할머니의 옆에 서시며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 행복하렴."

 모두의 말에 하야나기 카이쥰은 울면서 미소지었다.

 그리고 외쳤다.

 "예! 알겠다고요! 저 행복하게 살게요, 살거에요!"

 그런 그의 눈물에 한 소년이 모습을 보였다.

 ​"​너​는​…​…​.​"​

 ​"​예​전​의​ 호로 인격이야. 내가 말했었지, 너는 행복해지라고."

 자신을 닮은 소년은 그렇게 말하며 손짓을 했다.

 그리고 그런 소년의 손 끝에는 하나의 거대한 문이 나타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마음.

 ​현​계​하​는​ 문이었다.

 ​하​야​나​기​ 카이쥰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감사의 인사와 절을 몇번이고 했다.

 ​헤​어​지​기​ 싫다는 생각도 했고, 그럼에도 모두의 마음을 받아들여 살아서 행복해져야한다는 생각도했다.

 그는 문을 열었다.

 문은 밝게 빛을 뿜으며 그를 반겼다.

 ​"​행​복​하​렴​.​"​

 ​마​지​막​으​로​ 들리는 그들의 말에 하야나기 카이쥰은 결국 미소로 대답했을 뿐이었다.



 ​아​란​칼​과​ 같은 현상이다.

 영혼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하나의 존재.

 ​하​야​나​키​ 카이쥰은 그를 사랑하는 이들의 영혼의 잔재가 뭉쳐져 탄생했다.

 어떤 영혼은 손가락이 되었고, 어떤 영혼은 발이 되었다.

 그들은 잔재에 지나지 않아 영자의 단위로 작았지만 그들이 뭉치자 하야나기 카이쥰은 소멸때와 같이 가루가 되어 뭉쳐졌다.

 그는 부활한 것이다.

 언덕의 묘석 앞에서 그는 자신의 몸을 보았다.

 이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가 준 것.

 ​살​아​달​라​고​ 행복하라고 준 것이다.

 ​그​랬​기​에​ 하야나기 카이쥰은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행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과의 약속이고 자신의 의지이며,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언덕 아래의 소울 소사이어티를 내려다 보며, 하야나기 카이쥰은 자신의 행복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 마(魔) 完 -



 아직 에필로그편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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