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화 온천이야! 온천!
“여러분께 새로운 친구를 소개할게요.”
응, 뭐어, 필연적으로 이렇게 되리란 건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레 현실서 보면 머리가 아파지는구나!
“윗치―♪ 나는 굉장하고 강하고 멋진―, 레비 더 슬래셔―!”
“슈테른 더 디스트럭터예요. 잘 부탁드려요.”
“짐은 로드 디아키. 쓰레기들이여, 짐 앞에 무릎 꿇거라! 하―하하하!”
단상에는 세이쇼 교복을 입은 레비, 슈테른, 디아키가.
것보다, 디아키는 닥쳐. 말하지 마. 듣고있는 내가 머리 아파지니까.
언동이 엉망진창인 디아키, 나노하나 페이트랑 외모가 닮은 레비와 슈테른. 이셋을 보고 반 애들이 떠들기 시작하는 것도 어쩔 수 없겠지.
앞으로 선생님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좀 더 떠들겠구나아, 하고 현실도피――바꿔 말해 달관 모드에 들어가는 나.
“원래라면 전학생 셋이 함께 같은 반에 들어오진 못하겠지만, 이 셋은 외국에서 막 온 참이고 지금은 유토 군의 집에 홈스테이 하고 있어요. 일본에 익숙하지 않기도 해서, 특례로 셋 다 유토 군이 있는 이 반에 편입되게 됐어요. 다들 사이 좋게 지내줘요.”
잠시 침묵이 깔리고, 다음 순간 반 아이들의 눈길이 내게 집중된다. 아―, 뭐어, 이렇게 되겠지.
선생님이 한 이야기는 나한테서 그리 떨어질 수 없는 셋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 우리 부모님이 억지로 밀어붙인 결과다.
같은 학교라면 보통은 200미터 조건은 클리어할 수 있겠지만, 각 행사들이나 그 외 여러가지 제반사정을 생각하면 다른 반이 되었다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리고 조례가 끝난 순간, 반 아이들은 단숨에 나나 슈테른 등이 있는 쪽으로 쇄도해 온다.
“어이, 유토! 무슨 소리야?! 왜 지금까지 한 마디도 안 했는데?!”
“것보다, 슈테른이랑 레비? 왜 다카마치 양이랑 테스타로사 양과 저렇게 닮은 거야?!”
아―, 귀찮아.
“나한테 질문 하지 마!”
라고 크게 소리치고 싶다. 안 칠 거지만. 보면 나노하나 페이트도 불똥이 튀었고.
“지금까지 말 안한 건 귀찮으니까. 비슷한 건 그냥 우연. 셋이 우리 집에 온 건 해외에 아버지가 자주 출장다니는 관계로 이러저런 복잡한 사정이 있으니까! 끝!”
하고 말을 끊는대봐야 반 애들이 조용해질리도 없고,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반 아이들의 질문에 시달리는 동안 셋이 오고 나서 오늘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린다.
셋이 찾아온 다음 날은 당연히 예정대로 그녀들의 옷이나 일용품, 가구 등등을 가족이 총출동해서 쇼핑.
응, 애인도 아닌 여자의 쇼핑에 어울리는 건 따분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좀 생각을 고쳤어.
어머니가 이것저것 번갈아가며 머티리얼들의 옷을 갈아입히며 패션쇼를 하는 것도 뭐어, 나쁘지 않았다. 이게 부모나 오빠의 기분인 건가.
개인적으론 여러모로 즐거운 하루였지만, 그날 밤 크로노가 프레시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이래저래 고민할 점은 많다. 하지만, 고민할 뿐이지 뭔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셋의 놀이 상대를 맡으며 고민에 잠긴다.
바로 떠오른 건 역시 페이트에 대해서. 크로노의 이야기론 울거나 이성을 잃거나 하진 않고, 적어도 표면적으론 침착해 보인다는 모양이었다.
뭔가 힘이 되어주고 싶지만 이런 섬세한 문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질 않다.
장의같은 건 린디 씨 쪽에서 책임졌고, 내일엔 나노하도 페이트가 있는 쪽으로 간다는 모양이라 더더욱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
저쪽의 장례가 어떤 형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셋을 데려 갈 수도 없을 거고.
장례 절차를 끝마치면 페이트는 이쪽으로 돌아오서 학교에도 복귀할 생각인 모양이다.
잔뜩 고민한 끝에 내가 한 건, “무리하지 마”라고 메시지를 보낸 뒤 남은 건 죄다 나노하에게 떠맡기는 거였다. 꼴사나워.
남은 건……응, 실제로 만나 보기 전엔 어쩔 수도 없다는 결론. 곤란할 뿐이구나.
그리고, 그거랑은 별개로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게 하나 더.
말할 것도 없이 나와 떨어질 수 없는 머티리얼들의 문제였다.
나와 오래 떨어질 수 없다는 건 필연적으로 머티리얼들도 학교에 다닐 필요가 있단 소리다.
부모님들은 내켜하는 모양이고, 린디 씨도 협력해 주겠다는 모양이라 호적 등의 수속 자체는 문제 없다.
수속이나 준비 등등이 끝날 때 까진 나도 학교를 빠지게 됐지만. 그건 좋다.
문제는 멍청이와 디아키다.
둘 다 언동이 엉망진창이니까아.
“어이, 유토. 뭘 멍하니 있는 거야. 네놈 턴이라고.”
“아아, 예이예이. 내 턴. 드로.”
그리고 지금은 나와 슈테른, 레비와 디아키로 팀을 짜서 태그듀얼을 달리는 중.
내 방의 만화를 본 레비가 바로 빠져 버려서, 내 안쓰는 카드를 줬다.
“임금님이랑 슈테룽도 같이 하자!”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말하는 레비에게 슈테른과 디아키도 금방 함락되어 지금에 이른다.
입으로 두근두근소리를 내며 덱을 짜는 레비. 말없이 카드를 노려보는 슈테른.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열심히 덱을 짜는데 힘쓰는 디아키.
삼인삼색의 덱짜는 모습은 보는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래도 레비, 40매 전부 몬스터 카드 넣는 건 관둬라.
“나는 필드에 몬스터 둘을 릴리즈! 어둠 속에서 빛나는 은하여, 희망의 빛이 되어 나의 하인으로 깃들어라! 빛의 화신, 여기에 강림! 나타나라, 갤럭시아이즈 포톤 드래곤! 후하하하, 강하다고, 굉장하다고, 멋져―!”
“트랩 카드 발동. 나락의 함정 속으로 갤럭시아이즈 포톤 드래곤을 파괴하고 제외할게요.”
“아앗?! 그런……! 내 갤럭시아이즈 포톤 드래곤이?!”
“그렇게 둘까보냐! 추가로 트랩 발동! 신의 선고! 라이프 반을 코스트로 네놈의 트랩을 무효해서 파괴한다!”
셋 다 즐거워 보여서 정말 좋구나. 도미네 가(家)는 오늘도 평화로웠다.
“유토 군―, 놀러 왔어―.”
머티리얼들의 전학 예정일 전날, 이쪽에 돌아온 페이트를 데리고 나노하 파티가 찾아왔다.
평소의 알리사, 스즈카에 더해 이번엔 유노(인간형태)도 세트다.
어느샌가 알리사와 스즈카에게도 유노의 정체를 밝힌 모양이다.
“야호―, 유토, 오랜만.”
“안녕, 건강해 보여서 좋네.”
며칠만에 만난 페이트는 의외로 건강해 보였다. 나노하나 알리사 등이 제대로 기분을 북돋아 준 거겠지.
이렇게 표면적으로나마 힘낼 수 있다면, 내가 할 이야기도 없으려나.
“유토 군도 건강해 보이네.”
“보는 대로 아무 문제 없어.”
스즈카에게 그리 대답했지만, 아직 반창고나 붕대가 좀 남아있다보니 별 설득력 없을지도 모른다.
그 뒤에 깨닫고 보니 알리사가 지긋이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래?”
“진짜 다친 건 괜찮아?”
아아, 저번 부상을 걱정 해 준 건가. 걱정꾸러기구나, 이 애도.
“그러니까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스즈카에게도 말했지만, 학교 쉬고 있는 건 부상 때문이 아니라 머티리얼들이랑 떨어질 수 없는 탓이니까.”
실제로 출혈이 대단했던 것뿐이지 부상 그 자체는 별일 아니었고, 상처도 거의 나았다.
“그래. 그럼 괜찮지만.”
그렇게 말하는 알리사의 뺨이 약간 붉어진 기분이 들었다. 새침데기 귀여워.
지적해서 놀려주는 것도 괜찮겠지만, 이번엔 패스해 두자.
“또 무진장 줄줄도 솟아나왔구나.”
거실에서 슈테른, 레비와 모모전철을 하고 있던 디아키가 귀찮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하하, 셋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싶어서.”
나노하의 무시 스킬은 가끔 굉장하단 느낌이다.
“나노하, 어서와요”
“응, 슈테른도 오랜만. 건강하게 지냈어?”
“예, 덕분에요. 주인의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도 잘 해주고 계셔요.”
슈테른과 나노하는 정말 친해졌다. 쌍둥이 자매라고 해도 충분히 먹힐 것 같은데.
레비 쪽도 페이트를 보곤, 한손을 들며 말을 건다.
“오, 오리지널도 있잖아, 윗치―!”
아, 페이트 몸에서 힘이 빠졌다.
“나는 페이트야, 페이트 테스타로사.”
“헤이트?”
“페이트!”
무심코 소리치는 페이트에게, 레비는 흐흐흥 새침 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귀찮으니까 ‘오리지널’로 됐어.”
“아니아니 그쪽이 귀찮잖아?”
저도 모르게 태클을 건 내 말에 끄덕끄덕 페이트도 수긍한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강하고 굉장하고 멋진, 최강의 나 퀄리티야!”
너무 의미불명해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역시 이 애 바보야.
“칭찬해도 괜찮다고―?”
“여전히 레비는 바보구나~.”
슬쩍슬쩍하는 의태어가 붙을 것만 같은 눈초리로 바라보기에, 일단 쓰다듬어 줬다.
“엣헴!”
“칭찬이 아니니까, 그거.”
알리사의 태클대로지만, 레비는 듣지도 않았다.
“레비는 머리모양 바꿨네. 포니테일 잘 어울려.”
스즈카가 말하는 오늘의 레비는 페이트랑 같은 트윈테일이 아니라, 포니테일이다.
포니테일은 좋다. 마음이 깨끗해진다.
“흐흥, 어때. 멋지지~?”
“으, 응……그렇네.”
레비는 자랑하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나노하는 아무리 봐도 멋지다기보단 귀엽다고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덧붙여서 레비의 머리모양을 세팅해준 건 주인이에요.”
슈테른의 한 마디에 자리의 분위기가 확 바뀌고, 모두의 눈길이 내게 모인다.
이놈도 저놈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전율한 듯한 표정을 쳐 짓고 있다. 그 반응은 예상했었지만.
“훗훗후―, 주인님이 머리 빗겨주면 굉장히 기분 좋다고―?”
“그, 그래?”
어째선지 잘난듯한 레비의 말에 저도 모르게 되묻는 스즈카.
“것보다, 너 머리모양 세팅 같은 거 할 수 있었어?”
알리사도 반신반의라고 할까 의심 8할이랄까 정도의 느낌으로 내게 시선을 향한다.
“뭐어, 승천 페가수스 MIX 쌓기 같은 건 무리지만 간단한 거라면.”
유나의 머리모양을 여러번 만졌었고. 쇼트도 좋아하지만, 긴 머리면 이래저래 머리스타일을 세팅할 수 있어서 즐겁다.
“어째서 포니테일?”
“내 취미야! 포니테일 최고!”
유노의 혼잣말에 바로 대답한다.
목덜미! 풀었을 때완 다른 머리칼의 흔들림! 그리고 그걸 풀었을 때 맛볼 수 있는 갭으로 두 번 즐길 수 있어!
포니테일은 최고의 머리모양이라고!
나는 꾸욱 손을 쥐고 단언했지만, 주위에선 미묘하게 기막혀하고 있었다. 어라?
“그렇게 포니테일을 좋아하는 거야?”
“진짜 좋아합니다!”
스즈카의 질문에 다시금 즉답한다.
“에, 그……그럼, 시그넘 씨라거나?”
“최곱니다! 처음 만났을 때 완전 넋을 잃었었습니다!”
그건 반할 만하다. 정말로. 하긴, 그때는 포니테일이 어쩌고 저쩌고 하기 전에 시그넘이 너무 미인이라 반했던 거지만. 머리 푼 모습도 언제 보고 싶다. 진짜로.
“레비의 포니테일을 세팅할 때도 넋을 잃었었지요. 자기가 세팅했으면서.”
“포니테일 앞이니까 어쩔 수 없어.”
슈테른이 말한 대로 내가 세팅했지만, 너무나 귀여워서 충격을 받았다.
사진으로도 제대로 영구보존입니다.
어둠의 서의 꿈 안에선 여러 일들이 있어서 유나의 머리를 세팅하는 걸 잊었던게 지금도 후회스럽다.
모처럼 사귀고 나서 포니테일을 하기 위해 머리를 길러 줬는데. 젠장, 나 바보!
깨닫고 나니 주위에선 더더욱 기막혀하고 있었다.
괜찮다 뭐. 알아주지 않아도. 시그넘과 레비의 포니테일만으로도 난 충분하다고요.
“괜찮다면 다음에 포니테일로 해 줄까?”
“부탁합니다!”
쓴웃음 지으면서 말하는 스즈카에게 힘껏 달라붙었다.
스즈카의 손을 잡고, 붕붕 흔든다.
“붙는거 빨라!”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세상의 귀여운 애들이 포니테일이 되면 뿅가죽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아하하…….”
페이트는 이제 웃을 수 밖에 없다는 느낌으로 쓴웃음짓고 있었다.
“슈테른이여, 늦었지만 이런 거랑 계약해서 좋았던 거냐……?”
“실제로 해는 없고, …………다른 선택지도 없었으니까요.”
본인을 앞에 두고 말하지 마, 너희들. 냅두라고.
“그, 그래, 임금님. 하야테한테서 전언이 있어.”
자리의 분위기를 읽은 나노하가 억지로 화제를 바꾼다.
“까마귀 새끼가?”
“응. 셋이 건강하게 지내서 기쁘다고. 퇴원하면 바로 만나러 갈거라고.”
“어이, 유토. 현관에 소금을 뿌려둬.”
“잘 알고 있구나, 그 관습.”
미묘하게 잘못됐지만.
“그런 짓 하면 안된다고, 임금님. 하야테는 셋이 무사하다는 걸 알고 정말 기뻐했었으니까.”
“알까보냐. 녀석의 얼빠진 얼굴이나 맥없는 말투가 마음에 안 들어. 얼굴을 못봐서 시원하다고.”
머리 색과 눈초리 외에는 똑같은 얼굴이잖아, 하고 딴죽걸고 싶어진 건 나 혼자가 아닐 거다.
그렇다곤 해도, 며칠동안 알게 된 거지만 이 임금님, 은근히 남을 잘 돌본다.
슈테른과 레비를 위해 나와 계약하는걸 꺼리지 않았기도 하고.
태그 듀얼때도 자기가 메인이 되기보단 레비를 계속 서포트 할 뿐이었고.
하야테에게 얽혀도 싫어하는 척하면서 상대해 줄 디아키의 모습이 쉽게 떠오른다.
아니, 정말 싫어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내일부터 셋도 세이쇼에 다닐 거지?”
“응. 교복 같은 것도 얼마 전에 전부 사러 갔다고.”
셋이 입는 것도 봤고, 부모님이 사진도 찍었다.
살짝 치마를 집어 올린 슈테른이 귀여웠다. 레비와 디아키는 어째선지 자랑하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아, 그래도 학교에 간다면 슈테른이나 레비의 ‘주인’이나 ‘주인님’은 곤란한 거 아냐?”
“그렇겠지, 역시.”
스즈카의 이야기 대로 슈테른은 어쨌든, 레비가 학교와 다른 곳에서 제대로 호칭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역시 ‘주인’과 ‘주인님’은 포기할 수 밖에 없나……!
“그, 그런 사정이니 슈테른과 레비는 나를, 이름으로 부르……도록.”
단장의 심정으로 둘에게 그렇게 말한다. 으으윽……둘의 호칭이 꽤 맘에 들었었는데.
“그렇게나 주인님 마음에 들었었구나…….”
“최악이네.”
“뭐어, 유토고.”
스즈카가 쓴웃음 짓고, 알리사와 유노가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주인님 얕보지 마! 남자의 로망 중 하나라고! 메이드복 장비시엔 더더욱 파괴력은 배증해!”
“그래?”
“아니, 나는 별로…….”
나노하에게 질문받고 고개를 가로젓는 유노. 모르고 있구나. 너는 모르고 있어. 귀여운 애가 자신을 향해 입에 담았을 때의 파괴력을!
다른 사람에게 들었을 때와 스스로 말할 때는 하늘과 땅만큼 파괴력의 차이가 있다고!
“나노하, 잠깐.”
“에, 왜?”
소곤소곤 귓속말을 한다.
“그러니 부탁합니다.”
“으, 응. 잘 모르겠지만 알았어.”
그리고 총총 유노의 앞으로 이동하는 나노하.
“어서오세요, 주인님♪”
“?!”
(하트)가 붙을 것만 같은 달콤한 목소리로 유노에게 미소를 향하는 나노하.
단숨에 유노의 얼굴이 확 불이 오른 듯한 기세로 붉어져서, 비실비실 뒤로 물러난다.
응, 이건 알기 쉬워.
“에에……유토 군, 이걸로 됐어?”
“백점 만점이야. 굉장해, 나노하. 지금 건 최고로 귀여웠어.”
훌륭하게 내 요구에 답해준 나노하에게 엄지를 치켜든다.
“엣, 앗, 그, 그랬으려나?”
에헤헤―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그것대로 사랑스러워서 좋다. 평소의 나노하는 나름 귀엽지, 응.
“그래서, 어떠신가요, 유노 선생님. 주인님의 파괴력은.”
“으, 응. 확실히 이건……굉장하네. 솔직히 이럴줄은 몰랐어.”
아직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로 유노가 내 말에 수긍한다.
알아 줬구나! 형제!
새로운 인연을 자아낸 우리는 꽉 굳게 손을 맞잡았다.
“혹시나, 크로노도 그런 걸까?”
“응, 녀석에겐 ‘오빠야’가 괜찮다고 생각해. 말할 때는 녹화도 잊지 말고. 부탁해!”
“에, 아, 으, 응.”
당황하면서도 끄덕이는 페이트. 좋아, 이걸로 결정적인 순간을 놓칠 일도 없어.
“남자란…….”
“아하하.”
알리사와 스즈카는 뭐라 하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에에……잘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유토라고 부르면 돼?”
“그런 거야.”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한 듯한 레비에게 대답한다.
“좋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게 득본다고 슈테른이 말했지만, 원래는 귀찮았었어―.”
“뭐……다고?”
득의만면히 말하는 레비에게 경악을 숨길 수 없다.
“레비에게 그런 고도의 플레이가 가능했다고?”
“에, 그쪽?”
아니, 그치만 스즈카 양, 레비라고? 레비같은 바보가 슈테른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나를 일부러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곡예를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잖아?
“엣헴. 굉장하지―, 칭찬해도 괜찮다고?”
“아니, 어떻게 생각해도 바보 취급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알리사는 다시금 작은 소리로 딴죽을 걸었지만, 자랑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슬쩍 이쪽을 보는 레비에겐 물론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아, 정말, 바보귀엽네, 이 녀석은. 바보귀여우니 쓰다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왜 내 이름만 제대로 못 부르는 거지…….”
나노하가 넋이 나간 페이트의 어깨를 통통 두드리며 달래고 있었다.
“아―, 역시 유노는 무한서고의 사서 하는 거구나.”
“응, 이대로 계속 나노하네 있을 수도 없고. 이렇게 권유받은 것도 좋은 기회려나 싶어서.”
그리고 주제는 유노나 페이트 등의 향후로 옮겨갔다. 스즈카나 알리사는 먼저 이야기를 들었는지, 지금은 머티리얼 삼인방과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노하와 페이트도 관리국 입국……인가.”
“응. 나는 이제 마법 못 쓰게 됐지만, 에이미처럼 집무관 보좌를 노려볼까 싶어서.”
“페이트는 왠지 그렇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지만……나노하도 역시 관리국인가~.”
뭐어, 둘의 성격적으로 이렇게 되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둘 같은 애가 일해도 괜찮은가 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좀 걸린다.
“유토 군은 우리가 관리국에 들어가는 거 반대?”
내가 어지간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는지, 나노하만이 아니라 페이트도 왠지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기분상으론 반대. 아무리 대단한 힘이 있다고 해도, 둘은 아직 어린애고, 어린애는 어린애답게 초등학생 생활을 즐기면 되고, 어린애나 여자애는 가급적 위험에서 멀리하고 싶다고 생각해.”
내 말에 둘은 조금 곤란하면서도 슬픈 듯한 표정을 짓는다.
뭐어, 어둠의 서 사건에 말려든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감정적인 부분에선 능력이 있다고 해서 어린애들에게도 일을 시키는 관리세계의 제도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부분도 있지만, 그 반면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고, 본인이 스스로 결정한 이상 무조건 나쁜 일이라고도 잘라 말할 수 없다.
장소가 바뀌면 풍습도 다르다. 한쪽의 가치관만으로 다른 곳의 가치관을 부정하는 건 어리석다.
“그래도, 둘이 제대로 스스로 고민해서 정한 거라면 말리진 않을 거고, 응원할게.”
그렇게 말한 순간 화아아아악 미소를 펼치는 나노하. 페이트도 안심한 듯이 숨을 내쉰다.
“응! 고마워!”
“……별로 인사들을 만한 건 아니고.”
방심해서 나노하를 귀엽다고 느껴 버렸다. 젠장, 왠지 진 기분.
“그리고 부상만은 입지 마. 어쩔 수 없을 때 말곤 제대로 쉬고 무리하지 마. 넌 평소부터 너무 노력하는데다 무모한 짓도 많이 하니까.”
“오늘의 네가 말하지 마 불판은 여긴가요?”
언제부터 이야기를 들은 건지, 슈테른의 태클에 다른 애들이 쿡쿡 웃는다.
“쓸데없는 지식은 안 배워도 돼.”
것보다, 나는 평소에 노력같은 거 안 한다고.
“응 응, 나 알고 있어! 이게 새침데기라는 거지!”
레비의 말에 다른 녀석들이 웃음보를 터뜨린다.
왜 이녀석들은 이삼일 인터넷 건드린 것만으로 이런 걸 기억한 거야.
“유토의 방문 목록을 따라다녔으니까.”
“따라다니지 마! 그리고 남 마음 읽지 마!”
젠장, 내가 한 뒤에 컴퓨터 만진다 싶었더니 남의 방문 목록을 타고 다닌 거야?!
으그극, 역시 내년에 세뱃돈 받으면 자기 전용 PC 사자.
이대로 거실 PC 쓰는 건 너무 위험해.
“유토 군은 어떡할래?”
“……별로 아무 생각도 없는데에. 세상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같은 건 성에 안맞고.”
누군가가 필요로 해 주는 건 기쁜 일이지만,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자는 생각은 안 든다.
그럭저럭 안정적이고 평범하게 생활할 수 있으면 괜찮다 정도의 생각밖에 없다.
관리국 입국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내가 들어가서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것보다, 나노하나 페이트가 승진해가는 동안 혼자서 조무래기로 끝나는 미래가 확정될 것 같아서 싫어.
“흥, 큰 의사도 없는 범인인 네놈 주제론 그 정도겠지.”
정말 완전히 그 말 대로지만, 디아키한테 들으면 열받는 건 어째설까.
“그런 네겐 뭐라도 있는 거냐.”
“흐흥, 그런 건 당연하잖아!”
그렇게 말하며 일어난 건 디아키가 아니라, 레비도.
“우선 힘을 되찾으면 유토와의 계약을 해제! 그런 다음 저번의 보복으로 때리고 베고 꿰뚫고, 즐겁게 습격! 죽음과 파괴를 흩뿌려 주는 거야!”
“호오.”
자랑스레 뒤숭숭한 선언을 하는 레비. 그 발언 내용에 자연스레 내 눈매가 좁혀진다.
“앗, 이 바보!”
“우웁! 우우우―!”
“……하아.”
허둥지둥 레비의 입을 막는 디아키와 한숨을 내쉬는 슈테른.
그런가, 그런가, 무진장 얌전하다 싶었더니 역시나 뒤에선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완전 속았다고. 아니, 지금까지도 충분히 본모습이었던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얍!”
머릿속에 어느 이미지를 강하게 그리고, 레비와 디아키의 머리를 만지며 마법을 발동시킨다.
찌잉!
“악?!”
“뭣! 바인드?!”
레비와 디아키의 양손을 뒤로 묶고, 양발도 발목 즈음에서 모으듯 마력의 링으로 구속.
양손 양발을 묶인 둘은 뒤얽히듯 바닥에 쓰러진다.
“오오, 잘 됐구나. 역시 해 보길 잘했어.”
“유토 군, 바인드도 할 수 있게 된 거야?”
“아아, 연습은 계속 했었어. 성공한 건 처음이지만.”
언젠가 애인이 생겼을 때 긴박 플레이가 할 수 있도록, 비행마법과 같이 연습은 했었다. 일상 생활에서 제일 쓸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 건 이거고.
양손양발에 더해서 보디라인이 떠오를 정도로 야하게 묶으면 완벽하겠지만, 현재는 이게 한계.
상대한테 직접 손을 안 대면 발동이 안 되고, 아마 나한테서 1미터라도 떨어지면 바로 풀린다.
덤으로 출력도 약하니까 보통 마법사가 상대라면 바로 깨지겠지. 응, 실전에선 전혀 쓸모 없구나, 이거.
하지만 리미터가 걸려있는 이녀석들에겐 이걸로 충분.
“훗훗후, 자, 어떻게 할까~.”
히죽 웃음을 띄우며 손을 조물조물거린다.
“유토 군, 손이 왠지 야해.”
나노하가 도끼눈으로 말하지만,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다.
수상쩍은 웃음을 띄우며 다가가는 내게, 레비와 디아키는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저항을 시도한다.
“왜 나랑 임금님만?! 슈테룽은?!”
“아니, 왠지 모르게.”
“왠지 모르게로 묶지 마아! 앗, 그만둬?! 앗하하하하하!”
레비와 디아키의 옆구리에 손을 찔러넣고 비오의 간지럽힘 지옥의 법 발동.
으음―, 가급적 공중에 좌표고정 바인드를 펼치는 편이 하기 편하려나. 다음에 연습해 보자.
“앗, 아햐햐! 어, 어쩔 수 없잖아! 우리는 그런 존재로 태어났고!”
죽음과 파괴를 흩뿌리는, 말이지. 뭐어, 펠릭스가 살아있었다면 멀쩡한 짓 안 했을 건 확실하겠지만.
“그렇지 않아.”
그렇게 상냥하게 말을 걸어준 건 페이트였다.
“누가 뭘 위해서 만들었는진 관계 없어. 누구든지, 어떤 존재든지 자신의 삶은 스스로 정하는 거야.”
머티리얼들에게 자신을 겹쳐보고 있는 걸까.
이야기 중인 페이트의 눈은 한없이 부드럽고 상냥했다.
“그러니까 너희도 분명 바뀔 수 있어.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오리지널도?”
“응. 지금 바로는 무릴지도 모르겠지만, 모두가 함께 있으면, 븐명히. 그치, 유토.”
“거기서 나한테 떠넘겨도.”
당황하는 나를 보고, 페이트는 즐거운 듯이 웃을 뿐이었다.
“어찌됐든 좋지만, 빨리 안 풀고 뭐하나, 얼간아!”
“임금님은 아직 반성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간지럽힘 지옥 재개.
“그래서, 정말은 어쩔 셈이야. 지금 레비가 말한 것처럼 완전히 회복 가능한 방법에 짐작은 있어?”
묻는 상대는 슈테른. 머티리얼들은 스스로 마력결합을 할 수 없어서 나와 계약을 한 거지만, 시간을 들이면 어떻게든 할 수단이 있는 걸까.
“아뇨, 수단은 찾고 있지만 지금은 전혀.”
“즉 둘의 김칫국이란 소리야?”
“아하핫, 알았으면 적당히――아햐햐, 놓거라 얼간아!!”
“그러니까 반성이 부족하다니까, 임금님. 죄송합니다는?”
“햐햐햐햣, 누가 네놈따위에게――햐악?! 네놈 어디를 만지, 햐하하핫!”
이런 사정으로 스스로 죄송하다고 할 때 까지 마음껏 레비와 디아키를 간지럽혔습니다.
“아, 맞아, 유토 군.”
레비와 디아키를 풀어주고 차를 다시 따르자, 나노하가 뭔가를 꾸미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저말야, 정월에 나랑 스즈카랑 알리사, 페이트와 크로노 군 등의 가족 전부가 합동 여행을 하자는 이야기가 있어. 유노 군도 함께야. 유토 군이랑 다른 셋도 어때?”
“안 가.”
“즉답?! 어째서?! 온천이야! 온천!”
“저는 집에서 빈둥빈둥거리고 싶습니다.”
홀짝 차를 마시면서 대답한다. 일부러 휴일에 외출하는 귀찮은 짓 하기 싫습니다.
안그래도 요즘은 일들이 많아 정신적으로도 지쳤는데, 연말연시쯤은 방콕 시켜 주세요.
그도 그렇고 대체 얼마나 대부대야.
“온천은 뭐야?”
“에에, 온천이라는건 말야.”
스즈카에게서 온천의 설명을 듣는 레비. 이 둘도 왠지 상성이 좋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유토! 온천 가자! 맛있는거 먹고 싶어!”
스즈카에게서 설명을 다 들은 순간 팡하고 책상을 두드리며 소리치는 레비.
그런가, 그런 식으로 낚은 건가.
“잘 다녀오렴.”
나는 집지키기 할테니까.
“응! 다녀오겠습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레비. 아아, 바보는 귀여운데~.
“이 녀석이 안 가면 우리도 못 간다고.”
“핫, 그랬나!”
디아키의 딴죽에 손을 딱 두드리는 레비.
“그걸 깨달을 줄이야……역시 천재.”
“이 녀석이 바보일 뿐이다.”
“엣헴!”
레비 씨, 임금님에게도 완전 바보 취급 당하고 있어요.
“슈테른도 임금님도 온천 가고싶지?”
“예.”
“흠……뭐어, 임금으로서 견문을 넓히는 것도 나쁘지 않나.”
나노하 녀석, 장수 전에 말부터 쏘는 건가. 그리고 임금님은 솔직하게 가고 싶다고 말하렴.
“그래서 유토, 어떡할거야? 나는 유토나 레비네랑도 같이 여행 가고싶은데.”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페이트. 왠지 예전보다 밝아지지 않았나, 이 녀석.
그도 그렇고, 페이트가 그렇게 말하면 난 거절할 수단이 없다.
레비가 두근두근, 슈테른이 지긋이, 디아키가 꿇어보듯 나를 바라본다.
……뭐, 괜찮나. 이녀석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면 나도 왠지 즐겁고.
“앗써. 어머니께 물어 볼게.”
오늘은 두분 다 일로 아직 집에 안 돌아오셨지만, 아마 괜찮겠지.
“아자!”
짝 하고 하이터치를 나누는 머티리얼 삼인방.
나노하 등도 기쁜 듯이 끄덕인다.
에이고야. 연말도 소란스러워 질 것 같네.
……같은 일이 있어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왈칵 피로가 덮친다.
옆에서 레비가 파이팅 임금님이라든지, 오리지널이라든지 불러대서 머리가 아프다.
그만큼 학교에선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내 호칭 말고는 전부 엉망이잖아.
아아, 이젠 해외 생활이 길었다거나, 머리가 부족한 애라는 걸로 적당히 속일 수 밖에 없으려나―.
주위의 소란을 제쳐두고, 나는 홀로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