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화 즐겁게 놀아볼까
“나는 곧 죽을 거야.”
프레시아의 용태가 악화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미드칠더의 병원에서 재회한 엄마의 첫 말이 이거였다.
“…….”
“괜찮아. 금방 나을거야.”라고 말을 걸고 싶었다. 하지만, 여윈 몸에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런 말을 하는 것조차 주저될 정도였다.
프레시아가 죽을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건 누가 봐도 명확했다.
이 반년간의 생활로 프레시아가 불치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 최후의 이별이 그리 멀지 않았으리란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프레시아가 나노하나 유토 등, 친구들이 있는 곳에 페이트를 보낸 것도.
그렇다고 해서 프레시아의 말을 그대로 수긍하는 건 어머니의 죽음을 긍정하는 것 같아서, 페이트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어.
“어서 오렴, 페이트.”
그런 딸에게 쓴웃음 지으며 페이트를 부르는 프레시아. 페이트가 가까이 다가오자, 살며시 그 뺨을 쓰다듬는다.
“네 이야기를 들려 주렴.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 친구와 지낸 일들, 그리고 미래의 일들을.”
앞으로, 라는 게 프레시아가 죽은 뒤를 가리키고 있다는 걸 원치도 않게 이해해 버렸다.
안절하고, 슬퍼서, 눈물이 흘러 넘칠 것 같은데도, 그걸 참고, 프레시아의 바람을 이뤄주기 위해 입을 연다.
주얼 시드 사건 이후로 엄마와 이야기할 때 조금 바뀐 말투로, 드문드문 이야기를 시작한다.
“응, 저기…….”
나노하나 알리사, 스즈카, 그리고 유토 등 친구들의 이야기. 학교에서의 생활. 그리고 어둠의 서 사건에 대해서. 자신이 다시는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되어 버린 걸, 하나씩, 천천히.
우미나리에 온 이후, 정기적으로 보냈던 비디오 메일로 이미 이야기했던 내용도, 다시금 이야기해나간다.
엄마와의 대화를 모두 자신의 마음에 새겨넣듯이.
“싱크로 드라이브를 쓴 걸, 후회하고 있니?”
프레시아의 질문에, 페이트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젓는다.
“후회같은 거 안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낸 거니까.”
며칠 전, 유토에게 말한 것과 거의 같은 말. 그건 꾸밈없는 페이트의 본심이었다.
프레시아도 일의 개요는 린디에게서 전해 들었었다.
페이트가 자신이 가르친 마법 “싱크로 드라이브”를 써서, 다시는 마법을 쓰지 못하는 몸이 된 것도.
그 경위를 가지고 남을 원망할 생각도 없었고, 자신에게 그런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페이트가 스스로 골라, 스스로 결정해, 스스로 한 일이라면, 자신이 끼어들 일은 아무것도 없다.
싱크로 드라이브를 포함해, 지금의 자신이 페이트에게 줄 수 있는 건 전부 건제줬으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 단순한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된 거에 미련은 없니?”
유토가 결국은 하지 못했던 질문을 프레시아는 한가운데 직구로 내려꽂았다.
페이트는 그걸 듣고 조금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바로 입을 연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야. 그래도, 마법이 내 모두는 아니니까. 마법을 쓰지 못하게 돼도, 나는 내 길을 나아갈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은 페이트가 떠올리고 있는 건, 진지하게 자신에게 향해오는 하얀 소녀와 수없이 쓰러져도 그 때마다 일어난 소년의 모습.
하얀 소녀는 만날 때마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거절하는 자신에게 주눅들지도 않고.
소년은 자신의 힘으로 어쩌지도 못하는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수없이 다시 일어났다.
힘이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니다.
정말 소중한 건 마법의 힘이 아니라, 그 마음의 강함.
어떤 때라도 포기하지 않는 강함. 그걸 그 둘은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어둠의 서의 꿈 안에서 얼리샤의 소리를 들었어. 리니스와 함께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어 준다고. 그러니까 나는 괜찮아.”
――나는 페이트의 언니니까. 리니스와 함께 계속 페이트를 지켜보고 있어.
그때 들은 얼리샤의 목소리.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환청이라며 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소리는 환청도 잘못 들은 것도 아닌, 진짜 얼리샤의 목소리라고 믿을 수 있었다.
“그래, 얼리샤가…….”
페이트의 말에 프레시아 역시 눈을 감는다.
가장 사랑하는 딸, 얼리샤. 얼리샤를 잘 아는 그녀기에, 페이트의 말이 진실이었을 거라고 솔직히 받아들여 버렸다.
가끔 떼를 부려 곤란하게 하거나 할 때도 있었지만, 그 애는 그 누구보다도 상냥한 애였다.
분명 페이트의 말대로 계속 얼리샤는 자신의 여동생을 지켜봐 나가겠지.
얼리샤와 리니스는 지금의 자신들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반년 전까지라면 자신의 행동에 속이 쓰렸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지금 자신들의 관계라면 그리 나쁘지는 않을 거다. 설령 이별이 가깝다 해도.
“나, 관리국에 들어갈까 싶어. 물론, 지금 당장이라는 것도 아니고, 마법도 못 쓰게 되어 버렸지만.”
마법을 쓰지 못한다 해도, 에이미 같은 사람들처럼 관리국에서 일할 순 있다.
자신이 나노하나 크로노에게 도움을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
직접 자신이 누군가를 돕지는 못하게 되어 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그걸 위해 고른 길이 관리국에서 일하는 거였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길을 나아갈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물어볼 상대는 잔뜩 있다.
여러 사람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천천히 자신의 길을 정해나가고 싶다.
하나하나 자신에게 들려주듯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페이트에게, 프레시아는 미소를 띄우며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자신이 죽더라도, 페이트는 괜찮으리라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유토 군, 요즘 멍하니 있을 때가 많네.”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나노하, 알리사, 스즈카 세 사람과 함께 걷는 중에, 갑자기 스즈카가 이야기를 꺼냈다.
페이트가 눈을 뜨고 닷새가 지난 방과 후. 페이트는 신중을 기해 자택요양을 하고 있었는데, 프레시아의 용태가 급변하는 바람에 미드칠더의 병원에 가 버렸다.
사흘 전부터 학교에 복귀했지만, 어제까지 페이트가 있는 곳에 매일 들러 이야기를 하던 나는 갑자기 예정이 비어 버려서 이 세 녀석들과 함께 귀가하고 있다.
페이트가 눈을 뜬 날의 일도 포함해서, 셋에게 잔뜩 놀림당한 건 말할 것도 없다.
원흉인 나로선 당연한 걸 해준거지만, 나노하한테 그 소리를 했더니
“그건 유토 군 탓이 아냐. 누구 책임도 아냐. 그런 식으로 자기 탓이라고 믿으면 안돼! 그런거 페이트도 기쁠 리 없는 걸.”
이라며 뾰루퉁한 표정으로 화를 냈다.
하야테나 리인포스, 볼켄즈와도 약간 이야기를 했지만, 펠릭스는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내게 원인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뭐어, 원래 역사의 흐름이랄까, 원작지식이 없으면 확실히 그런 견해도 있겠지.
여기서 내 책임이라고 아우성쳐봐야 결국 그건 내 독선이고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 거라 딱히 반론은 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다친데가 아프고도 아파서 지금 당장에도 죽을 것 같아.”
“얌전히 입원 하라고.”
내 말에 알리사가 기막힌 듯 딴죽을 건다.
“한 번 억지를 써서 퇴원해 놓고, 어떤 얼굴로 돌아가라는 거야.”
페이트가 이쪽에 없는 이상, 억지로 퇴원할 필요성은 없어져 버렸다.
알리사가 말하는 대로 다시 한 번 입원하는 게 편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볼썽사납다.
이래봬도 나는 허풍쟁이인 거다.
거기에 다친데가 아픈 건 사실이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다.
내가 학교에서 멍하니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복수의 사고행동·마법처리를 병렬로 하는” 멀티태스킹의 연습을 겸해서, 브레이커에게 미드칠더의 말을 배우고 있는 거다.
단지, 커다란 마력을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멀티태스킹이 어려워지는 모양이라, 애초에 재능도 없는데다 한도조차 알 수 없는 마력을 가진 나는 말을 배우는 정도만 해도 다른 부분이 소홀해지기 쉽다.
익숙하면 좀 더 개선은 될 모양이지만…….
멀티태스킹을 막 배운 나노하가 전투 시뮬레이션같은 고도의 행위를 하고 있었던걸 되돌아 보면 지나친 격차사회에 눈물이 나오지만, 나도 무한서고에서 조사할 수 있게 될 정도론 미드의 문자를 배워두고 싶은 거다.
『수업중에 마법 연습을 하지 말라곤 안 하겠지만, 유토군은 아직 다쳤으니까 무리하면 안돼?』
『예이예이.』
물론 나노하에겐 바로 들켰다. 하는 난이도야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녀석도 처음에는 제법 멍하니 있을 때가 많았으니 말리진 않는 모양이다.
“그만큼 페이트를 만나고 싶었던 거잖아. 어쩔 수 없어.”
스즈카가 농을 던지지만, 그 말 자체는 틀린 곳이 없으니 부정하지 않는다. 페이트가 눈을 뜬 날, 내가 페이트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었던 게 이 꼬맹이 삼인조의 묘한 인상에 박차를 가한 모양이다. 에이구야.
“나한테야 별 상관 없지만, 페이트나 다른 녀석들에게 지금같은 억측을 말하는 건 그만둬 줘. 자기 상상이나 소망으로 상황을 믿는 건, 도가 지나치면 이런저런게 뒤틀려서 귀찮게 되니까―”
이를테면 페이트가 내가 아닌 이성에게 흥미를 느꼈을 때라거나. 다른 애들이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서, 이래저래 귀찮은 쪽으로 뒤틀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맘때의 여자애가 사랑에 흥미를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지나치면 이래저래 귀찮아진다. 실제로 체험한 적은 없지만, 그런 트러블에 얽힌 체험담은 하도 넘친다.
과거의 내 친구나, 유나의 친구도 얼마간 그런 경험이 있다.
어릴 때는 자그만 싸움 정도로 끝나지만, 그래도 못을 박아 두는 게 낫겠지.
“바라보자, 셋 다 기막혀하는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무례한 녀석들이다.”
“거, 거기는 목소리 내서 말할 부분이 아닌데!?”
“정말 너는 극히 드물게 멀쩡한 소리를 하네……만에 하나 정도지만.”
나노하는 어쨌든, 알리사가 너무 무례하다. 대체, 이 녀석은 날 뭐로 생각하는 건가.
“뭐, 무슨 일이든 적당히 해.”
“아, 아하하……미안해.”
“사과 안 해도 괜찮아. 내가 아닌 녀석들에게 신경 쓰란 말이니까.”
스즈카의 사과에 좀 어깨를 움츠러트리며 말한다.
장난을 좋아하는 내가 그리 잘난듯이 말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나한테 말하는 거야……뭐, 원하는 대로 말해 줘.”
그 정도의 도량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옆에서 보면 잘난척하는 것 뿐이겠죠, 네.
“에, 음, 그럼, 이럴 때니까 물어보는 건데, 유토 군은 결국 페이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니?”
조심스레 손을 들고 머뭇머뭇 물어보는 스즈카.
“어떻게라고 해도…….”
“이런 소릴 하면 또 화낼지도 모르겠지만, 유토 군이 페이트를 대하는 모습은 우리들을 대할 때 보다 상냥하다고 할까, 왠지 특별한 느낌이 들어서.”
스즈카의 말에 나노하와 알리사도 굉장한 기세로 고개를 끄덕여대고 있다. 기세 너무 넘치잖아.
확실히 듣고 보니, 그런 기분도 안 들진 않는다.
어째설까. 묘하게 보호욕이 자극되는 거려나.
“유토 군, 페이트랑 이야기할 때, 자기가 어떤 표정 짓고 있는지 알아?”
스즈카의 말에 고민한다. 페이트랑 이야기 할 때 자신의 표정, 말이지.
“스즈카네 고양이들을 귀여워하는 것 같은 표정?”
내가 그렇게 말하자, 셋이 함께 응? 하고 고개를 갸웃거린 뒤, 굉장히 맛없는걸 먹었지만 솔직히 그걸 말하긴 힘들 때 같은, 뭐라 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를 향하는 눈길이 다들 차갑다.
“뭐어, 페이트를 귀엽다곤 생각해. 귀염둥이나 애완동물같은 의미로. 그거 말곤, 그런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
“귀염둥이…….”
“애완동물…….”
“여동생이라니……”
스즈카, 알리사, 나노하의 눈길이 좀 더 차가워졌다.
조금 있기 거북하지만, 사실이니 어쩔 수 없잖아.
“애초에 페이트도 나를 이성으로 별로 의식 않을 거잖아.”
이성 어쩌고 저쩌고보단 의지할 상대라고 할까, 보호자……도 좀 아닌가.
단순한 친구 이상이라곤 생각해 주고 있을 것 같지만, 거기에 연애감정 어쩌고는 없을 거다.
“유토 군…….”
“이러니까 남자는…….”
“하아…….”
셋 다 연민의 눈길을 향해온다. 이게 견해의 차이라는 건가.
그 부분은 페이트에게 직접 확인해 두라고 말하고 싶지만, 경험이 없는 만큼 본인도 남녀의 그런 부분을 잘 모를 것 같은 기분이 드네~.
잘못 사고유도 해서 착각시키는 것도 그렇고.
“페이트에겐 너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걔가 착각으로 날 좋아하게 되면 너무 불행하잖아.”
“아, 응. 그건 그럴지도.”
“틀림없이 불행하겠네.”
“응, 확실히.”
1초의 틈도 없이 바로 긍정됐다. 뭐야 이 화려한 삼단 콤보.
응, 내가 말하는 것도 뭣하지만 그렇게나 스트레이트하게 반응하면 슬퍼진다고!
아무리 나라도 운다고!
“아하핫, 농담이야.”
“에?”
정신적으로 약간 울음이 들어간 참에, 터뜨리듯 웃는 나노하. 알리사와 스즈카도 비슷한 느낌으로 낄낄 웃는다.
“후흥―, 요즘 간신히 네 미묘한 표정을 읽을 수 있게 됐어. 익숙해지면 의외로 읽기 쉽네.”
“응. 지금 유토 군, 조금 귀여웠어.”
아니, 읽기 쉬운 건 부정 안하겠지만, 망연자실해 있던 걸 귀엽다고 하는 건 뭔가 이상하다고, 스즈카.
“거기에 저번의 유토 군과 페이트의 모습을 보면, 불행같은 생각은 안 하고.”
“맞아 맞아, 보고 있는 이쪽이 부끄러워질 만큼 러브러브한 오라 풍겼었는걸. 당사자의 자각이 있건 없건.”
“둘 다 어쩐지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고?”
나노하, 알리사, 스즈카 순서로 다같이 뜨뜻미지근한 눈길을 보낸다.
이녀석들의 눈에 필터가 낀 것뿐……이라고 생각하는데, 응.
확실히 마음은 편했지만.
“……뭐어, 어쨌든 됐지만.”
될대로 되라는 듯 내뱉은 내 말에 셋이 쿡쿡 즐거운 듯이 웃는다.
뭐어, 귀여운 애들이 웃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두고――작게 한숨을 내쉬려 한 참에, 갑자기 마력이 느껴졌다.
“어이, 나노하.”
“……응.”
한 순간 나노하는 알리사와 스즈카에게 눈을 향했지만, 주저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곤 대답한다.
“뭐야, 무슨 일이니?”
“괜찮으니까 좀 물러나 있어. 설명은 전부 나중에.”
나노하와 함께 둘을 감싸듯 앞으로 나서서, 둘 다 디바이스를 거머쥔다.
전방 5미터 정도의 곳에 떠오른 푸른 마법진. 이 마력광은 본 적이 있다.
장난이 아니라고, 이런 거리서 나오는 거냐. 크로노 등의 아스라 팀이나 볼켄리터도 함께 본국에 나가 있어서, 지금 이 마을에 있는 마도사는 나랑 나노하 뿐인데. 곤란해.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게 불행 중 다행인가.
“뭐, 뭐야, 저거?!”
“뭐, 뭐가 일어난 거니…….”
“변신!”
“레이징 하트! 부탁해!”
놀라는 둘은 뒷전으로 나와 나노하는 각자의 배리어재킷을 입는다.
“에, 유토 군? 나노하?”
“잠깐, 뭐?!”
배리어재킷을 입은 우리를 보고 스즈카와 알리사는 당황하고 있지만, 그걸 신경쓸 틈은 없다.
어쩌지. 어떻게 이 상황을 빠져나가지?
푸른 마법진은 좀 더 강하게 빛나, 그 위에 사람이 떠오른다.
“앗하하하! 결국 찾아냈다고!”
도끼모양 디바이스를 휘두르며, 외투를 펄럭이는 자그만 사람.
레비 더 슬래셔.
페이트와 같은 모습의, 어둠의 서의 머티리얼.
하켄 폼이 된 디바이스를 휘두르며, 그녀의 입이 호를 그린다.
“자아―, 즐겁게 놀아볼까!”
장소가 곤란하다. 결계도 없이 이런 녀석을 상대했다간 이래저래 곤란하다. 어쩌지? 어쩌지?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레비보다 먼저 뭔가 행동해야만 한다.
“가위! 바위!”
레비가 입에 담은 “놀자”는 키워드에 순간적으로 외치며, 오른손을 왼손으로 덮듯이 허리에 뒀다. 내가 생각해도 심하게 다급했던 것 같다.
““보!””
그리고 펼쳐진 내 주먹과 레비의 가위.
“설마……내가 졌어?!”
걸렸다. 어렴풋 느꼈지만, 역시 이 녀석은 바보다. 하지만 이 흐름을 잃어선 안된다.
“참―참―――!”
검지를 내밀며, 기세와 분위기로 상황을 전부 속인다!
쓸데없이 크게 소리치면서 나노하에게 염화를 보낸다.
『이 상황에 버스터로 쳐날려버려!』
『에엣?! 아니, 그건 말도 안된달까, 저기, 조금 지독하다고 생각하는데?!』
『外道上等!』
『외도감사!』
『안돼!』
에에잇, 쓸모 없는 녀석! 이랄까 나는 나대로 뭘 하고 있냐고 셀프 딴죽을 걸면서, 내민 손가락을 움직인다.
“참!”
내 손가락이 향한 곳은 위. 레비가 향한 건 왼쪽.
히죽 웃는 레비.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배틀.
“가위! 바위!”
완전 신났구나, 너.
정말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뒤에 있는 셋이 어떤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진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보!””
녀석은 보, 나는 주먹.
레비의 눈이 반짝 빛난――듯한 기분이 들었다.
“참참……차아아암!”
레비가 가리킨 곳과 내가 고개를 향한 곳은 완전히 일치했다.
“졌다……!”
털썩 쓰러지며, 오버액션으로 무릎을 꿇는다.
“아하하―! 내 승리―! 강하지, 대단하지, 멋지지―!”
아―, 응. 대단하네, 네이 네이. 정말 간단한 성격이 말야, 이봐.
“에, 에……나노하, 뭐야 이……뭐야?”
“페이트……가, 아닌 거지?”
“에, 에에, 이건, 그……에에, 뭐라고 말씀드릴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정말 평화로운 광경이 떠오르지만, 이쪽은 이쪽대로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뇌를 풀회전시키는 중이다.
이대로 어떻게든 전투를 회피하고 싶어…….
최악의 상황이라도 알리사와 스즈카에게서 떼어내는 정도는 하고 싶지만, 어찌 될는지.
“자아, 다음엔 뭐하고 놀까!”
“………….”
일어나서 가슴을 펴며 말한 순간, 레비는 지긋이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나쁜 예감밖에 안 든다.
“그거야 뻔하잖아.”
히죽 그 입이 뒤틀리며, 왼손을 드는 레비. 그 손에는 마력구.
나, 바로 반전해서 대시.
“저번의 속편이야아아아!”
“역시냐아아아아아아?!”
나랑 교대하듯 전진하는 나노하와 뒤쪽의 폭음을 무시하고, 스즈카와 알리사를 양팔로 끼고 달린다.
“엣, 앗, 잠깐, 유토 군?!”
“잠깐?! 바보, 짐승! 어디 만지는거야?!”
“혀 씹으니까 입 다물어! 나중에 불만은 얼마든지 들어 줄게!”
껴안은 둘의 불만도 적당히 흘려들으며, 전력으로 달린다.
그리 체격 차이도 안 나는 꼬맹이 둘을 안는 건 제법 힘들다고!
나노하를 혼자 냅두고 도망가는 건 속이 쓰리지만, 서로의 능력을 생각하면 이게 최선이라고 자신을 설득한다.
나노하라면, 녀석 하나를 상대론 어떻게든 될……거다. 다른 둘이 나오기 전에, 이 둘을 어딘가 적당한 곳에 내려두고 크로노에게 연락해야 한다.
“저기저기, 어디 가?”
“일단은 사람이 없는 고……옷?”
옆을 돌아보자 거기엔 소닉 폼(?)이 된 레비의 미소가.
사람이 전력질주하는 옆에서 “야호―”하면서 손을 흔들지 말라고!
『오른쪽으로 뛰어!』
나노하의 염화를 듣고 바로 오른쪽으로 뛴다.
영점 몇초 차이도 없이 날아오는 분홍색 포격.
위험해!!
레비의 말로를 지켜볼 새도 없이, 근처 공원으로 달린다.
이 근방에서 제일 큰 공원이고, 산 쪽으로 가면 비교적 사람이 적을 거다.
“하나―둘!”
소리는 머리 위에서. 반사적으로 옆으로 뛴다.
양 옆에서 자그만 비명이 들려오지만, 신경 쓸 여유는 없다.
바로 옆을 빛의 칼날이 스쳐간다.
그러니까 위험하다니까?!
너무 억지로 뛴 탓에, 제대로 착지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시야에 비치는 건 하켄 폼의 칼날을 땅에 꽂은 채로, 이쪽에 다른 한 손을 향하는 레비의 모습.
마력탄의 빛. 포격이 아닌 것만은 다행이지만, 공중에선 제대로 자세도 못 잡는다고!
플로터 필드론 제때 못맞춰!
“젠장하아아아아알!!”
한계 직전까지 의식을 집중.
『Flier Wing.』
내 등에서 검은 날개가 펼쳐진다. 오른쪽 날갯죽지를 힘껏 펄럭여서 억지로 방향을 튼다.
레비의 푸른 마력탄이 뺨을 스치고, 날개를 꿰뚫는다.
마력으로 만든 날개니까 아프진 않지만, 그 힘 탓에 자세가 더 심하게 무너진다.
“나무아미타불!”
땅에 충돌하기 직전에, 쿠션 대신 플로터필드를 전개. 한번 튕겨 충격을 줄인 뒤에, 땅에 내팽겨쳐진다.
“윽……!”
“대체소체뭐야! 정말!”
“유토 군, 그 날개……?!”
“엑.”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고 고개를 들자 거기엔 포격빛이.
지금부터는 둘을 안고 피할 수 없다.
반사적으로 둘을 팽개치고 전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양팔을 펼치고, 몸 전체로 포격을 받아내지만, 내가 받아낼 수 있을만한 위력이 아니다. 버티는 다리째로 밀려 나간다.
적어도 뒤에 있는 둘이 안 맞게는 해야만 한다. 정말 조금이라도 좋다. 궤도를 비껴내면!
“으으으으읏차아아!”
마력을 모아, 아래서 왼발을 박차――내 몸은 몇 번 회전하며 뒤쪽으로 휘날려갔다.
뒤에 있던 나무를 몇 개 꺾고선 간신히 멈춘다.
“커……헉.”
위험해, 의식이 날아갈 뻔 했어.
“유토 군!”
“유토!”
소리를 들어보면, 둘은 무사한가.
뿌예진 시야에 둘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마 뜨뜻한 감촉을 느끼며 일어나려 했지만,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젠장, 움직여, 나.
어떻게든 떨리는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어떻게든 일어나서, 그대로 이쪽으로 향해오는 알리사와 스즈카랑 교차하듯 앞질러간다.
“잠깐! 유토?!”
“유토 군?!”
둘의 소리를 제쳐두고, 주먹을 들어올린다.
“읏차아!”
기세만으로 쳐내린 주먹은 레비의 실드에 쉽사리 막혀버렸다.
“에―, 그걸 먹고 일어날 수 있는 거야? 역시 너 튼튼하네.”
제법 진짜로 죽을 것 같은데!
여유작작한 레비의 모습에 마음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면서, 주먹을 두드린 반동으로 거리를 벌린다.
“나노하는, 어쨌어?”
온 몸으로 숨을 헐떡이며 물어본다. 아무래도 그 단시간에 나노하가 당할 것 같진 않다.
“엣헴―, 그런 녀석이 날 막을 수 있겠냐! 무시하고 놓고 왔어!”
“놓고 오지 마! 걔랑 놀라고!”
나는 제대로 네 상대를 못 한다고! 젠장할!
“에―? 그치만 네가 도망가니까 어쩔 수 없장.”
페이트와 같은 표정으로 뾰루퉁하게 뺨을 부풀리는 모습은 좀 귀엽지만, 아냐. 그게 아냐.
“도망치니까 따라온다니 개냐, 넌.”
“엣헴!”
“칭찬 아니야! 잘난듯 가슴 펴지 마!”
에에잇, 바보 상대는 피곤해!
“으―, 떼만 쓰곤~.”
“그게 누군데!”
피곤해. 바보 상대는 피곤해.
“너랑 쏙 닮았네.”
“같은 취급 하지 마! 스즈카도 끄덕이지 마!”
이런 거랑 같은 취급 당하면 마음이 다친다.
“애초에 네 탓에 우리는 지독한 꼴을 당했다구! 제대로 책임져!”
“오해할만한 말투로 말하지 마! 이쪽도 죽을 정도로 아팠다고! 너희야말로 책임 져!”
“……에에, 애정싸움?”
스즈카씨 닥쳐줘요.
“에……에, 어떤 상황?”
레비에게 따돌려져, 간신히 날아온 나노하가 불쑥 한 마디를 꺼냈다.
나도 잘 몰라.
“엑.”
거기서 느낀 두 개의 마력. 아까 레비와 마찬가지로 허공에 두 개의 마법진이 떠오르고 있다.
――색은 각각 타오르는 듯한 빨강과 보랏빛을 띈 어둠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