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화 이 생명 있는 한
주위 일대에 퍼지는 빛은 붉은색.
어디를 둘러봐도 붉고, 붉고, 붉고.
찰싹 소리에 내 발아래를 내려다 보자 붉은 물에 발이 빠져 있다.
――아니, 이건 물이 아니다. 피다.
깨닫고 나니 주위에는 피바다에 쓰러진 수많은 사람이.
한 번 본 것 만으론 살아있는 건지 죽은 건지 조차 알 수 없다.
뭐가 어떻게 돼서. 어째서 내가 이런 곳에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단지, 눈 앞의 지옥같은 광경이 무서워서, 온몸을 떨고 있었다.
“힉.”
갑자기 눈 앞에 쓰러져 있던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해, 한심한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친다.
하나, 둘, 차례차례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해, 그 모두가 기어오듯 이쪽을 향한다.
빛이 없는 눈동자로 날 바라보고, 말을 걸어온다.
――너다
――――네가
――네가 죽였다――
그 말에 이끌리듯 본 자신의 양팔은――――새빨간 피로 물들어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앗?!”
정신을 차리니――거기는 낯선 방의 침대였고, 어머니가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괜찮니? 꽤나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꾸……꿈……엇, 아얏!”
자기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 있는 것과, 몸을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덮치는 고통에 얼굴을 찌푸린다.
잘 바라보니 여기는 병원인 모양이고, 내 온몸은 여기저기에 붕대나 반창고가 있어 지독한 꼴이었다.
그런가, 그건 꿈인가.
응, 떠올려 보면 그건 확실히 꿈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꿈 특유의 현실감 부족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지옥같은 광경이 현실에서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잠깐, 페이트는?! 다른 애들은?!”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을 떠올려, 어머니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어째선지 어머니는 정말 기막힌 듯 한숨을 내쉰다.
“부상만 놓고 보면, 아들내미가 제일 중상이야. 다른 애들은 정도 차이는 있었지만 다들 무사해.”
어머니의 말을 듣고, 간신히 안도의 숨을 내쉰다.
다행이다. 다들 무사한 건가. 한때는 진짜 끝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들 살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때 나에게 조금 더 주의력이 있었으면, 어머니의 말과 표정에 그림자가 있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았을까.
“정말. 너무 엄마를 걱정시키지 말아 줘. 아빠도 엄마도 정말 걱정했으니까.”
꾸욱, 하고 어머니에게 껴안긴다. 마법쪽에 고개를 들이밀고, 부모님을 걱정시킨 건 이걸로 몇번째지.
“린디 씨랑 크로노 군에게서 대강 이야기는 들었어. 너무 무모한짓 하지 말아줘…….”
아무래도 변명도 떠오르지 않아서, 불초 자식입장에선 대답 한 마디 하는게 한계였다.
“……죄송해요.”
“응, 그래도 잘 힘냈어.”
어머니가 날 껴안고, 등을 쓰다듬는다.
그 상황에서 생각한다.
확실히 그때 나는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실제론 좀더 잘 해낼 방법이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내가 간단한 진찰을 받고 크로노가 병실을 찾아온 건 정오 무렵이었다.
어머니는 한 번 집에 돌아간다고 하곤, 자리를 비웠다.
“자, 뭐부터 이야기할까.”
“모두의 상황을 자세히 부탁해.”
첫 마디에 저렇게 말한 크로노에게, 고민할 틈도 없이 대답했다.
어머니에게서 들은 내용은, 다들 일단은 무사하다는 거였다. 내가 3일간 계속 일어나지 못했던 것, 큰 부상은 마법으로 고쳤지만 체력의 저하가 두드러져 며칠간 입원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였다.
“다들 하루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지쳐 있었지만, 외상만 놓고 보면 다들 경상이나 마찬가지야. 생명에 지장은 없고, 거의 완치되었어. 너랑 비교하면 별 일 아니야……말하고 보니 전에도 비슷한 소리를 했던 기분이 드네.”
“아―…….”
응, 확실히 시간의 정원 때도 비슷한 소리를 들은 기분이 든다. 놀라운 데자뷔.
뭐, 어머니도 거의 비슷한 소리를 했었지만, 크로노에게 들은 걸로 다시금 안심한다.
“다른 사람들의 자세한 상황을 이야기하기 전에, 네게 한 가지 묻고싶은게 있어.”
“뭐야, 이제와서.”
크로노는 정말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언제나 그랬지만, 묘하게 귀기가 어려있다고 할까 뭐라고 할까.
“너는 이 세상의 인간이 아닌 건가?”
“………….”
그 질문에는 의표를 찔렸다.
뭐라고 말하면 될까. 이만큼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건, 농담이나 빈말로 한 이야기는 아니겠지.
딱히 숨길 건 아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하려나.
“음―.”
잠시 신음한 뒤, 나는 말했다.
“예스기도 하고, 노기도 해.”
내 말에 크로노는 동요하지 않고 눈길로 뒷말을 재촉한다.
“이 나, 도미네 유토의 몸은 틀림없이 이 세계의 인간이야. 단지 혼이라고 할까 기억이랄까. 도미네 유토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서 살아온 기억이 있어. 그런 의미에선, 도미네 유토의 알맹이인 나는 이 세계의 인간이 아닌 걸지도.”
“왜, 그걸 말 안하고 있었어?”
“말할 필요가 없었어.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해도, 믿을 수 있을 리 없잖아? 이야기해서 뭐 어찌 되는 문제도 아니고. 기껏해야 남들이 위험한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게 고작이지.”
“……확실히 그렇네.”
그렇게 말하고, 약간 쓴웃음짓는 크로노.
이번 이야기만 해도, 크로노가 묻지 않았으면, 상대가 크로노가 아니었으면, 이런 망언같은 이야길 하진 않았겠지.
나노하나 페이트가 상대였다면 적당히 얼버무렸을 거고.
“그 이야기, 자세히 해 줘. 다른 사람의 기억……전에 말했던 네가 없는 이 세계의 기억하고도 관계 있는 거야?”
그러고 보면 볼켄리터나 어둠의 서의 지식에 대해서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뭐어, 대강은 그런 느낌이야. 정확히는 다른 세계의 인간인 내 기억 속에, 이 세계의 지식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다른 세계. 그건 어떤 세계였어? 관리국의 정의에 따르면 차원세계에 해당해?”
“음―, 차원세계의 정의를 정확힌 모르지만, 아마 아닐걸. 굳이 말하자면 평행세계라고 말하는 쪽이 옳지 않으려나.”
“평행세계……인가.”
평행세계. 만화나 소설에 흔히 나오는 마계나 이차원세계같은 것과는 다른 패러렐 월드라고도 하는 if의 세계.
다행히, 크로노도 평행세계라는 말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라, 그쪽에 대해서 설명하는 수고는 던 모양이다.
“여기랑 똑같은 지구, 똑같은 역사. 살아온 연대에는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몇년이니까 오차 범위……라고 해도 되려나. 세세한 차이는 결국 있지만, 이 지구와 큰 차이는 없어. 아아, 유명인이나 역사 교과서에 실려있는 사건은 거의 똑같아. 모르는 사건도 간간히 있긴 하지만. 마법같은 건 없……긴 할텐데.”
어쩌면 내가 몰랐던 것뿐이고 사실은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건 뭐 어쨌든 좋다.
“이 세계에, 예전의 너는 있어?”
“글쎄.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몰라. 적어도 이 시기에 살았던 주소에는 없었어.”
“……예전 세계의 너는 어떻게 되었어?”
“글쎄. 죽은 건지, 아니면 다른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전혀 몰라. 그냥 살던 기억은 있지만, 그게 중간에 뚝 끊겨서 이 모양이야.”
딱히 탄식하거나 하진 않고, 한숨을 섞어 말한다.
“……그런가. 평행세계, 다른 사람으로서의 기억――.”
그 말까지 하곤, 크로노는 좀 까다로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것보다,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은 거야. 무슨 일 있었어?”
“……사실은 펠릭스가 네 터무니없는 마력량에 뭔가 마음이 짚이는 게 있었던 모양이야.”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무슨 소리야?”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력량이 이상하다거나 돌연변이라거나 그런 레벨에서 정리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건.
어둠의 서에 수집된데다, 그 뒤에도 마력을 그만치나 써댔던 거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마력을 가진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몰라. 단지, 펠릭스는 소멸되는 순간 너에 대해 말했었어. ‘그는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야’, 라고.”
내 터무니없는 마력은,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데서 기인하고 있다, 거나 그런 소리려나?
아니면 내 기억을 엿보고 한 이야길까. 그것만으론 판단할 수단이 없다.
“다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어? 뭔가……에에, 그거 말고 뭔가 알만한 이야긴.”
약간 동요한 거겠지. 스스로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말을 꺼냈다.
“아니, 그게 다였어. 유감스럽게도 그 외엔 아무것도 없어.”
“…………근가.”
크로노의 말에 단숨에 힘이 빠진다. 까놓고 말해서, 그것만으론 지금까지 알고 있던 거랑 아무런 차이도 없다.
조금 정리하자.
펠릭스는 내 마력량에 대해 뭔가 알고 있었다. 녀석이 나를 다른 세계의 인간이라고 말했다.
쉽게 생각하면, 내 터무니없는 마력은 내가 평행세계의 사람이라는데서 영향을 받고 있다는게 된다.
……하지만 단순히 내 기억을 보고 그렇게 말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이것만으론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추측에 추측을 더한 것 만으로 대답이 나올 리도 없어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내가 이야기를 꺼냈는데, 정보가 너무 적어. 이쪽에 인력이 남아있으면 무한서고에서 조사라도 하고 싶은데…….”
크로노는 면목없는듯 어깨를 움츠린다. 항상 인력이 부족한 관리국에 그런 여유가 있을 리도 없다.
“뭐, 괜찮아. 사과할 것도 아니고. 뭔가 안다고 해서 바뀌는게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다른거 조사하다 덤으로 알게 되는 게 있으면 가르쳐 줘.”
이 세계에 태어나고 10년 가까이 지났다.
혹시 인위적인 방법으로 날 이 세계에 전생시켜서 뭔가 하려고 하는 녀석이 있었다면, 진작에 일을 일으켰겠지.
내 마력에 무슨 비밀이 있었다고 해도, 이제와서 뭐가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
어둠의 서 사건이 일단락된 지금, 앞으로 마법 관련 사건에 얽힐 일도 별로 없을 거고.
“그런가.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마워.”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는 다들 알고 있어?”
딱히 들키면 그것도 상관은 없지만, 이상하게 신경쓰거나 의심받거나 하는 것도 귀찮다.
“아니, 나 외에는 함장뿐이야. 펠릭스의 말은 다른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야.”
“그런가. 그럼 이야기 하지 말아줘. 하나하나 설명 하는것도, 쓸데없이 남들이 이걸로 신경쓰거나 하는 것도 귀찮아.”
숨길 필요도 없지만, 일부러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말할거로 생각하고 있었어. 정말, 너는 잇달아 새로운 폭탄을 던져 주는데. 덤으로 예전에 이야기한 것과도 미묘하게 설정이 바뀌었고.”
“……미안했어. 이제 더 이상 폭탄이 나오진 않을테니 안심해 줘. 이쪽도 이쪽대로 알기 쉽게 설명하느라고 잔뜩 고민했다고. 전생의 기억 운운하는 이야기같은 걸 상대가 믿을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고.”
“네가 생각한 설정도 어설펐지만. 터무니없는 정도론 실제랑 별 차이도 없고.”
“시꺼.”
히죽히죽 웃는 크로노에게 퉁명스레 대답한다. 이래저래 비꼬는 소리같은 걸 해 오지만, 내가 거짓말을 한걸 책할 마음은 없는 모양이다.
여기서 설교받는것도 귀찮을 뿐이니까, 그건 고맙다.
“일단 네 9살같지 않은 말이나 성격은 이래저래 납득됐어. 이전의 기억, 이랄까. 원래 너는 몇살이었어?”
“일단, 이래봬도 20살은 넘었었어.”
“……그렇다는 건 지금 네 정신연령은 30살을 넘었다는 걸까.”
심술궂게 웃는 크로노를 보고 작게 한숨으로 돌려준다.
“어떠려나. 정신연령이라는 건 환경에 따라 바뀌는 법이니까. 갓난애로 다시 시작해서 초등학생으로 지낸 내가 그만큼 성장했을 것 같진 않은데.”
근묵자흑이란 말처럼, 이런 특이한 환경에서 정신이 제대로 성숙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내 정신이 30대가 됐다곤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아,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나. 오히려 네 경우엔 퇴화하거나 하고 있을지도.”
그 이야기도 부정할만한 생각도 안 든다.
“소년의 마음을 잊지 않은 순진한 어른이라고 해 줘.”
“풉.”
코웃음치냐 이자식. 뭐, 예상한 반응이긴 해서 열받진 않는다.
“뭐어, 네 농담은 치워두기로 하고, 이 이야기를 카림에게 해도 상관 없을까?”
“카림한테? 뭐, 딱히 상관은 없는데.”
뭐어, 그 애라면 이상한 짓은 하지 않겠지. 미소녀고. 미소녀고. 미소녀고.
중요한 일이니까 세 번 말했습니다.
“어느 의미론 관리국보다도 발이 넓으니까. 혹시나 너에 대한 정보도 얼마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뭐어……그럴지도.”
성왕교회에 대해 별로 자세하진 않지만, 관리국과는 다른 분야에서 로스트로기아같은 것들에 자세한 이미지가 있다.
나에 대해서 그리 간단히 정보가 나올 것 같진 않지만, 정보원은 많은게 좋겠지.
“다음으로, 네가 기억을 잃은 뒤에 일어난 일 말인데…….”
내가 기억을 잃은 뒤에 펼쳐진 싸움의 전말을 자세히 들었다.
“그런 귀찮은 녀석이었나…….”
대강 크로노의 이야기를 듣고선 기가 막혔다.
뭐야, 그거. 페이트랑 내 싱크로 드라이브로도 끝장을 못내서, 하야테랑 리인포스의 역 유니온이라니.
나노하의 스타라이트 브레이커 이연사에 시그넘의 슈투름 팔켄까지 더해서 간신히 쓰러뜨렸다니, 들은 것 만으로 머리가 아파진다.
다시금 잘도 그런 녀석을 상대로 모두 무사히 끝났다 느낀다. 농담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느껴, 등줄기가 오싹한다.
“그건 그렇고 짝퉁 3인조가 살아 있는 건가…….”
“아아, 그녀들을 계속 수색하곤 있지만, 관리, 관리외 세계를 포함해 현시점에선 그녀들의 흔적은 찾지 못했어. 무해하다곤 할 수 없겠지만, 한동안은 상태를 봐야 해.”
“가급적 그대로 소멸이라거나 해 주면 뒤탈이 없어서 좋은데…….”
“그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정신을 차리니, 크로노는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뭐야?”
“아니, 페이트나 수호기사들에 대해선 굉장히 친절했었는데, 머티리얼들에겐 신랄하다 싶어서. 나노하나 하야테 등은 역으로 그녀들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음―.”
굉장히 녀석들 다운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확실히 내 쪽은 옆에서 보면 이중잣대처럼 보이는 반응일지도 모르겠는데.
“녀석들이 나온 원인이 나니까……그 탓에 다른 사람한테 폐를 끼칠 정도라면, 후딱 사라져 줬으면 좋겠어. 려나.”
페이트나 수호기사들의 경우,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는 것도 이유일지도 모른다.
머티리얼의 성격도 오리지널인 나노하네랑 비교해서 뒤숭숭……아니, 꽤 멍청한 느낌이었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면, 의외로 해는 없을……지도?
어쨌든.
“녀석들에겐 그냥 두드려 맞기만 했을 뿐이고……어떻게 해야 할까 이전에, 자기 탓이 되는게 싫은 것뿐인가…….”
내가 말하면서도, 미묘하게 말이 이상한데다가 굉장히 자기보신으로 가득한게, 완전 소인배다.
완전 사람을 지지고 볶았는데, 그걸 네, 그렇습니까 하고 흘려보낼 수 있을 정도로 속넓은 사람은 아닌 거다.
아―, 내가 생각해놓고도 좀 마음이 침울해지는데.
“펠릭스가 나온 건 딱히 네 책임이 아냐. 그런 사태는 아무도 예상 못했어. 혹시나 책임이 있다고 하면 나나 함장이야. 너는 기껏해야 단순한 민간협력자니까.”
“……그렇게 말해도…….”
이론상으로 크로노가 말하는 이야기는 옳다. 아래쪽에서 문제를 일으켜도, 그 책임은 그 관리자한테 있는 게 조직의 기본이다. ――실제로 지켜질지 어떨지는 별개지만.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일의 원흉은 나인 거다. 예, 그렇습니까 라고 말하며 납득하는 것도 힘들다.
뭐, 책임을 지라고 하면 할 수 있는게 없지만.
“정말……평소에는 무책임한 주제에 이상한데서만 책임감 강한데, 넌.”
“아무래도 이번엔, 좀.”
깊게 한숨을 내쉰다. 프레시아 때도 좀 그랬지만, 이번에는 그것보다도 더 위험했다. 책임을 죄 떠넘겨서 아무 일도 없었던체 할 정도로 신경이 굵진 못하다.
개선은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양쪽 다 너무나 예상 밖이라서 대응할 수단이 없었다곤 할 수 있으려나.
“솔직히……네게 이 이야기를 하는 건 꺼려지는데.”
“응?”
좀 켕기는 게 있는 것처럼 보이는 표정으로, 크로노가 숨을 내쉰다.
아직 뭐가 더 있었나.
“다른 사람들의 자세한 상황은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었지.”
“아아.”
듣고 보니, 부상은 크지 않다는 걸로 끝난 뒤 다른 이야기로 유도당한 기분이 들었다.
외상이 크지 않다고 들어서 안도했지만, 방금 크로노의 말이 묘하게 걸려 갑자기 가슴이 술렁인다.
“나노하는 심신 양쪽 다 문제없고, 지금은 이미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있어. 유노나 알프, 리제 자매나 수호기사들도 거의 다 나았고, 지금은 사후처리로 본국에 있어.”
크로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까지는 딱히 나쁜 이야기가 아니다. 남은 하야테와 리인포스, 그리고 원래라면 나노하랑 같이 학교에 가야했을 페이트.
어머니도 크로노도 부상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외에 뭔가 있는 거려나.
나쁜 예감이 멈추질 않는다.
“하야테는 역 유니존의 부담이 컸던 건지, 눈을 뜬 건 어제였어. 링커 코어에도 원래 예정보다 큰 부담이 걸려서, 안정을 위해서 한 달간 마법 금지. 그렇다곤 해도, 다리 회복엔 시간이 걸리겠지만, 후유증도 없고 지금은 본국에서 검사차 입원한 거지, 며칠 뒤면 집에서 요양하게 될거야.”
“……그런가.”
안심감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역유니존이라는게 얼마나 하야테에게 부담을 줄지 몰랐지만, 지금 들은 이야기론 원작보다 부담이 걸리긴 했지만 허용범위 안인 것 같다.
염치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정도라면 큰 문제는 아니……려나.
“그리고 리인포스 말인데, 펠리스에게 강제적으로 유니존한 것, 전생 프로그램을 강제로 정지한 대가로 유니존 능력과 야천의 서의 기능 상실, 보유마력의 큰 저하――실질적으로 더이상 싸울 수 없게 되었어. 하지만 다른 수호기사들이랑 마찬가지로 어둠의 서 시스템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덕으로, 원래 예상했던 방위프로그램의 재생 위협은 없어.”
“……그 말은?”
“아아, 그녀가 소멸될 필요는 없어졌다는 소리야. 전투능력은 거의 없어진거나 마찬가지지만, 일상생활을 보네는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한동안 안정할 필요는 있겠지만.”
요는 마법을 쓸 수 없는 보통 사람(?)이 되었다는 거려나.
리인포스 본인 입장에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겠지만, 하야테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
“일단은 결과 장땡?”
“그렇게 되겠는데. 하야테는 물론, 리인포스나 수호기사들도 기뻐하고 있었어.”
“……근가.”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원래 역사에선 사라졌어야 했을 리인포스가 살아남았다는 건 기쁜 일이다.
리인포스에게 응석부리는 하야테를 상상하면, 자연스레 표정이 풀어진다.
좋은 일들 뿐인 건 아니지만, 마이너스보다는 플러스 쪽이 크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페이트 이야긴데……계속 말했듯이 부상 자체는 크지 않아. 싱크로 드라이브의 영향으로 아직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눈을 뜨는 건 시간 문제고. 보통 생활을 보내는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통 생활?”
크로노의 빙 둘러 하는 이야기에 다시금 식은땀이 흐른다.
한 번 말을 끊은 크로노는, 내 모습을 살피며 천천히 입을 연다.
“페이트의 링커 코어는, 싱크로 드라이브의 부담을 견디지 못했어. 그녀는 다시는 마법을 쓸 수 없어.”
세계가 빙글 도는 감각.
얼굴이 새하얘졌다.
크로노가 말하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는 걸 거부하고 있었다.
페이트가……다시는 마법을 못 써?
되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해버렸다는 상실감만이, 내 마음을 지배했다.
“하아.”
리인포스가 밀어주는 휠체어 위에서, 야가미 하야테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는 하나. 말할 것도 없이 페이트 관련이다.
싱크로 드라이브때 걸린 부하로 그녀의 링커코어는 크게 손상돼 버렸다.
어둠 수집 때 작게 된 거랑은 다르다.
코어 그 자체의 구성이 심하게 손상되어, 회복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상태인 거다.
링커코어는 마도사가 가진 마력의 원천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생성 프로세스나 구성 등은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
이상을 일으킨 링커코어의 치료방법도 어느 정도는 연구가 진행되어 있지만, 이번 페이트 처럼 일정 라인을 넘어 손상된 건 치료가 어렵다는 모양이다.
페이트가 마법을 쓸 수 없게 된다. 그건 지나치게 큰 대가였다.
그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펠릭스의 출현. 그리고 그건 어둠의 서의 주인인 자신을 구하려고 하는데서부터 시작됐다.
책임감이 강한 그녀가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건 자연스런 흐름이겠지.
“주여,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모든 원인은 제게 있으니까.”
이 대화도 몇 번째인 걸까. 하야테가 자신을 원흉이라고 생각하는 것 처럼, 리인포스 또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야테는 그 말에 반론하려 했지만, 아침부터 수없이 똑같은 대화를 반복한걸 떠올리고 더 이야기 해 봐야 의미가 없으리란 결론에 이르러, 말을 꾸욱 삼키고 작게 한숨을 내쉰다.
“하아, 뭐어, 우리가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해봐야 의미가 없나.”
“……기사들도 치료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분명 뭔가 좋은 수단을 찾을 수 있겠죠.”
조심조심 입을 여는 리인포스가 말하는 대로, 수호기사와 유노는 잔업을 하는 틈틈히 무한서고에서 페이트의 링커코어를 회복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
원래라면 리인포스 자신도 그걸 함께 해야 했었겠지만, 펠릭스에게 역 유니존한 후유증으로 몸이 지나치게 쇠약해져, 수호기사 일동에게 격하게 반대되어 결과적으로 같이 안정해야 하는 하야테의 옆을 따르고 있다.
“유토 군도 굉장히 신경 쓰는 모양인디.”
크로노에게서 유토가 눈을 떴다는 연락은 받았다.
하지만 페이트의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망연자실해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제대로 된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모양이다.
나노하나 알리사, 스즈카 등도 병문안을 간 모양이지만, 무슨 소리를 하든 건성이었고,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 보여도 책임감이 강한 애니까요. 하지만 그라면 분명 곧 일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리인포스 자신은 유토와 이야기한 적은 없다. 하지만 어둠의 서 안에서 하야테와 접하는 유토를 계속 보고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상냥한 소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펠릭스와의 싸움에서 보여준 강한 정신.
결점이 많은 성격이긴 하지만, 나노하나 페이트와 마찬가지로 심지가 강한 애라고 생각한다.
이번 건은 자신의 부상보다도 페이트에게 일어난 일에 마음병이 난 거겠지만, 분명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 거다.
“응, 그치. 우리가 침울해한대도 뭐 바뀌는 것도 읎꼬.”
애초에 제일 괴로운 건 자신들이 아니라 페이트인 거다.
책임이 어디에 있든, 침울해하는 것만으론 아무런 해결도 안된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뭘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갈 수 밖에 없어.”
자만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페이트나 나노하, 유토 등에게 우리는 구원받은 거다.
그렇다면 자신들은 거기에 보답해야 한다.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는 아직 모른다. 그래도 제대로 앞을 보고, 걸음을 옮겨야만 한다.
“나는 이대로 관리국에 들어갈까 싶어.”
“예.”
“페이트나 나노하, 크로노 군이나 유토 군 등에게 도움 받은 것처럼 나도 많은 사람을 돕고싶어.”
“예.”
그건 이 반년간 계속 생각했던 것. 자신에게 힘이 있다면, 그걸 남을 위해 쓰고 싶다고.
지금은 아직 약하고, 작고, 믿음직스럽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강해지고 싶어. 좀더, 좀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예.”
리인포스도 어렴풋이 이리 되리라 예감하고 있었다.
기사들이 자신들의 길을 정한 것 처럼, 하야테 또한 자신의 생각으로 길을 고르리라고.
“그러니까 리인포스도 그걸 도와줬으면 해. 배우고 싶은 것, 함께 하고 싶은 것, 잔뜩 있어.”
이렇게 말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자그만 주인의 모습을 보고, 리인포스는 작게 고개를 그덕인다.
“이 몸은 마도의 힘을 잃은, 무력한 몸이에요.”
분명 앞으로 다시는 자신의 힘을 쓸 일이 없겠지. 하지만.
“이 생명 있는 한, 당신과 함께 걸어가겠어요. 그게 제 역할이자, 기쁨이니까요.”
축복의 바람, 리인포스의 말에 자그만 주인은 기쁜 듯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