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화 이건 악몽이야
“뭔가 몸에 변화는 없나요?”
“음―, 잘 모르겠지만 너희랑 라인이 연결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잘 모르겠지만.”
머티리얼들과의 계약은 무사히 끝났다.
지금 슈테른에게 말한 대로, 자신의 링커코어와 머티리얼 셋의 코어 사이에 마력적인 연결이 느껴진다.
알프 때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이건 내가 주인으로 제대로 설정되어 있는 탓이려나.
“마력적인 부담은 어때?”
“전혀 없어.”
셋과의 라인 외에는 딱히 몸이 이상해지거나 한 부분은 없다. 부담이랄만한 부담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네놈은 진짜 인간이냐?”
“……전에 싸웠을 때도 느꼈는데, 사실은 다른 생물인거 아냐?”
“너희한테 듣긴 싫은데.”
사람을 뭔 별종을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디아키와 레비에게 딱 잘라 말한다.
이제쯤은 자신의 마력이 사람 수준이 아니라는 건 자각하고 있지만, 너희는 그 덕에 살아난 거잖아. 링크 잘라삘까.
“여하튼간에, 이걸로 계약은 완료예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나의 주인.”
“…………?!”
주인……이라고?
예상치도 못했던 음율에 충격을 받는다.
슈테른의 무감정한 말에 왜 이만치 충격을 받는 걸까. 아니, 무감정해서 그런 건가?
안돼, 이건 멋져……!
설마, 자신이 주인이라 불리는게 이리도 좋을 줄이야……!
망상 안에서라면 얼마든지 있는 일이지만, 현실에서 불리는 건 격이 다른 맛이 있어……!
상대가 꼬맹이라곤 해도, 귀여운 여자애라면 완전 오케이다.
이건 모에해……모에하다고오오오!!
“어이, 왠지 이녀석 얼었는데.”
비타의 목소리로 정신을 차린다.
“하핫, 그런 헛소릴.”
고개를 저으며 아무 일도 없었는 듯 행동한다. 위험해 위험해. 혹시 이게 시그넘이라거나 알프였으면 즉사였다.
“이상한 주인님―.”
“?!”
레비의 말에 한 순간 의식이 날아갈 뻔 했다.
뭐야, 이 파괴력. 안돼, 이 목소리로 주인님은 위험해……!
상대가 쬐꼼한 레비라도 필설로 형언하기 힘든 파괴력이 있다.
젠장, 내게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한 계약에 설마 이런 특전이 있었다니.
선물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머릿속으로 레비의 말을 반복하면서, 자그만 기대를 담아 디아키에게 눈길을 향한다.
“말해두겠지만, 나는 네놈따윌 주인이라곤 인정 안 했어.”
“그렇겠지.”
조금은 안심된 듯한, 유감인 듯한.
“뭐어, 됐어. 린디 씨, 일단 저는 슬슬 돌아갈게요.”
“그렇네. 오늘은 일단 이 정도에서 끝으로 할까.”
너무 늦어지면 또 부모님께서 걱정하신다. 이 녀석들의 이야기는 내일 다시해도 되겠지. 다행히 휴일이고, 내일이라면 시간은 잔뜩 있다.
“나노하는 어떡할래? 돌아간다면 바래다 줄건데.”
“아, 응, 그렇네. 나도 돌아갈게.”
“그럼, 갈까요.”
“으음.”
“응, 나 배 꺼졌어―.”
나노하에 뒤이어, 슈테른, 디아키, 레비의 목소리에 나는 말 없이 뒤를 돌아본다.
“왜 그래, 빨리 네놈의 집까지 안내해라.”
“너희는 대체 뭔 소릴 하는 거야.”
으스대는 디아키에게 차갑게 말을 내던졌다.
나만이 아니라 머티리얼들 외의 모두가 수상쩍다는 눈초리로 이녀석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길에 슈테른은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리곤, 뭔가를 떠올린 듯 손바닥을 두드린다.
“아아, 설명 안 했었네요.”
“뭐를.”
왠지 굉장히 나쁜 예감이 들었어, 나.
“주인과 저희를 잇는 라인은 굉장히 불안정해서,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 링크가 끊어져 버려요.”
“……잠깐 기다려.”
나는 턱에 손을 대곤 슈테른이 말한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는 거리는 구체적으로 어느정도?”
“주인의 반경 200미터 이내라면 세이프예요.”
“무진장 가깝지 않아?”
“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수긍하는 슈테른. 반경 200미터면, 무진장 가까운 거리지?
“추가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으면 안되는 거야?”
“지금 상태라면 하루 4시간 이상 떨어지면 아웃이겠네요. 시간이 지나 라인이 안정되면 거리도 시간도 꽤 늘거라고 생각하지만요.”
“…………쫌 기다려.”
손으로 멈추라는 신호를 주곤, 다시금 슈테른의 말을 정리한다.
에에, 즉 하루 20시간 이상을 머티리얼들과 200미터 이내 거리에서 살라고?
하핫, 나이스 조크!
“농담이지?”
“완전 진짜예요.”
시원스레 대답한 슈테른의 말에 말문이 막히는 나.
아니아니 반경 200미터 제한은 꽤 괴롭잖아?
“……알프와의 계약에선 그런 거 없었는데.”
“아까도 말했었지만, 이렇게 저희가 계약하는 것 자체가 이레귤러한 상황이라서 이래저래 제약이 붙어요. 그나마 주인에게 마도의 재능이 평균정도만 있었으면 이 제약은 없었겠지만요.”
“……디바이드 에너지같은 건 안돼?”
“그게 됐으면 고생 안 하지. 프로그램의 문제로 우리가 마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 같은 머티리얼과 어둠의 서 시스템뿐이야. 그 외에게서 마력을 공급받으려면 계약을 이어서 라인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전부 네놈들 탓이라고.”
그렇게 말하곤 지긋이 나를 노려보는 디아키. 그런거 내가 알까보냐.
“혹시 라인이 끊기면 어떻게 돼?”
“다시 한 번 처음부터 계약을 다시 맺는다……고 말하고 싶지만, 한 번 계약을 맺으면 세달은 재계약이 불가능해요.”
“뭐야 그 부록 잔뜩 따라붙은 제약은?! 그런 것들 하나도 못 들었다고?!”
“아무것도 안 물어봤으니까요.”
떡하니 시치미떼는 슈테른의 말에 정신이 가볍게 날아갈뻔 했다.
확실히 계약으로 내게 직접 걸리는 부담은 마력 말곤 없다. 하지만 그런 제약이나 디메리트가 있다면, 처음부터 말해두라고?!
“곤란하네……. 우리 맨션은 유토 군의 집에서 1킬로 이상은 떨어져 있고, 24시간 이내에 방을 빌리는 것도 어려워.”
그렇게 되면, 이 녀석들을 우리 집에 묵게 해야 하는 거야? 게다가 하루이틀도 아니고 오랫동안?
“그런 연유니, 신세 질게요.”
꾸벅 고개를 숙이는 슈테른.
“질게―.”
슈테른에 이어 즐거운 듯 말하는 레비.
“흥, 힘껏 내게 진력하도록!”
그리고 잘난 듯 으스대며 말하는 디아키.
에, 에, 잠깐, 진짜로? 하루 왠종일 이녀석들이랑 같이 있어야 하는 거야?
하하, 이거 무슨 야겜?
그래도, 상대가 시그넘이나 샤말이라면 몰라도, 이런 것들이랑 같이 살아봐야 전혀 안 기뻐!
주인이라거나 주인님에는 좀 심쿵했지만!
“이건 악몽이야. 분명 꿈이야. 이런게 현실에 일어날 리 없어, 하하.”
텅빈 눈으로 말하는 내게, 크로노가 어깨를 톡 두드린다.
“유감이지만 이건 현실이다.”
“말씀은 대략 이해했습니다.”
린디 씨에게서 대강 설명을 들은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제대로 돌아와 계신 날이다.
안 그래도 내 부상이 는데다 이런 걸 셋이나 데려와서 뭘 어찌 설명해야 할까 싶었는데, 그런 부분은 린디 씨에게 죄 떠맡겨서 해결됐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이 좀 대범하다곤 해도 이번 사태는 그리 간단하진 않겠지.
“유토.”
아버지가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너는 이 애들 때문에 다치고, 그런데도 용서해서, 이 애들을 돕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뭐어, 아무래도 소멸당하는 건 불쌍하고, 뼛속까지 나쁜 녀석들은 아닌 것 같고. 해도 괜찮은 거랑 안되는 건 아직 제대로 구분 못하지만.”
그러고 보니 페이트한테도 비슷한 소릴 했었지, 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버지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옆의 어머니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다.
남 앞에선 부끄러우니까 그만해!
“디아키 양, 슈테른 양, 레비 양.”
이번에는 어머니가 머티리얼들의 앞에 쪼그려 앉아,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곤, 얼굴을 바라본다.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셋이 조금 움찔거린다. 어머니가 얼굴을 향하자 셋은 좀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까까진 그런 표정 전혀 안 보였었잖아, 너희. 어머니 굉장해―.
어찌됐든 좋은 일이지만, 이 녀석들의 이름은 양 붙여서 부르기 힘들 것 같은데.
“이제 의미없이 사람을 상처입히거나,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내게 약속할 수 있니?”
“왜, 왜 내가 그런 걸――”
“약속할 수 있니?”
반론하려 한 디아키의 말을 탁하니 막는 어머니. 굉장히, 어머니의 노려보기에 디아키가 입을 닫았다!
기분탓인지 아버지가 겁먹은 듯한 기분이 들지만 기분 탓으로 돌려두자.
“……약속할게요.”
“나, 나도.”
“……알았어.”
슈테른, 레비, 디아키 셋이 흠칫흠칫 대답하자, 어머니는 빙그레 미소를 띄운다.
“응, 솔직해서 좋아.”
미묘하게 협박이 섞여있었던 느낌이지만 조용히 하자, 응. 불똥튀는 건 싫어.
“유토 아버지.”
“응, 어차피 방도 남아있고.”
그렇게 말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둘 다 수긍한다.
에, 그걸로 OK인 거야?
“린디 씨, 이 애들은 저희가 책임지고 맡겠어요.”
“예,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할 생각입니다.”
어머니와 린디 씨는 그쪽대로 아무래도 말이 통한 모양이다. 정말 선선히잖아, 이봐.
“디아키 양, 슈테른 양, 레비 양. 앞으로 잘 부탁해.”
빙긋 미소짓는 어머니를, 머티리얼들은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봤다.
저녁 뒤, 거실 소파에 앉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다.
왠지, 완전 지쳤다.
“고생했어.”
옆에서 아버지가 쓴웃음지으며 앉아, 팔을 퐁퐁 두드린다.
“……이래저래 고마워.”
머티리얼들, 그리고, 그 외 많은 것들을 담아 감사를 입에 담는다.
멋쩍어서 얼굴보곤 말 못했지만.
“딸이 늘었다고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어머니도 기뻐했잖아?”
응, 뭐어, 린디 씨가 돌아간 뒤에 이래저래 당황하는 셋에게 이야기를 거는 어머니는, 옆에서 봐도 즐거운 게 느껴졌다.
나노하 같은 친구들이 왔을 때도 그렇지만, 애들을 상대하고 있을 때의 어머니는 정말 즐거워 보인다.
이건 내가 제대로 어린애답게 행동하지 않아서 더 그렇게 된 건가 싶기도 하다.
“여자들 뒤엔,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남자 둘이서 들어갈까.”
“누추하고 좁으니까 싫어.”
반사적으로 대답한 뒤, 저질렀다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이 자식은……!”
아버지는 웃으며 남의 머리를 덥썩 쥐곤 난폭하게 흔들었다. 으아으.
오늘의 답례로 등쯤은 밀어줄까 싶기도 하지만, 이제와서 고쳐 말하는 것도 부끄러우니 다음 기회에 해 두자.
“야 레비!”
디아키의 고함소리가 들려와서 무슨일인가 돌아보자, 거기에는 목욕타월 한 장만 감곤 달리는 레비의 모습이.
바로 나는 일어나, 레비의 뒤에서 정수리에 손날을 쳐두드렸다.
“아야야?!”
“제대로 옷 입어. 조심성 없게. 그리고, 머리쯤은 말려.”
“에에―? 귀찮으니까 됐어!”
입을 복어처럼 부풀리는 레비.
쩔섮구나, 이녀석은.
“일단은 파자마를 입고 와. 아아, 파자마 안 젖게 머리를 타월로 덮고. 그러면 내 아이스크림 줄테니까.”
“……아이스크림이 뭐야?”
으, 아이스크림도 모르는 건가.
“달고 차갑고 맛있는 음식이야. 분명 레비도 좋아하게 될 거야.”
“정말?! 말했으니까! 약속이야!”
“에, 빨라?!”
눈을 반짝인다 싶었더니 바로 사라졌다. 대체 얼마나 물건에 잘 낚이는 거야.
모르는 사람한텐 따라가지 말도록 제대로 가르쳐 둬야겠는데, 이거. 대체 뭔 부모 기분이지.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
일단 드라이기랑 빗을 가져올까.
“주인님! 아이스크림!”
“긍까 빨라―?!”
“레비가 폐를 끼쳤어요.”
“괜찮아.”
여자애의 머리를 만지는 건 싫지 않고.
파자마로 갈아입은 레비의 머리를 들어올리며 머리 안쪽까지 마르도록 드라이기를 움직인다.
덧붙여서 머티리얼들이 지금 입고 잇는 파자마는, 집에 돌아오는 중에 린디 씨가 며칠치 옷들과 같이 사 준 거다.
레비는 물색, 슈테른은 분홍, 디아키는 보라색의, 각각 자기 취향 색의 파자마다.
심플하지만 어린애다운 프릴같은 것도 달려있어서, 셋 다 나름대로 어울린다.
내일은 내일대로, 셋이 쓸 가구나 일용품이나 옷 같은 것들을 사러 갈 예정이다. 귀찮아아.
“아―, 이거 기분 좋을지도―.”
뒤에선 안 보이지만, 소리로 느끼기엔 분명 축 풀어진 표정을 짓고 있겠지.
머리칼이 안 다치도록 세심의 주의를 기울이며 말려나간다.
그 도중에도 레비는 계속 “아―”라거나 “우―”등 기분 좋은듯한 소리를 내고 있어서, 나도 하는 보람이 있다.
아―, 오랜만이네에, 여자애 머리 말리는 거.
7, 8할쯤 말랐을 때 빗으로 고쳐쥐고, 긴 머리칼을 빗어내린다.
찰랑거리는데다가 깨끗하니까 만지는 보람이 있어 보이는데, 이거……. 만지는 느낌도 좋고.
머잖아 머리모양 고치게 안 해주려나. 기니까 이런저런 스타일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포니테일이라거나 포니테일이라거나 포니테일이라거나!!
“좋아, 끝.”
“후에―.”
대강 빗질도 마치자, 레비는 완전히 녹아있었다.
“그렇게 기분 좋았던 거냐?”
물어보는 디아키에게, 레비는 테이블에 엎드린 채로 끄덕인다는 놀라운 기술을 내보였다.
꾹꾹.
뒤돌아보자, 슈테른이 내 옷 소매를 당기며 말없이 눈짓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귀여운데, 너.
“……너도 할래?”
끄덕끄덕.
말없이 끄덕이는 슈테른에게 조금 모에.
스스로 드라이기를 쓴 건지 어머니가 쓰신 건진 몰라도 이미 머리는 말린 뒤지만, 뭐, 괜찮나.
레비에게 해 준것처럼 슈테른의 머리도 빗어내린다.
레비처럼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아마 만족해 준 거겠지. 아마. 이 녀석은 좀 표정을 읽기 힘들다.
“디아키는 어떡할래?”
“필요없어.”
전혀 안 넘어왔다. 응, 이게 올바른 반응이다.
뭐어, 레비와 슈테른도 넘어왔다기보단 물건에 낚였다는 게 올바른 느낌이 들지만.
“후후―. 유―야도 좋은 오빠 역할 하고 있네―.”
깨닫고 나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와―, 뭔가 무진장 근질거려.
그래도 뭐, 이런 것도 나쁘진 않을, 지도. 응.
레비는 바보지만, 바보일수록 귀엽다고 할까.
슈테른은 무표정해서 뭘 생각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몸짓에 귀여운 부분이 있고.
디아키는 전혀 태도를 바꾸지 않지만, 작은 애의 반항기 같아서 미소가 절로 나와 귀엽다.
……………………어라, 혹시 나 머티리얼들이 꽤 맘에 드는 건가?
“무슨 일이야, 유쾌한 표정으로.”
“……아무것도 아냐.”
이녀석들에게 이상할 정도로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깨닫곤, 경악했다.
좀 기다려, 이 녀석들은 저번에, 수준이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이라고 인식했었을 거라고.
무진장 지독한 꼴을 겪었고, 시그넘 일행이나 페이트랑은 다르게 알고 있는 것도 적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히 마음을 허락해도 좋은 거야?! 적의까진 아니라고 해도, 좀 더 경계심 가지라고!
자신을 타이르고 잇자, 다시 꾹꾹 옷소매를 당기는 감촉이.
“주인님, 아이스크림!”
……활짝 웃는 레비를 보니 뭔가 전부 어찌되든 좋아졌다.
나는 참 쉽구나 하고 느끼며, 아이스크림을 가지러 냉장고를 향했다.
다들 잠든 밤. 왠지 눈이 뜨여서, 나는 거실에 혼자 있었다.
직접 탄 코코아를 홀짝이며, 오늘 몇번짼지 모를 한숨을 내쉰다.
정말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레비가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뒤엔, 부모님을 포함해서 트럼프나 우노 등을 실컷 즐겼다.
며칠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이리 잔뜩 일어나니, 뭔가 이상한 거에 홀린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뭐어, 단순히 나쁜 일이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
것보다, 그냥 즐겁고, 나.
“아직 깨어 있었나요?”
뒤돌아보자, 파자마차림의 슈테른이 거기 서 있었다.
“너야말로 무슨 일이야. 잠 안와?”
“예. 왠지 눈이 뜨여버려서요.”
“너도 코코아 마실래?”
내가 물어보자, 슈테른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끄덕인다.
“잘 마실게요.”
나는 앉아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을 향한다.
적당한 컵을 골라서 코코아를 탄다.
그동안 슈테른은 아무 말도 없이 그 작업을 보고 있었다.
“자.”
“고마워요.”
내게서 컵을 받은 슈테른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다른 둘은?”
“푹 자고 있어요. 지금까지 노숙 뿐이어서, 따뜻한 이불을 덮고 자는 건 처음이니까요.”
“과연.”
소파에 앉아서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는다. 솔직히 이 녀석들이 서바이벌에 숙달됐을 것 같진 않다.
여기에 오는 동안 분명 고생했겠지.
레비와 디아키가 떠들고, 그걸 슈테른이 달래는 광경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 녀석과 둘만 있는 것도 묘한 상황이다. 앞으로 함께 살면 이런 상황도 늘지도 모르겠지만.
……마침 잘됐으니 여기서 물어 둘까.
“왜 나였어?”
내 말에 슈테른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실은 내게 부탁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할 방법은 있었던 거 아냐? 일부러 나한테 온 건 다른 목적이 있는 거 아냐?”
근거는 전혀 없다. 하지만 한 번 그렇게 느껴 버리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사라지지 않게 되어 버렸다.
“지나친 생각이에요. 적어도 저희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당신을 의지한 거예요. 하지만……”
거기서 말을 끊곤, 슈테른은 내 옆에서 다소곳이 앉는다.
“제가 당신에게 흥미를 느낀 건 사실이에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말이지만요.”
흥미, 구나.
“그 싸움은 99% 저희의 승리가 정해져 있었어요.”
눈을 감으며 이야기하는 슈테른을 바라본다.
그 옆모습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고, 담담히 사실을 이야기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뒤엎였어요. 당신들이 이긴 건 기적이라고 해도 좋겠죠.”
뭐어, 크로노에게서 들은 일의 전말만 봐도, 슈테른이 하는 이야기는 그리 잘못되지 않았다.
구사일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그 싸움은 격렬했었다.
그 원흉이 나라는 게 한층 더 머리 아픈 부분이지만.
“그 기적을 일으킨 제일 큰 원동력은 당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하곤 슈테른은 바로 내 눈을 바라본다.
이 녀석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슈테른의 황당무계한 말에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쳐 버린다.
“말도안돼. 별 일도 못했고……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이긴 건 다른 모두가 힘내줬기 때문이야.”
그 자리의 누가 빠져도 이길 순 없었겠지. 그중에 내가 이룬 역할은 미미한 거다.
“확실히 단순한 힘만으로 말하면, 당신은 마력이 크기만 할 뿐. 그중에서 제일 약했어요. 비율로 말하면 전체의 0.1%에도 미치지 못했겠죠.”
……아마 사실이겠지만, 그건 벌레 이하란 거죠! 좀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훌쩍.
“하지만, 단순히 커다란 마력이 있다고 해서 수없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만큼 저희의 공격은 가볍지 않았을 거예요.”
“………….”
응, 뭐어, 그건 확실히 아팠고, 나도 잘도 힘냈다 싶다. 정말 몇 번이고 죽는다 싶었다. 그만한 아픔은 지금까지 맛본 적이 없다.
것보다, 정말 잘도 기절 안했었네, 나. 그야말로 기적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고통은 지금 떠올리기만 해도 저도 모르게 몸이 떨릴 정도다.
그런 내 심정을 읽은 것 처럼, 슈테른은 물음을 꺼낸다.
“그때랑 같은 걸 다시 한 번 할 수 있나요?”
“저어얼대 무리!”
그것만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거 다시 한 번 했다간 분명 죽어!
“그렇겠죠. 마력 대미지라곤 해도 그만큼 정통으로 먹으면 보통은 의식을 지키지도 못할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영문을 알 수 없는 힘으로 수도 없이 다시 일어났어요.”
뭔가 굉장히 쓸데없이 띄워주고 있는 기분이 들어 견디기 힘들다.
“어떻게 봐도 완전 과대평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때문에 저는 당신에게 흥미를 느꼈어요. 옆에 있으면 따분하지 않을 거다, 그런 마음을 느낄 정도론.”
뭘까. 그건 착각이라고 소리높여 말하고 싶다. 너무 띄워줘서 몸이 근지러워지기 시작했다고.
“까놓고 말해서, 그 기대에는 따르지 못할 거야. 딱히 장점도 없고, 별로 재밌는 이야기도 못하고.”
내가 말하면서도 좀 그렇지만, 나한테 특별한 건 마력과 이전 세계의 기억을 가진 것뿐이고 그 외에는 완벽한 일반인이다.
함께 있어도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슈테른은 내 말은 들리지 않은 것처럼 코코아를 홀짝이고 있었다. 잠깐, 들으라고, 이봐.
무심코 태클을 걸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문득 떠오른 의문을 던진다.
“그러고보면 이래저래 큰일이라 물어보는 걸 잊었는데, 앞으로 어떡할 생각이야? 관리국에라도 들어가?”
내 물음에 슈테른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관리국의 일에 흥미는 없어요. 왕도 레비도 관리국 같이 형태가 잡혀있는 조직에서 일하는 건 성미에 안 맞을 거고.”
“확실히.”
슈테른의 말에 저도 모르게 수긍한다. 단체행동이라고 할까, 규칙적인 행동같은게 맞을 것 같지가 않은데에.
“거기에 한동안은 당신의 옆에서 떨어질 수 없으니까. 우선은 세계를 실제로 눈으로 보고, 접하고, 그런 뒤 천천히 생각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흐응―, 그런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대단하다고 느껴 버린다.
나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인터넷 하고 프라모델 만들고 만화영화 보고, 귀여운 여자애들이랑 꽁냥꽁냥하고싶다는 정도밖에 안 떠올라아.
남한테 폐 끼치지 말고 그럴 수 있으면 뒷일은 딱히 어쨌든 좋고.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예전에는 그걸 완전히 만족하고 있었구나.
어둠의 서의 꿈 안에서도 실컷 즐겼었고. 오랜만에 겪은 유나의 가슴엉덩이허벅지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유나에 대해선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단 매듭을 지었다곤 생각하고 있다.
이 세계의 유나에게 구애되진 않고, 전의 유나에게 너무 속박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걸 빼더라도, 내게는 과분한 연인이었던 거다. 외모도 성격도 그 보드라안 몸도 이래저래 아까워어!
미묘하게 어둠의 서의 꿈속 세계에도 미련이 남아있는 걸 보면, 정말 문제인간이다, 난.
일시적으로 옛날의 자신으로 돌아간 영향인지 단순히 어린애의 현자 타임이 끝난 것 뿐인진 모르겠지만, 어둠의 서 사건 이후로 내 번뇌는 꽤나 펼쳐졌습니다.
아아, 젠장, 떠올렸더니 불끈거리기 시작했어.
“……얼굴이랑 손놀림이 야해요.”
“…………………….”
무의식중에 양손으로 공중을 조물락거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옆에 있던 슈테른의 눈초리가 굉장히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