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화 내가 정의다
어둠의 서가 내뿜은 빛이 반짝거리며 방 안을 비춘다.
그건 환상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책 표면에서 혈관 같은 게 떠올라, 책 안쪽에서 밖을 물어 뜯으려는 것 같은 맥동을 시작한다.
잠시 사이를 둔 뒤, 어둠의 서를 묶는 사슬이 튀어 날아가, 펼쳐진 책의 페이지가 자동적으로 넘어간 뒤, 그게 또 갑자기 닫힌다.
그 괴상한 광경에 하야테는 놀라면서 공포감을 느끼고, 그 손이 자연스럽게 옆에 앉아있는 유토에게 뻗어간다.
자신의 손에 하야테가 손을 겹친 걸 느끼면서도, 유토는 어둠의 서에서 눈을 떼놓지 않는다.
사전에 알고는 있었다고 해도, 실제로 이렇게 직접 눈으로 하면 좋든 싫든 세게 긴장하게 된다.
일이 지식대로 진행되는 데 대해서는 감개와, 정말로 여기서부터 뒤가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전개될지에 대한 의혹.
온갖 감정이 뒤섞인 마음을 안으며, 어둠의 서를 지긋이 바라본다.
『Anfang』(기동)
어둠의 서가 그 무기질적인 말과 함께 한층 강한 빛을 내뿜고, 거기에 공명하듯이 하야테의 가슴에서도 링커코어가 떠오른다.
“후엣?!”
“괜찮아.”
급작스런 사태에 겁먹은 하야테를 안심시키듯, 하야테의 손을 쥐는 유토.
거기에 하야테가 안도하기도 잠시, 다음 순간에는 기하학적인 모양의 빛――베르카식 마법진――이 떠올라 하얀 빛이 방 안을 채운다.
빛이 잦아든 뒤, 조심조심 눈을 뜬 하야테는 약간 숨을 삼켰다.
보라색 빛을 내뿜는 마법진 앞에 네 사람의 모습이 있었다.
머리가 긴 여성과 짧은 여성, 자그만 소녀. 그리고 단련된 육체에 짐승의 귀와 꼬리를 가진 남성.
네사람 다 검고 소매 없는 조잡한 옷을 몸에 두르고, 자신의 주인인 소녀에게 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야테는 일련의 광경에 눈을 빼앗겼고, 슬쩍 그녀의 손을 떼놓은 유토는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새로운 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말――――지금까지 수도 없이 반복한 선서를 행하려 그들의 장이 입을 열려고 한 그 순간.
폭죽을 쏘는 소리와, 거기서 뿜어져 나온 종이가 네 사람에게 쏟아졌다.
그것도 한 발이 아니라, 두 발, 세 발 하고 이어져, 마지막으로 총 6발이나 되는 폭죽 소리가 주위를 울렸다.
그걸 저지른 건 당연히 유토와 거기에 낚이듯 푹족을 손에 든 하야테다.
탁자 위에는 다 쓴 폭죽 잔해가 구르고 있다.
“지, 진짜 사람 나왔다…….”
어느샌가 탁자에 늘어놓았던 폭죽을 전부 쏘아낸 뒤, 새삼스레 멍하니 중얼거리는 하야테.
“그러니까 말했잖아. 앞으로는 좀 더 나를 존경하라고.”
“뭔 소린지 몰겠는디.”
“정말로.”
“아니, 니가 말 안했나.”
“그랬나?”
“얼빠진 짓도 적당히 해두라.”
“아쉽게도, 내 전문은 태클이어서.”
“문 입으로 쳐말하노. 몬해도 지금 흐름은 넘치도록 얼간얼간하잖나.”
“모르겠는데.”
갑자기 만담을 시작한 둘에게 무시당한 꼴이 된 어둠의 서에서 나타난 네 사람――어둠의 서의 수호기사, 즉 볼켄리터들.
그들은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내왔었지만, 폭죽으로 환영받고, 자신들을 냅두고 만담을 시작하는 주인은 본 적이 없었다.
“그보다, 아까부터 다들, 기막힌 것 처럼 이쪽을 보고 있는데.”
“아.”
기막힌 듯이 자신들을 보는 볼켄리터들을 유토가 가리키자, 잊었다는 듯한 소리를 내는 하야테.
예상 밖, 이라고 할까 이 엉뚱한 사태에 하야테 자신도 굉장히 평정을 잃고 있었다.
“에, 에에, 그카게! 에에, 이럴 때 뭐부터 시작하면 괘안노.”
“일단 침착해. 내가 사람수에 맞게 다과 준비해 올테니까, 자기 소개 즈음부터 시작해 둬.”
“아, 응. 그체. 에……에, 그럼 다들, 대강 으자에 앉꼬 즐기 주이소.”
하야테가 어느 정도 침착해 진걸 본 뒤 유토는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고, 어둠의 서에서 나타난 네 사람――어둠의 서의 수호기사들은, 하야테가 재촉하는 대로, 여우에라도 홀린 듯한 표정으로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그보다, 아까부터 당연한 듯이 있는데, 네놈은 누구냐?”
주인 하야테에게 대강의 설명을 마친 뒤, 당연한 듯이 동석해서 차를 홀짝이는 유토를 노려보는 자그만 소녀――철퇴의 기사 비타.
어둠의 서와 그 주를 지키는 수호기사인 볼켄리터들 입장에선, 외부인이자 신병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주인 하야테의 말에 따라 조금씩 자신들에 대해 밝히는 꼴이 되어 버렸지만, 계속 간과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단순히 지나가는 초등학생입니다.”
“이 세계의 지나가는 사람은 당연한 것 처럼 남의 집에서 차를 홀짝이는 거야?”
“말 그대로야. 기억해 둬.”
긴 머리를 포니 테일로 묶은 여성――시그넘의 찌르는 듯한 눈길에 유토는 표면상으론 무표정하게 대답했지만, 내심으론 굉장히 쫄고 있었다.
허세를 부리는 능력은 훌륭한 유토였다.
유토의 취급을 어떡해야 할지 고민하던 볼켄리터들은 얼굴을 맞대고, 그 눈길이 말씀을 여쭙겠다는 듯이 하야테에게 모인다.
“절마가 카는 야긴 반쯤 무시해도 돼. 여러모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지만 해는 없응께.”
“와이~. 자연스레 굉장히 지독한 소리 하네~.”
“아하하, 농담 농담. 이래 봬도 내 친구야. 이름은 도미네 유토. 일단, 모두맨치 마도사?”
“거기서 의문계냐, 젠장할.”
하야테가 입에 담은 마도사라는 말에, 볼켄리터들의 눈길이 순식간에 유토에게 집중된다.
적의가 드러나 있진 않지만, 유토에게 경계심을 향하고 있는 건 명확했다.
그 태도에 유토는 표면상으론 계속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덜덜 계속 떨면서 전전긍근하고 있다.
자신들은 마도사가 아니라 기사입니다, 라는 정정의 말을 삼킨 시그넘이 조용하게 하야테에게 물음을 꺼냈다.
“주 하야테. 아까 이 세계에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아~, 그건 그런디. 이 유토 군이랑 그 친구인 나노하라는 애는 우예 이래저래 있어가꼬 마법 쓸 수 있게 됐응께.”
“뭐~, 그런 거야. 그래서, 이 녀석이 내 파트너, 다크 브레이커.”
『Hello.』
허리 벨트에서 다크 브레이커를 벗겨 기사들에게 보여주는 유토.
“뭐, 관리국에 고자질 같은 건 안 할 테니까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
그 말에 기사들의 경계심이 더더욱 강해져가는 중, 하야테는 이상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거기서 관리국이 텨나오노?”
예전에 유토에게 들은 이야기로 관리국이 경찰 같은 거라는 건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어째서 지금 여기서 화제에 오르는 건지.
“뭐, 것도 그럴게 수집이란 건 많은 사람이나 생물을 습격해서 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무차별 범죄 같은 거잖아. 평범하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전과로 지명수배 당하고 있을 거고.”
“오오.”
“……무차별, 범죄”
납득한 듯이 손뼉을 치는 하야테와는 대조적으로 굳은 얼굴로 중얼거리는 금발 쇼트 보브컷 여성――샤멀.
기사라 하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볼켄리터들에게 있어선 상당히 본의가 아닌 호칭이었던 모양이라, 샤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어딘가 굳어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하고 있는 것 자체는 확실히 무차별 범죄랑 큰 차이 없는 이상, 마주보고 반론도 하지 못해, 떨리는 손을 꾹 잡으며 말을 꿀꺽 삼킨다.
그런 볼켄리터들에게 추격타를 가하듯이 추가로 폭탄발언이 투하된다.
“그래도 그리되믄 곤란한디―. 이 상황에선, 역시 자수같은 거 시켜야카나?”
“자, 자수?!”
하야테의 별 생각 없는 한 마디로 당황한 건 볼켄리터들이다.
아까 전 어둠의 서에 대해 설명했을 때, 주인인 하야테에게서 수집행위를 하지 않도록 부탁‘받았다.
자신은 어둠의 서가 완성되어 얻을 수 있는 힘따윈 바라지 않는다. 거기다가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따윈 절대로 해선 안된다고.
과거에 그런 소리를 하는 주는 존재하지 않았고, 자신의 소유물인 자신들에게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했던 거다. 기사들이 하야테의 말에 놀람을 넘어서 어안이 벙벙했던게 불과 몇 분 전.
거기다, 이번에는 수집 금지는 커녕 과거에 적대했던 적도 있었던 관리국에 대한 자수발언이다.
볼켄리터들이 받은 충격은 얼마나 컸을지.
예상도 하지 못했던 발언의 연속에 이미 사고회로는 정지 직전이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볼켄리터들의 경직은 유토의 숨죽인 웃음으로 금방 풀리게 되었다.
“괜찮잖아. 과거는 신경 쓰지 마. 중요한 건 지금과 앞으로, 잖아?”
시그넘 일행이 기막혀하는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던 유토가 웃으며 그런 소리를 꺼냈다.
“글케도.”
하야테는 올곧고 책임감이 강하며, 완고하다.
관리국에 대해 몰랐다면. 유토의 말이 없었다면. 이런 걸 고민하는 일도 없었겠지만, 유토가 말하는 대로 과거에 볼켄리터들이 죄를 범해 그 죄를 심판하는 조직이 있다고 하면, 자수해서 죄를 갚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 버린다.
하지만 막 만났다고는 해도 자신은 주인으로서 볼켄리터들을 돌봐 주겠다고 막 정한 참이다. 그 자신이 기사들을 그대로 관리국에 넘겨 버리는 행위는 옳은 걸까.
어떡하는 게 제일 올바른 선택일까. 그 간단히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에 하야테는 음~음~ 신음하고, 기사들은 어찌할바를 모르고 자신들의 주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를 고민하게 하는 원인이 자신들의 과거에 있는 이상, 서툴리 말을 꺼내는 것도 주저스럽다.
그들은 어둠의 서의 주의 명에 따르는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주에게 자수하라는 명령을 받으면 거기에 저항할 방법은 없다.
시그넘은, 아무래도 이 새로운 어둠의 서의 주인은 자신들을 혼란시킨다고 마음 속으로 남몰래 탄식했다.
너무 착실한 하야테와 거기에 휘둘리는 수호기사들의 반응에, 자연스럽게 입가가 올라가는 유토.
조금 더 이 광경을 지켜보고 싶지만, 시간적으로 그것도 힘들다.
일단 이 자리를 수습하기 위헤 입을 연다.
“네 사람은 주인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잖아. 주인의 명령에 거스르지 못했으니까 정상참작의 여지 있고. 그러니까 지금은 집행유예기간. OK?”
“으―응?”
하야테는 유토가 말하는 대로라고 생각하는 반면, 그건 단순히 자신에게 사정 좋게 해석하고 있는 것 뿐은 아닌가 고민해 버린다.
유토는 그런 하야테의 결단을 재촉하려는듯 물어본다.
“대답은 ‘예’나 ‘예스’로 골라 주세요.”
“선택지 없잖아.”
“덧붙여서 답은 듣지 않겠어.”
“완전 모순 아이가.”
“핫핫핫핫.”
“웃어서 얼버무리지마.”
“이게……부부만담……?”
“그건 아닌……게 아니려나?”
샤말과 짐승귀 남성――자피라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시그넘과 비타는 미묘한 표정으로 주와 그 친구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됐으니 앞으로 억지로 수집하지 않는 한, 볼켄리터들은 무죄.”
“……와그리 자신만만하게 단언할 수 있노?”
흐흥, 하고 자신이 들어찬 미소를 띄우며 단언하는 유토를 지긋이 바라보는 하야테.
그런 하야테의 눈길에 유토는 주저없이, 망설임 없이, 시원스레 답한다.
“내가 정의다.”
그 발언에 하야테만이 아니라 기사들까지도 “우와아”하는 기막힌 감정을 담은 눈길로 유토를 본다.
거기에 약간 거북함을 느꼈는지, 유토는 뺨을 긁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뭐어, 네 사람은 주의 명령에 거스르지 못하게 되어 있으니까 그 정도는 어쩔 수 없고.”
네 볼켄리터들은 마법기술로 만들어진 의사생명――마법생명체다.
그렇기에 짜인 프로그램에 거스를 수 없게 되어있다.
설령, 아무리 역대의 주인들에게 경멸당하고 도구 취급을 당한다고 해도, 그 명에는 거스르지 못해, 단지 어둠의 서를 완성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한동안 침묵하고 있던 하야테는, 다시금 샤말, 시그넘, 자피라, 비타라고, 자신의 수호기사라고 자칭했던 인물들에게 눈길을 옮겨간다.
아까까지 넷의 이야기로 그녀들이 마법생명체이자 주의 명에 따르는 존재라는 건 들었었다.
주의 명에 거스르지 못한다는 것까지 확실히 듣진 못했지만, 유토가 말하는 말에 아무런 반론도 꺼내지 못한다는 건 아마 사실이라는 것도 이해했다.
“뭐, 아무래도 신경쓰인다면, 얼마 뒤에 내가 크로노――관리국의 집무관한테 이야기할게. 녀석은 말이 통하는 좋은 녀석이니까, 기사들에게도 나쁘겐 하지 않을 거야. 단지, 한동안 네 사람에 대해 알아둬.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고, 이야기하고, 그 뒤에 결정하면 좋잖아. 아니, 그렇게 해.”
“왜 마지막에는 명령하는 거야, 너.”
유토의 꼬드기는 듯한 말과, 거기에 달라드는 비타를 보고 쿡쿡 미소를 흘리는 하야테.
하는 말은 꽤 엉망진창으로 들리지만, 일리는 있다.
그가 말하는 대로 주인 자신은 기사들에 대해 잘 알아야만 한다.
속죄를 하는 건 그 뒤에도 늦지 않을 거다.
이윽고 하야테는 단념한 듯이 살짝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근가. 그럼 우얄수 없나. 자수는 일단 보류야.”
그런 말과는 반대로 하야테의 표정은 기쁜듯 펴 있었다.
그걸 확인한 유토도 만족스럽게 끄덕인다.
“응, 어쩔 수 없어.”
일단 자신들이 관리국에 자수한다는 사태는 피했기에 볼켄리터들도 마음속으로 몰래 안도하고 있었지만, 내심으론 유토를 향한 의심과 경계가 커져가고 있었다.
――이 소년은 대체 뭐야?
자신들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정확하다. 자신들을 향한 관리국의 자세, 그리고 자신들이 주에게 거스르지 못한다는 걸 확신하고 있는 태도 등, 이전에 자신들이 한 이야기만으론 설명할 수 없다.
어둠의 서의 각성 장소에 입회했다는 것도 포함해서, 기사들이 유토를 경계하는 데는 넘칠 정도의 이유가 있었다.
미리 어둠의 서를 포함한 자신들에 대해 조사해, 뭔가의 목적으로 이 자리에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단지, 그 목적까지는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주와의 대화를 보기에 악의같은 건 느껴지지 않고, 주 자신 또한 마음을 터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기사들은 서로의 눈길을 맞추면서도 결론을 낼 수 없었다.
“그럼, 나는 슬슬 실례할게.”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는 유토.
“어라? 자고 안갈끼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선더미같은데, 멋대로 빠져나온 거 걸리면 내가 핀치. 주로 앞으로의 자유라거나 설교같은 의미로.”
“아, 근가. 그럼 우얄섮나~.”
하야테 입장에선 말리고 싶은 기분도 있었지만, 유토의 사정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학교가 끝나면 또 올게. 제대로 오늘 저녁 이후엔 예정 비워둬?”
“에?”
유토가 하는 말의 의미를 한 순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뜨고 유토를 보는 하야테.
재밌는 반응을 보여주는 하야테에게 유토는 기막힌 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 네 생일 파티 한다고 했었잖아. 까먹었다고 말하면 울거다.”
그 말까지 듣고 간신히 하야테는 유토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함과 동시에, 자신의 생일을 잊지 않았다는데 대한 기쁨이 치솟아 오른다.
단지, 그걸 태도로 내는 게 왠지 분했기에, 웃는 얼굴로 본심과는 다른 소리를 꺼내고 있었다.
“잊었으니까 울어.”
“네 피는 무슨 색이냐.”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유토와 즐거운 듯이 웃는 하야테. 볼켄리터들은 그런 두 사람을 뭐라고 할 수 없는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런데, 이런 늦은 밤에 유토 군 혼자 돌려보내는 것도 걱정인디.”
유토를 현관까지 배웅하러 온 하야테가 나지막이 말한다.
“깔보지마. 집에 돌아가는 것 정도는 혼자서 충분하니까.”
“오늘까지 행방불명 됐던 꼬맹이가 말해도 아무런 설득력 없는 건 대해서 한 마디.”
“………….”
유토는 윽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렇게 됐으니 미안하지만, 한 명한테 유토 군을 집까지 바래다 주는 걸 부탁해도 괜찮을까?”
하야테의 말에 볼켄리터들은 얼굴을 맞대고, 시그넘이 한 발 걸음을 앞으로 옮긴다.
그들 입장에선 바라지도 않게 유토의 진의를 살필 기회가 나온 거다.
“그럼 그 역할, 제가 맡도록 하지요.”
“응, 갑자기 이런 거 부탁해서 미안, 시그넘. 유토 군을 잘 부탁해.”
“예, 맡겨 주십시오.”
하야테가 시그넘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잘도 그렇게 태연하게 반말로 이야기 할 수 있다고 감탄해 버리는 유토.
야가미 하야테라는 소녀는 결코 예의를 모르는 것도 세간 물정에 어두운 것도 아니다.
보통, 갑자기 책에서 처음 보는데다 정체도 모르는 사람이 나왔다고 하면, 이리 짧은 시간으로 이렇게나 태연히 접할 수 있을까 싶다.
어둠의 서를 통해서 기사들과 어떠한 정신적인 링크가 있는 건지, 어린이기에 가진 순수함인지, 혹은 하야테의 적응력이 특출나게 높은 건지, 단순히 대범한 것뿐인 건지 판단이 안 됐지만, 유토는 어쨌든지 하야테라는 소녀의 품이 넓은 걸 재인식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눈길을 기사들에게 옮긴다.
하야테와의 대화중에도 거의 끼어드는 일 없이, 계속 자신을 경계하는 듯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의 언동을 생각하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보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타인을 거절하는 듯한 분위기가 감도는 듯이 느껴진다.
이게 하야테와 얽히는 동안 태도가 부드러워지고, 샤말은 깜빡쟁이, 비타는 새침데기, 자피라가 강아지 모드로 각각 변화해 가는 모습을 생각하자 유토의 뺨이 자연스레 풀어졌다.
“네놈, 뭐 보는 건데.”
그 미소를 깨달은 비타가, 구경거리가 아니라는 듯이 유토를 노려보지만, 그것도 한 순간.
“비타! 그런 소릴 하면 안 돼!”
“아으.”
바로 하야테가 비타의 뺨을 가볍게 튕기고, 그게 또 유토에게 자그만 미소를 불러일으킨다.
“그럼, 내일 또 봐……아, 이제 오늘인가. 저녁에 또 봐.”
“응, 다음에 봐―.”
“아―, 감기 걸리지 말고―.”
“그쪽이야 말로 또 미아 되지 마―.”
“……알았어.”
즐거운 듯이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하야테와 고개를 털썩 숙이고 배웅받는 유토.
한동안 같은 이야기로 놀림받을 걸 한탄하는 소년과, 좋은 얘깃거리가 생겨 미소를 짓는 주가 된 젊은 소녀.
그런 둘을 바라보는 기사들의 눈은 역시, 뭐라 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이었다.
시그넘과 유토.
양쪽 다 말 없이 담담히 길을 걷기를 몇 분.
“도미네.”
“저기.”
입을 연 건 완전 동시였다.
올려다보는 유토와 내려다보는 시그넘의 눈길이 교차한다.
“먼저 괜찮아?”
“아아.”
시그넘의 허가를 얻었지만, 뭐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되는 듯 머리를 긁는 유토.
서두르지 않고 말없이 옆을 걷는 시그넘에게 어딘가 기시감을 느끼고, 그게 언제였는지를 떠올리다 집까지 배웅받았을 때라는 걸 떠올린다.
그때도 나노하를 배웅한 뒤, 그녀의 언니에게 배웅받았었다.
정말 몇달 전까지는 평범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을 텐데, 요즘에는 완전 급변한데 대해 자연스럽게 쓴웃음이 나와 버린다.
“왜 그런가?”
“아니, 아무것도 아니……가, 아니었군.”
크흠 하고 가볍게 헛기침을 해 준비를 고친다.
단지, 앞으로 할 말이 아무래도 자신에게 안 맞는 기분이 들어서, 처음 한 마디를 꺼내기 힘들어 눈이 허공을 멤돈다.
하지만 이대로 조용히 있을 수도 없어, 시그넘 앞으로 돌아가 뜻을 굳히고 입을 연다.
“하야테를 잘 부탁해.”
유토의 그 말이 예상 밖이었던 건지, 시그넘은 의표를 찔린 듯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춘다.
“아니, 뭐, 내가 말할 것 까지도 없겠지만.”
역시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했다는 자각은 있는 건지, 바로 시그넘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뺨을 긁는 유토.
그런 유토를 보고 웃음이 나왔는지, 시그넘의 입에 약간 미소가 떠오른다.
“물론이다. 주를 지키는 게 기사의 역임. 걱정은 필요 없다.”
월광 아래서――조용히, 하지만 힘차게 선언하는 시그넘의 모습은 보기에도 위엄이 느껴지고,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왜 그러나?”
“엣,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냐!”
설마 넋을 잃었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당황하며 손을 흔드는 유토.
안 그래도 시그넘은 유별난 미모를 자랑하고 있다. 거기에 정말 조금이라곤 해도, 미소라는 스파이스가 더해지면 그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는 정도다.
유토가 넋을 잃어 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단지, 이 계절에 검은 노 슬리브에 미니스커트란 복장은 지독히 부자연스럽긴 했지만.
“?”
그런 유토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그넘에게, 유토는 저도 모르게 다시금 두근거려 버렸다.
도미네 유토. 과거에 반한 이성은 전부 첫눈에 반했었다.
“아니, 에에, 그런 것보다 그쪽도 말하고 싶은 게 있었겠지?”
“아아, 그랬지. 너에게 조금 묻고 싶은 게 있다.”
시그넘이 하고 싶은 말을 느꼈던 거겠지.
유토도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연다.
“왜 내가 넷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지, 겠지?”
“……호오.”
자신이 말하고 싶은 걸 알아차린 듯한 유토에게 무심코 감탄의 소리가 나온다.
주인 하야테와의 대화를 보면 단순히 얼빠진 소년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예상외로 머리가 좋은 모양이다.
그리고 더더욱 의심과 경계를 더해간다――언제든지, 자신의 무기인 디바이스로 벨 수 있도록.
“예상한 대로, 나는 너희들을 알고 있어. 어둠의 서에 대해서도 포함해서. 그것도, 너희들보다 더더욱 잘.”
“네놈의 목적은 뭐냐? 주 하야테가 어둠의 서의 주라는 걸 알고 접근한 건가?”
찰칵, 하고 자신의 디바이스인 검――레바테인을 실체화시켜, 칼끝을 유토의 코앞에 들이댄다.
자신에게 향해오는 칼끝과 시그넘이 내뿜는 위압감. 극히 좁은 범위지만 결계도 펼쳐져 있었다.
그것만으로 유토는 몸에 힘이 빠져 버릴 것 같았지만, 담력을 쥐어짜서 가까스로 버텨낸다.
“반쯤 정답이고 반쯤 꽝이란 정돌까.”
유토의 그 말에 시그넘은 눈매를 좁히고, 말 없이 뒷말을 재촉한다.
“하야테와 알게 되었을 때 어둠의 서의 주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 녀석과 친구가 된 건 그게 이유가 아냐.”
그럼 뭐가 이유인지 묻는다 해도, 유토 자신도 명확한 답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단순한 동정이나 연민이라고도 할 수 있고, 흥미가 없었다고도 단언할 수 없다.
그렇기에 뺨을 긁으며 유토는 생각한 대로 말을 입에 담는다.
“냅둘 수 없었다는 느낌일까. 그 녀석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래도 잠을 설칠 것 같아서.”
나노하의 주얼 시드 수집에 협력했을 때도 그랬다.
그때부터 자신에게 커다란 힘이 없는 건 자각하고 있다. 그랬기에 적극적으로 마법 세계에 얽히려는 생각은 없었다.
물론, 마법에 대해서 흥미를 안고, 기회가 있으면 접해보고 싶다는 상반되는 마음도 안고는 있었지만.
무엇보다, 정말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 같은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증거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흥미에 따른 행동 탓에, 스스로 목을 찔러넣는 꼴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힘이 없는 걸 핑계로 언제든지 마법 세계에서 손을 떼놓을 순 있었다. 그러지 않았던 건 자신이 마법을 써 보고 싶다는 욕구에 저항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지금 입에 담은 것처럼 사정을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게 뒷맛이 나빴기 때문이겠지.
만약 이게 자신과 관계가 적거나, 혹은 먼 곳의 사건이었다면 신경 쓰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토에게 다카마치 나노하는 당당한 반 친구였고, 야가미 하야테는 그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다.
겨우, 그것 뿐이다.
“이런 말론 납득할 수 없겠지만. 이런 길가에서 모든 걸 이야기하기에는 좀 긴 이야기야. 할 수 있으면 1주일정도 뒤에 천천히 이야기하고 싶어.”
하야테도 함께, 라는 말을 덧붙인다.
유토에게 있어 1주일이라는 시간은 볼켄리터들이 이 세계, 거기에 더해선 새로운 주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다.
유토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이야기한다 해도, 지금 상태보단 하야테와 접해 기사들이 거기에 따라 바뀐 뒤가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네놈이 주에게 좋지 않은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시그넘이 보기에도 유토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고, 악의를 느끼지도 않았다.
꺼낸 말을 듣기에도, 진심으로 주인 하야테를 걱정하고 있는 것 처럼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정을 알면서, 관리국에 연이 있는 인간을 쉽사리 믿고 냅둘수도 없었다.
칼끝을 향한 채로 유토의 대답을 기다린다.
“증거로 쓸 수 있을만한 건 가지고 있지 않은데. 뭐어, 하야테에게 뭘 한다면 진작 하고 있었겠지만.”
시그넘의 그 모습에 쓴웃음 지으며 대답하는 유토. 자신의 언동을 생각하면, 원래부터 이 전개는 예상 범위 안이었다.
그렇기에 내심으로 떨기는 해도 동요하는 일은 없었다.
“처우는 시그넘에게 맡길게. 24시간 감시를 붙여도 괜찮고, 마법인지 뭐든지로 언제든지 내 생명을 끊을 수 있게 해 줘도 괜찮아.”
그러니 이 자리에서 바로 죽이는 건 봐줘! 라고 농담 섞어 말한다.
물론, 농담 섞어 말하긴 했지만, 진짜로 죽는 건 바라지 않기에 본심으로 한 이야기기도 하지만.
“………….”
말 없이 유토를 지켜보며 고민하는 시그넘.
아까부터 유토의 몸은 공포 탓인지, 잘게 떨리고 있다.
얼굴이 새파래지면서도 이런 말들을 꺼낼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연기라면, 이 소년은 마도사보다도 배우쪽이 소질이 있는 거겠지.
이윽고, 시그넘은 천천히 레바테인을 내려 칼집에 거둔다.
그걸로 유토가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쉰 것도 잠시.
자신의 주위에 베르카식 마법진이 떠올라 있는데 기겁하는 유토.
그 베르카식 마법진이 자신의 팔에 휘감기듯 수렴되어, 탱~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너를 감시하기 위한 술법이다. 네가 수상쩍은 행동을 하지 않는 한 해는 없어.”
“수상쩍은 행동을 하면 그 자리에서 꽥이란 소리려나?”
시그넘은 실제로 마법을 그 정도까진 쓸 수 없지만, 일부러 세세한 효과를 가르칠 필요도 없다.
글쎄, 하고 자그만 대답을 남긴다.
시그넘 자신은 눈앞의 소년을 아직 신용도 신뢰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상대의 생각도 목적도 모르는 이상, 안이하게 손을 떼놓는 것도 꺼려진다.
자신들보다도 자신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말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들의 주인 하야테가 이 소년을 믿고 있는 것도 고려해서 내린 판단은 조건달린 보류.
이 소년이 뭔가 나쁜 걸 꾸미고 있다고 해도, 일부러 자신들의 에 모습을 드러낼 메리트가 없다.
일주일이라는 기간이 신경 쓰이지만, 그 정도로 뭘 할 수 있으리라고도 보지 않는다.
자신들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하면, 어둠의 서가 각성하기 전에 행동을 일으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을 테니까.
레반테인을 대기모드로 돌려, 결계를 해제한다.
“조금 시간을 빼앗아 버렸군. 너희 집까지는 아직 멀었나?”
시그넘의 입에서 나온 건, 결계 안에서의 대화와 전혀 이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일단 자신의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판단한 유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맥이 풀린 반동으로 맥없이 주저앉아 버린다.
“훗. 배짱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잘 알 수 없는 녀석이군.”
그렇게 말하고 쓴웃음 짓는 시그넘은 살짝 유토에게 손을 뻗는다.
“아니―, 아무래도 초보자여서. 경험도 별로 없고.”
시그넘의 손을 잡으며 일어나는 유토. 몸에서 힘이 빠지지 않았던 건 요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뭐, 일단 나에 대해선 놓아두고. 하는 김에 상담이랄까 부탁이랄까가 있는데 괜찮을까?”
“호오?”
빙긋 웃는 유토에게, 시그넘은 흥미진진한듯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