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
요시노와 유키가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한 뒤, 1주일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요시노는 아직 유미에게 그걸 전하지 않았습니다.
“으으, 내가 생각해도 겁쟁이야…….”
요시노는 머리를 부둥켜 안았다.
친구의 남동생과 사귀고 있다는 걸 친구에게 이야기 하는게 설마 이렇게나 부끄러운 일일줄은 몰랐다.
같은 반이고 산백합회에서 활동도 같이 하고 있어서 이야기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이야기를 꺼내는 게 너무 힘들었던 거다.
‘아니, 반에도 장미관에도 다른 사람이 있었고……역시 이런 건 방해가 안 들어올만한 곳에서 이야기해야지.’
라고 자기 스스로에게 변명도 하지만, 슬슬 어떻게든 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전했을 때 왠지 거북해 질거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러니 빨리 이야기하고 속시원해지고 싶다.
계속 질질 끄는 건 나답지 않고, 오늘이야말로 유미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기로 결심하고 등교했는데 계속 머리나 감싸안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요즘 이런 식으로 요시노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보니, 츠타코나 마미도 조금 걱정하기 시작한 것 같다.
수업이 끝난 뒤 쉬는 시간, 요시노는 결심을 굳히고 일어나서 유미 쪽으로 향한다.
“저기이, 유, 유미 양.”
“응? 왜, 요시노 양?”
다음 수업 준비를 하고 있던 유미가, 말을 걸어온 요시노를 바라본다.
부자연스럽지 않을 정도로 심호흡을 해서, 정신을 가라앉히고 입을 연다.
“에에, 사실은, 유미 양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오늘 점심에 잠시 시간 내 줄 수 있을까?”
“응, 괜찮아.”
“그, 그래. 그럼, 부탁할게.”
그 말만을 하고 뒤로 돈 요시노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도저히 유미의 얼굴을 더이상 바라보고 있을 수 없었던 거다.
그런 요시노의 모습을 보고, 급우들이 조용히 떠든다.
“……봤어, 지금 거?”
“예, 드디어 요시노 양, 결심한 걸까요.”
“에, 무슨 소리야?”
“저렇게나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 하면서도 진지하게 필사적인 모습으로 유미 양을 불러내서 할만한 이야기는,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요?”
“에엣, 그건 혹시나――고, 고백, 이라거나?!”
“뭐어, 늦었을 정도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이때의 요시노는 주위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요시노는 약속했던 온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머릿속으로 어떻게 말할지를 여러모로 고민하고 있다. 이야기 할 건 하나밖에 없는데, 어째서 이렇게나 쓸데없는게 떠올라 부끄러워지는 걸까.
말해 버리면 별일 아닐 거다.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고, 도시락가방을 든 채로 온실 안으로 들어간다. 같은 반이니 같이 오면 됐겠지만 왠지 부끄럽다 보니 일부러 따로 움직였는데, 유미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래서 요시노 양, 어떤 이야기니?”
“에, 아, 응. 사실은.”
이 뒤에 점심식사도 해야 하니 시간을 끌 수도 없다. 아니 잠깐, 이야기한 뒤에 같이 도시락을 먹는다니, 거북한 분위기가 되면 싫겠다 싶은 걸 이제와서야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여자는 배짱, 자신의 성격에도 안 맞는다. 유미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입을 벌린다.
“사실은……나,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어.”
“――에. 에에에. 에, 정말?!”
놀란 유미를 향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부끄럽긴 하지만 이건 아직도 첫마디일 뿐이고, 이 뒤가 본론이다.
“헤에, 그, 그렇구나. 누구랑……아, 물어봐도 괜찮으려나?”
“응……그~, 에에, 그러니까. 사실은, 유키 군, 이랑.”
“――――응?”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유미.
제발 그렇게 되묻는 듯한 행동은 하지 말아줬으면 싶지만, 한 번 이야기해 버렸으니 마찬가지다. 요시노는 다시 이름을 말했다.
“그, 그러니까, 유키 군이랑 사귀기 시작했어!”
이렇게 아까보다 강하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자,
“에……에에에에에에?? 유키랑?! 정말로?!”
더더욱 큰 소리로 놀라는 유미.
간신히 이야기를 마쳐서 한숨 돌렸지만, 부끄러운 건 마찬가지라서 목 주변까지 뜨거워졌다.
“언제부터!”
“이, 일주일 전쯤이려나.”
“그, 그렇구나~.”
“미안해. 원래는 바로 말해야 했을 텐데, 나도 부끄러워서, 말하기 힘들어서.”
부끄럽지만, 그래도 말한 덕에 굉장히 마음은 가벼워져 있었다.
“아, 으으응. 그건 괜찮지만. 그런가―, 아―, 그래서 유키, 요즘 이상했구나.”
“이상, 했어?”
“응, 쓸데없이 쾌활한데다 혼자서 히죽히죽거려서 좀 기분 나쁠 정도였지만, 요시노 양이랑 사귀기 시작한 게 기뻐서 어쩔 수 없었던 거구나.”
“하읏.”
요시노 자신의 행동이 아닌데도 왠지 무진장 부끄럽고 쑥스럽고, 그러면서도 기쁘다. 유키가 그렇게나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에.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겉에서 빤히 보였다는 게 좀 무섭다. 자기도 모르는 새 태도로 전부 드러내서, 레이나 급우등에게 이미 들킨게 아닌가 싶어서.
일단 중요한 내용은 전했으니, 온실을 나와 장미관으로 가기로 했다. 점심도 먹어야 하고, 화제도 좀 바꾸고 싶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정작 장미관에 도착해 보자 하필 이럴 때 요시노와 유미 외의 임원들은 안 와 있었다. 둘이 되면 당연히 아까 이야기한 유키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는 건 흐름적으로 어쩔 수 없는 걸까. 요시노는 자신의 생각이 어설펐던 걸 깨달았다.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냐거나, 어느 쪽에서 고백했냐 등, 유미도 역시 여자애.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요시노도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기쁘니까 자랑하고 싶긴 하지만, 친구면서도 사귀고 있는 애인의 누나기도 하다 보니, 그렇게 떠들어 대는 것도 어떨까 싶고.
털어놓고 마음이 편해진 건 괜찮지만, 뭐랄지……무진장 근질거린다.
“그래서 말야, 요시노 양.”
정면에 앉아 있던 유미가 다시 물어본다. 과연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를 물어올지, 마음 속으로 대비한다.
“이, 이미 키스같은 건 했니?”
“푸우――――――――――!!”
뿜었다.
수통에 담겨 있던 보리차를 마신 타이밍에 그런 질문을 받아, 입에 머금고 있던 보리차를 멋진 독무살법처럼 내뿜었다.
“……요, 요시노 양…….”
“아, 미, 미안!”
정면에서 완전히 보리차 독무를 뒤집어써버린 유미가 뭐라 할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봐서, 급히 고개를 숙인 뒤 손수건을 꺼낸다.
“으으, 너무해…….”
“그, 그치만 유미 양이 갑자기 이상한 소릴 하니까!”
유미의 얼굴을 닦으면서 변명하지만, 유미는 히죽히죽 웃으며 다시금 공격을 시작한다.
“에~ 어째서? 사귀고 있으니까, 그런 건 하는지 신경쓰이잖아.”
“그래도, 유키 군이잖아? 유미 양의 남동생이야? 남동생의 그런 이야기, 듣고싶어?”
“아니아니, 나는 ‘요시노 양의’ 이야기를 듣고싶으니까.”
“윽…….”
이 무슨 심술. 아니, 설령 요시노가 반대 입장이었더라도 역시 묻고 싶었겠지만, 당하는 입장이 되면 정말로.
“아, 안했어 그런 거. 애초에, 아직 사귀기 시작하고 1주일이야.”
“사귀기 시작하고 나선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훨씬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같이 놀러 다니거나 등등 사이 좋았잖아.”
“그, 그렇다고 해도 사귀기 시작하고 1주일만에 갑자기 그러는 건 말도 안되잖아.”
“요시노 양은 의외로 순정, 순애파구나?”
“의외라니 뭐야―겉모습대로잖아?”
“아하하, 수줍은 요시노 양, 귀여워―.”
뭐랄까 마치 연상의 여유같은 느낌으로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서, 부끄러움이 더더욱 커진다.
“그럼, 유키가 고백했다고 했었는데, 뭐라고 고백받았니?”
“에, 왜, 왜 그런 걸 묻는 거야.”
“역시 신경 쓰이잖아. 남자는 어떤 식으로 고백하는지, 그 말을 듣고 요시노 양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하으으.”
“거기에, 후후, 유키가 어떤 표정으로 부끄러운 말을 했는지, 중요한 상황에 쓰게 챙겨 둘까 싶어서.”
“자, 잠깐 유미 양?!”
“아하하, 농담농담, 미안, 아무한테도 말 안할 테니까, 응?”
저도 모르게 일어선 요시노를 보고, 허둥지둥 손을 흔드는 유미.
뭐 이런 짓궂음이. 아니, 단순히 호기심에 넘치는 것 뿐인가.
“그래서 요시노 양.”
“에에엣~~~, 아직 묻는 거야――??”
결국 점심시간 내내 아무도 장미관에 오지 않아, 요시노는 계속 유미에게 고문당했다.
예비종을 듣고 간신히 유미의 집요한 추궁에서 달아나듯 교실로 돌아간다. 설마 유미가 이렇게나 연애 이야기에 흥미를 드러내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거다.
“아, 늦겠어, 요시노 양.”
“에? 우와, 빨리 가야겠네.”
교실로 가면서도 이야기하면서 걷고 있다보니, 생각외로 시간이 걸렸다. 유미에게 이끌려 교실로 돌아가자,
술렁이는 교실이 조금 조용해지고, 안에 들어온 둘에게 눈길이 모인다.
“……어떻게 됐을까?”
“잘 됐으려나……아, 그래도 봐, 사이좋게 손을 잡고 있어.”
“꺄아, 멋져!”
술렁이는 교실.
거기서 유미와 손을 잡고 있던 걸 깨닫고, 당황스레 떼어놓는다.
“어머, 순진하네요.”
“멋진 커플이 태어났어요.”
주위의 분위기에 압도당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왠지, 다들 들떠있지 않아?”
“어머, 그건 요시노 양 쪽이 아니라? 아무래도 잘 된 모양이네.”
츠타코가 안경을 반짝 빛내며 찾아오고, 바로 뒤에는 마미가 흥분한 표정으로 서있다.
“괜찮아요, 요시노 양. 저는 언니와는 달라서, 가십 기사같은 건 쓰지 않으니까 안심해 주세요!”
“? 하아……그, 그래. 고마워.”
의미도 모른 채로 망설이며 인사하자, 츠타코도 마미도 왠지 히죽히죽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무슨 일일까?”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요시노가 사실을 알게 되는 건, 한동안 지난 뒤였다.
요즘은 달리는 것도 굉장히 익숙해졌다.
체력은 아직 보통이거나 그 아래일지도 모르겠지만, 제대로 운동도 못했던 시절이랑 비교하면 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게다가 목적지에 기다리고 있는 건,
“요시노 양, 달려 왔어? 거, 건강하네.”
“아하하, 미안, 기다렸어?”
유키가 웃으며 맞아 주었다.
“서둘러 오긴 했는데, 미안.”
“아니, 오래 기다린 것도 아니고, 거기에 요시노 양의 사복을 볼 수 있는 것도 기쁘고.”
“뭐, 뭐야, 부끄러운 소리나 하곤.”
귀갓길에 어딜 들르는 게 금지되어 있어서, 집에 돌아가서 갈아입은 뒤에 이렇게 다시금 밖으로 나온 거다. 집이 학교에서 가까우니까 그리 시간이 걸릴만한 일은 아니지만, 단순히 옷을 갈아입는 걸론 안 끝나는게 소녀인 거다.
세일러풍 파카에 벌룬 숏 팬츠, 니하이속스는 조금 노려서 입은 거다.
“나만 사복이라 왠지 미안해.”
“아니, 오히려 나만 교복인게 면목 없어.”
“그래도 목닫이가 아니니까 괜찮아.”
한참 전에 하복이 되어, 지금은 셔츠에 바지 차림이니까 쪄죽는 상황도 아니다. 적당히 흐트러트리면 캐주얼처럼 안 보이지도 않고.
예전엔 병원 데이트였기에, 오늘은 새삼스레 거리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렇다곤 해도,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랑 폐문시간을 생각하면 오래 같이 있을 순 없지만, 그래도 사귀기 시작했으니까 이렇게 조금이라도 같이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란히 서서 걸으면 지금도 아직 두근거린다. 사귀기 전에는 이렇게 긴장하거나 하지 않았었는데, 신기하다.
“아, 맞아. 저기, 오늘, 이야기했으니까. 유미 양에게 우리에 대해서.”
“그, 그래. 어땠어, 유미 녀석, 무슨 소리 했어?”
“에? 아~, 응, 이것저것 물어봤어.”
떠올리며 쓴웃음짓는다.
“유키 군도 오늘 돌아가면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걸?”
“에엣, 뭐야 그거, 유미 녀석 그렇게나 이상한 것들 물어본 거야?”
“이상하다고 할까……뭐어, 여러가지야, 여러가지. 아, 그래도 이상한걸 대답하면 안되니까, 유키 군?!”
“이상한 거라니, 이를테면 어떤?”
질문이 돌아와서 떠오른 건 유미의 추궁. ‘키스 했어?’ ‘고백 대사는?’ 등등.
“……이, 이상한 건, 이상한 거야!”
다시 얼굴이 빨개질 것 같아서 빠른 걸음으로 유키의 앞으로 나간다.
“잠깐 기다려 요시노 양.”
“못 기다려~~.”
의미 없는 잡담도 왠지 빛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사랑하고 있는 중이어설까. 그런 달콤한 생각을 하는 자기에게 딴죽을 걸고 싶은 기분도 들지만, 자연스레 떠올라 버리는 건 어쩔 수 없잖아.
이러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
“우와~~~, 잔뜩 있어!”
매장에 와서 놀란다.
오늘은 휴대폰을 사러 온 거다.
부모님과 이야기를 해서, 동아리 활동으로 나가거나 할 때 늦어질 경우도 있으니 연락용으로 가지고 싶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유키를 이유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보다, 아직 부모님껜 이야기하지 않았다.
“흐응, 전부 스마트폰이 되었구나.”
요즘 여고생인 주제에 휴대폰 하나 없다고 하면 꽤 믿어주지 않지만, 진짜니까 어쩔 수 없다. 릴리아는 휴대폰 반입 불가니까 학교 안에서 곤란할 일은 없고, 안 쓰면 안 쓰는 대로 딱히 불편한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레이와는 언제든지 이야기할 수 있고, 친구와는 학교에서 만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역시 이건 여고생에겐 필수 아이템이겠지?”
실제로 학교에선 안 쓴다 해도, 집에선 보통으로 쓰고 있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은 거다.
갖가지 색깔, 갖가지 디자인에 눈을 빼앗긴다. 일단 사전에 카탈로그같은 걸 보긴 했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요즘 어느 기종을 산다고 해도 기능적으론 전혀 문제 없으니, 남은 건 디자인이나 취향인 색깔, 그 외엔 실제 조작성으로 정하면 괜찮을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마음에 든 것 몇개를 손으로 잡고 시험해 본다. 귀여운 것도 괜찮지만, 심플하고 기능적인 것도 버리기 아깝다.
“유키 군은 어떤 거 쓰고 있어?”
“나? 이거.”
주머니에서 꺼내서 보여 준 건 제일 유명한 회사에서 낸 기종이다.
“역시 이거, 괜찮아?”
“나는 써서 익숙해져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괜찮다고 생각해.”
“음―.”
팔짱을 끼고 고민한다. 후보로 고민 중인 건 세 개쯤 있고, 그 중에는 유키 군이 가지고 있는 기종도 있다.
여기선 역시.
“――정했어, 역시 유키 군이랑 같은 게 좋을까……후훗.”
같은, 아가씨 같은 식으론 못 가는 거다, 역시나.
유키가 가지고 있는 기종을 후보에 넣은 건 유키가 가지고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실제로 고르게 되면 결국은 자기 취향 최우선으로 정해 버렸다.
펄핑크색이 마음에 드는, 유키랑은 회사도 다른 녀석. 그렇다 보니 이런 선택을 한 걸 어떻게 느낄지 조금 고민도 했지만.
“요시노 양 다워. 그거 고르지 않을까 싶었어.”
신경 쓰여서 물어봤더니, 그런 대답을 돌려줬다.
요시노답다는 건 무슨 이야길까. 처음부터 유키랑 같다는 이유로 고를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기뻐해도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요시노는 그렇게 아가씨적인 마음으로 넘치는 게 아니니 어쩔 수 없다. 레이라면 기꺼이 애인이랑 같은 걸 고를 것 같지만.
고민하고 수속을 하는 사이에 시간도 지나가, 오늘은 그 뒤에 헤어져 집에 돌아갔다.
부모님께 사온 기종을 보여주고, 부모님의 번호를 등록한 뒤 휴대폰 이야기로 잠시 떠든다.
“어머, ‘후쿠자와’라니, 이거 유미 쨩이니? 싫네, 친구를 성만 등록하다니.”
“아하핫, 아직 잘 못 쓰니까. 나중에 고칠 거니까.”
웃으며 얼버무린다. 오늘은 유미랑 같이 사러 간 걸로 해 뒀었다. 등록해 둔 건 물론 유키의 번호지만, 성만 등록해 둔 건 일단 정답이었다.
방으로 돌아가 적당히 만지고 있으니, 갑자기 문자가 도착했다.
“아, 왔다, 왔다.”
보낼 상대는 하나밖에 없다.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확인해 보자, 당연하지만 유키가 보낸 문자다. 열어서 본문을 읽어보면, 오늘 쇼핑에 대해 쓰여 있었다.
요시노도 익숙지 않은 손놀림으로 답장을 보내자, 다시 곧 유키에게서 답장이 날아왔다.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가, 마지막 줄에 도착했다.
‘여름방학, 수험공부는 해야겠지만, 괜찮다면 여기저기 놀러 가자.’
그랬다. 곧 여름방학인 거다. 수험생이라곤 해도, 애인이 생긴 첫 여름. 분명 여러모로 즐거운 일들이 있을 거다. 아니, 즐거운 날을 둘이서 만드는 거다.
요시노는 침대 위에서 미소지으며 답장을 보냈다.
그대로 위를 향해 누운 뒤, 천장을 올려보며 문자의 편리함을 느꼈다. 헤어져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거다. 이모티콘을 쓰면 감정도 전할 수 있으니, 이건 즐거울지도. 문자 의존에 빠지는 사람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됐다.
한동안 데굴거리고 있으니 다시금 문자가 왔다. 아무렇게나 몸을 돌려 엎드린 자세로 바꿔서, 침대맡의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연다.
“………………에?!”
읽고 말이 막힌다.
즐거운 여름방학을 기다리고 있다는 문장 끝에, 몇 줄인가 빈 줄을 둔 뒤에 쓰여 있던 문장.
‘요시노 양이랑 사귈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에에, 문자로 보내는 건 좀 그렇지만, 다시 말할게요. 좋아합니다.’
“뭐, 뭐뭐뭐뭐, 뭘 생각하는 거야――――?!”
얼굴을 붉히고 양발을 버둥거리며 신음한다.
문자니까 소리는 안 들리고, 얼굴도 안 보이지만, 그 대신 문자는 기록으로 남는다. 거기에 더해 고백받았을 때가 떠올라 버려서, 얼굴만이 아니라 온몸이 뜨거워진다.
베개에 반쯤 얼굴을 묻고 다시 한 번 액정화면을 보고.
“하으으…….”
엎어진다.
얼굴을 들어 문자를 본다.
눈을 피한다. 슬쩍 본다. 얼굴을 붉힌다.
“아아, 정말…….”
정말 바보. 아니, 기쁘지만. 잘도 뭐어 이런 무지 부끄러운 문자를 보낼 수 있구나 싶어 감탄한다. 어떻게 답장할까, 조금 불만이라도 토할까, 놀릴까, 오히려 웃어 버릴까.
몇번이나 고쳐 쓰고, 고민하고, 망설이고, 그리고.
“이, 이런거 보낼 수 있겠냐~~~~~~어, 에.”
손가락이 미끄러져서 보내 버렸다.
“으……아, 우왓, 아니, 잠”
당황한다고 해봐야 이미 늦었다.
“으아아.”
침대에서 몸부림친다.
베개를 꾸욱 껴안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얼굴에 붙인 채로 보내버린 문자 내용을 떠올리고 창피함에 몸부림친다.
발신함에 남은 문자 기록.
거기에는 유키의 메일에 놀림이 반쯤 섞인 말로 대답하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문장의 마지막에 있는 한 문장에는.
‘……나도, 정말 좋아해.’
게다가 정중하게 마지막에는 하트 마크까지.
부끄럽다. 너무 부끄럽다.
그리고 한바탕 홀로 날뛰다, 지쳐 철푸덕 뻗어서 팔로 눈을 덮어 가리며 중얼인다.
“…………아아, 나, 정말로 유키 군을 좋아하는 거구나.”
이날 밤은 비교적 기온이 낮았지만, 요시노의 몸에는 열대야가 찾아온 거다.
――――덧붙여서, 물론 유키도 요시노의 문자를 받고 굉장한 대미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