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티스트 테이스트
여름방학도 끝나, 2학기에 돌입했다. 수험생 입장서 보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지만, 이 2학기에는 체육제에다 학원 축제라는 고교생활 최후의 이벤트가 남아 있다보니 공부에만 집중하는 것도 꽤 어려운 편이다.
연약했던 요시노는 옛날부터 그런 이벤트에 참가하기 힘들었고, 참가할 수 있었다고 해도 정말 조금뿐이라 옆에서 견학했다고 표현하는 게 올바를 법한 상태였다. 그러니 고2때 거의 처음 건강한 몸으로 참가할 수 있게 됐을 때, 굉장히 기뻤고 즐거웠다. 그러니까 수험생이라고 해서 적당히 힘을 뺄 순 없다고 생각했다. 고교생활 마지막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요시노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괜찮다면 주말에 집에 놀러 안 올래?』
좀더 터무니없는 이벤트가 튀어나왔다.
“…………에?”
『어머니가 데려 오라고……아니, 물론 나도 요시노 양이 놀러 와 주면 기쁘고, 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꿀꺽 침을 삼킨다.
그야 물론 언젠가 그런 일도 있으리라곤 생각했었지만, 고3이라는 시기인 만큼 막연히 수험이 끝난 뒤로 생각하고 있었다 보니 바로 반응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 연말즈음이 되면 그런 여유도 없을 거니까, 미루면 안 좋겠다 싶어서. 시간을 그리 오래 뺏거나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떨까?』
“으……으응, 물론, 기꺼이.”
전화 너머로 요시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일.
거울 앞에서 마지막 체크를 마친 요시노는, 홀로 주먹을 쥐고 기합을 넣는다.
머리모양은 익숙한 땋은 머리에, 옷은 특이한 걸 피해서 니트에 카디건, A라인 스커트를 맞춰 입었다. 추가로 속옷은 새로 산 귀여운 걸로. 그래봐야 딱히 뭔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기분 문제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거실에서 느긋이 계시는 부모님을 보고 인사를 하자,
“음, 어디에 가는 거니?”
“에, 으음, 유미 양네 집.”
“그렇구나. 너무 늦지 말거라.”
“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지만, 조금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껜 아직 유키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눈치챈 기색도 없었다.
현관에서 단화를 신는 중, 어머니가 찾아왔다.
“아버지께는 언제 말할 생각이니?”
“으……조, 좀 더 나중에.”
“나쁜 걸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제대로 하렴.”
“알고 있는 걸.”
알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부끄러운 거다. 그런 요시노의 마음을 꿰뚫어 본 건지 어머니도 그 이상 무슨 말을 하진 않고, 쓴웃음 짓는 듯한 느낌으로 딸을 바라보고 있다.
등에 눈길이 느껴져 근지러웠지만, 여기서 뒤돌아봐서 표정을 보이는 것도 싫었던 요시노는 일어나서 바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응, 다녀오렴. 아, 맞아 요시노.”
“왜?”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조금쯤은 늦어도 괜찮으니까?”
“엣……그, 그런 건!”
얼굴을 붉히며 무심코 뒤돌아봐버린 요시노.
“그게, 저녁 식사를 권하실지도 모르잖니?”
“아…….”
자신의 지레짐작에 더더욱 부끄러워진 요시노. 게다가 그런 식으로 허둥지둥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어머니가 봐 버렸다.
“다녀오렴. 제대로 선물은 가지고 가고.”
“――알고 있어.”
역시 어머니껜 당할 수 없다.
요시노는 입을 빼죽이면서도 쓸데없는 말을 했다간 다시금 어머니께 놀림받으리란 생각에 어떻게든 참은 뒤 더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집을 나섰다.
그런 딸의 뒷모습을 어머니는 싱글벙글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유키네 집을 향하는 중에, 쇼핑센터에 있는 유명한 가게서 과자를 사서, 줄 선물도 준비 만전. 이 뒤는 목적지를 향할 뿐이다.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 메일이 도착했다.
『역까지 맞으러 갈게요.』
사귀고 있는 상대가 맞으러 와 준다. 그렇게 생각하자 기쁜 마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요시노도 재빨리 메일에 답장한다. 지금 전철을 타서 가는 중이고, 다음 역은 어디라는 내용이다.
“에헤헤……아.”
저도 모르게 액정화면을 보고 히죽히죽거리다, 허둥지둥 표정을 고친다. 솔직히 애인이 생겼다고 자기가 이렇게 녹아버릴 줄은 몰랐다. 레이가 즐겨 읽는 순정만화의 연애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게 있을 줄은 몰랐다. 그야 물론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면 기쁘기도 하고 즐거워지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만화같은 행동을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연애물보다도 역사물, 겉보기론 오해받기 쉽지만 그야말로 시마즈 요시노라는 사람의 본질이었으니까.
하지만.
『곧 도착하겠네. 오늘도 요시노 양과 만날 수 있는 거, 굉장히 기대하고 있으니까!』
도착한 메일을 읽곤,
“으………….”
뺨이 완전 풀어져서, 손으로 입가를 누른다.
사귄다고 해도 닭살 커플은 안 될거라고 마음 속으로 맹세했었을 텐데.
“……나도, 굉장히 기뻐……라고.”
그런 답장을 보내면서, 역시나 히죽거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
요시노를 맞으러 빨리 역에 도착해 기다리는 사이 휴대폰에 도착한 메일을 읽곤 얼굴이 풀어졌지만, 그러면서도 긴장감을 느낀다.
요미의 친구기도 하다보니 가족들은 이미 요시노를 알고 있지만, 유키의 여친으로서 찾아오는 건 처음이니까. 이럴 때 어떤 식으로 소개하면 괜찮을지 모르겠어서 아직 곤혹스럽다.
다시금 여친이라고 소개해야 할지, 아니면 이미 이야기해 뒀으니 딱히 쓸데없이 다시 이야기 할 필요는 없는 건지. 하지만 요시노의 입장을 생각하면 제대로 자기가 ‘여친’이라고 전해야 하는 거겠지. 굉장히 부끄럽긴 하지만.
단지 부모님도 자식이 처음으로 여친을 데려오는 거다 보니 적잖이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오전중에는 요시노를 마중하기 위해 케이크를 사러 갔었고, 모처럼이니 저녁까지 생각해서 뭔가를 사온 모양이다. 수험생이니 그렇게 늦게까지 잡아두면 안된다고 유키가 말해도, 힘들게 와 주는데 그럴 순 없다는 식이다. 의외로 완고하다.
유키도 물론 전날 자기 방 청소와 정리를 했다. 보였을 때 곤란한 건 없다, 고 단언하긴 힘드니, 뭐어 이것저것 숨기거나도 했다. 방에 들어올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들어오게 되겠지.
평소 데이트 때랑 다른 두근거림으로 기다리고 있자, 역의 개찰구 너머에서 요시노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건 그 귀여움 때문이라고 멋대로 혼자 염장스런 생각을 해댔지만, 역시 유키를 알아본 요시노가 기쁜 듯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곤 콩깍지 탓은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확신한다.
“일부러 마중 와 줘서 고마워.”
개찰구를 지나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요시노가 미소짓는다.
“아니, 저야말로 오늘 일부러 와 줘서 고마워요.”
“싫다 차암, 이상하게 공손해하지 마. 긴장되잖아.”
“괜찮아, 나도 긴장하고 있으니까.”
“뭐야 그거, 전혀 괜찮은 게 아니잖아.”
요시노는 우스운 듯 말했지만, 유키의 말은 사실이기도 하다. 가족도 이미 알고 있는 상대라곤 해도, 정식으로 ‘여친’으로서 소개하는 거니까.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사이에도 둘이서 긴장감을 나누는 느낌이었지만, 결코 나쁜 느낌은 아니다.
버스 정류장 몇 개를 지나, 조금씩 집에 다가갈수록 옆에 앉아있는 요시노의 말이 점점 적어져 간다. 역시 긴장감이 높아져가는 거겠지. 여기선 남친으로서 진정시키기 위해 손이라도 잡아야 하는 걸까. 아니, 단순히 자신이 요시노와 손을 잡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거다.
자연스레 팔을 움직여, 요시노의 손을 잡으려 한다.
“――유키 군.”
하지만 닿기 직전에 갑자기 요시노가 입을 열어서, 서둘러 손을 원위치로 돌린다.
“왜, 왜, 요시노 양?”
요시노가 고개를 유키에게 향하고 큰 눈으로 지긋이 바라봐서, 저도 모르게 허둥지둥거린다. 혹시나 속마음을 들켜 버린 걸까.
“어쩌지……긴장 탓인지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 빌리는 건 너무 부끄럽잖아! 어디 없어?”
진지한 눈빛으로 요시노는 그렇게 물어봤다.
“――잘 와 줬어, 요시노 쨩.”
“안녕하세요, 오늘은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관 앞에 맞으러 나온 어머니를 향해, 요시노는 정중한 인사를 했다.
집에 제일 가까운 버스 정류장 두 정거장 앞에서 내려, 근처 슈퍼에 들어가서 볼일을 마친 요시노는 여유를 되찾은 건지 자연스러운 표정을 되찾았다.
요시노가 가져온 선물을 보곤 어머니도 기뻐하며 거실로 향한다. 요시노가 슬쩍 눈길을 향해 와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유키는 안내하듯 복도를 걷는다.
“자, 들어와.”
라고 말하며 거실에 들어가자, 정면에 보이는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던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어서오렴. 자,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있어 줘.”
“아, 예.”
아버지는 신문을 테이블에 놓고 온화한 미소를 띄웠지만,
“아버진 이런 소리를 하고 계시지만 계속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어. 신문같은 건 읽지도 못했고.”
라고 말하며, 부엌 쪽에서 빼꼼 모습을 드러낸 유미가 진실을 밝혀 버린다.
“어, 어이, 유미 쨩.”
“인사 연습같은 것도 했었다고? 목소리가 뒤집히지 않도록 이라면서.”
딸에게 진상을 폭로당해 아버지는 얼굴이 빨개진 걸 숨기지 못했지만, 그걸 보곤 아무래도 유미가 말하고 있는 게 사실인 것 같다는 걸 이해한 요시노도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그런 부모님이시니까 요시노 양도 마음 편하게 있어. 평안하세요, 요시노 양.”
“고마워. 평안하세요, 유미 양.”
친구인 둘은 새삼스레 서로에게 인사를 한다.
“자아 자아 요시노 양, 앉아, 앉아. 자, 유키, 뭘 멍하니 있는 거야. 제대로 에스코트 해야지.”
“시끄러워, 유미가 갑자기 이야기에 끼어든 거잖아.”
“뭐야, 자기 눈치가 부족한걸 남 탓하곤. 요시노 양, 이런 동생인데 정말 괜찮아?”
“좀 조용해 유미.”
“아하핫.”
남매의 대화를 보고, 요시노도 마침내 소리를 내며 웃었다. 딱히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요시노가 웃어 준다면 유미와의 싸움쯤은 언제든 보여주고 싶다고 느꼈다. 뭐, 평소대로기도 하고.
어쨌든간에 긴장이 풀린 요시노와 부모님은 드디어 침착하게 앉아서 서로에게 인사를 마친 뒤 차를 마시며 가볍게 담소했다. 남과 친해지기 쉬운 후쿠자와 집안의 특성은 부모님도 마찬가지였고, 애초에 친구인 유미가 있으니 거북한 분위기가 될 리도 없다.
다과도 먹어 한 숨 돌린 참에, 소개도 다 했으니 슬슬 요시노와 단 둘이 있고 싶다고 느꼈다.
“저기 저기, 요시노 양.”
“왜, 유미 양?”
“유키랑은 평소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니?”
“에, 어떻냐고 해도, 그냥 보통이야.”
“보통이라는 게 신경쓰이는 건데.”
“어이, 유미, 그만두라니까.”
“괜찮잖아, 가르쳐 줘도. 뭐야, 아니면 못 말하는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이제 됐잖아. 요시노 양, 여기 있으면 유미가 무슨 소리 할 지 모르니까 위로 올라가자.”
“어머, 그런 소리 하면서 그냥 둘이서 있고 싶은 거 아니니?”
아픈데를 찔렸지만, 여기서 입을 열었다간 다시 틈이 보일 것 같아서 말 없이 일어난다. 옆에서 앉아 있던 요시노도 일어나서, 부모님께 가볍게 인사한 뒤 따라온다.
“……역시, 왠지 부끄럽네.”
부모님이나 누나 앞이었지만, 요시노랑 같이 있을 때 자신이 어떤지를 묻거나 요시노가 대답하거나 하는 걸 보면 굉장히 부끄러웠다. 스스로도 생각하지만, 가족 앞에서 보이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니까.
“미안해, 부모님이나 유미가 왠지 들뜬 모양이라.”
“으으응, 즐거워.”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요시노를 보고 집에 오기 전까지의 긴장은 완전히 풀린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우와……왠지 두근두근거리기 시작했어.”
유키의 방 앞에서 멈춰선 뒤, 가슴을 손으로 누르고 있다. 예전에 한 번 유키 방에 들어온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남친, 여친 관계가 아닌 단순한 친구였다.
“들어와. 딱히 특별한 건 없으니까.”
“그럼, 실례할게.”
조심조심 방 안에 발을 디딘 요시노.
“유키군의 방……여전하네.”
역시 신기한 듯 찬찬히 둘러보거나 하진 않지만, 그래도 신경쓰이는 것처럼 사방에 눈길을 향하는게 느껴져서 좀 근질거린다.
“뭐어, 그럴지도. 딱히 어디 손을 대거나 하지도 않았고.”
“전에 온지 꽤 지났지? 그래도, 왠지 오늘 쪽이 더 두근두근 거릴지도.”
“그, 그렇구나……아, 앉아.”
쿠션을 건네자 그 위에 앉는 요시노.
유키도 조금 떨어진 곳에 앉는다.
이렇게 자기 방에 처음으로 ‘여친’을 불러들이자, 왠지 전혀 다른 방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게 신기하다. 예전에 요시노가 찾아왔을 때랑은 또 다른 기분이 든다. 같은 상대인데도 같은 게 아닌 거다.
“맞아. 저기, 유키 군. 이럴 때는 역시, 야한 책을 숨겨두지 않았나 체크하는 게 좋으려나?”
“으엣?!”왜, 왜 그런 소릴?”
“왠지, 전형적이라는 느낌 아냐?”
“그런 전형, 안 지켜도 괜찮으니까.”
“에―, 재미 없어…………아, 괜찮아. 별로 봐도 화내거나 하진 않을 거니까.”
“그렇게 말해도……아니, 숨기지 않았으니까!”
“아, 바로 부정 안 했어. 수상한데, 이건.”
“봐주세요 제발.”
농담스레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론 조금 불안한 느낌도 든다. 멋대로 뒤지거나 하진 않겠지만, 요시노는 호기심이 강하니까 혹시나 싶은 생각도 들어서.
“그래도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어. 예전에 이 방에 왔을 때는 설마 이런 형태로 다시 오게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
“나도.”
눈이 마주쳐,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진다.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굉장히 옛날처럼 느껴진다. 그 뒤로 많은 일이 있어서 둘은 지금 이렇게 다시 같은 방에 있는 거지만, 둘의 관계는 보다 가까워져 있다.
“그러고 보면 그 때 요시노 양, 갑자기 화내면서 돌아갔었지? 왜였는지 지금은 가르쳐 줄 수 있어?”
“에, 그랬었나?”
“그랬어. 왠지 이야기하는 중에 갑자기 기분이 상해서, 내가 화나게 할만한 이야기를 해버렸나 싶었는데 뭔지 모르겠어서. 신경도 쓰이고 사과하고도 싶은데, 가르쳐 주면 좋겠어.”
“에―? 그래도 벌써 1년 전 이야기고, 그런 이야길 해도……………………아.”
떠올리려고 가볍게 딴쪽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이마를 찡그리던 요시노가, 뭔가를 떠올린 듯이 자그만 소리를 냈다.
“생각났어? 괜찮으면 가르쳐……”
유키는 물으려 했지만,
화악―, 하고 요시노의 하얀 뺨이 분홍빛으로 물들어간다.
화사한 양손으로 붉게 물든 뺨을 누르며, 요시노는 고개를 자그맣게 흔든다.
“에……이, 잊어버렸어.”
“――아니아니, 그 반응은 확실히 생각 난 거잖아?”
“생각나거나 하지 않았는걸. 잊어버렸어.”
“너무해. 심술 부리지 말고 가르쳐 줘도,”
“심술이 아니라, 잊어버린 건 잊어버린 거야! 뭐야, 내 이야기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유키 군 바보바보!”
“우왓, 미안, 미, 믿어. 잊어버렸으면 어쩔 수 없지.”
퐁퐁 팔을 두드리는 요시노의 반응은 아무리 봐도 얼버무리려는 걸로 밖에 안 보였지만, 서툴리 이 이상 찔러 들어가진 않는 게 좋으리란 느낌이 들었다. 요시노의 짜증이 터지는 걸 보는 건 오랜만이니, 별로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거겠지. 원인을 모르는 건 유감이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건드리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에잇―, 그 기억, 잊어버리게 할 테니까!”
“아니, 벌써 잊었으니까, 정말, 날뛰지 말아줘.”
“시끄러워! 유키 군 바보――――.”
덮쳐든 요시노에게 어깨를 확 떠밀려, 편히 앉아있던 유키는 간단히 뒤로 넘어져 버렸다. 지지대를 잃은 요시노도 거기 휘말리듯 유키 쪽으로 쓰러져서,
“아………….”
由乃の大きな瞳が、すぐ目の前から祐麒のことを覗き込んできていた。その顔が先ほどよりも赤くなっていくが、恐らく負けず劣らず祐麒も赤面していることだろう。 요시노의 큰 눈이 바로 눈앞에서 유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이 아까보다도 붉어져 가지만, 틀림없이 지지 않을 정도로 유키의 얼굴도 빨갛겠지.
설마 이런 자세가 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자신이 이성을 지키지 못하고 덮쳐 버릴 위험은 상상한 적 있었지만, 사고라곤 해도 반대 자세가 되다니.
“저, 저기, 미안 유키 군.”
“아니, 나, 나는 괜찮으니까…….”
“――――와, 깜짝이야. 예상대로라곤 해도, 요시노 양 쪽이 공세고 유키가 받아들이다니.”
““…………에?””
둘이 동시에 고개를 옆으로 향해보자, 유미가 입구쪽에서 방 안을 훔쳐보고 있었다.
“아하하, 유키가 억지로 야한 짓을 하지 않을까 지키러 온 건데, 요시노 양 쪽이었다니. 응, 아, 부디 계속해줘,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그런 소리를 하는 유미에게,
“아…………아아아아아아니니까―――――――――!!!!”
요시노가 비명을 지르고,
떠밀린 유키는 뒷머리를 쎄게 바닥에 부딪쳐서 작은 혹이 생겼다.
☆
후쿠자와 가(家)의 방문은 즐거웠다.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도 상냥하고 따뜻하게 요시노를 맞아 주었다.
이래저래 즐거웠지만, 예상 밖의 일도 있었다.
유키를 떠밀어 버린 건 사고였지만, 설마 유미에게 목격당하다니. 시마코나 츠타코나 마미 등에게 말실수를 하지 않도록 열심히 입막음을 해 둬야 할 것 같다. 친구의 남동생이 애인인 건 이런 부분에서 좀 어렵다.
그리고 또 하나, 설마 유키가 작년 일을 이야기로 꺼내다니. 아니, 요시노도 유키의 방에 들어간 건 기억하고 있지만,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잊고 있었다. 오늘 유키가 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그 때는 그――모처럼 요시노가 찾아왔는데도 유키가 레이 이야기만 화제로 삼으니까, 열받아서 뛰쳐나가 버렸던 거다.
하지만, 그렇다는 건.
“혹시나 그때부터 나, 유키 군을…………아으아~~~~!”
부끄러워서 베개에 얼굴을 묻고 발을 버둥거린다.
“절대…………절대로, 유키 군이 생각해내진 못하게 할 테니까!”
홀로 얼굴을 붉히며, 요시노는 자신에게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