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화 네놈은 진짜 바보냐?!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신년이 되자마자 바로 다카마치 집안, 할라오운 집안, 쓰키무라 집안, 배닝스 집안, 그리고 우리 도미네 집안 합동 가족여행을 가게 되었다.
응, 모여 보니까 그 뭐냐, 이 사람 수. 슬쩍 봐도 20명은 넘는데.
“너무 많잖아, 이거.”
“묵을 곳, 작은 여관인 모양인데 통째로 대절한 모양이야.”
“진짜냐.”
스즈카가 시원스레 터무니없는 말을 꺼냈다. 스케일 짱커.
덧불여서 지금 이렇게 타고 있는 것도, 노엘 씨가 운전하고 있는 마이크로 버스. 가족여행에 마이크로 버스를 빌린다는 건 처음 들었다고, 나. 이 규모로 가족여행이라고 주장해도 되는지도 미심쩍지만.
나는 제일 되의 왼쪽 좌석. 옆에 스즈카, 그 옆에 알리사, 에이미, 미유키 씨. 내 앞에 나노하, 유노. 그 앞에 페이트와 레비. 나머진 적당히.
뒤에서 바라보기엔 꺅꺅거리는게 다들 즐거워 보인다.
“일단 전 졸리니까 잘게요. 식사 때가 되면 깨워 주세요.”
“에.”
“쿨.”
“빨라?!”
스즈카가 소리치는게 들려오지만, 평소 정월을 잠으로 보내는 제게 빨리 일어나는 건 괴로운 겁니다.
이번 여행도 슈테른네가 즐기고, 내가 느긋이 보낼 수 있으면 그걸로 된다.
그러니, 알리사가 뭔가 말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걸 배경음으로 삼아 천천히 난 잠에 들었다.
“좋은 아침.”
이러쿵 저러쿵 해서 목적지에 도착.
그리 큰 마을은 아니지만, 안정된 분위기의 온천마을이다.
목조 여관이 늘어선, 좁은 돌바닥 골목길. 격자창에 토벽, 머리 위를 지나는 걸널 복도의 난간. 신년인데도 불구하고 적당히 사람이 오가고 있어, 활기에 넘치고 있다.
좋구나아, 이런 레트로한 거리.
우리가 묵을 여관은 자그맣고 세월의 때가 탄 건물이었지만, 제대로 손질이 되어 있어 흥취가 있다.
“정말로 점심 말곤 전부 잤었네……얼마나 퍼자는 거야.”
사람이 감개에 빠져있는 옆에서, 기막힌 듯 한숨을 내쉬는 알리사.
철야로 포켓몬 하면 졸려진다고.
“자는 애는 자란다고.”
“여행에서 안 자도 되잖아.”
“이동중이니까 괜찮잖아.”
“유토 군, 너무 프리덤해.”
“평소대로지요.”
“그러니까 자기가 말하지 마!”
스즈카와 알리사의 딴죽은 오늘도 절호좁니다.
“짐을 방에 두면, 각자 자유 행동이야. 저녁 시간 까진 제대로 돌아 올 것. 알겠지?”
“““네―.”””
보호자분으로부터의 말씀을 받들어, 각자 자유행동을 시작한다.
방은 남녀 각각이기에, 각자의 짐을 둔 뒤 다시 현관에 집합.
“봐봐, 저기에 사격장 있어! 아, 저기에는 탁구장이래!”
“좀 침착하라니까. 시간은 잔뜩 있으니까 그렇게 허둥지둥 안 해도 괜찮잖아.”
바로 말을 꺼낸 건 페이트와 알리사 금발 콤비.
페이트에겐 첫 여행일테니까 묘하게 신나있는데. 것보다, 페이트는 저런 캐릭터였나?
뭐라 할 수 없는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앞으로의 행동을 고찰한다.
개인적으론 온천에 잠긴 뒤 방에서 뒤굴거리고 싶다. 춥고. 하지만,
“슈테룽, 임금님! 저쪽에 과자 잔뜩 늘어서 있어!”
“흠, 걸으며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세뱃돈이 있다고 해서, 계획 없이 다 쓰지 말아 줘요, 둘 다.”
그 제한도 있으니, 이 녀석들에게서 떨어질 수도 없나.
작게 한숨을 내쉬곤 다른 애들에게 말한다.
“일단 각자 적당히 행동 할까? 이 숫자로 모여 움직이는 건 그렇고.”
“아, 응. 그렇네.”
애들 뿐이라곤 해도, 이 숫자로 모여서 움직이는 건 다른 관광객에게 민폐다.
세네명씩 행동하는 게 제일 낫겠지.
“유토 군은 슈테른네랑 같이 행동 하겠네.”
“그 제한도 있고, 감시역도 겸해서.”
“그런가…….”
왠지 유감스러워 보이는 나노하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는데, 갑자기 나노하가 가까이 다가온다.
왠지 알프도 같이.
“저기, 페이트, 이쪽에 돌아오고 나서 예전보다 밝아졌지?”
“응? 아아, 그렇지.”
나노하가 말하고 있는 건 프레시아가 죽은 뒤의 이야기다.
아까도 그랬지만, 전에 집에 왔을 때부터 그건 느끼고 있었다. 주얼시드 사건 이후로 페이트는 점점 밝아졌지만, 요즘 페이트는 한층 더 밝아진 느낌이다.
“우리에게 걱정을 안 끼치려고 꽤 무리하고 있을 거야. 원래는 어머니 일로 굉장히 우울할텐데.”
“――에.”
나노하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깨달았다. 분명히 친구들에게 격려 받아 기운이 난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듣고 보면 지금 페이트의 밝은 모습은 어딘지 부자연스러웠다.
자신의 멍청함과 무신경함에 혀를 찬다. 자신을 마음껏 때려주고 싶은 충격에 휩싸이지만, 나노하 앞이니 그건 자제한다.
“페이트, 프레시아가 죽은 날부터 한 번도 안 울었어.”
“……진짜로?”
고개를 끄덕이는 알프.
그건 곤란하다.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곤란한진 모르겠지만, 굉장히 곤란한 기분이 든다.
정신적으로 무른 편인 페이트가 울지 않았다니 무슨 소리야.
“페이트 성격으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건, 굉장히 무리하고 있는 걸거야. 그래도 나나 크로노 등에겐 아무리 말해도 괜찮다고…….”
알프가 말하는 말은 지당하다. 그만큼 프레시아를 따랐던 페이트가 울지도 않는다니, 어지간한 일이다.
어떤 과정으로 그렇게 무리하고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이걸로 페이트의 부자연스러운 밝음에도 수긍이 갔다.
여러모로 참으며 허세를 부리고 있는게 지금의 페이트인 거겠지.
확실히 처음에는 그런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지나치게 질질 끌고 있다.
지금은 괜찮아도, 얼마 안가 무리한 대가가 돌아오지 않을까. 최악의 경우 프레시아처럼 부서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건 곤란해.
하여간에, 그 소리는.
“요는, 나한테 어떻게든 하란 거야?”
“응, 나는 무리였지만, 유토 군이라면 아마.”
그건 과대 평가다.
“나도 부탁할게. 지금 페이트는 솔직히 보고있기 괴로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할 테니까, 부탁해.”
그러니까 무리라니까. 나노하가 무리였으면 내가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할 수 있을 리가 없지만, 어떻게든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된 원인의 일부는 내게도 있고……라니, 곤란 투성이잖아, 젠장!
어떻게든 해야 하는 건 확정사항이라 치고, 그럼, 어떻게 해야하냐 하면 아무런 수단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쉽게 좋은 방법이 생각나겠냐!
“일단 나노하도 협력해.”
“무슨 좋은 방법 있어?!”
나노하가 기쁜 듯 화악 미소를 띄운다.
“그런 건 없어.”
나노하와 알프의 시선이 단숨에 차가워졌다.
“하지만 될 때까지 해 보는 건 특기야. 맡겨둬.”
“…………으으, 불안해애.”
“사람을 잘못 고른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
그 쪽에서 부탁해 놓곤 실례잖아. 내게 부탁한 너희 잘못이다.
“유토―! 안 가면 놓고 간다―!”
아아, 머티리얼 녀석들, 벌써 저런 데까지 쳐 가 있네. 빨라!
“좋아, 일단 나노하 대원에게 지령. 에에.”
저녁 시간이 19시니까…….
“17시 정도에 여관에 돌아와서, 나랑 페이트, 그리고 나노하까지 셋이서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자리를 세팅해 둘 것. 오케이?”
“알겠습니다, 대장!”
정자세로 경례하는 나노하.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애도 분위기 참 잘 타준다.
“유―토―, 빨―리―!”
“아아, 알았다니까. 지금 갈게!”
자 그럼, 어떡할까…….
레비네를 쫓아가면서, 나는 상황에 쩔쩔매기 시작했다.
“지쳤어…….”
그 뒤로 계속 레비네랑 어울린 결과, 녹초가 되어서 여관에 돌아왔다.
나노하와 약속한 시간까진 아직 조금 여유가 있다.
“네놈은 정말 체력 없ㄴ데.”
“너희가 너무 신난 거야.”
“하아? 누가 언제 몇시 몇분에 신났는데?!”
“탁구에 사격 등등 레비랑 둘이서 신나서 돌아다녔잖아. 상대해 준 나랑 슈테른의 입장도 돼 보라고.”
걸으며 먹길 한 시간, 사격 15분, 탁구 복식을 2시간 연속이라니 새 해부터 너무 지독하다고.
왜 애들은 이렇게 기운 넘치는 거야.
“핫, 그 정도, 신난 축에도 안 들어. 그 정도로 뻗는 네가 얼간이인 거다. 내 하인이라면 이 정도는 태연한 얼굴로 넘겨 봐.”
“너희랑 보통 초등학생 남자를 똑같이 취급하지 마……내가 죽습니다. 그리고 하인 아니고.”
겉보기는 초등학생이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녀석들은 체력도 굉장하다. 학력은 바로 겨울방학에 들어와서 잘 모르겠지만, 마력없이도 스즈카랑 대등히 겨뤄대는 녀석들에게 체력승부라니 진짜 죽습니다.
“저녁까지 우리 방에서 카드 승부하자!”
“미안, 조금 쉬게 해줘.”
체력적으로 버거운 것도 있지만, 페이트 쪽을 먼저 어떻게든 해야 한다.
“에―.”
“레비, 너무 억지 부리면 안돼요. 아직 시간은 잔뜩 있어요.”
“예―.”
슈테른이 레비를 달래줘서 일단 안심했지만, 너희랑 노는 건 확정인 거구나.
표면상으론 슈테른도 평소랑 다름없지만, 눈이 굉장히 빛나고 있다. 즐기고 있는 거라면 괜찮지만.
“그럼, 이따 봐.”
“예.”
팔랑팔랑 손을 흔들고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방 구분은 나름 적당하지만, 일단 어린이들은 남녀 별실이다.
어린이들은 나와 크로노, 유노가 한 방. 초등학생 3학년들과 알프, 에이미 씨, 미유키 씨는 같은 방.
여담이긴 하지만, 교야 씨랑 시노부 씨는 같은 방. 그리고 메이드의 소양이 어쨌거니 해서 노엘 씨와 파린도 다른 방인 모양이다. 어른들은 뭐어, 어쨌든 됐고.
“아아, 돌아왔나.”
방으로 돌아가자, 먼저 온천에도 들어갔던 건지 유카타를 입은 크로노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는 모습이 묘하게 그림이 되는데, 이 얼짱놈.
“나노하의 전언이다. 페이트와 함께 안뜰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모양이다.”
“그런가, 땡큐.”
안뜰이면 밖인가. 춥지 않으려나, 그거. 대체 얼마나 전부터 기다린 거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도 뭐하니, 방에 들어가자마자 몸을 돌린 타이밍에 크로노가 말을 걸어왔다.
“너도 깨닫고 있으리라곤 생각하지만, 프레시아 건으로 페이트는 굉장히 무리를 하고 있어 보여.”
죄송함다 죄송함다. 나노하한테 들을 때 까진 거의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좀 면목이 없어서 크로노와 얼굴을 제대로 마주칠 수 없다고.
“나나 어머니도 슬며시 신경을 쓰곤 있지만, 별로 효과가 없어서. 페이트를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나 나노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나한테 어쩌라고.”
반쯤 몸을 돌리곤 불평한다.
솔직히, 어떻게든 하고 싶은 마음은 산더미같지만, 나 같은 거한테 멘탈 케어같은 게 요구돼도 곤란하다.
“구체적으로 뭘 어쩌라곤 안 해. 단지 가능한한 페이트를 신경 써 줬으면 싶은 거야. 부탁해.”
“……앗따고. 그래도, 이상한 기대는 하지 마.”
그렇게 진지하게 부탁받으면 농으로 얼버무리는 것도 못한다. 마지못해하면서도 승낙한다.
어차피 나노하에게도 들은 이야기니, 하는 일은 마찬가지고.
“아아, 알고 있어. 거기에 애초에 내가 말할 것 까지도 없었을 거고.”
이쪽의 생각을 꿰뚫어 본 것 같은 미소가 좀 빡친다.
언짢아하면서, 다시금 안뜰을 향하려고 했을 때 다시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페이트를 부탁해.”
“아아.”
목소리만으로 대답을 하고, 둘이 기다리는 안뜰을 향했다.
“아, 유토.”
“여어.”
안뜰, 정확히는 안뜰의 출입구쪽에 설치된 긴 의자에 나노하와 페이트가 둘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쪽도 온천에 들어갔다 나왔는지, 유카타에 머리 푼 버전이라는 멋진 편성이다.
“일단 한 장.”
““에?””
둘의 소리가 겹친다.
휴대폰으로 찰칵 한 장. 물론, 화질은 최고 퀄리티로 저장. 잘 됐어 잘 됐어.
“왜 갑자기 찍는 거야?!”
“아니, 귀여운 애를 봐서 무심코.”
“엣.”
“유토 군, 갑자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어물어물거리는 페이트와 나노하가 진짜 귀여워서 마음이 따끈하다. 딱히 내성이 없는게 더더욱 멋지다.
다시 한 장 찰칵. 당연하지만, 귀여운 애가 있어도 모르는 사람에겐 안 합니다.
“아니, 농담 빼고 둘 다 귀엽다고. 유카타도 어울리고, 머리 풀면 평소랑 전혀 분위기가 달라서 굉장히 좋아.”
“에, 그, 그러려나.”
수줍어하는 페이트, 잘 먹었습니다. 교복 때의 트윈테일로 묶으면서 가운데만 머리를 내린 것도 정말 좋아하지만.
“머리 푼 나노하를 보는 건 오랜만이지만, 역시 나는 머리 푼 쪽을 좋아해. 그쪽이 평소보다 귀여워.”
“……유토 군은 가끔 시원스레 그런 소리 하지.”
수줍어하면서도 약간 도끼눈을 뜨는 나노하.
“너희 정도 말고는 말 안한다니까.”
동년배라고 할까 이성으로 의식하고 있는 여자애에겐 그리 쉽게 말하기 어렵지만, 여동생 정도의 여자에게 귀엽다고 하는데 저항이 있는 남자는 없다.
“엣?! 엣?! 그건 어떤……?”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허둥지둥대는 나노야도 귀여워.”
“나, 나노야?! 왜, 왜 그래, 오늘 유토 군 이상해?!”
“싫으면 그만둘텐데.”
“에, 아? 벼, 별로 싫은 건 아닌데……으으.”
푸슈~하고 김이 나올 것만 같은 정도로 새빨개진 나노야, 진짜 귀엽다. 가져가고 싶어진다.
“…………그래서 우리한테 할 이야기란 건 뭐야?”
깨닫고 보니 페이트의 차가운 눈길이 날 찌르고 있다.
“아아, 에에…….”
안돼, 목적을 잊을 뻔 했다고 할까, 결국 아무것도 생각 못했다.
어쩌지.
“유토?”
고개를 갸웃거리는 페이트를 상대로 어쩌지 싶어 고민에 잠긴다. 음―, 여기선 직구로 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울어.”
“에?”
페이트가 눈을 크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지만, 신경쓰지 않고 말을 잇는다.
“다들 네가 무리하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어. 그러니까 한 번 힘껏 울고, 아우성치고, 외쳐.”
“……유토 군, 그건 좀.”
나노하가 진짜 기막히단 표정을 짓고 있지만, 지금은 무시. 나도 꽤나 좀 그런 소릴 하고 있다는 건 자각하고 있다. 멀쩡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질 않았다고.
“무리같은 건 전혀 안 하고 있어, 난 괜찮아. 강한 애인걸.”
꾸욱 주먹을 쥐며 웃는 페이트. 그 미소에는 전혀 그늘이 없다. 하지만 알프의 이야기를 들은 뒤라서, 거꾸로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아마 나노하나 크로노 등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계속 했겠지. 사람 좋은 걔들이면 더 이상은 강하게 말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에잇.”
“아야?!”
봐주지 않고 그 이마에 딱밤을 날린다.
그것도 한 발로 끝이 아니라, 두발 세발.
“뭐, 뭐 하는 거야?!”
손으로 이마를 막는 페이트. 조금 눈에 눈물이 맺혀있다.
“전혀 괜찮게 안 보이니까 다들 걱정하는 거라고. 뭘 그렇게 고집부리고 있는 거야? 마치 나노하 같다고? 나쁜 의미로.”
“나?! 게다가 나쁜 의미라니?!”
뭔가 시끄런 소리가 들리지만, 이것 역시 무시.
“별로……고집같은 거 부리고 있는 거 아닌 걸.”
뺨을 부풀리며, 눈을 휙 돌리는 건 고집 부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페이트 양.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민한다. 어떡할지.
페이트의 모습을 보기에, 지금은 괜찮을지도 모르단. 하지만 이대로 마음 가운데 뭔가를 잔뜩 쌓아가면, 나중에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어떻게든 하고 싶지만, 어떡하지, 이거. 지뢰 밟을 각오로 가 볼 수 밖에 없으려나아.
“알프에게서 들었는데, 너 프레시아가 죽은 뒤에 전혀 울지 않았다면서? 아무리 봐도 무리하고 있는 거잖아.”
“무리 안 하고 있는 걸. 나는 강한 애니까 괜찮아.”
……완전히 떼쓰는 꼬맹이 모드로 들어갔다. 이건 이것대로 레어하지만, 이걸로 만족할 수는 없다.
나노하와 얼굴을 마주보자, 그쪽도 조금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건 안 우는 이유가 못된다고. 것보다, 강한 애에 계속 구애되는데, 프레시아랑 무슨 일 있었어?”
페이트가 강한 애라는데 이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페이트는 필요 이상으로 ‘강한 애’를 고집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어머니랑 약속했어. 마법을 쓰지 못해도, 어머니가 없어도, 굳세게 살하가겠다고.”
그런 건가.
어쩐지 모르게 납득이 됐다.
프레시아와 약속 했으니까. 강해지겠다고 결심했으니까. 그래서 울지도 않는다. 그렇게 페이트는 결정한 거다.
외곬인데다 곧은 페이트답다고 하면 페이트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야?!”
다시금 전력전개 딱밤을 맛보여 준다.
“너, 바보. 정말 바보. 머리 딱딱해. 두부멘탈이 무리하지 마.”
“그, 그런 말투는――!”
“페이트!!”
소리를 높이는 페이트에게 내가 반론하기보다 먼저 끼어드는 목소리.
나노하가 꾸욱 페이트의 손을 쥔다.
“저기, 나, 잘은 표현하기 힘들지만, 페이트는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해.”
희미하게 눈에 눈물이 맺힌 채로 다가가는 나노하는, 페이트에게 반론할 틈도 안 주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런 건 아마, 강하다곤 안 해. 슬플 때는 제대로 울고, 전부 토해내야지. 자기 혼자 쌓지 마. 나는 별로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많이 이야기 해 줬으면 싶고, 의지해 줬으면 해. 으으응, 내가 아니라도 괜찮아. 유토 군이라도, 알프 씨라도, 크로노 군이라도, 린디 씨라도 괜찮아. 그냥 참고 자기 안에 쌓아두면 안 돼. 그랬다간, 언젠가 페이트가 무너져 버려. 나, 그런 거 싫어!”
“나노하…….”
나노하의 호소에 페이트의 눈동자가 당황하듯 흔들렸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도, 강함의 일부야. 받아들이더라도, 울고싶을 때는 마음껏 울어. 남에게 들어줬으면 하는 거라면, 나든 나노하든 괜찮으니까 뭐든 말해. 혼자 안고 있는 것 보단 훨씬 나아. 그렇게 의지할 상대가 있는 것도 그 녀석의 강함이야.”
그렇게 말하며, 페이트의 머리를 상냥하게 통통 두드린다. 나노하도 페이트도 곤란한 상황에 놓이면 멋대로 도와줄만한 녀석들이 주위에 있다.
그건 정말로 행복한 거고, 본인의 인덕에 의한 거기도 하다.
거기에 반해 나 같은 건……부의 스파이럴에 이를 것 같으니까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는 강함이라는 것도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동시에 아무에게도 기대지 못하는 쓸쓸한 강함인게 아닐까 싶어. 페이트는 그런 식으로 강해지지 말았으면 싶어. 어차피 사람 하나의 힘은 한계가 있어. 의지할 상대에겐 의지하고, 그 녀석이 곤란한 상황에 놓였을 때는 자신이 힘을 빌려줘. 서로가 서로를 돕는 강함을 노리는 게 페이트에게는 맞지 않을까……라니, 난 뭔 소리 하는 거람.”
깊게 생각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말을 꺼냈더니, 스스로도 잘 모르는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이쪽을 바라보는 페이트와 나노하의 눈길이 조금 아프다.
“아―, 응. 일단 프레시아가 죽어서 슬펐잖아. 지금까지 울지 못했던 만큼 전부 울어버려. 여기서.”
페이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윽, 흑.”
담고 있던 감정이 조금씩 흘러넘치듯, 페이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페이트.”
눈물을 흘리는 페이트를 달래듯, 나노하가 살며시 껴안는다.
“……나노하아…….”
“응. 괜찮아……괜찮으니까.”
오열을 흘리며 훌쩍거리는 페이트의 등을, 나노하가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잘 보면 나노하의 눈에서도 빛나는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
이제 괜찮으려나.
뚝뚝 눈물을 흘리는 페이트를 껴안는 나노하. 언젠가 있던 이별과는 반대 구도.
그 광경을 마음에 인화하면서, 나는 슬며시 그 자리를 떠났다.
자기 방에 돌아가려 했더니, 유카타 차림의 알프와 알리사, 그리고 스즈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유카타차림의 알프에게 다가가, 그 손을 꾸욱 잡는다.
“나이스 유카타!”
“첫 마디가 그거냐!”
알리사가 힘껏 머리를 두드렸다. 아파.
“어쩔 수 없잖아?! 알프의 유카타 차림 최고였으니까! 이런 걸 앞에 두고 더 우선해서 말할 게 있겠냐?!”
약간 젖은 머리카락! 유카타 너머로 강조되는 가슴의 볼륨! 이번 여행에서 제일 기대한 건 이거였으니까!
“아―, 뭐어, 그렇게 말해 주는 건 기쁘지만, 다른 할 말 있지?”
쭈그리고 앉은 알프에게 어깨를 꽉 붙잡혔다. 진심이라고 쓰고 눈이 진짜였다.
“죄송함다. 일단 만사 오케이인 느낌으로 어떻게든 됐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나노야가 돌보고 있심다.”
“나노……”
“야?”
알리스즈가 이상한 데서 반응했다.
“정말? 정말로? 페이트는 이제 괜찮아?”
“응. 지금쯤 나노하랑 같이 마음껏 울고있으니까 괜찮다니까.”
페이트를 걱정하는 알프가 묘하게 귀여워서, 쓴웃음 지으면서도 제대로 수긍해 보인다.
것보다, 그거 내가 없어도 괜찮았지? 조금 시간은 걸리더라도, 나노하라면 자력으로 어떻게든 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뭐어, 괜찮나.
“다행이다……다행이야…….”
자리에 주저앉아,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알프.
정말, 주종 함께 울보라니까.
가능하면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상황이지만, 어깨를 꽉 붙잡혀 있어서 어깨에 놓인 손을 통통 두드리는 걸로 참는다.
“어라, 왠지 좋은 분위기?”
“장수를 잡으려면 말부터 쏘아야 한다는 거려나…….”
스즈카와 알리사가 이쪽을 보고 뭔지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고 있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터무니 없는 이야기일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고마워, 유토. 프레시아도 그렇고, 내 마력도 그렇고, 이번 것도 그렇고, 네게는 신세만 지네.”
에헤헤 하고 웃으면서 눈물을 닦는 알프에게 순간 심장이 뛰었다.
별로 의식한 적은 없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면 알프도 굉장히 미인이라는 걸 재인식.
위험해, 조금 두근거리기 시작했어.
“아, 아니……뭐어, 대부분의 원인은 그, 나한테 있는 거나 마찬가지고.”
“응후후~ 겸손할 필요 없어! 좋아, 계약대로, 상을 줄게.”
통통 남의 머리를 두드린 알프가 고개를 기울인다.
“상?”
“응. 아까 말했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해 주겠다.ㅗ”
그러고 보면 그런 소리도 했었던 것 같은……잠깐, 그쪽 의미였던 건가.
그럼――.
“뭐든?”
“응~, 뭐든♪”
시선이 한 순간 아래로 내려간다.
………………………………뭐든?
……………그건 혹시나 야한 거, 아니, 같이 목욕하는 것 같은 것도 OK임까?
보통이라면 아웃이겠지만, 지금 내가 어린애인 거랑 더해서 알프라면 가벼운 분위기로 오케이 해 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응, 그런 걸로 괜찮아? 그 정도라면 별 것 아니야.” 같은 느낌으로!
그리고 욕탕에서 타월을 감는 건 룰적으로 NG.
상황에 따라서는 전부 볼 수 있을 가능성이 있어!
잘 생각해라, 나.
이 선택지는 초 중요해. 플래그를 조금만 잘못해도 아웃이야.
우선 알프 외에 알려졌다간 여러 의미로 내가 죽어. 나노하네의 시선적인 의미로.
여관의 욕실은 아웃. 이래저래 위험한 요인이 너무 많아.
여기는 온천마을. 독실 욕조같은 것도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
잘 알프만을 권해서 함께 여관을 빠져나가는 수단도 쓸 수 있겠지.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이네.”
“왠지 눈에 핏기가 맺힌 기분도 드는데…….”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할 일이야?”
“지금까지 살아왔던 기간 중 제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얇은 인생인 거야.”
알리사의 태클은 오늘도 날카롭습니다.
아지만, 내겐 중대한 일이라고.
시그넘이 없는 이 곳에서, 알프는 제일 귀중하고 가까운 가슴 성분이라고!
같이 온천에 들어가는 미션만 달성할 수 있으면――.
“헤에―, 네 몸을 보고, 이렇게 돼 버렸구나……안되겠네에.”
식으로 알프가 다가와서, 추가로 저런 거라 이런 것까지 가능할 가능성이 콤마 몇 퍼센트라도 있을지도 모르는 거다.
후, 후하하하하핫! 이 세계의 봄이 왔다아아!
“눈이 굉장히 진지한데, 입가 풀어져 있어…….”
“뭔가 나쁜 걸 꾸미고 있는 것 같지만……솔직히 말해서 기분나쁘네.”
“어이―, 유토―? 돌아와~.”
“――――앗?!”
탁탁 머리를 두드려와서 정신을 차린다.
안돼 안돼, 오랜만에 망상 전개 하고있었어.
“에에~, 미안.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았어.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적당히 해 줘.”
“아~, 뭐어, 무리라면 적당히 거절하면 됩니다, 예.”
그보다, 침착하게 생각해 보면 적당한 소원으로 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보복 당하겠지, 여러모로.
응, 아까 건 망상으로 남겨 두자. 아깝지만! 아깝지만……!
“피, 피눈물……?”
“대체, 뭘 부탁할 생각이었던 거야 이 녀석은…….”
“아하하…….”
알리스즈가 식겁하고, 알프가 쓴웃음 짓고 있다.
그 뒤, 저녁식사때 페이트와 얼굴을 마주쳤을 때, 조금 수줍은 듯 “고마워”라고 말해왔다.
일단은 임무 완료라는 느낌일까?
“저기, 크로노 군. 마법 연습, 상대해 줄 수 있으려나?”
갑자기 나노하가 이 한 마디를 꺼냈다.
딱히 특별할 일은 아니다. 나노하가 저녁을 먹은 뒤 마법 연습을 하는 건 평소의 일과인 것 같고, 우연히 크로노가 있었기에 연습상대로 지명해, 유노에게 결계를 부탁, 다른 사람들이 그걸 관전한다.
그냥 그 뿐인 이야기였는데.
“저기저기, 오리지널은 안 해?”
레비가 시원스레 지뢰를 던졌다.
그런가, 이 녀석들은 아직 몰랐었나.
“에에……나는 더 이상 마법 못 쓰게 되어 버렸으니까.”
“그래?”
둘의 연습은 치워두고 페이트가 머티리얼들에게 사정을 설명하는데, 그걸 듣는 것 만으로 귀와 마음이 아프다.
결국 아직껏 해결수단도 찾지 못했고, 나도 페이트에게 뭘 해 줄 수 있는게 없다.
뭐라고 할까, 자신의 한심한 상태를 들이대는 듯한 괴로움.
“에에?! 그럼 나랑 더는 제대로 못 싸우는 거잖아?!”
“응, 미안해.”
“으―, 모처럼 대 오리지널용 새 필살기같은 것들 잔뜩 고민해 왔는데―.”
“아하하.”
복어처럼 뺨을 부풀리는 레비를 달래는 페이트.
보고 있으면 흐뭇한 광경이긴 하지만, 나는 자신의 죄책감을 견디기 힘듭니다.
……여행같은 거 안 오고 무한서고에 틀어박혀 있는 쪽이 좋았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제와서 들기 시작했다.
“임금, 잠시 괜찮나요?”
“음?”
대강 이야기를 들은 슈테른이 디아키와 책을 펼치고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잠깐, 어디서 책 꺼낸 거야? 장정은 어둠의 서, 바꿔말해 야천의 서랑 닮았는데.
“……여기 술식을 이러면.”
“흠, 확실히. 하지만 촉매는 어떡할래?”
“딱 들어맞는 사람이 하나 있지 않나요?”
“응? 아아, 그러고 보면 그런데.”
둘의 눈길이 이쪽을 향한다. 급작스런 상황에 조금 쫄았다.
“……에―, 그, 무슨 이야기야?”
“한 마디로 하면, 페이트의 링커코어를 고칠 수 있어요.”
“진짜로?!”
“에?”
“역시나, 슈테룽!”
슈테른의 하 만디에 나와 페이트가 놀라고, 레비가 신나 떠든다.
“만일을 위해 코어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기에, 리미터를 풀어주실 수 있나요?”
“에? 아아, 응.”
현재 머티리얼들은 보험의 의미를 겸해 마력 리미터가 걸려 있다. 그렇기에 지금 이 녀석들이 쓸 수 있는 건 염화 정도다.
뭐어, 내게서의 공급 라인이 아직 불안정하니까 전력으로 날뛰는 건 당분간 무리겠지만.
유사시에 대비해서……라고 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형태만의 주인이라곤 해도 크로노, 린디 씨와 함께 나도 리미터 해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것보다, 부담만 걸리고 공급량이 적다는 건 얼마나 변환효율 나쁜 거야. 나랑 이 녀석들 중 어느 쪽이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해제하면 돼?”
“D랭크 까지 해제해 주면 충분해요.”
“내 몫도 잊지 마.”
“앗써.”
들은 대로 슈테른과 디아키의 리미터 제한을 완화한다.
“저기 저기, 슈테룽, 나는?”
“이번엔 휴식이에요.”
“에―, 시시해―.”
뭐어, 레비는 이런데 안 맞을 것 같고.
“마력이 완전 회복 될 때 까진 참아 둬. 그 뒤에는 나노하든 시그넘네든 마음껏 전력 승부로 놀면 되니까.”
“후후―, 지금 말 제대로 기억했으니까!”
그러니까 어디서 배운 거야, 그 미묘한 말돌리기는.
“그럼 실례할게요.”
끼익 하는 새된 소리를 내며, 페이트의 몸을 감싸는 듯이 환형 마법진이 생겨난다.
그리고 십수초 지나 마법진이 흩어진다.
“괜찮아요, 이거라면 어떻게든 돼요.”
“정말?”
그 슈테른의 말에 나는 꾸욱 주먹을 쥐고, 페이트가 기쁜 듯 되묻는다.
아자! 이걸로 페이트가 다시 마법을 쓸 수 있게 된다고!
이건 정말 기쁘다. 저도 모르게 뺨이 풀어진다.
“단지, 완치에는 시간이 걸릴 거고, 그 때 까지는 전혀 마법을 쓸 수 없다고요?”
“전혀 상관 없어!”
오오, 페이트도 신나는 모양이야. 전에 없는 기세에 조금 쫄았어.
“시간이 걸린다는 건 어느 정도?”
“1년이나 2년이나……아니면 좀 더 걸릴지도 몰라요. 그 부분은 링커코어의 회복력에 따라 달라요.”
생각 보다 길구나아. 하지만, 지금까지 전혀 고칠 수단이 없었던 거랑 비교하면 아득한 진보겠지.
슬쩍 페이트를 바라봤다가 눈이 제대로 마주쳤다. 그리고 페이트가 고개를 끄덕인다.
“부탁“부탁해 슈테른, 페이트를 고쳐 줘.”
아, 완전히 페이트의 말에 겹쳤다. 페이트가 미묘하게 원망스런 듯한 눈길로 노려보지만, 뭐어, 괜찮아. 귀여우니까 오히려 포상입니다.
“고치는 건 상관 없어. 단지, 아무런 대가도 없이 고칠 수 있는 건 아냐. 거기에 걸맞는 대가가 필요하다고?”
“대가?”
디아키의 말에 앵무새처럼 대답한다. 뭐든 상관 없지만, 왜 네가 그렇게 즐거워 보이는 표정인 건데.
“이 치료법은, 치료받는 사람 이상의 마력 커패시티를 가진 링커코어의 일부를 이식해, 그걸 바탕으로 원래의 기능을 회복시킨다. 실제론 좀 다르지만, 링커코어를 이식하는 것 같은 이미지야. 그러면 거기에 걸맞는 리스크가 생기는 건 상상하기 어렵지 않겠지?”
“임금?”
“슈테른, 네놈은 끼어들지 마.”
목을 갸웃거린 슈테른에게 디아키가 일갈한다.
“리스크라는 건 어떤 거?”
“후, 대충 짐작은 가잖아?”
페이트의 질문에 디아키는 정말 즐거운 듯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그리고 디아키의 눈길은 똑바로 나를 향한다.
뭐어, 이 경우 제공자는 필연적으로 나겠지. 페이트 이상의 마력 커패시티를 가진 링커코어는 그리 많이 없을 거고. 아아, 하야테라면 가능할지도?
그렇다곤 해도, 리스크가 있으면 그야말로 녀석에게 시킬 순 없고.
“제공자는 다시는 마법을 못 써. 마력 자체의 생성은 가능하지만, 그걸 행사하는 기능을 잃는 거니까. 미래 영겁, 자력으로 마도를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 자아, 어떡할래 유토?”
“문제 없어. 해 줘.”
나는 고민 없이 즉답했다.
“………….”
왠지 주위 녀석들이 놀란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몸이 굳었다.
“뭐가?”
“네놈은 진짜 바보냐?! 알곤 있었지만?! 네놈은 다시는 마도를 구사할 수 없게 돼! 그냥 마력을 낳기만 하는 기관이 되는 거라고?! 뭘 고민 전혀 없이 즉답하는 거냐?! 좀 더 고민해! 괴로워해! 고뇌하라고!”
뭘 빡친거야, 이 녀석은. 것보다, 마력을 낳기만 하는 기관이라니, 어디서 배운 거야 그런 표현.
“저기, 이 녀석 왜 빡친거야?”
“유토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유열에 젖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성격 비뚤어졌네에.”
“네놈한테 듣고 싶진 않다!”
그렇겠지, 그렇겠지 하고 부채질 하고 싶어지지만, 페이트를 고치기 전에 심기를 언짢게 만들어도 곤란하니 자중한다.
“뭐어, 그러니까 페이트를 고쳐 주세요. 부탁합니다.”
“아, 안돼, 유토! 그런 거――으읍?!”
일단 페이트가 시끄러울 것 같아서 바인드로 입을 막고, 양팔 양다리를 구속했다.
읍―읍―신음하는 페이트를 디아키의 앞에 굴린다.
“잠깐?! 갑자기 뭘 하는 거야?!”
“바인드.”
알리사에게 바로 대답하며, 디아키에게 헤헤거리는 미소를 향한다.
“자자, 임금님. 지금 바로 페이트의 치료를 부탁드립니다.”
“유토 군 답다면 답지만, 이건 조금…….”
“네놈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안 가리는 거냐.”
“전혀 망설임 없는게 거꾸로 무섭네요.”
스즈카만이 아니라 디아키와 슈테른까지 완전 싸한 느낌이었다.
아하하, 무슨 소리든 하거라. 이 도미네 유토,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은 안 골라!
“다시 한 번만 확인하겠는데, 정말로 알고 있는 거냐? 협박도 자낭ㄴ도 아니라 다시는 마법을 못 쓰게 되는 거라고?”
이건 나를 걱정해 주고 있는 걸까? 미묘하게 심기가 언짢아 보이는 디아키의 얼굴을 보면 좀 알아보기 힘들다.
“너희에게 마력 공급하는 데는 문제없이 할 수 있지? 그럼 문제 없어. 어차피 애초에 제대로 쓸 수도 없었고.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 뿐이야, 확 하고 해 줘.”
마법에 미련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다. 자력으로 하늘을 날아보고 싶고, 좀 더 많은 마법을 배워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 탓으로 페이트가 마법을 못 쓰게 된 거니까, 그 정도의 미련은 끊어버려야 한다.
나는 어차피 아무것도 못할 거고, 페이트가 유효하게 써 줄 수 있으면 그게 반드시 좋을 거다.
“…………시시한 녀석.”
코웃음을 치며, 그 말을 내뱉는 디아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냅둬.
“흥. 슈테른, 서포트 부탁한다고.”
“예. 맡기시기를.”
슈테른이 페이트를 중심으로 마법진을 전개한다.
“움직이지 마, 유토.”
“엣?!”
내 앞에 서 있던 디아키가 사정없이 내 가슴에 팔을 찔러넣는다.
아야아아아아아아?!
심장을 움켜쥐인 듯한 격통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흘릴 것만 같다.
물리적으로 팔을 찔러 넣은 건 아니다.
현재 디아키의 팔은 내 가슴이 아니라, 가슴에 전개되어 있는 이공간같은 어딘가에 박혀 있다.
샤말이 쓰는 여행의 거울 같은 마력적인 뭔가로 내 링커코어에 간섭하고 있는 거겠지만, 이건 좀 장난이 아닐 정도로, 아파!
하지만 그런 나는 신경도 안 쓴 채로, 디아키는 손을 확 빼냈다.
우와, 왠지 몸 안이 뚝뚝 끊어지는 것 같은 감각. 어둠의 서에 링커코어 뺏길 때보다 아파!
디아키가 팔을 빼자, 그 손에는 감색으로 빛나는 빛덩어리가. 저게 내 링커코언가?
그리고, 온 몸에서 힘이 빠져가는 감각. 나는 휘청휘청 주저앉아 버렸다.
우오오오옷, 눈이 돈다.
“슈테른. 네놈 쪽의 준비는 됐나?”
“언제든 오세요.”
“읍―! 읍―! 읍읍―!”
슈테른의 발 밑에는 바인드로 구속되어 있는 페이트가.
뭔가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지만, 그 상태론 아무것도 못한다.
그리고 디아키가 내 링커코어를 페이트의 가슴에 댄다.
“읍……으읍!”
움찔움찔 페이트의 몸이 튀어오르고, 몸이 새빨갛게 물들어간다.
뭔가 미묘하게 에로한데. 것보다, 괜찮은 건가, 어이.
디아키의 팔에 환형 마법진이 전개되고, 천천히 페이트의 가슴에 파묻혀 간다.
땅에 전개된 슈테른의 마법진과 디아키 팔의 마법진이 동조하는 것처럼 반짝이며, 빛을 늘려간다.
그리고 갑자기 마법진이 소멸된다.
“끝났다고.”
페이트의 가슴에서 팔을 뺀 디아키와 왠지 뻗어있는 페이트.
일단 슬슬 바인드 풀까.
“응? 어라?”
바인드가 안 풀려. ……아, 그런가, 해제도 못하는 건가.
“미안, 슈테른. 페이트의 바인드 해제 부탁해.”
고개를 끄덕이곤, 슈테른이 페이트를 묶는 바인드를 만지자, 동시에 터져나가는 바인드.
알고 있었지만, 내 바인드 약하구나아.
“으으……유토, 너무해.”
일어나서 눈물맺힌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는 페이트를 보니 왠지 굉장히 오싹오싹거려 흥분했다.
안돼, 좀 더 괴롭히고 싶다.
『유토 변태.』
그런 유나의 목소리가 뇌리에 울려퍼진 기분이 든다.
부정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구나, 응.
“뭐 하고 있어?”
유노를 필두로 다른 애들이 돌아왔다.
“엣, 페이트 괜찮아?!”
눈물을 훌쩍이는 페이트를 본 나노하가 허둥지둥 페이트에게 달려간다.
“유토 군, 페이트한테 뭘 한거야?”
나노하가 날 지긋이 노려본다.
안돼, 이건 진짜 화내고 있다. 정신 차리고 보니 크로노도 유노도 진지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기다려, 이야기를 들어. 별로 괴롭히거나 한 게 아니라고, 단순히 페이트의 링커 코어를 고치려고 하던 것 뿐이야.”
“페이트의?”
“으음.”
셋의 시선에 쫄면서, 어떻게든 요약해 전달한다.
“그런 거니까, 결코 페이트를 괴롭혔던 게 아닙니다, 예.”
“보충하자면, 언제 완치될지는 그 녀석의 회복력 나름. 그때까지 전혀 마도는 못 쓴다고. 출혈 대서비스로 완치됐을 때는, 바로 알 수 있도록 조치를 해 뒀다고.”
흐흐흥, 하고 콧소리를 내는 임금님.
아까까지 언짢아했던 것 치곤 굉장히 신나있구나. 것보다, 서비스 좋은데.
본질적으론 남을 잘 신경쓴다고 할까, 사람이 좋다고 할까, 남을 잘 돌본다고 할까. 초대면때랑 인상 너무 다르잖아.
내게만 비난이 강한 기분이 들지만.
“그랬구나. 그래도 유토 군, 정말 괜찮았어?”
나노하가 말하려는 소린 안다.
“아무 문제도 없어.”
번뜩 하는 효과음이 붙을 것 같은 기세로 즉답한다.
“전혀 안 괜찮아!”
“오옷?!”
부활한 페이트가 서슬이 시퍼렇게 화를 터뜨렸다.
“왜 내 이야기를 안 듣고 이런 거 하느 건야?! 내가 나아도 유토가 대신 마법을 못 쓰게 되면 의미 없어! 그걸로 내가 나아도 전혀 기쁘지 않아!”
놀랐다. 페이트가 이렇게 화내는 거 처음으로 봤다. 나노하도 크로노도 유노도 알리사도 스즈카도 눈을 점으로 뜨며 놀라고 있다. 머티리얼들은 차가운 눈으로 보고 있지만.
“처음으로 만났을 때부터 그래! 유토는 내 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언제나! 언제나!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휘둘러대고!”
“하.”
속마음으론 페이트의 서슬에 쫄면서도, 코웃음을 날리고 입꼬리를 당겨올린다.
“전에도 말했잖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네 사정이나 기분따위 알까보냐!”
“유토도 꽤 여유가 없네.”
“여유가 너무 없어서 자기가 무슨 소리 하고 있는지 모르는게 아니려나.”
거기 남자 두명 시끄러워! 페이트가 이렇게 감정 다 드러내고 화내는 건 상상도 못했으니까, 이쪽도 완전 버겁다고!
“유토 군은 사실 예상 밖의 상황에 약해?”
나노하까지 시끄러! 아아, 정말, 왠지 머리 빙빙 돌기 시작해서 영문도 모르겠어!
“엑.”
깨닫고 나니 페이트가 이쪽을 노려본 채로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잠깐, 잠깐. 여기서 우는 건 이상해. 이상하지?! 뭐야 그, 어떡하면 되는거야?!
“――――에?!”
갑자기, 페이트에게 힘껏 껴안겼다.
잠깐 기다려. 신장차 별로 없으니까 얼굴 가까워!
내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오열하는 페이트. 에, 뭐야 이거, 진짜 어쩌면 되는데?!
도움을 바라려고 주위에 눈길로 요청해보려 했지만――.
“애정싸움인가, 바보같아.”
“방에서 트럼프라도 할까요?”
“좋아―, 간식 건 진검승부……불타올라!”
“우리들도 먼저 갈까?”
“응, 그렇네.”
“그러자.”
“우리도 나노하네 방에 실례하도록 할게.”
“방 지키고 있는 알프에게도 이거 전해줘야 겠네.”
에?! 이 상태로 다들 돌아가는 거야?!
“잠깐 기다려! 놓고 가지 마! 부탁합니다! 도와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그렇게 소리쳐 보지만, 다른 애들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간다.
훌쩍 우는 페이트와 나만이 무정하게도 여기 남겨졌다.
페이트를 떨쳐낼 수도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
에에……, 이럴 때는 안아주는 쪽이 좋은 걸까.
조심조심 그 날씬한 허리에 손을 두르고, 다른 한 손을 머리에 싣고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유토 바보.”
고개를 묻은 채로 페이트가 작게 말한다.
“바보, 바보, 바보…………정말 싫어.”
정말 싫어 들어왔습니다―. 것보다, 그렇게 바보바보 연호 안해도 괜찮을텐데.
뭐어,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으니까 감수하겠지만.
“――――그래도, 정말 좋아.”
“――――에?!”
작게 한숨을 내쉬던 참에, 아슬아슬하게 들릴 정도의 자그만 목소리.
그리고 꾸욱 날 잡고 있는 페이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 상황에서 그 말은 너무나 기습적이다.
“에, 아?”
예상도 못했던 충격에,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에? 이 상황에서 좋아한다고? 에? 아? 무슨 의미?
조금 머리 방향을 바꾼다.
여전히 페이트는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의도로 한 발언인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페이트의 머리에서 풍기는 좋은 향기에, 분별없이도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잠깐 기다려, 나. 뭘 페이트를 상대로 두근거리고 있는 거야.
잠깐잠깐잠깐, 초등학생 상대로 두근두근거리다니 이상하잖아.
시추에이션이냐?! 시추에이션 탓이냐?!
몰라!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
하지만, 잠깐. 침착하게 잘 생각해 보자. 아직 어리다곤 해도, 페이트는 장래가 약속된 미소녀.
이런 미소녀에게 내가 고백받을 일이 이 뒤로 있을까? 아니, 있을 리가 없다.
이렇게 되면 이제―, 페이트로 갈 수 밖에――!
아니, 잠깐 기다려, 나. 이 생각은 이상해. 아까부터 여러모로 여유가 너무 부족하잖아.
한 번 머리를 식히자. 우선은 심호흡을 하고 호흡을 정돈해……어, 스윽 페이트가 내게서 떨어진다.
어라?
페이트는 붉은 눈으로, 눈물 맺힌 도끼눈으로 이쪽을 노려보며 말한다.
“유토 바보.”
“에에……페이트? 아까 건?”
“흥이다!”
아연자실한 내게, 페이트는 혓바닥을 내민다.
뭔가 무진장 귀엽고 귀중한 걸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이건 어떻게 반응하면 좋은걸까요?
한 순간 레비가 겹쳐 보였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다다닥 달려 떠나가는 페이트.
“Oh…….”
홀로 남겨진 나.
모르겠어. 여자는 무슨 생각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나도 돌아갈까.”
페이트의 모습이 안 보이게 되고, 그 뒤로도 몇초쯤 멍하니 있던 나는 혼잣말을 한다. 슬슬 춥고.
그리고 한 걸음을 디뎠을 때――.
“어라?”
갑자기 시야가 컴컴해졌다.
빈혈도 지독하다고 생각한 순간에는 몸에서 힘이 빠져, 자리에 무너졌다.
아―, 이거 위험하지 않나? 같은 걸 남일처럼 생각하면서, 내 의식은 끊겼다.