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화 계속 곁에 있을게
눈을 뜰 때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머릿속에 잡다한 것들이 뒤죽박죽이라,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크로노와 이야기한 뒤 다른 애들이 왔던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젠장. 어차피 마법을 못 쓰게 될 거라면, 페이트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됐어야 했을 거다.
페이트가 대가를 지불할 이유는 어디도 없었다.
페이트가 앞으로 걸어갈 길, 페이트가 앞으로 구해야 했을 사람, 그 모든 걸 전부 내가 망쳐 버렸다.
구역질이 난다. 이대로 자포자기해서, 그냥 날뛰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걸 실행할 만한 배짱도 행동력도 없어서, 몇 번이나 자문자답을 되풀이하다 이렇게 지금 상태에 이르렀다.
자기 자신이 굉장히 짜증나서.
안돼, 이대로 고민해도 생각이 이상한 루프에 들어가서 마이너스만 될 뿐이야.
――유토라면 분명, 어떤 일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을테니까.
――약속, 이야?
어둠의 서 안에서 유나가 남겨준 말이 뇌리에 스친다.
“갑자기 이건 지독해…….”
이마에 손을 대고 천장을 올려본다.
이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뛰어넘으면 되는 거야, 하고 울음소리를 내뱉고 싶다.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침대를 내려가, 커튼을 갠다.
햇살이 눈부시다.
햇빛을 보고 눈을 움츠리며, 오른손을 펼쳤다 닫는다.
상처는 물론, 관절 등 몸 안의 곳곳이 아프다. 특히 왼팔은 뼈에 금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 지독히도 아프다.
하지만 조금 무리를 하면 못 움직일 건 아니다.
뭐가 어찌됐든 페이트를 만나러 가자.
뭘 이야기 하면 될지, 뭘 할 수 있는진 모르겠다. 아니, 분명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
그래도.
지금은 어쨌든 행동할 뿐이다.
오른손으로 뺨을 때린다.
“아야.”
하지만, 약간이나마 가슴의 응어리가 날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나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고자, 나는 병실 문으로 향했다.
결국, 억지로 퇴원 허가를 받아, 할라오운 집안을 방문한 건 오후가 된 이후였다.
자꾸 함께 가려는 어머니를 떨쳐내는 데 노력 대부분을 쓴 건 여담이다.
페이트의 문병에 어머니가 따라오는 게 너무 부끄럽다.
“여어―, 잘 왔어. 우선 올라오라고.”
“………….”
인터폰을 눌렀을 때 나온 건, StS에서 본 사람형태의 꼬맹이 알프였다.
“저기, 알프 씨? 그 모습은 대체……?”
“아아, 페이트가 그렇게 되어 버렸으니까. 마력을 절약하려고.”
“――윽. 에에, 괜찮은……거야?”
알프의 말에 자기 생각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뼈저리게 느낀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프에게도 영향이 나올거라는 건 바로 떠올릴 수 있었을 텐데,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음―, 뭐어. 앞으로 2, 3일은 괜찮으려나. 단지, 그 이후에도 페이트가 안 나으면 다른 사람이랑 마력 공급 계약만이라도 안 맺으면 위험할텐데.”
“나! 그거 내가 할게! 무조건 나!”
사역마는 주인에게서 마력 공급을 받아서 그 존재를 유지하고 있다. 페이트의 링커코어가 그 기능을 정지한다는 건, 그대로 사역마인 알프의 존재조차 사라져 버리는 걸로 연결된다.
지금은 쌓아둔 마력이나 어떠한 수단으로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거겠지만, 그런 상태서도 2, 3일이라는 거겠지.
그리고 페이트가 안 낫는 상태로 그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면, 마력 공급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그 역할은 모든 원흉인 내가 해야하는 거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내 기세에 한 순간 알프는 눈을 크게 떴었지만, 바로 쓴웃음을 짓는다.
“……죄 들킨 건가요.”
“그건 뭐. 크로노나 린디 씨는 물론, 나노하까지도 분명 그렇게 말할거라고 단언했었으니까.”
히죽히죽 웃는 알프. 그렇게나 난 알기 쉬운 사람인 건가.
“흐응―.”
“?”
알프가 응응 하고 뭔가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크로노에게서 이 세계의 종말같은 표정을 짓고 낙담해 있다고 들었었는데, 의외로 괜찮네.”
“……그런 지독한 표정이었었나, 나.”
그랬었겠지이.
“뭐어, 계속 낙담해 있어봐야 아무 것도 안 되고.”
“응 응. 네 재기가 빠른 부분은 장점이라고 생각해.”
“그렇겠지, 그렇겠지.”
“……스스로 동의할 부분이 아니잖아, 거긴.”
“흐응.”
알프의 태클에 뻔뻔스레 웃어보인다.
허세긴 하지만, 그래도 침울한 모습을 보이며 주위를 걱정시키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알프―. 언제까지 그런 데서 이야기하고 있을 거니―. 유토 군도 빨리 올라와―.”
안에서 에이미 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읏차, 이런. 무심코 이야기에 빠졌었네. 우선은 들어와,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알프에게 재촉받아, 거실로 들어가자 에이미 씨가 주스를 준비해 둔 상태였다.
“어서와, 유토 군. 함장과 크로노 군은 지금 일하느라 없지만, 뭐어, 느긋히 지내다 가.”
“감사합니다. 에에, 그래서 페이트는…….”
“페이트는 저쪽 방에서 자고 있어. 이리 와.”
에이미 씨에게 안내받아 페이트의 방으로 들어간다.
페이트의 방에 들어가는 건 이걸로 2번째. 그전에는 이사 때 한 번 들어갔었다.
내장은 시크하며 지극히 심플하고, 꼭 필요한 도구 말고는 우리나 프레시아와의 사진이 장식되어 있을 뿐.
별로 여자애답지 않은 부분이, 어떤 의미론 페이트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페이트는 침대 안에서 편안하게 숨소리를 내고 있다.
“크로노 군에게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몸쪽은 이미 문제없어.”
“뭐어, 좀 과로같은 느낌이라 한동안 안정은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슬슬 눈도 뜰 때가 아니려나.”
에이미 씨의 말을 알프가 보충한다.
“그럼, 우리는 거실쪽에 있을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불러줘.”
“아, 예.”
배려해 준 건지, 에이미 씨와 알프는 나를 남기고 방을 떠나갔……다고 생각했는데, 빼꼼 에이미 씨가 고개만으로 안을 바라본다.
“잠자는 공주님은 왕자님의 키스로 깨어나는 거지―, 우후후.”
“……안 한다니까요.”
그보다 어째서 이쪽 세계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거야. 아니면 저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건가.
“응―, 유감. 페이트도 기뻐할텐데―.”
“그럴리가요.”
미움받진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니고, 넘으면 안 되는 선이겠지.
“쳇―, 재미 없어―. 뭐, 됐나. 느긋히 있다 가―.”
“……정말.”
やれやれ、エイミィさんの冗談にも困ったものだ。まぁ、落ち込んでる俺に対して気を使ってくれた……と、勝手に思っておこう。 에이고야, 에이미 씨의 농담도 곤란하다. 뭐, 침울해진 나를 배려해 준 거……라고 멋대로 생각해 두자.
“읏차.”
책상에 붙어 있던 의자를 침대 바로 옆으로 옮겨서 앉아, 페이트가 자는 모습을 바라본다.
팔걸이에 팔을 싣고, 그 위에 턱을 올린다.
후―후―하고 귀여운 숨소리를 내고 혈색도 좋은 걸 보면, 정말로 그냥 자고 있는 것 같다.
조금 흔들면 지금 당장에라도 일어나, 평소대로 미소를 보여줄 것 같은 분위기다.
링커코어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낙담할지, 태연히 받아들일지.
아니, 내심은 어찌 됐건 우리를 신경 써서, 적어도 겉으론 낙담하는 모습은 안 보여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페이트는 그렇게 많은 것들을 혼자 안아버리는 애다.
나노하 같은 애들에겐 그것도 드러낼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나론 부족하겠지, 역시.
이상한 부담을 지지 않고 끝나는게 편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쓸쓸하게도 느낀다.
아니, 이미 더 이상 등에 못 질 정도의 책임이 있다니까.
자신에게 딴지를 걸면서 페이트에게 손을 뻗는다.
내뻗은 손끝은, 몰캉몰캉하고 부드러운 뺨을 찌른다.
하지만 페이트는 전혀 눈을 뜨는 기색이 없다.
그대로 손을 페이트의 이마로 옮겨 댄다.
……뭐어, 정상 체온, 인 건가.
히죽, 하고 페이트의 입구가 칠칠치 못하게 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꿈, 꾸고 있는 거려나.”
어쩐지 기뻐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면, 나처럼 악몽을 꾸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결국, 내가 뭘 할 수 있는 걸까.
이렇게 페이트의 자는 모습을 보러 와도, 속죄가 될만한 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지, 나.
“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갑자기 페이트가 작게 소리를 내고, 그 눈이 딱 뜨인다. 조금 깜짝 놀랐다.
멍한 페이트의 눈이 천천히 옆으로 흘러가, 나를 붙든다.
“유……토?”
“아아. 음――, 상태는 어때?”
“………….”
침묵. 아마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 걸거다.
“조금, 나른할……지도.”
4일이나 자면 아무리 건강한 몸이라도 그렇게 되겠지. 실제로 나도 어제는 부상관 별개로 몸이 무거운 느낌이었다.
일단 에이미 씨나 알프에게 말하고 올까.
“그렇구나. 지금, 에이미 씨를 불러 올테니까 조금 기다려줘.”
“아.”
그렇게 말하고 페이트의 이마에 대고 있던 손을 떼자, 유감스러운 듯한 소리를 내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이런 손으로 괜찮다면 나중에 얼마든지 빌려 줄테니까, 안심해.”
“……응.”
눈물을 글썽이며 기쁜 듯 끄덕이는 페이트는, 조금 귀여웠다.
“그럼, 유토 군은 잠시 여기서 기다려 줘.”
에이미 씨에게 페이트가 눈을 뜬 걸 전하고, 에이미 씨와 알프를 따라 방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제지당했다.
“에?”
“뭐야, 여자애가 갈아입는 걸 엿볼 생각이냐?”
에이미의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알프가 히죽 웃는다.
오케이, 이해했어.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끝나면 불러 줘.”
“응, 조금 걸릴테니까 TV라도 보면서 느긋히 있어 줘.”
“아―, 예.”
그런 말은 들었지만, TV같은 걸 볼 수 있을만한 기분이 아니다.
소파에 앉은 채로 멍하니 보낸다.
으음, 딱히 의식해서 하는 게 없으면, 괜히 욱신욱신 상처가 아프다.
이런 걸로 끝난 건 행운이라 할 수 있겠지. 자신의 역량도 분별치 못하고 이것저것 다 하려 한 결과가 이 꼴이다.
그 삯을 내는 게 나 혼자라면 괜찮지만, 다른 사람도 말려들게 만든 게 성질이 나쁘다.
마이너스만이 아니라 플러스가 된 부분도 있다. 하지만 페이트에게 평생 따를 상처를 남겨버렸다는 사실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머리가 아파진다.
…………아무나 잡고 한탄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에이고야.
이런 쓸모없는 것들을 생각하며 시간이 어느정도 지난 건지.
철컥 소리와 함께 에이미 씨가 페이트의 방에서 나온다.
“지금은 알프가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 좀 더 기다려 줘.”
“아, 예.”
“일단, 페이트에게는 내가 전부 이야기 해 뒀으니까.”
다른 모두의 상태, 그리고 페이트의 링커코어 문제 이야기겠지.
원래라면 링커코어는 내가 이야기해야만 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나를 일단 방에서 내보낸 건, 일부러 그 역할을 맡아주려 한 걸까.
“……감사합니다.”
미안하다고 하려던 말을 삼키고, 대신에 감사하며 고개를 숙인다.
“정말, 뭐든지 자기 책임으로 하려고 하지 마. 이렇게 말하는 건 뭐하지만, 아무도 유토 군에겐 기대같은 거 안 했으니까. 좀 더 입장을 이해해. 너는 자기 실력보다 잘 노력했어.”
“………….”
반론할 말도 꺼내지 못하는 상태서, 에이미 씨가 머리를 꽉꽉 쓰다듬었다. 지금 그러면 아픈데요.
에이미 씨의 말은 옳다. 아무도 나한테 기대같은 건 하지 않았을 거고, 그 싸움에서 실력 이상의 걸 해냈다곤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로 끝날 문제는 아닌 거다.
그걸 말해도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니, 말론 하지 않는다. 얼굴에는 좀 나오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기다렸지―.”
이윽고, 페이트와의 이야기를 마친 알프가 나온다.
“뭐, 지금의 네 역할은 조금이라도 페이트의 옆에 있는 거야. 다녀 와, 소년!”
에이미 씨가 등을 두드리며, 페이트의 방으로 떠민다.
“뭐가 어쨌든 상관없지만, 어딘가서 이래저래 정보 왜곡해서 말하지 않았나요.”
그 역할은 저보단, 나노하 등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뭐어, 아직 이 시간엔 학교도 끝나지 않았겠지만.
아, 나노하에게 연락하는 걸 깜빡했다. 뭐, 됐나. 에이미 씨가 해 주겠지.
내가 방에 들어가자, 다른 잠옷으로 갈아입은 페이트가 몸을 일으켜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묘하게 머리가 흔들리는게 위험해 보인다.
“자고 있어.”
“아우.”
반대할 틈도 없이 머리를 눌러, 기세가 넘치지 않도록 조절하며 천천히 침대에 눕힌다.
“이야기는 전부 들었지? 네 링커 코어 이야기도.”
여기에 와서 빙빙 돈 이야기를 할 마음은 안 들었다.
단도직입, 본론부터 꺼낸다.
“응.”
자신이 다시는 마법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걸 알고 있을 텐데.
이 소녀는 어째서 그런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가.
“미안해. 전부 내 책임이야. 내가 좀 더 잘 했었으면”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혹시나, 내가 자신의 마력을 제대로 쓸 수 있었다면. 조금 다른 수단으로 대응했었으면.
머리에 떠오르는 방법은 전부 실현할 수 없고, 이제와서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페이트에게 사과를 했지만, 앞으로 뭘 어떻게 갚으면 될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유토, 고개를 들어줘.”
페이트의 말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다.
알고 있다. 이 애가 내게 사과도 책임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 이렇게 사과하는 것도 내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나는 유토를 원망하거나 안 하고, 내가 한 걸 후회하지도 않아.”
“………….”
페이트의 말은 틀림없이 본심이겠지. 그 표정은 어쩐지 자랑스럽게도 보였다.
“유토에겐 들켰지만, 제대로 살아 돌아올 자신도 없었어. 아마, 그 때 유토의 말이 있었으니까 나는 여기에 히야?!”
꾸욱, 하고 페이트의 뺨을 집어당겨, 딱 좋게 늘어났을 즈음 손을 뗀다.
“갑자기 뭐하는 거니?!”
“처음에 멍청한 생각을 했던데 대한 벌입니다. 어떤 때도 제대로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도록 하세요.”
“……유토한테 듣고 싶진 않아.”
뺨을 누른 페이트가 지긋이 노려봤다.
“너무하네. 나는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최우선이라고.”
“헤에―.”
전혀 조금도 눈꼽만치도 안 믿는 눈이었다. 조금 열받아서, 다시 뺨을 집어당기려고 손을 꾸물거린다.
“어, 어쨌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냈는걸. 유토랑 다른 애들과 함께 힘낸 건, 내게는 누구에게도 자신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내 손을 본 페이트가 허둥지둥 변명하듯 말을 잇는다. 응, 뭐, 확실히 제대로 살아 돌아왔고, 내가 이 이상 뭔가 말할 것도 없으니 얌전히 손을 내린다.
“……에헴, 하고 가슴을 폈어?”
“응. 에헴.”
침대에 누운 채로, 약간 가슴을 움직이는 페이트.
“………….”
“………….”
한동안 침묵.
“쿡.”
먼저 소리를 낸 건 어느 쪽이었을까. 양쪽 다 작게 뿜기 시작해, 서서히 그게 웃음소리로 바뀐다.
“정말, 웃다니 너무해, 유토.”
“자기도 웃어놓고 할 말이 아니잖아.”
실제로 말과는 달리 페이트의 얼굴도 웃고 있다.
마법이 쓸 수 없게 된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우려도 없는, 적어도 겉으로 내보이지 않을 정도로는 결론을 낸 모양이다.
……강하구나, 이 애는.
덕분에 내 응어리도 제법 떨쳐져 버렸다.
이런 페이트의 앞에서, 낙담해서 우물쭈물 후회하고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좋아, 정했어.”
“?”
갑자기 말을 꺼낸 날 보고 페이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네 힘이 되고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뭐든 말해 줘. 내가 할 수 있는 게 얼마 되진 않겠지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뭐든 할게.”
“에, 에.”
페이트는 내 말을 따라오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뜨고 있다.
“혹시 네가 바란다면 계속 곁에 있을게. 부르면 언제든 달려갈게.”
“유, 유토? 그, 그, 내 마법을 신경쓰고 있는 거면”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내 마음이 안 풀려. 네 마음같은 건 알바 아냐. 내가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하고 싶어.”
페이트의 말을 떡하니 막고, 내 생각을 전달한다.
그래, 뭐가 어떤 결과가 되든,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페이트가 나를 용서할지 안 할지는 관계 없었다.
페이트나 나노하처럼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리라는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마음이 풀리도록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거다.
“유토, 하는 이야기가 엉망진창이야…….”
“옛날부터 이랬어.”
나도 완전 기세만으로 말해서, 아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확실히 그랬을지도.”
그렇게 말하고 쿡쿡 웃는 페이트.
“네가 반대 입장이었다면 어떡할 거야. 내가 신경 안 쓰고 있어. 그러니까 너도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듣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 있어?”
“……그건.”
페이트의 성격을 생각하면, 절대로 무리겠지. 것보다 나보다 더 신경 쓰는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뭐, 그렇단 거야. 내가 해 줬으면 하는 게 있으면 뭐든 말해 줘. 네가 응석부려 주면 나도 기쁘고.”
“? 내가 응석부리면 기쁜 거야? 폐가 아니라?”
“음―, 뭐랄까 자신이 신경쓰고 있는 사람이 의지하거나, 필요로 하는 건 기뻐지지 않아? 뭔가 해 주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도가 지나치거나, 좋아하지도 않는 녀석이라면 열받겠지만.”
“……그거라면 어쩐지 알 것 같기도.”
것보다, 프레시아한테 페이트가 했던 게 그야말로 그거였지.
“그런 거니까 마음껏 나한테 응석부리도록 하라고!”
“……그렇게 말해도.”
곤란하다는 듯 쓴웃음 짓는 페이트.
그렇지요. 갑자기 이런 소리를 들어도 보통은 당황할 뿐이다. 애초에 응석부리고 싶다고 느끼는 상대라고도 할 수 없고.
객관적으로 봐서, 페이트가 나한테 응석불이고 싶다고 생각하는진……응, 일단 없나. 것보다, 진짜 기분나쁘다. 조금 울적해졌어. 자중해라 나.
“뭐, 뭔가 해 줬으면 하는게 떠오르면 말해. 할 수 있는 범위라면 해 줄테니까.”
“……응, 고마워.”
페이트는 약간 머뭇거렸지만, 이윽고 체념한 듯이 끄덕이며 쓴웃음을 지어보인다.
“그래도, 유토. 아까 한 말, 거의 프로포즈야?”
“………….”
에에―,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 자기가 말한 말을 하나씩 떠올린다.
………………오오.
“아, 아니라고?! 딱히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
“응, 알고 있지만. 예전에도 이런 적 있었지?”
말할 것도 없이 시간의 정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쿡쿡 웃는 페이트에게 세련된 대답이 떠오르질 않는다.
“죄송합니다.”
일단 사과해 두자. 어째서 사람은 이렇게나 잘못을 되풀이하는 건가.
“신경 안 써도 괜찮지만, 유토는 꽤 분위기만 가지고 이야기 하지? 조심하는 편이 좋아.”
“……예.”
유나도 비슷한 소리를 한 적 있었지…….
9살 여자애에게 설교당하다니 뭐야 이 쓸쓸함.
쿡쿡 즐거운 듯이 웃는 페이트와 풀죽는 나.
어째서 이리 된거야.
꼬르르륵~
“………….”
“………….”
갑자기 울려 퍼진 소리에 침묵하는 두 사람.
뭐야, 이 기시감. 너무 노린듯한 타이밍이라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말 없이 페이트를 보고 있자, 그 얼굴은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들고, 이윽고 이불 안으로 틀어박힌다.
위험해. 이거 귀여워.
“식욕은 있어?”
“…………일단.”
침대 안에서 자그맣게 목소리가 돌아온다. 복받치는 웃음이 안 터지게 하는 게 괴롭지만, 어떻게든 참으며 일어난다.
울려퍼진 소리는 신경 안 쓰는게 신사의 소양.
“응. 그럼, 에이미 씨한테 뭔가 준비 부탁하고 올게.”
“………….”
대답은 없었지만, 침대 안에서 작게 끄덕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아, 정말 페이트 귀여운데. 짱 귀여워.
페이트를 여동생으로 삼은 크로노가 진짜 부럽다. 긴가도 그렇지만, 이런 귀엽고 솔직한 여동생이 있으면 진짜 귀여워 할 수 있다고, 나.
“오, 유토 군. 딱 좋은 타이밍에.”
방을 나서보니, 마침 에이미 씨가 죽을 쟁반에 싣고 있는 타이밍이었다.
“굿 타이밍이에요, 에이미 씨.”
“에헤헤―. 페이트도 4일만에 눈을 뜬 거니까―. 배가 고프지 않을까 싶었어. 오랜만의 식사니까 위에 상냥한 죽으로 했어.”
“놀라운 예측능력. 신부력 너무 높아요.”
페이트를 여동생으로, 에이미 씨를 신부로 삼는 엘리트 집무관이 너무나 부럽다. 젠장, 리얼충 폭발해라.
에이미 씨에게서 쟁반을 받는다. 김이 오르는 계란죽은 정말 맛있어 보였다.
“후후, 고마워. 유토 군은 이미 먹고 왔지?”
“예, 일단.”
시간이 시간이니, 여기에 오기 전에 어머니와 식사는 마쳤다.
“그런가. 그럼, 페이트를 잘 부탁해―.”
그렇게 말하며 어깨에 손을 놓고, 빙글 몸을 돌린다.
나만인가. 소파에 앉아있는 알프도 히죽히죽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들기만 하고 이쪽으로 올 마음은 없어 보인다.
괜찮지만.
그대로 페이트의 방으로 떠밀리고, 문도 닫힌다.
뭐려나~. 뭐, 됐지.
보면 페이트는 아직 이불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페이트―, 기다리던 밥이에요―.”
대답은 없다. 페이트는 절찬 틀어박힘 발증중인 모양이었다.
에이고야.
나는 쟁반을 책상에 두고, 이불에 손을 댄다.
“에잇!”
“왓?!”
억지로 이불을 뺏는다.
움츠리고 눈물맺힌 눈으로 페이트가 이쪽을 올려보고 있다.
“에이미 씨가 죽을 만들어 줬어. 먹을 수 있어?”
딱히 딴죽 없이 무시하는 나 진짜 신사.
“……응.”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로 눈물맺힌 눈으로 꾸물꾸물 몸을 일으키는 페이트. 안돼, 이건 모에해. 진짜 귀여워. 완전 쓰다듬고 싶어.
“그럼――.”
그대로 쟁반 째로 죽을 페이트에게 건네려다 깨닫는다. 예전에 내가 아스라에서 자던 침대랑 다르게, 이 침대에는 식사를 놓을만한 곳이 없다.
무릎에 실어도 괜찮지만 지금의 페이트라면 조금 불안정해서 위험하려나. 어떡할까.
한순간 그 때의 악몽이 머리에 떠오르지만, 그걸 페이트에게 하기엔 좀 부끄럽……지도 않나, 딱히. 애 상대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도 바보같고.
“유토?”
“아아, 미안.”
의자에 앉아, 숟가락으로 죽을 뜬다. 응, 뭐, 적당한 온도로 식어 있으려나?
“자, 앙―.”
“엣, 에엣?!”
입가로 내민 숟가락을 보고 잔뜩 허둥지둥대는 페이트.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리액션 감사합니다.”
“에, 아니, 괜찮아! 혼자 먹을 수 있으니까!”
“안돼. 상태가 나쁜 환자는 얌전히 말하는 걸 들으렴.”
“괘, 괜찮아. 밥 정도는 혼자 먹을 수 있으니까!”
“기각.”
“굉장히 멋진 미소로 이야기했다?!”
안돼, 이건 진짜 즐거워. 뭉게뭉게 내 가학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고?
“뭐, 페이트가 이런 나같은 거가 먹여주는 게 절대로 싫다고 한 다면 안 하겠지만 어떡할래?”
“벼, 별로 싫은 건 아니지만……부끄럽다고 할까.”
“……그렇겠지, 나처럼 저 아래 있는 사람이 먹여주거나 하면, 페이트 입장에서 부끄럽기도 하겠지.”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며 말해 본다.
“그런 소리 안 했어?! 그, 그게 아니라…….”
“아니, 무리 안 해도 괜찮아. 내가 나빴어. 진심으로 싫어하는 상대한테 이런 걸 하는 건 안 좋겠지…….”
“으~~읏!”
눈물 맺힌 눈으로 신음하는 페이트가 원망스러운 듯 이쪽을 바라본다. 아아, 좋구나. 이 표정. 두근두근해.
“유토가 괴롭혀……아, 앙―.”
이윽고 체념한 모양인지, 페이트가 앙―하고 입을 열었다.
아아, 진짜 귀엽네. 유나도 이렇게 자주 놀리거나 한 적이 있다. 푹 하고 가슴을 파는 고통이 찾아왔지만, 무시.
이렇게 해서 새빨개진 페이트에게 죽을 먹인다는 내 임무는 멋지게 성공한 거다.
“저기, 유토. 하나 부탁해도 괜찮아?”
식사를 마치고, 다시 누운 페이트가 이쪽을 올려다보며 조심조심 물어본다.
“아까도 말했지만, 하나가 아니라 몇개든 괜찮아.”
내가 하는 게 속죄가 되리라 생각하진 않지만, 페이트가 바란다면 가능한 이뤄주고 싶은 건 본심이다.
“아까같이 손, 올려줄 수 있어?”
그러고 보면 아까 좀 섭섭해 하는 것 같았지.
바람대로 페이트의 앞머리를 밀어헤쳐, 이마에 손을 올려준다.
“이런 걸로 괜찮아?”
“고마워. 유토의 손, 차갑고 기분 좋아.”
“냉혈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어.”
쌀쌀맞게 말하자, 왠지 우스운 듯 웃기 시작하는 페이트.
“뭐야.”
“알리사가 말했었어. 손이 차가운 사람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뭐라 말할 수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단순한 미신이고, 손이 차가운 건 냉증일 뿐이니까?”
“후훗.”
내 말에 페이트는 즐거운 듯 웃을 뿐이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 건지.
“것보다, 내 손보다 적신 타월 쪽이 좋지 않아?”
“싫어. 유토의 손이 좋아.”
생각지도 못한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싫다, 이 애 귀여워.
그리고 말한 뒤에 부끄러워진 건지, 조금 이불을 들어올려 얼굴을 숨기면서 말을 잇는다.
“아, 그, 다른 사람의 손이 닿으면 왠지 안심돼. 그러니까 타월보다 유토의 손 쪽이……좋구나 싶어서.”
아아, 확실히 약할 때는 누군가, 라기보다 사람의 온기가 닿고 있으면 안심할 수 있지.
뒷부분은 목소리가 줄어들어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대강 납득했다.
“그런가.”
한 마디만 돌려주고, 나는 페이트의 이마에 계속 손을 댔다.
“에이미 씨! 페이트가 눈을 떴다면서요!”
학교가 끝나자 마자, 나노하는 스즈카, 알리사와 함께 할라오운 집안이 사는 맨션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연락해 온 에이미는 왠지 그 집의 사는 방이 아니라, 그 맨션 현관으로 약속 장소를 지정했다. 염화도 금지라는 덤도 붙여서.
“미안해. 지금은 이유가 있어서 면회 사절이야.”
“에.”
에이미의 말에 페이트의 몸에 뭔가 있었나 싶어서 일행의 얼굴이 파래졌지만, 이어지는 에이미의 말에 그게 기우였다는 걸 깨닫는다.
“아, 컨디션이 악화됐거나 그런 건 아니야? 오히려 경과는 완전 순조로와.”
“그럼, 왜 면회 사절인 건가요?”
일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나노하도 알리사도 스즈카의 질문에 동의하듯 끄덕인다.
“후후후~, 그건 말야―. 봤을 때의 즐거움이야♪”
검지를 세우고,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에이미에게 이끌려, 일동이 목격한 건.
페이트의 이마에 손을 대고 전에 없이 부드러운 표정을 지은 유토와, 행복한 듯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페이트의 모습이었다.
페이트는 눈을 감고 있지만 자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라, 중간중간 유토에게 말을 걸고, 거기에 유토가 대답하거나 해서 정말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문 틈으로 엿보는 초등학생 3인조가 눈을 빛내고 있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와아. 왠지 좋은 분위기♪’
‘스즈카! 카메라!’
‘응!’
안에는 들리지 않도록 휴대폰 카메라가 아니라 셔터음을 끌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를 신경써서 꺼낸다.
작은 소리로 떠든다는 멋진 스킬을 펼치던 삼인조를, 에이미와 강아지 형태가 된 알프가 만족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있던 에이미는, 이미 페이트의 방에 도촬 카메라 설치를 마친 상태다.
일련의 흐름은 모두 녹화되어, 그 날 프레시아에게 보내졌다.
딸의 사랑스런 모습은 그녀를 굉장히 기쁘게 만들었다고 한다.
유토와 페이트가 삼인조가 있는 걸 눈치챈 건, 잔뜩 그녀들에게 놀림당할 거리를 제공한 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