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화 나는 응원할게.
“촉탁시험이구나~.”
“붙으면 좋겠네, 페이트.”
“그렇네.”
전병을 갉아먹으며 나노하의 말에 동의한다.
나노하의 집에서 페이트가 보낸 비디오 메일을 끝까지 본 우리들은, 느긋하게 잡담하고 있었다.
비디오 내용은, 페이트가 촉탁 마도사 시험 수험을 결심한 것, 그걸 위해 공부에 힘쓴다는 거였다.
프레시아에게서 새로운 마법도 배운 모양이고, 처음부터 계속 미소를 짓고 있는 페이트를 보면 이쪽까지도 기뻐진다. 역시 여자애의 미소는 좋은데. 단, 귀여운 애에 한한다.
페이트가 보낸 비디오 메일이 도착한 건 오늘 아침. 원래대로라면 알리사와 스즈카, 하야테도 껴야 했겠지만, 알리사와 스즈카는 뭘 배우는 날. 하야테는 병원에 가는 것 때문에, 이번에는 나와 나노하, 유노 셋뿐이다. 모두에게 괜찮은 날에 다시 모여서, 페이트에게 보낼 비디오 메일을 만들게 되겠지.
“그러고 보면, 유토 군은 아직 마법 연습 재개 안했니?”
“음―, 아직 자유롭게 못 나다니니까~.”
“그렇구나, 아쉽네.”
나노하가 말하는 마법 연습이라는 건, 매일 일찍 하던 새벽 연습 이야기다. 주얼 시드에 얽혀 시작된 마법 연습이지만, 나노하는 지금도 그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나도 얼마 전까진 계속하고 있었지만, 어머니께서 내리신 【이동할 때는 보호자 동반】 명령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마침 잘 됐다 싶어 새벽 연습을 쉬고 있다.
이전 인생에서도 동아리에 들어갔었던 적도 없고, 알바 정도밖에 안 했던 나한테 새벽연습은 너무 괴롭다. 마법 연습 그 자체는 싫지 않지만, P.T. 사건 때처럼 절박한 사태도 아니고 딱히 목표도 없는 채로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서 연습을 계속하는 게 차츰 괴로워지고 있었다.
자랑할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느긋이 보내는 걸 정말 좋아하는 되먹잖은 인간인 거다.
그래도 지금까지 계속해 온 건, 타성에 젖었던 것과, 나노하가 계속하고 있는데 먼저 자신이 꺾이는 게 폼 안 난다는 정말 한심하고 소극적인 이유였다. 나날의 연습으로 확실한 진보가 보였다면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재능이 전혀 없는 내 성장은 너무나도 좋지 않았다. 덤으로 사람이 반걸음 나아가는 동안 50걸음이든 100걸음이든 앞을 나아가는 녀석이 있어서야, 할 마음을 잃어 버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변명해 본다.
한 번 습관이 꺾여버리면 다시 하려는 마음은 꽤 들지 않는 게 사람의 본성. 이 페이스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어둠의 서 사건까지 뭔가 할 수 있을만한 레벨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나는 【이동할 때는 보호자 동반】 명령이 해제된다고 해도 매일 주 2회 정도의 빈도로 줄일 마음이 가득했다. 정말 얼간인데.
“에에. 유토 군에게 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나노하가 뭔가를 조르고 싶은 듯한 눈길로 이쪽을 올려다본다. 그 모습은 마치 먹이를 바라는 강아지 같다.
“싫어.”
“아직 아무 소리도 안했어!”
말 안해도 아니까 먼저 거절한 건데.
“나한테 온 디스크 보여달란 거잖아?”
“으…….”
흘끗 한 번 보자, 하려던 말이 들어맞은 나노하는 당황하며 변명을 시작한다.
“그, 그치만, 역시 신경 쓰이는걸! 별로 봐도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잖아?”
허둥지둥거리는 나노하를 보고 쓴웃음 지으며, 생각에 잠긴다. 나노하가 지금 하는 이야기는, 페이트가 나한테 보낸 비디오 메일을 말하는 거다..
기본적으로 페이트가 보낸 디스크는 두 종류 존재한다. 하나는 마법에 대한 걸 빼서 알리사나 스즈카 등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디스크. 다른 하나는 마법에 얽힌 화제도 들어있는 디스크다.
그게 이번에는 후자가 두 종류. 하나는 평소대로 나와 나노하에게 보낸 것. 다른 하나는 나 개인에게 보낸 거다.
저번에 다른 애들보다 먼저 비디오 메일을 보냈었으니, 거기에 대한 답장 같은 거겠지.
나노하가 말하는 대로 딱히 보인다고 해서 줄어드는 건 아니겠지만, 일부러 나에게만 보낸 걸 나노하랑 같이 보는 것도 어떠려나 싶은 생각이 든다.
“손.”
“……?”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을 위로 해서 내밀자, 나노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쭈뼛쭈뼛 손을 얹어온다.
“너, 가끔씩 진짜 귀엽네.”
“에? 에? 에?”
손을 얹은 채로 눈을 크게 뜬 나노하의 모습에 마음이 풀어진다. 내가 원래 모습이었다면,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을 참이다. 동년배의 모습으로 하면 좀 그러니까 안 하겠지만.
“자, 볼 것도 봤고, 돌아갈까?”
일어나려고 무릎을 세웠을 때, 손목을 턱 붙잡혔다.
“……안 보여줄건데?”
“손 했는데?”
“딱히 손 하면 보여준다고도 안 했었고.”
“……찌릿.”
“소리로 내봐야 안되니까.”
“으으……, 유토 군 심술쟁이….”
눈물맺힌 눈으로 올려다보는 눈길에, 기학심이 꾸역꾸역 고개를 내민다. 곤란해. 이러면 좀 더 괴롭히고 싶어져.
“유토……너무 나노하를 괴롭히면 안돼.”
자, 어떻게 해 줄까……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유노가 못을 박았다.
“아니, 그렇게 말해도, 이렇게 괴롭혀줘 오라를 내고 있으면…….”
“그런 거 안 냈으니까!”
이 자리에서 ‘괴롭혀줘 오라’를 느낄 수 있는 건 나 뿐인 모양이다. 쳇.
뭐, 나노하가 말하는 대로, 딱히 보여준대도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페이트가 일부러 나에게 보내준 것도, 내가 먼저 보낸 비디오 메일을 비밀로 해 달라고 말했으니까, 그런 내용에 대해 언급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놀림거리가 되리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별로 보여주고 싶진 않지만, 반드시 숨겨야 할 정도의 일도 아니다. 이만큼 부탁받으면 보여줘도 괜찮으려나 싶어진다.
그렇다곤 해도, 조건 없이 보여주는 것도 뭔가 좀 그렇고.
“좋아, 나노하는 빚 하나야.”
“에?”
내 말에, 나노하와 그 어깨에 앉아있던 유노가 함께 얼빠진 소리를 낸다.
“공짜로 보여주는 건 싫으니까, 다음에 내가 뭔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으면 조건 없이 뭐든 하나 들어준다. 이 교환조건으로 어때?”
입가를 당겨올리며, 나노하의 불안을 부채질하듯이 훗훗훗~하고 수상쩍은 미소를 흘린다.
“으으, 왠지 굉장히 이상한 거 부탁받을 것 같아…….”
“나한테는 유토에게 악마의 꼬리랑 날개가 난 것처럼 보여…….”
“후후후후후후노후.”
나는 더더욱 둘의 불안을 부채질하듯 웃으며, 디스크를 치켜든다.
“싫으면 상관 없어. 단지 이 녀석을 보려면 포기하라고.”
“으으으…….”
머리를 감싸안고 고뇌하던 나노하는, 손바닥을 이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오, 오분, 생각시켜줘!”
내가 말하는 걸 하나 들어준다는 건 그렇게나 고민해야 할 조건인 걸까?
그런 자신이 얼마나 경박하고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깨달은 건 불과 몇 분 뒤. 좀 더 고민해야 하는 건 나 자신이었던 거다.
메일 내용은, 예상대로 무사를 알리는 메일을 보낸 거에 대한 인사였다. 이 정도 내용이라면 일부러 따로 보낼 필요는 없는데, 성실한 애다. 감탄하는 내 옆에서, 아무래도 굉장히 히죽히죽거리는 듯한 나노하와 페릿이 슬쩍슬쩍 이쪽을 보고 있지만, 그런 건 무시다. 페릿의 표정같은 건 읽을 수 없지만 그런 분위기만은 전해져 온다.
『그리고, 애들이 유토가 좋아하는 애는 누굴까 물어봤었는데.』
페이트의 그 말에 나노하를 지긋이 노려보자, 나노하는 마른 웃음을 띠며 눈을 돌린다.
그런 거 페이트가 알고 있을 리 없는데. 그보다, 그런 정보를 뿌리지 마. 같은 느낌으로 차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보내고 있었더니, 갑자기 페이트가 주뼛주뼛 얼굴을 붉히며 터무니없는 말을 꺼냈다.
『유토가 날 좋아한다는 건 절대로 말 안할테니까 안심해 줘.』
푸우!
“더러워!”
“콜록, 콜록, 켁, 켁!”
힘차게 뿜어냈다. 목이 확 막혔다.
“괘, 괜찮아?”
목이 완전 막혀서, 보다못한 나노하가 등을 쓸어줬다.
“대체, 뭐를…….”
일단 비디오를 멈췄지만, 페이트가 무슨 생각으로 지금 이야기를 한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어느새 그런 이야기가 됐지?
페이트가 농담을 말하리라고도 생각할 수 없기에, 적어도 페이트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만들만한 일이 있었겠지.
그게 뭔지를 혼란스런 머리로 떠올리려 했을 때――――나를 향한 두 쌍의 따스한 눈길을 깨닫는다.
“………….”
거기에는 굉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노하가 이쪽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기분탓인지 눈이 빛나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 어깨에 올라탄 페릿은 엄지손가락을 휙 들고 있었다.
“아냐. 이건 아니야.”
목이 막혔던 탓으로 눈에 눈물이 맺힌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지만, 그런 걸로 이 상황이 뒤집힐 리도 없다.
“에헤헤―. 그래, 그랬구나. 페이트였구나~. 그러고 보면 유토 군, 페이트한테만 굉장히 상냥했는걸~.”
“그러니까 아냐! 너무 그러면 뺨 집어당긴다!”
“우냐아아?! 그치먄 유토 휸 얼귤 섀뺠갸쟈나~.”
“아무리 봐도 부끄러워 하는 건데.”
“에에잇! 시끄러워!”
“그럼 그럼, 유토 군은 페이트가 싫어?”
“그럴 리 있냐? 좋아하는 게 당연하잖아!”
라고 반사적으로 대답한 시점에서, 나노하가 더더욱 실실대는 미소를 띄운 걸 깨닫는다.
어라? 뭔가 돌이킬 수 없는 말실수를 했다?
“레이징 하트, 지금 거 제대로 녹음했어?”
『Of course. I'm perfect.』
“어어어어이?!”
잠, 너?! 뭐 하는 거야?!
“잘 했어, 나노하.”
“응, 대성공!”
어린애랑 페릿이 손바닥을 마주치는 얼빠진 그림에 딴죽을 걸고 싶어졌지만, 그것보다 먼저 딴죽을 걸어야 하는 게 있다.
“나노하 주제에 그런 고도의 기술을?!”
“에헤헤~. 언제까지나 유토 군에게 당하기만 하진 않는다고? 대단하지~?”
“뭘 순수한 미소로 무시무시한 소리 하는 거야, 이 악마!”
“예전에 네가 한 걸 흉내낸 것 뿐이라고 생각해.”
“에헤헤~, 빨리 알리사랑 스즈카한테도 가르쳐 줘야지.”
“기다려?!”
휴대폰을 쓱 꺼내서, 메일을 보내려고 하는 나노하를 멈춰세우려 일어나려고 했을 때――――녹색의 빛에 얽어맸다.
“나한테 맡겨줘!”
“유노 군 나이스!”
“네녀서어어어억! 유우우우노오오오?!”
도마 위에 올라간 잉어처럼 파닥거린다고 해 봐야, 그걸로 메일을 보내는 걸 막을 수 있을 리도 없다.
어이없이도 다른 셋에게 내가 페이트를 좋아한다는 오보가 퍼져 버린 거다.
이런 화제는 강하게 반응할수록 상대가 기뻐한다는 사실을, 당황한 나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다.
페이트가 착각한 이유와, 나노하에게 한 가지 명령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던 걸 떠올린 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뒤였다.
인간, 당황하면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법이구나.
“훗훗훗~, 그런가, 그런가, 네가 페이트를~.”
“페이트는 유토 군 취향의 어른스럽고 귀여운 애인 걸~.”
“유토 군, 나는 응원할게. 힘내!”
다음 날, 지금까지 본 적 없을 정도로 생기 넘치는 꼬맹이들 앞에서,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들 상대로 오해를 푸는 건 무리. 나는 바로 해명을 포기했다.
싸그리 귀찮아진 나는, 꼬맹이 무리의 이야기를 적당히 흘려들으면서 페이트의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래, 같은 날에 도착했던 샤말이 보낸 메일같은 걸 뒤로 돌려버릴 정도로.
“정말, 네게서 이야기가 있을 때는 언제나 성가신 일뿐이네.”
“정말로……아무래도 이런 전개는 예상 못 했었는데~.”
내 이야기를 얼추 들은 크로노와 린디 씨는 함께 기막힌 기분이 섞인 쓴웃음을 흘린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길고, 요염한 흑발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여성――변신마법을 쓴 시그넘을 찬찬히 바라본다.
여기는 아스라 안에 있는 방. 나는 크로노에게 로스트로기아 관련 이야기가 있다는 걸로, 아스라의 승선허가를 신청했다.
이전의 페이트 건도 있어서, 크로노는 내 말을 무시하지 않고 이야기할 장소를 준비해 주었다. 단지, 약속 장소에 사전 연락 없이 변신마법을 써서 변장한 시그넘을 데려온 데는 당연한 것처럼 난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도 로스트로기아의 관계자라는 걸로, 그리고 그 로스트로기아가 어둠의 서라고 고한 걸로, 어떻게든 설득해, 이 상황으로 끌고 온 거다.
시그넘 일행이 낸 결론은, 내가 희망한 대로 관리국과 협력해 어둠의 서의 방위 프로그램을 파괴하는 것.
물론, 거기에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나를 중개인으로 삼아, 시그넘이 관리국의 사람――이 경우에는 린디 씨와 크로노가 믿을만한 인물인지를 확인하는 거였다.
시그넘이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하면, 관리국과의 협력은 없다. 그렇게 되면 크로노 일행도 시그넘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게 될 거고, 일이 거칠어지리라는 건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 경우, 내가 어떻게 될 지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나와 동행하는 게 시그넘 혼자인 거나, 변신마법을 쓰고 있는 건, 그렇게 됐을 때를 대비한 거겠지. 관리국과 협력하지 않을 때 그녀들이 어떻게 할지는 물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걸 보면 나도 아직 완전히 신뢰받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부디, 어둠의 서의 기사로서의 견해를 듣고 싶은데.”
여담이지만, 시그넘이 어둠의 서의 기사라는 건 설명하지 않았다. 뭐, 어둠의 서의 관계자라고 하면 수호기사든지 주인이든지 둘 중 하나일 테니 추측은 어렵지 않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도 반신반의하곤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 부정하기 힘든 일면이 있는 것도 사실. 실제로 우리에게는 어둠의 서가 완성된 뒤의 주에 얽힌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야천의 서, 라는 이름에도 기억은 없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뭔가를 느끼고 있습니다.”
“과연……. 그렇다 쳐도 잘도 그의 이야기로 이쪽과 협력할 생각이 들었네. 그가 말한 내용에 거짓이 있었을 때는 어떡 할 셈이니?”
“물론, 태어난 걸 후회할 정도의 고통과 공포를 주겠습니다.”
어이. 즉답이냐. 전에도 같은 소리를 들은 기분이 들지만, 듣는 쪽으로서는 전혀 기쁘지 않은 이야기다. 그런 마음이 겉으로 드러났는지, 린디 씨와 크로노는 작게 웃음을 흘리고,
“그때는 이쪽도 협력할게.”
“잘 부탁드립니다.”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 입장에선 얼이 빠질 뿐이다.
“그의 이야기를 믿은 근거론, 현시점에서 파악한 범위 내의 정보는 모두 사실이라는 것. 또, 우리를 속이는 걸로 그 자신에게 어떤 이익도 없다는 걸까요. 우리에게 해를 줄 셈이었다면, 우리가 출현하기 전에 어둠의 서와 주를 억누를 수 있었을 테니.”
“엉뚱하고, 확실한 근거도 없어. 그런 것치고는 현시점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사실이고, 너한텐 조사할 수단이 없는 것들뿐. 정말로 네 정보는 다루기 힘들어. 애초에, 너, 전에는 예지능력 같은 힘이라고 말하지 않았었어?”
“이야~, 그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잔뜩 헤매서. 처음부터 지식이 있었다고 해도 신빙성이 없으니까 예지능력이라는 걸로 한 거야.”
지긋이 노려보는 크로노를 상대로 어깨를 움츠리며 변명하지만,
“예지능력도 그리 안 다르잖아.”
“지당합니다.”
돌려줄 말도 없었다.
그 뒤로, 시그넘과 린디 씨, 크로노의 사이에서 서로 정보를 나누고, 협의가 행해진다.
구체적으론 어둠의 서 수집 방법과 그사이 기사들과 주의 처우에 대해서.
현단계에선, 시그넘은 자신이 어둠의 서의 기사라는 것 외에는 숨기고, 주――즉 하야테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고, 크로노와 린디 씨도 일부러 언급하지 않는다. 어둠의 서의 수집에 대해서도, 관리국이 주도한다고 해서 간단히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아스라가 어둠의 서를 전담하게 된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다.
지금은 하야테 본인에 대해선 건드리지 않고, 어둠의 서의 주라는 호칭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저런 일로 대화는 5시간 이상 지나, 마무리 부분에 들어가 있었다.
“최종적으론, 이번 어둠의 서의 주에게 모든게 걸려있는 건가.”
크로노가 불쑥 한 마디를 내뱉는다. 어둠의 서의 저주를 찢어발길 열쇠는, 하야테가 쥐고 있는 거다.
어둠의 서의 수집을 하는 건 확정사항이다. 연내에 어둠의 서가 완성되지 않으면 하야테의 목숨이 버티지 못한다. 괸리국 입장에서도, 지금의 하야테는 로스트로기아에 의한 피해자에 지나지 않으니, 보호대상인 거다. 어둠의 서만 빼앗는다고 끝나는 문제는 아니다. 어쨌든 간에, 하야테가 죽어 버리면 어둠의 서의 전생기능이 발동해, 다른 곳으로 이동해 버리는 거니까.
하지만, 설령 어둠의 서가 완성된다고 해도 하야테가 어둠의 서에 씌여서 폭주해 버린다면, 결국은 마찬가지 일이 되풀이된다. 기껏해야 아르크 앙 시엘을 쓰든지 말든지의 차이밖에 없다.
“본인은 할 마음 가득하긴 했는데.”
내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것저것 결심한 듯이 쓸데없이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실제로 마법에 대해 열심히 공부중이고, 어리면서도 어딘가 달관한 듯했던 지금까지의 하야테와는 뭔가가 바뀌어 있었다. 체념하고 있던 자신의 생명에 희망이 보였으니까――――가 아니다.
가족과 보내는 지금의 소중한 시간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나중까지 이어져갈 수 있다. 그걸 자신의 손으로 이룰 수 있다. 그런 마음이 하야테에게 힘을 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어떻게든 되는 것도 아냐. 만에 하나, 지금의 주인 씨가 어둠의 서의 폭주를 막지 못했을 경우도 상정해서, 뭔가의 대책은 준비 해야해.”
“……유감스럽지만, 우리 주도 같은 의견입니다.”
린디 씨의 말에 수긍한 시그넘이 이쪽에 눈길을 돌려, 그 눈길을 받아, 이전에 그녀들과 이야기한 방법을 다시금 풀어놓았다.
“폭주 직전을 노려, 동결마법을 통한 영구봉인.”
“과연……확실히 그거라면, 일시적이라곤 해도 어둠의 서를 봉인할 수 있을 가능성도 있나…….”
“어차피 임시방편이고, 구체적인 해결은 안 되겠지만.”
“그동안 하야테를 구할 방법을 찾으면 최고긴 하겠지만요…….”
솔직히, 그건 어렵겠지. 실제로 그레이엄 제독이 수 년동안 어둠의 서를 조사해, 그 결과로 낸게 동결마법을 통한 영구 봉인이었다. 적어도, 앞으로 반 년 정도로 보다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은 낮다.
“주도 자신이 어둠의 서의 관리권한을 되찾지 못했을 때는, 그렇게 되는 걸 바라고 있습니다.”
벌레라도 씹은 듯한 시그넘의 표정을 보면, 그게 어떤 고뇌 속에 내린 결단인지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어둠의 서의 저주나 아르크 앙 시엘로 증발되는 것보다는 약간 낫지만, 하야테의 시간이 빼앗기는데 변함은 없다. 설령 오랜 시간이 지나 어둠의 서에서 해방된다고 해도, 수호기사들 외의 친구들――나나 나노하 등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야만 하게 된다. 만나고 얼마 지나진 않았다곤 해도, 그렇게 됐을 때 맛볼 고통이나 고독은 필설로 다할 수 없다. 나도 어느 정도는 비슷한 상황에 빠져 있으니까.
뇌리를 스쳐간 미소를 머리 구석으로 쫓아내면서, 이곳의 어두운 분위기를 바꾸려 나는 입을 열었다.
“뭐, 그것도 이것도 녀석이 잘 해주면 기우로 끝날 텐데. 어떻게든 될거야.”
“마음 편하게 말하는데.”
“걱정한다고 해서 사태가 호전될 리도 없잖아. 대비는 필요하지만, 뭐든지 만단의 준비를 갖춘다는 게 그리 쉽게 되는 게 아냐. 손패를 갖추면, 그 뒤는 버텨서서 기다리면 돼. 이것저것 너무 고민하면, 벗겨진다고.”
“너는 너무 낙천적이야.”
“후훗, 그래도 유토 군이 하는 소리에도 일리는 있네. 거기에, 어둠의 서에 대한 정보를 이렇게나 모으고, 수호기사들까지도 이쪽에 협력해 주는걸. 사전 준비로 보면, 이것만으로도 너무 충분해.”
물론 정보의 뒷받침은 필요하겠지만, 하고 린디 씨는 말을 덧붙인다.
아마 앞으로 무한서고 수색이 시작되겠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내 관할 밖이다. 유노가 동원될지 어떨진 모르겠지만.
아니, 오히려 여기선 내가 유노를 밀고해서 부려먹도록 신청하자. 저번의 원한,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 더 확인해 두고 싶은데.”
“응?”
팔짱을 낀 크로노가 눈길을 내게 향한다. 평소와 다른 날카로운 눈길에 약간 쫄면서, 이어질 말을 기다린다.
“네 이야기론 나노하와 페이트를 말려들게 하는 게 전젠데, 진심이야? 확실히 어둠의 서가 완성될 때 까지는 페이트의 재판도 끝나 있겠지만.”
크로노가 말하고 싶은 건 이해하고 있다. 주얼시드 때나 A's와 다르게, 이번에는 나노하도 페이트도 이 건에 얽힐 필요가 없다.
어둠의 서의 방위 프로그램이 나타나는 건 우미나리가 아닌 무인행성. 하야테만 관리권한을 되찾으면, 그 뒤는 아르크 앙 시엘만으로 판이 끝난다.
기사들이 수집되지만 않으면, 전력을 생각해도 나노하 등을 말려들게 할 필요는 없다.
“아아, 뭐, 크로노와 수호기사들만으로도 괜찮겠지만. 만일을 대비할 수 있으면 하는게 제일 낫고.”
나도 어둠의 서의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일어날 가능성도 제로는 아닌 거다. 그 둘이 있어주는 편이 마음 든든하다. 관계 없는 둘을 일부러 위험한 상황에 맞대는 것도 마음이 괴롭긴 하지만, 그런 이유로 주저했다가 구할 수 있었을 친구를 잃게 되는 쪽이 좀 더 괴롭다.
거기에, 둘 다 이미 하야테의 친구가 된 거다. 이야기를 하면 스스로 협력을 부탁해 올게 틀림없다. 이쪽에서 싫다고 해도.
그 광경이 손에 잡힐듯이 보여,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흘린다. 녀석들이 친구의 위기를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는 거다.
“사정을 이야기하면 분명 스스로 돕겠다고 할 거야.”
“……확실히 그 애들의 성격이라면 그렇겠지만. 뭐, 본인들이 협력을 요청한다면 내가 할 말은 없어. 이쪽 입장에서도, 손패가 느는데 이의는 없으니까. 거기에…….”
남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입장도 아니고, 라고 크로노가 작게 말한다.
“응. 아, 그래도 그 둘한테는 당분간 말하지 많아주지 않을래? 이 이야기를 할 때는, 내 입으로 말하고 싶어.”
“이 계획의 발안자는 너야. 멋대로 하면 돼.”
“땡큐.”
책임이라고도 할 수 없는, 단순한 자기 만족. 아마 크로노도 그걸 이해해 준 듯한 기분이 들지만, 굳이 내가 바라는대로 하도록 해 준데 감사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하같은 조건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됐다.
어둠의 서를 수집하는 건 관리국의 감시하에서 관리국이 지정하는 야생동물, 혹은 임의의 협력자에게서 행할 것.
시그넘 일행이 관리국을 믿고 스스로 주에 대해 밝힐 때까지, 관리국 쪽에서는 주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고 수호기사들에게도 참견하지 않는다.
어둠의 서의 주――하야테에 대해선, 기사들이 신분을 밝힌 뒤에 관리국에 의한 검사를 받고, 어둠의 서의 페이지가 400쪽, 즉 관제인격이 기동될 때 까지는 종래대로의 생활을 보낸다. 관제인격 기동 뒤에는 어둠의 서와 함께 아스라의 보호하에 놓는다.
어둠의 서는 완성될 때 까지 관리국이 맡기로 해, 아스라에 보존한다.
어둠의 서의 완성은 무인행성에서 행한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있었지만, 대략적으로는 이런 느낌이다.
수집 개시시간에 대해선 아스라 쪽의 준비나 교섭 상층부의 설득 등이 이것저것 있기에, 바로 시작할 수는 없다는 모양이지만.
그리고 마지막의 수집은 나로부터. 수집되는 경우 며칠간 제대로 마법을 쓸 수 없게 된다. 항상 인력이 부족한 관리국의 사람에게서 수집할 수는 없고, 작전의 내용을 생각하면 공공연히 수집될 인간을 모을 수도 없다. 거기다, 아르크 앙 시엘을 쓸 걸 생각하면 어둠의 서가 완성될 때 주위에 살아있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 바람직하다. 그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도, 자유롭게 대량의 페이지를 수집할 수 있고 전투가 할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나 정도가 딱 적당한 거다. 얼마간 페이지의 로스가 있더라도, 보다 확실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걸 우선한 거다.
여담이긴 하지만, 시그넘 가로되 나로부터 수집할 경우 한 명으로 100쪽은 시시할 정도라는 추측이었다.
나노하마저 16인지 30정도 아니었나? 적어도 40은 안 넘었던 기분이 드니까, 그걸 생각하면 거짓말 같은 수치다.
“터무니없네.”
“너, 정말 인간이냐.”
“마도의 재능은 눈꼽만치도 없는데.”
“비상식인데도 정도가 있어.”
“과연, 인간 보급장치데이.”
등등, 야가미 가에서는 온갖 코멘트도 받았다. 핫핫핫.
그런 것들은 젖혀두고, 그거다. 시그넘이든, 크로노나 린디 씨든, 내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는 게 지독하게 의외였다.
“페이트 건도 있어. 네 정보의 정확도는 저번에 관측이 끝났어. 거기에 그녀가 말하는 대로, 우리를 속인다고 해서 네게 메리트는 없으니까. 물론, 이쪽에서도 근거는 찾겠지만.”
“여기까지 와서 네 이야기를 의심한다면 처음부터 다른 수단을 골랐어.”
그렇사옵니까. 그래도, 왜 이렇게 선선히 이야기 진행되는 거야? 서로 평소에는 생각하기도 힘들 정도로 양보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게, 듣고있는 이쪽이 불안해질 정돈데.
“수호기사들이 교섭으로 오는 일은,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던 일인걸. 절호의 찬스니, 서두르다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 신중하면서 확실하게 진행하고 싶은 거야. 나 개인 입장에서도, 네가 말하는 대로 어둠의 서의 저주를 여기서 끊어낼 수 있다면, 이 정도의 양보는 아무 것도 아니고.”
“위의 설득이나 교섭에 대해서는 얼마간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미안, 고생 시키네.”
내 입장에선, 법적으로 보면 꽤 엉망진창인 부탁을 하는 걸 이해하고 있기에, 순순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한의 협력은 아끼지 않을 생각이지만, 여하튼 나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쥐꼬리만큼도 안 된다. 밥쯤은 쏴 주고 싶지만, 초등학생인 나한텐 그것마저도 힘들다. 뼛속 깊이 초등학생이라는 건 이런 부분에서 부자유스럽다고 실감한다.
“딱히 네가 사과할 필요는 없어. 이건 집무관으로서 당연한 책무야. 오히려 너에게는 감사하지 않으면 안 돼. 네가 없었으면 이렇게 그녀와 교섭 자리에 앉을 일도 없었을 거야.”
“음음. 앞으로는 마음껏, 나를 떠받들도록 하라고.”
“우쭐거리지 마.”
에헴, 하고 가슴을 폈지만 가볍게 일축당했다. 크로노의 눈에서 비교적 진심의 빛을 느낀 나는, 일단 어깨를 움츠리고 그 눈길을 시그넘에게로 들린다.
“린디 제독이나 크로노 집무관이 내건 조건은, 과거의 우리가 행한 행위를 생각하면 지나친 후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쪽도 상응하는 예의를 보여야 하겠지. 주의 의사도 있고.”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뭐, 하야테의 성격을 생각하면 스스로 관리국에 신병을 인도하려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이 조건이라면 서로에게 허용 범위 내인 모양이다.
“뭐, 일단은 안심이려나?”
“큰일인 건 이 뒨데.”
“힘내~.”
마음을 담아 응원했더니 세 방향에서 이쪽을 노려봤다.
“뭐, 어차피, 나는 이제 마지막에 수집당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 하고. 전력적으로도 도움이 안 되고.”
그 내 대답에 한동안 셋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이윽고 시그넘이 천천히 입을 열고.
“그러면, 네게는 우리가 훈련을 시켜 주지. 조금이나마 실력을 올려두는 게 당연히 나을 테니.”
“에.”
“어머, 그건 좋은 아이디어네.”
“음, 너는 근거리 타입이니까. 벨카 기사들에게 직접 배우는 건 좋은 경험이 될 거다. 철저히 단련 받도록 해.”
“에.”
“사양할 필요는 없다고. 주에게 가르쳐주는 덤으로 하면 되니까.”
“아니, 황송하지만,”
“나노하도 페이트도 매일 연습하고 있는데 너만 땡땡이칠 셈이야? 딱히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혼자서 아무것도 안 한다니 대단한 신분이네.”
“………….”
……왜 이렇게?
대화가 잘 된건 좋지만, 어쩌다 이렇게 된거야?
예상도 못 했던 과정으로 나는 홀로 머리를 안으며, 다른 셋의 미소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